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조건 성공하는 사업만 한다

비즈니스북스 / 2020년 9월 / 432쪽 / 18,000원

나는 무조건 성공하는 사업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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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조건 성공하는 사업만 한다

애덤 데이비드슨 지음

책소개

이 책은 뉴노멀 시대에 기존의 상식과 원칙을 뒤집고 새로운 성공의 법칙을 만든 사람들을 소개한다. 사업을 통해 부는 물론이고 인생의 재미와 의미까지,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사업가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구체적으로 사업 아이디어를 찾는 과정부터 타깃 설정, 가격 매기기, 판매 루트 찾기까지 실질적으로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는 내용들을 사례를 통해 자세하게 들려준다.

요약본 본문

MIT 교수가 된 운동화 장사꾼의 아들 - 사업의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 차이를 발견하다

괴짜 MIT 교수가 알려준 성공의 비밀

나는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경영서를 웬만하면 다 읽는 편인데, 그 도서들 중 평범한 사람들이 큰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은 극히 드물었다. 나는 누구라도 좋으니 현재와 같은 경제 상황에서 평범한 사람이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해주기를 바라며 경영대학원 교수에게 백번쯤 (아니, 천 번쯤) 전화를 걸었다가 허탕을 쳤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경영대학원 교수와 통화하다가 이런 대답을 들었다. “아, 그 문제라면 스콧이 잘 알 겁니다. 스콧과 얘길 해봐요.” 그래서 나는 ‘기술 혁신, 기업가정신, 전략경영 교수’라는 공식 직함을 가진 스콧 스턴을 만나러 MIT로 갔다.

스콧은 현재 몸담고 있는 분야에 상당히 많은 기여를 해왔다. 하지만 그가 가장 최근에 이루어낸 업적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공헌이고, 그것이 이 책의 기본적인 뼈대가 되었다. 스콧은 최근에 동료들과 함께 지금까지 주목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실행 가능성이 없다고 여겼던 기업가정신의 원칙을 밝혀냈다. 예로부터 기업가정신은 의지력, 대담성, 자본 동원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을 일으킬 수 있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진 복 받은 소수층에게 국한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스콧이 증명한 바에 따르면, 기업가정신도 수영처럼 시간과 노력을 들일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배워서 익힐 수 있는데, 그가 증명해낸 이 결론은 세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만한 대단한 발견이다.

스콧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그의 발견을 떠올리면 이런 의문이 든다.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신으라며 주었던 창피하기 짝이 없는 스트라이커 운동화가 없었다면, 과연 그가 기업가정신의 비밀을 풀 수 있었을까? 스콧이 중학생이던 1980년대에 그의 아버지는 신통치 못한 사업 계획을 세웠다. 한국 공장에서 생산한 약 1만 켤레의 운동화를 한 벌에 3달러라는 싼 가격으로 컨테이너째 구매해 롱아일랜드로 수입하면 순식간에 팔릴 것이라 확신한 것이다. 어쨌든 그 운동화는 나이키 같은 유명 브랜드 운동화를 생산하는 공장에서 만든 것이니 열 배의 값어치가 있다는 것이 당시에 그의 아버지가 내세운 주장이었다. 하지만 브랜드도 없는 초저가 운동화를 사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 운동화는 스콧의 집 차고에 사이즈별로 한 무더기씩 쌓이고 말았다. 이후 스콧과 형제들이 새 신발이 필요할 때마다 아버지에게 나이키나 아디다스를 사달라고 졸랐지만, 아버지는 차고에서 찾아 신으라고 했다.

아버지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MIT를 가다

스콧은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어가던 무렵부터 경영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뉴욕 대학교에 입학하여 경제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대학에 다니는 동안 스콧은 아버지에 대한 수수께끼의 해답을 찾지 못했다. 경제학 수업은 추상적이었다. 그래서 명문 스탠퍼드 대학교의 대학원에 합격했을 때 스콧은 부디 그곳에선 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고 불과 몇 주 후에 스탠퍼드 대학교가 있는 팔로알토 시에 온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스콧은 그 학교의 최연소 대학원생이었다. 스콧은 얼마 안 가서 자신이 다른 학생들에 비해 한참 뒤처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아무래도 대학원 공부를 접고 부모님이 계신 롱아일랜드로 돌아가 다른 진로를 찾아야 할 것 같았다. 스콧은 뒤숭숭한 마음에 기숙사 지하실로 빨래를 하러 내려갔다. 내려가 보니 같은 대학원생 조슈아 갠스가 있었다. 갠스는 똑똑하고 열정적인 호주 학생이었고 수학은 물론이고 그 밖의 전문적인 분야에 대해서도 막힘이 없었다. 스콧은 갠스에게 학교를 그만둘 생각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러자 훗날 스콧에게 평생의 지적 동반자이자 절친한 친구가 되는 갠스는 그동안 스콧을 지켜보며 자신이 느낀 점을 말해주었다.

스콧이 수업 중에 하는 얘기와 기숙사에 앉아 경제 문제에 대해 토론하던 모습을 관심 있게 봤다며, 자신은 미처 깨닫지 못했을지 몰라도 스콧에겐 경제 이론을 현실 세계와 연결 짓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갠스는 물론 수학을 잘하는 것이 경제학을 공부하는 데 유리하기는 하지만, 스콧이 가진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도 말해주었다. 대학원 공부에서는 애를 좀 먹겠지만 그런 중대하고 중요한 의문을 앞으로도 쭉 지켜간다면 사람들의 삶에 진정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거라며 격려까지 해주었다. 세탁실에서의 운명적인 대화 덕분에 스콧은 대학원 공부를 계속하기로 마음먹었다.

성공을 위한 최고의 도구는 전략이다

1970년에는 미국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1950년에 비해 훨씬 더 잘살게 되었다. 이렇게 보편적 경제 성장이 이루어진 덕분에 사람들 간의 차이를 비교하는 일은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런데 경제 번영의 결실을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던 호시절은 1970년대 말에 이르러 차츰 붕괴되었다. 스콧이 박사학위 논문을 마무리하던 무렵인 1996년이 되자 미국 (그리고 부유한 국가의) 사람들 중 특정한 사람들은 큰 부자가 되어 가는데 비해 상당히 많은 수의 사람들이 생활고를 겪고 있음을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불평등이 격화되던 이 시기에 경제학계는 그 격차를 좁히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이윽고 사람들 사이의 사소한 차이들이 매우 중요해졌다. 그런 차이들 중 어떤 것이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점점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콧이 20년에 걸쳐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서 성공한 사람들과 실패한 사람들을 연구한 결과,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결정적 차이는 바로 전략이었다. 그 밖의 모든 문제들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런 것들은 어디까지나 전술에 해당하며, 전술은 전략이 맞아야만 비로소 중요성을 띤다. ‘기업 전략’은 재계에서 꽤 새로운 개념에 속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급성장 시기에는 전략이란 게 거의 필요하지 않았다. 회사는 그저 뭔가를 팔기만 해도 대부분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다 세계 무역이 증가하고 컴퓨터 기술과 자동화로 경쟁이 심화하면서 기업들은 이전까지 해오던 방식을 고수하면서 사소한 변화만을 주는 식으로는 회사를 꾸려갈 수 없게 되었다. 이제는 자원을 어디에 투입하고 어떤 프로젝트를 폐기해야 할지 등의 문제를 놓고 신중하고도 까다로운 결정을 내려야 했기 때문이다.

전략적으로 가치를 창출하고 포착하라

2008년의 금융위기 이후 스콧은 그동안의 연구를 종합 평가하다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이 마이클 포터를 비롯한 여러 사람의 연구를 비교적 소규모의 사업과 기업가들의 관심사에 맞게 해석해 놓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드디어 전략을 도구화할 준비를 갖춘 셈이었다. 이제는 전략을 다른 수많은 사업 도구들처럼 누구든 배워서 활용할 수 있는 일련의 명확한 지침으로 바꾸어야 했는데, 이런 시도를 함께 해보면 좋을 만한 파트너가 누구인지도 분명했다. 오랜 벗이자 세탁실에서 만났던 똑똑한 수리경제학자 조슈아 갠스였다. 2년 동안 두 사람은 집중적으로 협력해서 작업을 진행했다.

스콧과 갠스의 개념들은 듣고 나면 두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된다. 두 사람의 아이디어가 모든 기업에서 반드시 따라야 할 만큼 좋은 개념이라는 사실과 현재 그 개념들을 따르고 있는 사람들이 전무하다시피 하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이 개념들은 지금 당신도 자신의 사업이나 직무에서 따르지 않고 있을 만큼 새로운 생각이다. 스콧과 갠스는 이런 개념들을 다음과 같이 4단계로 세분화해서 까다롭지만 중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볼 수 있게 구성했는데, 이 질문들은 (거의 모든 사업가들을 비롯해) 스콧의 아버지인 에이탄도 스스로에게 물어볼 생각을 해본 적이 없거나 기를 쓰고 회피했던 것들이다.

우선 1단계는 사업에서 가치 창출과 가치 포착을 이해하는 것이다. 누군가 성공을 노리고 사업을 시작한다고 생각해보자. 그 사람은 일종의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밀, 소금, 우유, 계란으로 빵을 만드는 식으로 원재료를 구입한 후 변형을 하거나, 회계나 낚시 가이드 같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어떤 과정을 통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그 이후엔 나름의 방식으로 그 가치를 포착한다. 말하자면 어떤 사람이 빵을 사거나 회계사에게 수표를 보내는 식으로 그 상품에 돈을 지불하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업들이 고전하는 이유는 대체로 자신들이 창출하고 있는 (혹은 창출해야 하는) 가치를 파악하지 못하거나 자신들이 창출해낸 가치를 잘 포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에이탄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에이탄은 낮은 가격으로 품질 좋은 운동화를 생산해서 가치를 창출했다. 하지만 이렇게 창출한 가치를 원하는 고객층이 거의 없었다. (1980년대에는 더 심했지만) 운동화 구매자들은 최대한 싼 가격으로 실용적인 신발을 사고 싶어 한 게 아니었다. 우월감과 흥분감을 추구하면서 정체성을 부여해줄 만한 브랜드 제품을 사고 싶어 했다. 100달러를 지불하더라도 나이키 운동화를 사고 싶어 했지, 저렴하다고 해서 12달러의 스트라이커 운동화를 사고 싶어 하진 않았다.

에이탄은 가치를 가장 잘 포착해내는 요령에 대해서도 오판을 내렸다. 당시는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이었고 지금보다 대형 할인매장의 수가 훨씬 적어서 대부분의 신발이 소형 신발매장에서 판매되었다. 소형 매장의 주인들은 이윤도 얼마 되지 않는 저가의 신발을 팔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나이키는 마케팅 이외에 유통에서도 통찰력 있는 노하우를 개발했다. 신발을 판매하는 이들의 성향을 분석해 나이키 제품을 팔도록 그들을 자극할 수 있는 최적의 동기 유발 요인을 찾아낸 것이다.

시장조사는 고객을 발견하는 것

두 번째 단계는 고객층을 선택하는 것이다. 고객들은 저마다 관심사가 다르고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필요의 정도도 다르다. 그러므로 사업을 할 때에는 희망 고객층을 구분해내야 하고, 그 사업을 유지할 수 있는 자금을 확보할 정도의 충분한 수요 고객층을 찾아내야 한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시장조사가 필요하다. 시장조사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쉬울 수도 있다. 우선 이상적 고객층을 가정해보면 된다. 당신의 상품이나 서비스의 진가를 가장 잘 알아봐주고 가장 유용하게 사용해줄 만한 사람이나 사업을 상상해보라. 그런 다음 그 특징과 일치하는 사람들을 찾아내서 그들에게 당신의 아이디어를 어떻게 생각하고 당신의 경쟁 상대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물어보는 것이다. 또 스콧은 당신이 생각한 고객층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 대략적으로 추정해보는 것도 권한다.

스콧은 대다수 사람들이 세 번째 단계인 경쟁 상대 정하기에서 혼돈을 겪는다고 말한다. 경쟁 상대를 정할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스콧에 따르면 모든 회사는 자사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시장에 내놓는 방법에서 다양한 선택안을 갖고 있다. 다시 에이탄을 예로 들어보자. 에이탄은 나이키를 중심에 두고 전체적인 사업의 틀을 짰다. 운동화 디자인도 살짝 나이키 운동화와 비슷해 보이게 했고, 나이키가 이용했던 똑같은 공장에 운동화 제작을 의뢰하며 나이키를 경쟁상대로 생각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에이탄의 운동화를 싸구려 나이키 짝퉁쯤으로 보게 되었다. 하지만 누가 싸구려 나이키 짝퉁을 사고 싶어 하겠는가. 에이탄은 다른 경쟁 상대를 선택하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품질이 형편없는 염가의 운동화 제조사들을 경쟁상대로 정해 놓고, 자신의 상품이 그런 저급 상품들에 비해 내구성이나 스타일, 기능면에서 더 뛰어나다는 점을 내세울 수도 있었다. 그런 경쟁 상대를 골라 저가의 운동화 시장에서 한몫 잡는 사업 방식을 구상했다면, 이후에 내릴 선택들도 더 쉽게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그랬다면 저이윤 및 박리다매 사업 전략의 필요성도 알아봤을 것이다.

가치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자신의 재능과 약점, 당신이 창출하려는 가치의 유형, 경쟁하려는 상대 등 전반적 전략을 파악하고 나면, 그다음엔 네 번째 단계로서 고객에게 그 가치를 전달할 구체적 방법에 집중하면 된다. 손으로 직접 짠 스웨터를 농산물 집판장에서 팔 계획이라면 구매자들과 직접 대면해서 팔면 된다. 하지만 대다수 사업은 가치사슬을 통해 이루어지므로 가치사슬의 작동 원리에 정통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통해 스웨터의 가치사슬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지역 매장에 상품을 배급해주는 도매업자와 거래할 것인가? 아니면 지역 매장이나 최종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할 것인가? 낱개로 팔 것인가, 묶음으로 팔 것인가? 상품의 크기와 모양은 몇 종류로 구성해 출시할 계획인가? 스콧이 사업가들에게 권하는 조언은 무엇을 누구에게 팔지를 고민하는 만큼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할 방법에 대해서도 충분한 시간을 할애해서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를 내다보는 이들에게 주목하라

이 책에서는 현재에서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들을 만나보며 배움을 얻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내가 찾아낸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교훈이 담긴 인생사를 써온 사람들이다. 다만 이들의 교훈을 길잡이 삼아 잘 따라갈 수 있도록 준비하는 차원에서 우선 새로운 경제의 규칙부터 이야기해보자.

비즈니스 불패의 법칙 - 고객ㆍ가격ㆍ제품의 정의를 다시 내려라

남들이 모방할 수 없는 가치를 창출하라

현대 경제에서는 상상을 뛰어넘는 규모로 상품을 판매하고 유통하는 것, 다시 말해 엄청난 규모로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것은 웹사이트에서 상품을 판매하거나 트위터를 활용해 구매자를 확보하는 것만큼 간단한 일이다. 하지만 가치를 창출할 때는, 즉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만들어낼 때는 규모에 승부를 걸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대규모로 상품을 생산해서 수익을 내는 것은 대기업에서나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자기주장이 아주 강한 소수의 고객층이 관심을 보일만한 분야나 다른 사람들은 하기 힘든 분야에 집중해야만 수익성이 있다.

제공하는 가치에 따라 가격을 결정하라

가격이 비용을 주도해야 하며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흔히 우리는 상품의 가격을 그것을 제작하는 데 드는 비용과 연결 지어 생각하도록 길들여져 있다. 하지만 이와는 정반대로 해야 한다. 고급 자동차를 만든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자동차 제작에 사용할 소재를 선정하기 전에 먼저 특정 수준의 고급 자동차에 대해 사람들이 기꺼이 지불하려고 하는 가격대가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그 가격대에 합당한 비용에 맞추어 자동차의 소재를 역설계해야 한다. 따라서 가격을 시세대로 책정해서는 안 된다. 시세에 따라 가격을 결정한다는 것은 당신이 판매하는 상품이 다른 경쟁자가 판매하는 상품에 비해 더 뛰어나지도 더 나쁘지도 않은 그저 그런 제품이라는 의미다. 상품에는 독보성이 있어야 한다. 특히 서비스 상품일수록 더욱 그래야 한다.

가격 책정의 3단계 법칙

제시 가격은 제공하는 서비스와 상품이 변하지 않는 한 변경해선 안 된다. 그리고 어떤 경우든 애초에 3단계의 가격대를 제시하는 것이 유리하다. 고객이 필요로 하는 특정 범위의 서비스에 대해 적당하게 느껴지는 중간 가격대, 서비스의 일부를 제외하되 더 낮은 가격의 이점을 부여한 저가 가격대, 더 높은 가격으로 훨씬 많은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고가 가격대로 나눠 제시하는 것이 좋다. 3단계 가격대는 고객과의 가격 책정을 위해 대화를 나눌 때 하나의 기준으로 작용하며, 이 기준을 바탕으로 고객에게 지불액을 낮추고 싶다면 그만큼 받는 서비스도 줄어들게 된다는 점을 알려주게 된다.

열정은 한 편의 이야기다 / 기술에 연연하기보다 틈새시장에 집중하라

가치는 물건이 아니다. 금속이나 플라스틱이나 유리 같은 물질적 대상이 아니다. 가치는 기간도 아니다. 전문가가 어떤 업무를 성취하는 데 들인 노력을 시간으로 계산하지 않는다. 가치는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가 어떤 사람의 삶을 얼마나 향상시켜주는가에 대한 주관적 평가다. 말하자면 가치는 한 편의 이야기이며 좋은 이야기가 모두 그렇듯 등장인물, 줄거리, 완성도와 더불어 약간의 극적 효과가 필요할 수도 있다. 이는 지극히 단조로운 구매의 경우라도 마찬가지다. 한편 사업에서 성공하려면 대기업의 막강한 힘을 인정하되 직접 경쟁을 피해야 한다. 핵심 고객이 당신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더 규모가 큰 경쟁 업체의 상품이나 서비스와 다르지 않다고 느끼면 변화를 주어 차별을 꾀해야 한다.

자신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에 집중하라

판매에서의 핵심은 당신이 제공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고객에게 실질적 가치가 잘 전달되게 하는 것이다. 기존의 일괄적 전달 방식이 아니라 핵심적인 부가가치 창출에 초점을 맞추면 새로운 방식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전혀 다른 유형의 사업을 만들 수 있다. 가치 포착에는 끊임없이 변화를 주되, 가치 창출에서의 변화는 더디게 해야 한다. 가치 포착은 수단에 불과하며 수단은 뭐든 가장 빠르고 가장 쉬운 것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가치 창출은 사업의 핵심이다. 소중히 다루고 보살피면서 아주 천천히 그리고 아주 신중하게 변화시켜야 한다.

일용품을 판다고 생각하지 마라

일용품은 남들이 모방하고 복제하기 쉬운 차별성 없는 상품이다. 일반 비누가 바로 일용품이다. 그런 면에서는 출근길에 들르는 세탁소나 길가의 이발소도 마찬가지다. 일용품 사업은 가격 수용자(시장 지배력을 가지고 있지 못해 가격 결정력이 없는 시장 참여자)라서 얼마가 되었든 시장가격에 따라 가격을 책정해야 한다. 성공하는 사업에서는 절대로 일용품을 상품으로 다루지 않아야 한다. 성공의 본질은 남들과의 차별화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며 독자적 가격을 책정하는 것이다.

브러시가 보여준 미국 경제의 변화 과정 - 변화의 타이밍을 잡은 기업과 놓친 기업은 무엇이 다른가?

얼마 전부터 나는 영감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선반에 우유병 세척용 브러시를 놓아두었다. 나에게 이 브러시는 무언가를 세척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가끔씩 그 브러시를 쳐다보면서 나는 새로운 세계에서 경제가 변화하는 양상과 성공법에 대해 터득한 중요한 교훈을 되새긴다. 이 책의 핵심적인 교훈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이 브러시는 21세기의 기업을 끄는 19세기형 브러시라고 말할 만하다. 이 브러시의 가격은 41달러 20센트, 제품명은 ‘9075P 브라운 쿼트 보틀 브러시’로 롱아일랜드 소재의 가업 기업인 브라운 브러시의 사장 랜스 체니에게 선물 받은 것이다. 1875년에 창립된 브러시 전문 제조업체인 브라운 브러시의 설립자인 랜스 체니의 증조부 엠마뉴엘 브라운은 1865년에 14살의 나이로 독일에서 뉴욕으로 건너온 이민자였다. 브라운은 일자리를 찾아 헤맨 끝에 브루클린의 낙농장에서 임시직으로 우유병을 세척하는 일을 하게 되었는데, 막상 해보니 우유병 세척은 구역질나는 일이었다. 청년 브라운은 무엇이든 뚝딱뚝딱 만들어 쓰기를 좋아하는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살려 낙농장의 유리병을 세척하면서 겪는 고충을 해결해줄 수 있는 브러시를 만들기 위해 이리저리 궁리했다.

당시만 해도 브러시를 만들 때는 브러시의 머리 부분에 여러 개의 구멍을 뚫은 다음 그 구멍에 털을 끼워 넣고 구멍 사이의 공간에 접착제를 잔뜩 채워 넣는 방식을 썼다. 이런 식으로 브러시를 만들려면 브러시의 머리 부분이 넓을 수밖에 없었고 병 입구에 브러시를 넣는다는 건 불가능했다. 브라운은 몇 년 동안 실험을 계속한 끝에 마침내 기발한 대안을 찾아냈다. 센 강모에 긴 철사를 칭칭 감은 다음 그 철사를 목재 손잡이의 홈에 고정시키는 것이었다. 이 방법으로 브라운은 우유병 세척에 혁신을 일으켰다. 한 시간에 수십 개의 병을 닦는 것은 물론이고 훨씬 더 깨끗하게 병을 닦을 수도 있었다.

브러시 하나로 낙농업계의 혁신을 일으키다 / 일용품 브러시 시장에 닥친 위기

브라운의 해결책은 성공하는 사업의 첫 번째 규칙, 즉 자신의 관심사와 열정을 찾아내는 것의 이상적인 사례다. 브라운은 한정된 영역의 문제점에 대해 해결책을 모색했다. 그리고 온종일 우유병을 닦는 사람만이 착안해낼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았다. 그러다 브러시의 재료로 쓸 만한 여러 종류의 털과 손잡이에 해박한 지식을 갖게 되었다. 문제점을 파악해 해결책을 찾으며 그 분야의 독자적인 전문성을 갖춘 것이다. 하지만 브라운의 전문성을 확장할 방법이 없었다. 당시에는 브루클린에 사는 발명가가 미국 전역과 전 세계 낙농업계에 자신이 새로 개발한 상품을 알릴 길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브라운은 우유병을 세척하는 일을 그만두고 브라운 브러시를 창업했다. 그런 다음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브러시를 홍보했다. 발품을 팔아 브루클린 전역의 낙농장 수백 곳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발명품을 시연해 보인 것이다. 그렇게 주문을 받으며 낡은 헛간 한 채를 장만할 밑천을 마련한 브라운은 헛간을 개조하여 소박한 브러시 제조 공장을 만들었다. 브라운의 열정은 주로 지역 장인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경제에 딱 들어맞았다.

브라운의 아들 앨버트 브라운은 아버지의 성공을 정교하게 다듬어 한층 더 발전시켰다. 앨버트는 브러시의 세 가지 구성요소인 손잡이, 털, 접합체를 잘 조합하면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유용한 브러시를 개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후 앨버트는 낙농장용 브러시, 제빵용 브러시, 공장 조립 라인에서 나온 부품 분류용 브러시, 차량 바퀴 세척용 브러시 등 다양한 용도의 브러시를 개발했다.

앨버트는 1950년대 초에 사위인 맥스 체니에게 사업을 물려주었는데, 이 무렵 장인정신을 가지고 실험을 하는 사업 방식의 효용성이 떨어질 만한 기업 환경이 만들어졌다. 미국 경제의 활동망이 점차 전국적으로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로 인해 브라운 브러시는 모든 제품을 이제 미국 전역의 낙농장, 제과점, 소방서에까지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체계에 적응하려면 기존의 사업 방식을 바꿔야 했다. 브라운 브러시는 두 세대 동안 특수한 용도의 다양한 전용 브러시를 생산하는 데 주력해왔다. 하지만 이제 자사의 제품 중 가장 실용성이 뛰어난 브러시를 선정한 다음, 최대한 많은 수량을 생산해 미국 전역에 배급할 방법을 생각해내야 했다. 상품화를 결정한 셈이었다.

이 회사의 현재 CEO인 랜스 체니는 젊은 시절이던 1980년대에 브라운 브러시에 입사했는데, 입사 초기 그에게 회사생활은 못 견딜 만큼 지루했다. 하루하루가 똑같았다. 랜스는 이런저런 꿈을 펼치겠다며 회사를 몇 번이나 그만두기도 했고, 한번은 조각가가 되려고 학교에 들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본인도 인증했듯이 그는 꿈을 이루기에는 너무 게으르고 집중력도 부족했다. 결국 랜스는 아버지 곁으로 돌아왔고, 그때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일자리를 내주었다. 1990년대 들어서며 랜스는 마음을 잡고 아버지의 사업을 거들었지만, 일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은 여전했다.

한편 맥스와 랜스 부자는 자주 점심을 함께 먹으며 사업 문제를 논의하고 상품의 수량을 점검했고 때로는 인생에 대한 대화도 나누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이렇게 친밀하게 지내기는 했지만 한 가지 해결하지 못한 갈등도 있었다. 랜스는 매일같이 아버지에게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건의했다. 새로운 종류의 브러시 개발에 주력하면서 문제점을 해결하고 브러시를 하나의 예술로 여기던 초기의 사업 방식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웃어넘기며 아들의 말을 무시하곤 했다.

그러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중국이 어마어마한 물량의 브러시를 미국으로 수출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중국산 브러시의 품질은 불량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품질이 점점 향상되는가 싶더니 어느새 특수 브러시 시장까지 진출하기 시작했다. 랜스는 아버지와 점심을 먹으며 대화를 하던 중에 중국이 곧 자신들을 추격할지 모른다며 우려의 말을 꺼냈다. 맥스는 이번에도 웃어넘겼다. 하지만 2002년에 중국에서 브라운 브러시가 생산하는 종류의 브러시까지 생산하기 시작했다. 중국산 브러시는 가격이 훨씬 저렴한 데다 품질 면에서도 브라운 브러시의 제품에 거의 맞먹는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랜스는 이러다가는 어느 날 갑자기 파산하는 게 아닐지 걱정스러웠다.

컴퓨터가 알려준 위기의 징조

랜스는 1988년 초 우연히 IBM의 신형 컴퓨터 광고를 보게 되었고, 이후 친구에게 도움을 얻어 스프레드시트를 작성해 아버지에게 보여주며 전국에 있는 브라운 브러시의 모든 잠재 고객에게 카탈로그를 발송하는 데 컴퓨터가 유용할 거라고 설명했다. 랜스의 설명을 들은 맥스도 결국 컴퓨터를 도입하는 데 동의했다. 컴퓨터를 활용하면서 브라운 브러시의 사업 체계는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전산화하기 전까지 맥스의 장부에서 고객의 정보를 찾고 정리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었다. 하지만 컴퓨터를 활용해 업계별로 모든 업체 정보를 저장해 새로운 업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자 이내 문제점이 파악되었다. 다른 브러시 제조업체들이 같은 종류의 브러시를 점점 더 낮은 가격으로 판매하고 브라운 브러시의 장기 고객층이 더 좋은 구매 조건에 따라 거래처를 바꾸면서 판매가 줄어드는 추세가 드러난 것이다. 중국산 저가 브러시가 밀어닥치는 상황까지 감안하면 설상가상인 셈이었다.

1988년부터 2002년까지 오랜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랜스와 맥스는 브라운 브러시에 대해서 그리고 기술과 무역 시대의 미국 경제에 대해 서서히 견해차가 벌어지게 되었다. 두 사람은 각자 자기 세대의 견해에 부합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전후 세대로서 미국이 자국의 상품으로 전 세계 시장을 석권하다시피 했던 시절에 성장기를 보낸 맥스는 사업 성공의 열쇠가 판매, 즉 양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실제로 그 당시에 대다수 사업은 상품화된 경제에 충실히 따르는 방식으로 성공을 거뒀다. 모험을 하기보다는 안전을 기하며 똑같은 상품을 지속적으로 팔아야 성공할 수 있었다.

랜스는 어떻게든 제품을 팔고 보자는 맥스의 경영 방식에 자주 짜증이 났다. 새로 마련한 컴퓨터를 활용해 검토해보니 사업 노선 전체에서 수익이 나는 게 아니었고, 특정 브러시 제품은 수백만 개를 팔아도 겨우 수익을 내는 수준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정권은 사장인 맥스에게 있었다. 맥스는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던 날까지 적극적으로 회사의 리더 역할을 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랜스는 아버지의 서류를 정리하고 나서 공장으로 복귀해 즉시 일에 착수했다. 우선 영업사원을 모두 불러 모아 이제부터는 단일 상품의 브러시를 판매하며 저가의 중국산 수입품과 직접 경쟁하지 않을 것이라는 구상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브라운 브러시는 박리다매식 경쟁을 접으면서 랜스의 증조부가 그랬던 것처럼 가치를 제공하는 것으로 승부를 걸게 되었다.

나사와 원자력 발전소를 위한 브러시를 만들다

랜스는 브라운 브러시의 주된 제품을 저렴한 일상용 브러시에서 특수 브러시로 전환하는 작업에 착수했는데, 어느 날 원자력 발전소의 검수자에게서 전화가 걸려와 냉각 탱크의 바닥에 철 스테이플 여러 개가 깔려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 작은 철 스테이플이 발전소의 시설 내부로 흘러들기라도 하면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다. 어떻게 냉각 탱크 안에 그런 물질이 들어갈 수 있었는지 파악해본 결과, 그 스테이플은 검수자가 사용하던 브러시에서 빠진 것이었다. 랜스는 이 의뢰를 받은 후 증조부가 우유병을 세척하기 위해 개발했던 브러시의 기본 디자인을 본떴다. 털이 중심대와 분리되지 않는 일체형 구조의 브러시를 만들어 털이 절대로 빠지지 않게 했다. 뿐만 아니라 스테이플을 전혀 쓰지 않아 냉각 탱크에 스테이플이 빠질 염려도 없게 했다. 랜스는 이렇게 만든 브러시 몇 개를 원자력 발전소로 직접 가져가 다양한 테스트를 거쳤고 안정성을 검증받았다.

현재 이 브러시는 전 세계의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용되고 있고, 브라운 브러시는 이 브러시로 해마다 수백만 달러의 이익을 내고 있다. 이 브러시의 원재료 비용은 12달러 정도에 불과하지만 랜스는 여기에 큰 폭의 이윤을 붙여 판매하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의 사업가들이 지향해야 할 목표다. 상품 제작에 들어가는 원재료가 아니라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치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상품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랜스는 이제 주문제작용 브러시 전문가로 등극하며 수많은 중요한 특수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미국항공우주국 나사의 의뢰로 완수한 프로젝트에 특히 자부심이 크다.

아버지에게 회사의 판매 전략을 바꾸자고 조르던 지난 시절 랜스의 생각은 맞았다. 어떤 회사나 개인이 직면한 최대 난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해줄 브러시를 제작하면 생산 수량이 크게 줄어도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이런 브러시에 수천 달러를 청구하는 경우도 많은데 고객들은 기꺼이 그 돈을 지불한다. 그 브러시가 가격보다 훨씬 더 큰돈을 아껴주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랜스는 1만 5,000종의 브러시를 생산하며 30명의 브러시 직공,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브러시 장인을 거느리고 있다. 그리고 소수 고객층의 특별한 필요성에 따라 주문, 제작된 여러 가지의 독자적 브러시를 판매하고 있다.

사업 얘기를 할 때면 랜스가 이 일을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확연히 드러난다. 브러시는 랜스가 필연적으로 열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분야가 아니었을까? 랜스는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좋아하며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 역시 그에 못지않게 좋아한다. 랜스는 평생 예술가로 살거나 특수 섬유 제작자가 되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브러시 제조업체의 집안에 태어나 브러시 공장을 물려받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핵심 역량을 사업과 융합시킬 방법을 찾아냈다.

뉴노멀 시대, 새로운 성공 공식

나는 브라운 브러시를 21세기의 성공법을 잘 보여주는 귀감이라고 여긴다. 이제는 현대 기술, 그중에서도 컴퓨터와 인터넷 덕분에 자신의 특별한 열정과 지식을 그 열정과 지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연결시키는 일이 가능해졌다. 이런 연결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며 이때의 전략은 산업이나 사업, 사람에 따라 서로 다른 특징이 있기 때문에 조율이 필요하다. 바로 이 점이 이 책에서 전하려는 핵심 교훈이기도 하다. 20세기의 안전하고 유리한 성공 전략은 가능한 한 남들과 똑같아지는 것이었다. 반면 21세기에는 온전한 자신이 되어 남들과 다른 당신만의 영역을 부각하는 것이 최상의 전략이다.

연필 한 자루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다 - 당신 사업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무엇인가?

21세기에 성공을 거두기 위한 가장 중요한 규칙을 우연히 알게 된 것은 손에 2B 연필을 쥔 채로 그 연필을 만든 사람에게 그 연필의 특별한 역사에 대해 듣고 있던 중이었다. 처음에 그 연필은 평범해 보였다. 노란색의 육각형 모양에 끝에 달린 연핑크색 지우개를 글자가 찍힌 쇠테가 감싸고 있었다. 1970년대에 썼던 2B 연필과 똑같았다. 겉으로 보기에 이 연필의 차이점은 딱 하나, 당황스러울 정도로 비싼 가격뿐이었다. 한 자루의 가격이 매장에서 비슷한 연필 한 세트를 살 만한 가격이었다. 하지만 비싼 가격에도 그 연필은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제품명 ‘제너럴 펜슬 세미-헥스 No. 2’

연필은 일용품이라 경제학계에서 말하는 ‘일물일가의 법칙’, 즉 동일 상품은 같은 가격대로 책정되어야 한다는 원칙에 딱 맞는 사례다. 게다가 연필은 그 자체로 어느 정도는 시대에 뒤진 기술이 되었다.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판을 두드려 글을 쓴다. 제너럴 펜슬은 어떻게 아직까지도 건재한 걸까? 나는 이 의문의 답을 찾게 되었는데, 이 규칙은 제조업체에 해당되는 것이지만, 은행가나 예술가, 대기업의 중간 관리자들도 활용할 수 있다. 원칙은 간단하다. 일용품이 되지 말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동일한 기량과 동일한 이력을 갖춘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비교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레드오션에도 구멍은 있다

지금까지도 뉴저지주에서 여전히 필기도구를 생산 중인 제너럴 펜슬의 출발은 유럽의 중세시대 말기까지 거슬러간다. 에드워드 바이젠본이 독일의 라인바흐에서 태어났던 1823년에도 연필 제조는 오래된 기술이었다. 바이젠본은 독일에서 청년 시절을 보내면서 세계 최초의 공장형 연필제조사 렌바흐 리드 펜슬 컴퍼니에 들어가서 일했다. 그 후 엔지니어링 부서에서 일을 잘하는 조수로 인정받아 흑연을 갈고 나무의 모양을 잡아 연필 완성품을 생산하는 새로운 기계의 개발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렌바흐 가문의 가족이 아니었던 바이젠본은 아직도 귀족제의 잔재가 남아 있는 나라에서 출세할 가망이 없다는 현실을 절감했다. 결국 바이젠본도 미국으로 건너갔다. 1860년대이던 당시에 바이젠본이 미국에서 처음으로 맡았던 작업은 남북전쟁에서 전투용으로 의뢰받은 전함 USS 모니터호의 설계와 건조를 지원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 일로 꽤 돈을 번 덕분에 저지시티에 연필 공장을 세울 수 있었다.

바이젠본은 저렴한 비용으로 빠르게 연필을 생산해낼 수 있는 자동화 기계, 가루로 만든 흑연을 진흙 등의 첨가물과 섞어주는 대형 혼합기, 이렇게 섞인 재료를 연필심으로 구워주는 공업용 가마, 삼나무 널빤지에 흑연 연필심 끼울 홈을 파주는 기계, 이 널빤지를 육각형 모양의 연필자루로 만들어줄 기계 등을 개발했다. 그리고 바이젠본은 수완을 발휘해 자신이 만든 연필을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인들의 손에 쥐어지도록 했다. 그리고 이 정치인들을 통해 자신의 연필이 손으로 만드는 구식 연필보다 훨씬 더 일률적이고 안정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려 했다(이것은 19세기의 ‘인플루언서’ 활용 마케팅이었다). 결국 에이브러햄 링컨 내각의 관료 네 명, 뉴욕 시장 그리고 뉴욕 주지사로부터 편지를 받아 그 편지를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게 되었다. 제너럴 펜슬은 노란색을 주요한 색으로 채택했고 1890년대에 이르면서 노란색은 고급 연필의 보편적 상징으로 떠올랐다.

이후 제너럴 펜슬이 바이젠본의 아들에 이어 손자에게까지 상속되는 사이에 미국 경제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대대적 규모의 일괄처리가 발전하면서 규모의 경제에 들어선 것이다. 상당수 미국인에게 20세기는 황금기였다. 기업들은 더 저렴하게 물건을 만들면서 더 성장하고 더 부유해졌다. 또 미국인의 문맹률이 낮아지고 이전 시대보다 학교 교육을 더 오래 받으면서 더 많은 연필이 필요해졌다. 이런 추세에 따라 연필에 대한 수요가 어마어마하게 증가했다. 제너럴 펜슬은 여러 교육구로부터 워낙 많은 양의 주문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더 이상 혁신을 추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바이젠본은 1890년대까지 회사를 운영했고 이후엔 아들 중 한 명인 오스카가 물려받아 1927년까지 회사를 책임지다가 오스카 주니어에게 경영권을 넘겨주었다. 이후 1979년에 제너럴 펜슬의 4세대 경영주 짐이 회사를 맡아 증조부가 창립했던 당시와 별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상황이 뒤집힌 것은 1990년대에 격변이 닥치면서부터였다. 그 무렵 뉴어크 항구로 배들이 중국산 연필이 그득 담긴 대형 컨테이너를 싣고 들어왔다. 중국산 연필은 외관상으로 제너럴 펜슬의 연필과 똑같았다. 하지만 한 가지 큰 차이점이 있었는데, 가격이 제너럴 펜슬의 연필 가격의 몇 분의 1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짐은 100년에 걸쳐 쌓여온 전국 교육구들과의 관계를 순식간에 잃고 말았다.

짐의 딸 케이티는 어느 날 미술용품을 사러 갔다가 그 가게에는 싸구려 연필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2자루에 1달러짜리 중국산 연필뿐이었는데, 그런 연필을 보고 있는 것이 싫었다. 그런 연필 때문에 가족의 사업이 어려워지기도 했지만, 흑연에 수준 이하의 재료를 섞어 넣어 심이 약하고 흑심이 일직선이 되지도 않았다. 둘러보니 중국산 연필 이외에 유일한 대안은 독일에서 과학적으로 설계된 전문가용 드로잉 연필뿐이었는데, 가격이 한 자루에 2달러가 넘었다.

그 순간 케이티는 미국 연필 시장의 큰 구멍을 발견해냈다는 느낌을 받았다. 단단하고 신뢰성 있는 품질의 드로잉 기구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자신 하나뿐일 리가 없었다. 중국산과 독일산의 두 극단적 선택 사이 중간쯤에 위치할 만한 연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또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부모들은 아이들을 위해 맞춤 생산된 연필이 나오면 가격이 비싸도 기꺼이 지갑을 열 것 같았다. 케이티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기업을 구제해줄 만한 아이디어가 생각났다고 말했다.

케이티는 마침내 자신의 드로잉 지침서와 드로잉 용품으로 구성된 세트 상품을 제작했다. 색연필로 구성된 세트, 기량을 키우고 싶어 하는 고등학생용의 목탄 연필 세트도 있었다. 세트 상품의 대다수에는 노란색의 ‘제너럴 펜슬 세미-헥스 No. 2’가 포함되었다. 케이티가 공략 고객층에 맞춰 기획한 세트 상품들은 경쟁을 할 필요가 없었다. 중국에서 생산한 연필을 컨테이너로 운송해 오는 기업들은 그런 틈새시장에 신경 쓰기에는 너무 규모가 컸다. 그들은 여전히 일용품의 판매에 만족하고 있었다. 독일 기업들은 전문가용 연필의 명성을 유지해야 해서 아이들에게 초점을 맞추다가 브랜드 이미지가 희석되는 것을 꺼렸다. 이것이 케이티가 연필 가격을 개당 1달러로 책정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연필 한 자루에도 특별한 가치를 담아라

나는 급변하는 세계 경제 속에서 성공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묻는 질문에 받을 때마다 ‘연필업계에 닥친 시험’을 떠올리게 된다. 단순한 2B 연필만큼 일용품화되고 쉽게 복제 가능한 상품도 없다. 하지만 제너럴 펜슬은 일용품 경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명백한 필요성을 가진 특정 고객층을 찾아내 그 고객층의 필요성을 철저히 충족시킴으로써 성공을 거둬 수익을 낼 수 있었다. 미국의 거의 모든 기업과 직장인은 이런저런 면에서 연필업계에 닥친 시험과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떤 기업과 직장인은 일용품으로 머물러 있기도 하고, 어떤 기업과 직장인은 특정 대상을 위해 일용품들은 해줄 수 없는 부가가치를 창출하기도 한다. 이제 일용품은 빠르고 저렴한 가격으로 전 세계에 유통되고 있고, 이 사업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최첨단 기술 개발, 전 세계적 무역망을 갖추어야 한다. 대다수 사람들은 이런 자원을 갖추고 있지 않다. 따라서 일용품 게임에서 완전히 탈피해야 한다. 그 가격을 기꺼이 지불할 특정 고객을 공락해 일용품 가격에 가치를 더 부여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본 도서요약본은 원본 도서의 주요 내용을 5% 정도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원본 도서에는 나머지 95%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보다 많은 정보와 내용은 원본 도서를 참조하시기 바라며, 본 도서요약본이 좋은 책을 고르는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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