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채우는 그림 인문학

나를 채우는 그림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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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채우는 그림 인문학
유혜선 지음
피톤치드

책소개

이 책은 아름다운 명화와 인문학을 통해서 우리 인생의 문제와 아픔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그림과 예술가의 삶에 담긴 인생의 비밀과 삶을 바라보는 혜안을 찾는다.

요약본 본문

자아 –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나는 어떤 얼굴인가? -제임스 엔소르 〈가면에 둘러싸인 자화상〉

무척 상냥하고 예의 바른 후배 A가 있다. 고운 미소에 목소리 톤이 밝고 경쾌해서 처음 만나는 사람도 그 후배에서 호감을 갖는다. 그녀는 무척 매력적이고 긍정적이고 희망적이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무엇이든 될 것 같다. 어려울 일이 닥쳐도 잘 헤쳐 나갈 것 같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좋은 인상은 오래가지 못한다. 시간이 갈수록 그녀의 말과 행동을 신뢰하지 못하게 됐다.

그녀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근사한 미사어구로 포장된 화술과 자신의 가면적인 유희를 즐기는 것 같았다. 예를 들면, 그녀는 늘 행복하고 유복한 집안의 여인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그런 모습과 다르게 그녀는 이혼을 했고 두 딸과 함께 그리 넉넉하지 않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의 말과 다르게 어떤 일을 하는지 알 수 없었고 남자관계도 복잡했다. 그녀의 일관성 없는 말과 행동에 사람들은 지쳤다. 더 이상 그녀를 신뢰하지 않았다. 화려한 미소에 감춰진 진실이 드러났을 때마다 주변 사람들의 배신감이 컸다.

그녀는 뭇 남자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사는 것을 자랑처럼 이야기했다. 모임에서 만날 때는 항상 남자가 운전하는 차에서 우아하게 내리는 모습을 연출했고 헤어질 때는 남자가 차를 대기하고 있음을 과시했다. 그때마다 남자는 바뀌었다.

해골과 가면의 화가 제임스 엔소르의 그림은 볼 때마다 슬퍼진다. 에서 독특한 비애를 엿볼 수 있다. 벨기에 출신의 표현주의 화가 엔소르는 슬프고 기괴한 가면을 쓴 사람들을 통해서 타락한 인간의 모습과 그들이 느끼는 공포를 철학적으로 표현했다. 그림 속의 빨간 깃털 모자를 쓴 남자는 온갖 표정의 가면에 포위되어 있다. 그는 마치 예술의 순교자처럼 보인다. 가면 속에서 무방비 상태로 맨얼굴을 드러낸 모습이 어쩐지 불안하다. 굳건한 의지가 보이는 눈동자가 왠지 더 불안하고 초조하게 느껴진다. 차라리 다른 사람들처럼 가면을 쓰고 웃거나 울면 좋으련만.

어린 시절 제임스 엔소르의 어머니는 가면을 파는 가게를 운영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익명성을 기대어 온갖 추악한 일을 자행하는 인간의 굴절된 욕망을 보았다. 불안과 공포가 빚어낸 인간의 이중성을 일찍 알아차린 것이다. 엔소르는 가면이 또 다른 우리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칼 구스타브 융의 분석심리학적인 관점에 의하면 융은 외부와 접촉하는 외적 인격을 설명하기 위해서 ‘페르소나’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페르소나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도덕, 질서, 의무 등을 따르거나 자신의 본성을 감추고 다스리기 위한 가면이다. 즉, 실제 자신의 모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가면이 페르소나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실제 타협의 범위가 그다지 명확하게 인식되지 않아 어디까지가 얼굴이고 어디까지가 가면인지 하는 물음이 따라다닌다.

페르소나와 이미지 메이킹: 우리는 모두 가면을 쓰고 갈아간다. 근사한 미사어구로 포장된 화술과 자신의 페르소나를 과시하고 가면적인 유희를 즐기며 산다. 이 세상은 카니발처럼 현란하고 기괴한 가면이 넘친다. 현대에서는 이것을 이미지 메이킹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자신이 세상에 보이고 싶은 모습으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속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고 살 수 없다. 하루에도 수백 번씩 변하는 마음을 그대로 다 표현한다면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은 다면적 인격의 구성체이기도 하다. 가면은 자신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결핍은 적절하게 가려주는 안정된 방패막이다. 그래서 사람은 가면을 쓰고 가면을 써야 편안하고 안전하다고 느끼는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 이런 상태를 유지하다 보면 가면을 쓴 모습이 정상이라고 믿게 된다. 가면을 벗고 맨얼굴로 살아가는 것이 두렵다. 그래서 가면을 쓸 줄 아는 것도 현대인의 능력이다. 문제는 균형이다. 동양에서는 이러한 균형을 중시하여 ‘중용’이라고 했고 오늘날에는 ‘균형감’이라고 한다.

앞서 이야기한 후배의 소식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초라하게 벗어던진 가면의 파편들만 주변 사람들에게 남겨놓고 그녀는 우리 곁을 떠났다. 어디에선가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새로운 가면을 쓰고 있을 것이다. 진짜 얼굴을 잊고 가면만 보면서 서로를 평가하는 삶이 서글프다. 민낯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솔직담백한 관계가 그립다.


독서는 나의 힘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책 읽는 여자〉

지성과 미모를 갖춘 잘나가는 변호사가 있다. 가끔 방송에도 출연한다. 변호사답게 말도 재치 있게 하고 논리적이다. 열정적으로 일하고 멋지게 인생을 사는 똑똑한 커리어 우먼인 그녀는 사법연수원에서 남편을 만나 세 아들과 딸 하나를 둔 다둥이 엄마이기도 하다.

자식에 대한 사랑 또한 일과 삶에 대한 열정만큼이나 강하다. 그래서 그녀는 근처에 사는 친정어머니의 도움으로 일과 육아를 병행한다. 동시에 며느리로서의 할 일도 미루지 않는다. 계절마다 시부모님과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여행을 갔다.

나는 그녀를 세미나에서 만났다. 그녀는 독서 모임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그녀는 바쁜 와중에도 독서 모임에 거의 빠지지 않았다. 자신의 전공과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서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녀는 책을 통해 사람에 대한 인식과 세상에 대한 지평을 넓힌다.

나는 그녀를 볼 때마다 ‘어떻게 저렇게 자신의 일과 인생을 빈틈없이 완벽하게 챙길까?’ 하며 감탄했다. 그 비결은 선택과 집중을 잘하고 시간과 인맥 관리에 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됐다. 화려한 성공과 수려한 외모와는 대조적으로 그녀의 삶은 고난과 아픔의 연속이었다는 것을.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어렸을 때 갑자기 돌아가셨다. 남편은 정치권의 공세에 휘말려 감옥에 가기도 했다. 네 아이를 낳아 기른 것도 이만저만 힘든 일이 아니었지만 막내를 낳고 몸을 풀고 조리원에 있을 때 큰아이가 고열로 사경을 헤매기도 했단다. “어떻게 그 많은 일을 다 이겨냈어요?”

그 비결은 독서였다. 그녀는 어떤 상황에서도 책을 손에 놓지 않았다.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을 때도 그녀는 책을 읽으며 장례식장에서 긴 밤을 보냈다. 남편이 정치적인 사안에 휘말려 억울하게 감옥에 있을 때에도 책을 읽으면서 아픔을 담담하게 견뎌냈다. 응급실에서 아이의 체온이 내려가기만을 기다리며 밤을 새우면서도 책을 놓지 않았다.

아픔을 책으로 이기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한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책의 힘을 믿기 시작한 것은 고시 준비를 하면서다. 우연히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곳에서 프랭클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 책을 읽으며 그녀는 현실이 지옥처럼 힘들지만 미래를 바라보면서 닭장 같은 고시원 생활을 견뎠다.

그녀가 틈틈이 시간이 나면 책을 읽는 것은 그때부터였다고 한다.

차 안에서나 사무실에서나 침대 위에서나 언제라도 자투리 시간에 독서를 할 수 있게 주변에 책을 두었다. 그 결과 재판을 하거나 방송을 할 때, 고객과 상담을 할 때도 다양한 사례와 폭넓은 경험으로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설득할 수 있다. 그녀는 평생 책으로 위로받고 책에서 힘을 얻고 책에서 지혜를 찾으며 자신을 지킨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절망하고 나락으로 떨어질 만한 일 앞에서 그녀는 책을 펼쳐 들었다. 나는 고난 앞에서도 단아한 모습으로 책을 읽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해 봤다. 그러자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책 읽는 여자』가 떠올랐다.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는 여성의 모습을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리는 화가로 유명하다. 프라고나르는 로맨틱한 분위기를 생생하게 그려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의 그림은 당시 이탈리아 여러 지방을 여행하면서 얻은 영감에서 나왔다. 그는 종교화나 역사화를 주로 그렸는데 로마를 여행하고 돌아온 뒤로 달라졌다. 역사화를 버리고 살롱이나 아카데미와는 관계없는 자유로운 입장에서 분방하면서 쾌활한 관능적 주제를 많이 그렸다. 또한, 로코코 문화의 절정을 이루었던 루이 15세의 쾌락적인 궁정 분위기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760년대 후반이 되면서 프라고나르는 신고전주의 화풍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에 그는 를 포함하여 소녀들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이러한 초상화 속 여성들은 시, 음악 등에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이었다. 는 은근히 끌린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연약한 소녀의 외양에서 안정된 힘과 은은한 아름다움이 배어 나온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노란색으로 부드러움을 준다. 하지만 붓질은 거칠고 대담하다. 책 읽는 여자의 깊은 자존심과 의지를 반영하는 듯하다. 소녀의 옆모습과 쿠션과 책의 삼각형 구도가 안정감 있고 편안하다.

이 안정감과 편안함은 어디서 왔을까? 프라고나르는 어린 처제 마르그리트 제라르를 무척 귀여워했다고 한다. 부모님을 일찍 잃은 처제가 안쓰러웠던 프라고나르는 처제를 자상하게 보살펴 주었다. 또, 어린 처제는 그를 아빠처럼 따랐다. 가족 같은 따뜻한 유대감이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내지 않았나 싶다.

프라고나르는 왜 책 읽는 소녀를 그렸을까? 그는 로코코 시대의 대표 화가인 프랑수아 부셰의 지도를 받았다. 부셰는 ‘살롱의 화가’라 불리는 인물이다. 그런 부셰의 지도를 받았다면 프라고나르 역시 우아하고 환상적인 여성을 많이 만났을 것이다. 그런데 책 읽는 소녀를 그렸다. 지금 시대의 독서는 그다지 특별한 행위는 아니다. 오히려 흔한 취미, 평범한 일상에 가깝다.

그러나 그가 살았던 로코코 시대의 독서는 지금과 그 무게감이 다르다. 책 읽는 여자란 살롱 문화가 성행하던 로코코 시대를 상징하는 존재였다. 살롱은 귀족 여성들이 독서를 하며 문화와 예술을 즐기며 지적 허영을 누릴 수 있는 장소였다. 책을 통해서 여자들은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남성의 전유물인 역사와 정치, 철학의 세계를 넘나들었다. 상상력과 지식의 무한한 세계를 자유롭게 오갔다.


닫힌 대중에서 열린 개인으로

강의를 오래 해왔지만 아직도 강단 앞에 서면 긴장한다. 열 명 미만의 소그룹 강의가 더 많이 떨린다.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맞춰야 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럴 때 나는 마치 열린 개인들 앞에서 나체로 서있는 것 같다. 차라리 다수의 대중이 더 편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에게 대중은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여 감정적인 부담이 덜한 것 같다. 반면에 개인은 그의 감정이 하나하나의 개체로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져 어렵다. 그래서 대규모 인원을 상대로 한 강의가 더 편안하다.

그러나 이제라도 대중의 시선에서 벗어나서 각각의 개인으로 세상과 나를 돌아보려 한다. 그동안 나와의 만남을 미뤄온 탓인지 나를 돌아보려 한다. 그동안 나와의 만남을 미뤄온 탓인지 나를 돌아보기도 전에 두려움이 앞선다. 왜 그럴까?

19세기 말 절망과 공포의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는 자신이 마치 사춘기를 맞은 아이처럼 작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가 그린 의 발가벗은 소녀는 앙상한 두 팔, 아직 덜 자란 젖가슴, 겁에 질린 커다란 눈동자로 정면을 응시한다. 소녀의 눈에는 왠지 모를 두려움이 가득 차 있다. 외로움 속에서 불안과 공포에 떠는 아이는 현대인의 황량하고 불안한 내면과 닮았다. 오늘날 문명의 풍요롭고 거대한 울타리를 걷어내면 작고 초라한 개인이 나타난다. 대중 속에 익명으로 있을 때 느끼지 못하는 감정이다.

보이지 않는 감옥: 우리는 왜 불안에 떠는가? 스스로 미래를 예측하고 삶을 주도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이러한 현상을 ‘시스템에 의한 생활 세계의 식민지화’라고 표현했다. 그의 말대로 우리 언어는 거대한 사회 시스템의 지배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고 관리할 수 없으면 개선될 수 없다”는 경영 이론으로 모든 사회적 가치가 획일화되고 표준화됐다. 우리는 그러한 가치관에 순응하며 살아왔다.

이는 미셸 푸코가 말한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혀서 사는 것과 같다. 자본주의의 화려한 물질과 권력은 매우 교묘하고 정교한 시스템을 이용해서 우리의 고유성과 개성을 말살했다. 마치 덜 성숙한 뭉크의 사춘기의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자본주의는 사상적으로 자연과학적 이성주의와 합리적 사고방식에 의존한다. 철학적 관점으로 따지면 칸트와 헤겔의 관념론에 가깝다. 철학은 이러한 현상들을 세련되고 논리적인 언어로 깔끔하게 정리한다.

고도로 자본주의화된 세상은 보이고 보여주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남들이 나를 보고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한 가치가 됐다. 그러면 도대체 우리 자신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명치에서 꿈틀거리는 본능, 이 주체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감정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기존 가치와 기준에 저항하며 자신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앞으로 누구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들은 자신만의 삶의 패턴과 색으로 살고자 한다. 어떠한 이성적인 권위에 억압되지 않은 개인으로 살고자 부르짖는다. 문제는 획일화된 가치를 제외한 세상에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다는 점이다. 이미 잃어버린 우리의 고유성과 개성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이 딜레마를 해결해야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다. 삶이 딜레마에 빠졌을 때 역사와 고전, 자연과 예술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날 인문학이 다시 떠오른 이유도 그래서다. 잃어버린 고유성과 개성을 찾기 위해서, 딜레마에 빠진 우리의 삶을 구하기 위해서 인문학을 공부한다.
인생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내일을 기대하지 않아요 -폴 고갱,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취업 재수생인 C는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럭저럭 살고 있다. 백 곳 넘게 이력서를 넣었지만 연락 오는 곳은 없다. 그의 친구들도 거의 백수다. ‘이십대 태반이 백수’인 이태백 시대가 아닌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C는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현실이 그럭저럭 만족스럽다. 그와 오래 사귄 여자친구도 같은 생각이다. 각자 부모의 집에서 살면서 가끔 데이트 하고 여행도 다니며 청춘을 즐기고 있다. 결혼이나 내 집 마련, 출산 따위는 고민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오늘을 즐길 뿐이다.

우리나라 국민 중에 경제적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연령대는 20대라고 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20대의 경제적 행복지수가 48.9로 가장 높았다. 의외의 결과다. 실업으로 꿈이 좌절됐을 것이 분명한데 만족이라니. 뒤틀린 사회구조에서 나타나는 묘한 안정감일까? 미래를 포기했기 때문에 가능한 체념적인 자기만족일까? 미래를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행복하다니 이 얼마나 우울한 청춘인가.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가다 문득 이렇게 자문한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어디서 왔을까? 그리고 어디로 가는가?’ 고갱의 그림도 우리에게 이와 같이 묻는다. 고갱의 를 보면 출생과 죽음에 이르는 인간의 삶의 과정을 보는 듯하다. 고갱은 이 그림을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에 그렸다. 그림의 배경이 되는 자연은 고갱이 원시의 이상형을 찾기 위해 가정과 문명을 버리고 선택한 남태평양의 타히티다.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으로 인간의 탄생과 삶, 그리고 죽음이 나타나고 있다. 그림 오른쪽에 누워 있는 아기는 인간의 탄생과 출발을 의미한다. 아기는 앞으로 자신이 살아야 할 고통과 고난의 삶을 마치 예견이라도 하듯 고개를 돌렸다.

중앙에서 열매를 따는 젊은이는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는 모습이 연상된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갈망하는 인간의 욕망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의 청년은 욕망을 갖고 자신만의 목표를 찾아 도전한다. 마지막으로 왼쪽에 웅크린 채 두 팔로 얼굴을 감싼 백발의 노인은 자신이 살아온 삶을 반추하며 다가올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배경에는 불교에서 말하는 죽음과 윤회사상이 보인다. 고갱은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우리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스스로 던진 것이다.

꽃씨를 품어야 청춘이다: 금세기 최고의 경영학자 짐 콜리는 “나만의 꽃을 피울 수 있는 광적인 규율이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당장 그 규율이 세상의 리듬과 맞지 않을 수 있다. 방관자처럼 보일지라도 서툰 리듬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세상과 만나게 된다. 서툰 리듬 속에서 화려하게 꽃 필 수 있는 꽃씨 하나는 정체성일 수도 있고 미래를 향한 꿈과 희망일 수 있다. 가능성이 충만한 그 꽃씨를 버려서는 안 된다.

피카소 또한 우울한 청춘 시절을 훌륭하게 이겨냈다. 현실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힘들어도 그는 화가로서의 광적인 규율, 즉 ‘매일 그림 그리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창작 욕구로 배고픔과 현실의 암울함을 잊었다. 그 결과 16,000점에 달하는 회화 작품과 650여 점의 조각 2,000여 점의 판화를 남겼다. 피카소는 창작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왜 그것을 해야 하는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은 전혀 흥미롭지 않다.”

이만한 배짱과 투지가 있기 때문에 우울한 시절에도 용기를 잃지 않았던 게 아닐까. 그 불굴의 도전 의식과 용기가 거장 피카소를 낳았다. 입체주의, 신고전주의, 초현실주의, 상징주의, 표현주의, 추상주의 등 수많은 양식을 대표하는 걸작을 그린 천재 화가 피카소는 결코 그냥 만들어지지 않았다.


노동이 신선하기만 할까? – 구스타프 쿠르베, 〈돌 깨는 사람들〉

대기업의 만년 부장인 L은 연말만 되면 불안하다. 연말은 회사의 새로운 사업 계획과 경영 전략을 발표하는 중대한 시기다. 발표가 끝나면 바로 조직 개편과 인사이동이 있을 것이다. L은 매년 승진에서 누락됐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승진이 두렵다. L은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남아야 한다. 길고 가늘게 가는 것이 목표다.

옛날의 부장은 관리자로서 감독과 결재만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지금 L 부장은 팀원이나 마찬가지다. 기획서와 보고서를 작성하며 후배들과 경쟁해야 한다. 디지털 시대는 화이트 컬러 노동자들에게 엄청난 업무량을 안겨줬다. 도태될까 불안해 퇴근 후에는 컴퓨터와 영어 학원에 다닌다. 그래도 그 변화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한다. 젊은이들과 비교하면 감각이 떨어지고 정보화 활동 능력도 차이난다. 그래도 집에 일찍 들어가서 부인 눈치를 보는 것보다 낫다.

L의 아내는 남편이 일찍 들어오면 성가셔 한다. 양가 어르신들은 교대로 병원에 입원하신다. 아이들 공부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남편이 회사에 다닐 때 딸을 시집보내야 할 텐데. 대학원을 졸업한 아들은 취직이 되지 않아 걱정이다. 사업을 하겠다고 나서지 않을까 무섭다. 이들 부부에겐 휴식이 없다. 미래는 흔들리는 촛불처럼 불안하다. 가장으로서의 권위도 사라진 지 오래다. 그저 월급만 제때 가져다주는 것으로 모든 현실을 회피하고 싶을 뿐이다. 그는 자기 삶을 보면서 구스타프 쿠르베의 이 떠올랐다. 그의 삶은 쿠르베의 돌 깨는 남자처럼 암울하고 고단하다.

쿠르베가 살롱에 출품한 이 작품에는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하는 자의 애환이 녹아있다.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우울한 삶의 고단함과 중압감이 느껴진다. 그림의 전체적인 톤은 어둡고 칙칙한 갈색이다. 갈색은 삶의 의미와 희망이 사라진 색이자 한때 영광을 그리워 하지만 돌아가지 못하는 색이다. 또 광채가 사라지고 열정이 식은 색이다. 오래된 사물이나 나이든 사람은 모두 갈색을 띤다. 종이도 직물도 오래되면 누렇게 변한다. 먼지와 때로 이루어진 갈색 층은 모든 것 위에 쌓인다.

그림 속 함께 일하는 두 남자는 아버지와 아들처럼 보인다.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서 일을 배우는 중이리라. 아버지의 낮은 자세와 구부러진 어깨에서 일을 내려놓을 수 없는 중년의 고단한 삶이 엿보인다. 이 그림은 감상하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노동은 신성한가?’

잔잔하게 깨진 돌과 뒤돌아선 아버지의 얼굴과 푹 눌러 쓴 모자가 무겁게 와 닿는다. 희망을 상징하는 하늘은 캔버스 위 귀퉁이에서 조금만 보인다. 현실의 무게에 아버지의 어깨를 한층 더 내려앉게 한다. 오랜 노동으로 해진 저들의 누더기 옷은 암울한 세상을 통과하는 경건한 기도 같다. 이 땅의 모든 인간이 고단한 삶의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울리는 기도 말이다.

소비하기 위해 일 하는 사람들: 미국의 경제학자 라그나르 넉시는 “빈곤의 악순환보다 더 나쁜 것이 풍요의 악순환이다”라고 했다. 현대사회의 노동자들은 더 많은 소비하기 위해서 더 많이 생산해야 한다. 그래서 그만큼 일을 더 많이 일하는 운명에 처해 있다. 가진 것만큼 소비하고, 소비하는 만큼 대우 받기 때문이다.
L부장은 사회에서 인정받으려는 욕망을 내려놓아야 한다. 장성한 아들과 딸을 왜 아직도 책임지는가? 자신과 아내의 노후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인생까지 통제하려는 욕심, 다른 애들보다 우리 애들이 더 나아야 한다는 욕심을 내려놓으면 그는 좀 더 가볍게 살 수 있다.

노동은 신성하다고 들어왔다. 과연 노동은 신이 우리에게 내린 신성한 의무일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아무리 일해도 인간다운 삶은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결코 신성하지만은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결코 신성하지만은 않다. 오히려 노동은 혐오가 되기도 했다. 노동을 하는 개인은 굴러 떨어진 바위를 밀어 올리기를 반복하는 시시포스가 아닌가? 현대 사회는 사람의 가치가 점점 떨어진다. 사람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은 개개인의 노동을 존중하는 것이리라. 일한 만큼 대가를 지급하고 노동자를 대우하는 사회라면 그 안에서 사는 이들이 소외당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노동은 결코 인간의 본성이거나 신성한 덕목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1883년 폴 라파르그는 「여유로울 권리」라는 논문에서, 인간은 원래 일하기보다는 놀기 위한 존재라고 말했다. 산업화와 함께 노동은 인간 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폴 라파르그는 신성하기까지 한 노동은 인간이 가진 다른 본래의 가치를 훼손해도 되는 제1의 미덕이 되었다고 풍자했다. 한국인은 극심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 중독에 빠져 있다. 장시간 노동으로 소홀한 가족관계, 직장 동아리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취미활동, 자존감의 결여로 퇴직 후의 삶은 어둡기만 하다.

요즘 젊은 세대의 가치는 워라밸이다. 워라밸은 직장과 나의 삶을 격리하는 것이 아니라, 직장에서도 내 개인적 삶에서도 균형을 이루면서 각각의 삶의 영역에서 모두 행복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들은 직장을 돈벌이 수단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일은 나를 인간적으로 성숙시키고 공동체적 삶에 기여하는 자아실현의 장이다. 우리 사회가 워라밸의 가치를 직장, 가족, 공동체라는 삶의 모든 영역에 골고루 반영해 노동자의 자존감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함께 높이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행복 – 어둠 사이 잠시 갈라진 틈으로 새어 나오는 빛

살롱문화, 취미와 공유를 넘어 -프랑수아 부셰,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

현대인은 외롭다. 스마트폰을 비롯해서 각종 디지털 기기를 끼고 살고 SNS로 쉴 새 없이 소통하는 데도 왠지 공허하다. 기계적인 대화로는 타인과 깊이 소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영혼의 대화를 원한다. 눈빛을 교환하고 가슴을 달래는 대화를. 그래서일까?

최근 서로의 감성을 공유하는 모임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은 빌딩 숲 뒷골목부터 젖어드는 어스름한 그림자를 밟으며 자신만의 밀실을 찾아 문을 두드린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광장에서 받았던 외로움과 상처를 밀실에서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위로받고 싶은 것이다.

내가 찾은 인사동 살롱도 그런 밀실 중에 하나였다. 아늑한 공간에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했다. 인사동 살롱은 작은 목소리가 모여서 큰 목소리를 내고 시대의 문화 트렌드를 선도하는 지적인 커뮤니티였다. 사람들은 이곳에 모여 소통하고 알차고 유익한 공부를 함께하기도 했다. 또한 이곳은 느림의 미학을 배우고 실천하는 장이고 나눔의 플랫폼이기도 했다.

문화와 지성의 탄생: 살롱 문화는 17~18세기 유럽 귀족 문화의 산실이었다. 살롱에서는 그림과 음악, 문학이 있었고 토론과 학습이 진행됐다. 무엇보다 그곳은 사교의 공간이었다. 살롱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시대나 문화의 흐름을 선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원전 4~5세기 그리스 아테네의 젊은 귀족들은 스포츠를 통해서 몸과 마음과 정신력을 일깨우며 지적인 문화 모임을 가졌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저서 『향연』을 보면 당대 지식인은 와인을 마시며 정치, 문화, 철학 주제로 담론과 토론을 즐겼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는 지식인과 예술가들의 대화의 장이었던 플라자(Plaza)와 포럼(Forum)가, 르네상스 시대에는 종교인들과 지식인들이 예술가들과 함께 아름다운 산문과 시, 음악을 향유하던 무젠호프가, 17~18세기에는 프랑스의 살롱이 있었다.

살롱 문화를 어떻게 정의내릴 수 있을까? 한마디로 살롱에는 자유정신과 ‘카르페 디엠’이 있다. 하루의 삶 속에서 속박과 답답함을 느낄 때, 무엇을 갈망하고 갈증을 느낄 때, 그들은 자유정신이 살아 숨 쉬는 살롱에서 해방감을 느낀다. 자유 정신 속에서 파괴성과 창조성이 공존한다.

파괴성은 언젠가는 자신에게도 닥칠 것이라는 불행에 대한 인식이다. 창조성은 이제껏 자신이 한 역할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사람들은 살롱에서 자유정신의 깊은 영혼의 소리를 통해서 성공에 대한 열망과 그것으로부터 매몰되지 않고 자신을 분리해 내는 능력을 배운다.

깊어가는 밤, 살롱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꽃핀다. 그곳에는 여러 사람들의 인생이 녹아 있다. 서로를 환대하며 편안하게 감정을 나눈다. 관계를 형성하고 발전시키는 살롱은 그 자체로 따뜻한 매개체다. 살롱 문화의 영향력은 과연 어디까지 미쳤을까?

살롱 문화의 영향력을 설명하기 위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로코코 양식이다. 18세기 유럽에서 성행한 로코코 양식은 조개무늬 장식을 뜻하는 로카이유에서 유래됐다. 로코코는 귀족 계급이 중심이 되어 꽃을 피운, 화려하고 섬세한 예술이다. 그리고 로코코 중심에는 살롱이 자리하고 있었다. 로코코 양식이 화려하게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은 살롱에서의 치열한 탐구와 토론 때문이었다.

당시 유럽에는 수많은 살롱이 있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살롱은 퐁파르두 부인의 인문학 살롱이다. 퐁파르두는 무관의 여왕, 루이 15세의 총애를 받은 정부였다. 그는 많은 예술가를 지원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몽테스키외 등 가난한 사상가를 지원해서 『백과사전』을 집필하게 했다. 그녀는 서민과 여성 의식을 일깨우는 역할을 한 인물로 역사에 기록됐다.

또한, 시대적 한계가 있었지만 주체적이고 진취적인 태도로 삶을 개척한 당당한 여성이기도 하다. 그녀가 운영하는 살롱 또한 그녀를 닮아서 철학과 유머와 지성이 넘쳤다. 그래서 그곳에서 시대를 이끄는 예술과 사상, 문화와 지성이 탄생했다. 이렇게 멋진 여성이 생전에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프랑수아 부셰가 그린 를 보면 된다.

프랑수아 부셰는 로코코 양식의 대표적인 화가이다. 부셰의 그림 주제는 매우 고전적이고 전원적이다. 게다가 관능적인 그림과 장식적인 알레고리로 18세기에 가장 유명하고 장식적인 예술가로 이름을 떨쳤다. 또한, 그는 자신의 후원자인 마담 퐁파두르의 초상화를 멋지게 그림으로써 그녀의 총애와 후원을 아낌없이 받았다.

퐁파두르 부인이 싹을 틔우고 유럽에서 만개한 살롱 문화는 현대에 와서도 명맥을 이어갔다. 예를 들면, 현대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는 살롱 문화의 수혜를 입었다. 그는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력이 있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데 그 비결이 뭘까? “제 통찰력의 비결은 어린 시절 집에서 열었던 파티입니다.” 어릴 때 그의 집에서는 매주 파티가 열렸다고 한다. 그의 부모는 관계 지향적인 사람들이었다. 아버지는 매주 정치인의 밤, 문학과 예술의 밤을 열었다. 어머니는 의학과 정신분석의 밤을 열어 당대의 수많은 석학을 초대하고 그들과 교류했다. 아이디어와 사상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훗날 그는 경영학의 대가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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