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번도약, 북한 마스터 플랜

라이스메이커 / 2021년 6월 / 191쪽 / 15,000원

단번도약, 북한 마스터 플랜

단번도약, 북한 마스터 플랜

이병한 지음

저자 소개

20대는 사회과학도였다. 서방을 선망했고, 새로운 이론의 습득에 골몰했다. 30대는 역사학자였다. 동방을 천착하고, 오랜 문명의 유산을 되새겼다. 자연스레 동/서의 회통과 고/금의 융합을 골똘히 고민했다. 그 소산으로 1000일 〈유라시아 견문〉을 마무리 짓고 40대를 맞이했다. 개벽학자이자 지구학자이며 미래학자를 지향한다.

책소개

이 책은 김정은 집권 10년차에 접어든 시기 북한의 퀀텀 점프 전략을 제시한다. 저자는 북한은 시행착오 없이 단숨에 도약 - 단번 도약 - 해야 한다면서, 장차 북한의 개혁 개방에 적절한 모범 사례가 되어 줄 스위스(그린ㆍ글로벌), 이스라엘(밀리테크), 싱가포르(스마트 거버넌스)에게 배우라고 말한다.

요약본 본문

들어가며 - 한반도의 북한, 유라시아의 북한, 세계의 북한

운칠기삼(運七技三)

2011년 김정은이 등장할 때, 나는 처음부터 직감했다. 나의 인생의 절반 이상이 ‘김정은 시대’가 되리라는 것 말이다. 그가 시운이 좋다고도 여겼다. 그가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비해 역량이 더 출중할지는 더 지켜봐야 알 일이다. 그런데 문명사학자의 견지에서 보건대, 개인의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시대적 상황이다. 조상의 지혜를 빌자면, 운칠기삼이다. 선대를 옥죄었던 미국의 패권이 저물어가는 시점에 그는 출발했다. 할아버지는 미국의 최전성기를 온몸으로 감당했다. 아버지는 소련의 해체로 촉발된 탈냉전기를 맞아 선군정치로 응대해야 했다. 반면에 김정은 미국의 내리막길에 권좌에 올라탔다.

재조산하(再造山河)

고로 대세에 부합하는 대계, 재조산하의 플랜을 짜야 하겠다. 2015년, ‘유라시아 견문’을 떠날 때부터 내 나름의 통일 사업, 실력 양성 운동이라는 다짐을 품었고, 북조선의 발전 모델이 될 만한 나라들도 살폈다. 눈에 든 나라가 크게 셋이다. 유럽의 스위스, 중동의 이스라엘, 동남아의 싱가포르다. ‘그린/글로벌 스위스’, ‘밀리테크 이스라엘’, ‘스마트 거버넌스 싱가포르’ 등 핵심 키워드도 후루룩 떠올랐다. 장차 북조선의 개혁 개방에 청사진으로 삼아도 무방한, 아니 충분한 밑그림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당분간 북조선에서 다당제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유사 왕조의 유사 일당제 국가이면서도 세계 최고의 거버넌스를 구축한 싱가포르를 학습해봄 직하다. 그리고 유능한 당국(Party-State)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비대하게 성장한 군부의 활로를 새로이 열어주어야 하는데, 핵 기술과 인공위성 기술에서는 북조선도 세계 수준이며, 이는 공히 에너지 산업과 우주 산업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그런데 이 방법은 군사 테크놀로지를 산업화하고 상업화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이스라엘의 밀리테크 노하우에서 배워올 수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세계의 대세와 대국을 두루 살피며 북조선의 장래를 구하는 최고 지도자의 견문과 안목인데, 다행히도 현재 북조선의 리더는 10대 시절 외국에서 공부한 유학파 남매다. 공교롭게도 유럽 중에서도 가장 세계화된 스위스에서 살았다. 이제 ‘정은이와 여정이’가 사춘기를 보낸 곳인 스위스로 이동해 보자.

그린ㆍ글로벌 스위스

다언어 다문자의 세계 도시 - 소국이 대국을 상대하는 법

제네바와 개경: 스위스는 유럽에서도 가장 작은 나라에 속한다. 그리고 천연자원이 부족한 산악 국가였던 탓에 안락한 생활을 기대하기도 힘들었다. 오랜 기간 스위스의 가장 큰 수출품이 용병이었을 정도다. 그만큼 지리는 일종의 숙명이다. 그러함에도 나라의 운명을 개척하는 것은 역사다. 유럽의 한복판이라는 위치를 십분 활용했다. 먼저 지중해의 이탈리아와 알프스 이북의 내륙을 잇는 유럽의 남북 교통의 요지로 거듭났는데, 이 교통망의 대동맥이 바로 라인강이다. 라인강과 함께 스위스에서 발원하는 론 강 또한 중요하다. 유럽의 서부와 지중해를 잇는 수상교통을 연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유럽의 동서 교통의 축, 도나우강으로 흘러나가는 인 강 역시도 스위스를 원류로 하고 있다. 산길을 뚫고 물길을 내면서 변경에서 중앙으로, 변방에서 중심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리고 그 지리적 위상 변화가 정책적으로 발현된 것이 바로 스위스의 국시라고 할 수 있는 ‘영세 중립’이다. 중계하고 중재하면서 중립을 고수했다. 20세기 제1차,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을 거치면서는 유럽의 지평을 넘어 세계 평화의 차원에서도 영세 중립 국가의 상징이 되었다. 1920년 국제 연맹의 본부가 제네바에 설립되었고, 1945년에는 국제 연합(UN)의 유럽 본부가 제네바에 자리 잡았다. 그래서 어느 도시를 가도 다문자 표기가 일상화되어 있다. 4대 공용어는 물론이요, 영어까지 다언어 생활이 일상다반사다.

다언어와 다문자의 세계 도시를 견문하면서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도시는 개성이었다. 이곳은 고려 시대의 수도였던 곳이다. 고려는 당대의 세계 제국인 몽골의 지식 네트워크를 통하여 유라시아 곳곳과 소통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개경(開京)’이라 불리었으니, 한자를 그대로 풀면 열린 도시(Open City), 즉 요즘 식으로 옮기자면 허브시티(Hub City)였다. 실제로 개경의 관문이었던 벽란도는 유라시아의 만인이 교류하고 만물을 교역하는 세계 시장의 하나였다. 고로 남북 협력의 상징적 장소인 개성 공단이 잠시 멈춤하고 있는 현재를 지혜롭게 활용할 필요가 크다.

북쪽의 저렴한 노동력에 남쪽의 기술과 자본을 결합하여 세계 시장에 공산품을 수출한다는 발전 모델의 업그레이드와 업데이트를 해야 하는데, 나는 개경의 역사성과 세계성을 극대화시키는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고 여긴다. 특히 개경에 한반도 최초의 고등 교육 기관이라 할 수 있는 국자감이 자리했었다는 점에 주목하여, 이곳이 동북아시아 국제 대학이 들어서기에 최적의 장소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으로 동북아 공동체를 일구어가기 위하여 필요한 다양한 국제 기구들에서 일할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는 미래 대학을 만들어봄 직한 것이다. 글로벌 도시로서의 개성을 전망하는 것이 허황한 뜬구름이 아니라는 점은 동북아 곳곳에서 이미 그러한 도시들이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몸소 다녀온 곳만 해도 여럿이다. 요동반도의 끝, 다렌에서 지하철을 타면 중국어 ­ 영어 ­ 한국어 ­ 일본어 ­ 러시아어 순으로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홋카이도의 관문 삿포로의 신치토세 공항에 내려도 일본어 ­ 영어 ­ 중국어 ­ 한국어 ­ 러시아어로 만들어진 안내 표지를 만날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와 북조선이 맞닿은 국경 도시 훈춘은 아예 도시 전체가 다언어와 다문자로 조성되어 있다.

스위스가 북조선의 장래에 참조가 되는 것은 비단 그 국제성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21세기 인류 문명의 사활적 과제는 생태와 생명일 것인 바, 이 방면으로도 스위스는 독보적인 성취를 이루었다. 이번에는 ‘그린 스위스’의 정수, 밤하늘에 은하수가 쏟아져 내리는 알프스의 마터호른으로 이동한다.

치산치수 - 알프스에서 강원도를 생각하다

산길, 물길, 철길: 스위스 하면 알프스다. 스위스를 방문하는 관광객의 6할이 곧장 알프스로 달려간다. 알프스와 쥐라, 양대 산맥을 겸하면서 스위스는 4,000미터가 넘는 산을 48좌나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산이 깊으면 물도 맑다. 스위스는 유럽 총 면적의 0.4퍼센트에 불과하지만, 담수의 비축량만 따지면 6퍼센트에 이른다. 알프스 전체로는 26퍼센트를 저수하고 있으니, 말 그대로 유럽의 분수령(分水嶺)인 셈이다. 한편 알프스 여행의 백미는 등산 열차다. 스위스가 품고 있는 가장 웅장하고 가장 아름다운 절경을 창밖으로 지긋하게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베르니나 특급, 빌헬름텔 익스프레스, 골든패스 등 4대 특급 열차 중 내가 타본 것은 마터호른을 향해 가는 빙하 특급이었다. 291개의 다리와 91개의 터널을 지나 8시간 동안 울창한 삼림과 호젓한 호수와 시원한 계곡을 통과한다. 산골짜기에서 요들송을 부르며 무해한 삶을 살아가는 스위스 시골 사람들의 순박한 생활도 엿볼 수 있다. 산악 열차는 해발 3,454미터에 자리한 ‘유럽의 지붕’ 융프라우요흐까지 닿는다.

관광대국 / 환경 선진국: 철도대국은 관광대국의 초석이 되었다. 유네스코 선정 3개의 자연유산과 8개의 문화유산을 품고 있는 나라가 스위스다. 단숨에 세계 굴지의 관광대국으로 도약하게 된 것이다. 객관적 지표가 관광업의 위상을 말해준다. 외국인이 스위스를 방문하고 쓰고 간 돈이 GDP 중 3퍼센트나 된다. 또 스위스는 자연을 보존하는 에코(eco)는 물론이요, 미래 산업을 개척하는 바이오(bio)에 스마트(smart) 건축까지, 글로벌 그린 뉴딜을 선도하는 환경 선진국이자 생태 모범국이다.

강원도의 힘: 산악 국가라는 점도 북조선이 스위스와 은근히 빼다 닮은 구석이다. 추운 겨울이 깊다는 계절적 특성도 흡사하다. 김정은이 각별히 마식령 스키장 일대를 국제적 휴양지로 키우려는 발상 또한 스위스 경험과 아주 무관치는 않을 법하다. 다만 관광대국의 근간에 철도대국이 있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스위스만 해도 불과 일백 년 전에야 철도대국의 기반을 닦을 수 있었다. 우후죽순 경쟁적으로 노선을 만들어가던 초기의 혼란을 거두고 스위스 연방 철도로 통폐합되어갔던 저간의 시행착오도 살펴볼 필요가 크다. 북조선은 처음부터 국영 기업이 총대를 메고 국책 사업으로 속도감 있게 추진하는 쪽이 이로울 것이다. 고속철도와 광역철도망으로 전국 전역을 사통팔달 전변시켜야 한다.

그런데 북조선이 스위스보다 더 유리한 점도 있다. 내륙 국가 스위스와 달리 북조선은 바다도 끼고 있다. 아무리 호수가 크고 강이 넓다 한들 망망대해의 그 압도적인 공간감을 따라갈 수는 없는 법이다. 2022년 세계 산림 엑스포의 주제가 ‘세계 ­ 인류의 미래, 산림에서 찾는다’라고 한다. 살짝 비틀어 ‘북조선의 미래 ­ 한반도의 알프스, 남북 강원도에서 찾는다’라고 속닥속닥 귀띔해주고 싶다.

영세중립국과 생명평화특구

원산 - 글로벌 아웃도어 시티: 김정일이 가장 공을 들인 곳이 개성 공단이었다면, 김정은은 원산에 집중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수시로 원산을 찾고 무시로 갈마를 드나들며 총력전과 속도전으로 갈마 해안 지구를 세계적인 관광 특구로 조성코자 한다. 갈마반도는 21세기 원산의 히든카드다. 갈마반도의 위쪽에는 호도반도도 있는데, 두 반도가 영흥만을 호위하듯 감싸고 있다. 그리고 20여 개의 섬이 천연 방파제를 이룬다. 그 유명한 명사십리 해수욕장이 이곳 갈마반도의 기다란 등짝에 터하고 있다. 이 일대로 송도원, 울림폭포, 석왕사, 초석정, 삼일포에 금강산까지 명승지가 줄을 잇는다. 그리고 그 정점에 마식령 스키장이 있다. 이미 북조선은 최대 규모였던 갈마의 공군 전용 비행장을 민간 공항으로 전환시켰다. 기왕의 금강산 관광과 연동하여 세계적 해안 관광 지구로 만들겠다는 최고 지도자의 확고한 의지가 반영된 결정이다. 스위스 알프스를 참조했을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물론 원산이 품고 있는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지름길은 남북 뉴딜이다. 원산부터 속초까지 바닷길로, 금강부터 설악까지 산길과 숲길로, 남북 강원도 그랜드 투어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서핑과 스키와 스파까지 압도적인 액티비티 경험을 제공하고, DMZ를 사이로 분단에서 통일이라는 감동적인 (히)스토리까지 제시하면 원산은 20세기 초의 영광을 재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업그레이드하고 업데이트할 수도 있다. 유라시아 특급 열차와 환태평양 크루즈가 만나는 환상적인 휴양 도시로 진화시킬 수도 있다. 대륙과 대양을 잇는 세계 일주 여행 상품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면 원산은 유라시아와 아메리카가 만나는 지구의 허브이자 허파가 될 수도 있다. 첩첩산중과 망망대해의 융복합으로 세계 최고의 아웃도어 시티, 으뜸 도시로 도약하는 것이다.

남북 고성 - 어스밸리(Earth Valley): 김정일도 개성 공단을 착공하기 위해 DMZ 일대 최전선 부대를 뒤로 물리는 통 큰 결단을 내린 적이 있다. 김정은은 더 파격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항상적인 전시 상태, 백년 전쟁을 그치기 위해서라도 북조선 거버넌스의 축이 되어버린 군부를 과감하게 개혁해가야 한다. 하나 이미 과대 성장한 군대를 적폐 청산하듯 일방으로 몰아가면 반발을 사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반동이 아니라 반전을 꾀해야 한다. 군부의 출로와 퇴로를 슬그머니 열어주어야 한다. 국가와 일체화된 군대를 떼어내서 산업과 밀접하게 연계시켜주어야 한다. 군사 국가에서 군산 복합체로 진화시키는 것이다. 그래야 북조선 역시도 정상 국가를 넘어서 미래 국가로 단번에 도약할 수 있다. 이제 알프스의 소년과 소녀, 김정은과 김여정이 반드시 가봐야 할 나라가 있다. 21세기판 신사유람단을 꾸려서라도 필히 견문해야 할 나라다. 중동의 밀리테크 선진국, 이스라엘로 이동한다.

밀리테크 이스라엘

소프트 파워 - 세계는 왜 그들을 주목하는가

고난의 행군: 유라시아 떠돌이 생활할 때, 다람살라에서 붙박이 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친구와 연을 맺었다. 살람이었는지 알롬이었는지, 이름은 가물가물하다. 다만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지금껏 또렷하게 남아 있다. 다람살라에서 지낸 일주일, 아침마다 글을 쓰기 위해 찾았던 카페가 한 군데 있었는데, 그곳에서 그 친구와 사흘 연속 눈이 마주치면서 말까지 트게 되었다. 그때 죽비처럼 나의 얕은 상식을 사정없이 깨뜨리는 파천황이 콸콸콸 쏟아져 나왔다. 탈피오트(Talpiot), 텔아비브(Tel Aviv), 테크니온(Technion), 3T 모두 당시로서는 처음 접하는 정보였다. 탈피오트에서 군 복무를 했으며, 테크니온에서 의과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텔아비브에서 생명공학 스타트업을 차릴 것이라고 했다.

밀리에듀, 밀리테크: 예루살렘에서도 텔아비브에서도 곳곳에서 군복 입은 젊은이들을 마주할 수 있다. 고등학교를 마치면 모두가 곧바로 입대하기 때문이다. 남다른 점은 군대와 대학 사이 갭이어(gap year)가 있다는 점이다. 의무는 아니지만 의례에 가깝다. 거의 모든 이들이 1년 6개월가량 해외여행을 떠난다. 주로 라틴아메리카나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제3세계를 선호한다. 그동안 반드시 제2외국어도 배우도록 한다. 영어와 히브리어가 이스라엘의 공용어임을 감안한다면 최소 3개 국어를 구사하게 되는 것이다. 낯선 땅에서의 수많은 시행착오와 다양한 현지인과의 교류를 통해서 넓고도 깊은 안목을 키운 후에야 비로소 학문의 전당, 지성의 요람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면적은 대한민국의 1/4, 충청도 크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음을 알고 있는 늦깎이 대학생들의 포부는 비전과 영감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견문을 먼저 넓힌 후에 깊은 학문의 세계로 들어가는 덕분에 20대 초반 특유의 경직성도 도그마 같은 병폐도 드문 편이다. 실용적이고 실질적이고 실리적인 실학자로 단련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혁신적인 실험이 탈피오트다.

욤키푸르 쇼크 이후 1979년에 도입된 특수부대인데, 드높은 리더십을 지향하는 고로, 여느 전투 부대와는 모집 방식부터 전혀 달랐다. 고도의 학습 역량을 가장 중요한 준거로 삼았다. 교관들도 수학과 과학, 공학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박사와 교수들로 구성되었다. 과학적 역량을 군사적 역량으로 전환시키는 연결고리에 탈피오트를 창립한 것이다. 군대 안의 대학이었고, 대학을 넘어서는 군대였다. 군사와 교육의 공진화, 밀리에듀의 첨병이었던 것이다. 복무 기간도 10년이나 된다. 고교 성적 최우수자들을 선발하여 다양한 시험을 거친 다음 히브리대학에 위탁하여 3년 만에 학사 과정을 마치고, 다음 6년을 더 복무하도록 설계했다. 이를 통하여 전 세계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압도적인 실력의 과학자 군인, 초엘리트 공학자 군인, 슈퍼 솔저들이 육성된 것이다. 두뇌로 전쟁하는 ‘브레인 아미’(Brain Army), 총칼을 든 전사(戰士)에서 지력과 지략으로 승부하는 사(士)의 본질을 회복한 셈이다.

밀리에듀는 곧 밀리테크와 직결된다. 군대에서 갈고 닦은 실력을 곧바로 사회에 환원한다. 군에서 익힌 기술을 산업에 접목하여 전 세계를 무대로 천문학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낸다. 현재의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아이언 돔’부터도 탈피오트 사관 후보생의 아이디어로 출발하여 탈피오트 졸업생들이 완성시킨 것이다. 그리고 에어로 스페이스 인더스트리, 엘타, 라파엘 등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방위 산업체들도 아이언 돔 프로젝트와 긴밀하다. 가상의 철갑 요새를 촘촘하게 구축하게 되면서 이스라엘인은 아랍의 봄부터 IS의 등장까지 불안한 정세가 영 그치지 않는 중동의 한복판에서도 안심하고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예외적인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이 국방용 테크놀로지는 곧바로 산업 기술로 이전되어 이스라엘 GDP의 6퍼센트에 달하는 스타트업 비즈니스 생태계를 구축한다. 미사일 광학 유도장치가 캡슐형 내시경 진단 기구로 진화하고, 미사일 추적 기술이 자율주행의 알고리즘으로 변환되며, 정보망 침투 기술이 인터넷 방화벽 기업으로 전환되는 식이다. 이스라엘은 미국 다음으로 나스닥 상장사를 많이 보유한 나라로 명성이 자자하다. 그 창업자들의 8할이 바로 탈피오트 출신이다. 이쯤이면 선군 정치에서 선군산업으로 이행하는 선봉부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탈피오트가 촉발시킨 ‘선군’ 산학 복합체가 밀리에듀와 밀리테크의 선순환을 낳고, 이스라엘을 혁신 국가 창업 국가로 업그레이드시킨 것이다.

이스라엘은 건국 1세대 30년 동안 농업 국가의 기틀을 다졌고, 건국 2세대 30년 동안은 창업 국가의 초석을 놓았다. 건국 3세대, 다음 30년 이스라엘이 주목하는 영역은 우주 산업과 생명 산업이다. 우주야말로 새로운 전장이고 미지의 시장이다. 이스라엘이 인공위성 오페크(Ofek, 지평선을 뜻하는 히브리어)를 처음 쏘아올린 해가 1988년이었다. 단 한 차례의 실패 없이 단번에 위성을 우주에 업로드했다. 세계 8번째 인공위성 국가로서, 지금까지 아홉 대의 인공위성을 발사했다. 지금도 오페크 사단은 매일 지구를 6바퀴 돌며 세계 전역의 고해상도 사진을 촬영하여 군과 정보기관에 제공한다.

우주 산업이 지구 밖으로 더 멀리 나아가는 비즈니스라면, 생명의 본질 깊숙이 파고 들어가는 바이오 산업 역시 프런티어 시장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독 장애인 올림픽에 열광한다. 사이보그와 강화인간, 트랜스 휴머니즘의 최전선이기 때문이다. 참가 선수들의 각막부터 연골까지 인공 장기와 인공 장비를 일일이 열거하며, 어느 대학, 어느 연구소, 어느 연구자가 개발했는지를 세세하게 설명한다. 스포츠 대회보다는 산업박람회에 가깝다. 인간과 기술의 융합으로 만들어가는 미래 직업을 상상해보는 교육의 현장으로 삼는 것이다. 가령 미국의 의과대학은 이스라엘보다 30배나 크지만, 세계 8조 달러 시장의 의료 보건 산업에서 특허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대학은 테크니온이다. 테크니온에도 의대와 약대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의사나 약사 자격증을 공부하지는 않는다. 오로지 의과학, 생명과학을 연구한다. 과학에 공학을 융합하면서 생명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텔아비브 - 월드 와이드 웨이브

봄의 언덕: 부서진 배를 탄 66가구의 유대인 가족이 이곳에 당도한 날이 1909년 4월 11일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히브리 도시를 건설하자는 다짐으로 농가 운동을 발족시켰다. 이것이 텔아비브의 시작이다. 텔(tel)은 언덕을 뜻한다. 아비브(aviv)는 봄이라는 뜻이다. 텔아비브는 유대인이 소망하는 ‘봄의 언덕’이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도 30년 전 ‘봄의 언덕’에서 시작된 것이다. 보금자리가 생기자 유럽에서 박해 받은 유대인의 이주가 줄을 이었다. 홀로코스트를 피해 수많은 유대인이 지중해의 새로운 고향, 텔아비브를 찾았다. 그들이 가진 재능과 기술, 지혜도 결집되었다. 공동의 선을 위하여 세계 최고의 도시를 만들자는 뜻으로 한마음 한 몸이 되었다. 그 가운데는 바우하우스(Bauhaus) 운동에 가담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1919년 독일 바이마르에서 처음 설립된 이후 데사우, 베를린까지 세 도시에 거쳐 14년간 이어진 디자인 교육 기관이 바우하우스인데, 1차 세계대전의 폐허를 딛고 솟아난 예술과 기술의 통합 운동, 소셜 디자인 운동이기도 했다.

처음부터 텔아비브는 다양한 민족이 모여 형성된 디아스포라 도시였다. 뿌리는 유대교였으되, 국적은 다양했다. 유럽, 러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구사하는 언어도 독일어, 아랍어, 루마니아어 등 다채로웠다. 그래서 눈이 맞고 살을 맞대어 한 가정을 이루어도 언어도 문화도 다른 경우가 허다했다. 이렇게 다양한 문화가 뒤섞이는 해방촌과 해방구가 건설되자 성소수자 커뮤니티도 활발하게 형성되었다. 이 특유의 공유 문화와 개방 문화는 과학 연구가 만개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바우하우스 건축물이 속속 들어서던 1934년에 바이츠만 연구소도 만들어진다. 바이츠만은 1948년에 건국된 이스라엘의 초대 대통령이다. 학문의 기초부터 다지고 나라를 만들어낸 셈이다. 그래서 기초 공사가 부실한 모래성이 아니 될 수 있었다. 그간 바이츠만 연구소는 세 명의 노벨상 수상자와 두 명의 대통령을 배출하면서 명실상부 세계 5대 기초 과학 연구소로 손꼽히고 있다. 현재 교수와 학생 등 2,600명가량이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하기 위한 장기적인 안목으로 기초 과학 연구에 집중한다. 연구소가 가장 공을 들이는 것은 인재의 발굴이다. 그 무한대의 상상력을 보장해주는 기초 연구가 원체 탄탄하기에 텔아비브가 혁신 도시, 기업 도시로 진화할 수 있었다.

디아스포라 다이내믹(diaspora dynamic): 미중 간 국력의 격차가 좁혀질수록 북조선의 지정학적 가치는 G2 양국 모두에게서 올라간다. 그러므로 중국에 너무 가까워지지도 말고, 미국과는 너무 멀어지지 말아야 한다. 그 절묘한 균형 속에서 남북 평화의 촉진자 및 동북아의 균형자 노릇도 할 수 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다. 위치와 위상이 국가의 운명을 만들기도 한다.

일단 들려오는 말로는 조짐이 나쁘지 않다. ‘과학 기술 강국 도약’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래서 조성된 것이 대동강 쑥섬에 자리 잡은 과학기술전당이다. 다만 과학과 공학만으로는 시장과의 접점이 열리지 않음을 이스라엘의 과거가 명료하게 보여주는 바다. 경영과 금융이 반드시 결합되어야 한다. 기왕이면 처음부터 세계적인 경영과 세계 최고의 금융과 접목되어야 한다. 그때 주목해야 할 대상이 바로 코리안 디아스포라다. 북쪽의 고려인과 조선족, 남쪽의 자이니치와 코리안 아메리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때 북조선을 등졌던 탈북자 1세대의 자녀들이 이제 30대로 진입하고 있다. 전 세계 곳곳에 흩어져서 신조선인, 신세계인으로 성장한 첫 세대다. 누구도 가지지 못한 경험을 확보하고 있으며,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열망과 의지를 품고 있기도 하다. 이들과 북조선의 접점을 만들어내어야 하는데, 행정부 기관으로 디아스포라부나 디아스포라청을 신설해봄 직하다.

이들은 미국 정부나 한국 정부와도 결을 달리한다. 섣부른 남북통일도 아니요, 어설픈 체제 전복을 꾀하지도 않는다. 체제의 진화, 거버넌스의 혁신을 추동한다. 이들은 김정은이나 김여정과도 연배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다. 동년배 동세대다. 디아스포라청 같은 제3의 기구를 만들어 접점을 늘릴 것을 제안하는 까닭이다. 중국의 개혁 개방에 화인ㆍ화교가 지대한 공헌을 하고, 이스라엘의 체제 혁신에 유대인 네트워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처럼 북조선의 단번도약에도 글로벌 코리안 네트워크의 역량을 총결집시킬 수 있는 새로운 허브가 필요한 것이다. ‘디아스포라 다이내믹 이니셔티브’다.

조금 더 혁신적으로 상상해보자면, 김정은 위원장의 정책 자문단부터 국제적으로 구성해봄 직하다. 예로 진즉에 동서양 권력 전이를 예상하고 싱가포르로 거점을 옮긴 세계적인 투자자가 짐 로저스다. 이스라엘의 세계적인 미래사학자 유발 하라리를 모실 수도 있다. 더더욱 파격적인 차세대 지도자라면 남조선, 한국의 기업가들과도 통 크게 폭넓게 교류해야 한다. 디아스포라 부처 창설부터 한국의 기업가를 포함하는 국제 자문단 구성까지 창조적 파괴를 거듭 추진하려면 최고 지도자의 리더십이 확고히 구축되어야 한다. 여기서도 참조해볼 만한 인물이 이스라엘에 있다. 20대에 총리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하여 90대에 대통령까지 역임하며 70년을 국가 경영에 참여했던 정치 10단, 시몬 페레스다. 중국의 덩샤오핑이나 싱가포르의 리콴유보다 배울 점이 더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새로운 역사는 이제부터 - 작은 꿈을 위한 방은 없다

일국의 성공과 실패는 최고 지도자의 리더십만으로 좌우되지도 않는다. 팀워크로 다져진 유능한 집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현대적으로 표현하자면 유기적이고 유능한 정당이 있어야 하고, 조금 더 세련되게 포장하자면 스마트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최적의 참조 대상이 바로 싱가포르다. 유사 세습제 국가이자 유사 일당제 국가이면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거버넌스를 만들어낸 나라다. 냉전의 한복판, 말레이시아에서 떨어져나가 쫓겨나듯 만들어진 자그마한 나라가 불과 반세기 만에 세계를 경영하는 선진 국가로 도약하는 기적을 일구어내었다.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로 간다.

스마트 거버넌스 싱가포르

리콴유 리더십 - 세대, 세기, 세계를 아우르다

축출 국가: 세계은행은 지난 10년 동안 기업하기 가장 좋은 나라로 싱가포르를 꼽았다. 실제로 7,000개가 넘는 다국적 기업이 이 비좁은 도시 국가에 터하고 있으며, 11만 명이 넘는 외국계 인재들이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 정부 정책 입안과 결정 과정이 매우 투명하고, 공공성에 대한 신뢰 또한 가장 높은 것으로 꼽힌다. 비즈니스맨들에게만 매력적인 것도 아니다. 여행, 관광 경쟁력 지수에서도 세계 10위권을 오르내린다. 하지만 출발은 엄혹했다.

1965년 8월 9일 독립했다. 독립을 원했던 것이 아니다. 독립을 ‘당했다.’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강제로 탈퇴당한 것이다. 싱가포르 전체 면적이라고 해봐야 서울보다 조금 더 큰 수준이다. 천연자원마저 한 움큼도 없었다. 다만 식민 모국이었던 영국의 해군 기지에 기생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당시 싱가포르 인구 200만 가운데 10퍼센트가 군사 기지와 관련된 사업에 고용되어 있었다. 한데 설상가상으로 그 기지마저 6년 후에는 완전 철수할 예정이었다. 어느 누구도 싱가포르의 장래를 장담할 수 없던 시절이다. 그런데 천만다행으로 불행 중 다행으로 아시아의 걸물이 있었다.

대부(代父, Godfather): 오늘의 싱가포르를 일구어낸 장본인, 국가 경영의 거장 리콴유 이야기다. 그는 인민행동당이 만들어진 1954년부터 사무총장을 지냈다. 당명이 인민에 방점이 찍혔으되 공산당과는 달랐다. 이념을 추종하기보다는 실질적인 행동을 강조했다. 실용적이고 실리적이며 실무적인 실학 정당을 지향했다. 실학 정당 인민행동당이 이끌어가는 싱가포르 또한 철저한 실학 국가를 지향했다. 초대 총리 리콴유는 싱가포르의 최대 목표가 생존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국제적으로 싱가포르의 독립을 인정받기 위해 UN에 가입했으며, 영토를 보위하기 위한 군대부터 창설해야 했다. 국민들이 먹고살 수 있는 경제 발전 또한 당면 과제였다. 특히 다민족, 다문화, 다언어, 다종교 사회를 통합하여 국가 정체성을 확립해야 하는 간단치 않은 숙제도 감당해야 했다. 그래서 철두철미 실력에 기초하고 실적에 기반한 체제를 만들어갔고, 법과 제도, 원칙이 강조되었다. 집권층이라고 특권과 혜택을 누릴 수가 없었다. 그래야 국민을 통합할 수 있고, 조화로운 사회를 달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공산주의를 배타했지만 서구의 민주주의를 추앙하지도 않았다. 이 또한 이념적 판단이라기보다는 실리적 계산의 소산이었다. 싱가포르식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했다. 개인의 사유 재산은 인정하지만 토지 공개념을 포함한 사회주의적 요소 또한 매우 강했다. 개인의 이익보다는 늘 공공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이 우선되었다. 민주주의는 어디까지나 공동선을 추구하기 위한 수많은 수단 가운데 하나로 간주되었을 뿐이다.

스마트 정당 - 윗물과 아랫물, 앞물과 뒷물

스마트 정당: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단연 세계 최고의 스마트 정당은 인민행동당이다. 1949년부터 집권하고 있는 중국의 공산당보다 유능하고, 1955년부터 일본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자민당보다 기민하다. 혁신과 진화의 아이콘이다. 세계 변화의 최전선에 서서 나라의 방향을 선도하고 솔선수범한다. 리더들의 정당이고, 군자들의 정당이며, 이노베이터들의 정당이다. 따라서 군이 아니라 당이 이끌고 가는 정상 국가화를 탐색하는 북조선이라면, 300만 혁명 도시 평양을 500만 스마트 시티 싱가포르처럼 만들고 싶어 할 법한 최고영도자동지라면, 필히 참조해야 할 최상의 학습모델이 아닐 수 없다.

당국체제: 오해는 말자. 싱가포르가 북조선 같은 일당제 국가는 아니다. 등록된 야당의 숫자는 스물에 이른다. 다만 반세기가 지난 현재까지도 싱가포르인의 절대 다수가 인민행동당을 지지하고 수긍하고 있다. 야당의 견제를 받기보다는 헌법과 제도에 의해 운영이 되고 민심에 의해 평가받는다.

인민행동당은 창당 당시부터 이념 정당보다는 실학 정당이었고, 사회주의 목표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시장 경제를 수용하였다. 경제적으로는 그 어느 나라보다 자유와 경쟁과 개방을 강조했고, 반면 정치적으로는 고도의 안정과 질서를 고수했다. 시장의 역동성이 정치의 불안정과 연동되는 서구형도 아니요, 정치의 안정이 시장의 활력을 감퇴시키는 동구형도 아니었다. 공정과 정의를 견지하며 교육과 취업, 주택과 의료 등에서 국민 대다수가 최소한의 생활수준을 영위하는 안정적인 사회 기반을 구축했다. 그 바탕 위에 세계 최상의 효율과 경쟁과 혁신을 자극하는 독자적인 거버넌스를 이루어낸 것이다.

실학 정당의 제1 강령은 능력주의다. 출신 성분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오로지 실력으로만 평가한다. 그래서 인민행동당이 초엘리트 정당임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도리어 투철한 자각과 책임을 요청하는 식이다. 뛰어난 사람들에게 노블레스 오브리주를 요구하는 것이다. 당원들이야말로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덕망을 갖춘 지도자의 전범을 보여야 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이다. 그러나 고인 물은 썩는 법이라 했다. 일당의 장기 집권에도 불구하고 인민행동당은 어찌하여 혁신과 진화를 거듭해온 것일까? 야당을 대신하는 세력이 바로 젊은 세대다. 젊은 세대의 수혈로 기성세대의 답습을 극복하는 것이다. 여야 교체가 아니라 세대교체를 제도화하는 데 주력한 것이다.

인민행동당은 인기순이나 유명도순으로 당원을 평가하지 않는다. 특히나 고위직을 맡아야 할 핵심 인재일수록 선거보다 더 혹독한 과거(科擧)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틀 동안 1,000개 이상의 질문에 답해야 하는 심리 검사가 대표적이다. 성격과 인생관도 중시한다. 특히 진실성과 정직함을 정밀하게 확인한다. 결혼 생활과 신앙생활 등 사생활이 어떠한지 까지 철저하게 따지는 까닭이다. 체력 테스트도 거치는 걸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엄격하고 격렬한 선발 과정을 통해 발탁된 당원이라고 해도 실제로 권력을 쥐고 정책을 집행하다 보면 실패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민행동당은 이러한 인재 등용과 인재 관리와 인재 성패의 데이터베이스를 반세기 동안 축적해두었다.

아무튼 인민행동당은 동양의 경세론(經世論)과 서양의 경영학(經營學)이 절묘하게 융합된 정당이라고 할 수 있고, 자연스레 인민행동당의 상층부 간부들은 치국(治國, statecraft)에 정통한 경륜가라고 인정해도 크게 틀리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반세기 장기 집권도 가능했다. 그리하여 준영구적인 집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가장 덜 부패한 정당이 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유능한 스마트 정당이기도 하다. 나는 이러한 싱가포르 특유의 당국 체제(party-state system)가 만국에 두루 통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모델이라고 말할 생각은 터럭만큼도 없다. 하지만 지금껏 실질적인 유일 정당으로 지배해왔고, 예측할 수 있는 당분간의 미래에도 거의 유일한 정당으로 군림할 것이 확실해 보이는 북조선의 노동당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인 선행 사례라고 생각한다.

다만 아무리 당국 체제라고 한들, 당과 정부는 또 별개다. 정당의 운영 방식과 행정부의 거버넌스는 또 다른 차원의 과제다. 싱가포르가 오늘의 싱가포르가 된 것은 최고 영도자 동지 리콴유 개인의 리더십만도 아니요, 경애하는 혁명 정당 인민행동당의 실력만도 아니다. 법과 제도와 문화의 전체적인 거버넌스가 치밀하고 면밀하게 가동되며 일구어낸 총체적인 결과라고 하겠다.

거버넌스 혁신 - 글로벌 국가로 거듭나기 위한 조건

글로벌 북조선: 북조선은 싱가포르의 스마트 거버넌스를 학습할 필요가 크다. 조선 노동당은 인민행동당의 실력주의와 실용주의를 익힐 필요가 많다. 평양시와 원산시, 나선시, 신의주시 등등 주요 도시들 또한 싱가포르시의 혁신을 배울 필요가 있다. 싱가포르는 이미 중국의 주요 도시를 비롯하여 전 세계의 수많은 국가와 도시의 미래 전략을 컨설팅하고 자문한 노하우까지 축적되어 있다.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의 결렬 이후 남쪽의 행보가 마땅치 않았을 수 있다. 그렇다고 다시금 움츠러들고 쪼그라들면 곤란하다. 그럴수록 중국의 입김만 강해지고 러시아의 뒷배에만 의탁해야 한다. 자문자답으로 그치지 말고, 널리 자문을 두루 구해야 한다. 두드리는 자에게 길이 열리는 법이다. 도움을 많이 청할수록 자생과 자활의 여지가 도리어 커지는 법이다. 싱가포르만큼 요긴한 자문처가 없다고 할 것이다. 전방위적으로 북미 정상회담을 유치하고 김정은 위원장을 초청했던 리센룽 총리가 2022년 2월 총리직에서 은퇴할 예정이다. 그를 북조선의 글로벌 정책 자문으로 모시는 파격도 시도해봄 직하다. 부디 30대 남매 지도부의 싱가포르 견문을 잘 살려나가기를 바란다.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 속의 북조선으로 도약하는 든든한 디딤돌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본 도서요약본은 원본 도서의 주요 내용을 5% 정도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원본 도서에는 나머지 95%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보다 많은 정보와 내용은 원본 도서를 참조하시기 바라며, 본 도서요약본이 좋은 책을 고르는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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