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

인물과사상사 / 2018년 6월 / 195쪽 / 10,000원

군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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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저자 소개

1469년 피렌체에서 태어나 1527년에 사망했다. 1498~1512년 피렌체 공화국 관료로 활동하면서 민병제 확립에 진력했으며, 외교사절로 프랑스 왕 루이 12세와 신성로마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1세에게 파견되었다. 1512년 메디치가가 다시 피렌체의 지배자가 되자 공직을 잃었으며, 반(反)메디치 인물로 낙인 찍혀 투옥되기도 했다. 석방된 이후에는 칩거하여 저술 작업을 하면서, 정치 일선에 돌아가고자 여러 차례 공직 진출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좌절되었다.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시대는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중세의 질서가 차츰 무너지고 근대국가의 틀을 갖추기 시작할 무렵이다. 당시 이탈리아 반도는 군소 국가들 간의 대립, 외세의 침략 등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다. 마키아벨리는 강력한 군주가 분열을 종식하고 조국에 안정을 찾아줄 것이라 생각하고, 그 기대를 『군주론』이라는 정치사상의 고전으로 탄생시켰다. 이 책은 1513년에 쓰였으나 필사본으로만 읽히다가 마키아벨리 사후인 1530년대 초반에 출간되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 외에 『전술론』, 『라비우스 강연(로마사 논고)』, 『카스트루초 카스트라카니의 생애』 등을 저술했다. 또한 르네상스 문예의 토양을 바탕으로 문학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는데, 희곡 『만드라골라』를 통해 부패한 지도층을 통렬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책소개

이 책은 마키아벨리와 『군주론』을 제대로 읽을 수 있도록 먼저 ‘해제’를 제시하고, 다음 『군주론』26개의 장을 살펴본다. 해제자는 마키아벨리가 주장한 것은 권모술수의 군주독재가 아니라 민주공화국의 핵심 가치인 ‘민중의 자유와 자치’라고 말하면서, 이런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독재자가 아닌 민주적 지도자, 즉 구성원들의 갈등을 화해시키고 통합할 능력을 갖춘 신중한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요약본 본문

해제 - 마키아벨리의 민주공화국

민중의 자유와 자치를 위해

흔히들 권모술수의 군주독재를 주장했다고 보는 마키아벨리가 민주공화국을 주장했다고 하면 “그건 아니지, 정말 아니지”라고 손사래를 칠 사람이 많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 글에서 그렇게 주장하고자 한다. 약 500년 전 이탈리아 사람이었던 마키아벨리가 지금 이 땅에 살아 있다면 촛불집회에서 분명히 민주공화국을 외쳤으리라 확신한다. 삼권분립이니 하는 교과서에만 나오는 창백한 제도가 아니라, 국민이 주인이라는 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하여 모두 함께 어울려 사는 민주공화국을 주장했으리라고 확신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가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을 죽이고 사를 살리는 독재자의 출현을 막고, 모두 함께 공공의 자유와 자치를 지키는 제도적 장치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약 500년 전의 마키아벨리는 민주공화국의 핵심 가치인 ‘민중의 자유와 자치’를 지키기 위해 비록 민중에 의해 선출된 대표라고 해도 그 권력의 행사를 민중이 늘 감시하면서 견제해야 하고, 민중이 뽑은 대표의 심의에 민중이 직접 참여하여 최대한 자치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심의를 할 수 있는 의회만이 아니라 대표와 그 수하 관료들을 문책하고 민중에게 의사를 물을 수 있는 고발과 기소 제도까지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에게 민중의 정치 참여인 ‘자치에 의한 자유의 수호’는 민주공화국의 핵심적인 절차고 가치다. 물론 그러한 절차와 가치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것을 충실하게 반영하는 지도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오로지 독재에만 유능한 독재자가 아닌, 민주공화국을 창조하는 유능한 민주적 지도자가 필요하다. 특히 서로 대립하는 집단, 계층, 계급 사이의 갈등을 화해시키고 통합할 수 있는 민주공화적 능력을 갖춘 신중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이를 통하여 다른 나라는 물론 어떤 사람의 권력 행사에도 종속되지 않는 민중 모두의 자유를 위해 항상 싸우는 나라가 민주공화국이라고 마키아벨리는 주장했다. 밖으로는 명백히 독립을 유지하고, 안으로는 누구의 자의에도 종속되지 않는 조건을 민중 모두가 향유하는, 무엇의 지배도 받지 않는 자유와 자치의 나라를 민주공화국이라고 했다. 한 사람이나 몇 사람이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민중 모두가 자치하는 나라가 민주공화국이라는 것이다.

『군주론』에 투영된 시민적 군주를 향한 꿈

『군주론』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여러 가지 견해가 있었다. 마키아벨리가 피렌체에 절망하여 메디치 군주제를 유일한 대안으로 생각하고, 또 메디치가의 환심을 사기 위해 군주주의자로 썼다고 보는 견해, 또는 『리비우스 강연』의 공화정으로 가는 준비 단계로 군주정을 옹호한 『군주론』을 썼다는 견해(셸던 월린), 또는 군주의 사악한 통치술을 폭로하기 위해 쓴 책이라고 보는 견해(장 자크 루소) 등이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나는 마키아벨리가 일관하여 군주국이 아니라 공화국을 옹호했고, 이는 두 책 모두에 일관되어 있다고 본다. 마키아벨리 시대는 정치적 위기의 시대였다. 외국의 침입으로 이탈리아 정치 조직의 허약성이 폭로되었으며,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종래의 신뢰 또한 무너졌다. 인문학은 천박한 관념의 유희로 전락해 궁정인이 되기 위한 출세 요건 정도로 대접받게 되었다. 마키아벨리가 살던 16세기 르네상스는 그렇게 저물어갔고, 그는 그 시대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이탈리아는 히브리인들보다 더 비참한 노예가 되고 페르시아인들보다 더 억압받으며 아테네인들보다 더 분산되어 흩어져야 한다. 지도자도 질서도 없이 두들겨 맞고 약탈당하고 찢기며 침략당하는 온갖 수모를 견뎌야만 한다. - 『군주론』제26장’ 그런 극단적 현실 분석으로 마키아벨리는 새로운 시민적 군주를 열망하는 『군주론』을 쓴 것이다. 분단 극복은 침략 국가에 대항하는 투쟁을 통해 가능한데, 민중의 투쟁력은 충분하나 이를 뭉쳐낼 지도자가 없다는 것이 그의 현실 인식이었다.

 『군주론』은 26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키아벨리는 제1장에서 제11장까지 전제정이나 세습정을 비롯한 군주국의 여러 현실 유형을 설명한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의 목표는 그런 낡고 시대에 뒤떨어진 유형이 아닌 새로운 군주국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이탈리아를 분열시키고 통일을 방해해온 교회 국가나 도시 공화국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무력을 갖춘 강력한 나라다. 그에 의하면 무장한 예언가들은 승리했고 무장하지 않은 예언가들은 멸망했다. 그 이유로 마키아벨리는 인간 본성의 변덕을 들고, 사람들이 더는 믿으려 하지 않을 경우 그들을 힘으로 믿게 만들 수 있는 방식의 체제를 갖추는 일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군주론』제6장).

새로운 시민형 군주국에 대한 설명은 제12장에서 제23장까지 나온다. 시민적 군주가 이끄는 국가는 민중 속에 뿌리내린 시민 국가로서 군대로 대표되는 강제 장치, 종교나 명성을 통한 동의 장치, 계급투쟁의 결과이자 제도인 정치ㆍ사법 장치로 구성된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법과 군대다. 여기서 군대란 외국군이나 용병이 아닌 순수 자국군, 즉 시민군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군주란 사적 개인이 아니라 정치적 개인이다. 따라서 종교나 도덕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목표, 즉 역사적 목표인 국가 창건과 공고성을 추구해야 한다. 다시 말해 마키아벨리가 주장하는 것은 개인적 비도덕이 아닌 정치적 비도덕이다. 시민적 군주는 법에 의거하되 법이 무능하면 강제력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강제는 사자와 여우의 비유로 설명된다(『군주론』 제18장). 덫을 알기 위해서는 교활한 여우가 되어야 하고, 늑대를 쫓아버리기 위해서는 사나운 사자가 되어야 한다. 여우는 기만, 즉 간계와 속임수를 뜻한다. 기만은 강제와 법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군대에 대입하면 전략이고 법에 대입하면 정치술이 된다. 그러나 이는 무법이나 불법과는 다르다. 법을 갖고 술책을 부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법이 존재하고 승인되어야 하며 무시될 수 없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군주는 다시금 민중적인 기반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당대의 현실에서 볼 때 군주란 민중의 편에 서서 귀족에 저항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는 의지를 긍정하면서도 운(運)도 긍정한다. 운은 여자이고 따라서 그녀를 자신의 통제 하에 두고자 한다면 때려서라도 억지로 붙잡아둘 필요가 있다고 한다(『군주론』제25장). 이는 오늘의 페미니스트가 보기에 여성차별적인 발언이겠지만 약 500년 전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양해할 필요가 있다. 마키아벨리는 1506년에 쓴 편지에서 운명에 의해 인간의 행위가 지배되었다고 본 점에 비해 더욱더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의 섭리나 예정조화설을 부정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운명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마키아벨리는 가난하나 덕이 높은 중세식의 금욕적 유토피아 국가를 부정한다. 에라스뮈스의 관용에 근거한 이상주의적 정치사상 같은 것은 마키아벨리에게 휴지 조각보다 못한 것이다. 그러나 마키아벨리가 그렇게도 열망한 강력한 시민적 군주를 통한 이탈리아 통일은『군주론』이 출간되고 약 350년이 지난 1861년에야 가능했다.

마키아벨리즘은 없다

마키아벨리가 500년 전에 쓴 책들이 서양에서 많은 논란이 되어왔고 이제는 고전의 반열에 올랐지만, 그의 책들은 읽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악용될 수 있는 특이한 책들이다. 물론 그런 책은 마키아벨리의 저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령 니체는 마키아벨리와 같이 히틀러나 무솔리니에 의해 악용되고 곡해되었으나, 니체 자체는 히틀러나 무솔리니와 무관하다는 주장도 있다. 마키아벨리도 그렇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보지 못할 수도 있다. 문제는 마키아벨리나 니체 자체가 아니다. 그들의 진심이 어떻든 그것을 악용하려고 하는 권력주의 세력이 항상 존재한다는 사실이 문제다.

사람의 이름은 딴 유일한 정치 현상에 대한 고유명사인 마키아벨리즘이란 마키아벨리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를 ‘악의 교사’니 ‘악마의 교사’라고도 한다. 그런 말이 나오게 한 그의 『군주론』이라는 책은 언뜻 듣기에 매우 어렵고 두꺼운 책 같지만 본래 ‘론’이라는 말이 포함되지 않는 『군주정』이라는 제목 아래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에 대한 강연으로 100쪽 정도로 쓴 매우 쉽고 얇은 책이다. 500년도 더 전인 15~16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소재로 한 책이어서 관련 역사를 모르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없지 않지만, 그 내용은 대중적인 역사 드라마처럼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인류의 고전 중에서도 『군주정』은 가장 쉽고 얇은 책인데도 실제로 그 책을 읽은 사람은 의외로 적다. 무엇보다도 마키아벨리즘이라는 어두운 말이야말로 그 책을 멀리하게 하는 것이리라. 그래서 덩달아 『리비우스 강연』도 마찬가지 취급을 받았다.

그 두 책에 마키아벨리즘이라는 말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 말들을 중심으로 하여 냉정한 정치가의 통치 방법이나 사업가의 관리 기술로 그 책들을 이용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 책들의 역사적 배경이나 취지나 목적을 알고 읽으면 정작 마키아벨리 자신은 그런 마키아벨리즘과 무관하고, 사악하지도 않았으며, 사악한 주의를 가르치지도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도리어 그의 진심은 이탈리아를 사랑하고 군주국이 아닌 민주공화국을 세우고자 한 것이었으며 무엇보다도 그는 당위가 아닌 존재로서 근대 정치학이나 사회과학을 수립한 선구자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물론 그런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령 마르크스는 마키아벨리를 비판했다. 또 네오콘의 선구자인 레오 스트라우스가 마키아벨리를 비판한 책도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고 그 유사한 책들도 번역된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도 마키아벨리를 비판적으로 보는 학자들이 있는 것 같다. 과연 마키아벨리는 옳았는데 그를 오해해서 마키아벨리즘이 만들어졌는지를 따져보려는 것이 이 책을 쓴 목적이다.

나는 이탈리아에서 살았던 약 2,000년 전의 리비우스나 약 500년 전의 마키아벨리의 진심을 탐구하는 것 자체에 흥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마키아벨리즘이 지배하는 지금 우리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 마키아벨리의 진심을 탐구하고자 했다. 그 진심이 분단된 반도인 조국의 통일과 부패한 정치, 빈익빈부익부의 개혁과 시민정치의 확립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런 조국의 현실에 대해 마키아벨리가 고민했다면 마찬가지 고민을 하는 우리로서는 그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고, 그것이 우리에게도 유익하다면 그에게서 배울 필요가 있다. 그런 고민을 마키아벨리즘으로 호도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다시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거나 “잘못된 일이라도 일단 저질러진 경우 취소할 수 없다”는 식의 마키아벨리즘 궤변이 이 땅에 떠돌게 해서는 안 된다. 아니 마키아벨리즘이라는 말 자체가 사라져야 한다. 악은 그냥 악일 뿐이다. 마키아벨리의 진심과 전혀 다르게 악하지 않은 그의 이름을 빌려 마키아벨리즘이라고 악을 말하는 것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거나 “잘못된 일이라도 일단 저질러진 경우 취소할 수 없다”는 말보다 나쁘다.

이 글에서 강조한 민주공화국이라는 마키아벨리 사상의 핵심은 우리 시대의 가장 절실한 화두다. 다시 말한다. 우리의 모토를, ‘밖으로는 독립을, 안으로는 자유를!’ 우리 헌법 제1조 1항에 적힌 민주공화국을 성공적으로 완성하는 것이 우리 역사의 최고 과제다. 그 과제의 수행을 위한 험난한 여정에 마키아벨리의 고뇌가 도움이 되기를 빈다. 시간이 좀 걸릴지라도 우리는 반드시 승리한다. 좀 더 낙관적으로, 희망을 가지고 우리의 민주공화국을 가꾸어가자. 그것을 배신하는 독재 권력은 잠시 잠깐이다.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한 사람이나 소수도 잠시 잠깐이다. 우리 민중은 반드시 승리한다.

군주론

헌정사 -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로렌초 데 메디치 대인께 올리는 글

군주의 은총과 혜택을 얻고자 하는 이들은,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가장 귀중한 것이나 군주가 받음으로써 즐거워할 것들을 가지고 그를 접견하는 것을 관습처럼 여겼습니다. 저 또한 대인을 만나 뵙고 대인에 대한 충성심의 표시로 무엇인가 드리기를 원합니다. 허나 저에게는 특별히 값으로 따져 귀중한 것이 없습니다. 가진 것이라곤 그저 최근에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에 대한 오랜 경험과 고대에 관한 끊임없는 연구를 통하여 터득한 위대한 인간의 행적에 관한 지식뿐입니다. 그러므로 장구한 노력의 결과물을 이 작은 책으로 정리하여 대인께 올립니다. 너그러운 대인께서 제가 바칠 수 있는 최대의 선물이라 생각하시고 기쁘게 받아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 책에서 저는 대부분의 저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거북한 운율, 과장된 미사여구, 비유나 장식 등을 일절 사용치 않았습니다. 이 책이 새롭게 다룬 소재와 내용의 중대성이 강조되기만을 원할 뿐, 그 외의 어떤 특색으로도 이 작품을 장식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회적 신분이 낮은 자가 무례하게 군주의 정치를 논하고 향방을 제시하는 것이 신분을 망각한 짓이라고 여겨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를 들어 풍경을 그리는 화가들이 산이나 들의 모습을 그릴 때는 평지에서 올려다보아야 하고 그와 반대로 낮은 곳을 그릴 때는 산 위에서 내려다보아야 하는 것처럼, 민중을 알자면 군주의 입장이 될 필요가 있고, 군주를 알기 위해서는 민중의 입장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인께서 저의 마음을 이해하시고 이 작은 선물을 받아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대인께서 이 책을 소중히 여기고 읽어주신다면, 대인께서 지니신 탁월한 자질과 운명이 대인께 길을 열어주어 위대한 자리에 오르시게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가장 바라는 바이자 소망입니다. 동시에 대인께서 그 높은 곳에 계시면서 언젠가 여기 이 낮은 곳에 눈을 돌리신다면, 제가 얼마나 크고 부당한 학대를 계속해서 받고 있는지를 아시게 될 것입니다.

군주국의 종류와 그 형성 과정

인간을 지배했거나 또는 지배하고 있는 모든 국가나 통치 체제는 공화국(共和國)아니면 군주국(君主國)이다. 군주국은 지배자의 가문으로 오랜 시일에 걸쳐 세워진 세습 군주국이거나, 새로이 수립된 신생 군주국이다. 신생 군주국은 프란체스코 스포르차가 통치하기 시작한 밀라노와 같이 전적으로 새로운 군주국이거나, 스페인의 왕이 통치하고 있는 나폴리 왕국처럼 원래의 세습 군주국의 군주에게 정복당하여 새로 합병된 군주국이다. 이렇게 획득된 영토 중에는 주민들이 군주제도에 길들여지거나 자치생활에 익숙한 곳이 있는데, 이러한 영토는 군주가 자신의 무력을 이용하거나 타인의 무력을 이용하여 획득한다. 이는 군주의 운에 따른 결과일 때도 있고, 그의 능력 여하에 따라 좌우되기도 한다.

세습 군주국

여기에서는 오직 군주국에 대해서만 다루도록 하겠다. 세습 군주국을 유지하는 것이, 신생 군주국을 유지하는 것보다 어려움이 적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주민들이 군주의 가문에 오랜 기간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한편 특별히 대단하고 초강력적인 세력에 의해 빼앗기지 않는 한, 평균 전력을 갖춘 군주라면 자신의 국가를 지킬 수 있다. 만약 권좌를 빼앗기게 되더라도, 강탈 세력에게 어떠한 불운이 닥치게 되면 군주는 자신의 국가를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복합 군주국

신생 군주국에는 어려운 문제가 발생한다. 우선 전적으로 새롭게 생긴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군주국에 국가의 구성원이 집단적으로 병합된 경우를 복합 군주국이라 부르겠다. 이러한 국가의 불안정은 모든 신생 군주국이 불가피하게 가지고 있는 어려움에서 기인한다. 민중은 그들의 삶이 향상되길 간절히 바랄 때 통치자를 갈아치우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이러한 희망은 민중으로 하여금 그들의 통치자에 맞서 무기를 들도록 유도한다. 이 시점에서 민중은 기만을 당한다. 후에 경험을 통해 상황이 악화되는 방향으로 흘렀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사태는 또 다른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필요성에서 기인한다. 즉 신생 군주가 그에게 굴복한 새로운 영토의 주민들에게 자신의 점령 군대를 통해 부담을 지우고, 그 과정에서 따라오는 수많은 침해 행위로 피해를 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군주는 군주국을 병합하는 과정에서 피해를 입힌 모든 사람을 적으로 두게 되며, 게다가 통치자가 되게 한 우호적인 자들과도 유대 관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이는 그들이 기대했던 바를 충족시켜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들을 강압적인 수단으로 다룰 수는 없다. 여전히 그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생 군주가 매우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더라도, 어떤 지역을 점령할 때는 항상 그 지역민들의 호의가 필요하다.

한편 영토를 획득하고자 하는 욕구는 자연스럽고 통상적인 것이다. 능력 있는 자가 언제나 이를 행해왔으며, 이는 비난받기보다는 칭송받는 일이다. 그러나 능력이 없는 자가 수단을 가리지 않고 정복하고자 하는 행위에는 비난이 따르게 된다. 따라서 프랑스가 독자적인 힘만으로 나폴리를 공격할 수 있었다면 당연히 그렇게 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왕국을 분할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롬바르디아에서 베네치아인들과 행했던 분할은 프랑스가 이탈리아 진출의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는 이유로 정당화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후 다른 분할은 필요성이라는 구실조차 갖지 못했기 때문에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루이 12세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실수를 범했다고 볼 수 있다.

약소 세력을 파괴한 것, 이탈리아에서 강력했던 교회의 세력을 더 강화시킨 것, 외세를 끌어들인 것, 정복한 영토에 직접 정주하지 않은 것, 이주병을 보내지 않은 것. 거기에 그가 베네치아인들의 영토를 탈취하는 여섯 번째 실수를 범하지 않았더라면 그 실수들로 인한 피해까지 입지는 않았을 것이다. 교회의 세력을 강화해주지 않고 스페인을 이탈리아에 불러들이지 않은 상황이었다면, 매우 합리적이고 자연스럽게 베네치아인들을 몰아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이미 진행되었다면, 그는 결코 베네치아인들의 몰락에 동의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군주 자신의 무력과 역량으로 정복한 신생 군주국

신생 군주국에는 신생 군주가 있기 마련인데, 대체로 군주의 역량에 따라 권력을 유지하는 데 다소간의 어려움이 있게 된다. 한 개인의 신분으로 군주가 된다는 것은 역량이나 행운에 의한 것이라고 전제되므로, 이 둘 중 어느 것이라도 많은 어려움을 어느 정도 완화시켜줄 것임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행운에 대한 의존도가 적을수록 군주는 가장 강력하게 설 수 있게 된다. 더욱이 군주가 다른 영토를 소유하고 있지 않고 그곳에 정주한다면 문제들은 더 줄어들 것이다.

행운이 아닌 자신의 역량에 따라서 군주가 된 사람들 중 모세, 키루스, 로물루스, 테세우스 등이 가장 뛰어나다. 비록 어떤 이는 모세가 단지 신의 뜻을 행하는 집행자라서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가 신과 대화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은 것만으로도 존경받아야 한다. 그리고 왕국을 획득하거나 일으켜 세운 키루스와 다른 이들 역시 모세 못지않게 존경받을 만하다. 그들의 특별한 행동과 수행력을 살펴보면, 모세가 신의 뜻을 따라 행한 것보다 못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의 행동과 삶을 보면 처음에 얻은 기회를 넘어선 행운 외의 어떤 것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한 기회를 가질 수 없었다면 그들의 정신적 능력은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세를 추종하는 일이 발생하기 전에, 모세가 이집트인들에게 억압받고 있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을 발견하는 일이 필요했다. 로물루스는 로마의 왕이자 건국자가 되기 위해 출생하자마자 버려져 알바에 머무르지 못하는 일이 필요했던 것이다. 테세우스가 흩어진 아테네인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의 능력을 보여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기회들이 그들을 행운을 지닌 자로 만들어주었고 그들의 탁월한 능력이 그 기회를 알아채게 한 것이다. 결국 그것이 해당 국가의 품격을 높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명성을 떨치도록 만든 것이다.

그들처럼 용맹스런 방법으로 군주가 된 사람들은 어렵게 국가를 획득한 만큼 그 국가를 쉽게 유지할 수 있다. 국가를 획득할 때 그들이 갖는 시련은 부분적으로는 그들이 국가를 세우고 안보를 위해서 도입해야 하는 새로운 제도와 통치체계에서 야기된다. 이쯤에서 우리는 새로운 질서를 도입하는 것보다 더 착수하기 어렵고, 많은 위험이 존재하며, 더욱 불확실한 것은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혁신자들은 기존 체제 아래서 영화를 누리던 자들 모두와 적대적 관계가 되는 반면, 새 체제 아래서 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자들은 미온적인 옹호자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냉담함 중 일부는 적들에 대한 두려움에서 기인하고, 다른 일부는 오랜 기간을 통해 경험해 볼 때까지 새로운 것을 선뜻 믿지 못하는 사람들의 불신에서 야기된다. 적대적인 사람들은 공격할 기회만 있다면 강력한 당파심으로 언제든지 공격하는 반면에, 다른 이들은 미온적으로 방어하므로 군주도 그런 식으로 이들을 따라 위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일에 관하여 철저하게 논의하기를 원한다면, 혁신자들이 그들 자신의 능력만 의지해도 되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을 의존해야 하는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그들의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서 타인의 도움을 간청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의 자력만을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전자는 거의 항상 성공하지 못하며 그 어떤 것도 성취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이 그 스스로 자신들을 의존하며 그들의 능력만을 사용할 수 있다면, 좀처럼 위험에 빠지지 않는다. 이런 이유 때문에 무장한 예언자들은 모두 승리를 거두었지만, 무장하지 않은 예언자들은 파멸을 당했던 것이다.

언급한 이유 외에도 인간의 본성이 변덕스러워서 그들을 설득하긴 쉬워도, 그들을 설득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은 어렵다는 점이 있다. 따라서 그들이 더는 믿지 않을 때, 힘으로 그들을 믿게 만들 수 있는 정책을 취해야 할 필요가 있다. 만약 모세, 키루스, 테세우스, 로물루스가 무력을 갖추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그들이 제정한 새로운 법질서를 오랫동안 시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현시대에 수사(修士) 지롤라모 사보나롤라에게 일어났던 일이 바로 이것이다. 민중이 더는 그를 신뢰하지 않자 그는 그의 새 질서와 더불어 즉시로 몰락의 길을 걸어야 했다. 그에게는 그를 믿었던 자들을 변함없이 유지시키고 믿지 않던 자들을 믿을 수 있게 만드는 어떠한 방책도 없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혁신자들은 모든 위험의 증가로 인하여 그들의 과업을 완수하는 데 매우 큰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자신들의 능력으로 어려움을 극복해내고, 그들의 성공을 시기하는 자들을 섬멸한 후에는 존경받기 시작할 것이다. 그 후로는 강력하고 안전하며 명예롭고 행복한 상태로 계속 남아 있게 된다.

군대의 종류와 용병

새로운 국가든 오래된 국가든, 군주국이든 복합군주국이든, 모든 국가의 주요 기반은 훌륭한 법과 훌륭한 군대다. 훌륭한 군대가 없는 국가에 훌륭한 법이 있을 수 없다. 훌륭한 군대가 있는 국가가 훌륭한 법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법에 대한 논의는 접어두고, 군대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군주가 자신의 국가를 방어하는 데 사용하는 무력은 자신의 군대이거나 용병이거나 외국의 지원군이거나, 혹은 이 셋이 혼합된 형태다. 용병과 지원군은 쓸모가 없고 위험하다. 만약 이들 무력에 기반을 두고 국가를 유지한다면 견고하고 안전하게 통치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분열되어 있고, 야심만만하며, 절제력도 없고, 신뢰할 수 없다. 동지들 앞에선 용맹스럽지만, 적군 앞에서 비겁한 겁쟁이일 뿐이다. 그들은 신에 대한 두려움도 없으며, 인간에 대한 신의도 없다.

그들의 파멸은 적의 공격이 지연되고 있는 한 지연되고 있을 뿐인 것이다. 따라서 평화 시에는 이들에게 강탈당할 것이고, 전시에는 적군에게 그리될 것이다. 실제로 이들을 전장을 지키는 데 끌어들이는 힘과 이유는 급여뿐이라서 이것으로는 그들이 군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기엔 충분치 않다. 이들은 군주가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 한, 군주의 군대가 될 준비가 되어 있겠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탈영하든가 적에게서 달아날 것이다. 이를 증명하는 것으로, 이탈리아의 패망은 모든 희망을 오랜 기간에 걸쳐 용병들에게 의존한 것이 원인이 되었다. 비록 이전에 용맹을 드러내 보인 적도 있었고 그들 사이에선 용맹스럽게 보였지만, 외국군이 침입하자 그들은 자신들의 진면목을 드러냈다.

지원군, 혼성군, 자국군

지원군이란, 군주가 다른 유력한 군주에게 원조와 방어를 위해 요청했을 때에 고용되는 또 다른 무익한 군대라 하겠다. 최근에 교황 율리우스 2세는 페라라 전투(1510년)에서 자신의 용병들의 빈약한 성과로 인하여 지원군으로 교체하게 되었고, 스페인 왕 페르난도에게 인력과 무력의 지원을 위해 협정을 체결했다. 이 지원군은 그 자체적으로는 유용하고 훌륭하겠지만, 이를 요청한 율리우스 교황에게 이들이 항상 유익한 존재가 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패배할 때는 자신도 몰락하게 될 것이고, 그들이 승리할 때는 그들에게 사로잡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용병에 있어서는 비겁함이 가장 위험하고, 지원군에 있어서는 용맹스러움이 가장 위험하다. 따라서 현명한 군주는 항상 이러한 군대를 피하고 자신의 군대에 주력한다. 타인의 무력으로 얻는 승리를 진정한 승리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현명한 군주는 타인의 군대로 정복하기보다는 차라리 자신의 군대와 패배하는 길을 택한다.

군주의 신하들

대신들을 등용하는 일은 군주에게 중차대한 일이 아닐 수 없으며, 그들은 군주의 안목에 따라 훌륭한 인재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군주와 그의 지적 능력을 가늠하는 척도는 우선적으로 그의 측근에 있는 자들을 관찰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들이 유능하고 충성스러우면 군주는 항상 현명하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군주가 유능한 자를 인지할 수 있는 능력과 그들의 지속적인 충성을 유지시키는 법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측근들이 그러지 못할 경우에는 군주에 대한 좋은 여론을 형성할 수가 없는데, 이는 군주가 측근들을 잘못 등용함으로써 가장 기본이 되는 잘못을 범했기 때문이다.

안토니오 다 베나프로가 시에나의 군주인 판돌포의 대신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베나프로를 대신으로 거느리는 판돌포를 영민한 인물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다. 인간의 지적능력을 3가지로 분류해본다면, 하나는 자기 스스로 이해하는 사람, 또 하나는 다른 이가 이해한 것을 인식하는 사람, 또 하나는 자기 스스로도 다른 이의 이해를 보고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첫째가 가장 탁월한 것이요, 둘째도 우수한 편이지만, 셋째는 유용한 가치가 전혀 없다. 따라서 판돌포가 첫 번째 부류의 인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두 번째 범주에는 속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는 타인의 언행에 대해 선악을 구별하는 판단력을 가져야 할 때마다 자기 스스로가 주도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대신으로 선악 간의 구별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옳은 것은 칭찬하고 잘못된 것은 교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그의 대신도 군주에게 기만할 생각을 품지 못하게 되고 정직함으로 섬기게 되는 것이다.

군주가 대신의 자질을 분별할 수 있는, 놓쳐서는 안 될 한 가지 방법이 있다. 대신이 군주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것과 은밀하게 매사에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을 보았다면, 이런 사람은 결코 충성스런 대신이 될 수 없고 군주가 그를 신뢰할 수 없다. 국가의 막중한 책무가 그의 수중에 있으므로, 그는 결코 자신의 일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항상 그의 군주의 일만 생각해야 하며, 그의 군주가 관심을 두지 않는 문제들에는 어떤 주의도 기울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반면 군주는 대신이 정직하게 종사하도록 하기 위해 그를 세심하게 살피며, 그에게 명예와 부를 주어 삶을 풍요롭게 해주어야 하며, 친절하게 대하면서 영광과 책임을 함께 나누는 그런 사이가 되어야 한다. 동시에 그로 하여금 군주 없이 혼자서는 존립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여, 이미 누리는 많은 영광으로 그가 더 큰 영광도 바라지 않게 하고, 부유한 삶으로 더 많은 부를 원하지 않으며, 그에게 주어진 많은 권한들로 변화를 두려워하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그들이 서로에게 이런 입장을 취하게 된다면 서로를 신뢰할 수 있게 되겠지만, 그 반대일 경우에는 한쪽은 처참한 결과를 맞게 될 것이다.

야만족에게서 이탈리아를 해방하기 위한 권고

이제까지 논의했던 주제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서, 오늘날 이탈리아의 상황이 새로운 군주에게 유리한 국면을 제공하고 있는가, 현명하고 덕망이 있는 군주에게 영광을 부여하고 그의 모든 민중에게 만족할 만한 새로운 질서를 도입할 기회를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심사숙고해보자. 모든 점에 있어서 새로운 군주에게 유리한 국면을 제공하는 오늘날의 상황보다 적절한 시기는 일찍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이탈리아는 머리는 약해도 다리는 힘이 넘친다. 이탈리아인 개개인이 결투와 소규모의 전투에서 힘과 재주와 예리함에 있어 얼마나 우수한가를 살펴보라. 그러나 이들이 군대로 대항할 때에 적의 상대가 되지 못했는데, 이는 전적으로 지도자의 역량이 부족한 데서 기인된다. 유능한 자들은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 비해 현격한 차이가 나며 또한 능력과 행운을 겸비하며 모든 이를 복종시킬 만한 자가 출현하지 않음으로써 각자 자신이 유능하다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유로 지난 20년에 걸친 수많은 전쟁에서 전적으로 이탈리아인들만으로 이루어진 군대는 항상 패배했다. 이를 증명하는 사례로서 우선 타로의 전투, 그 후 알렉산드리아 전투, 카푸아 전투, 제노바 전투, 바일라 전투, 볼로냐 전투와 메스트리 전투가 있다. 따라서 만약 대인의 훌륭한 가문이 그들의 나라를 구원한 위대한 인물들의 행적을 밟고자 한다면, 모든 것 이전에 모든 과업의 진정한 기반으로서 자신의 군대를 양성해야 한다. 이들이 개별적으로 뛰어나다고 하지만, 그들의 군주에 의해 지휘를 받으며 명예를 얻으며 군주의 후한 대우를 받는다면 훨씬 더 훌륭한 군대의 집합체가 될 것이다. 따라서 이탈리아인의 용맹함으로 외부의 세력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군대를 양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스위스와 스페인의 보병은 매우 가공할 만한 위력을 지녔다고 하지만 이 둘에게도 결점이 있으므로, 이에 제3의 군대를 양성하여 그들을 저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을 타도하도록 해야 한다. 스페인 군대는 프랑스의 기병을 대항하지 못하고, 스위스 군대는 근접전에서 스페인 보병과 마주칠 때마다 겁에 질렸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은 이미 보았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로 전개될 것이다. 스페인 보병은 프랑스 기병을 막아낼 수 없고, 스위스 보병은 스페인 보병에게 패배하고 말 것이다. 비록 이 후자에 대한 완벽한 증거를 제시할 수 없지만, 스페인 보병이 스위스 보병과 같은 전술을 구사하던 독일군과 교전했던 라벤나 전투(1512년 4월)가 어느 정도 증거가 될 것이다.

스페인 보병은 민첩한 행동과 그들의 방패를 의지하여 독일군의 창 밑으로 깊숙이 들어가 위험을 피하면서 역공세를 취하니, 독일군은 이에 속수무동(束手無動)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신속한 기병대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들은 전멸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 두 보병대의 결점을 알고 있으므로, 새로운 체제로 군대를 조직하여 기병대에 대항할 수 있고 보병대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할 수가 있다. 이는 반드시 새로운 군대를 창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다만 기존의 군대를 이에 맞게 변형을 시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개선책들은 새로운 군주에게 명성과 권위를 안겨줄 것이다.

이탈리아가 마침내 자신이 고대하던 구원자를 만난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야만족으로 인해 수많은 고통에 시달렸던 그 모든 지방에서 그 구원자가 받을 사랑과 복수에 대한 갈망과 굳센 믿음과 헌신과 눈물은 가히 한마디로 설명될 수 없다. 어떠한 문이 그를 향해 닫힐 수 있겠는가? 어느 누가 그에게 복종을 거부할 수 있겠는가? 어느 이탈리아인이 그에 대한 경의를 포기할 수 있겠는가?

우리 모두에게 야만족의 잔혹한 폭정은 견딜 수 없는 악취를 뿜어대고 있다. 그러나 대인의 훌륭한 가문에서 이 임무를 수락하여 용기와 희망으로 이 정당한 원정 기획을 착수함으로써, 대인의 깃발 아래 우리의 조국의 품위가 드높여질 것이며, 대인의 지휘 아래 페트라르카가 읊었던 시구(詩句)가 실제로 입증될 수 있을 것이다. ‘흉포에 대항한 용맹이 전장을 누비니 / 전투는 순식간에 평정되었다 / 옛 로마의 용맹이 여전히 살아남아 / 이탈리아인의 가슴속에 자리 잡았네.’

본 도서요약본은 원본 도서의 주요 내용을 5% 정도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원본 도서에는 나머지 95%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보다 많은 정보와 내용은 원본 도서를 참조하시기 바라며, 본 도서요약본이 좋은 책을 고르는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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