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교육법

Denstory / 2020년 11월 / 323쪽 / 15,000원

거꾸로 교육법
북코스모스 회원이 되시면 오디오 듣기 이용이 가능합니다.

거꾸로 교육법

김형섭 지음

저자 소개

40대 중반의 평범한 대한민국 아빠. 지방대를 나와 고달픈 비정규직을 전전하다가 현재는 환경부 연구직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대학 시절 만난 아내와의 사이에 딸과 아들을 두고 있다. 저자는 사교육의 도움 없이 딸을 영어영재교육원과 인천국제고에 입학시켰고, 아들을 수학경시대회에 입상시키고 과학영재교육원에 합격시켰다.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아이들과 함께 사랑과 신뢰, 존중으로 만들어낸 소박하지만 따뜻한 결실이다. 아이 마음속 100점짜리 아빠가 되기 위해, 한창 사춘기에 접어든 딸에게 아빠의 마음을 보여주기 위해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책소개

영어학원 한 번 안 다닌 딸을 영어영재원과 인천국제고에 합격시키고, 수학학원 한 번 안 다닌 아들을 수학경시대회에 입상시키고 과학영재원에 합격시킨 아빠가 있다. 명문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자녀 교육에 해박한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아이들과 함께 사랑과 신뢰, 존중으로 만들어낸 결실이다.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우리 아이 우등생 만드는 비법’을 공개한다. 우리의 상식을 보기 좋게 무너뜨리는 일명 ‘거꾸로 교육법’이다.

요약본 본문

성적은 행복순이잖아요

우리 아이들을 소개합니다

우리 아이들을 소개하려니 왠지 자화자찬하는 것 같아 낯이 부끄럽다. 아마도 겸손을 미덕으로 삼는 동양적 사상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식을 부모의 소유물인 것처럼 욕심내거나 맹목적으로 믿는 것도 문제지만, 아이의 능력을 낮춰보거나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것도 문제다. 내 아이가 스마트하다고, 영재라고 믿어줘야 진짜 내 아이가 스마트해지고 영재가 될 수 있다. 말이 씨가 된다는 허무맹랑한 믿음에서가 아니라 부모가 내 아이의 영재성을 끊임없이 발굴해나가기 위한 행위의 당위성과 원동력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그럼 이제 우리 두 아이를 자신 있게 소개하겠다. 첫째인 딸은 인천광역시 영어영재교육원 중등 과정을 영어유치원이나 학원, 과외, 어학연수, 전화학습과 같은 어떠한 외부 도움 없이 혼자만의 힘으로 들어갔다. 영어권 나라로 여행을 가본 적도 없다. 기껏 해봐야 중국에 한 번 가본 게 해외여행의 전부다. 당시 영재원 엄마들 사이에서는 “영어유치원도 안 나온 애가 들어왔어?”라며 신기하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한다. 딸은 영어영재원에 입학해 외국인 선생님들과 영어토론식 수업을 하며 급속도로 성장했고, 그 덕분이었는지 인천국제고등학교에 무난하게 입학할 수 있었다.

둘째인 아들은 수학학원 한 번 다니지 않고 성균관대학교 수학경시대회에서 네 번이나 입상했고, 경인교육대학교 서구과학영재교육원에서 네 번이나 입상했고, 경인교육대학교 서구과학영재교육원 초등심화와 사사 과정을 거쳐 중등심화반에 합격했다. 물론 영재원에 대한 정보를 전혀 접해보지 못했던 시절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인천대학교 과학영재교육원 초등심화과정에 지원했다가 보기 좋게 떨어진 적도 있었다. 나는 그 일을 계기로 뒤늦게나마 영재교육 시장의 실체를 보게 되었고, 내가 그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전혀 승산이 없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그래서 정보를 찾다가 또 다른 영재원이 선발을 준비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부랴부랴 학원에 등록해 한 달간의 문제 풀이 특강과 한 달간의 면접 특강을 거쳐 경인교대 과학영재교육원 초등심화 과정에 최종합격하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 아이들은 특별히 대단한 것도 없고 주위를 둘러보면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아이들일지 모른다.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영웅담이나 꿈같은 이야기가 아닌, 평범한 나와 평범한 내 아이가 만들어낼 수 있는 정도의 일. 그곳을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면 냉소적 비난을 걷어내고 여기까지 오게 된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줬으면 좋겠다.

다들 행복하십니까?

내 나이 서른다섯 살에 비로소 공무원이 되었고, 공무원이 되기 전까지 오랫동안 여기저기서 고달픈 비정규직 생활을 해야 했다. 그 시절 나는 매일 야근을 했다. 어쩌다 집에 일찍 오는 날이면 딸아이와 아내는 길목 공원 놀이터까지 마중 나와 나를 반겨주곤 했다. 놀이터 모래는 딸아이의 훌륭한 장난감이었다. 그렇게 해 질 때까지 놀다가 딸아이를 목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비록 고단했지만 행복했다. 나는 집에 와서도 최선을 다해 딸과 놀아줬다. 그냥 미안한 마음에서였다. 매일 그렇게 최선을 다하다 보니 습관이 되었고, 그러다 보니 재미가 들었다. 재미있게 하다 보니 그 재미가 나를 버틸 수 있게 해줬고, 의지가 되었다. 그리고 그 의지로 정규직이 되었고, 그때 몸에 밴 습관은 아직까지 남아 있다. 

나는 지금도 매일 아침 아내와 현관 앞에서 입맞춤을 하며 출근하고, 퇴근 무렵이면 아이들로부터 빨리 집에 오라는 전화를 받곤 한다. 학원에 다니지 않는 두 아이와 즐거운 저녁식사를 늘 함께한다. 식사 때마다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때론 웃고 즐기며, 때론 진지한 토론을 한다. 식사를 마치면 온 가족이 모여 보드게임을 하거나 다큐멘터리를 보고, 비디오게임을 즐긴다. 그러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모두들 서재에 모여 공부를 한다. 온 가족이 영어 강의를 듣거나, 서재 벽에 걸려 있는 화이트보드에 수학 문제를 풀기도 한다.

진정한 워라밸은 시간 뿐 아니라 관심과 열정, 삶의 목적과 지향점까지도 균형을 잡아야 실현 가능하다. 대한민국의 아빠들은 지금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면 행복한 자녀 교육이 먼저이다.

성적은 행복순이잖아요

나는 불행한 유년기를 보냈다. 내 머릿속 아버지의 모습은 초등학교 6학년이 돼서야 시작된다. 어머니는 계속 채소 장사를 해야 했고, 작은 편직 기술자였던 아버지는 계속 서울에 살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집을 찾아왔다. 그리고 부모님은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부부싸움을 했다. 옆에서 허구한 날 싸워대는 부모를 지켜보는 것보다, 차라리 어머니 혼자 키우며 두들겨 맞았을 때가 더 행복했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장남인 형, 맏딸인 누나, 막내인 동생에 비해 나는 존재감이 없었다. 공부를 못하는 건 형이나 나나 마찬가지였지만, 아버지는 늘 장남인 형만 챙겼다. 쥐들이 득실대는 단칸방에 살면서도 EBS 강의를 깨끗한 영상으로 멈춰 보라고 당시 100만 원이 넘는 포 헤드(for head) VTR을 들여 놓기도 했다. 그러나 형은 재수를 해 이듬해 전문대를 간신히 들어갔다. 누나도 재수를 해 같은 전문대를 들어갔다. 그 둘은 머리가 나빠서라기보다는 죽도록 미운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 자기 인생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식들과의 기 싸움에서 철저히 패배한 아버지는 나를 부둥켜안으며 목놓아 울었고, 다시는 자식들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형, 누나처럼은 안돼야겠다는 생각에 나도 공부라는 것을 시작해 혼자만의 힘으로 아버지가 그토록 보내려고 했던 4년제 국립대학교에 들어갔다. 내 유년 시절을 돌이켜보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성적이 행복순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다. 부부가 서로 미워하는 환경에서는 아이들이 공부를 제대로 해나갈 수 없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즐겁고 행복해야 공부도 잘된다. 무엇보다 아이의 마음이 평온하고 맑아야만 공부가 잘되는 법이다.

아이와의 관계가 꼬여 있다면 혹시 아이들 앞에서 자주 부부싸움을 하지는 않았는지, 아니면 아이를 너무 닦달하고 있지는 않은지 뒤돌아보면 좋겠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해서 공부를 시키듯, 자식 또한 부모를 사랑하기 때문에 참고 공부하는 거다.

담배와 바꾼 딸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아내가 딸아이를 임신했을 때 끊었다. 나는 월드컵 열기가 뜨겁던 2002년에 결혼했다. 당시 내 나이 스물여덟 살, 아내는 스물여섯 살이었다. 그때 나는 지방대에서 외국 유학을 준비 중이었고, 아내와 함께 유학을 가기 위해서 결혼을 서둘렀다. 하지만 세상일이 언제나 내 뜻대로 되는 건 아니었다. 도쿄대 추천장을 받지 못해 미국으로 급선회한 나는 더 가혹한 ‘유학 준비’의 길을 걷게 됐다. 힘들게 하루하루를 버티던 어느 날, 아내가 임신 소식을 전해 왔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유학 준비를 중단하고 임시직이라도 얻어야 할 판이었다. 낙태(당시에는 불법이 아니었다)를 생각해보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깊은 수렁에 아내를 몰아넣을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배 속의 아이를 버리면 나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이 끊임없이 들었다.

나는 줄담배를 피워대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며칠, 갑자기 헛구역질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내가 처한 상황이 도저히 감당이 안 됐던 건지, 아니면 줄담배가 내 몸을 망가뜨렸는지 담배 냄새가 역겹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자꾸만 토할 것 같았다. 지금도 난 담배 냄새를 맡으면 그때 기억이 떠오른다. 그래서 여전히 담배 냄새가 역겹다.

나는 그때를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게 찾아온 가장 큰 행운은 바로 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고등학생 아빠다. 내 주변에는 교수가 된 사람도 있고 나보다 먼저 취업해 승진이 빠른 사람도 많다. 하지만 제아무리 잘나가는 사람이라도 나를 따라잡지 못하는 게 하나 있다. 그것은 내가 고등학생 아빠라는 거다. 내가 그동안 딸아이를 키워낸 세월이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그래서 내 딸은 나에게 행운이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스스로 잘 자랐지만, 마치 내가 잘 키운 것 같아서 또 나에게 행운이다.

부모는 처음이지만

공부 습관 같은 건 없다

한때 알파맘, 배타맘이란 용어가 유행한 적이 있다. 알파맘은 아이의 성공을 우선시하며, 아이의 재능을 발굴하고, 아이의 진로를 설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베타맘은 자녀의 행복을 우선시하며, 조언자나 조력자의 역할만을 수행한다. 처음 이 용어를 접했을 때, 아내와 나는 베타맘이 되기로 결심했다. 얼핏 보면 베타맘이 쉬울 것 같지만 사실은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베타맘으로 사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아이가 어릴 때는 극단의 베타맘으로, 중학교에 접어들었을 땐 극단의 알파맘으로 아이를 키웠다. 그리고 베타맘에서 알파맘으로 전환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많은 부모들이 공부하는 습관을 잡겠다며 유치원 시절부터 스파르타식으로 아이를 닦달하는 경우를 봐왔다. 그리고 실패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정말 공부하는 습관 같은 게 있는 걸까? 내가 내린 결론은 공부 습관 같은 건 없다는 것이다. 학창 시절, 우리가 그토록 열심히 공부했던 이유는 공부 습관을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공부를 해야만 했기 때문이었고, 지금 공부를 안 하는 이유는 지금은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공부는 그냥 해야 할 때가 됐을 때 하면 된다.

나와 아내는 그동안 베타맘으로 살아오면서 아이들의 체력을 기르고 경쟁 기간을 최소화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드디어 본격적인 경쟁 구도에 진입한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짧은 단거리 경쟁에서 조금씩 성과를 거두고 있고, 아직은 그 경쟁을 재미있어하는 것 같다.

자식을 절대 믿지 말라

부모가 자식을 대함에 있어 ‘사랑’이 으뜸인 건 맞는다. 하지만 부모 또한 완벽하지 못한 사람이기에 그 사랑 또한 왜곡될 수 있고, 그릇된 전달 방식으로 인해 자식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기 때문에, 어쩌면 자식을 키울 때는 사랑의 크기를 잠시 참아둬도 좋을 것 같다. 그럼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마음 중에 으뜸은 무엇일까? 각자 다르겠지만, 나의 답은 ‘신뢰’다. ‘신뢰’는 ‘믿음’과 유사한 단어지만 조금 다르다. 부모는 절제된 사랑으로 자식을 끊임없이 관찰해야 하고, 자식으로부터 신뢰할 수 있는 객관적인 정보를 얻어내고자 항상 요구해야 한다.

시험기간이면 아내는 딸과 서재에서 같이 공부한다. 중학교 첫 중간고사 때만 해도 가정교사처럼 아이를 가르치고 혼내기 바빴지만, 어느샌가 어쩌다 도서관 옆자리에 앉은 모르는 사람처럼 각자 공부를 한다. 아내의 체력이 고갈되면 이제는 내 차례다. 아내와 교대를 한 나도 딸과 같은 공간에서 나만의 자기계발을 한다. 이런 방식으로 나와 아내는 아이들에게 신뢰받을 수 있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내 아이 공부하기

재미는 머리를 춤추게 한다

둘째가 인천대학교 과학영재원을 준비하면서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때의 일이다. “너는 판사가 되고 싶고, 야구를 좋아하니까…… 너의 꿈을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과학적으로 야구 시합을 판정할 수 있는 심판로봇을 만드는 걸로 정하면 어떨까?” 하지만 아이의 반응은 너무나도 싸늘했다. 자기의 꿈은 판사가 되는 것이지, 심판로봇을 만드는 게 아니라는 거였다. 만약에 아빠가 거짓으로 자기소개서를 대신 작성하기라도 하면 자기는 시험을 포기할 거라고 으름장까지 놓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둘째에게 이렇게 물어봤다. “그럼 너는 커서 판사가 될 건데 과학영재원 시험은 왜 보려고 해?” 아이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너무나도 간결하고 명확했다. “재밌으니까.”

녀석은 어려운 시험문제를 푸는 게 마치 퀴즈대회에 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했다. 공부를 재미있어하다니, 아이들이 하나도 안 똑똑하다면서 다 거짓말이네,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거꾸로 한번 생각해보자. 머리도 안 똑똑한데 공부마저 재미있지 않다면 과연 어떻게 공부를 잘할 수 있을까?

우리 집에 도깨비들이 다녀갔어요

큰애가 아직 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을 때다. 직장으로 전화를 건 아내는 거의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사기를 당한 것 같다”며 안절부절못했다. 헌 청바지를 5000원에 산다며 초인종을 누른 사람들은 값비싼 동화책을 반값도 안 되는 가격에 주겠다며 집 안에 있는 금은보석들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책을 싸게 주겠다는 말에 현혹되어 금붙이를 하나둘씩 꺼내오기 시작했고, 금붙이가 조금만 더 있으면 동화책 한 박스를 더 채울 수 있다는 말에 마치 도깨비에 홀린 듯 집 안에 있는 모든 금붙이를 내주게 되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들은 이미 떠났고 동화책 세 박스만 덩그러니 남았다고 한다.

죄책감에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아내는 힘들어 했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금붙이와 맞바꾼 책들이 평소 아내가 서점에 갈 때마다 눈여겨보던 책들이라는 것이다. 책에 목말라 있던 딸은 그 책들을 무척이나 좋아했고, 읽고 또 읽고 또 읽었다. 지금은 금붙이도 책들도 모두 사라졌지만, 대신 아이들 머릿속에 금은보화들이 잔뜩 들어 있는 듯하다. 지금 뒤돌아보니, 당시 우리 집에 다녀간 사기꾼들이 어쩌면 진짜 도깨비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난했던 시절, 그 도깨비들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그 많은 동화책을 살 엄두를 못 냈을 거다. 서랍 구석에나 처박혀 있었을 금붙이를 아이들 머릿속에 보석처럼 박아 넣을 수 있는 재주꾼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깨비밖에는 없을 것 같다.

서재형 거실 만들기

아이가 책을 읽길 진정 원한다면 아이들이 뛰노는 곳곳마다 책을 놓아야 한다. 서재형 거실 만들기는 그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조건이 필요하다. 첫 번째 조건은 TV를 과감하게 거실에서 치우는 것이다. TV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은 방구석 어딘가에 처박힌 TV라 할지라도 늘 보고 싶어 한다. 그 때문에 TV는 방으로, 책은 거실로 나와야 한다. 영어 DVD는 방에서 봐도 되지만 책은 방에서는 읽을 수 없다. 두 번째 조건은 책장 안에 있는 책의 위치를 수시로 바꿔줘야 한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게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을 놓아두는 거다. 세 번째 조건은 거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책을 치우지 않는 것이다. 서재형 거실은 깨끗하면 안 된다. 네 번째 조건은 아이들이 싫어하고 잘 읽지 않는 책들을 죄다 버리는 것이다.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부모가 읽히고 싶은 책이 아니라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찾아 주는 것이다. 다섯 번째 조건은 책 읽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섯 번째는 부모가 아이 책을 먼저 읽고 아이에게 들려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성공하는 거실형 서재 만들기의 마지막 조건은 여러 수단을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여전히 책을 잘 읽으려 하지 않을 때 적절한 보상을 해주는 것이다.

영재가 별거야?

내 아이, 영재일까 아닐까

영재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 까? 여기서 잠깐 천재, 영재, 수재의 차이점을 간단히 정리하면, 천재는 뛰어난 지능을 가져 모든 분야를 다 잘하는 사람이고, 수재는 책상에 않아 공부만 잘하는 사람, 영재는 노력을 통해 특정 분야에서 재능을 보이는 사람으로 분류될 수 있다. 이렇듯 ‘천재’는 오직 하늘의 뜻이지만, ‘영재’는 부모의 노력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내 아이를 영재로 만드는 방법은 내 아이가 가장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찾아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운동을 잘하는 것도, 피아노를 잘 치는 것도, 게임을 잘하는 것도 모두 영재이다. 내 아이가 영재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려 하지 말고, 내 아이가 잘하는 것을 찾아 영재성을 발견하는 데 시간을 들인다면, 우리 아이들은 분명 훗날 영재가 되어 있을 것이다.

영어영재원 도전

딸은 영어학원 한 번 다녀본 적도 없었다. 영어 공부라곤 어렸을 때 잠들기 전 아내가 읽어준 영어 동화책 몇 권과 TEPS강의(사이버)를 한 차례 수강한 정도가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에게 영어영재원 준비를 한번 해보자고 빈말을 던졌다. 승산이 없는 게임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철없이 놀고만 있는 딸에게 다시 공부를 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다는 생각에서였다.

나는 오랫동안 책장 속에 묵혀놨던 TOEFL writing 책을 꺼내 딸을 지도했다. 영작문을 쓸 때 서론에서 사용하는 주요 숙어들과 본론에서 자신의 주장을 펼 때 사용하는 숙어들, 그리고 역접을 강조하는 문구, 마지막 결론을 내릴 때 사용하는 표현 어구들을 우선 외우게 했다. 딸은 군소리 없이 내 지시를 잘 따라주었다. 100여 개에 달하는 숙어를 모두 외운 후에는 책에 수록된 주제별로 찬반 의견을 작성하게 했다. 문장은 되도록 아는 단어들로만 작성하게 하고, 미리 외워뒀던 서론 시작용 숙어들과 역접을 통한 강조, 결론을 내릴 때 주로 사용되는 숙어들을 가능한 한 많이 사용하도록 했다. 딸이 작문을 마치면 내가 첨삭을 해주는 방식으로 지도해나갔다. 사실 나는 누군가의 영작문을 첨삭해줄 만큼 영어 실력을 갖춘 사람은 아니지만, 딸이 외운 표현들을 얼마나 많이 사용했는지, 적절하게 사용했는지, 글이 매끄럽게 읽히는지 정도는 초보적인 수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시험문제는 마치 행운의 여신이 손짓이라도 하듯, 그동안 연습해왔던 방식과 동일한 유형으로 출제되었다. 국외 수학자와 국내 수학자를 별도로 선발하긴 하지만, 국내 수학자라 할지라도 1년 미만의 어학연수를 다녀온 학생들이 많았고, 무엇보다 경쟁률이 10대 1이었다. 그런데 일주일 후 합격자 명단에 딸의 이름이 올라왔다. 영어선생님은 딸을 불러 “출제 의도대로 답을 쓴 사람은 너밖에 없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딸이 거둔 결과가 기적이 아니라면 이는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맹신했던 사교육(영어유치원, 영어학원, 어학연수 등)의 허상이 증명된 한 사례가 될지도 모르겠다.

합격자 명단을 확인하자마자 딸과 나는 본격적인 본선 라운드 준비에 돌입했다. TOEFL reading은 중학교 1학년인 딸이 따라가질 못해 다시 서점으로 달려가 수능 독해 문제집을 사 왔다. 이번에도 운이 좋았던 것일까? 다행히 영어 시험은 독해 위주로 출제되었고, 난이도는 수능 문제와 유사하거나 다소 쉬운 문제들이 출제되었다. 2차 시험은 면접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1 대 1 면접 방식이 아닌, 학생들이 실제 영어 토론을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토론 중간에 7명의 감독관들이 채점지를 들고 돌아다니며 아이들의 발표 실력과 수업 참여도, 학습 태도 등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6시간 가까운 토론 면접시험을 마치고 나온 딸의 표정이 밝았다. 수업이 매우 재미있었다는 말과 함께 입가에는 웃음을 머금고 있었고, 처음으로 “시험에 붙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딸은 토론 수업초반에 국외 수학자들의 높은 영어 실력에 주눅이 들었다고 한다. 수업에 점점 빠져들면서 월등해 보이기만 했던 아이들의 실력이 그저 듣기 좋은 발음과 조금은 자연스러운 억양 덕분일 뿐,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은 짧은 문장과 쉬운 단어만을 구사한다는 사실을 금세 알아차리게 되었단다. 딸은 이후 자신감을 얻었고, 면접장은 더 이상 평가를 위한 시험장이 아닌 재미있는 토론 수업처럼 느껴져 그 누구보다 강하게 수업에 몰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최종 합격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과학영재원 합격

둘째 아이가 인천대학교 과학영재원 초등심화 과정에 떨어지고 난 후, 나는 사교육의 힘을 빌렸어야 했나, 라며 자책했다. 한편으로는 앞으로 2년 후에 있을 중등 심화 과정을 찬찬히 준비해보기로 했다. 나는 이를 위해 영재원에 관한 정보를 다시금 꼼꼼히 수집하다가 경인교대 서구영재원에 지원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정작 마음을 먹고 준비에 들어가려고 하니, 바로 난관에 부딪혔다. 선발 시험에는 아이가 자신 있어 하는 수학 시험이 없었다. 나는 남은 시간 동안 아들의 과학 실력을 속성으로 끌어올려야만 했다. 사교육의 힘이 절실히 필요한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학원 수업 첫날을 마친 아들은 “아빠, 학원 다니기를 잘한 것 같아. 아주 족집게 같아. 시험문제로 나올 것 같은 것들만 알려줘. 학원비가 하나도 아깝지 않아. 그런데 아빠, 다른 아이들은 막 떠들고, 장난치고, 엎드려 자, 아이들이 불량이야. 아무래도 걔네들은 학원 수업을 많이 들어서 돈 아까운지를 잘 모르나 봐.” 나는 아들의 천진난만한 말투가 좀 웃기기도 했고, 역시나 짠돌이 아빠의 아들답다는 생각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첫 관문은 무사히 통과하고 드디어 2차 시험이 치러졌다. 그런데 시험 당일 갑자기 논술 시험이 치러진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면접시험에 필기도구를 가져오라는 문구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논술시험이 치러질 거라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서구영재원이 개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축적된 정보가 많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훈련되지 않은 영재를 선발하기 위해 입학 전형을 매해 조금씩 바꾸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준비 기간이 짧아 불리했던 아들에게 오히려 다른 아이들과 동일 선상에서 출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 같았다. 기대대로 아들은 경인교대 서구영재원 초등과학심화 과정에 최종합격했다. 앞으로 초등사사 과정과 중등심화 과정, 그리고 영재학교와 과학교의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이 기나긴 도전의 첫 관문이 드디어 열렸다.

너도 할 수 있어! 우등생

영어 잘하는 아이로 키우는 법

내 아이를 영어 잘하는 아이로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정답은 모른다. 다만 내가 실천해서 성공한 방법은 있다. 그건 바로 영어 동화책을 끊임없이 읽어주는 것이다. 한 챕터마다 영어로 한 번 읽고 우리말로 다시 반복해서 읽는다. 아이들이 자라 영어 동화책을 읽어줄 나이가 지났다면 영어 DVD를 보여줄 때가 된 것이다. 영어 DVD는 내용이 교육적이거나, 고급 어휘를 구사한다거나, 발음이 정확하고 바른 표현이 많이 나온다는 이유로 선택하면 절대 안 된다. 무조건 내용이 재미있어야 한다. 우리 집은 「Horrid Henry」를 선택해서 보고 있다. 내용이 원색적이다 보니 영어를 특별히 알아듣지 못해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어른들을 보면서 아이는 내용에 쉽게 빠져들 수 있다. 영어 DVD를 볼 때는 부모와 아이가 꼭 함께 봐야 한다. 부모가 함께 보며 같이 웃어주고 옆에서 내용을 설명해줘야 한다. 나처럼 가정에서 직접 영어 공부를 시키는 집들을 보면, 하늘이 두 쪽 나도 무조건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분량만큼 공부시키는 엄마들이 많다. 하지만 우리 집은 아이가 쉬고 싶어 할 때 쉬고, 아내와 내가 쉬고 싶을 때 쉬었다. 아이의 영어 공부에 있어 그 어떠한 규칙도 없었다. 어쩌면 이렇게 규칙이 없는 교육 방식이 아직까지도 아이의 영어 공부를 지속하게 해줬을지도 모른다.

수학 잘하는 아이로 키우는 법

수학의 핵심은 바로 ‘탐구’다. 어떤 대상에 대한 궁금증에서 출발하여 그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한 사고 과정인 것이다. 바꿔 말해, 우리가 알고자 하는 것을 논리적인 방법을 동원해 그 값을 찾아가는 행위가 바로 수학이다. 수학은 벽돌 쌓기와도 같다. 아래쪽 벽돌을 부실하게 쌓으면 위쪽 벽돌은 틀어지고 벽은 금세 무너질 수밖에 없다. 수학 점수가 30~40점밖에 안 되는 중학생들도 고등 선행을 나가고 있다고 하니, 이미 틀어진 벽돌 위에 새로운 벽돌을 쌓는 꼴이 아닐 수 없다. 수학의 시작은 연립방정식부터다. 내 아이에게 연립방정식을 가르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부모의 화를 죽이는 것이다. 방정식을 배우는 과정은 걸음마를 떼거나 말을 배우는 것과 같이 본능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과는 사뭇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화를 억누르고 아이가 제대로 방정식을 이해할 때까지, 마치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낸다는 심정으로, 지치지 말고 같은 설명을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해야 한다. 미의 수 χ를 완벽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만, 함수와 수열을 통과해 극한을 거쳐 미분과 적분으로 넘어갈 수 있다.

특목고에 도전해보자!

필통이 불러일으킨 나비 효과

딸은 영재학교와 과학고를 준비하는 동안에도 영어영재원을 빠지지 않고 꾸준히 다녔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이과 성향으로 바뀌어가는 딸을 보며 중도 포기하게 할까도 고민했지만, 영재학교와 과학고가 최종 목표는 아니었기에 그럴 수는 없었다. 딸은 어마어마한 분량의 영어영재원 숙제와 영재학교·과학고 대비를 위한 수학·과학 심화학습을 이어갔고, 학교 시험과 수행평가에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판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버텨왔건만, 인천과학고 최종 면접에서 탈락한 딸은 마지막 영어영재원 수업만을 남겨놓고 갑자기 영어영재원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딸은 더 이상 영어나 인문·사회 계열의 활동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아내와 나는 딸의 선택에 모든 것을 맡기기로 했고, 딸은 주저 없이 영어영재원을 포기하겠다고 했다. 그것은 곧 국제고를 포기한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여졌다. 그토록 오래 준비해왔는데, 갑자기 국제고를 안 가겠다니 참으로 혼란스러웠다.

그러던 찰나, 영어영재원 마지막 수업을 며칠 남겨놓고 변수가 하나 생겼다. 지난 수업 때 놓고 온 필통을 포기하느냐, 아니면 필통을 찾기 위해서 마지막 수업을 들어야 하느냐, 그것이 문제였다. 도시락이라도 들어갈 것 같은 크기에 삼각자부터 컴퍼스까지 없는 게 없는 그 필통을 딸은 무척이나 소중히 여겼다. 그리고 그 필통에 대한 사랑의 힘은 딸로 하여금 도저히 해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영재원 졸업 과제를 다시 꺼내들게 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졸업 과제를 마칠 수 있었고 영어영재원도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딸은 졸업 발표 때 2년 동안 역경을 함께 견뎌온 친구들에게 감동적인 작별을 고했고, 아이들의 환호성을 받으며 연단을 내려왔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의 환호성이 어떤 작용을 했는지, 딸은 갑자기 집에 돌아오는 길에 국제고에 지원하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딸의 필통과 아이들의 환호성이 딸의 미래를 바꿔놓은 것만 같았다. 그리고 마치 나비 효과처럼, 딸은 인천국제고등학교에 최종 합격했다.

넘어지지 않고 달리는 법

인천국제고에 막 합격한 딸에게 나는 예전보다 더 강압적인 방법으로 공부를 시켰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방학 중인 딸을 강제로 7시에 일어나게 하고 밤 12시 반에 재웠다. 아침 6시 반에 일어나 밤 12시 반에 잠이 드는 국제고 생활 패턴을 미리 몸에 적응시키려는 속셈이었다. 가장 난도가 높다는 『블랙라벨』(진학사)의 수록 문제를 매일 100개씩 해답지를 보고 외우는 게 목표였다. 그리고 주말마다 수학 시험을 보기로 했다. 하지만 문제집이 너무 어려웠는지 전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딸은 하루에 고작 20~30개밖에 보지 못했고, 해답지를 제대로 이해하는 문제는 단 하나도 없어 보였다. 딸의 태도도 문제였다. 아침마다 억지로 깨웠지만 내가 출근길을 나서는 순간까지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지 못했다. 퇴근하고 돌아올 때면 늘 쉬는 시간이라며 피아노를 쳐대고 있었다. 나는 그런 딸에게 매일같이 겁을 줬다. “이딴 식으로 공부했다간 국제고에선 넌 바로 꼴등이야.” “네가 지금 이렇게 퍼질러 있는 동안 다른 아이들은 학원에서 새벽 1시까지 공부하고 있어.”

그날은 유독 화가 더 많이 났다. 딸이 국제고에서 꼴등을 할 것만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를 만회하기 위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조바심 때문이었다. 이런 두려움과 조바심은 내가 해서는 안 될 짓을 하게 만들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나는 수학 문제집을 갈기갈기 찢고 두 동강을 내어 딸의 얼굴에 던지고야 말았다. 딸의 안경이 날아가는 것을 보면서, 순간 나도 멈칫했다. 자식에게 폭력을 쓴 아빠를 보는 아이들과 아내의 시선, 그리고 나 스스로의 죄책감과 원망이 섞여 상황은 더욱 악화돼갔다. 나는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자동차 키를 들고 집을 나섰다. 아내에겐 동해안으로 바람을 좀 쐬러 가겠다고 했다. 그 모습을 본 아들 녀석이 나에게 휴대전화를 가져다주었지만, 나는 뿌리치고 나와버렸다. 휴대전화라도 두고 가야 집에 더 빨리 들어올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넘어지지 않고 달리게 하는 법’, 과연 그 비결은 무엇일까? 나는 끊임없이 밀려오고, 끊임없이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이가 넘어지는 가장 빈번한 이유는 어쩌면, 아이가 달리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부모가 뒤에서 아이 등을 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리고 나는 이렇게 결론은 내렸다. 앞으로는 더 이상 아이들의 등을 밀치지 않겠다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딸에게 용기를 내어 먼저 사과의 말을 꺼냈다. 이런 나를 아내가 용서하는 데에는 약 2주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상처가 서서히 아물고 웃음꽃 하나둘씩 다시 피어날 때쯤, 딸은 인천국제고 적응 캠프에 들어갔다. 2박 3일 동안 기숙사에서 잠도 자보고 급식을 먹어보면서 부모와 떨어지는 훈련도 하고, 앞으로 3년을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 지 정신 수양도 해보는 시간이었다. 적응 캠프를 마치고 돌아온 딸은 그제야 아빠의 말이 잘못됐거나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기라도 한 것처럼 내가 예전에 지시했던 학습 방법을 다시 시작했고 학습이 막힐 때마다 내게 다가와 방법을 물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동해 바다에서 했던 맹세를 다시 기억하고자 노력했다. 예전에는 딸의 학습 방법을 내가 결정하고, 지시하고, 체크했지만, 이제 딸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아이 스스로 학습 목표를 세우게 하고 딸에게 용기를 주는 일들만 하고자 했다.

그렇게 애써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는 동안, 딸의 중학교 졸업식이 다가왔다. 각 교실에서 치러진 졸업식에서 부모님들께 상장을 드리는 순서가 있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직접 적은 문구를 일일이 낭독하면서 상장을 수여했다. “사려·격려상. 위 사람은 지난 3년간 자녀를 위한 배려와 사려 깊은 행동으로 끊임없이 격려해주신 점이 타의 모범이 되었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딸 김민교 드림.” 분명 ‘사려’는 나를, ‘격려’는 아내를 지칭하는 단어 같았다. 그리고 얼마 전 내가 딸에게 자행했던 몹쓸 짓에 대한 용서를 비로소 받은 듯했다. 순간 나도 모를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자전거 뒤를 잡아주던 손이 떨어지는 순간의 느낌이었다. 그리고 넘어지지 않고 달리게 하는 법은 스스로의 의지로 달리게 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텍스트 상자: 본 도서요약본은 원본 도서의 주요 내용을 5% 정도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원본 도서에는 나머지 95%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보다 많은 정보와 내용은 원본 도서를 참조하시기 바라며, 본 도서요약본이 좋은 책을 고르는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0 댓글
본문 피드백
모든 댓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