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문학 속 한마디 말의 힘 말꺼리

아이템하우스 / 2021년 6월 / 312쪽 / 15,000원

고전 문학 속 한마디 말의 힘 말꺼리

고전 문학 속 한마디 말의 힘 말꺼리

이선종 지음

저자 소개

충남 부여 출생. 도서출판 정음사 편집장을 역임하였고 재직 시 마르 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등의 세계문학전집과 고 대사 왜곡의 진원지로 지목된 《일본서기》를 기획·책임 편집하여 세 간의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기획 및 책임 편집하여 세간에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지금까지 인문고전, 문학, 철학, 경제경영 등 다양 한 분야의 양서들을 기획 및 집필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그대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면》, 《너희는 세상을 이렇게 살아라》, 《시집에는 친정엄마가 없다》 등 20여 권이 있고, 번역서로는 《머피의 100가지 성공 법칙》, 《마음만 먹으면 당신도 부자가 될 수 있다》, 《승리의 길은 열린다》 등 다수가 있다.

책소개

흔히 고전 문학을 읽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고전 문학에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희로애락 등의 감정과 삶 속에서 만나는 다양한 인간상의 모습이 작품 캐릭터로 담겨 있다. 따라서 우리가 삶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을 간접적으로 먼저 체험해봄으로써 자기 삶의 답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고전은 우리에게 어렵고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 문학부터 사실주의 문학까지 서양 고전 문학의 대표작인 작가들을 선정해 그들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소개한다. 방대한 분량의 작품 속에서 중요한 부분을 선별해 ‘한마디’ 형식으로 구성하여 누구나 쉽게 고전을 읽을 수 있으며, 자신에게 필요한 인생의 조언과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요약본 본문

르네상스의 탄생 : 고전주의

근대 문학의 지평을 연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

“아주 작은 불꽃이 커다란 불길로 타오를 수 있다.”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문을 연 단테가 한 말이다. 그는 중세의 암흑을 깨고 근대의 여명을 밝힌 선구자였다. 단테는 르네상스의 발상지이며 중세문화의 중심지였던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비록 가문의 가세는 기울었지만, 그의 아버지는 단테의 교육만은 소홀히 하지 않았다. 단테는 학구열이 높았으며, 책임감 있고 자신에게 엄격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단테는 다섯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의붓어머니의 손길에 자랐는데, 그래서인지 그는 모성애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동경의 마음만을 키웠다.

단테의 생애에 큰 영향을 준 베아트리체는 그가 아홉 살이 되던 해에 만났다. 어느 날, 아버지를 따라 파티에 참석한 소년 단테는 그곳에서 베아트리체를 처음 만나고,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베아트리체는 단테의 작품 활동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 여인이다. 그의 걸작 《신곡》에서 베아트리체는 천국의 안내자이자 구원의 여인으로 나온다. 스물네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베아트리체는 단테의 영원한 연인이었으며, 그의 삶의 의미이자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해낸다. 나에게 저력이 있다. 나에게는 오직 전진뿐이다. 이런 신념을 지니는 습관이 당신의 목표를 달성시킨다. 너의 길을 걸어라. 사람들이 무어라 떠들든 내버려 두어라.” -단테 알리기에리

단테는 《신곡》을 집필하기 전에 피렌체 공화국의 정치에 뛰어들었다. 당시 피렌체는 집권 세력인 겔프당이 흑당과 백당으로 갈라져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단테는 백당의 당원이었는데, 교황을 지지하던 흑당은 막강한 힘이 있었던 반면에 교황의 정치적 야심을 반대하던 백당은 피렌체 시민의 지지를 받았다. 그런데 단테가 로마의 사신으로 파견되어 머무는 동안 피렌체의 상황이 급변했다. 정권을 차지한 흑당이 백당의 당원을 모두 추방하기 시작했다. 물론 단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에게는 영구추방과 체포된 경우 사형에 처한다는 조처가 취해졌다.

“한 번만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패할 때마다 일어서는 것을 목표로 하라.” -단테 알리기에리

이때부터 단테의 방랑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는 피렌체를 벗어나 이탈리아 전역을 다니며 망명 생활을 하다가 자신을 지지하는 영주의 도움으로 라벤나에 정착한다. 그리고 자신의 삶과 신앙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 작품이 바로 《신곡》이다. 《신곡》은 단테가 죽기 1년 전에 완성되었다. 그는 시민의 애도 속에서 성 프란체스코 교회에 안치되었다. 그 후 뒤늦게 단테의 위대성을 깨달은 피렌체에서는 그를 추방한 것을 후회하고, 그의 작품을 모든 이들이 널리 읽도록 하였다. 종교(신) 중심의 사회였던 중세시대에서 인간(휴머니즘) 중심의 근대 사회가 시작되었음을 알린 《신곡》은 종교뿐만 아니라 정치, 문학, 철학 등 여러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서양 문학에서는 단테를 셰익스피어와 나란히 견주기도 한다. 괴테를 비롯한 많은 작가가 단테의 《신곡》을 인류의 걸작으로 손꼽으면서 그의 작품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기도 했다.

구원에 이르는 과정을 다룬 서사시 《신곡》: 《신곡》은 단테가 지옥과 연옥, 그리고 천국을 여행하다가 마침내 구원에 이른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단테가 평소 존경하던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를 만나 지옥의 문 앞으로 향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단테는 지옥에서 사흘, 연옥에서 사흘을 보낸 후 베르길리우스와 헤어진다. 그리고 그의 앞에 첫사랑 베아트리체가 나타나 단테와 함께 사흘간의 순례를 떠난다. 그는 순례에서 여러 교황과 왕들, 학자와 예술가 등을 만나고, 그 과정에서 삶과 죽음, 죄와 벌의 의미를 알게 된다. 그러면서 인간으로서의 기쁨과 위안을 찾는다. 그리고 순례가 끝나는 마지막 날, 단테는 하나님의 사랑에 눈을 뜨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신곡》은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 전체 3부로 이루어졌으며, 각 편은 33개의 노래로 구성되었다. 서곡까지 포함하면 모두 100개의 노래로 구성된 서사시이다. 여기서 ‘3’은 삼위일체를 뜻하고, ‘100’은 완전수를 의미한다.

《신곡》중에서 <지옥편>: 서른다섯 살이 단테는 인생의 절반을 살아왔지만, 여전히 삶 속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그의 앞에 표범과 사자, 그리고 늑대가 나타났는데, 세 짐승은 각각 음란과 오만, 탐욕을 상징한다. 단테는 고대 로마 시대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와 함께 순례에 나선다.

“여기로 들어오는 모든 이는 희망을 버려라.” 단테와 베르길리우스가 지옥에 도착했을 때 ‘지옥문’에 적힌 글귀이다. 지옥은 모두 아홉 개의 층으로 나누어졌는데, 죄의 위중에 따라 벌을 받았고, 깊이 들어갈수록 형벌은 가혹하였다. 그곳에는 신앙심이 없는 자, 이단자, 자살한 자, 탐욕스러운 자, 아부하는 자, 위선과 절도를 일삼는 자 등이 형벌을 당하고 있었다.

첫 번째 층에는 기독교 전파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이 있었는데, 호메로스, 오비디우스, 소크라테스 등 고대의 위인들도 있었다. 그들이 기독교의 세례를 받지 못한 불운으로 온 것이었다. 실질적인 고통은 두 번째 층부터 시작되는데, 한 층씩 갈 때마다 더욱 끔찍한 고통을 받는 자들이 등장했다. 애욕에 빠진 자들은 영원히 불안에 떠는 벌을 받고, 탐식의 죄를 저지른 자는 자기 배설물 위에 앉아 있는 벌을 받기도 했다. 단테는 지옥의 여러 참상을 목격하면서 지옥 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인 아홉째 층에 이르고, 갈수록 울음과 고통의 비명들이 울려퍼졌다. 그중에서 두 사람이 서로 엉켜있는데 위에 있는 사람이 아래에 있는 사람의 목덜미를 울부짖으며 잔혹하게 물어뜯는 장면이 나온다. 단테는 이 장면을 매우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나는 게라르네스카의 오골리노 백작이었소. 지금 나에게 이렇게 물어뜯기고 있는 자는 우발디니의 루지에르 대주교지요. 내가 왜 이놈에게 이런 짓을 하고 있는지 말하리다. 이놈의 사악한 술수에 넘어가 내가 권력투쟁에서 패배하게 되자 이놈은 나와 나의 아들들을 탑 속의 가옥에 가둬 버렸지요. 그 끔찍한 감옥에도 희미한 빛이 새어 들어오더이다. 눈에 비친 자식들의 얼굴과 내 모습이 똑같다고 생각하니 너무나도 마음이 아파 나도 모르게 내 손을 깨물었지요. 그러자 자식들은 내가 배고파서 그러는 줄 알고, ‘아버지, 저희를 잡수시면 그만큼 저희의 고통도 줄어들 거예요. 아버지께서 저희에게 육신을 입혀 주셨으니 이제는 벗겨 주세요’라고 말하더구려.

그러나 세상의 어느 아비가 그런 부탁들 들어줄 수 있겠소? 나흘이 지나자 첫째아들이 죽고, 이후에 나머지 세 아들도 차례로 눈을 감았지요. 그리고 얼마 후엔 나 역시 오랫동안 먹지 못해 장님이 되고 말았소. 아이들이 죽고 나서 이틀 동안 그들의 이름을 불러 대며 대성통곡을 하였는데, 슬픔보다도 허기가 더 견딜 수 없더이다. 그러다가 나는 결국 굶주림에 못 이겨 자식들의 시신을 먹는 끔찍한 죄를 저지르고야 말았소. 고통에도 지지 않던 나는 결국 배고픔에 굴복하고 말았던 거요.”

자신의 이야기를 끝낸 우골리노는 다시 루지에르의 머리통을 미친 듯이 물어뜯으며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단테는 지옥의 끔찍한 참상에 눈을 뜰 수 없었다.

“우린 더 높은 계단까지 올라가야 한다. 그놈들에게서 벗어났다고 다 끝난 것이 아니다. 알아들었으면 용기를 내라.” 베르길리우스가 단테에게 용기를 심어주기 위해 한 말이다. 그는 단테와 함께 하는 여정에서 안내자의 역할에 충실했다. 베르길리우스의 조언에 용기를 낸 단테는 곧 의연함을 되찾았고, 두 사람은 지옥을 벗어날 수 있었다.

《신곡》중에서 <연옥편>: 지옥에서 사흘을 보낸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연옥에 도착했다. 이곳은 천국에 들어갈 기회가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를 씻어내고 ‘정죄의 산’이다. 그들은 천국에 가겠다는 의지로 정진하고 있었다.

“이 산은 다른 산과 다르다. 아래에서 시작할 때 가장 힘들고, 위로 오를수록 더 쉬워진다.” -베르길리우스

연옥은 모두 7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층은 인간의 일곱 가지 죄악, 즉 오만, 시기, 분노, 태만, 인색과 낭비, 탐식, 애욕을 의미한다. 그런데 산을 오를수록 일곱 가지 죄악은 하나씩 사라진다. 이것은 죄의 형벌이 경감되는 것으로, 점점 천국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가 첫 번째 언덕을 올랐을 때 어깨에 무거운 바위를 짊어지고 오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속죄의 영혼들로, 저마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느릿느릿 걸으면서 주기도문(예수가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기도)를 읊어댔다.

그들은 생전에 주일에만 교회에 나가면서 스스로 그리스 도인이라 자처하고, 자신의 재능이나 권력 등을 무기로 다른 사람들을 무시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베르길리우스는 그들의 영혼이 천국에 오르기를 기도한 후 단테를 다음 연옥으로 안내했다.

“지성과 기술로 여기까지 데려왔으나 이제부터는 ‘그대의 기쁨’이 안내자가 될 것이다.” -베르길리우스

계속해서 연옥의 언덕을 오르던 단테는 점점 빛이 환해지며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때 단테의 앞에 새하얀 너울을 쓰고, 올리브 잎 왕관을 쓴 여인이 나타났다. 바로 베아트리체였다. 베아트리체는 자애로우면서도 엄숙한 목소리로 단테에게 말했다. 그런데 천국으로 들어가기 전, 베르길리우스가 작별을 고한다. 그는 세례를 받지 않아 천국에 들어갈 수 없었다. 베르길리우스가 말한 ‘그대의 기쁨’은 바로 단테의 영원한 사랑인 베아트리체였다. 베아트리체는 베르길리우스를 대신해 단테를 천국으로 인도했다.

《신곡》중에서 <천국편>: 천국은 열 겹의 하늘로 이루어졌는데, 지옥과 연옥처럼 각각의 선에 따라 행복을 누리고 있었다. 단테는 베아트리체와 함께 첫 번째 하늘인 월광천부터 아홉째 하늘인 원동천을 거쳐 하나님이 머무는 정화천까지의 여정을 떠난다.

“당신은 지금 당신의 잘못된 상상력으로 자기 자신을 가두려 하고 있어요. 스스로 자신의 눈을 가리고 있는 꼴이에요. 지금 이곳은 지상의 피렌체가 아니라 당신의 원래 고향이었던 천국이에요. 그리고 지금 들려오는 저 소리와 강렬한 빛은 당신의 본향으로의 귀향을 반기는 하늘의 은총입니다.” 베아트리체가 천국에 들어선 단테는 진정시키기 위해 한 말이다. 그녀는 단테를 안내하는 동안에 그가 궁금해하는 것과 구원의 신비로움을 설명해줬다. 단테는 천국을 순례하면서 여러 성인과 가족, 친척들을 만났다. 어느덧 단테와 베아트리체는 단테가 바라던 하나님이 계시는 정화천에 올랐다.

그런데 갑자기 베아트리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그녀 대신에 한 노인이 단테를 바라보고 있었다. 노인의 손짓에 하늘을 바라보자 하나님의 빛에 둘러싸인 베아트리체가 있었다. 그녀의 권능과 신비에 단테는 압도되었고, 그녀는 밝고 환한 사랑의 미소를 보내왔다. 그리고 조용히 영원한 빛 속으로 사라졌다.

노인은 성 베르나르였다. 그는 베아트리체를 대신하여 성모 마리아에게 단테가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해달라고 청하였다. 단테의 소망은 하나님을 완전하게 인식하는 것이었다. 그때 성베르나르가 높이 쳐다보라고 말한다. 단테가 시선을 들자 하나님의 빛이 가득했고, 자신이 하나님의 빛 속에 들어와 있음을 깨닫는다. 마침내 단테는 하나님의 사랑에 눈을 뜨게 된다. 그는 천국의 마지막 하늘까지 경험한 후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인간 이성의 해방 : 계몽주의

최초의 사회과학자, 샤를 드 몽테스키외

“쓸모없는 법은 필요한 법을 무력하게 만든다”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 시대에 저명한 법률가이자 사상가인 몽테스키외가 한 말이다. 그는 자유주의 사상에 입각한 ‘삼권 분립(입법권, 사법권, 행정권)’을 주장하며 권력의 독재를 견제하였다. 이런 몽테스키외의 사상은 이후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토대가 되었으며, 인권 선언과 미국 헌법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몽테스키외는 1689년, 프랑스 보르도 근처에 있는 라 브레드에서 하급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네 남매 중 맏아들이었는데, 그가 일곱 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다. 몽테스키외는 열한 살 때 쥐이 학교에 입학해 지리산, 과학, 수학, 역사 등을 배웠으며, 졸업 후 보르도 대학교에 진학해 법학을 공부했다. 1708년에 법률 훈련을 받기 위해 파리에 간 그는 1713년,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후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운영하였던 줄리아 컬리지를 졸업한 그는, 1715년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다. 그리고 이듬해 자손이 없었던 백부의 유언에 따라 백부의 작위와 봉토를 계승하여 제2대 몽테스키외 남작이 되었다. 작위를 상속하기 전 몽테스키외의 본명은 ‘샤를 루이 드 스콩다’였다. 그는 백부가 맡고 있었던 보르도 고등법원의 고등법원장을 계승하였다.

“우리는 단지 행복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보다 더 행복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이것은 달성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실제보다 더 행복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몽테스키외

이 무렵 영국에서는 명예혁명이 일어나 입헌군주제가 선포되었고, 1707년에는 스코틀랜드가 합병되어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세워졌다. 그러나 이와 대조되게 프랑스는 1715년, 루이 14세가 죽은 후 루이 15세가 즉위하지만, 프랑스의 낡은 체제는 여전해 곳곳에서 많은 문제가 일어났다. 이런 시기에 진로를 고심하던 몽테스키외는 고등법원을 그만두고 파리로 이주하여 연구와 저술에 전념했다.

몽테스키외는 1716년부터 고등법원에 근무하면서도 보르도 학술원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자연과학과 역사, 정치 등 자신의 관심을 넓혀왔다. 그리고 1721년, 《페르시아인의 편지》를 익명으로 발표했다. 이 작품은 프랑스를 여행 중인 페르시아인 우스베크와리카가 고국에 있는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로 구성돼 있다. 《페르시아인의 편지》는 발표되자마자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 몽테스키외는 《페르시아인의 편지》와 같은 서간문의 형식으로 18세기 프랑스의 정치와 사회를 풍자적으로 묘사하였으며, 특히 가톨릭교회를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1721년, 그는 《페르시아인의 편지》가 출판된 이후에 파리에 가서 많은 학자와 교류했다. 1725년에 그는 고등법원장직을 팔았으며, 1728년 프랑스 학술원 회원이 되었다.

“진정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들과 함께 서야지, 사람들의 위에 서서는 안 된다.” -몽테스키외

몽테스키외는 1728년부터 1731년까지 오스트리아, 독일, 헝가리, 이탈리아 등 각국을 여행한 후 영국에 2년 동안 머물렀다. 그 시기 그는 영국 정치의 좋은 점에 감명을 받았다. 1731년에 프랑스로 돌아온 몽테스키외는 2년간의 연구 및 집필 활동에 들어갔고, 1734년에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로마인의 위대함과 쇠락 원인에 대한 고찰》을 발표했다.

이후 장장 10여 년에 이르는 연구와 집필 끝에 1748년에 이르러서야 그의 가장 대표작이라고 불리는 《법의 정신》을 출간하였다. 그러나 종교적 권위를 비판 것을 빌미로 이 작품은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금서로 지정된다. 이에 몽테스키외는 1750년 《법의 정신》 개정판을 추가 집필한다. 그는 이 작품에서 평등애의 실천을 말하고, 이를 바탕으로 공화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후 1755년, 그는 파리에서 창궐한 열병에 걸려 생을 마감했다.

《페르시아인의 편지》: 몽테스키외의 《페르시아인의 편지》는 수많은 편지글이 합쳐진 서간체의 소설이다. 프랑스 파리에 온 두 명의 페르시아인 우스베크와 리카가 고국의 친구들과 주고받는 편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소설은 18세기 프랑스의 정치와 사회를 고찰하고, 동서의 문화를 비교하면서 당시 프랑스의 부조리함을 풍자적으로 묘사했다. 이는 곧 계몽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위대한 일을 하는 사람은 모험가들이지, 거대 제국의 지배자들이 아니다” -몽테스키외

《페르시아인의 편지》 속 주인공 우스베크와 리카는 페르시아의 관습대로 일부다처제 사회에서 많은 아내를 두고 있다. 그런데 우스베크는 고국에 있는 아내들의 정절이 무너질 것을 걱정하며 두려워했다. 그는 파리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권리를 위임한 환관과 아내들에게 편지를 보내 이들을 통제했다. 동시에 프랑스의 새로운 문물을 보면서 비판하고, 재해석했다.

먼저 리카가 보낸 편지에는 당시 유럽인을 갖고 있던 ‘자민족 중심주의’가 담겨있다. 리카는 ‘만약 프랑스를 여행 중인 스페인 사람이 편지를 쓴다면, 그도 프랑스에 대해 마찬가지로 비판할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본토에 사는 이들은 자기네들끼리 이르는 말인 ‘구교도’를 굉장한 자긍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인도에 가 있는 자들은 자신들이 ‘하얀 살갗 사람들(백인)’이라는 사실이 무슨 대단한 것인 양 본토인들 못지않게 잘난 척을 하지요. (중략) 스페인 사람들은 신대륙에서 많은 것을 발견해 냈지만, 정작 자신들 본토는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이들은 해가 자기네 나라에서 떠서 자기네 나라로 진다고 말하지만, 말이야 바른 말이지, 해가 지나가면서 보는 것이라곤 피폐한 농촌과 인적 없는 지역뿐이랍니다.” -《페르시아인의 편지》 중에서, 리카

또한, 우스베크가 보낸 편지에는 동양의 전제정치에 대한 내용을 서술했다. 몽테스키외는 이를 통해서 루이 14세 이후로 프랑스를 통치한 군주들의 행태를 비판했다.

“여러 면에서 페르시아보다 프랑스가 훨씬 자유롭죠. 그래서 명예가 프랑스에서 더 존중되는 겁니다. 프랑스인들은 명예라는 환상 때문에 당신네 국왕이 국민의 눈앞에 형벌과 보상을 끊임없이 번갈아 보여줘야 가까스로 얻어내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멋지게 해내는 겁니다. 더욱이 우리 국왕은 제일 미천한 국민의 명예까지 소중히 여깁니다. (중략) 우리에게는 명예를 보호하기 위한 존경할 만한 재판소가 있습니다. 이 재판소는 신성한 국보이며, 국왕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유일한 곳이죠. 만약 국왕이 그곳에서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면,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후략)” -《페르시아인의 편지》 중에서, 우스베크

우스베크와 그의 명령을 따르는 환관들, 그리고 그 명령의 대상인 아내들 사이에서 작용하는 권력 관계는 전제정치의 구조와 권력 관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즉, 유일한 권력자인 우스베크와 아내들 사이에는 오직 지배와 복종의 관계만 있을 뿐이다. 우스베크가 환관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서 만약 이 관계가 무너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다. 우스베크의 편지에는 전제정치와 ‘법을 매개로 한 체제’가 대립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몽테스키외는 현재의 권력을 견제함으로써 권력의 남용을 막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 결과로 권력의 삼권 분립을 주장하게 된 것이다.

자연으로의 회귀 : 낭만주의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캉 폰 괴테

“꿈을 품고 뭔가 할 수 있다면, 그것을 시작하라.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용기 속에 당신의 천재성과 능력과 기적이 모두 숨어있다.” 독일을 대표하는 낭만주의 작가 괴테가 한 말로, 인생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명언이다. 괴테는 단테, 셰익스피어와 더불어 ‘세계 3대 시성’으로 불린다. 그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파우스트》 같은 작품을 통해서 인간 내면의 갈등과 번뇌, 고뇌를 절절하게 표현했다.

괴테는 174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황실 고문관이었던 아버지와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유복하게 자라난 그는 부족할 것 없는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어린 시절의 괴테는 라틴어와 그리스어,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 등 어학에 뛰어났으며, 미술과 음악, 승마 등 고등교육을 받았다.

또한, 고전 문학과 성경을 즐겨 읽었는데, 아버지의 서재에서 2천 권에 달하는 책을 모두 읽을 만큼 독서량이 많았다. 1765년, 괴테는 라이프치히 대학교에 입학해 법학을 공부한다. 하지만 법학보다는 문학에 더 관심을 기울였고, 1770년 헤르더를 만나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독일 민속시를 접했다.

“이 작품이 오직 자신만을 위해 쓰인 것처럼 느껴지는 시기가 인생에 한 번도 없다면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이후 1773년, 괴테는 스물네 살에 희곡 《괴츠 폰 베를리힝겐》을 발표한다. 그런데 이 작품의 등장으로 독일 전역은 논쟁이 벌어진다. 당시 독일의 전통 규범은 프랑스 고전주의 극을 따르는 것인데, 괴테는 영국의 셰익스피어 극에 따라 집필한 것이다. 이후 괴테는 큰 명성을 얻고, ‘질풍노도 운동’을 주도하게 되었다.

1774년, 괴테는 첫 소설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발표하여 더욱 큰 성공을 거둔다. 그런데 소설 속 사랑의 열병에 걸린 베르테르는 괴테 자신이 약혼자가 있는 여인을 사랑했던 경험을 소재로 쓴 것이었다. 이 작품은 독일은 물론 전 유럽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심지어 소설 속 주인공 베르테르처럼 실연당한 남자들의 모방 자살까지 일어나 한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발매금지가 되었다.

“고난이 있을 때마다 그것이 참된 인간이 되어 가는 과정임을 기억해야 한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그렇다면 당시 유럽은 왜 그토록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열광했을까? 그것은 이 작품이 단순한 연애소설이 아닌 당시 사회의 가치관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졌기 때문이다. 이성과 지성, 사회적 합리를 중요시하던 계몽주의 시대에 인간의 감정과 욕망은 폄하됐다. 하물며 사랑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괴테는 베르테르를 통해 당시 젊은 지식인의 우울과 열정을 묘사했다.

이후 괴테는 《파우스트》와 《에그몬트》를 집필하기 시작하고, 1775년에는 바이마르에서 공작의 고문이 된다. 그러다가 국정 수행으로 심신이 지친 괴테는 1786년에 이탈리아를 여행한다. 괴테는 이 여행을 계기로 고전주의를 지향하게 되었다. 다시 바이마르로 돌아온 괴테는 《파우스트》 2부를 쓰기 시작한다. 1832년, 마침내 《파우스트》를 완성한 괴테는 심장 발작으로 바이마르의 자택에서 생을 마감한다. 총 네 편의 소설과 다수의 서사시와 서정시, 산문과 시극, 비평과 수기, 그리고 1만여 통의 편지를 남긴 괴테는 독일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독일 최초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소설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결혼한 귀족 유부녀를 열렬히 사랑하다가 끝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베르테르의 슬픈 이야기다. 이 작품은 서간체 소설로, 베르테르가 그의 친구 빌헬름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한다. 괴테는 이 작품에서 당대 불만에 찬 젊은 지식인의 전형을 형상화했다.

“그토록 총명하고, 그토록 순진하고, 그토록 꿋꿋하고, 그토록 마음씨가 곧고, 그토록 착한 그녀. 나는 지금 신께서 베풀어주신 것 같은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중에서

유복한 집안에 태어난 법학을 전공하던 베르테르는 시골마음 발하임에 온다. 그는 발하임의 아름다운 자연을 찬미할 만큼 감수성이 뛰어난 청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간 무도회에서 베르테르는 로테를 만나고, 첫눈에 반해버렸다. 두 사람은 함께 춤을 추고, 베르테르는 행복을 느꼈다. 더욱이 로테의 착한 성품을 알게 되면서 베르테르는 점점 그녀에게 깊게 빠져들었다.

그러나 로테와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로테는 이미 약혼한 상태로, 그녀에게는 약혼자 알베르토가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베르테르는 의기소침했지만,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로테를 위해서 알베르토와도 친구가 된다. 하지만 차분한 성격의 알베르토와 감수성이 풍부한 베르테르는 서로 친해지기가 어려웠다. 한편, 시간이 지날수록 로테를 향한 베르테르의 사랑은 깊어졌고, 사랑의 고통에 괴로워하다가 친구 빌헬름에게 편지를 전한다.

“해와 달과 별은 변함없이 자신의 궤도를 돌고 있었지만, 나는 도무지 낮과 밤을 분간할 수 없었네. 내 주위의 세상이 통째로 사라져 버린 것일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중에서, 베르테르

빌헬름은 베르테르에게 로테를 잊으라고 말하지만, 베르테르의 머릿속 생각과 다르게 그의 마음은 여전했다. 그러나 로테의 사랑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느낀 베르테르는 여행을 떠나기로 하고, 로테에게 작별을 고한다. 이후 베르테르는 빌헬름이 추천해 준 공사의 비서로 일을 하게 된다. 하지만 비 오는 날이면 로테에게 편지를 쓰며 그녀를 향한 마음이 여전한 것을 보여준다.

결국, 로테를 잊지 못한 베르테르는 다시 그녀를 찾아간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결혼한 상태였다. 한동안 서먹하게 지내던 베르테르와 로테는 예전처럼 다정한 사이가 되어 시와 음악으로 서로의 감성을 교류한다. 그러나 알베르토에 대한 베르테르의 질투는 커져만 갔다. 점차 감정의 자제력을 잃어버린 베르테르는 마지막으로 로테를 찾아가서 ‘오시안의 시’를 낭독한다. 그러고는 격정에 휩싸여 로테에게 키스를 했다. 그러자 이에 놀란 그녀는 크게 화를 내며 베르테르에게 절교를 선언한다.

“나는 스스로 나 자신에게 벌을 주겠습니다. 나는 그 죄의 천국 같은 기쁨을 남김없이 맛보는 동시에 생명의 그윽한 향기와 힘을 내 가슴속 가득히 들이마셨습니다. 당신은 이 순간부터 저의 것입니다! 오오, 로테, 나는 먼저 갑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중에서, 베르테르

로테를 향한 마지막 사랑의 표현까지 거절당한 베르테르, 그는 자신의 사랑은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할 것을 절감한다. 비애에 빠진 베르테르는 하인에게 알베르토의 권총을 빌려오게 한 후, 그 권총으로 머리를 쏴 자살하며 자기의 삶을 마감했다. 베르테르는 죽는 순간에도 로테를 떠올린다. 그는 로테의 행복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쳐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본 도서요약본은 원본 도서의 주요 내용을 5% 정도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원본 도서에는 나머지 95%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보다 많은 정보와 내용은 원본 도서를 참조하시기 바라며, 본 도서요약본이 좋은 책을 고르는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0 댓글
본문 피드백
모든 댓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