가와이이 제국 일본

가와이이 제국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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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이이 제국 일본
요모타 이누히코 지음
펜타그램

책소개

이 책은 일본 대중문화를 포괄하는 ‘가와이이’ 미학의 베일을 벗기는 일본문화 비평서이다. 일본 대중문화가 세계적으로 성공을 이루게 된 배경에 가와이이 미학이 있다고 보고 그 과정과 현실, 미학적 이데올로기를 다룬다.

요약본 본문

가와이이 제국 일본
요모타 이누히코 지음
펜타그램 / 2013년 12월 / 232쪽 / 13,000원

‘가와이이’ 현상

이탈리아의 ‘세일러문’
1994년 이탈리아 볼로냐의 대학가에 체재하며 영화사를 공부하던 무렵의 일이다. 여름방학 직전에 기차역의 기둥이며 벽에 포스터가 일제히 새로 내걸렸다. 포스터 교체야 흔히 있는 일이겠지만, 내가 놀란 것은 포스터의 내용이었다. 거기에는 세일러복을 입은 금발의 여자아이가 이탈리어로 “여자애들아, 여름이야!”라고 외치는, 일본의 소녀만화가 그려져 있었다. 다케우치 나오코 원작의 애니메이션 <미소녀 전사 세일러문>(이하 <세일러문>)이 얼마 전부터 이탈리아 전역에서 텔레비전으로 방영되었고, 이탈리아 국영철도가 그 폭발적인 인기에 편승해 여름철 여행 캠페인을 시작한 것이었다. 포스터는 역사 구석구석에 붙어 있었고, 나는 그 여름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내내 <세일러문>의 주인공 쓰키노 우사기의 웃는 얼굴과 함께하게 됐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었다. 역 구내매점에서는 <세일러문>의 만화 월간지를 눈에 잘 띄는 맨 앞자리에 깔아놓았다. 그것도 지난 호까지.

볼로냐는 웬만해선 관광객의 발길이 닿지 않는, 지독히도 조용한 동네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있기 때문인지 고서점이 많다. 호박색 주랑을 지나 산책을 하다 보면,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혼잡한 도쿄에서 정신없이 살아왔다는 게 거짓말처럼 느껴지곤 한다. 그런 볼로냐에서도 만화 전문점이 두 군데 있는데, 일본제 피규어를 신줏단지 모시듯 야단스럽게 장식해놓았다. 알고 지내던 학생들 중에는, 일본의 미소녀 애니메이션에 푹 빠져 나보다도 아는 게 훨씬 많은 젊은이도 있었다. 이듬해 나는 볼로냐를 떠나 도쿄로 돌아왔다. 들리는 소문에, 일본의 유명한 만화 고서점 ‘만다라케’의 유럽 1호점이 볼로냐에서 문을 열었다고 한다. 파리나 암스테르담이 아니고 볼로냐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처음 만나는 일본
볼로냐에서 겪은 충격적인 만남 이래로, 나는 세계 곳곳에서 이 세일러복 차림의 5인조 소녀들을 맞닥뜨리곤 했다. 어느 해 연말에 찾은 중국 베이징의 거리에서는 그녀들이 보름달 아래서 졸고 있는 모습을 그린 크리스마스 카드가 팔리고 있었다. 오스트리아 빈 대학의 캠퍼스에서는 <세일러문>의 등장인물인 쓰키노 우사기며, 루나 네코며, 턱시도 가면 등이 그려진 동아리 모집 안내 입간판을 발견했다.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 2004년, 나는 코소보 난민캠프에 임시로 세워진 교사(校舍)의 대학에서 잠시 교편을 잡게 됐다. 세르비아인과 알바니아인이 거세게 반목하던 때였다. 초등학교 건물을 이용해 세워진 난민촌에 몇 번인가 초대를 받았는데, 거기서도 텔레비전 화면에서 <세일러문>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자막이나 더빙에 쓸 예산이 없었기 때문에 원어 그대로 설명도 없이 방영되고 있었다. 그래도 난민촌 아이들은 화면을 집어삼키기라도 할 듯이 착 달라붙어서 보고 있었다.

세계 어디를 가나 사람들은 <세일러문>으로 대표되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일본과 접촉하고 있었다. 그들이 정말 그것을 일본이라고 인식하는지 아닌지는 별개의 문제다. 어딘지 무척 친밀하고, 귀엽고, 로맨틱하여 감정적인 일체감을 갖게 만드는 것. 소녀의 정열을 통째로 담아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미디어에 수많은 사람들이 깊이 친근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우연히도 일본 문화였다.

세계를 석권하는 ‘가와이이’
오늘날 ‘가와이이’는, 세계 도처에서 만날 수 있는 현상이다. 시부야든 하라주쿠든 좋으니, 도쿄에서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번화가를 한번 걸어보자. 디지털 디스플레이에서 가게 앞의 간판까지, 거리에 내걸린 영상과 기호의 상당수에는 ‘가와이이’라는 향신료가 뿌려져 있다. 본래는 엄숙한 공간이었을 은행에서조차 만화 캐릭터를 귀하게 모시고 있다. 행인들의 모습을 어떨까? 작달막한 스트랩으로 꾸민 휴대전화를 쉴 새 없이 사용하고, 친구에게 줄 자그마한 물건을 고르느라 바쁘다. 가방에는 작은 봉제인형이 매달려 있거나,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그려져 있기 마련이다. 도쿄 젊은이들의 거리 패션에서는 런던의 펑크룩이나 모즈룩과 달리, 대항문화가 깃들인 정치성을 전혀 느낄 수 없다. 그들은 그저 귀여우니까, 즉 ‘가와이이’를 이유로 그러한 복장을 선택한다. 1980년대의 ‘마루문자(丸文子)’와 ‘노리P어(のりP語)’, 90년대의 ‘오타쿠’, 2000년대의 ‘모에(萌え)’ 붐까지, 일본의 ‘가와이이’ 문화는 세계의 서브컬처 중에서도 철저하게 탈정치성을 표방한다는 점에서 독자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일본을 떠난다고 ‘가와이이’ 문화에서 이탈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상황은 오히려 정반대다.일본의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이 방영되는 곳, 거대한 두 눈 속에서 별이 반짝이는 소녀들의 만화가 읽히는 곳, 마음에 드는 스티커사진을 뽑으려고 소녀들이 길게 줄을 서는 곳, 미소녀를 빚은 피규어나 키티 캐릭터 상품이 쇼윈도에 진열되어 있는 곳, 거기에는 예외 없이 ‘가와이이’의 미학이 군림하는 공간이 있다. ‘가와이이’의 미학은 국경을 넘어, 민족과 언어의 장벽을 넘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사람들의 수집 대상이 되고, 코스프레(costume play, 분장 놀이)의 변신 원리가 되며, 소비사회의 중요한 참조 항목이 된다.

21세기 일본의 미학
‘가와이이’ 현상은 비방과 상찬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그만큼 현대 일본의 신화로서 갖는 의미가 지극히 크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것은 마치 커다란 삿갓처럼 일본이라는 사회를 덮어씌우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문화본질론의 시각에서 그럴듯한 말을 할 생각은 없지만, 11세기에 쓰인 《마쿠라노소시(枕草子)》의 유명한 서술에서도 보이듯, 일본 문화 속에는 작은 것, 어린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전통이 확고하게 존속해왔다. 이 점만큼은 역시 마음에 담아둘 필요가 있다. 이는 구미의 경우에서처럼 미성숙을 성숙으로 가는 발전 도상의 단계로 간주하여 폄하하고 재단하는 태도와는 전혀 다르다. ‘가와이이’를 그저 21세기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세계적 현상으로 이해하고 만다면, 그것이 하필 일본에서 발신된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공시적인 인식과 통시적인 인식을 동시에 구사하지 않고서 ‘가와이이’의 미학, ‘가와이이’의 신화학에 접근하기란 불가능하다.

일본의 미학을 되돌아보자. 일찍이 11세기 일본의 귀족사회는 모든 사물이 변해가는 무상함 앞에서 어딘지 쓸쓸하고 가련하다는 의미로 ‘모노노아와레(もののあはれ)’의 미학을 설파했다. 13세기의 가인(歌人)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암시로 가득한 표현으로 일관하는 것을 깊고 오묘하다 하여 ‘유현(幽玄)’이라 일렀다. 16세기의 다인(茶人)은 색채를 극도로 억제하고 우연과 불규칙성을 즐겼다. 호사스러움이 빠진 자리를 상상력으로 메운 것이다. 소박하고 차분한 아취를 일컫는 ‘와비(わび)’가 거기에서 나왔다. 그리고 19세기의 유녀(遊女)는 기개와 교태와 체념에서 나오는 세련됨, 즉 ‘이키(いき)’를 행동의 원리로 삼았다. 그렇다면 이제 작은 것, 어딘지 그리움을 자아내는 것, 어린 것을 ‘가와이이’라고 부르고, 이를 21세기 일본의 미학으로 본다고 해서 안 될 것도 없겠다.

게다가 그 미학은, 미학의 틀을 훌쩍 뛰어넘어 전 세계를 가로지르는 이데올로기로 드넓게 퍼져 있다.

‘가와이이’의 내력

이미 《마쿠라노소시》에서부터
‘가와이이(がわいい)’라는 말은 어떠한 기원을 갖고 있을까? 이 단어의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면 문어(文語)인 ‘가와유시(がわゆし)’와 마주친다. 거기서 더욱 거슬러 올라가면, ‘가오하유시(がほはゆし)’라는 말에 이른다. ‘가오(얼굴)’와 ‘하유시(비추다)’가 결합된 단어다. ‘하유시(はゆし)’는 ‘오모하유시(おもはゆし, 쑥스럽다)’, ‘마바유시(目映し, 눈부시다)’ 등의 어미로도 쓰이는 단어로, 그 원형은 ‘하유(映ゆ)’다. ‘하유’는 지금의 ‘하에루(映える, 빛나다)’에 해당하는 말로, 사물이 한층 선명하게 보이거나 비추어진 모습이 아름다워 보이는 상태를 뜻한다. 활력이 충만하여 한층 왕성해진다라고 해석해도 좋다. 따라서 ‘가오하유시’의 의미를 풀면 얼굴이 전에 비해 훨씬 또렷하게 돋보이는 모습, 흥분한 나머지 발그레한 모습 등을 나타내는 말이 된다. 현재 유행하는 ‘모에(萌え)’라는 단어에 그러한 의미가 담겨 있다. 단어의 뜻이 먼 옛날로 되돌아가기도 한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다.

그렇다면 ‘가와유시’라는 단어가 없었던 시대에, 일본인은 귀여운 것을 어떻게 불렀을까? 아무리 먼 옛날이라 해도, 나라(奈良) 시대나 헤이안 시대에 귀여운 여자나 작은 동물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 답은 ‘우쓰쿠시(うつくし)’다. 귀족 계급의 말인 ‘우쓰쿠시’의 지시 영역이 신흥 세력인 속어(俗語)에 떠밀려 소유권을 넘겨주는 과정은, 중세 언어학에서 일어난 투쟁이었다.

‘우쓰쿠시’는 한자로 ‘美し’ 또는 ‘愛し’라고 쓰는데, 헤이안 시대에는 오늘날의 ‘우쓰쿠시’, 즉 ‘아름답다(beautiful)’라는 의미보다 오히려 ‘가와이이’라는 의미로 쓰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현대의 ‘우쓰쿠시’에 해당하는 단어는 ‘쿠타시(くたし)’였다. 11세기 초 세이쇼나곤(?少納言)이 지은 수필집 《마쿠라노소시》에서, 유명한 146단의 한 대목을 보자.

귀여운(うつくしき) 것
참외에 그린 아기 얼굴. 찍찍찍, 부르면 새끼 참새가 팔짝팔짝 뛰어 가까이 오는 것. 또 발을 끈으로 묶어두면 어미 참새가 벌레를 잡아와 먹이는 것도 참 귀엽다. 두 돌 지난 아기가 막 기어 오다가 작은 티끌 하나를 발견하고 그 조그만 손으로 집어서 어른한테 보여줄 때는 정말이지 귀엽다. 어깨까지 머리카락을 기른 계집아이가 눈을 덮은 머리칼을 쓸어 올리려 하지도 않고 고개를 기울여 뭔가를 골똘히 쳐다보는 것도 너무나 귀엽다.

참고로 《마쿠라노소시》를 영역한 20세기 초 런던의 일본 문학자 아서 웨일리는 ‘우쓰쿠시’의 번역어로 ‘pretty’를 선택했다. 여기저기 의문스런 데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의 번역문을 다시 일본어로 고쳐봄으로써 세이쇼나곤이 ‘우쓰쿠시’라는 형용사에 어떤 이미지를 담았는지, 오늘의 관점에서 확인해보자.

귀여운(かわいい) 것
멜론을 한 입 베어 문 어린아이의 얼굴. 새끼 참새를 향해 ‘츗츗’ 하고 부르면 뿅뿅 이리로 다가올 때. 이 새끼 참새를 붙잡아 실로 발을 묶어두면, 어미 새가 벌레 따위를 주려고 올 때. 세 살쯤 된 아이가 땅바닥에 떨어진 작고 이상한 것을 발견하고 갑자기 달려가서는 자그마한 손가락으로 집어 어른한테 들고 와 보여주는 모습. 수녀와 같은 단발머리에 옷차림이 단정한 소녀가 무언가를 바라보기 위해 눈가에 걸린 머리카락을 젖히느라 이마를 쳐드는 모습.

이러한 기술을 보고 있자면, 작은 것, 귀여운 것을 바라보는 일본인의 친근한 눈길은 천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실로 조금도 변함이 없구나 싶어, 묘하게 관심이 기운다. 세이쇼나곤이 ‘가와이이’의 예로 든 것은 어린 존재로, 천진난만하고 순진하고 어른의 비호를 필요로 한다. 그들의 사소하고 유희적인 몸짓에 세이쇼나곤은 초점을 맞추었다. 여기에서는 성숙한 자가 높은 곳에 서서 미성숙한 자를 지배하고 내려다보는 시선은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미성숙한 것을 아름다움으로 긍정하고자 하는 자세가 엿보인다.

작은 것, 어린 것

미니어처가 주는 즐거움
미국의 비교문화학자 수전 스튜어트(Susan Stewart)가 쓴 『동경론(On Longing)』은 노스탤지어, 기념품, 수집 행위 등 인간이 일관되게 영위해온 심상을 분석했다는 점에서 지극히 흥미롭다. 스튜어트에 따르면, 우선 미니어처는 자연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두드러지게 인공적인 산물이고, 인간은 그것에서 종종 장인의 작업이 낳은 정교한 솜씨를 발견하고는 만족스러워한다. 과연 담뱃대 끈 장식에서 휴대전화 스트랩까지, 황금빛 부처의 누각을 꼭 닮은 가정용 불단에서 치밀하게 만들어진 철도 모형까지, 모든 축소 모형은 현실에 실재하는 거대한 물체에 환유(metonymy)의 조작을 가함으로써 제작된 영상(닮은꼴)이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미니어처는 기원이 되는 물체를 모방한 것이면서도 그 본체가 속한 현실 세계로부터 차단되어,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엄밀히 유지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격리가 전제되어야만 미니어처를 손에 넣은 이가 현실과는 별개의 질서를 가진 미니어처의 공간을 즐기며 자아를 잊을 수 있다. 미니어처는 기원이 되는 것과 비교하면 그 크기가 실로 현저히 작다. 그런데도 (혹은 그래서) 미니어처가 체현하는 전체성의 관념은, 많은 경우 기원이 되는 것을 훨씬 능가할 정도로 공고하다.

스튜어트의 논의는 미니어처를 개인이 손에 들고 다닐 수 있는 크기의 물건으로 한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독자적이다. 동물원도, 수족관도, 또 요즘 유행하는 테마파크도 보기에 따라서는 미니어처다. 말할 필요도 없겠으나, 현실의 코끼리나 호랑이를 축소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현실의 사바나 초원이나 바다로부터 격리된 폐쇄 공간 안에 동물들을 옮겨놓으면, 그곳을 방문하는 이들은 미니어처 앞에 선 것과 비슷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동물원을 방문하는 이는 이미 공상의 세계에 한쪽 발을 들여놓는 셈이다. 관람을 마친 그(그녀)들이 들르는 기념품점에는 실재하는 동물인 코끼리나 호랑이의 미니어처 키홀더, 이티나 유니콘 같은 공상의 생물을 이용한 기념품이 뒤섞여 진열되곤 한다. 동물원이란 곳은 격절한 질서가 지배하는 극소의 공간이고, 그곳의 주인공인 동물들이 귀여운(가와이이) 존재가 되는 것은 미니어처 일반이 ‘가와이이’ 오브제이기 때문이다.

미니어처를 논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것이 현실에서 격리된 친밀감 넘치는 공간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동시에 시간을 동결시켜버린다. 지금 나의 책상 위에는 아키하바라의 캡슐완구회관에서 입수해 막 조립한 미소녀 피규어가 두 개 있다. 그중 하나는 비키니 차림으로 두 발을 물에 담근 채 오른손에 쥔 녹색 망치를 치켜들고 있다. 다른 하나는 막 잠에서 깬 소녀가 파자마 차림으로 졸린 듯 눈을 비비고 있는 모습이다. 둘 다 일상에서 단락 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어느 특정 순간을 포착하여 고정시킨 것으로, 거기에는 특권적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에 나섰을 때 대평원에서 쿠투조프 장군의 군대와 대치하고 있는 광경을 수백 개의 병사 인형으로 재현한 거대한 파노라마식 미니어처도 있다. 전에 모로코의 탕제(Tanger)에서 본 적이 있다. 역사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한 순간이 뚝 떨어져 나와 타블로(tableau, 정지화면)로서 눈앞에 펼쳐진 셈이다. 이렇게 미니어처는 본질적으로 무시간적 오브제가 되어버린다. 그것은 공간적으로 좁고 작게 한정된 오브제임과 동시에 시간적으로도 딱 멎어 있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모든 미니어처는 역사를 기피한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바꾸어 말하면, 미니어처는 유토피아라고 가정된 무시간성을 향해 사물이 빠져들면서 보여주는 상태라고 할 수도 있겠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악령』이나 에밀 쿠스트리차의 영화 <라이프 이즈 파라다이스>(2004)를 보면, 시시각각 급변하는 위기 상황에 둘러싸여서도 오로지 철도 모형을 완성하는 데에만 정열을 불태우는 역장이 등장한다. 그들은 현실 세계의 시간 질서를 거부하고 미니어처가 펼쳐 보이는 동결된 시간에 매혹된다. 그는 미니어처를 통해 잃어버린 세계의 전체성을 향해 다시 한 번 손을 뻗고자 한 것이다.

그리움, 아이스러움

노스탤지어와 ‘가와이이’
노스탤지어(nostalgia)란 그리스어 ‘노스토스(nostos, 귀향)’와 ‘알고스(algos, 고통)’를 조합한 말로, 17세기 스위스에서 병리학 용어로 고안된 것이었다. 처음엔 고향을 떠나 용병이 된 스위스 청년들이 걸린 정체불명의 질환을 가리키는 데 쓰였다. 노스탤지어는 공간적으로 격리된 데에서 비롯한다고 여겨진 것이다. 이 노스탤지어가 실은 내면적 상실감에서 유래한다고 주장한 사람은 18세기 철학자 칸트다. 그 뒤 이 개념은 임상의학의 현장에서 멀어져, 오로지 시간적 상실감과 관련된 인간 심리의 문제로서만 연구되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노스탤지어는 어디서나 널리 쓰이는 말이 되었다. 일본인이 아직 ‘가난하지만 티 없이 아름답게’ 살아가던 시대를 그린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가 호평을 받는가 하면, 기회만 생기면 복고풍 패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곤 한다. 깊은 산속의 온천에서 유럽의 폐허에 이르기까지, 관광업계는 잃어버린 시대를 노래하느라 바쁘다. 전 세계의 노스탤지어를 종합한 공간인 디즈니랜드는 키치(kitsch) 순례 성지 노릇을 하고 있다. 보수파 정치가들은 툭하면 타락하지 않은 시절의 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호통을 치곤 한다. 또 골동품 붐이 일어, 구경하기도 힘든 옛 장인들의 기술이 깃들인 가구나 도자기가 현대의 대량생산된 상품과 대비되어 소비자들에게 팔리고 있다. 미국의 현대 사상가 프레드릭 제임슨에 따르면, 노스탤지어야말로 후기 자본주의 문화 이미지의 중추로, 실제로 일어난 과거를 이야기하기보다 이상화된 “과거의 어떤 것”을 어떤 특정한 의미에 담아내 이야기하는 데 주로 관심을 둔다. 그런 의미에서 노스탤지어는 역사의 대립물이고, 이데올로기의 왜곡이 가해진 과거의 스테레오타입에서 일어나는 감정이라고 보아도 좋겠다.

노스탤지어와 미니어처는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이다. 인간은 한 번 지나가면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자체를 결코 대상화할 수 없다. 여기에 어떤 물질화된 것이 끼어들기 마련이다. 구체적으로 기념품, 유품, 가보 같은 기념물이 바로 그런 예다. 이들은 모두 크지 않은 것들로, 대개 손에 들고 다닐 수 있는 정도다. 인간은 이러한 기념물을 실마리로 하여 과거의 시간을 관념으로 받아들인다. 그러고는 거기에 자기 자신과 국가, 민족의 순수하고 참된 기원과 같은 것을 정립시킨다. 노스탤지어는 이렇게 물질화한다.

노스탤지어란 과거를 미화하고자 하는 정열이다. 그런 점에서 역사와 적대적 관계에 선다. 역사가들은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인과관계를 탐구하고, 그것을 객관적으로 증명해주는 자료를 중요시한다. 그런데 노스탤지어에 빠지는 이는 타락과 환멸로 가득 찬 현재를 기피하고, 현재와 완전히 단절된 곳에 서서 아름다운 과거의 영상에 도취된다. 꿈속에 그리는 과거는 절대 거리 밖에 떨어져 있기에, 그만큼 눈부시게 빛나는 것이다. 모든 사물은 유리벽 너머로 바라볼 때 더욱 강렬한 노스탤지어를 자아낸다. 노스탤지어란 떨어져 있다는 의식일 따름이다.

노스탤지어, 기념품, 미니어처는 삼위일체가 되어 우리들의 소비사회를 형성한다. 이 세 개의 점을 연결하는 것이 ‘가와이이’다. 사회는 그 지정학적 영역 안에 들여놓아선 안 될 미학적 잡음을 배제하고자 한다. 이때 사회가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가와이이’의 미학이라고 보면 틀림없을 것이다.

왜 어린아이는 귀여운(가와이이) 걸까? 기원의 순수성과 신성함을 널리 선전하는 데에 어린아이는 가장 효과적인 은유가 되기 때문이다. 파시즘 시대의 독일이나 일본의 영화에 등장하는 생기발랄한 소년들의 영상을 떠올리면 이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행지에서 이따금 들르곤 하는 기념품점에 진열된 물건들은 왜 귀여운(가와이이) 걸까? 작고 부담 없이 들고 다닐 수 있는 것들만이 여행을 계기로 개인의 이야기를 구축해가는 데 딱 알맞기 때문이다. 왜 노스탤지어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온갖 사물은 반짝반짝 귀엽게(가와이이) 빛나 보이는 걸까? 이 감정이 외계와 내면을 엄격히 구별해주기 때문이다.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 안식의 느낌으로 충만한 내면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친밀한 존재, 무방비 상태인 존재, 마음 편하고 기꺼운 존재로 변하기 때문이다.

만화가 오시마 유미코의 작품을 보면, 기억에서 가물가물한 아득히 먼 유년기가 홀연히 등장한 귀여운(가와이이) 소년에 의해 환기되고, 생기 넘치는 소년의 모습을 보며 소녀는 행복감에 감싸인다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내밀하게 닫힌 비밀스런 세계에서는 모든 존재가 대립을 잊고 ‘가와이이’ 속으로 녹아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 행복의 영상으로 가득한 삼위일체가 역사라는 관념의 희생을 치르고서야 비로소 달성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이데올로기로서 노스탤지어가 ‘가와이이’에 호소할 때, 무언가가 주어짐과 동시에 무언가는 억압되고 부정된다는 문제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미성숙에서 미(美)를 발견하는 일본 문화
유년기는 순진무구하고 때 묻지 않아야 한다는 관념은, 서구 근대가 낭만주의와 함께 만들어낸 여러 신화 중에서도 유독 거대한 신화다. 아이는 어른의 미니어처다. 이 명제는 신체적 척도로서의 의미는 물론, 아이의 세계가 그 자체로서 자율적이며 어른의 현실 세계로부터 동떨어져 있다는 의미에서도 옳은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서구 사회에는 일반적으로 이 유년기의 친밀함의 신화와 상반되는 듯한 ‘성숙’의 관념이 자리 잡고 있다. 아이는 미성숙한 무언가에 불과하고, 수많은 통과의례를 거쳐야만 비로소 한 사람의 어른이 되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다는 관념이 그것이다. 젠더조차 분화되지 않은, 부모의 비호 아래 있는 어린 존재는 아직 충분히 인간이 되었다고 할 수 없다. 남녀 어느 쪽이든 젠더로 귀속되고, 완전히 성숙한 존재가 되어야만 인간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 서구 사회가 이러한 암묵의 약속을 전제로 성립했다는 점은 이제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일본 문화를 대상으로 놓고 보면, 이러한 성숙의 신화는 금세 풀이 죽어 기능을 못하고 만다. 일본에서는 작고 섬세한 것을 소중히 여기듯이, 아직 완전히 성숙하게 자라지 않은 것, 언젠가 개화하리라 예상되지만 아직 활짝 피지 않은 것이야말로 가치 있다고 여기는 사고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인의 일상생활 어디에서나 발견되는 사고방식이다. 꽃을 선물할 때를 예로 보자. 일본인은 꽃망울을 즐겨 고르는 민족이라는 말을 종종 듣곤 한다. 가부키는 또 어떤가. 아직 변성기가 지나지 않은 소년들에게 ‘시라나미 고닌오토코(白波五人男, 1862년에 초연된 가부키 ’아오토조시 하나노 니시키에(靑砥稿花紅彩繪)’의 속칭. ‘시라나미’는 도적을 뜻하는 단어로, 5인조 도적단의 활약을 그린 작품)‘를 연기하게 하고, 언젠가 그들이 성인 연기자로 우뚝 서는 날을 손꼽아 기대하며 즐거워하는 습관도 마찬가지 사고에서 나왔다. 완성된 것을 외려 멀리하고, 서툴더라도 미완성인 것을 소중히 여기는 미학. 일본인은 이러한 미학을 오랜 세월 동안 대중적으로 향수해왔다.

‘가와이이’, 바다를 건너다

‘가와이이’는 일본의 독자적 미학인가?
메이지 유신(1868) 이후 급속하게 서양식 근대화를 이루어낸 일본에서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 것은 서양 열강의 눈에 일본의 모습이 어떻게 비쳐지는가 하는 문제였다. 미개한 야만 족속으로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로쿠메이칸(鹿鳴館, 메이지 정부가 1883년 도쿄에 건립한 외국인 대상 사교장)을 건립했고, 군대와 교육기관에 서양 음악을 도입했다. 동시에 일본의 문화적 독자성을 증명하기 위해 힘썼다. 전근대에서부터 이어진 몇 가지 문화에 초점을 맞추어, 그것이 일본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고급 문화라고 해외에 선전했다. 이 문화 내셔널리즘의 경향은 2차 대전에서 일본이 패배한 뒤 더욱 현저하게 나타났다. 그렇지만 이러한 전통주의는 근대화 이래로, 어디까지나 타자의 시선이 계기가 되어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일 뿐이다. 가부키, 도자기, 기모노 등을 에도 시대의 서민들은 결코 ‘전통’이라고 자각하지 않았다. 그러한 전근대의 대중문화가, 내면화된 오리엔탈리즘을 매개로 하여 순수한 고급 문화유산으로 탈바꿈했다. 이는 결국 이데올로기적으로 새로 만들어진 문화에 지나지 않는다.

1980년대까지 일본을 괴롭혀온 것은, “재팬 애즈 넘버원(Japan as Number One)”이라는 말을 듣기에 이른 경제력과 일본에서 발신 가능한 문화력 사이에 놓인 불균형이었다. 일본은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워크맨, 가라오케에 이르기까지 테크놀로지를 구사한 하드웨어 상품을 세계 시장에 내다 파는 데에는 확실히 성공했다. 그렇지만 그 워크맨으로 들을 수 있는 자신의 음악, 그러니까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문화상품을 해외에 보급시키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앞에서 언급한 일본의 고급 문화는 극소수 예술가나 지식인이 특권적으로 감상하는 것일 수는 있어도 대중적으로 수용되기에는 머나먼 존재였다.

1990년대에 들어서자 정세가 바뀌었다. 홍콩이 범아시아적 규모로 위성방송을 시작한 일이 상징하듯, 글로벌한 거대 미디어가 산업으로서 출현하게 된다. 냉전체제의 붕괴와 맞물려, 국경을 넘어 유입되는 노동자, 이민, 관광객들이 비약적으로 늘었다. 아시아 곳곳에서는 현대적인 도시가 건설되었고, 사회적으로 여유 있는 중산 계급이 늘어났다. 국가의 규제를 넘어 시장과 자본이 통합되기에 이르렀고, 그에 발맞추어 새로운 소비자층이 대두했다. 이렇게 국가의 틀로는 통제할 수 없는 커뮤니케이션이 정보, 영상, 문화상품 차원에서 확대되어갔다. 동아시아에서 나타난 이러한 동향은 결과적으로 미국이 이제까지 쥐고 있던 문화적 패권을 상대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처음에 이 물결을 타기 시작한 나라는 일본이었으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 타이완, 홍콩, 중국, 싱가포르 등 여러 나라가 그 뒤를 이었다. 그러면서 각국 사회에서 대중문화가 뒤섞이고 융합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가와이이’ 문화가 크게 손을 흔들고 해외로 나아가게 된 데에는 이러한 글로벌화가 만들어낸 상황이 전제되어 있었다. 키티도, 피카츄도 결국은 글로벌라이제이션이 낳은 아이들인 셈이다.

‘가와이이’가 베일을 벗을 때

‘가와이이’가 베일을 벗을 때
세계는 온통 ‘가와이이’에 파묻혀 있다. ‘가와이이’는 역사를 무효로 만든다. ‘가와이이’를 소유하는 자는 영원히 다행증이라는 상태에 빠지고 만다. 그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가와이이’라는 단어 아래 놓이고, 현실에서 동떨어진 동어반복의 가수면 상태에 들어가, 점차 윤곽을 상실한다.

그런데 만약 세계에 퍼져 있는 모든 귀여운(가와이이) 사물이 어느 날 일제히 모로 돌아앉는 일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 ‘가와이이’가 경계 영역을 침범하고 그로테스크라는 이웃 나라의 영토에 발을 들인다면, 과연 어떤 사태가 벌어질까? 나는 그러한 광경을 스크린을 통해 한 번 본 적이 있다. 조 단테(Joe Dante)가 감독한 <그렘린 2>(1990)가 바로 그 영화다.

<그렘린 2>의 내용을 보자. 뉴욕의 차이나타운에서 한 노인이 기르던 수수께끼의 애완동물이 노인이 죽고 건물이 무너짐에 따라 야생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이내 포획되어 고층빌딩 안에 있는 생화학 실험실에서 사육된다. 그렘린이라고 불리는 이 애완동물은 흡사 봉제인형과도 같이 귀엽고(가와이이) 너무나도 앙증맞은 모습이다. 그렇지만 물에 닿으면 곧바로 등에서 달걀 모양의 태아를 끊임없이 방출하는 기괴한 습성을 갖고 있다. 어느 날 작업자의 부주의로 이 작은 동물에게 물이 닿고 만다. 이 순간부터 파국이 벌어진다. 그렘린의 등에서 사악한 분신이 잇따라 태어나고, 고층빌딩의 천장이며 배수관에까지 엄청난 수의 번데기를 낳게 된다. 얼마 뒤 번데기가 부화하자, 거기에 출현한 것은 사납기 짝이 없는 파충류의 모습을 한 괴물들이다. 괴물들은 고충빌딩을 금세 점거해버리고, 이내 거리로 내려와 막대한 파괴를 자행한다.

‘가와이이’라는 것은 언제나 덧없는 것이고, 상처받기 쉬운 벌너러빌러티(vulnerability)로 가득한 존재다. 그것은 우연한 상황에서 쉬이 그로테스크하고 위협적인 괴물로 변신해버린다. <그렘린 2>는 ‘가와이이’로 가득한 현대 사회가 조금만 방향을 전환해도 돌이킬 수 없는 참사를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전망을 그럴듯하게 제시한다. 그저 공상 속의 일이 아니다. 심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가와이이’ 이미지가 억압하고 은폐해온 것들이 가까운 장래에 일제히 지상으로 회귀하여 득의양양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면, 그건 바로 우리 사회가 본질적인 파국을 맞는 때일 것이다. 그것이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도래할지, 아무도 미리 알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가와이이’라는 관념의 박막(薄膜) 너머에서 이제까지 파국을 회피해왔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 얇은 막을 사이에 둔 채 현실에 직면하기를 멀리했을 뿐이다.

‘가와이이’의 어스름(薄明)은 턱밑까지 다가오고 있다. 그렇지만 그 종언의 예감을 무시하려는 듯, ‘가와이이’는 우리의 상상 공간에서 한층 더 권능을 과시하고 있으며, 현대 사회의 신화로서 눈부신 권위를 떨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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