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호라이즌스, 새로운 지평을 향한 여정

도서출판 푸른숲 / 2020년 10월 / 537쪽 / 2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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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호라이즌스, 새로운 지평을 향한 여정

앨런 스턴, 데이비드 그린스푼 지음

저자 소개

앨런 스턴 - NASA의 명왕성과 카론과 카이퍼대 탐사 프로젝트를 이끈 뉴호라이즌스 호 탐사 미션의 수석 조사관. 행성 과학자이자, 우주 프로그램 집행자, 항공우주 컨설턴트, 작가인 그는 20여 개의 과학 우주 임무에 참여하거나 이끄는 등 미국 우주 탐사의 다양한 영역에서 최고 수준의 활동을 해왔다. 2016년 미국 우주학회 칼 세이건 기념상 등 수많은 상을 수상했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을 선정하는 ‘타임 100’에 두 번 이름을 올린 바 있다. 데이비드 그린스톤 - 우주생물학자이자, 여러 수상 전력이 있는 과학커뮤니케이터 겸 작가이고, 행성과학연구소 수석과학자다. 2013년 의회 도서관에서 우주생물학의 창립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NASA의 우주탐사 전략에 자문 역할을 하면서, 여러 행성 간 우주선 임무를 위한 과학 팀에 소속되어 있다.《뉴욕타임스》, 《슬레이트》,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등에 기고하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Earth in Human Hands』(2016)가 있다.

책소개

이 책은 명왕성 발견과 탐사 계획, 그리고 플라이바이(fly-by)이르기까지 총 26년에 걸친 명왕성 탐사의 모든 면을 알려준다. 탐사선 뉴호라이즌스를 지휘한 저자들은 방대한 기록과 기억을 정리해, 명왕성에 도달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우주 과학자들의 집념과 플라이바이(fly-by)라는 과학적 사건, 그리고 과학적 사명의 배후에 있던 수많은 과학자들과 NASA 내·외부까지 재미있게 전달한다.

요약본 본문

우주 대여행의 시작

시동을 위한 발차기

2006년 1월, 무게 약 453킬로그램의 자그마한 우주선이 로켓에 실려 플로리다 주 케이프커내버럴에서 발사되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먼 곳을 향한 가장 긴 탐사여행의 시작이었다. 우주시대 여명기에 존재가 알려졌으나 아직 인류의 발길이 닿지 않은 마지막 행성 명왕성을 탐사하기 위한 여행이었다. 뉴호라이즌스(New Horizons)라는, 딱 어울리는 이름을 지닌 그 우주선에는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수도 없이 들었던 탐사계획에 삶을 바친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의 꿈과 희망이 실려 있었다.

뉴호라이즌스 명왕성 탐사계획 책임자 앨런은 1957년 11월에 미국에서 조얼 스턴과 레너드 스턴의 장남으로 태어났는데, 앨런은 어렸을 때부터 과학, 우주 탐사, 천문학에 관심을 보였다. 12살 때 앨런은 텔레비전에서 뉴스 앵커가 NASA의 비행계획서를 들고 초창기에 발사된 아폴로 호의 착륙과정을 설명하는 모습을 보고, 계획서를 구하려고 NASA에 편지를 보냈지만, “자격을 인정받은 기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계획서를 보낼 수 없다는 답장이 오자 이 문제해결에 힘을 기울였다. 그래서 1년 동안 자료조사를 해서 130쪽 분량의 책을 손으로 썼다. 제목은 『무인우주선: 내부의 시각』이었다. 그런데 이 방법이 효과를 발휘했다. 앨런은 NASA에서 아폴로 호의 비행계획 일체를 받아봤을 뿐만 아니라, 휴스턴에서 NASA의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존 매클리시의 눈에 들게 되었다. 그는 앨런에게 아폴로 계획의 기술 관련 문서들을 꾸준히 보내주기 시작했다.

175년 만에 찾아온 기회

매클리시와 친분을 쌓던 그 시기에 《내셔널 지오그래픽》1970년 8월호에 무인우주선의 우주여행 이야기가 실렸는데, 그 기사에는 NASA가 계획하고 있는 탐사계획의 목록도 실려 있었다. 먼저 1971년에 화성을 향해 한 쌍의 궤도선이 발사될 예정이었다. 다음은 당시 태양계 외행성이라고 불리던, 광대한 미지의 영역을 향한 첫 번째 탐사계획이었는데, 이를 위해 파이어니어 10호와 11호가 1973년과 1974년에 목성에 도달한 뒤 여행을 계속해, 멀게만 느껴지는 1979년에 토성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 직후에는 매리너 10호가 금성을 이용해서 최초의 수성 여행에 나설 터였다. 우주선이 금성에서 사상 최초로 ‘중력의 도움’을 이용하는 계획이었는데, 그 뒤로 이 방법은 태양계 여행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재치 있는 요령이 되었다. 보충 설명하면, 행성의 중력을 이용하려면 먼저 우주선을 해당 행성과 거의 충돌할 것 같은 궤도로 쏘아 보낸다. 그러면 행성이 중력으로 우주선을 끌어당겼다가 다음 목적지를 향해 고속으로 쏘아 보내게 된다. 파이어니어 11호는 목성 플라이바이(fly-by) 중에 바로 이 방법을 이용해서 토성까지 여행을 계속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아무 때나 이 방법을 쓸 수는 없다. 각각 자기만의 궤도에서 움직이며 태양의 주위를 도는 행성들이 지구에서부터 명왕성까지 줄에 꿰인 구슬처럼 일정한 위치에 와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주 잠깐만 나타났다 사라지는 비밀통로처럼 행성들이 이렇게 늘어서는 것은 175년마다 한 번씩 있는 일이다. 이런 희귀한 기회가 마침 곧 다가올 참이었으므로,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여기에 ‘대여행’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20세기가 이루지 못한 꿈

당시 다른 행성으로 향하는 우주선들은 대부분 한 쌍으로 발사되었다. 한 대가 혹시 실패할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NASA는 대여행을 기획할 때에도 똑같은 우주선을 두 쌍 만들어 각각 행성 세 개를 방문하게 할 예정이었다. 1977년에 발사될 한 쌍은 목성을 플라이바이한 뒤 거기서 얻은 힘을 이용해 토성과 명왕성으로 향할 것이다. 1979년에 발사될 다른 한 쌍의 목적지는 목성,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이었다. 이는 훌륭한 계획이었지만 보내는 비용이 너무 비쌌다. 작업에 드는 비용은 지금의 화폐가치로 60억 달러가 넘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당시 NASA의 예산은 줄어드는 추세였기 때문에 결국 이 웅대한 대여행은 계획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취소되고 말았다.

과학계는 비용을 줄여 대여행 계획을 구출하는 일에 급히 나섰다.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이 규모를 줄인 ‘매리너 목성-토성’ 탐사계획이었다. 지금의 화폐가치로 25억 달러 정도 예산이 드는 이 쌍둥이 우주선 탐사계획은 1972년에 승인받았고, 공모를 통해 정해진 이 우주선의 이름은 보이저 1호와 2호였다. 1970년대 말에 발사된 두 보이저 호는 발사 이후 40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보이저 2호는 천왕성과 해왕성 쪽으로 움직였지만 명왕성과는 방향이 맞지 않았고, 보이저 1호는 명왕성 쪽을 향했다. 그렇다면 왜 보이저 1호가 계속 명왕성으로 가지 않았을까?

보이저 호가 거둘 수 있는 커다란 성과이자 이 탐사계획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공식적인 척도 중 하나는 토성의 독특하고 정체 모를 거대 위성 타이탄 탐사였다. 타이탄의 대기는 심지어 지구 대기보다도 두텁고,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와 마찬가지로 주로 질소로 구성되어 있다. 또 타이탄의 대기에는 탄소가 함유된 기체 형태의 메탄이 포함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이런 사실들을 1944년에 알아낸 천문학자 제러드 카이퍼는 현대 행성학의 개척자 중 한 명이다. 하지만 타이탄 탐사에 문제가 하나 생겨서 다른 계획을 어렵게 포기해야 했다. 그로 인해 인류가 20세기에 명왕성을 방문할 기회가 사라진 것 또한 사실이다. 명왕성 방문은 다른 시기에 다른 세대가 해야 하는 일로 남았다. 

“명왕성 연구를 해보지 않겠나?”

앨런은 1978년 12월 텍사스 대학에서 학부를 마쳤고, 보이저 호가 목성에 접근하고 있던 1979년 1월항공우주공학 대학원 과정을 시작했다. 그리고 학위를 마친 뒤에는 행성 대기 전공으로 두 번째 석사과정을 시작했다. 18개월 뒤 두 번째 석사학위를 손에 쥔 앨런은 콜로라도로 가서 항공우주업계의 거대기업인 마틴 마리에타에서 NASA 및 국방 프로젝트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그러나 18개월 뒤 그곳을 떠나 콜로라도 대학에서 핼리혜성의 1986년 출현 때 혜성의 구성을 연구하기 위해 우주왕복선에서 위성을 발사하는 계획의 프로젝트 과학자-NASA에서 수석연구자(이하 PI)로 불리는 프로젝트 리더의 수석보좌-가 되었다. 나중에는 탄도비행 탐사계획을 진행하고, 우주에서 핼리혜성의 사진을 찍기 위해 우주왕복선에서 여섯 차례 실시될 실험도 이끌었다. 그런데 1986년 1월에 비극이 일어났다.

우주왕복선 챌린저 호가 발사된 지 73초 만에 폭발해 그 안에 타고 있던 우주비행사 일곱 명이 모두 목숨을 잃은 사건이었다. 이 사고는 앨런이 3년 동안 푹 빠져 있었던 두 가지 프로젝트, 즉 핼리혜성의 구성을 연구하기 위한 위성과 그가 PI로 처음 맡은 실험까지 파괴해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NASA가 추진하던 다른 계획들도 많이 박살났고, 우주왕복선 계획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앨런은 우주왕복선이 하늘을 다시 날게 될 때까지는 우주 탐사 분야에서 새로운 일이 추진될 것 같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고,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 1987년 1월에 콜로라도 대학 천체물리학과 박사과정에 등록했다. 그는 박사논문을 위해 혜성의 기원을 연구했다. 하지만 이미 명왕성이 그의 삶에 들어온 뒤였다. 그가 처음 과학연구를 제대로 맛본 것이 명왕성을 통해서였으므로, 1980년대 후반에 대학원을 다니면서 벌써 명왕성 탐사만을 위해 우주선을 보내는 것이 가능할지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명왕성 탐험가들

명왕성을 사랑하는 사람들

명왕성은 1930년에 정식으로 이 분야를 공부하지 않은, 캔자스 주의 시골 청년 클라이드 톰보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는 동네 도서관에서 천문학과 행성에 관한 책을 죄다 찾아 읽었으며,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이 화성에서 ‘발견’해서 널리 알린 ‘운하’에 대한 논란을 주시했다. 또 해왕성 너머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행성이 하나 더 있다는 로웰의 예언도 글로 읽어서 알고 있었다. 이후 클라이드는 로웰이 애리조나 주 플래그스태프의 산 위에 설립한 천문대에서 그의 조수로 일하면서 명왕성을 발견했다.

명왕성에는 파헤칠 수수께끼가 아주 많았으므로, 과학자들 사이에 단호한 의지로 명왕성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무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1978년 6월에는 미국의 천문학자 제임스 짐 크리스티가 명왕성을 찍은 사진들 중 일부에서 ‘융기’를 발견했는데, 크리스티가 발견한 것은 명왕성의 자전주기와 정확히 일치하는 공전주기를 지닌 위성이었다. 이 행성에 크리스티는 카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명왕성이 태양 주위를 도는 동안 카론의 궤도 기울기는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따라서 가끔 아주 잠깐 동안 카론이 (우리 관점에서 봤을 때) 명왕성 바로 앞을 지나간 뒤 명왕성 뒤를 지나가는 행동을 되풀이할 때가 있다. 카론이 이런 위치에 오는 기간은 지구시간으로 248년이나 되는 명왕성의 공전주기 중 겨우 몇 년에 불과한데, 카론이 발견된 지 겨우 몇 년 뒤에 놀랍게도 바로 그 위치에 오게 되었다.

이 둘이 서로를 가리는 현상은 1985년부터 시작되어(몇 년의 오차는 있을 수 있다) 약 6년 동안 계속될 것 같았다. 이 ‘상호 이벤트 시즌’ 중에 둘 중 하나가 상대를 가리는 현상은 3.2일마다 한 번씩 일어날 터였다. 명왕성을 사랑하는 사람들 중에서 마크 뷔라는 젊은 과학자는 이 상호 이벤트를 관측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1985년 2월에 이벤트의 시작을 처음으로 감지한 사람은 리처드 릭 빈젤이라는 과학자였다. 이렇게 명왕성과 카론이 3.2일마다 한 번씩 서로에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이벤트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더 많은 학자들이 관측에 뛰어들어 새로운 결과들을 홍수처럼 쏟아냈다.

언더그라운드

앨런은 이런 요소들을 모두 감안해서, 명왕성이야말로 다음 탐사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행성학자들 사이에서 명왕성 탐사에 대한 지지를 얻어낼 수 있는지 확인해보기에 마침 시기도 좋은 것 같았다. 당시 활발하게 활동하는 행성학자는 약 1000명 수준이었는데, 그중 대부분이 매년 봄과 겨울에 열리는 미국 지구물리학회(이하 AGU) 회의에 참석했다. 일주일 동안 열리는 이 학회에서 학자들은 각각 다양한 주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세션’에 참가하곤 했다. 앨런은 동료 몇 명과 함께 명왕성에 관해 새로 발견된 사실들을 중심으로 전문적인 세션을 조직하기로 하고, 이 세션에 참여할 다른 과학자들을 모으기 위해 젊고 유능한 영국의 행성학자 프랜 배지널에게 도움을 청했다. 프랜은 앨런의 열렬한 권유로 명왕성 연구보험에 몇 번 참석한 뒤, 곧 ‘명왕성 병’에 걸리고 말았다.

랠프는 뉴멕시코의 샌디아 국립연구소(핵무기를 개발하는 곳)에서 한동안 ‘어두운 일’을 한 뒤 다시 MIT로 돌아와 교수가 되었는데, 다음은 랠프의 회상이다. ‘앨런의 강력한 권유로 프랜과 나는 1989년의 그 AGU 학회에 명왕성과 태양풍 사이의 상호작용 가능성을 다룬 초록을 제출했다. 프랜이 발표자로 나섰고, 우리 둘이 함께 논문을 썼다.’ 랠프의 격려와 협조를 받으며 프랜은 앨런과 함께 AGU 최초의 명왕성 세션을 준비했다. 그러고는 명왕성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 발표할 내용을 제출하고 명왕성 세션에 참석해서 명왕성 탐사계획에 관심을 표명해달라는 말을 퍼뜨렸다. 이런 요청을 받은 사람 중에 윌리엄 빌 매키넌이라는, 인습에 구애받지 않는 똑똑한 지구물리학자가 있었다. 빌은 1984년《네이처》지에 「트리톤과 명왕성의 기원에 관해」라는 중요한 논문을 발표했다.

AGU 세션의 준비는 순조로웠다. 많은 학자들이 발표자로 나섰고, 명왕성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거의 모두 참석하겠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앨런은 지금이야말로 NASA 본부에 명왕성 탐사계획의 씨앗을 심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AGU 학회가 열리기 전 주에 앨런은 NASA 본부의 브릭스를 만나 AGU에서 명왕성 세션이 열린다는 것, 명왕성의 새로운 학문적 가능성이 크다는 것, 명왕성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브릭스에게 알린 뒤 이렇게 물었다. “보이저 호의 여행도 끝나가고 있는데, 태양계 탐사를 완수하는 건 어떻습니까? 명왕성에 탐사선을 보내는 방법을 연구하는 데에 자금 지원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브릭스는 놀랍게도 주저 없이 곧장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탐험단을 꾸리다

명왕성 탐사선 뉴호라이즌스 호 계획은 1989년 5월의 어느 날 밤 볼티모어의 리틀이털리에 있는 평범한 이탈리아 식당에서 시작되었다. 앨런과 프랜은 명왕성 세션이 있던 날 저녁에 핵심인물들의 만찬을 기획했는데, 명왕성 탐사선 발사계획을 앞으로 어떻게 추진해나갈지 토의하기 위해서였다. 앨런, 프랜, 마크, 랠프, 빌. 그 밖에 아홉 명의 과학자가 그 자리에 참석했다. 그날 저녁식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능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명왕성 탐사야말로 어떻게든 반드시 실행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라는 확신을 공유했다. 그들이 그날 밤부터 명왕성 언더그라운드(The Pluto Underground)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사실 그 이름이 언제 생겨났는지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은 없지만, 하여튼 여러모로 그들에게 잘 맞는 이름이었다.

죽어도 죽지 않는

거인들과 맞서 싸우기

이후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 NASA가 명왕성 탐사 팀을 선정하기 위해 경연을 열었다. 앨런의 APL 팀 외에 4팀이 더 명왕성 탐사 제안서를 준비하고 있었다. 가장 만만찮은 상대인 두 팀은 JPL 소속인데, 그중에 소더블롬은 행성지질학자로 예전에 보이저 호 카메라 팀에서 얼어붙은 위성들에 대한 연구를 이끌었다. 또 다른 PI인 래리 에스포지토는 NASA의 토성 궤도선 카시니 호에 실린 자외선 분광계의 PI이었고, 대학에서 행성학을 가르치는 교수였다. 앨런은 자신이 이런 거인들과 겨루기엔 경험이 적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의 팀이 최고의 제안서를 내놓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이름을 지어주세요 / 플레이 오프

제안서를 쓰는 주에 아주 중요한 일이 대두되었다. 제안서와 탐사선의 이름을 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에 앨런의 팀은 에스포지토가 맡은 JPL 팀이 이름을 POSSE로 정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명왕성 외행성 탐험가(Pluto Outer Solar System Explorer)’의 머리글자를 딴 이름이었다. 앨런은 보다 희망적인 이름을 원했다. 다음은 앨런의 말이다. ‘나는 우리가 많은 의미에서 새로운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뉴(new)’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결정했다. 그리고 어느 날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는데, 우연히 서쪽 지평선(horizon)의 로키산맥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뉴호라이즌스.’ 우리는 명왕성과 카론과 카이퍼대를 탐사하기 위해 새로운 지평선을 찾고 있었고, PI가 주도하는 최초의 외행성 탐사계획을 추진하는 것 역시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는 작업이었다. 뉴호라이즌스는 부르기도 쉽고, 기억하기도 쉬웠다.’ 그렇게 이름이 정해졌다. 그 뒤 뉴호라이즌스 팀과 함께 결승에 진출한 팀은 JPL의 POSSE였다. 두 팀은 이후 석 달 동안 정신없이 결승 레이스를 벌이며 상세한 탐사계획을 작성해야 했고, 결국 APL의 ‘NEW HORIZONS’가 승리했다.

초음속으로

마지막 행성을 향하는 최초의 탐사선 / 과학소설 같은 현실

발사 최적기가 점차 다가오는 동안, 뉴호라이즌스 호는 케이프커내버럴 발사단지 41에서 거대한 아틀라스 로켓 위에 앉아 있었다. 날아갈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 하지만 날씨 때문에 발사시도가 두 번 중단된 뒤, 2006년 1월 19일 목요일에 다시 일정이 잡혔다. 오후 1시 8분에 첫 번째 시도가 예정되었다. 미국 동부 시간이다. 10초가 남았을 때 사람들이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함께 큰소리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넷…… 셋…… 둘…… 하나!” 시계의 숫자가 마침내 0이 되자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밝은 빛이 아틀라스 아래에서 터져 나오더니, 로켓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장내 아나운서도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NASA의 뉴호라이즌스 호가 솟아올라 명왕성과 그 너머까지 10년간의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앨런은 ASOC(Air Support Operations Center)의 발코니에서 자식 같은 우주선이 빛을 뿜으며 하늘을 찌를 듯 똑바로 올라가는 모습을 혼자 지켜보았다.

발사 팀은 로켓의 시스템과 궤적을 세심하게 모니터하고, 계획과 실제 수행도를 비교하며 발사의 중요한 고비가 되는 이정표들을 차례로 하나씩 조용히 지워나갔다. 뉴호라이즌스 호는 엄청난 속도로 대서양을 가로지르고, 그 다음에는 북아프리카를 가로질렀다. 고도는 1600킬로미터가 넘었다. 영원히 우주에 머물게 될 우주선의 첫 번째 한 시간이 이렇게 지나갔다. 메릴랜드의 MOC(지상 통제 센터)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앨리스에게 진실의 순간은 몇 초 뒤에 찾아왔다. 뉴호라이즌스 호가 통신기를 켜서 보낸 신호가 APL에 수신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앨리스는 이렇게 회상한다. “발사 때 우리는 환호했지만, 신호가 수신되었을 때는 더 크게 환호했다. 우리는 이제 탐사를 실행할 수 있었다.”

목성, 그리고 그 너머의 우주

드디어 시작된 우주비행

앨리스의 팀은 우주선을 점검하고 제어하는 작업에 곧바로 뛰어들었다. 처음 몇 주 동안 우주선에 탑재된 모든 시스템(통신, 유도, 온도조절, 추진 등)에 대해 철저한 시험이 실시되었다. 백업 시스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수십 가지 시험절차를 무선신호로 우주선에 올려보내야 하는 힘든 과정이었다. 한 가지 테스트가 끝나고 나서 그 테스트의 데이터가 수집되면, APL 엔지니어링 팀은 혹시 아주 미세한 문제나 뜻하지 않은 현상이 있는지 그 데이터를 샅샅이 뒤졌다. 이렇게 점검이 이뤄지는 동안에도 뉴호라이즌스 호는 벌써 지구에서 수백만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었다.

48억 킬로미터 여행길

뉴호라이즌스 팀은 2006년에 할 일이 많았다. 거의 10년에 이르는 명왕성 여행은 특징이 구분되는 두 개의 순항 단계로 나눠져 있었다. 그리고 각각의 단계마다 해야 할 일과 진행 속도도 달랐다. 13개월 동안 목성을 향해 질주하는 여정 중에는 우주선 제어, 코스 수정, 장비 제어와 조정, 목성 플라이바이 계획 작성 등 수많은 일들이 들어 있었다. 목성 다음에 명왕성까지 가는 8년 동안에는 우주선이 대부분의 기간을 동면에 들어가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지상 팀은 그 기간 동안 명왕성 플라이바이 계획을 짤 생각이었다. 몇 년 전, 코클린이 뉴호라이즌스 호 프로젝트 매니저 자리에서 물러나고 글렌이 후임으로 앉았을 때, 앨런은 그 두 사람을 기리는 의미에서 이 두 비행단계의 이름을 지었다. 그래서 목성까지 가는 여정은 ‘톰의 순항’이 되고, 명왕성까지 가는 여정은 ‘글렌의 활주’가 되었다.

목성 플라이바이

2006년 말에 해야 하는 가장 대규모 작업은 2007년의 목성 플라이바이 계획이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3가지였다. 첫째, 목성에서 우주선이 정확한 지점을 정확한 순간에 통과해야만 명왕성까지 길을 잡는 데 필요한 중력의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둘째, 우주선이 명왕성과 만나기 전에 조우하는 유일한 천체가 목성이라서, 실제로 행성을 만나 플라이바이를 하면서 우주선의 시스템을 모두 돌려보고 행성과 위성들에 장비를 시험해볼 기회도 이때뿐이었다. 셋째, 이 플라이바이(NASA의 카시니 호가 2000년 토성으로 가는 길에 목성을 스쳐 날아간 뒤 처음이다)를 이용해서 이 행성과 이 행성의 거대한 위성들, 그리고 거대한 자기권(磁氣圈)에 대해서도 더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후 뉴호라이즌스 호는 2007년 1월부터 6월까지 목성에 차츰 접근해서 플라이바이를 시행한 뒤 멀어지는 동안 여러 관측을 하면서 눈부신 성공을 거뒀다. 내비게이션 팀은 명왕성 조준점으로 정확히 우주선을 조종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또한 우주선과 장비에 대한 수많은 시험도 순조롭게 진행되어 광범위한 관측 데이터를 수집했고, 이 자료들은 저명한 학술지인 《사이언스》의 표지를 장식했다. 

동면하는 우주선

2006년 1월에 TV를 산 사람이 2015년 중반에도 그 TV가 멀쩡히 작동하기를 기대한다고 가정해보자. 그 9년 반 동안 TV를 계속 켜놓은 경우와 2015년까지 거의 꺼둔 채로 가끔 점검을 위해서만 켠 경우 중 어느 쪽이 더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까? 후자의 경우가 더 성공 가능성이 높다. 뉴호라이즌스 팀이 목성 통과 이후 맞닥뜨린 또 하나의 큰 과제, 즉 우주선의 동면도 같은 생각에서 구상된 것이었다. 동면은 뉴호라이즌스 호에서 선구적으로 시도된 진정한 혁신 중 하나다. 비행 중 동면 기간이 한 번에 몇 달씩 지속될 때가 대부분이므로, 뉴호라이즌스 팀은 우주선에 문제가 생기지 않게 동면시간을 조금씩 늘려가는 조심스러운 계획을 짰다. 이후 2007년부터 2014년까지 우주선이 동면상태에 들어갈 때마다 지상통제 팀은 우주선 돌보기에서 벗어나 명왕성 플라이바이 계획이라는 작업에 집중했다.

명왕성 전투계획

소수정예의 작전계획

뉴호라이즌스 호의 제안서를 작성할 때, 앨런은 명왕성과 그 위성들 연구의 다양한 측면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분야별 테마 팀으로 과학 팀을 구성했다. 그 덕분에 다른 행성 탐사계획 때 자주 등장한, 장비 팀들이 서로 전쟁을 벌이는 상황을 막을 수 있었다. 뉴호라이즌스 호의 테마 팀 넷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지질학 및 지구물리학 팀(지구와 다른 행성의 지질을 연구하며 얻은 연구기법과 통찰력을 명왕성의 위성은 물론 명왕성의 표면과 내부의 구조 및 움직임을 이해하는 데 적용한다)은 NASA 에임스 연구 센터의 제프 무어가 이끌었다. 둘째, 구성성분 팀(명왕성과 그 위성들의 표면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파악한다)은 로웰 천문대의 윌 그런디가 이끌었다. 셋째, 대기 팀(명왕성 대기 측정에 집중한다)은 SwRI의 랜디 글래드스턴이 이끌었다. 넷째, 플라즈마와 입자 팀(명왕성과 그 위성들 및 태양풍 사이의 상호작용, 그리고 명왕성 대기에서 이온화된 상태로 빠져나오는 기체들의 구성성분을 연구한다)은 콜로라도 대학의 프랜이 이끌었다. 이 네 팀은 모두 플라이바이 계획과 관련해서 레슬리의 지휘를 받았으며, 사람들은 이들을 하나로 모아 명왕성 조우계획(이하 PEP) 팀으로 불렀다.(가끔 농담으로 응원단을 뜻하는 ‘PEP squad’라고 불리기도 했다)

뉴호라이즌스 호의 다른 여러 팀도 플라이바이 계획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먼저 우주선 지상통제 계획은 앨리스가 이끌었고, 탐사 설계와 내비게이션은 마크 홀드리지가 이끌었다. 우주선 엔지니어링 책임자는 크리스였다. 프로젝트 매니저 글렌은 이 모든 작업들과 팀들을 잘 이끌어서 일정과 예산을 넘기지 않게 했다. 앨런은 명왕성과 조우계획을 짜는 동안 몇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다. 먼저 장비 PI로서 앨리스와 랠프 장비를 지휘했고, 레슬리의 PEP 실행위원회(여기에는 캐시 올킨과 존 스펜서도 포함되었다)에도 참석했다. 그리고 탐사계획 PI로서 플라이바이 계획, 비상계획, 팀 훈련과 관련된 모든 일을 최종적으로 검토, 비평, 승인하는 일을 했다.

야박한 오차범위

뉴호라이즌스 팀의 상세한 플라이바이 계획을 짜기 전에 결정해야 하는 중대한 문제가 두 가지 있었다. 우주선이 명왕성과 그 위성들을 정확히 언제 스쳐 날아갈 것인가. 그리고 그때의 거리는 정확히 얼마가 되어야 하는가였다. 7월 14일로 날짜를 정한 레슬리 팀은 플라이바이 때 가장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거리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명왕성의 모든 위성들의 궤도 안으로 깊숙이 들어간 지점인 1만 2480킬로미터 거리가 네 과학 팀의 상충하는 욕구를 최대한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계산 결과, 플라이바이 때 이 거리까지 접근해서 원하는 성과를 거두려면(원하는 표적이 중심에 잘 찍힌 사진을 얻으려면) 우주선이 9.5년에 걸친 여행 끝에 이 지점에 도착하는 시각에 허용되는 오차가 최대 9분이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뉴욕까지 미국 대륙을 가로지른 비행기가 착륙 예정시각에서 32밀리세컨드(약 0.032초) 이상 벗어나면 안 된다는 말과 똑같았다. 엄청나게 어려운 주문이었다.

변방에 접근하다

마지막 동면에서 깨어나다

2014년이 끝날 때까지 뉴호라이즌스 호는 여전히 길게 잠든 채로 우주를 날았다. 해왕성을 통과한 뒤 12월까지 우주선이 날아간 거리는 1억 6000만 킬로미터가 넘었다. 그러나 지구의 우주선 팀은 동면하지 않았다. 그 몇 달 동안 그들은 최종 플라이바이 시뮬레이션을 시행하고, 엄청나게 몰려올 기자들과 대중의 관심에 대처할 계획을 세우고, 곧 명왕성과 그 위성에서 수집될 데이터를 분석할 소프트웨어 툴을 수십 개나 만들고, 2015년과 거의 동시에 시작될 플라이바이 초기 접근 시퀀스를 코딩해서 시험하는 작업을 하느라 정신없이 움직였다. 뉴호라이즌스 호는 2014년 12월 6일, 정확히 예정대로 동면에서 깨어날 것을 자신에게 명령했다. 이제 플라이바이까지 남은 시간은 겨우 6개월이었다.

스윙댄스 추는 명왕성과 카론

명왕성 플라이바이는 2015년 1월 15일에 시작되었다. 이날 우주선은 10여 개의 장거리 접근 명령 시퀀스 중 첫 번째 시퀀스를 실행하기 시작했다. 4월 초까지 이어질 시퀀스였다. 명왕성은 아직 2억 4000만 킬로미터나 떨어진 작은 점에 불과해서 뉴호라이즌스 호에 탑재된 관측 장비 대부분이 그 점을 탐지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플라즈마와 먼지를 관측하는 장비인 SWAP, PEPSSI, SDC를 이용해서 명왕성 궤도 근처의 환경을 24시간 내내 측정하는 플라이바이 관측 활동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한편 뉴호라이즌스 호는 LORRI 망원경 촬영장치로 명왕성과 카론이 밝은 섬처럼 찍힌 사진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LORRI가 일주일 동안 이 두 천체가 서로의 궤도를 한 바퀴 조금 넘게 도는 모습을 촬영한 사진들이 동영상으로 연결되었다. 이 영상에 따르면, 명왕성이 항상 중심에 위치하고 카론은 그 주위를 돌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두 천체가 보이지는 않지만 명왕성에 가까운 균형점을 중심으로 서로의 주위를 돌고 있다. 명왕성과 카론이 이렇게 요요처럼 왔다갔다 하는 모습은 목성이나 토성 같은 거대행성 주위에서 위성들이 도는 모습을 찍은 동영상과 뚜렷이 구분되었다. 2015년 4월 초, 뉴호라이즌스는 명왕성에서 1억 6000만 킬로미터 남짓한 거리에 있었다. 뉴호라이즌스 호에서 볼 때 명왕성의 밝기가 충분했으므로, 랠프의 컬러카메라가 처음으로 명왕성과 카론을 탐지할 수 있었다. NASA는 이 첫 번째 컬러사진을 공개했고, 대중의 반응은 또 폭발적이었다.

마지막 위기

코어 시퀀스 붕괴 / 통신 두절, 그리고 내려앉은 침묵

휴일인 7월 4일이 낀 주말에 뉴호라이즌스 팀원들은 휴식을 취하면서 플라이바이 전 마지막으로 힘을 충전했다. 그날 오후 일찍 앨리스는 팀원 몇 명과 함께 MOC에서 뉴호라이즌스 호가 코어 시퀀스를 잘 받았다고 보고하는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1시, 예정된 시각에 명령 시퀀스 수신을 확인하는 첫 번째 신호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음은 앨리스의 말이다. ‘모든 일이 아무 문제없이 잘 진행되다가 1시 55분쯤 갑자기 우주선과의 통신이 완전히 끊겨버렸다. 그렇게 끊긴 연락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신호가 끊겼을 때 열에 아홉은 지상기지가 문제의 원인이다. 그래서 우리는 레일리아의 지상기지에 확인했는데, 지상 시스템에서는 모든 것이 괜찮은 상태였다.’ 그렇다면 문제는 지구에 있지 않다는 뜻이었다. 우주선 자체가 문제였다. 엘리스는 낯선 두려움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글렌은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집에 있는데 앨리스가 전화를 걸어와서 이렇게 말했다. “방금 연락이 끊겼어요.” 연구소까지 약 10분 거리에 살고 있던 나는 그날 연구소 최단시간 도착 신기록을 세웠다. 앨런에게 전화했더니 그는 APL에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가 실제로 나보다 먼저 MOC에 도착했다.’

신호가 끊기기 전에 우주선이 보낸 자료가 있기 때문에, MOC에 도착한 크리스의 엔지니어 팀은 그 자료를 단서로 작업을 시작했다. 그들이 찾아낸 중요한 사실 하나는, 우주선의 신호가 끊기기 직전에 메인 컴퓨터가 두 작업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두 작업 모두 컴퓨터에 부담이 되는 작업이었다. 혹시 이 부담스러운 작업 두 개를 함께하다가 컴퓨터에 과부하가 걸려서 재부팅이 된 걸까? 브라이언 바우어가 내세운 가설이 이거였다. 브라이언은 앨리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약 제 생각이 옳다면, 우주선은 백업 컴퓨터를 사용해 다시 작동하기 시작할 겁니다. 그러면 앞으로 60~90분 뒤에 뉴호라이즌스 호가 백업 컴퓨터로 돌아가고 있다는 신호가 들어올 거예요.”

엔지니어들, 에이스들, 앨리스, 글렌, 앨런은 그 길고 긴 시간을 기다리며 혹시 브라이언의 가설이 틀렸을 경우를 대비한 긴급 대책을 세웠다. 그러나 90분 뒤 정말로 뉴호라이즌스 호에서 백업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가 들어왔다. 통신이 회복되었으니, 우주선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도 사라졌다. 그러나 위기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을 뿐이었다.

깨진 달걀 이어 붙이기 / 24시간 비상대기 / 복구

사람들은 우주선이 재부팅되면서 백업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 지금까지 메인 컴퓨터로 업로드된 플라이바이 명령 파일들이 모두 지워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코어 시퀀스를 다시 업로드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코어 시퀀스를 돌리는 데 필요한 보조 파일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점이 더 심각한 문제였다. 무려 지난 12월부터 업로드한 그 파일들도 모두 다시 보내야 했다. 앨리스는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회복해본 경험이 없었다. 7월 7일에 시작 예정인 플라이바이 일정에 맞춰 그 일을 다 해낼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48억 킬로미터나 떨어진 지구에서 깨진 달걀의 조각들을 단 사흘 만에 다시 이어 붙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 일을 해내지 못하면, 시간이 흐를 때마다 플라이바이 중에 실행하려던 근접관측 계획을 수십 가지씩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지상통제 센터와 우주선 사이를 오가는 데 아홉 시간이 걸리는 통신신호를 통해 모든 작업을 원격조종해야 했다. 앨런과 글렌은 회의를 시작하면서, 뉴호라이즌스 팀만큼 훌륭한 우주선 팀은 일찍이 본 적이 없으며, 이 복구 작업을 해낼 수 있는 팀은 지금 이 방에 모여 있는 사람들뿐이라고 말했다. 그다음에는 앨리스가 나서서 복구 작업을 어떻게 진행할지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플라이바이 코어 시퀀스는 7월 7일 정오에 시작되어야 했으므로, 앨리스의 팀은 그때까지 자신들이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통신이 오가는 데 필요한 아홉 시간으로 나눴다. 아홉 시간은 각각의 명령절차를 우주선에 보내고 그것이 잘 작동한다는 우주선의 연락을 받는 데 필요한 시간이었다. 지상에서 해야 할 일을 모두 헤아려본 결과, 코어 시퀀스가 시작되는 7월 7일 한낮까지 우주선과 통신을 주고받을 기회는 딱 세 번뿐이었다. 그렇다면 복구 작업을 3단계로 나눠야 했다.

첫째, 우주선에 응급통신을 정상통신으로 복구하라고 지시한다. 그러면 통신 속도가 100배로 빨라져서 나머지 복구 작업을 정해진 시간 안에 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추산에 따르면 이 첫 번째 단계에서 명령을 만들어 시험하고 뉴호라이즌스 호에 보낸 뒤 성공했다는 확인신호를 받는 데에만 약 열두 시간이 걸렸다. 시간은 계속 흘렀다. 째깍째깍. 두 번째 단계에서는 우주선에 메인 컴퓨터로 재부팅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플라이바이 명령을 코딩된 대로 사용하는 데 필요한 일이었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코어 플라이바이 파일을 모두 복구하고 플라이바이 일정을 가동한다.

이렇게 복구계획이 완성된 때는 자정이 가까운 시각이었다. 연락이 끊긴 때로부터 벌써 열 시간이 넘게 훌쩍 지난 뒤였다. 뉴호라이즌스 팀은 우주선과 통신을 주고받는 아홉 시간 주기를 중심으로 며칠 동안의 일과를 구축했다. 잠은 아주 조금만 자고, 대신 정신력으로 버텼다. 지상통제 센터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4시간 내내 깨어 있어야 했고, 팀원들은 이 요구를 수행했다. 그렇게 해서 7월 7일 오전 후반에 겨우 복구 작업이 모두 완료되었다. 코어 시퀀스를 가동해야 하는 시간까지는 겨우 네 시간이 남아 있었다.

드디어 공연 시작

명왕성이 보낸 하트

근접 플라이바이를 앞둔 주에 지구로 전송되는 사진에서 명왕성이 점점 커지고 선명해지면서 오랫동안 짐작만 하던 일들이 밝혀졌다. 탐사 팀의 과학자들은 새로 전송되는 사진에서 패턴들이 드러나자 지금까지 인류가 항상 해왔던 것처럼 거기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적도 근처에 어둡고 긴 지역이 나타났을 때는 만화에 나오는 고래와 닮았다는 이유로 ‘고래’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 다음에는 우주선이 스쳐 날아가게 될 반구에서 가장 밝고 넓은 지역이 자전주기에 따라 다시 카메라에 등장했다. 앨런이 처음에 ‘인도’라고 명명했던 그 지역이 전에 봤을 때보다 이번에는 훨씬 더 크게 보였다. 또한 모양도 더 둥글어졌고, 북쪽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NASA의 언론 담당자 로리 캔틸로는 그것을 보자마자 이렇게 물었다. “저기 밝은 지역이 하트 모양 같지 않아요?” 그녀가 이 말을 하자마자 그 생각이 사람들의 머리에 박혀버렸기 때문에 정말로 그 지역이 하트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다음 날 NASA가 〈명왕성에 하트가 있다〉는 내용의 보도 자료를 내놓자 순식간에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

잭팟 등장

7월 13일 월요일 자정이 가까웠을 때, NASA의 DSN에 뉴호라이즌스 호가 보낸 귀한 자료가 수신되었다. 뉴호라이즌스 호가 미처 탐지하지 못한 파편에 맞아 망가지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귀한 과학적 성과를 조금이라도 확보하기 위해 보낸 위험대비 데이터, 즉 우주선이 최근접 지점을 지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전송한 최고의 데이터였다. 그 뒤로 하루가 넘도록 뉴호라이즌스 호는 명왕성 근처에서 데이터를 수집하느라 너무 바빠서 지구와 통신하기 위해 접시 안테나의 방향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 우주선은 이 시간 동안 명왕성 표면을 촬영하고, 표면 구성성분 지도를 작성하고, 대기를 연구한 뒤 명왕성의 거대 위성인 카론을 향해 방향을 돌려 사진을 찍고, 작은 위성 네 개도 잠깐 살펴보는 등 원래 목적인 탐사활동을 수행했다. 그 다음 30여 시간 동안에는, 명왕성과 위성을 합쳐 모두 6개의 천체 각각에 대해 예정된 약 236가지의 관측을 탑재된 7가지 장비 모두를 이용해서 시행했다.

새로운 지표면 스펙트럼, 대기 스펙트럼, 커다란 명왕성 사진이 포함된 위험대비 데이터는 7월 13일 자정 직전에 지구에 도착했다. 이 데이터 중에서도 으뜸은 명왕성의 한쪽 반구를 화면 한가득 찍은 흑백 사진이었다. 데이터를 전송하기 직전에 찍힌 이 사진은 나중에 뉴호라이즌스 호가 전송한 명왕성 사진들에 비하면 덜 상세한 편이었지만, 그래도 그때까지 지구로 전송된 모든 사진보다 세 배쯤 가까운 거리에서 찍은 것으로, 명왕성의 놀라운 모습을 최고 해상도로 보여주었다.

지구에서 가장 먼 도약

탐사된 명왕성

우주선이 명왕성에 실제로 가장 가까이 접근하는 순간은 7월 14일 화요일 오전, 미국 동부 시간으로 7시 49분 50초였다. 그러나 막상 이 순간이 왔을 때는 볼 것도, 새로 밝혀진 것도 없었다. 이렇게 중요한 순간치고는 이상한 일이었다. 이 순간 우주선은 데이터를 수집하느라 바빠서 지구와 통신을 주고받을 여유가 없었다. 우주선은 명왕성 표면에서 1만 3000킬로미터에 못 미치는 상공을 지나가면서 원래 목적이었던 자료들을 미친 듯이 주워 담고 있었다.

APL의 뉴호라이즌스 팀은 이 이정표를 축하하기 위해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카운트다운과 함께 이 순간을 보냈다. 카운트다운이 진행되는 동안 앨런은 앞장서서 군중들과 함께 10…… 9…… 8…… 하고 숫자를 외쳤다. 탐사 팀원들도 모두 잔뜩 몰려든 우주 팬들과 한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시간이 딱 1초 남았을 때, 엄청난 함성이 터지면서 온통 웃는 얼굴들과 정신없이 휘날리는 미국 국기가 사방을 가득 채웠다. 바로 그 순간 숫자가 0으로 바뀌고, 뉴호라이즌스 호는 먼 길을 달려와 만난 행성에 가장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했다가 계속 나아갔다. 명왕성에서 위험을 대비해 미리 보내온 그 사진, 겨우 한 시간 전에 인터넷으로 공개된 그 사진이 카운트다운 숫자가 떠 있던 거대한 전광판에 뜨자 마치 그 순간 자신들이 모두 명왕성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건물 안을 채웠다. 등골을 타고 전율이 흘렀다.

그날 엄청난 속도로 명왕성과 그 위성들을 스쳐 지나가면서 뉴호라이즌스 호는 도서관 하나를 다 채울 만큼 무시무시한 양의 데이터를 수집했다. 지구로 전송하는 데에만 16개월이 걸릴 분량이었다. 만약 뉴호라이즌스 호가 살아남는다면, 만약 플라이바이가 아무 문제 없이 끝난다면, 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긴 했지만, 과연 그렇게 될까? 우주선이 고향을 향해 전송한 메시지가 지구에 도달할 때까지는 열네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러니까 탐사 팀과 온 세상이 결과를 알 때까지 열네 시간…….

뉴호라이즌스 호가 보내준 장관들

다음 날 아침, 예정대로 명왕성의 여러 장소를 진정한 고해상도로 찍은 첫 사진들이 지구에 도착했다. 앨런은 오래전부터 고대하던 대로, 이제 《뉴욕타임스》 첫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정말로 다음 날 아침에 발행된 《뉴욕타임스》 1면에는 커다란 헤드라인과 함께 뉴호라이즌스 호의 소식이 실렸다. 그날 전 세계에서 발행된 500개나 되는 신문들도 마찬가지였다.

7월 15일 하루가 흘러가는 동안 첫 사진 못지않게 기가 막히는 고해상도 사진들이 들어와 과학 팀 컴퓨터에 쌓였다. 명왕성의 거대한 하트 중 서쪽 부분, 텍사스 주보다도 더 넓은 그 지역의 표면을 찍은 사진에는 복잡하고 기묘하게 얽힌 지질학적 패턴이 나타나 있어서, 평소 수다스러운 편인 뉴호라이즌스 팀 지질학자들이 말을 잃을 정도였다. 매끈하고 밝은 지역들 사이로 좁은 협곡이나 능선이 있는데, 뜨겁게 소용돌이치는 액체 표면에 나타나는 패턴처럼 모양이 어렴풋이 다각형인 것으로 보아 천천히 움직이는 대류환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표면온도가 화씨 영하 400도인 이 추운 곳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어쩌면 대류환 대신, 모종의 ‘다각형 크랙’인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명왕성 표면에서 뭔가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오랜 세월 동안 뭔가가 명왕성 표면에서 움직이며 모양을 바꾸거나 흘러가고 있었다. 다음은 앨런의 말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작은 행성은 정말로 놀라운 곳이구나.’ 지질학적인 복잡성이라는 측면에서 명왕성은 그보다 큰 많은 행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오히려 그들을 능가한다. 플라이바이 이전에는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해도 그런 구조를 머릿속으로 그려볼 수 없었다. 명왕성이 지질학적으로 어떤 특성을 지니고 있을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태양계의 에베레스트 등반

뉴호라이즌스 팀은 먼저 탐사에 나선 선배들을 기린다는 테마를 잊지 않고, 톰보 지역 서쪽에 높이 치솟은 얼음산맥 두 곳에 각각 노르가이와 힐러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지구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 등반에 처음으로 성공한 두 탐험가 텐징 노르가이와 에드먼드 힐러리의 이름을 딴 것이다.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사람들과 명왕성 정상에 오른 사람들을 이렇게 연결시킨 것은 참으로 적절했다. 앨런이 1990년대부터 명왕성을 ‘태양계의 에베레스트’로 불렀기 때문이다. 행성 탐사에서 가장 멀고, 가장 춥고, 가장 힘들고, 가장 마지막까지 남은 봉우리라는 뜻이었다. 1989년 5월에 명왕성에 가자는 아이디어를 들고 NASA와 처음 회의를 했던 그 운명의 날로부터 명왕성 탐사가 실현된 2015년 여름까지 26년이 흘렀다. 이 일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는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당시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이 일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역사가 이뤄졌다. 한 나라는 자신이 위대한 일을 해낼 수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지구라는 행성의 사람들은 우리 인간들, 우리 지구인들이 정말로 놀라운 일을 해낼 수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텍스트 상자: 본 도서요약본은 원본 도서의 주요 내용을 5% 정도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원본 도서에는 나머지 95%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보다 많은 정보와 내용은 원본 도서를 참조하시기 바라며, 본 도서요약본이 좋은 책을 고르는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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