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의 언어

고객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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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의 언어
이진국 지음
북카라반

책소개

현장에서 세일즈맨들이 ‘고객의 언어를 놓쳐서 겪게 된 아픈 경험’ 등 고객의 언어를 획득하고 분석하고 그들의 에피소드를 소개함으로써 고객의 언어를 습득하고 또 그것을 소화하는 방법을 안내한다.

요약본 본문

Chapter 1 열심히 했는데 왜 자꾸 실패할까?


같은 말, 다른 말

고객과 ‘같은 언어’를 쓴다는 것: 딸의 생일을 축하하면서 “가람아, 생축!”이라고 말했더니 딸은 ‘아빠가 웬일이지?’라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요즘 유행하는 줄임말을 거의 쓰지 않기 때문이다. 나중에 딸에게 물어보았다. “아빠가 너희가 쓰는 말을 사용하니 어땠어?” “음 뭐랄까, 좀 친근하다는 기분이 들긴 하네.” 친한 척해보려는 아빠에게 사춘기 소녀의 응답은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다. 줄임말 한마디로 아빠와 딸의 ‘모호하고 어려운 간격’이 바로 좁혀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딸이 아빠의 노력을 알아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이 작은 시도를 첫걸음으로 조금씩 더 친숙해지는 변화가 생길지도 모른다. 고객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고객이 사용하는 언어를 세일즈맨이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고객-생산자 혹은 고객-세일즈맨의 머나먼 거리가 좁혀질 수 있다. 아예 쓰지 않는 것보다는 가능성이 더 커진다.

그렇다면 고객들이 쓰는 언어는 무엇일까? 단어 하나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고, 관심 콘텐츠에 따라 반응이 달라진다. 호텔 업계 세일즈를 하면서 업계에서 영업과 마케팅 담당자를 칭하는 DOSM(Director of Sales & Marketing)이라는 단어 하나와 핵심 콘텐츠가 준 효과를 체감했다. 우리는 호텔 담당 진입 단계부터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써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우선 진입 단계의 언어를 바꿨다. “DOSM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전화를 받은 상대방은 ‘내가 누구인지 어디서 전화했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담당자를 바꿔준다. 담당자와 대화할 때도 DOSM이라는 언어를 쓰고, 관심이 있을 만한 업무 관련 콘텐츠를 강조한다. 결과는 대성공이다. 언어를 교체한 것만으로 그간 경험해온 고객 연결 중 가장 높은 성공률을 보였다.

업계에서 사용하는 현장 언어를 안다는 것은 네 가지 측면에서 비즈니스에 큰 도움이 된다. 첫째, 진입이 자연스럽다. 둘째, 전문가로 인식 받을 수 있다. 셋째, 동질감을 얻을 수 있다. 넷째, 고객이 세일즈맨을 자기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지식의 저주

지식의 함정: 나는 고객의 관심사나 관심 언어, 나의 세일즈 상담을 분석하고 개선하기 위해 상담을 녹음해서 들어본다. 한번은 모 회사와 가졌던 1시간 정도의 미팅을 다시 들어보았다. 고객사 담당자는 고객 발굴 서비스에 대해 아주 높은 관심을 확보할 수 있는 회사였다. 그러다 보니 나도 신이 나서 여러 사례와 조언을 전달했다. 1시간이나 미팅을 하면서 나도 상당히 많은 일을 했는데, 결국 거래에도 실패했다. 많은 시간이나 말이 뭐가 그리 중요하겠는가? 과음도, 과식도, 과찬도 모두 좋을 게 없다. ‘과세(과한 세일즈)’도 안 좋다. 나는 신이 나서 떠들지 모르겠지만 고객은 싫다. 관심 없다. 결코 자기 자신에 취하면 안 된다.

상담 내용을 끝까지 듣고 나서 나는 ‘지식의 저주’를 발견했다. 내가 이미 한 이야기를 두 번이나 더 반복해서 하고 있었다. 고객이 못 알아듣는다고 생각을 했는지 내 입장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거듭 강조하고 있었다. 그것도 내 언어들을 쏟아내면서 말이다. 담당 팀장은 자신은 관심이 많은데 상급 임원에게 보고해야 하고, 상급 임원은 영업 담당 본부장과 대표이사였는데 상당히 보수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돌파구를 찾는 대신 내 지식의 함정에 빠져서 내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여러분도 제품에 대해 자신감 있게 기능을 설명하기만 하면 편할 것이다. 그렇지만 고객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처음 들어보는 단어와 표현이 생소하기도 하고 금방 관심이 생기지도 않는다.

내가 편한 제품의 언어로 고객 언어를 덮으려고 하면 미팅조차 잡을 수 없다. 고객의 핵심 언어를 활용해서 질문해야 한다. 그리고 고객의 이야기를 듣자. 자꾸 내 지식을 전달하려고만 하면 안 된다. 대신 담당자가 관심이 있을 만한 분야를 사전에 파악해야 한다. 심지어 제품 이야기는 안 해도 좋다. 제품 언어나 제품에 대한 지식은 잠시 잊자. 동종 업계의 다른 고객이 쓴 ‘고객의 언어’가 있다면 그 언어를 핵심적으로 활용한다.


한계

고객은 답을 갖고 있는가?: 소프트뱅크 창업자인 손정의 회장은 2019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인공지능”이라며 “AI는 인류역사상 최대 수준의 혁명을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AI는 대세다. 그런데 우리는 AI를 얼마나 아는가? 앞으로 인류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것이라고 하는 AI에 대해 우리가 가진 정보는 얼마나 될까? AI에 대한 지식은 아마 사람마다 천차만별일 것이다.

여러분이 AI 관련 제품을 만들었고, 잠재 고객 앞에 앉았다고 가정해보자. “사장님, AI를 통해 미래를 바꿀 준비가 되어 있으신가요?”라고 물으면, 그 질문을 받은 사장은 “아니요”라고 대답할 확률이 90퍼센트 이상일 것이다. 사장이 AI에 관한 모든 지식을 알고 준비하고 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보다는 ‘도대체 어떻게 하면 신규 고객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을까?’가 머릿속을 가득 차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그런 사람에게 대뜸 AI 이야기를 꺼낸다고 그 이야기가 잘 들릴까? AI 제품을 영업하고 싶다면 대신 이렇게 이야기해야 한다.

“제조 공정의 어느 부분에서 주로 불량이 나오는지 알 수 있고, 이상 징후를 발견할 수 있다면 업무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동종 업계의 A사가 그러한 시스템을 갖추고 불량률을 50퍼센트 이상 절감한 내용을 공유해드릴까요?” 고객은 어려운 기술 용어나 지식에는 관심이 많다. 따라서 우리는 고객의 한계를 이해하고 고객에게 답을 제시해줄 수 있어야 한다. 고객이 한계를 넘어서게 하는 데 우리의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이다.

나만 몰랐던 나쁜 언어 습관: 몇 년 전 직원과 기업체 미팅을 하고 회사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미팅에서 나누었던 내용을 같이 복기해보았다. 그 때 직원으로부터 나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대표님, 혹시 아셨어요? 조금 전 미팅 때 ‘다르다’라는 말과 ‘틀리다’라는 말을 혼용해서 쓰고 계신 거…….” “네? 제가요?” “네, 아까 ‘그것과 이것은 틀려요’라고 말씀하셨거든요?” 직원이 말한 대로 ‘다르다’가 맞는 표현일 때 ‘틀리다’로 표현했던 것이다. 그 후로 나는 고객과 했던 미팅을 가끔 녹음해서 다시 듣는다. 들어보면 참 어이없는 실수도 많이 한다. 고객이 이야기하는 중에 말을 끊기도 했다. 대화에 집중하지 않고 못 들어서 다시 이야기해달라고 할 때도 있었다. 때로는 잘 알지 못하는 내용을 아는 척했을 때도 있었다. 나의 이런 모습은 고객의 눈에 비치는 나의 모습이고 언어다. 언어가 정갈하지 못하면 사람도 그렇게 보인다.
나도 세일즈 강의를 하지만 때로는 내게도 코치가 필요하다.

코치의 코칭을 받기 전보다 지금의 나는 훨씬 사람에 집중한다. 나의 언어 습관을 지금의 공감형 언어 습관으로 바꾸고 나서 공감 대화가 훨씬 많아졌다. 상대방의 만족감이 커졌다. 회사 내부 직원도, 나도, 전보다 훨씬 밝게 인사한다. 나쁜 언어 습관이 있다면 깨야 한다. 고객도 나쁜 언어 습관이 있을 수 있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겠지만, 우리나라 언어의 중의적 표현은 특히 유별나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상하 관계 문화에서 크게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Chapter 2 어떻게 다가설 것인가?


질문

고객은 질문을 원한다: 고객의 침묵이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다면 질문을 던져 고객의 ‘입’을 열어야 한다. 사실 PT 자리는 서로가 격식을 갖춰 임한다. 고객사의 경영진이 참여하는 경우가 많기에 엄숙하고 경직된 분위기가 되기 쉬워서 PT를 하는 사람도 고객사의 직원들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 속내를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해결책을 논의하는 자리는 아니다. 또한 PT는 발표자와 청중(고객)의 입장이 다르다. 발표자 입장에서는 대단히 중요하며, 경우에 따라 사활을 걸기도 하지만 청중의 입장은 ‘그냥 듣는 자리’일 뿐이다. 심지어 경합 PT의 경우 낙점 대상을 어느 정도 내정해놓기도 한다. 발표 내용을 사전에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어 궁금하지 않고, 자신이 모르는 특별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힘들다. 따라서 청중 입장에서는 집중을 잘 하지 못하고, 어찌 보면 안 해도 되는 자리일 수도 있다. 그래서 발표자 입장에서 청중(고객)의 주의를 환기시켜주는 스킬이 필요하다.

나는 국내외 대기업 임원들 앞에서 PT를 자주 했다. 외국계 회사의 임원들은 대개 관심을 보이지 않거나, 호기심을 가지고 질문을 많이 던지거나 둘 중의 하나다. 또는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다가도 자신의 전문 분야 내용이 나오면 귀를 쫑긋 세운다. 그리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려고 노력한다. 그들의 질문이 가볍더라도 무시하면 안 된다. 일단 “좋은 질문입니다”라고 인정해주고 성심성의껏 답을 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역질문을 한다. “말씀하신 대로 작년까지 진행해왔던 MQL 팔로업이 매출 성과로 이어지지 않아, 이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저희에게 연락하신 것으로 아는데요. 저희도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영업 기회를 발굴하고 유관 세일즈 팀에 전달하고 추가 접촉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많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혹시 상무님께서는 이러한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 요소가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질문을 인정하고 의견을 묻는 것이다. 이 질문을 들은 고객이 열변을 토하기 시작하면 대화는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 다음으로 고객의 답변을 간략하게 정리해주고, 나의 경험과 사례를 이야기해준다. 그러면 고객은 나를 전문가로 인식하고 태도를 바꾼다. 심지어 ‘기승전 가격이다’라는 말로 상징되는 단가 경쟁도 무의미하게 된다. 중요한 순간에 핵심 질문을 던지고 정리하고 경험을 공유하는 연습을 해보자.

제대로 된 질문지를 만들어라: 내가 얼마 전 코칭을 했던 신입 세일즈맨이 있다. 그는 세일즈를 잘하겠다는 열망이 넘친다. 고객과 전화를 할 때면 의욕이 넘쳐서 열심히 설명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대화의 상대방은 전혀 들을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세일즈맨은 자기 이야기에 심취해서 상대방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게다가 고객에게 질문하고 상대의 대답을 기다리는 대신 자신이 나서서 대답을 가로챈다. 조급하기 때문이다. 조급하면 성공할 수 없다.

“아 네, 저희 서비스는 도입하실 때 초기 비용이 거의 들지 않기 때문에 부담이 없습니다. 그래서 과장님이 결재를 올리실 때도 굉장히 좋으실 겁니다. 이용의 불편함도 걱정이 될 수 있는데요? 한 달에 한 번씩 저희가 제품을 바꿔 드리기 때문에 이용하기도 아주 편하실 거예요. 하하.” 어찌 보면 열정 있어 보이지만, 고객의 이야기를 들을 만한 여유가 없다 보니 자신의 말만 쏟아내고 있다. 고객 입장에서는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 비슷한 실수를 하는 세일즈맨들에게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제대로 된 질문지’를 만드는 것이다.

제대로 된 질문지를 만드는 과정을 거치면 고객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고, 준비된 자세에서 편안하게 대화를 이끌 수 있다. 어느 날 기업 대상 전문 강사인 지인이 이메일을 보내왔다. 세일즈맨들이 고객에게 꼭 필요한 질문조차 하지 않아서 영업 기회를 날려버린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아내가 겪은 일화 하나를 들려주었다.

어느 금요일 낮, 아내한테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 차가 도로 한가운데서 멈췄어! 어떻게 해야 하지?” 도로 한복판에 있는 아내도 전화를 받는 그도 참으로 난감하고 당황스러웠다. 다행히 바로 정비소 직원이 와주었고 차는 수리했지만, 아내는 더는 사고가 난 차를 믿을 수 없다면서 주말에 신차를 구매하러 가자고 말했다. 아내와 함께 3개 매장을 방문했는데 그때 나는 자동차 판매점 영업 사원들에게서 인상적인 공통점을 발견했다. 3개 매장 직원들 중 아내가 왜 차를 바꾸려고 하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기능이 있는 차를 원하는지 물어본 영업 사원이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아내에게 이런 기본적인 질문만 했어도 사고가 난 차 대신 안전한 차량을 구매하고 싶다는 요지의 답변을 얻었을 것이고, 영업 사원은 안전 관련 추가 옵션을 판매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듯 많은 세일즈맨들이 고객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고 고객에게 제품을 설명하는 것만이 자기의 본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미국에서 3,000명이 넘는 세일즈맨들을 대상으로 통계를 내보니 ‘고객이 왜 제품에 관심을 갖고, 무엇을 힘들어하는지 궁금해 하고 질문하는’ 세일즈맨이 가장 돈을 잘 번다고 한다.

세일즈맨으로서 고객을 만난다면, 무엇을 말할지보다 어떻게 들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어떻게 들을지를 고민하다 보면 어떻게 질문할지를 생각하게 된다. 수첩을 들고 귀를 기울여보자. 우리 회사에는 이런 글귀가 적힌 액자가 걸려 있다.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듣는가?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는가? 고객도 마찬가지다.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세일즈는 성공할 수 없다.”


Chapter 3 말 속에 숨은 뜻을 찾아라


속뜻

“괜찮습니다”: ‘괜찮다’는 말은 ‘정말 괜찮다’는 말이 아니다. 이런 상황이 있다 치자. 부슬비가 내리는 날 주임이 거래처에 가려고 하는데 우산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 신입 사원이 “제 우산이라도 쓰고 가세요”라고 말했지만, 주임은 “이 정도 비는 괜찮아요”라고 대답했다. 결국 신입 사원은 그냥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분명히 주임님이 괜찮다고 해서 그냥 왔는데요?”라고 말하자, 고참 부장이 “너는 그 말을 믿니?”라며 핀잔을 준다. 신입 사원은 주임이 비 오는 날 우산도 없이 가는 모습에 자기가 쓰던 비닐우산이라도 손에 들려주며 ‘주임님, 이거라도 쓰고 가세요’라고 했어야 한다. ‘이 정도 비는 괜찮아요’라는 말은 사실은 ‘우산 주시면 쓸게요’다.

“가위 좀 주실래요?”: 일본 요식업계의 전설로 불리는 ‘장사의 신’ 우노 다카시가 얼마 전 독립한 직원의 가게에 가보았을 때 일이다. 그 가게 메뉴에는 삶은 족발이 있었다. 어떤 손님이 그걸 주문했는데 먹기가 힘들었던지 “가위 좀 주실래요?”라고 했다. 그러자 독립한 직원(사장)은 그냥 “네, 여기 있습니다” 하며 가위를 건넸다. 우노 다카시는 이 상황을 보고 어떻게 생각을 했을까? “그건 고객에게 친절을 베푼 게 아니다. 이럴 때는 ‘아, 먹기가 많이 불편하신가요? 여기서 잘라드릴게요’라고 하며 잘라서 내주어야 한다.” 가위를 빌려주기만 한다면 ‘이 가게 족발은 먹기가 너무 불편했어’라고 끝나버리지만, 잘라서 내주면 ‘여기 참 친절한 가게구나’라고 생각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질문의 답변에 세 번째 답변을 추가할 수 있겠다. ‘가위를 가지고 가서 잘라주고, 손님이 먹기 편한 메뉴를 개발한다.’ 손님들은 어떤 이유로 가위가 필요할까? 먹기가 불편하다면 음식을 어떻게 요리하면 손님들이 더 편할까? 양이 너무 많은 거라면 양을 반으로 나눈 새 메뉴를 하나 추가할까? 고객이 뭔가를 이야기할 때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들어야 한다. 고객의 언어에는 같은 말임에도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의미가 최소한 두 가지가 있다. 있는 그대로의 의미와 그 속을 알아달라는 의미, 우리는 후자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성공한다.


회피

“저는 잘 몰라요”: 고객은 구매 전 불안함을 느낀다. 작든 크든 결정을 내려야 하는 과정이 혼란스럽기도 하다. 그리고 그 결정에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불편하다. 그래서 지금 내리는 결정에 대한 확신이 부족할 경우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자 하는 회피 현상이 발생한다.

고객이 자신의 부하 직원에게 “이 제품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어본다. 직원은 상급자가 물어보니 답은 해야 하겠지만, 눈치를 보니 상급자가 뭔가 망설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직원 역시 회피적 대답을 택한다. “네, 좋아 보이긴 한데 구매해야 할지는 확실히 모르겠네요.” 아내는 남편에게 묻는다. “이거 어때?” 남편은 즉시 아내의 눈치를 살핀다. “글쎄, 예뻐 보이긴 하는데, 잘 모르겠네.” 질문이 그저 질문이 아님을 느끼면서 위험한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다.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모호한 답변을 함으로써 나중에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을 피하고자 한다. 우리의 언어 구조에는 자신의 삶을 책임으로부터 피해갈 수 있게 책임을 부정하는 표현들이 있다. “나는 잘 모른다.” “윗사람이 시켜서 한다.” “규칙이 그렇다.” “어쩔 수 없이 한다.” 등등 모호한 답을 하거나 행동의 원인을 다른 곳으로 돌려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부정하는 것이다. 고객은 구매 전에 욕구가 완전히 충족된 상태가 아니다. 구매 전 단계는 욕구가 채워지기 전 단계다. 이 단계에서는 갑갑함, 조바심, 불안, 불편, 주저, 피곤, 회의, 혼란 등의 감정이 뒤섞여 있다. 그리고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가급적 위험을 피하고 책임을 회피하려고 한다.

우리는 뭔가 새로운 일이나 위험이 있는 일을 할 때 두려움을 느낀다. 고객도 마찬가지다. 위험에 대해서는 보험이 필요하다. 세일즈는 이런 고객에게 위험을 공유하고 준비하도록 팁을 준다. 고객을 도와서 다음 단계들을 예측하며 위험 요소 하나하나를 같이 짚어보는 것이다. 그러면 고객은 나를 더 신뢰하고 위험에 대한 보험을 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세일즈맨이 자주 고객 주치의라고 표현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Chapter 4 마음을 파고드는 언어의 기술


순환

주는 자가 얻는 자연의 법칙: 한 비즈니스 모임에서 알게 된 중소기업 대표가 한 분 있다. 그분을 어느 강의 자리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면서 어떻게 지내시냐고 물으니 “아주 잘 지냅니다”라고 한다. 요즘처럼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쉽지 않은 답변이었다. 비결이 있냐고 물으니 “최근에 꽤 큰 건을 소개받고 그 건이 성사되어 회사가 아주 바빠요!”라고 한다. 그 대표는 그 비즈니스 모임에 가입하고 활동한 지 1년 정도가 되었다. 1년간 단 1건의 비즈니스 소개도 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모임에 속한 다른 회원들에게 먼저 도움을 주고 비즈니스를 소개했다고 한다.

‘언젠가는 내게도 좋은 소개가 있겠지?’라고 ‘주면 얻으리라’고 믿으며 기다리기를 1년이 다 되어가는 어느 날, 생각지도 못한 큰 비즈니스 소개를 받게 된 것이다. 꾸준히 다른 사람을 돕고 열심히 소개하는 모습을 보던 한 회원이 그 대표를 지인에게 소개한 것이다. 그 소개가 잭팟이었다. 소개받은 건은 큰 병원에 IT 관련 시스템을 납품하는 프로젝트이고, 후속 건들도 있어 상당히 좋은 비즈니스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조직의 철학은 ‘Givers gain(주는 자가 얻는다)’이다. 간결하지만 울림이 있다. 내가 얻고자 한다면 먼저 도움을 주라는 것이다. 먼저 도움을 주는 자가 비즈니스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도왔을 때 기쁨을 느끼고, 봉사나 기부 활동을 하면서 살아가지만 이를 비즈니스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쉽지 않은 ‘기부’를 계속하다 보면 자연계는 순환이라는 형태를 통해 보상한다. ‘Givers gain’은 자연계의 법칙인 셈이다. 바로 앞의 ‘작은 셈법’이 아니라 ‘큰 셈법’으로 보상하는 자연을 따라 가보자.

고객에게도 줄 도움이 있는지 적극적으로 찾아보라. 고객이 아이의 진로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면, 좋은 상담가를 물색해본다. 자녀의 취직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면, 주위에 좋은 취업 기회가 있는지도 찾아본다. 단순히 세일즈가 되고 안 되고의 문제를 떠나 먼저 도움을 준다는 차원으로 접근한다. 사람은 똑같다. 도움을 받으면 갚고 싶어진다. 내 것만 챙기려고 하지 말고, 먼저 주자.


사례

사례가 사례를 만든다: 신규 솔루션으로 개발한 좋은 기능들을 이야기했을 때 고객이 거의 예외 없이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그래요. 좋은 기능이네요. 그래서 어디서 쓰고 있나요?” 그러므로 아직 고객이 없는 스타트업 기업이나 판매 이력이 없는 신규 제품을 영업할 때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고객 사례를 만드는 것이 좋다. 이런저런 노력을 해도 첫 고객을 만들기가 너무 어렵다면, 기부를 해서라도 도입 고객을 만들어라. 사례가 사례를 만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런 대화를 상상해보자.

“그 제품 모델은 OO전자가 얼마 전 도입했습니다.” “그래서, 어떻대요? 성과가 나오고 있대요? 좋대요?” 사례를 이야기하면 고객이 보이는 반응이다. 특히, 본인 회사와 밀접하게 관계가 있거나 경쟁 관계에 있는 고객 사례라면 더욱 그렇다. 원래 누군지 모르는 전국 1등보다 같은 반 라이벌이 더 신경이 쓰이는 법이다. 서울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에서 쓴다는 럭셔리하고 스마트한 냉장고보다 앞집에서 엊그제 산 스크린 달린 냉장고가 더 갖고 싶다. 잘나가는 외국 기업이 도입한 첨단 시스템보다 우리 회사 계열사나 경쟁사에서 쓰고 있다는 고객 관리 시스템이 더 궁금하다. 영어로는 ‘reference case(언급/참고 사례)’라고 불리는 ‘사례’는 고객의 궁금증을 유발하는 가장 좋은 소재다.

“이 프로그램을 OO사에서 도입한 후 제품 불량률이 10퍼센트 이상 개선되었습니다. 담당자는 최근에 전 직원이 참석한 자리에서 사장님께 칭찬과 포상까지 받았다고 하네요. 품질 개선 우수 사례로 선정이 되어서요.” 고객의 성공 사례를 제공한다면 더욱 좋다. 그 말을 듣는 고객은 나도 그런 스토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잠시 공유할 수 있다. 머릿속에 그런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전 직원 앞에서 사장님께 칭찬도 듣고, 포상금까지?’

사람들은 검증되지 않는 첫 번째 시험대에 오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다른 누군가 써보니 좋더라’처럼 증명이 된 것을 원한다. 사례들을 보면 내가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내게 어떤 이로움이 있는지를 알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Chapter 5 세일즈 프로가 말하는 거래의 기술


용기

고객에게 길을 묻다: 현재 미국계 글로벌 IT 기업인 어도비코리아의 고객 성공 총괄인 유재구 상무가 이전 회사에서 미디어 기업 담당 세일즈를 할 때였다. 원래는 다른 산업 분야의 영업 담당이었던 유 상무는 미디어라는 새로운 분야를 맡게 되니 낯설었다. 종사자들이 쓰는 표현도 낯설고 모든 게 생소했다. 공부하려고 책을 찾아보려 해도 어떤 것부터 봐야 할지 몰랐다. 고객을 만난다고 해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고객이 무슨 말을 할지도 모르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방송사는 소프트웨어를 돈 주고 안사는 경향이 있어, 소프트웨어를 광고와 맞교환하자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만큼 세일즈맨에게는 척박한 토양이었던 셈이다.

그런 그가 미디어 담당자가 되어 처음으로 연락한 곳은 여의도에 있는 모 방송사였다. 그곳에서 방송기술 전문가를 알게 되어 미팅을 했는데, 고객의 첫 마디가 “왜 오셨어요? 방송은 좀 알아요?”라는 퉁명스러운 ‘인사’였다. 유 상무는 솔직하게 말했다. “모릅니다. 저 오늘 여기 처음 왔습니다.” 그랬더니 그 실무자가 인제스트가 어쩌고 인코딩이 어쩌고 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방송 전문용어를 늘어놓았다. 물론 유 상무는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말하던 실무자는 유 상무에게 “제 시간을 뺏지 말고 가서 공부하고 오세요”라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미팅 시작 5분만이었다. 유 상무는 그에게 “뭘 공부하면 됩니까?”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당장 “그건 당신이 알아서 해야지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유 상무는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는 계속 아무것도 모른 채 차장님을 찾아올 텐데, 제가 자꾸 와서 시간을 허비시킬 거 아닙니까?” 결국 상대는 협력사 사장의 연락처를 알려주었다고 한다.

유 상무는 그날 바로 서점으로 갔다. 방송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들을 모조리 사서 읽었다. 협력사 사장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 중에도 모르는 용어가 있을 때마다 적었고, 여의도 모 방송 종사자와 대화가 되려면 무엇을 중점적으로 알아야 하는지를 물었다. 협력사 사장은 그 방송사의 담당 차장이 인코딩과 아카이빙에 관심이 많다는 정보를 주었다. 유 상무는 철저하게 해당 분야를 공부해 처음 만났던 실무자를 다시 찾아갔다. 그런데 이 두 번째 미팅에서 유 상무는 맥주를 얻어먹었다. 첫 미팅에서 그렇게 모욕을 주었기에 그다음에는 안 올 줄 알았다는데, 알고 보니 그 실무자는 방송국에서도 아주 괴팍하기로 소문난 인물이었다. 그러나 용기를 잃지 않고 끝까지 일을 밀고 나가는 유 상무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던지 덕분에 유 상무는 미디어 세일즈 담당을 하는 동안 매년 그가 조직위원으로 있던 KOBA(국제방송음향조명기기 전시회)에서 발표자로 나설 기회를 얻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유 상무는 방송 부문에서 전문가가 되어 방송통신위원회 자문위원까지 하게 되었고, 10년 넘게 스마트TV협회에서 발표자로 활동하고 있다.


극복

결핍이라는 축복: 1960년대에 한국, 가나, 필리핀은 모두 가난한 나라였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된 반면 자연자원 부유국 가나와 필리핀은 여전히 가난하다. 한국이 이룬 경제 기적은 한국인들의 근면 성실함이 바탕이 되었음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2000년 즈음 조선업계 세계 1위로 올라선 후 거의 10년 정도 독주체제를 이어왔다. 전 세계적으로 독과점을 걱정할 정도였다. 그런데 한국에 앞서 한때 세계 조선 시장을 석권했던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그런 일본의 조선업이 몰락한 근본적인 이유는 일본이 만든 ‘표준선’이라는 개념 때문이다. 표준선은 말 그대로 ‘표준 구성을 맞춘 배’다. 일본은 일단 표준적인 배를 만들고 나서 ‘싸게 줄 테니 사라’는 방식의 세일즈를 선택했다. 일본의 조선업은 주문자들의 요구에 대응하는 데 소극적이었고, 한국은 정반대로 고객이 원하는 조건을 갖춘 ‘맞춤선’을 만들어 고객의 환영을 받았다.

고객의 언어를 듣기만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고객의 언어를 들었다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아무리 잘나가던 회사도 고객의 말을 무시하고 내가 우수하니 살 테면 사고 싫으면 관두라는 식으로 대응하면 망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내가 과연 고객의 말을 잘 듣고 있고 고객의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고 있는지 수시로 들여다봐야 한다. 고객의 언어와 그에 대한 대응은 비즈니스 생존의 필수 요소다. 국가도, 산업시스템도, 큰 기업도, 변하는 고객에 대응하지 않고 현재 가진 것에 안주하고 고객이 아닌 자기(제품) 중심적 기준으로 비즈니스를 하면 언제든 깊은 수렁에 빠질 수 있다. 하물며 ‘나’라는 개인은 치열한 생존 경쟁 앞에서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

우리는 부단히 고객의 언어를 듣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행동해야 한다. 또한 듣고도 행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고객이 이야기해준 좋은 이야기는 귀담아듣고 기록하고 관리하고, 나를 더욱 개선해야 한다. 그러면 여러분은 적어도 많은 고객 옆에 있을 것이다. 고객이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아직 ‘고객의 언어 결핍’이라는 축복이 있다. 우리는 그 결핍을 채워나가면 더욱 크게 성공할 것이다. 고객의 언어, 마음으로 듣고 행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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