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보는 법을 잊어버린 나에게

나무와열매 / 2020년 10월 / 196쪽 / 13,500원

나를 돌보는 법을 잊어버린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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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돌보는 법을 잊어버린 나에게

장재희 지음

저자 소개

남을 돌보는 사람에서 나를 돌보는 사람이 되어가는 간호사이자 티 소믈리에.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병원의 임상 간호사로 근무하던 중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과 예방적 간호에 대한 호기심으로 대학원에서 향장학을 전공했다. 학교, 회사, 병원의 다양한 분야에서 간호사로 활동하다가 번아웃을 경험했다.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 나를 보는 연습을 시작했다. 나를 보는 연습을 통해 아픔을 치유하고, 삶을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었다. 번 아웃된 나를 돌보는 법과 삶이 점점 더 좋아지는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글을 썼다.

책소개

이 책은 채워도 채울 수 없는 ‘껍데기의 나’에서 벗어나 자기 사랑에 메마른 ‘진정한 나’를 만나는 저자의 경험을 통해 독자들에게 내면의 위로와 자신감을 갖게 해 준다. 그리고 내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항상 나와 대화하고, 꾸준히 나를 보는 연습으로 ‘진정한 나’로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나눈다.

요약본 본문

채워도 채울 수 없는 ‘껍데기의 나’

암을 통해 앎을 배울 때

사회에서 새로운 걸 찾으려 주위를 두리번거릴 때면 곧 나는 분주해졌다. 익숙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할 때면 느낄 수 있는 두근대는 흥분감이 좋았다. 곧 그 흥분은 활력으로 변해 나를 활기차게 만들어주었다. 그래야 내가 살아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문제는 새로움에 익숙해지고 나면 그 활력이 오래 가지 않는다는 거였다. 익숙해진다는 것, 그것은 그 당시 나에겐 정체되는 일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자유롭기 위해 병원을 벗어나 학교와 회사에서 스스로 헤쳐나가는 것에 조금씩 지쳐갔다. 그러면서 내 안에서는 변화보다 안주하고 싶은 욕구가 올라왔다. 앞으로 나가려 할 때마다 뒷걸음치게 되고, 의욕적으로 힘을 내다가도 적당히 살고 싶은 마음이 찾아왔다. 그리고 많은 걸 도전하기 보다 더 이상 애쓰고 싶지 않았다. 그 욕구에 따라 나는 다시 병원이라는 조직과 간호사라는 역할을 선택하고, C병원 간호사로 돌아왔다.

이곳에서 내가 맡은 업무는 암 환자를 상담하고, 진료를 지원하는 일이었다. 다시 임상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도전적인 꿈보다 안정적인 현실을 택한 나에게 적잖이 실망했다. 하지만 그동안의 경험이 쌓여서인지 간호사의 사명을 재인식하게 되었고, 그 후로부터 환자와 보호자를 만나게 되면 이전에 환자를 만났을 때와는 다른 시선으로 환자를 바라보게 되었다.

진료를 위해 환자가 준비해 온 투병 기록을 보면서 의무 기록 두께만큼 환자가 겪어 온 시간이 느껴졌다. 환자를 볼 때마다 어제 일처럼 생생한 아빠의 투병 생활이 다시 떠오를 때면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나의 아픔은 흐르지 않고 그대로 멈춰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함께 온 가족을 볼 때면 이전에 아빠 옆에 있었던 엄마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가족 중에 환자가 생기면 그 위주로 가정이 돌아간다. 물론 제일 힘든 사람이 환자이긴 하지만 가족도 힘들다는 걸 알기에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보호자의 아픔도 보였다. 나는 환자가 원활하게 진료를 마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우선이었지만, 환자가 암을 진단받기 전에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것에 영향을 받아 몸이 아프게 되었는지, 지금 마음은 어떤지 궁금해졌다.

상담실과 진료실은 매일 나에게 앎을 주는 공간이 되었다. 상담실에 매일 다른 환자와 보호자가 내 앞에 앉아있으면 ‘오늘은 나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기 위해 온 걸까?’라고 생각했다. 환자를 만나면서 그전에는 결코 알 수 없었던 평범한 일상을 보낼 수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일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하고, 토하지 않고 음식을 먹을 수 있고, 통증 없이 잠을 잘 수 있는 건 감사한 삶이라는 걸 환자들이 나에게 매일 알려주었다.

진료실에서 교수님이 환자에게 전해주는 말이 나에게도 적용되어 나를 다시 돌아보게 해주었다. 나의 마음은 어떤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앞으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등 교수님이 환자에게 주는 메시지가 나에게 주는 메시지로 변했다. 바쁜 하루가 끝나고 퇴근길 운전대를 잡으면 오늘 나는 어땠는지 곰곰이 생각하는 일이 많아졌다. 환자를 만날수록 내가 이곳에 왜 오게 되었는지, 여기서 무얼 배워야 하는지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다.

그때부터 그동안 내 깊숙한 곳에 미뤄놓았던 그 생각들을 다시 조심스럽게 꺼내 보기로 했다. 나의 존재에 대해 그리고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내가 나를 태우다. 번아웃

숨을 쉬고 살아온 시간만큼 앞만 보며 달리다 보니 내가 어디에 와 있는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도 모른 채 서서히 방향을 잃어갔다. 안정된 병원 안에서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찾고 싶었지만 ‘안정’과 ‘도전’, 이 두 개의 단어는 내 삶에서 공존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마음의 방황을 그대로 둔 채로 병원에 출근해서 가운을 입을 때면 내 안에 있는 사회생활 모드가 자동으로 켜졌다.

시키는 일을 잘하는 척, 둥글둥글 사교적인 척, 윗사람 말을 잘 듣는 척, 척하는 모드가 아침이면 잘도 켜졌다. 나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싶은 욕구를 누르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힘든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지냈다. 주체적인 삶을 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는 나를 다그치며 일상을 보냈다. 어느 순간이 되자 그동안 눌러놓았던 감정이 쌓여 더는 내 안에 감정을 남아둘 공간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때부터였다. 내 안에서 오래된 생각과 묵었던 감정이 서로 뒤엉켜 용수철처럼 한꺼번에 내 몸 밖으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옆 사람의 숨소리와 내 숨소리가 거칠게 들려와 정신이 혼미해진 출근길,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얼굴의 모든 구멍이 점점 닫히더니 이내 벌겋게 달아오른 그때, 나는 사람들 틈에서 더 이상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더는 전철 안에서 버틸 수 없었다. 곧바로 다음 정거장 문이 열리자마자 뛰쳐나갔다. 그 사이 얼굴에 담고 있었던 꽉 막힌 숨들을 벌컥벌컥 토했다. 그러자 몸 안에 남은 숨들이 차례차례 목구멍을 통해 빠져나왔다.

“헉헉”, “휴~” 숨이 재채기처럼 연달아 나왔다. 그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증상이 진정되자 ‘이건 뭐지?,’ ‘내가 왜 이러지?’ 라는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우선 지각하지 않기 위해 다음 전철을 탔다. 그렇게 출근하는 동안 전철을 타고 내리기를 반복하면서 병원에 도착했다. 그날 이후로 사람들이 많은 전철을 탈 때면 이 증상이 나타났다. 하지만 심각한 일이 아니라고 일시적인 증상이라고 나를 안심시키고, 증상을 외면하며 지냈다.

일상에서 숨을 몰아쉬는 날이 많아지면서 어느 날부터인가 밥을 먹으면 목구멍이 막힌 듯 잘 넘어가지 않았다. 그렇게 힘들게 조금이라도 밥을 넘기고 나면 여지없이 목과 가슴이 꽉 막혀왔다. 며칠 동안 죽을 먹고 괜찮아지는가 싶더니 또다시 울렁거려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나자 예전의 내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내 앞에는 생기를 잃은 나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일상이 어그러지던 어느 날 밤이었다. 침대에 누워 오늘 밤은 뒤척이지 않고 편히 잘 수 있기를 기도했다. 짙은 어둠 속에서 숨 쉬던 그때, 가슴 깊은 곳 한가운데에서 무언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가슴 위까지 차오르더니 이내 가슴 전체에 꽉 들어찼다.

“헉”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가슴을 옥죄는 압박감과 숨이 막혀오는 공포감에 벌떡 일어났다. 찰나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너무 무서웠다. 나는 누울 수도,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몸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나마 앉아 있으면 이 증상이 가라앉는 것처럼 느껴져 밤새 앉아서 밤을 보냈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몽롱한 채로 출근했다. 그 소스라치는 공포를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았지만, 그 공포는 밤이 되면 나를 찾아왔다가 아침이 되면 사라졌다.

누군가가 나에게 있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하나씩 앗아가는 듯 나는 그렇게 점점 숨을 쉴 수도, 밥을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게 되었다. 몸이 나에게 보내는 격렬한 신호였지만 나는 그 경고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겉으로는 다른 동료들처럼 건강하게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고 싶었다. 그리고 내 안에서는 번아웃된 나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번아웃을 인정하면 그동안 애를 쓰며 쌓아왔던 내 모든 걸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걸 인정하면 내가 속한 사회에서 낙오되는 것 같았다. 점점 더 아프다고 소리치는 나를 저 깊은 어딘가 한쪽 구석으로 밀어두고 싶었다.

‘나를 어디까지 아프게 해야 멈출 수가 있는 걸까?’. ‘몸이 나에게 얼마만큼 더 아프다고 해야 나는 그 얘기를 들으려고 할까?’, ‘이렇게까지 하면서 병원 일을 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나는 무엇을 놓지 못하는 걸까?’ 몸의 고통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아픔을 외면하는 나와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때는 내가 가진 낡은 생각들이 통증을 만든다는 걸 몰랐다. 켜켜이 묵은 감정이 몸에 쌓여 고통을 만든다는 걸 알지 못했다.

내가 아프고 고통스러운 건 병원이라는 환경과 나를 둘러싼 관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나를 비난하고 다그칠 때마다 통증이 만들어지고,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담아둘 때마다 고통이 생긴다는 걸 알았다면 번아웃된 몸이 경고 신호를 보낼 때까지 나를 이대로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 생각과 감정이 나를 태우는 줄 모른 채 내 몸은 점점 활활 타들어 갔다.

나를 보는 연습으로 만난 ‘진정한 나’

나를 보기 위한 첫걸음

마음을 열어 나를 보기 위해 우선 긴장감에 꽁꽁 묶여 있었던 몸부터 먼저 열기로 했다. 몸을 열기 위해서 내 몸에 붙어있는 지방과 노폐물부터 걷어내기로 했다. 몸이 가벼워지면 내 안을 보기 쉬워지고,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내야 필요한 것들이 수면 위로 올라올 테니까. 이전에는 외적인 미를 얻고 싶어서 했던 다이어트였다면 지금은 내면의 나를 위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번아웃이 심해지기 전까지는 점심을 먹고 나면 항상 달콤한 커피를 마셨다. 또한 스트레스가 쌓이면 예전처럼 매운 떡볶이와 양념치킨을 자주 먹었다. 퇴근하면 아작아작한 옥수수 칩 한 봉지를 입에 털어넣고, 쉴 새 없이 씹어야 스트레스가 풀렸다. 그렇게 생활한 지 1년 정도 지나자 내 살들은 야금야금 불어났다.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은 여전해서 잦은 회식에 고열량 음식을 먹으면 다이어트 보조제를 먹어야 안심하고 잘 수 있었다. 이런 음식들이 내 몸 안에서 연소되지 못하고 체내에 쌓이자 몸은 무겁고 피로감은 심해졌다. 그런 날은 온종일 생각에 휘둘리고, 감정이 올라와 기복이 심했다.

그래서 ‘진정한 나’를 만나기 위한 다이어트를 결심하고, 식후에 마시는 커피부터 줄였다. 몸을 가볍게 만들기 위해 커피 대신 히비스커스 티와 따뜻한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격렬한 운동을 할 에너지가 없어서 운동 대신 가볍게 할 수 있는 절 스트레칭과 호흡을 시작했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부터 엄마와 가끔 사찰에 갔다. 그곳에 가면 엄마는 항상 절을 하셨다. 나도 따라서 자연스럽게 절을 했다. 예법은 잘 모르지만, 절을 하는 동안 잡념이 많이 올라오기도 하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기도 했다. 마음 내키는 대로 절을 할수록 몸이 조금씩 활기로 채워졌다. 힘들지 않을 만큼 절을 하고 앉아서 차오르는 숨을 차분히 가라앉힐 때면 바람과 함께 숨을 쉬는 그 시간이 참 좋았다.

절을 하고 앉아서 두근대는 가슴을 느끼는 그 순간에는 내가 생생히 살아있었다. 한참을 고요함과 함께 쉬다가 사찰을 내려오면서 일상에서도 절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상에서도 절을 하면 이런 기분을 매일 느낄 수 있을 테니까.

처음 며칠 동안은 절을 하면 아픈 머리가 더 아팠다. 가슴이 더 답답해져서 절하기를 멈춘 날도 많았다. 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절을 하니까 오는 증상이었다. 그 이후로 따뜻한 허브 티로 몸을 먼저 순환시키고 절을 했다. 그러자 조금씩 절 스트레칭이 자연스러워졌다.

절을 마치면 후끈후끈해진 몸과 기분 좋은 흥분감이 내 몸을 감돌았다. 그 자리에 앉아 가쁜 숨을 가다듬었다. 숨이 고요해지자 천천히 숨을 내쉬면서 ‘내 몸의 아픔과 통증, 불안과 두려움이 빠져나가서 나는 맑아지고 가벼워진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간 숨의 자리에 새로운 숨을 마시면서 ‘신선한 숨이 내 몸으로 들어와 나는 생기 있고 건강해진다.’라고 나에게 얘기해 주었다. 절을 하고 난 후 고요함 속에서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시간이 정말 좋았다.

그렇게 출근 전이나 퇴근 후 시간을 내서 절을 했다. 횟수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날 컨디션에 따라 내가 하고 싶은 만큼 했다. 대신 매일 습관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꾸준히 절을 하자 양측 머리를 망치로 내리치는 깊은 두통이 점차 옅어졌다. 입에서 뜨거운 불을 뿜는 증상도 점점 약해졌다. 절을 하고 나면 머리는 점차 맑고 시원해졌고, 아랫배는 따뜻하고 묵직해졌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절을 하고 나면 온종일 쌓였던 스트레스와 부정적인 감정들이 어느새 사라졌다. 절을 하면 할수록 나는 조금씩 숨통이 트였다.

절을 시작한 지 3개월 정도 지나자 몸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몸이 조금씩 열리면서 통증이 나타나는 횟수도 줄었다. 절을 시작한 후 운동 효과도 얻게 되면서 더 이상 다이어트 보조제를 찾지 않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일상에서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에 빠져있는 시간이 줄면서 한결 가볍고 부드러워진 나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내향의 소용돌이

나는 변화를 두려워하면서 한편으로는 간절히 변하고 싶었다. 다이어트를 해서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새롭게 시작하고 싶을 때도 있었고, 마음에 들지 않는 습관을 버리고 싶을 때도 많았다. 새로운 직장에 가서 다시 시작하고 싶거나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해서 환경을 변화시키면 내가 달라질 것 같은 기대를 품기도 했다.

하지만, 나를 보는 연습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외부에 시선이 고정된 채로 나의 내면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다이어트로 내 외모가 달라진다고 해서 내가 바뀌는 게 아니라는 것을. 또한, 내 안을 보지 않고 예전에 했던 생각과 감정을 여전히 품은 채로 새로운 직장에 가고, 다른 집으로 이사를 한다고 해도 내가 변화되지 않는다는 걸.

때때로 나는 그대로이고 싶고, 주위 사람이 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환경이 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올라올 때도 많았다. 하지만 나를 보는 연습을 하면서 내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 주위 사람과 환경도 나처럼 변하지 않고 그대로라는 걸 알았다. 내가 다른 사람과 환경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내가 변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내가 변하는 것만이 가장 빠르면서도 바른 길인 걸 알게 되자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할지 알게 되었다.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그동안 삶을 바라봤던 방식에서 벗어나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외향의 시선을 돌려 내향으로 바라보는 힘을 키우는 연습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외향으로 살아온 내가 갑자기 내 안으로 삶의 시선을 바꾼다는 건 쉽지 않았다. 내가 가진 좋지 못한 습관부터 고치고 싶었지만, 내가 고치려고 할수록 뭔지 모를 강력한 접착제가 습관에 붙어버린 것처럼 더 바꾸기 어려웠다. 우리 몸에 늘 자신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항상성이 존재하는 것처럼, 기존의 습관을 버리려고 할수록 습관은 내게서 떨어져나가지 않기 위해 애썼다.

삶을 다른 시선으로 보는 연습을 하면서 머릿속이 깔끔하게 정리되고 시원해진 게 아니라 이전보다 더 복잡하게 느껴졌다. 머리로는 내 안을 봐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가슴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도 있었다. 내가 어릴 적부터 옳다고 생각한 것이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면 혼란스러울 때도 많았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바라보고 살아왔는지, 내 머릿속에서 규정한 대로 살아온 게 아닌지, 그리고 그 방법만이 옳다며 우겨댄 건 아닌지……. 팝콘 튀기듯 튕겨 올라오는 생각을 따라가다 보니 출퇴근길 차 안에서도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정신이 번쩍 드는 일이 발생했다. 퇴근길이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하루를 돌아보며 ‘그땐 이렇게 했어야지!’하며 나를 다그치던 중이었다. 나는 사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받고 있었다. 곧 파란불이 켜지고 앞차를 따라 좌회전을 했다. 교차로를 지나 진입한 도로는 약간 비탈길이어서 바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뒤에서 ‘퍽’하는 소리가 났다. 뒤에서 들이받는 세기와 경사로 때문에 밀려서 내 앞에 있는 용달차를 순식간에 ‘퍽’하고 들이받았다.

큰 차들 사이에 끼어 내 차는 앞뒤로 크게 파손됐지만, 다행히 내 몸은 벌렁거리는 가슴 외에 다른 외상은 없었다. 제법 큰 교통사고였음에도 불구하고 내 몸을 다치지 않은 걸 보며 감사하면서 누군가가 나에게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두 건의 사고를 더 냈다. 그동안 10년 넘게 무사고 운전을 해 왔다. 그런데 연달아 몇 번의 사고를 겪으면서 보니 내가 정신없어지면 내 주위에 정신없는 일이 자주 생기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향으로 삶의 시선을 바꾸는 과정에서 내 안의 혼란스러운 상황이 고스란히 밖으로 펼쳐졌다. 사고 이후 한동안은 운전대를 잡으면 또 사고가 날 것 같아 불안했지만, 사고를 통해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곧 외부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만약 내 안이 평온하다면 평온한 삶이 펼쳐지고, 내 안이 기쁘다면 기쁜 삶이 펼쳐질까?’라는 생각이 들자 내 안을 보는 연습에 더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안에 고정된 생각과 부정적인 감정, 오래된 습관이 밖으로 나올 때까지……. 앞으로 또 어떤 소용돌이가 나를 찾아올지 모르겠지만, 그 소용돌이가 내가 바라던 삶으로 데려가줄 때까지 나를 보고 나부터 변하는 내향의 바른 길을 계속 걷기로 했다.

‘진정한 나’로 살아가는 삶의 지혜

오묘한 붉은 빛, 감미로운 위로

본래의 건강을 되찾고, 일상에서 좋은 생각과 좋은 것만 보기 위해 무엇부터 할지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근처에 있는 티룸(Tea room)에 갔다. 활기찬 카페와는 다른 편안한 티룸의 분위기와 잎차로 내려주는 다즐링 홍차를 마시면서 홍차의 매력에 빠졌다.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달콤하면서 맑고 싱그러운 홍차의 맛과 그날의 여유가 참 좋았다.

홍차와의 첫 만남이 따스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서 나중에 시간이 나면 홍차를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었다. 그러던 중 홍차로 나를 쉬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경험해보지 못한 다른 환경에 가서 좋은 기분을 느끼고 활력을 다시 찾고 싶었다.

신선하고 맛있는 차를 마시기 위해 전문적인 티 클래스를 찾아갔다. 차의 종류가 그렇게나 많은지 그날 처음 알았다. 홍차 외에도 다양한 차를 접했지만,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차는 내가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빛이 달라지는 차, 오묘한 붉은빛이 도는 홍차였다. 홍차 맛을 보기 전에 찻잎에서 느껴지는 자연의 향을 마실 때면 내가 꼭 자연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었다. 그날부터 홍차는 나에게 단순한 차가 아닌 쉼 그 자체가 되었다.

맛있는 차를 마시려면 신선한 찻잎과 물의 온도 그리고 찻잎을 우리는 시간이 중요했다. 찻잎이 가진 있는 그대로의 차 맛을 내기 위해 조건에 맞춰 우려내자 지금까지 떫고 맛이 없다고 여겼던 차에서 감미롭고 풍부한 맛이 느껴졌다. 찻잎에 향을 첨가하지 않았는데도 꽃향기나 과일 향이 나기도 했다. 홍차가 주는 자연의 맛과 향을 느끼고 나면 몸이 가벼워지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오랫동안 긴장했던 몸이 느슨해지자 마음도 따라 느슨해졌다. 홍차를 만나면서 진정한 쉼이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홍차와의 만남이 깊어질수록 나를 만나는 시간이 많아졌고, 마음 상태를 더 알 수 있었다. ‘아, 내가 그동안 마음이 바빴구나.’, ‘나 참 애썼구나.’, ‘지금 편히 쉬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때면 잠시 눈을 감고 차가 가진 자연의 향을 느끼는 시간이 좋았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날 때면 서로의 마음결이 부딪히지 않고 잔잔해지는 느낌이 좋았다. 그런 사람의 결이 좋았다.

오랫동안 내 삶에서 소외시켰던 ‘진정한 나’를 위해 그리고 나에게 ‘너는 소중한 존재’라는 걸 알려주고 싶을 때면 애프터눈 티를 마시러 갔다. 티룸에 가면 삼단 트레이에 샌드위치와 스콘이 정성스럽게 차려져 있었다. 홍차 한 잔을 따라 나를 대접했다. 오묘하게 붉은빛을 보여주는 홍차와 함께 감미로운 분위기를 마실 때면 허세 가득한 ‘껍데기의 나’가 특별해진 양 우쭐대기도 했지만, 내 안의 ‘진정한 나’도 그 대접을 받고 나의 존재를 인정받은 것처럼 행복해했다.

홍차는 번아웃된 나의 몸을 쉬게 해주었고, 내 마음을 다독거려주었다. 홍차가 나에게 보여준 빛과 자연의 향을 맡을 때면 무디어진 내 감각이 다시 회복되었다. 신선한 물을 끓여 방금 내린 홍차 한 모금을 입에 한가득 머금었다가 내 안으로 넘길 때면 스르륵 퍼지는 따스함이 좋았다. 차의 온기가 온몸을 감싸줄 때, 진정한 쉼을 알게 되었다.

홍차는 나만이 아닌 내 주위를 둘러보게 하는 여유를 주었고,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보는 법을 알려주었다. 자꾸 다른 첨가물로 홍차의 본질을 가리는 차를 만날 때면 나 역시 있는 그대로의 민낯보다 꾸며진 나를 보이고 싶을 때가 많았음을 알게 되었다. 본래 홍차가 품고 있는 빛과 향만으로도 아름다운 차가 되는 것처럼 나도 본래의 내가 가진 자연스러운 빛과 향만으로도 충분한 그런 홍차 같은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일상에서 홍차를 만날수록 홍차가 머금고 있는 본질적인 치유 에너지를 닮고 싶어졌다. 홍차가 나에게 아낌없이 나누어준 것처럼 나도 아픔을 가진 많은 사람에게 홍차처럼 따뜻하고, 생기 있는 치유 에너지를 나누어 주고 싶다.

나의 마지막 순간을 경험할 때

결혼 후 어색했던 아내의 역할이 익숙해질 무렵, 오랜만에 보이차 선생님을 만났다. 우리는 차를 마시며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나눴다. 선생님은 나에게 삶의 이야기를 전해 주시던 중에 내가 삶을 떠나는 그때 어떤 모습으로 있을지, 어떤 사람들과 함께 보내고 있을지 나의 마지막 순간이 그려져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 있다고.

‘나의 마지막 순간이라…’ 그 말을 듣자 조금 전까지 웃고 있었던 나는 진지해진 얼굴로 나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렸다. 하지만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았다. 내가 죽는 것도, 어떤 모습으로 누구와 함께 있는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죽음은 막연하고 내 얘기 같지 않았다.

죽음은 지금 일어나는 일이 아닌 먼 훗날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정신없이 바쁜 삶 속에서 지금 생각할 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죽음에서 한참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동안 가족과 환자의 죽음을 바라보긴 했지만 내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 역할에서 죽음을 바라본 게 다였다. 아빠의 죽음도 내가 딸의 입장에서 바라보았고, 환자의 죽음도 내가 간호사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죽음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간접적이나마 임종 체험으로 죽음과 마주한 나를 대면해 보고 싶었다. 나의 죽음을 체험해 보면 내 마지막 순간이 그려질 것 같았다. 솔직히 전부터 임종 체험을 마음먹고는 프로그램을 살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관에 들어가서 관 뚜껑을 닫고 누워있는 체험을 보고는 차마 해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평소에 어둡고 폐쇄된 곳에 잘 있지 못했다. 차를 타고 긴 터널에 들어가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영화관에도 오래 있지 못해서 영화 한 편 보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런 내가 좁고 어두운 관 속에 있을 생각을 하니 그때부터 숨이 막혀왔다. 그 이후로 임종 체험을 차일피일 미루던 중이었다. 그러나 각자의 몸 상태에 따라 체험을 진행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간호사인 친구와 함께 임종 체험을 해 보기로 했다.

체험 날, 먼저 나의 영정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 앞에 앉았다. 너무 어색했다. 예쁘게 남겨야 하니까 웃어야 할지, 지금 죽으면 너무 억울해서 울어야 할지, 여러 감정이 섞인 어정쩡한 미소만 지어졌다. 그렇게 어색한 표정의 사진을 남긴 후 어둠 속에 홀연히 타고 있는 촛불 앞에 앉았다. 그리고 나의 마지막 메시지를 남기기 위해 펜을 들었다.

오늘이 내가 숨 쉬는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자 코끝이 찡했다. 내가 이 세상에서 남기는 마지막 글이라는 생각이 들자 눈시울이 점점 붉어졌다. 잠시 눈을 감고 나에게 집중했다. 그러자 나를 채찍질하고 다그친 나,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한 나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런 나와 다시 마주하자 그동안 나를 외면하고 더 깊이 사랑하지 못한 후회의 감정이 올라왔다. 그리고 남겨질 가족들을 생각하니까 그 다음 말을 더는 쓸 수가 없었다. 펜을 들고 멈춘 그 순간,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동안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상처 주는 말로 미음을 아프게 해서 미안했다. 무엇보다 내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서 후회됐다. 나를 더 사랑하고, 가족과 나를 둘러싼 소중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표현하고, 시간을 함께 보냈다면 좋았을 텐데- 이런 후회의 감정과 마주하자 앞으로 어떻게 실아야 할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아, 내가 나를 사랑한다고 표현해야 하는구나. 내가 가족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야 하는구나. 나를 생각해주고 함께해줘서 고맙다고 전해야 하는구나.’ 마지막 메시지를 남기는 동안 알게 되었다. 미루지 말고 그때그때 감정을 온전히 표현해야 후회가 없다는 것을…….

마지막 글을 남기고, 내 앞에 놓인 수의를 입었다. 그리고 몸 하나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관에 누웠다. 그 안은 예상한 대로 너무 좁고 추웠다. 어둠 속에 혼자 남을 생각이 들자 가슴이 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곧이어 내가 누운 관이 “드르륵” 소리 내며 서서히 닫히기 시작했다. 닫히는 무게감의 소리가 이번 세상과 끝이라는 걸 알려주는 소리로 들려왔다. 진짜 어둠 속에서 나 혼자 남았다. 아무도 없이 철저히 혼자였다.

관 뚜껑이 닫힌 그 순간, 어둠의 공포 속에서 숨을 토하며 밖으로 뛰쳐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너무나 고요했다. 나의 예상과는 달리 정말 이상하게 평온했다. 좁디좁은 관 속이 어지러운 나의 현실과 분리된 안락한 공간처럼 느껴졌다. 나와 마주하는 그 고요함 속에서 그동안 내가 살아 왔던 삶의 장면들이 후다닥 지나갔다.

그 순간 병상에서 보았던 아빠의 마지막 얼굴이 떠올랐다. 그때 아빠도 이런 마음이었겠지? 당신의 죽음을 준비하지 못하고, 삶의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삶은 그렇게 사는 게 아니라고 느끼지 않았을까? 그렇게 가족들을 남기고 가야 하는 슬픔보다 더 앞서 당신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 삶에 대한 깊은 후회가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함께 한 가족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후회만 남지 않았을까? 다시 진짜 삶을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땐 이미 이번 삶의 문이 닫힌 후가 아니었을까?

나의 마지막 순간을 경험하면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알았다. 이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무엇을 해야 후회하지 않을지 고민했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 제일 먼저 나의 감정을 표현하기로 했다. 임종 체험을 하고 돌아온 저녁에 가족들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내 마음을 전했다. 그동안 미안했다고. 고맙다고. 그리고 항상 마음에는 있지만 정말 표현하기 어려웠던 말을 꺼냈다. 사랑한다고.

마지막 순간을 경험하고 나서 내일이 아닌 오늘을 어떻게 살지, 지금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는 마지막 순간에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지, 그때 누구와 함께하고 싶은지…….

여전히 죽음에 대한 막연함이 남아있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살지는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먼 미래를 위해 오늘을 살았던 어리석은 나를 놓아주고, 지금을 살고 싶은 나를 응원해 줄 수 있게 되었다.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마음껏 표현하는 삶. 그때 이걸 해야 했는데 하며 후회하지 않는 삶.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미루지 않고 지금 선택하는 삶. 이런 진짜 삶을 살기로 했다.

텍스트 상자: 본 도서요약본은 원본 도서의 주요 내용을 5% 정도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원본 도서에는 나머지 95%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보다 많은 정보와 내용은 원본 도서를 참조하시기 바라며, 본 도서요약본이 좋은 책을 고르는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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