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면 달라지는 것들

감사하면 달라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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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면 달라지는 것들
제니스 캐플런 지음
위너스북

책소개

이 책은 1년 동안 감사일기를 쓰면서, 감정이란 삶을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된 저자가 느낀 긍정적인 변화를 친근하고 흡입력 있게 전하며 미국 전역에 감사 열풍을 불러 일으켰다.

요약본 본문

감사하면 달라지는 것들제니스 캐플런 지음위너스북 / 2019년 11월 / 396쪽 / 15,000원

겨울 – 감사하면 달라지는 결혼, 사랑, 가족

감사일기를 쓰기 시작하다
새해 첫날까지 몇 분 남지 않은 시간. 감사하며 살고 싶다는 갈망이 내 안에서 피어올랐다. 그때 나는 한 파티 모임에서 가식적인 미소를 만면에 머금고 샴페인이 든 잔을 그러쥐고 서 있었다. 한 해 동안 감사한 일을 세어봐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집에 갈 시간만 세고 있었다. 한쪽 구석에 놓인 텔레비전에서 〈신년맞이 쇼〉가 요란하게 흘러나왔다. 캘리포니아에서 술 마시며 흥청거리는 사람들, 워싱턴에서 즐겁게 떠들며 노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노라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나라 사람들은 모두 나보다 즐겁게 지낸 걸까, 아니면 즐거운 척을 잘하는 걸까. 마침 그때 타임스 스퀘어에 몰려든 백만여 명의 흥겨운 사람들이 공(자정에 낙하하는 공)이 떨어지자 크게 환호성을 질러댔다. “해피 뉴 이어!” 남편 론이 내게 입맞춤을 한 후 우리는 잔을 쨍하고 마주쳤다.

객관적으로 보면 내 삶이 그럴듯하다는 점을 나도 알고 있었다. 멋진 두 아들에 잘생긴 남편도 있고 흥미로운 직업과 친구들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듯 나는 흔히 기쁜 일보다 삶의 부정적인 측면을 더 많이 생각했다. 내년에도 내가 다시 이 자리에 있다면 어떨지 상상해보았다. 어떻게 하면 다음에 타임스 스퀘어의 공이 떨어질 때 지금의 나보다 더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까?

나는 최근에 감사를 주제로 한 설문 조사를 감독했고, 〈NBC 투데이〉쇼에도 나가 그와 관련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 조사를 계기로 긍정적인 태도에 대한 생각이 움튼 나는 많은 관련 자료를 찾아보았다. 그 덕분에 앞으로 12개월 동안 내가 어떻게 느낄지는 실제로 일어난 일보다는 매일 내 기분, 감정, 태도와 더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환경이 아니라 그 환경에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가 하는 점이다. 멋진 일이 일어나기만을 기다리면서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며 살 수도 있는 거고,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 받아들이고 더 많은 감사거리를 찾으며 살 수도 있는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나는 계획한 시간보다 더 일찍 일어났다.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얼른 청바지와 티셔츠를 걸쳤다. 그리고 아침을 만들고 있는 남편에게 뛰어가 살짝 입맞춤하고 아침 인사를 건넸다. “당신은 내가 감사할 줄 모르는 것 같아?” 내가 물었다. “프렌치토스트에 감사할 필요는 없어. 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야.” “그게 말이지, 아침으론 양이 너무 많아. 당신은 내가 감사하는 것 같아? ……인생을?” “아, 인생 말이군. 당신이 가진 것에 으레 감사해야 하는 만큼 감사하지 못하는 것 같아. 잘 되는 일은 생각지도 않고 잘 안 풀리는 일에 너무 신경을 쓰잖아.” “이제 좀 더 감사하려고 노력할 거야. 그게 올 한 해 내 계획이야. 그렇게 하면 내가 좀 더 행복해질 것 같아. 우리 둘 다 좀 더 행복해질지도 모르고.” “노력해볼 만한 일이네.” 남편이 말했다.

그날 오후 늦게 집으로 돌아와 감사하는 한 해의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기자로 살아온 터라 감사를 조사하고 연구해야 할 프로젝트로 접근해보자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남편, 가족, 친구, 일 등 매달 초점을 맞출 한 가지 주제를 정해서 스스로 사회과학자가 되어보기로 했다. 내가 감사하는 태도를 기를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관찰하고 싶었다. 그리고 두서없이 하지 않고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여 내가 발견한 것을 알리고 기록하는 데 전념하기로 했다. 아마 2년 전 템플턴 재단의 고위 관리자인 바너비 마쉬가 내게 감사와 관련한 조사를 제안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감사에 초점을 맞추는 일은 없었으리라. 나는 조사와 연구에 집중하면서 감사는 행복과 같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내 깨달았다. 감사는 행복보다 더 깊은 울림을 주는 감정이다. 감사는 특정한 사건에 좌우되는 감정이 아니므로 변화나 역경과 상관없이 오래간다. 감사를 느끼려면 감정적으로 적극적인 관여가 필요하다. 자동으로 감사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 감정을 느끼고 경험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좋은 시기에도 어려운 시기에도 지속하는 내면의 충일감이 형성된다.

「사회 임상 심리학 저널」에 감사와 관련한 문헌들을 분석한 기사가 실렸다. 그 기사의 결론은 이렇다. ‘행복감과 관련한 개인적 차이의 약 18.5퍼센트는 개인이 얼마나 감사를 느끼는가로 설명된다.’ 나는 그 부분에 시선을 고정했다. 18.5퍼센트 더 행복해진다면 훨씬 더 행복해지는 것 아닌가. 그 순간 내 행복감은 약 76점이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그러니 좀 더 감사하며 산다면 행복감을 90점 이상 높일 수 있을 터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내 점수를 높일까? 여러 조사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한 가지 결과는 감사일기를 쓰면 효과가 좋다는 점이다. 조사자들은 매일 밤 (심지어 일주일에 며칠만이라도) 그날의 감사한 점을 세 가지씩 쓰는 사람들의 경우, 행복감이 올라가고 우울감이 낮아진다는 점을 발견했다. 감사일기를 쓰면 심지어 숙면을 훨씬 더 잘 취하게 된다고 한다.

수년 동안 감사일기를 써온 샤나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샤나는 “언니가 동참한다니 기쁘네. 난 요즘 감사에 푹 빠져있거든!” 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 뒤 우리는 음식점에서 만나 감사일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샤라는 예쁜 일기장을 사라고 조언했다. 그 뒤 나는 내가 좋아하는 한 미술관에 갔고, 그곳을 죽 둘러보다가 금전 등록기 근처에 놓인 알록달록한 일기장들을 발견했다. 긍정적인 생각 외엔 아무것도 담아낼 수 없을 만큼 예쁜 일기장이었다. 그날 밤, 나는 그 일기장을 꺼내어 첫 면을 펼치고 ‘감사하는 한 해의 시작을 이 일기장과 함께하게 되어 정말 감사하다.’라고 썼다. 그리고 책상에서 눈에 잘 띄는 곳에 일기장을 올려놓았다. 나는 올 한 해의 어느 시점에는 감사하는 태도가 온전히 나의 일부가 되기를 바랐다. 당분간은 그 과정을 받아들이고 매일 밤 내 감사일기와 만나기로 했다.

남편과 (다시) 사랑에 빠지다
한 해 동안 감사하며 살기로 시작하면서 내게 긍정적인 접근법이 가장 필요한 부분이 바로 결혼 생활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남편에게 감사하는 이유를 한 가지 이상씩 밤마다 쓰기로 했다. 하지만 우리 관계에 조금이라도 변화를 주고 싶다면 일기장에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고마움을 표현해야 했다. 참고로 과거 내가 직접 실시하기도 했고〈NBC 투데이〉쇼에 나가 화제로 삼기도 했던 설문 조사에는 남자들에게 결혼 생활에 관해 묻는 문항이 있다. 그런데 대다수의 남자들이(77퍼센트) 아내가 애정과 관심을 보여준다면 정말 감사할 것 같다고 응답했다. 이는 아내가 저녁을 만들어준다든지, 집안일에 신경 쓴다면 감사할 거라는 등의 다른 모든 응답을 훨씬 앞서는 수치다. 나도 남편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것보다 닭구이 요리를 더 잘했는데, 그런 아내들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아무튼 이달에는 한 달 동안, 나와 결혼한 남자에게 감사한 이유를 하루에 적어도 두 번씩 찾아내기로 했다.

일말의 거짓도 없이, 어떤 불만도 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개선점을 제안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남편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남편의 많은 장점을 삶의 무대에서 배경 벽지로 내버려두지 않고 무대 중앙으로 내세울 때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6시에 잠이 깼고, 남편이 출근하려고 옷을 입는 모습을 보았다. 남편은 병원 일로 바쁜 의사다. 다른 날 같으면 왜 그리 일찍 나가느냐고 퉁명스럽게 묻거나 몇 분 더 자려고 눈을 감아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 나는 늘씬한 회색 바지와 흰색 셔츠 차림에 파란색 실크 넥타이를 맨 남편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 아침 아주 멋져 보이네. 잠에서 깨어 이렇게 잘생긴 사람을 보니 기분 좋은 걸.” 남편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며 내게 와 입맞춤을 해주었다.

“당신 아직 렌즈를 안 꼈잖아. 그러니 제대로 보일 리가 없지.” 남편은 농담을 했다. “시야가 흐릿해도 당신은 멋져 보여.” 나는 두 팔을 남편에게 두르며 말했다. 우리의 대화는 30초도 안 된 데다 남편은 집을 나서면서 그 순간을 까맣게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온종일 기분이 좋았다. 칭찬을 해주는 것은 칭찬받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이다. 다음 날부터 나는 남편이 수표책을 결산하고, 물이 새는 수도꼭지를 고치고, 함께 간 파티가 늦은 밤에 끝난 후 집까지 안전하게 운전을 하는 등 평소에 하던 일을 묵묵히 해주는 것에 고마움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남편은 우리 관계에서 무엇인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했다. 다음 날 저녁, 남편은 내가 항상 맡아 하던 일인데도 저녁 식사를 차려줘서 고맙다고 했다. 나는 별거 아니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 말을 생각하면 아직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게 처음 며칠 동안은 남편에게 의식적으로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런데 한 주, 두 주 지나면서 좋은 감정이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고마워하다 보니 전반적으로 좀 더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우리 부부가 긍정성을 추구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싶었기에 남편에게 주말 휴가를 떠나자고 제안했다. 서로 애틋한 마음을 회복하고 감사하는 계기로 만들 생각이었다. 평소에 일의 영역권에서 벗어나는 것을 싫어하는 남편이라 그가 흔쾌히 수락했을 때 아주 기뻤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커다란 진전이었다. 적당한 거리에 있는 낭만적인 장소를 찾다가 캘리포니아 오하이로 정했다.

그런데 오하이에서 집으로 돌아오자 교감하며 긍정적으로 지내기가 휴가 때보다 조금 힘들었다. 남편은 병원 일이 워낙 바쁜 데다 환자들에게 세심히 신경 쓰다 보니 여유 있게 감사 거리를 음미할 시간이 없었다. 주말 휴가를 다녀온 후 남편은 나와 극장 데이트를 하기로 약속했지만, 진료 시간이 길어지는 바람에 지키지 못했다. 그리고 한 만찬회에서는 샐러드가 나올 때 살짝 빠져나가 밖에 계속 서서 이런저런 전화를 받았다. 모두 오하이에서 돌아온 지 2주 안에 일어난 일이었다. 물론 나는 그러한 현실이 바뀌지 않으리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감사라는 새로운 도구를 사용하고 시각을 재구성할 줄 알았다. 극장에 혼자 앉아있는 일이 삶에서 최악의 사건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공교롭게도 남편이 약속을 못 지켰지만 혼자 브로드웨이에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결혼 생활과 성을 전문으로 상담하는 실비아 로젠펠드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실비아는 자신을 만나러 온 부부들이 대개 온갖 불평과 문제점을 쏟아낼 기색으로 들어오지만, 그녀는 모든 부부에게 그동안 배우자에게 감사했던 일을 무엇이라도 말해보라고 요청한다고 했다. 아울러 ‘그런 연습을 집에서도 하세요.’라고 덧붙인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내가 그 새로운 기술을 연습할 기회가 생겼다. 우리가 잠자리에 들고 얼마 지나지 않은 한밤중에 남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남편은 다른 방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그러다 몇 분 후 돌아오더니 옷장에 설치된 조명에 의지하여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아마 내가 잠에서 깨어 신경 쓰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무슨 일 있어?” 내가 물었다. “응급실에 환자가 들어와서 가봐야 해.” 나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남편의 장시간 업무와 한밤에 자주 걸려오는 응급 호출은 오랫동안 우리 두 사람이 느끼는 갈등의 원인이었다. 여느 때라면 나는 그 시간에 응급실에 달려가는 것은 미친 짓이고, 환자를 맡아줄 의료진이 분명 있을 거라고 불평을 내뱉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화가 잔뜩 나고 남편은 기분이 상한 채로 나갔을 터였다. 하지만 이제 평소 행동을 답습할 수 없었다. ‘뒤집어 생각해봐. 감사할 이유를 찾아봐.’ 라고 나는 나에게 말했다. 나는 침대에 잠시 누워 그 상황을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보았다. 환자 한명이 아프고 두려운 채로 병상 위에 누워있고 내 남편이 그 사람을 치료해주러 간다. 그 환자가 남편을 보면 얼마나 안도감이 들지 상상해보았다. 그러자 ‘나는 이렇게 안전하고 건강하게 침대에 누워있고, 사람들을 돕는 일에 전력을 다하는 남편을 두었으니 얼마나 운이 좋은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일어나 남편 쪽으로 걸어갔다. 남편은 염려스러운 표정을 보였지만, 나는 남편의 팔을 어루만지며 입을 맞췄다. “그 환자가 당신을 만나게 되니 얼마나 운이 좋은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 이 세상엔 당신 같은 의사가 더 많아져야 하는데. 이렇게 특별한 사람인 당신에게 고마워.” 남편은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평정을 되찾고 “고마워. 정말 감동적이네.”라고 말했다. “이렇게 늦은 시각에 나가는 게 안쓰러워.” 내가 말했다. “당신도 안쓰러워. 빨리 오려 노력해볼게.” 상황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누워있노라니 남편이 지금 내 곁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넓은 시각으로 볼 수 있고, 남편이 곧 돌아올 거라는 점도 잘 알았다. 아무튼 그날 밤 마법을 부린 감사의 마음이 우리의 결혼 생활 전반에 변화를 주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후 나는 고맙다는 말을 더 자주 했고, 문제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었다. 남편에겐 내가 왜 그에게 고마운지 말했다. 이렇게 쉬운 일을 왜 예전에는 시도해보지 않았던 걸까? 남편은 본능적으로 친절하게 반응했고, 우리 두 사람 사이에는 그 어느 때보다 따스한 감정이 형성되었다. 기분 좋은 한 달이었다.


봄 – 감사하면 달라지는 돈, 일, 우리가 소유한 물건

돈은 중요한가, 중요하지 않은가
내가 이달에는 돈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남편에게 말하자, 그는 “돈을 주제로 잡으면 감사한 마음이 안 생길 텐데.”라고 말했다. 나는 “그래서 주제로 잡은 거야.”라고 대답했다. 남편은 다양한 앱과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우리의 수입, 투자, 지출을 체계적으로 정리한다. 그리고 두 달에 한 번씩 재무 상태 표를 인쇄하여 함께 확인하는데, 기분 좋게 마무리된 적은 한 번도 없다. 대체로 나는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으며 “이게 다야?” 라고 묻기 때문이다. “그럼 얼마를 기대했는데?” 남편이 마지막에 물었다. 나는 구체적으로 생각한 금액은 없었지만 적어도 그것보다는 많을 거라 생각했다.

표준 경제학에 의하면 돈은 돈일뿐이며 우리가 돈을 어떻게 버는지, 이웃은 돈을 얼마나 가졌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행동경제학자들은 우리가 봉급에 얼마나 만족하는가는 주변 사람들이 돈을 얼마나 버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들의 조사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10만 달러를 벌고 이웃 사람들이 7만5천 달러를 버는 상황과, 자신이 11만 달러를 벌고 주변의 모든 사람이 20만 달러를 버는 상황 가운데 전자일 때 더 행복할 것 같다고 응답했다. 그리고 3년 동안 봉급을 받는다고 할 때 봉급이 처음에 높다가 점점 내려가는 쪽보다, 처음에는 보통 수준이어도 매해 오르는 쪽이 더 낫다고 응답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3년 동안의 총 봉급은 후자가 더 적은데도 그쪽을 선택했다. 확실히 돈 문제에서 사람들은 항상 분별력이 있는 것 같지 않다.

우리가 운, 복권, 재간, 노력 등 어떤 수단으로 돈을 손에 쥐든지 돈과 감사의 관계는 복잡하다. 여러 연구 결과 기본적인 수준을 넘어서면 돈이 행복을 증진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선 그 기준치가 연봉으로 약 7만5천 달러이며(인플레이션으로 수치가 약간 올랐다) 30만 달러를 벌든 10만 달러를 벌든 행복감의 차이는 크지 않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한편 셀리그먼 박사가 말한 ‘웰빙’은 피상적인 행복보다 훨씬 깊이 있는 것인데, 그는 감사를 더 많이 느낄 때 웰빙의 수준도 올라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문제는 부자라는 이유만으로 감사를 더 느끼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있다. 사실, 때로는 뭔가 부족할 때 감사를 더 느끼게 된다. 빵 한 조각에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하긴 어려워도, 배가 고플 때는 소량의 빵으로도 아주 감사할 수 있는 법이다.

사회학자인 내 친구는 대부분의 사람이 집의 방 개수가 하나 더 늘어나고 봉급이 10퍼센트 올라가면 삶이 더 윤택해지리라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는 사람들이 방 40개짜리 저택이나 백만 달러의 연봉은 상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흥미롭게 여긴다. 상상력이 부족해서일까? 그보다는 사람들이 현재도 별로 나쁘진 않지만, 여유가 조금 더 생긴다면 훨씬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 만족하는 것이 여분의 방이나 봉급 10퍼센트 인상을 추구하는 것보다 행복에 이르는 훨씬 바람직한 방법이다. 여기서 우리가 이웃이나 친구와 자신을 비교한다는 문제를 되짚어보게 된다. 삶에서 일어나는 좋은 일들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마음이 감사다. 이러한 감사를 느낄 때 해로운 부러움이라는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 부러워하는 것만큼 자신에게 해로운 것도 없다.

이제 내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몇 년 전 내가 수년 동안 다니던 회사가 합병되었다. 나는 새 회사에서 스톡옵션을 받았는데, 파는 것이 합법화되었을 때 알아보니 그것의 가치가 3만 달러 정도였다. 기대하지 않았던 보너스다. 만세! 하지만 얼마 후 나는 합병을 준비했던 우리 회사의 경영자가 스톡옵션을 팔아 3천만 달러를 챙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사람은 모든 직원보다 100배 이상의 돈을 챙길 자격이 없다고! 이건 직원에 대한 모욕이야!”라며 격분한 채 집에 있는 계단 난간에 기대어있고, 남편은 아래층 의자에 차분하게 앉아있었다. “모욕은 아니지. 그래도 3만 달러는 되잖아.” 너무도 합리적인 남편이 말했다. “난 그 가격에 안 팔 거야.” 나는 고함치듯 말했다.

나는 가격이 오를 때까지 스톡옵션을 팔지 않겠다고 우겼다. 그래야 그 상황이 조금은 더 공정해질 것 같았다. 하지만 가격은 오르지 않았다. 가격은 사실상 가치가 없어질 때까지 곤두박질쳤다. 나는 그 경험을 통해 몇 가지를 깨달았다. 첫째, 합병을 성사시킨 당사자가 스톡옵션을 팔면 나도 팔아야 한다. 둘째, 남과 절대 비교하지 말고 그저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깨달은 가장 중요한 사실은 나의 태도에 따라 뜻밖의 횡재가 무용지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당시 내가 감사하며 다른 태도를 보였다면 지금 3만 달러를(물론 이자와 함께) 더 가지고 있을 텐데.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내가 그토록 감사할 줄 몰랐다는 사실에 겸연쩍은 기분이 든다. 미국인의 평균 가계 소득은 연 5만 달러가 조금 넘고, 미국인 가구의 약 4분의 1이 매해 2만5천 달러 미만의 돈으로 살아간다. 그동안 나는 무슨 생각을 해온 걸까?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부분은 그 액수가 아니다. 나는 액수가 그 절반이 되었든 두 배가 되었든 똑같이 느꼈을 것이다. 행동경제학자들은 금전적 손실로 느끼는 괴로움이 똑같은 금액을 얻었을 때 느끼는 행복감보다 더 크다고 말한다. 그래서 내가 잃어버린 그 돈 때문에 괴로웠나 보다.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내가 나의 가치를 평가하는 수단이자 방식으로 돈을 이용했다는 점이다. 더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려면 돈을 순전히 실용적인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었다. 며칠 후였다. 그달이 끝나갈 무렵이었는데 남편과 나는 우리 집 재무 상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함께 앉았다. 남편은 내가 늘 하던 앓는 소리를 들어줄 준비가 된 듯했다. 하지만 나는 재무 표를 들여다보기 전에 수표장을 꺼냈다. “뭐하는 거야?” 남편이 물었다. “수표 다섯 장에 각각 백 달러씩 적으려고. 내가 가진 돈에 감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일부를 기부하는 일 같거든.” “누구한테?” 남편이 물었다. “그걸 정하는 게 재밌을 거 같아. 함께 생각해보자고.” 나는 남편에게 입맞춤하며 말했다. 그날 밤 우리 집 재무 표는 예전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그리고 우리 부부의 표정도 서로에게 훨씬 좋아 보였다.


여름 – 감사하면 달라지는 몸과 마음

비타민 G의 힘
남편은 나의 감사하는 접근법을 자신의 환자들에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우선 기본적으로 건강이 나쁘진 않지만, 항상 기분이 나쁜 한 노부인에게 시도했다. 그 노부인은 늘 불평과 걱정을 가득 달고 남편 진료실을 주기적으로 찾아갔다. 어느 날 그녀에게 처방전을 써주고 도움이 될 만한 말을 해준 후에 남편은 “나가시기 전에 환자분이 감사해야 할 이유를 1분 동안 생각해봅시다.”라고 부드럽게 말했다. 노부인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남편이 조금 더 재촉하자 노부인은 주섬주섬 말을 꺼냈다. 발이 아프긴 해도 아직도 걸을 수 있고, 안아 올리지는 못하지만 손주와 병원에 올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했다. “둘 다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라고 남편은 말했다. 그 작은 시도로 노부인은 기분이 한결 좋아진 상태로 진료실을 나갔다. 남편은 내가 아는 어떤 의사보다 환자의 필요를 잘 꿰뚫어본다. 나는 그런 남편이 자신만의 치료법에 감사 요법을 포함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남편이 쓴 접근법을 떠올리니 감사로 더 건강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은 항상 신체에 영향을 미친다. 간단한 예를 일상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람들은 긴장하면 두 손이 떨리고 당황하면 얼굴이 화끈거리거나 새빨갛게 변한다. 무서울 때 심장이 쿵쾅거리는 증상은 또 어떤가? 그동안 부정적 감정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보는 다양한 연구가 시행되었다. 그 결과 화와 스트레스는 당뇨병에서(스트레스는 인슐린 수치를 바꿔놓는다) 천식에(괴로운 감정은 기관지 수축을 일으킬 수 있다) 이르는 모든 병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그 반대는 어떨까? 부정적인 감정이 우리를 아프게 한다면 감사와 같은 긍정적인 감정은 우리를 건강하게 해줄까?

나는 이미 셀리그먼 박사를 통해 감사 편지를 써서 직접 전해주면 한 달 동안은 우울감이 낮아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른 연구원들도 감사일기를 쓰면 혈압이 낮아지고 수면의 질이 향상된다는 점을 발견했다. 나는 더 자세히 알고 싶어 마크 리포니스 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유명한 의료 휴양지 캐넌 랜치의 의료원장이자 이른바 ‘통합 의료’ 분야의 전문가다. 그는 몸의 모든 부위와 마음을 통합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건강한 삶과 연결하는 접근법을 쓴다. 그는 나와 유쾌한 대화를 나눈 후에 캐넌 랜치로 나를 초대했다. 그리하여 며칠 후 나는 그를 만났다.

리포니스 박사가 말했다. “긍정적인 태도를 갖는 것은 건강에 큰 역할을 합니다. 행복하지 않으면 최고의 건강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거든요.” 그리고 리포니스 박사는 건강과 관련한 많은 미스터리는 면역체계와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참고로 지난 수십 년 동안 의학계의 가장 큰 발견은 염증이 심장병, 암, 당뇨, 알츠하이머, 뇌졸중 등과 같은 현대병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염증은 면역체계의 스트레스 반응이다. 백혈구가 문제라고 인식하는 것을 해결하려고 나설 때 염증이 형성된다. 그런데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면역체계가 감정에 반응한다는 점이 밝혀진 것이다. 걱정, 분노, 두려움 같은 감정은 백혈구에 순찰을 나가도록 지시한다. 그러면 백혈구는 특별한 공격 대상이 없어도 위험한 염증의 흔적들을 남겨놓는다. 그런데 감사를 느끼면 이와 상반된 효과가 나타나 면역체계가 통제력을 읽고 가동되는 것을 막아준다. 리포니스 박사가 말했다. “감사, 사랑, 연민을 느낄 때 나오는 호르몬은 걱정, 불안, 두려움을 느낄 때 나오는 호르몬과 매우 달라요. 감사는 그러한 부정적인 반응들에 해독제가 될 수 있어요.”

감사는 부정적인 감정의 분자들에게 직접적인 해독제 역할을 한다. 바로 이 부분이 감사가 건강 유지에 기여하는 첫째 역할이다. 감사, 사랑, 연민의 호르몬이 몸 안을 돌면 백혈구는 위험 요소가 없고 상황이 좋다는 메시지를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반응을 보이지 않게 된다. “이때 백혈구 수가 줄어들고 염증성 분자의 수도 줄어들면서 사람들의 기분이 좋아지는 겁니다.” 리포니스 박사가 말했다.

아무튼 감사는 면역체계가 불필요한 과열 상태에 들어가지 않게 해준다. 하지만 이러한 감사 호르몬을 체내에 한 번 보내는 것은 큰 효과가 없으므로 감사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리포니스 박사가 사랑(Love)을 비타민 L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이제 감사(Gratitude)를 비타민 G로 생각하겠다고 그에게 말했다. “맞아요. 비타민 G! 그 비타민을 규칙적으로 드세요!” 그가 말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사람들이 건강에 대해 많이 알지만 모르는 부분도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다. 하지만 자신에게 최대한 이익이 되게 행동할 수는 있다. 나는 리포니스 박사가 했던 말을 다시 떠올렸다. 감사는 스트레스에 대한 해독제이기 때문에 건강을 유지하게 해준다고 했던 말을. 감사를 느끼면 화, 불안, 걱정 같은 스트레스 증상들이 모두 줄어든다. 그러므로 의학적 내용을 간단하게 풀어보면 이렇다. 감사는 스트레스를 줄여준다. 스트레스가 준다는 것은 염증이 준다는 의미다. 그리고 염증이 준다는 것은 병에 걸릴 확률이 낮아진다는 의미다.


가을 – 감사하면 달라지는 순간, 극복ㆍ베풂ㆍ화해

역경을 희망으로
예전에 내 친구 로즈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 하는〈나비부인〉의 관람권을 내게 주었다. 로즈가 1층 무대 앞에서 일곱째 자리를 주었던 터라 나는 오페라를 처음으로 가까이서 자세히 보았고 공연에 몰입했다. 중간 휴식시간에 남편과 나는 레드 카펫이 깔린 계단을 올라가 카페로 들어갔다. 그곳의 웨이터가 우리를 음식이 차려진 우아한 테이블로 안내했다. 나를 위해 초콜릿 무스 케이크와 카푸치노가, 남편을 위해 티라미수와 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상당히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는 기분에 웃음을 흘리지 않으려 애썼다. “로즈라는 그 멋진 친구를 어찌 알게 된 거야?” 남편은 티라미수를 한입 떠먹으며 물었다. “새로 알게 된 친구야.” 나는 모호하게 대답했다. “그 친구에게 전해줘. 우리가 감사하다고 말이야.” 남편이 활짝 웃었다.

나는 다음 날 로즈에게 감사의 표시로 난초를 보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가 비단 그날 밤 오페라를 관람한 점에만 감사를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로즈는 재미있고 재치 있으며 기발해서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고, 함께 있으면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유형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로즈는 내게 인생에서 예상 밖의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난다는 점을 알게 해준 사람이다. 겉으로는 불운처럼 보이는 일도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감사해야 한다. 참고로 나는 내가 비참함을 느낀 것이 시발점이 되어 어찌어찌 하다 보니 오페라 극장에서 멋진 밤을 보내게 되었다. 당시 나는 대형 잡지사에서 나오게 되었고 세상을 불공평하게 여겼다. 이젠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친오빠가 고맙게도 신경을 써주어 과학 기술 분야의 한 프로젝트 일에 다리를 놓아주었다. 내가 그동안 한 번도 안 해본 분야였다. 간단히 말해 앱 전문가로서 나는 한 회의의 강연 자리에 초청을 받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한 여성이 나중에 나를 한 자선 단체의 조찬회에 초대했다. 그런데 그 조찬회에서 로즈 옆에 앉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한 프로젝트를 같이 진행하면서 친구가 되었다. 이제 파악이 되셨는지? 사실 세부적인 이야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내가 잡지사 일을 그만두었을 때 감사할 이유를 전혀 찾지 못했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새로운 기회를 발견했다는 점이다.

나는 올 한해의 많은 시간 동안 지극히 평범한 경험들이 어떻게 감사로 말미암아 진정 만족스러운 경험으로 바뀌는지 목격해왔다. 그뿐만 아니라 감사하면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괴로움을 떨쳐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인생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이 되기도 했다. 거시적 안목으로 볼 때 내가 느끼는 불행이 다른 사람들이 직면한 불행에 비하면 작은 것이라는 점도 알게 되었다. 그러니 반드시 감사해야 했다. 하지만 많은 연구 결과 우리가 어느 한 순간 느끼는 감정은 외부 요인과 관련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좋은 것을 다 가진 사람도 짜증을 내고 불행을 느끼기도 하며, 엄청난 시련에 닥친 사람도 때로는 기분 좋은 감정을 발산하고 즐거움에 들뜨기도 한다. 수년 동안 감사에 대해 가르친 베네딕트회 수도사 데이비드 스테인들-레스트 형제는 다음처럼 간단하게 설명을 했다. “행복이 우리를 감사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감사하기 때문에 행복한 것입니다.”

대학 시절 알고 지낸 전설적인 존재 제이미 맥큐언이라는 선배가 떠올랐다. 제이미는 한동안 휴학을 하고 올림픽 출전을 위해 훈련에 집중했으며, 그 결과 카누 슬람럼에서 3위를 차지했다. 제이미는 그 경기에서 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메달을 땄다. 그는 학교로 돌아와 레슬링 팀에 들어갔다. 나는 그를 취재하여 학교 신문에 실었다. 잘생기고 힘이 세고 상당히 똑똑한 그를 보는 것이 좋았다.

한편 제이미는 동창인 산드라 보인턴과 결혼했는데, 산드라는 재치 넘치는 동화와 축하 카드로 유명했다. 나는 그 부부와 간간이 연락을 주고받을 뿐이었다. 그래도 그 부부가 코네티컷 레이크빌의 넓은 땅에 큰 집을 짓고 네 자녀와 개 여러 마리를 키우며, 제이미가 근처 강을 카약 슬람럼 코스로 바꾸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부부의 완벽한 삶이었다. 그랬기에 몇 년 전 제이미가 혈액암인 다발성 골수염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충격을 받았다. 그 당시 우리 부부와 제이미 부부가 도시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저녁을 같이 했다. 그 후 나는 제이미가 힘든 치료 과정을 겪는 동안 그와 좀 더 주기적으로 연락해 대화를 나누었다.

일 년 전에 차를 몰고 레이크빌에 있는 제이미 집에 찾아갔다. 그렇게 힘이 넘치던 제이미는 병 때문에 야위었고 키도 몇 인치 줄어들었지만 쾌활한 성격은 그대로였다. 제이미는 산드라가 그들의 부지에 지은 미국 음식점을 보여주었다. 그곳의 물품들은 주로 이베이에서 건졌다고 했다. 음식을 먹으러 갔을 때에도 제이미의 눈빛은 여전히 반짝거렸고 목소리에선 단호함이 묻어났다. 그는 그동안 여러 가지 약을 써왔지만 아무런 효과를 못 보았다. 그는 감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 특유의 한쪽 입매만 들어 올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감사라고? 헐, 여기서 더 감사할 게 뭐가 있어?”

제이미는 아내와 아이들을 끔찍하게 사랑했고 여전히 아이들과 스키를 타러 가고 여행을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예전에는 아들 데빈과 카약 타기 경주를 했지만 이제는 강물로 나갈 때 노 대신 스톱 워치를 가지고 갔다. 하지만 아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하지 못할 때는 ‘할 수 있는’ 일에 감사해야 한다는 점을 늘 상기해야 한다. 물론 제이미도 혼자 있을 때는 절망감에도 빠졌을 것이다(안 그럴 리가 있었을까?). 사람들 앞에서만은 긍정적이고 활발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제이미는 블로그를 운영하며 자신의 치료 일지를 기록했다. 줄기 세포 이식을 받아 꼬박 2주 동안 병실에서 보낸 후에는 살아있다는 사실이 엄청난 선물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어제 오후 침실에서 튕기듯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쌩쌩한 기운으로 걸어 다니며 5월의 꽃들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이 터프가이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는 블로그에 이렇게 썼다.

제이미와 나는 다시 만날 약속을 했다. “선배 이야기가 책 한 장(章)을 다 채워야 해요.” 나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제이미가 감사할 줄 알았다면 우리에겐 감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나는 제이미에게 그의 비밀을 알려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방법은 간단하다고 말했다. 그저 감사가 절망을 이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렇게 살면 된다는 거였다.

나는 제이미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 그가 눈을 감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그의 긍정적인 태도가 그를 영원히 살렸어야 했건만, 암은, 인생은, 신은 그리고 다윈은 그러한 바람을 이루어주지 못했다.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미소를 보냈고, 주어진 삶이 어떤 것이었든지 간에 그 삶에 감사했다. 우리는 앞으로 남은 생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기에 그저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수밖에 없다. 제이미 역시 그렇게 했기에 나는 제이미를 알고 지냈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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