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재발견

대화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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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재발견
윌리엄 아이작스 지음
에코리브르

책소개

이 책은 ‘대화’에 관한 모든 것, 즉 대화의 중요성, 본질, 철학 등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저자는 대화가 단순한 말의 교환이 아니라, 다른 의견을 포용하는 것, 다시 말해 더불어 생각하는 기술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요약본 본문

대화의 재발견윌리엄 아이작스 지음에코리브르 / 2012년 8월 / 496쪽 / 21,000원

대화란 무엇인가주변이 아닌 중심과 이야기하기

당신이 마지막으로 남의 이야기에 열심히 귀를 기울인 것은 언제였는가? 아마 당신도 보통 사람들과 같다면 기억하기 어려울 것이다. 골치 아픈 문제로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보았던 때를 생각해보라. 그때 상황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그들은 문제의 핵심을 간파했는가? 그래서 공동의 이해에 도달했는가? 아니면 융통성 없고 기계적이어서 자신의 두려움과 기분에 따라 반응하고 자기 선입견에 맞는 이야기만을 골라서 들었는가?

대화는 자주 우리를 실패로 몰고 간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대신 편을 갈라 싸우기만 한다. 특히 대립이 격하고 차이가 심각한 상황에서는 변호하고 방어하느라 바쁘다. 변호는 자신의 생각을 내세우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상대에게 아무런 여지도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웨스트뱅크 문제에 대한 합의를 끌어낼 수 없었다. 또 영업 부서장은 생산 계획을 놓고 제조 부서장과 다툰다. 그리고 경영자들은 자본을 가장 잘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이견을 내놓는다. 또 친구들은 무엇이 도덕적인 행동인지를 두고 논쟁한다.

그런데 대화는 더불어 이야기하는 아주 다른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대화를 ‘더 나은 말하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화에는 훨씬 더 많은 의미가 들어 있다. 나는 대화를 ‘주변이 아닌 중심과 이야기하기’로 정의하는데, 그것은 차이가 빚어내는 에너지를 받아들여, 이전에는 전혀 생성되지 않았던 무언가를 향해 방향을 잡아주는 방법이다. 우리를 대립에서 끌어내 더 큰 상식으로 인도하기에, 집단의 지성과 협력에 접근하는 수단이다. 대화의 목표는 새로운 이해에 도달하고, 그런 과정에서 완전히 새로운 생각과 행동의 기반을 형성하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대화는 사람들이 관계 속에서 함께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함께 생각한다는 것은 자신의 주장을 결정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확신에 대한 집착을 풀고, 그저 타인과의 관계 속에 존재함으로써 생겨나는 가능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그런 가능성이 생긴다. 한편 우리는 대개 그 가능성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문제를 해결하거나 사람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화는 그런 행동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미 존재하는 완전성에 귀를 기울이고, 사람들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관점을 진지하게 듣는 새로운 협력에 나설 것을 요구한다. 또한 어떤 의견도 끌어안을 수 있도록 진지하게 듣고 관심을 기울이기를 원한다.

대화에서 나타나는 행동의 3단계: 개인으로서 우리는 대화를 끌어내는 데 도움이 되는 행동을 취하는 법을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참여하고 싶어 하지 않는 상황에서 대화를 시도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대화 과정을 확대시킬 수 있을까? 이것들은 내가 이 책에서 해답을 찾으려 하는 핵심 질문들인데, 해답을 찾으려면 인간 상호 작용의 세 가지 기본 단계를 살펴보아야 한다.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 일관성 있게 행동하라 – 종종 우리는 의도하지 않은 행동을 한다. 당신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대화를 통한 접근을 위해서는 이런 말과 행동의 모순을 인식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대화는 그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네 가지 행동(듣기, 존중하기, 보류하기, 말하기)을 배울 것을 요구한다. ‘새로운 행동을 하는 능력’을 키운다면, 말과 행동의 모순을 해결하고 의도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② 유동적인 상호 작용 구조를 만들어라 – 인간은 이야기의 수면 밑에서 움직이는 힘을 늘 보지는 못한다. 개인의 경우, 그 힘은 사람들로 하여금 타인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들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제대로 알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집단과 조직의 경우, 그 힘은 사람들로 하여금 변화하려는 노력이 타인, 곧 세상을 바라보는 목표와 방식이 다른 선의의 타인에 의해 흐지부지된다는 사실을 계속 깨닫게 한다. 그런데 이런 힘의 본성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예측하고, 관리하는 방법을 키울 수 있다. 이른바 ‘예측 직관’을 함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측 직관이란 그런 힘을 더욱더 분명하게 보는 능력이다. 이는 정체된 상호 작용의 구조를 유연하게 하고, 에너지를 방출하며, 함께 생각하고 일할 수 있는 더욱 유동적인 수단을 찾게 해준다.

③ 대화에 유익한 공간을 제공하라 –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 자주 놓치는 것은,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공간이나 분위기에서 대화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있는 공간은 통찰의 질, 사고의 명확성, 감정의 깊이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그런 공간은 사람들을 상호 작용으로 이끄는 사고 습관이나 관심의 질로 구성된다. 우리는 이야기를 할 때 분위기의 ‘비가시적 구조’를 더 잘 의식함으로써 세상에 심오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단계들이 각각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기 위해 다음 예를 생각해보자. 최근에 한 동료가 1억 달러를 투자할 예정인 자기 공장의 자금 계획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계획을 수립한 사람들은 처음부터 실제 비용이 어느 누구의 예상보다 훨씬 더 들 것이며, 초기 예산의 두 배에 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자기들이 지출할 예정이라고 발표한 수치를 넘어서는 예산이 담긴 제안서를 고위 간부와 외부 투자자들이 거부할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기 책정된 비용으로 자금 계획을 충당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제안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2년도 안 돼 계획한 용도와 완전히 다른 부품과 재료를 사용하느라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수억 달러의 추가 비용을 쓰게 되었다.’

익숙하고 터무니없을 뿐 아니라 약간은 슬픈 이야기다. 그들은 처음부터 ‘제대로’ 하거나 아예 하지 말았어야 했다. 당신은 대안이 없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정말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을 얼마나 자주 했는가? 우리는 그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첫째, 그들의 행동에는 일관성이 결여되었다. 그들은 ‘문제가 있는 행동’을 한 것이다. 자기들이 결정을 내려놓고 잘못을 시인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을 숨기고 안 그런 척 행동했다. 자기들의 의견은 밀어붙이면서,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에게는 저항했다. 둘째, 이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사람은 덫에 걸려 있었다. 원래 투자 금액을 공개하고 대안에 귀를 닫은 고위 간부, 상사들이 원한다는 생각에서 계획을 원래 수치로 재조정한 기술자, 그런 상황에서 돈을 돌려받으려고 애쓴 은행, 장기적인 사고와 행동보다는 단기적인 수익에 치중한 투자자, 그리고 사실을 숨기고 임시방편으로 대책을 세우는 데 급급한 간부, 이런 문제는 흔히 발생한다.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곳에서 근시안적 관점, 사소한 오해, 작은 거짓이 심각하고 불필요한 재난으로 악화된다. 하지만 그런 재난은 사람들이 이야기에 대한 다른 차원의 참여와 ‘열정’으로 서로에게 이야기한다면 피할 수 있다.

그들은 자기들의 방식으로 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게끔 하는 특정한 역할과 기본적인 ‘상호 작용 구조’에 갇혀 있으면서도 이를 의식하지 못했는데, 그런 구조는 받아들일 수 있을 법한 행동으로 사람들을 인도한다. 예를 들어, 이 경우에 경영진 중 몇 명은 새로운 시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현장 직원들을 포함시켜 기획과 의사 결정에 폭넓고 공개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다른 경영자와 투자자들은 오로지 ‘전문가’만이 발언권을 갖고, 누구에게 무슨 말을 할지 신중하게 결정하기를 원했다. 그들은 사람들의 ‘자격’에 관심이 많았다. 결국 그들의 방식이 승리했다.

셋째, 그들은 자기들의 문제에 대해 널리 공감받는 것을 당연시하는 ‘생각과 감정의 습관’에 빠져 있었다. 바로 내가 말한 인간의 비가시적 구조다. 이를테면 몇몇 간부는 새로운 기술의 유용성에 대한 조합원들의 의견은 심각하게 받아들일 가치가 없다고 믿었다. 그러는 동안 아무리 문제가 많고 터무니없고 불쾌하더라도, 그 의견이 숨은 전체의 일부라는 근본적인 사실을 부정하게 되었다. 또 사람들은 의견이 너무 많을까 두려웠고, 조합원들이 전문가가 아니며, 경영진이 좋아하지 않을 조건을 제시하려 애쓴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그들을 참여시키는 것은 엄청난 시간 낭비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한 정보가 묻히고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이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잠재된 분위기는 대화의 성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우리는 서로를 긴밀하게 연결된 더 큰 조직의 일부로 보거나, 구분되고 연결되지 않은 부분으로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의식 속에 있는 그런 분위기는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에 의해 생겨난다. 즉 우리가 스스로 허락하는 내적인 자유, 유지할 수 있는 포용력, 발휘할 수 있는 진정성, 취할 수 있는 관점의 융통성, 그리고 가슴에 품은 안정성과 여유의 수준에 의해 생겨난다.

앞서 말한 공장의 자금 계획에 따른 재앙은 이 세 가지 요소의 실패로 요약된다. 모두가 문제를 알았고, 문제의 일부를 안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를 제기할 능력도 의지도 없었고, 계획을 정당화하기에만 급급했다. 아무리 많은 시장 분석과 기술적인 계산, 예산, 고민으로도 상황을 바로잡을 수 없었다. 효과적으로 토론하지 못해서 스스로 화를 부른 셈이었다. 그렇다면 대화를 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대화를 하려면 일관성 있는 새로운 행동과 행위,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대화를 예측할 수 있는 유동적인 구조와 능력, 그리고 대화가 발생하는 공간의 유익한 분위기와 그런 공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새로운 행동을 위한 능력 키우기

당신은 ‘대화’라는 말을 들으면 타인과의 대화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대화는 당신 자신에게서 시작된다. 여기에서 언급한 네 가지 행위, 즉 듣기, 존중하기, 보류하기, 말하기는 그런 과제를 완수하기 위한 키워드이다.


듣기

대화의 핵심은 단순하지만 심오한 ‘듣기’다. 듣기는 말을 듣는 것뿐만 아니라, 수용하고 포용하며 자신의 내면이 외치는 소리를 점점 놓아버리는 것을 요구한다. 듣기를 연구하면 그것이 광범위한 행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주변 세계에 어떻게 참여해야 하는지를 더욱 직접적으로 인지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최근에 내가 주도한 프로그램에서 어떤 간부가 말했다. “나는 항상 말할 준비를 했어요. 하지만 들을 준비는 전혀 하지 않았죠.” 나는 그것이 일반적인 상황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듣기에서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주제는 실은 무척 실행하기 어려울뿐더러 거의 준비되지도 않는다. 그런데 듣는다는 것은 내면의 침묵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익숙한 습관이 아니다. 하지만 듣는 것을 어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우리의 능력이 미치는 범위 안에 있다. 들으려고 굳이 수도원으로 숨어들거나 새로운 믿음으로 전향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자신의 내면에 들을 수 있는 배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있다. 다시 말해, 듣기가 발생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듣는 방법을 배워라: 듣는 방법을 배우려면 먼저 당신이 지금 어떻게 듣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당신은 먼저 자기 자신과 자신의 반응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듣기를 시작할 수 있다. 지금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보라. “나는 여기서 무엇을 느끼는가? 이것은 어떤 느낌이 드는가?” 그리고 지금 느끼고 있는 것을 인지하기 위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① 사고를 인식하라 – 듣기를 시작하면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다. 잠시 당신이 염려하는 사람에게 생각을 집중해보라. 그러면 곧바로 그 사람에 대한 생각과 영상이 물밀 듯이 밀려들어 올 것이다. 또 다양한 감정을 경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기억은 당신이 주변 사람들을 인식하는 방식에 아주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아무튼 듣는다는 것은 타인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대부분 기억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반응이 전혀 아닌 저장된 반응이다. 이처럼 나의 기질을 통해 듣는다는 것은 내가 특별한 상황에서 던진 사고의 ‘그물’을 통해 듣는 것과 같다.

② 사실을 고집하라 – 우리는 아주 겸손하게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다시 말해, 말 그대로 땅으로 내려와 생각과 (그렇게 생각하도록 이끄는) 경험을 연결해야 한다. 이는 분명하고 쉬워 보이지만 실제 사람들은 늘 섣부른 결론을 내리고, 추상적으로 말하며, 자신이 그러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새로운 훈련이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③ 추론의 사다리 – ‘경험’과 ‘경험에 대한 추론’의 차이를 구분해야 한다. 그런 구분에 도움이 되는 효과적인 도구를 ‘추론의 사다리’라고 일컫는다. 하버드 대학의 크리스 아지리스 교수가 개발한 이 도구는 우리의 생각 방식을 보여주는 간단한 모델이다. 이는 우리의 ‘경험’이 우리가 인식하지도 못하는 동안 번개 같은 속도로 ‘경험에 대한 추론’을 처리하고 생성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는 흔히 직접 경험과 그에 대한 평가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보자.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약 30년이 지났을 때 몇몇 학회가 러시아, 쿠바, 미국의 지도자들을 초대해, 위기의 순간 그런 재앙에 가까운 충돌이 일어난 원인을 돌아보게끔 했다. 이 회의에서 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중요한 사실들이 드러났고, 결론을 이끌어내려는 참담한 귀결에 해결의 실마리를 던져주었다. 이 위기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쿠바가 사전 통보 없이 미국 해안에서 14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미사일을 설치했다는 사실이다. U-2 경찰기가 이를 탐지하고 놀라운 사실을 전해왔는데, 바로 미사일을 전혀 위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케네디 측근들의 눈에는 소련이 미사일을 위장하지도 않고, 노골적으로 미국을 위협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뒤 다른 사실이 드러났다. 모두 알다시피 미사일을 설치한 러시아 육군은 러시아에 미사일을 설치할 때 위장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들은 쿠바에 미사일을 설치하라는 명령을 받고 늘 하던 대로 위장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미사일 설치 명령을 내린 러시아 장군도, 30년 정도가 흐른 뒤의 만남에서 위장막을 치지 않은 데는 다른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어떤 사람들이 공격적인 의도를 드러낸 명백한 증거라고 여긴 것이, 사실은 그릇된 추측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논쟁의 여지가 있는 문제로 당신의 관심을 끌어당길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 당신은 자신에게는 너무나 정당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직접 경험에 바탕을 두지 않은 반응을 보이진 않는가? 우리는 자기 해석의 당위성을 주장하면서 타인과 벽을 쌓고, 자신에게 제약을 가하는 우를 범한다. 이처럼 추론의 사다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그렇게 생각하도록 이끄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보여준다.

④ 저항 없이 들어라 – 이것은 사리타 촐라와 켄 머피가 찾아낸 방법이다. 또한 생각의 그물과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문제를 초월해서 들으려는 노력과 직접 관련이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한 말에 느끼는 저항과 반발을 인정한 뒤에, 그것들을 무시하고 듣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이를 더 잘 표현하면 ‘저항을 인지하면서 듣기’ 정도일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우리는 스스로 깨닫기도 전에 타인에 관한 의견을 표출하는 방식, 다시 말해 상대의 말을 윤색하거나 왜곡하는 방식을 의식한다는 것이다. 잘 관찰해보면 당신의 마음속에는 특히 다른 사람에 대한 반응을 느낄 때 돌아가는 억제할 수 없는 테이프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 순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기도 힘들어진다. 상대의 의견을 들을 때마다 ‘바로 지금, 바로 지금’이라는 말을 기억하면서 지켜보라.

더불어 듣는 기술: 듣기는 흔히 단일 행위로 여겨진다. 그러나 대화에서 우리는 한층 높은 듣기의 차원을 발견하는데, 단순히 들을 뿐만 아니라 더 큰 전체의 일부인 ‘더불어 듣는’ 능력이 그것이다. 이런 듣기는 관점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다시 말해, 한 사람의 관점뿐만 아니라, 관련된 모든 사람의 관점에서 보고 느끼는 것을 고려하게 된다. 그러려면 자신의 생각을 지키는 동시에, 남의 처지가 되어보려고 노력하는 자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사람들이 더불어 들을 때, 대화는 가끔 공동의 이해와 친교라는 깊고 색다른 경험을 불러일으킨다. 이것이 색다른 이유는 함께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개인사까지 낱낱이 알아야 유대감이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존중하기

한 사람을 완전한 존재로 바라보려면, 대화의 또 다른 중심 요소인 ‘존중’을 배워야 한다. 누군가를 존중하는 것은 그의 경험으로 이루어진 연못을 채우는 샘을 찾는 것과 같다. ‘존중(respect)’이란 단어는 ‘다시 보다’는 뜻을 지닌 라틴어 ‘respecere’에서 파생되었다. 이 단어의 가장 오래된 어원은 ‘관찰하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여기에는 누군가에게 존중이나 경의를 표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존중이라는 행위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을 ‘정당하게’ 보도록 유도한다.

존중은 경계를 인정하는 것: 존중은 사람들의 경계를 받아들이고 그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누군가를 존중한다면 그를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누군가를 존중한다면 그들에게서 우리 자신을 분리하거나 떼어놓지 말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사람을 홀로 남겨두고는 그를 존중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손대기 싫은 것에서 자기 자신을 떼어놓고 있을 뿐이다. 누군가를 존중한다면 그들에게서 배울 것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존중을 위한 실천 방법: ‘존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던져보아야 한다. 내가 여기서 보고 듣는 것은 더 큰 전체와 어떻게 맞물리는가? 그것의 자리는 어디인가? 여기서 다른 사람들이 놓치고 있지만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집단에서 존중을 유발하는 방법: ①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도와라 – 견해가 다른 사람들에게 생각할 여지를 주는 것은 대화에 참여하는 법을 배울 때 가장 중요한 요소다. 공손한 태도로 말을 하도록 유도하면, 그렇게 해야만 얻을 수 있는 대화 생태계의 균형을 이룰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일단 새로운 의견이 나오면, 질문에 필요한 열린 공간을 유지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② 긴장을 억제하는 법을 배워라 – 집단 대화의 장점을 꼽는다면 모든 관점을 충분히 생각할 수 있도록 존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자기 자신에게서, 그리고 타인의 표현에서 발견하는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해야 한다. 어느 관점과 목소리를 완전히 없애려 하지 말고 그 모두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라.


보류하기

‘보류’는 우리가 자신의 생각을 억누르지 않고, 일방적인 확신으로 옹호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우리 자신과 타인이 보고 이해하도록 우리의 생각을 보여주는 것에 더 가깝다. 어떤 행동을 해야 한다는 부담 없이, 현재의 생각과 느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관찰하기만 한다.

보류를 위한 실천: 보류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방법은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그 모두가 멈추고 이렇게 물어보는 데서 시작된다. “이것은 어떻게 작동하고 있을까?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이 문제는 어떻게 전개되고 있나?” 다음은 보류하는 법을 배우기 위한 실천과 원칙들이다.

① 확신을 보류하라 – 보류는 확신에 대한 집착을 놓을 것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확신은 어떻게 버려야 할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면서 시작할 수 있다. “내가 이것을 확신하는 이유는 뭘까? 무엇 때문에 이렇게 집착하는 걸까? 확신에 대한 보상은 무엇일까? 이런 믿음을 버리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하면 무엇이 나빠질까? 실패할 경우, 무엇을 두려워하는 걸까?”

② 질문을 발굴하라 – 우리에게는 좋은 해답보다는 좋은 질문이 더 필요하다. 좋은 질문 하나를 찾는 것이 수많은 편파적인 해답을 제시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할 수 있다.

③ 사이의 질서를 찾아라 – 생각을 교환하려면 어느 한쪽에 서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의 문화 속에 형성되어 있는 듯한데, 그것은 ‘좋은 논쟁’의 본질로서 일반적이기는 하지만, 어려운 문제를 다루는 대화에서 얻을 수 있는 지성과 의문을 크게 제한한다. 보류를 훈련하려면 봄이 양극 “사이의 질서”라고 일컫는 것을 찾아야 한다. 타협점을 찾지 말고 사람들을 양극단으로 갈라놓는 미해결 문제를 찾으라는 것이다.

④ 생각의 틀을 실험하라 – 보류는 다른 시각으로 사람들을 보려고 노력하는 기술이기도 하다.

⑤ 사고를 표현하라 – 보류를 훈련하는 또 다른 중요한 방법은 사고를 표면화하는 것이다.


말하기

‘자기 목소리로 말하는 것’은 진정한 대화에서 가장 어려운 점일지도 모른다. 대화에서 자기 목소리를 찾는 것은 “지금 무엇을 표현해야 하는가?”라는 간단한 질문을 제기하는 법을 배우는 것을 뜻한다. 이를 위해서는 내면의 감정적 반응과 충동(혹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와 관련한 많은 심상)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는 법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평생 마주치는 다양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와 관련한 수많은 메시지에 파묻혀 지내는데, 그런 것들에서 분리되어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는지 발견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자기 목소리를 찾는 법: 표현능력을 기르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 질문: 누가 내 음악을 연주하는가 – 내 친구 마이클은 150만 장의 CD를 팔아치우며 즉흥 피아노 연주자로 성공하기 전에,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는 토론토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려고 한때 음악을 접기도 했다. 하지만 세미나 휴식 시간에 피아노 연주를 하는 등 음악을 완전히 놓지는 않았다. 한번은 연주를 하고 있는데 한 노인이 다가와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방금 어떤 곡을 연주했는지 물었다. “를 편곡한 곡입니다.” 마이클의 대답에 노인은 다시 물었다. “그것 말고 그 전에 연주한 곡 말입니다.” 마이클은 대답했다. “제가 작곡한 곡들입니다만.” 그러자 노인이 말했다. “당신은 로 시간 낭비를 했군요. 당신이 본인 곡을 연주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소?” 노인의 질문을 우리 자신에게 대입해보자. 내가 내 곡을 연주하지 않으면 누가 할 것인가? 자신의 곡이 무엇인지 찾고 그것을 표현하겠다는,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결심은 자기 목소리를 표현할 때 가장 중요한 에너지이다.

② 자기 검열을 극복하라 – 우리는 모두 자기 검열을 하는 경향이 있다. 남을 화나게 하거나 질서를 무너뜨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생각을 억누르곤 하는데, 이때 이런 저항을 한쪽으로 치워두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③ 공허로 뛰어들어라 – 이런 경험을 하는 한 가지 방법은 즉흥적인 기분으로 대화에 참여하는 것이다. 가끔 대화를 하다가 내면에서는 말을 하라는 압박을 보내지만, 머리가 텅 빈 기분이 들 때도 있다. 나는 그런 순간을 창조적인 표현의 앞 단계로 (단지 무시무시한 공포감을 조성하는 순간일 뿐만 아니라) 본다. 이때 내면에 쌓인 압박감이 간혹 말을 통해 표출되기도 한다. 이런 공허의 순간에는 누군가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대화에 참여하라고 요구하는 것 같다.


대화 공간의 확대

조직 대화와 시스템 대화의 개발

하버드 대학 경영대학원의 마이클 비어 교수와 동료들은 「변화 프로그램은 왜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는가?」라는 기사에서 한 가지 사실을 증명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대부분의 직원들이 때만 되면, 유독 가스처럼 자기들의 칸막이 사무실을 휩쓸고 지나가는 계획적인 혁신의 바람을 냉소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흔히 변화의 바람은 최고경영자들이 일으킨다. 그들은 최신 모델과 이론으로 무장하고 기업이 당면한 수많은 현안을 표면적으로 섭렵한 고문, 경영대학원 교수, 컨설턴트로 이루어진 소대를 꾸린다. 하지만 생산성, 태도 변화, 혹은 수익성 같은 요소에 대한 기준으로 성공을 평가할 때, 특히 그들이 해결하겠다고 계획한 문제가 복잡하고 비일상적이라면 그런 노력들은 대부분 실패로 끝난다.

한 가지 이유는 그런 개혁 프로그램이 두 가지 내부 모순에 붙들려 있기 때문이다. 첫째, 아지리스가 지적한 구조적 모순이다. 원인이 되는 힘이 어느 한 방향으로 흐르면, 다른 힘이 다른 방향에서 끼어드는 것이다. 이는 데이비드 캔터가 말한 구조적 함정과 같다. 예를 들면, 근본적인 변화는 당면 문제에 책임을 지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 아지리스가 말한 내적인 책임이다. 하지만 반대로 변화를 위한 노력은 변화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이를 달성하기 위해 따라야 하는 논리를 규정한다. 흔히 사람들은 타인이 정의한 것을 실행하는데, 그 ‘타인’은 보통 상사다. 혁신 프로그램은 주로 그들이 바꾸고 싶어 하는 문제에 그들 자신이 단단히 처박혀 있는 셈이다. 변화가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고 상의하달, 통제 지향 방식으로 교육과 권한 분담을 ‘창출’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두 번째 모순은 우리가 ‘권한 분담’이나 ‘공부하는 조직’ 같은 말을 받아들여 우상화하는 습관에 길들여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권한 분담을 수단이 아닌 ‘목표’로 만들고, ‘공부하는 조직 만들기’를 과정이 아닌 원칙으로 만든다. 수백 개의 기업이 그런 아이디어를 채택해 혁신을 위한 체계적인 노력을 시도하곤 했다. 그런데 그런 조직이 내부 책임과 학습에 관한 미사여구를 늘어놓을 수도 있지만, 직원들은 ‘자발적인’ 참여를 강요당하고 선택권을 거의 얻지 못한다. 어떤 기업에서는 동료 집단에게 받는 사회적 압박으로 학습하는 조직이라는 개념이 유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역효과를 낳는다.

변화를 위한 대화법: 조직과 대규모 체계에서 대화를 통한 변화의 효과를 기대하려면, 그런 문제와 모순을 고려해야 한다. 이는 매일 규칙과 관례를 개발하는 개인과 팀에게 전달되어 일을 어떻게 진행할지, 이를 근거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지 알려준다. 그리고 대화를 통한 방법은 우리가 현재에 존재할 때에만 모든 것을 판단하고, 현명한 해답을 찾으려는 끝없는 노력을 통해 습관적인 반응이나 마음의 혼란을 제거할 수 있다. 팀에서도 그렇게 할 수 있다.

내가 처음 대화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사람들 사이에 크게 부족한 (지금도 그런) ‘개방성’을 확대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한 집단의 구성원이 자기들이 헤엄치는 ‘바다’를 인식함으로써 근본적으로 그것을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대화는 우리가 사고의 생태계를 ‘갖고’ 있을 뿐, ‘우리 자신이 생태계가 아니라는’ 믿음을 확인해주었다.

이런 사실은 특히 우리가 자신의 맹목성과 사고 습관의 작용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분명해진다. 이를테면 당신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부모님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진정으로 당신의 것이 아닌 뭔가를 물려받은 사실을 깨달았을 때를 생각해보라. 인지생물학자인 움베르토 마투라나가 말했듯이, 당신은 자신이 서 있는 것을 볼 수 없다. 당신과 너무 가깝고 너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보고 나면 자신이 직접 움직이고 있음을 깨달아 자신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우리의 한계를 분명히 안다는 것은 (아마 난생처음으로) 후퇴가 아닌 발전의 디딤돌이다. 물론 그런 경험은 처음에는 우울하거나 충격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우리에게는 인식이나 생각의 습관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부분이 있듯, 이런 것들을 알아차리는 부분도 있다.

이제 그런 인식과 인지 능력을 차츰 개발함으로써 한 체계가 속한 생태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대규모 대화 방법을 얼마간 파악할 수 있다. 개인과 팀에 새로운 능력을 키우는 네 가지 방법이 있듯이, 조직 전체를 대화 분위기에 젖어 들게 하는 네 가지 방법도 있다. 기반 구조와 운영 체계, 공식적이고 비공식적인 과정이 다음과 같은 방법들을 지원한다.

① ‘시스템을 보는 능력’을 개발하고 비일관성을 생산하는 구조와 힘을 따지는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 당연시하는 운영 방식 ‘보류하기’
② 공급자, 고객, 규제자, 투자자, 경쟁자, 직원 등 조직 안팎에서 이루어지는 관계의 생태계 ‘존중하기’
③ 현재에 머물고 온전히 참여하기 위해 ‘듣기’
④ 조직의 중심적인 ‘목소리’나 이야기를 찾고, 개선하고, 강화하기.

여기에는 주의 사항이 한 가지 있다. 이런 아이디어를 적용하고 그것들이 작동하는 과정을 더 포괄적으로 표현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나는 현재의 관심과 인식에 대한 진정한 기초가 훨씬 더 큰 시스템에서 유지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이 깨달으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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