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탄생 돈의 현재 돈의 미래

비즈니스북스 / 2021년 3월 / 304쪽 / 16,800원

돈의 탄생 돈의 현재 돈의 미래

돈의 탄생 돈의 현재 돈의 미래

제이컵 골드스타인 지음

저자 소개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컬럼비아대학교 저널리즘스쿨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월스트리트저널〉,〈마이애미헤럴드〉등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그가『뉴욕타임스 매거진』에 연재한 돈의 역사에 관한 칼럼이 구독자 250만 명의 팟캐스트〈아메리칸 라이프〉에 방송되며 재치 있는 입담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현재는 미국 공영라디오(NPR)에서 경제 분야 팟캐스트 다운로드 1위를 기록한〈플래닛 머니〉를 진행하고 있다.『돈의 탄생 돈의 현재 돈의 미래』는 저자가 쓴 첫 번째 책으로 출간 즉시〈뉴욕타임스〉와〈파이낸셜타임스〉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서 ‘가장 쉽고 재밌게 읽는 돈의 역사’라고 극찬을 받았다. 이 책에서는 모든 시대마다 부의 흥망성쇠를 좌지우지한 돈의 역사를 살펴본다. 저자는 빠르게 변화하는 경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돈의 발전 과정부터 알아야 한다고 말하며 화폐의 발명부터 주식 시장의 탄생, 리먼 브라더스 사태, 비트코인 열풍까지 총망라해 정리했다. 돈의 역사를 통해 경제 위기는 어떻게 생겨나는지, 부를 축적한 사람들은 어떻게 돈을 이해했는지, 돈을 돈답게 만드는 핵심은 무엇인지를 짚어 준다. 시대를 종횡무진 넘나드는 풍부한 이야깃거리로 돈의 역사를 흥미롭게 설명한 이 책은 돈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고 싶은 독자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책소개

이 책은 부의 흐름과 대전환을 꿰뚫는 인사이트를 제시하고, 부의 기회가 어디에 있는지 예측한다. 저자는 변화하는 경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돈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면서, 화폐의 발명, 주식시장의 탄생, 리먼 브라더스 사태, 비트코인 열풍 등을 소개하고, 이를 통해 경제 위기는 어떻게 생겨나는지, 부를 축적한 사람들은 어떻게 돈을 이해했는지, 돈을 돈답게 만드는 핵심은 무엇인지를 짚어준다.

요약본 본문

물물교환에서 돈이 탄생했을까? - 돈의 기원

돈의 발명

1860년경 가수 마드모아젤 젤리는 남동생과 두 명의 가수와 함께 월드 투어에 올랐고, 화폐가 두루 쓰이지 않던 남태평양의 작은 섬에 도착했다. 그들은 그곳에서 푯값을 대신해 섬사람들이 제공할 수 있는 물품을 받기로 하고 콘서트를 열었다. 콘서트는 대성공이었다. 표는 무려 816장이 팔렸다. 그녀는 이모에게 보낸 편지에 푯값으로 받은 물품들에 대해서도 썼다. “돼지 3마리, 칠면조 23마리, 암탉 44마리, 코코넛 5,000통, 파인애플 1,200통, 바나나 120다발, 호박 120통, 오렌지 1,500개. 근데, 어떻게 여기서 이 물품들을 되팔아서 현금으로 바꾸겠어요. 섬사람들이 현금을 갖고 있을 리 만무해요. 내일 인근 섬에서 투기꾼이 이 섬으로 들어와서 현금을 지불하고 이 물품들을 사기로 했어요.” 이후 마드모아젤 젤리가 쓴 편지는 화폐의 역사에 관한 프랑스 서적의 각주로 인용됐다.

경제학자 윌리엄 제번스는 이 각주가 마음에 들어 10년 뒤에 쓴 저서『화폐와 교환 메커니즘』에서 그녀의 편지로 서문을 열었는데, 제번스는 마드모아젤 젤리의 경험에서 ‘물물교환은 형편없다’는 교훈을 얻었다. 제번스는 물물교환은 ‘욕망의 상호 일치’가 이뤄져야 성사되기 때문에 골치 아프다고 했다. 쉽게 말하면, 섬사람들은 마드모아젤 젤리가 제공한 것(콘서트)을 원했고, 마드모아젤 젤리도 섬사람들이 푯값으로 지불한 것(돼지, 코코넛 등)을 원했기에 거래가 성사됐다. 제번스는 인류가 상대적으로 내구성이 강하고 희귀한 무언가로 가치를 표시하기로 합의하면서 물물교환의 문제가 해결됐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서 인류는 화폐를 발명해 물물교환의 문제를 해결했던 것이다.

화폐가 물물교환에서 시작됐다는 주장은 명쾌하고 강력하며 직관적이다. 하지만 이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는 없다. 화폐가 탄생하기 이전에 사람들은 대체로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았다. 약간의 거래가 이뤄졌지만, 그것은 주로 무언가를 주고받는 철저한 기준에 따라 행해지는 공식적인 의식의 일부였다. 화폐가 물물교환에서 시작됐다는 주장과 달리 이러한 공식적인 의식에서 유래됐다는 주장도 있다.

마드모아젤 젤리가 방문했던 섬에는 돼지, 칠면조, 코코넛 그리고 바나나로 모두를 위한 성대한 잔치를 벌이는 관습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녀가 자신이 받은 물품으로 섬사람들을 융숭하게 대접했다면, 오늘날 병원이나 대학교 도서관을 지어 주는 사람들이 누리는 사회적 지위가 그녀에게도 주어졌을지 모른다. 또 섬사람들은 대접에 대한 보답으로 마드모아젤 젤리를 위해 잔치를 열어 줬을 것이다. 화폐가 등장하기 전에는 모든 경제 시스템이 이러한 호혜에 기반을 뒀다. 이렇듯 화폐는 단순히 가치를 환산하고 편리하게 보관하기 위해 고안된 교환 수단이 아니다. 화폐는 피와 욕망으로 묶인 사회 구조의 핵심 요소다. 그러니 사람들이 돈에 환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돈, 모든 것을 바꾸다: 고대 그리스의 왕국들은 대체로 공물과 재분배 시스템으로 오랫동안 운영됐다. 하지만 기원전 1100년경 고대 그리스 문명이 붕괴됐다. 몇 세기 이후 그리스 인구가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마을은 소도시로 성장했고 장인이 등장했으며 소도시별로 특산품도 생겨났다. 그리고 그리스 소도시들에 공공건물이 들어섰고 공공 급수 시설이 마련됐다. 왕이나 사제가 관리하는 공물과 재분배 시스템을 중심으로 형성된 경제 시스템은 이런 환경에서 운영됐다. 이후 그리스인들은 상의하달식으로 운영되는 소왕국을 형성하는 대신에 새로운 형태의 집단을 탄생시켰다. 그들은 그것을 도시 국가라는 의미의 폴리스(polis)라 불렀다. 그리스를 중심으로 수백 개의 폴리스가 생겨났다.

각 폴리스에는 시민 의회가 있었다. 폴리스에서는 시민 의회가 만나서 의견을 나눴지만, 소수의 엘리트들이 최종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모든 경우에 시민들, 즉 폴리스 주민인 폴라이트(polite)들은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줄지’를 결정할 때 자신들도 발언할 수 있기를 원했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을 상의하달로 관리하는 통치자나 하의상달로 움직이는 친족 관계가 없어도 공적 생활과 일상생활에서의 교환 활동을 체계적으로 움직일 수단이 필요했다. 그들에게는 바로 화폐가 필요했던 것이다!

오늘날 터키 지역에 해당하는 리디아는 기원전 600년경 금과 은이 섞인 광물을 대량으로 채굴했는데, ‘일렉트럼’(electrum)이라 불리는 합금은 리디아인에게 큰 문제를 안겼다. 그들은 합금의 가치를 매기기 위해서 금과 은의 비율을 따져 봐야 했다. 이때 누군가 기가 막힌 방법을 찾아냈다. 그들은 금과 은의 비율이 일정한 일렉트럼을 일정한 크기의 덩어리로 나누고 한쪽 면에 사자 무늬를 찍었다. 크기가 같은 일렉트럼 덩어리는 그 가치도 같았다. 이렇게 리디아인은 합금으로 주화를 발명해냈다. 그로부터 머지않아, 그들은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은전과 금전을 주조해 내기 시작했다.

주화는 도시 국가들이 새로운 사회를 구축하는 데 더없이 필요한 것이었다. 도시 국가의 사회는 굉장히 거대해 가족 공동체 단위의 호혜 시스템으로 운영될 수 없었다. 또 더없이 평등한 나머지 공물 시스템으로 운영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곧 그리스 전역에 은화를 주조하는 백여 개의 조폐국이 생겨났다. 수십 년이 지나지 않아 그리스인이 가치를 측정하고 상품을 교환하기 위해 사용했던 것은 이제 더 이상 화폐를 닮은 무언가가 아니었다. 돈은 주화였고 주화가 곧 돈이었다.

주화는 그리스인의 일상생활을 180도 바꿔 놓았다. 각 그리스 도시 국가에는 아고라라 불리는 공공장소가 있었는데, 주화가 널리 쓰이기 시작할 무렵 사람들은 팔 물건을 들고 아고라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시민들은 아고라에서 옷, 무화과, 솥 등을 사고팔기 시작했다. 물론 아고라는 여전히 공론의 장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모여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으로 변모했다.

주화가 등장하기 전에 가난한 그리스인은 부유한 지주의 농장에서 일했다. 하지만 그들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아는 임금을 받지 않았다. 그들과 지주는 일종의 거래를 했다. 그들이 농장에서 한 계절이나 1년 동안 일하면 지주는 그 대가로 음식과 옷 그리고 잠잘 곳을 제공했다. 주화가 등장하고 수십 년 뒤에 그들과 지주의 관계에 변화가 생겼다. 가난한 사람들은 날품팔이가 됐다. 그들은 아침에 출근해서 일하다가 하루가 끝날 무렵에 품삯을 받고 퇴근했다. 사람들은 새로운 임금 기반 경제 시스템에 유입되기 시작했다. 주화의 확산, 즉 화폐의 부상으로 사람들은 더 자유로워졌고 자신의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를 얻게 됐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은 더 고립되고 나약해졌다.

화폐가 발명되고 경제 혁명이 일어나다

중국은 리디아와 거의 같은 시기에 주화를 발명했다. 중국이 주화를 발명한 것은 어디까지나 우연이었다. 초기 중국의 주화는 아주 작은 청동 칼과 청동 삽이었다. 그러다가 엽전과 유사한 모양의 주화가 등장했다. 당시 중국인은 가운데 구멍이 뚫린 작은 청동을 주화로 사용했다. 주화의 가치는 주화에 함유된 금속의 가치를 기준으로 책정됐는데, 사실 청동은 그렇게 값진 금속이 아니었다. 그래서 물건을 사려면 적어도 주화를 한 움큼씩 들고 다녀야 했다. 이후 서기 1세기 초, 중국은 관료제를 기반으로 통합된 제국을 세웠고, 수만 명이 고위 관직을 얻기 위해서 과거에 응시했다. 과거에 급제한 몇몇은 실크 또는 나무나 대나무로 만든 판에 적인 방대한 기록물을 관리했는데, 기록물이 급격히 늘어나자 실크 비용과 나무와 대나무 판의 부피가 문제가 됐다. 중국 관료들은 문서 작업에 더 적합한 기록 매체가 필요했다. 바로 이때 종이가 등장했다.

최초의 종이가 등장하고 수백 년이 지나 인쇄술이 등장했다. 그 배경에는 불교가 있었다. 불교에서는 경전을 필사해 널리 퍼뜨리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다. 일부 승려들이 똑같은 경전을 끊임없이 베껴 쓰는 데 진저리를 느껴 기막힌 아이디어를 냈다. 경전에서 성스럽지 못한 내용을 모두 삭제하고 목판에 새긴 것이다. 그리고 목판에 잉크를 바르고 종이 위에 찍었다. 서기 710년경, 현존하는 불경 인쇄물 중 가장 오래된 인쇄 활자는 그렇게 종이 두루마리 위에서 탄생했다. 이제 중국은 종이, 인쇄술 그리고 주화를 갖게 됐다. 그로부터 2세기 뒤, 중국 쓰촨성에서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탄생한다. 바로 지폐다. 중국의 주화는 대부분 청동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청동이 귀했던 쓰촨성에서는 철전이 사용됐는데, 철은 주화 재료로서 최악이었다. 소금 약 500그램을 사려면 철전 약 700그램이 필요했다.

이후 서기 994년경, 쓰촨성 청두에서 활동한 어느 상인이 기막힌 아이디어를 냈다. 그는 사람들이 철전을 맡기면 종이에 영수증을 찍어서 내줬다. 일종의 예탁 증서로, 오늘날 사용하는 코트 보관증과 같은 것이었다. 보관증만 보여주면 코트를 찾아갈 수 있듯이, 이 영수증이 있으면 누구나 상인에게서 철전을 되찾아 갈 수 있었다. 또 영수증은 양도가 가능했다. 사람들은 철전을 무겁게 짊어지고 다니는 대신, 물품을 구입할 때 영수증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종이’ 영수증이 화폐로 사용된 것이다.

이윽고 다른 상인들도 영수증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쁜 생각을 품은 상인들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어떤 상인은 보관하는 철전도 없으면서 영수증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차용 증서를 발행했고, 이렇게 차용 증서가 유통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철전과 맞바꾼 차용 증서가 아무 가치 없는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분노했고 고소와 소송이 난무했다. 몇 년 뒤 쓰촨성 정부는 직접 지폐를 발행했는데, 지폐에 주화를 그려 넣었고,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도 지폐에 그려진 주화의 개수대로 지폐와 주화를 교환할 수 있었다.

당시 상인들은 교역을 하려면 무거운 주화를 짊어지고 다녀야만 했다. 이로 인해 교역 활동이 어려워지거나 불가능하기도 했는데, 지폐는 그런 불편함을 타개하는 돌파구 같은 존재였다. 지폐가 중국 전역으로 확산되자 교역이 활성화됐고 사람들은 보다 많은 것을 배웠고 기술을 발전시켰다. 지폐는 노동 방식마저 바꿨다. 수백 년 동안 국가에서는 옷감과 곡물을 세금으로 거둬들였고, 사람들은 세금을 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옷감을 짜고 농사를 지어야만 했다. 주화와 지폐가 통용되자, 당국은 주화와 지폐로 세금을 거둬들였다. 그러자 사람들은 자유롭게 직업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됐다.

학자들은 중국의 화폐 등장을 유럽의 산업 혁명보다 수백 년 앞선 경제 혁명이라 설명한다. 활자와 자기 나침반이 발명됐고 농부들은 같은 크기의 토지에서 더 많은 쌀을 수확할 수 있는 새로운 농법을 개발했다. 또 책이 인쇄되면서 정보가 중국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점점 많은 사람이 공물제로 운영되는 봉건 경제에서 벗어났고 화폐에 의해 움직이는 시장 경제로 편입됐다. 초기 황제들은 몇 개의 구역을 정해 두고 그곳에서만 시장이 열리도록 했다. 정부가 관리하는 시장에서는 가격이 엄격하게 통제됐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시장에 대한 규제는 느슨해졌고 사람들은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것을 판매할 수 있게 됐다. 시장이 생기고 인구가 증가하면서 도시가 형성됐다. 런던과 파리의 인구가 10만 명이 채 안 되던 시기에 중국의 두 개 도시의 인구가 각각 100만 명 이상으로 증가했다.

유로화부터 비트코인까지 현재진행형인 돈의 변신 ­ 새로운 화폐의 탄생

리먼 사태와 그림자 금융

두 사내와 머니마켓펀드: 브루스 벤트는 한 보험 회사의 투자 부서에 취직했다. 그는 해리 브라운과 같은 날 첫 출근을 했는데, 브라운은 훗날 벤트의 상사가 된다. 두 사람은 손발이 척척 맞았다. 몇 년 뒤에 둘은 회사를 나와서 브라운 앤드 벤트를 설립했다. 그들은 투자할 여유 자금이 있는 보험 회사들과 대출이 필요한 회사들을 서로 연결해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사업은 신통치 않았다. 그들은 하루하루 근근이 버텼다. 그로부터 몇 년 뒤에 그들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1933년에 제정된 연방 규정은 적금 계좌의 금리 한도를 설정했고 예금 계좌에는 이자를 일절 지급하지 않도록 했다. 그러자 돈이 많고 몇 주 혹은 몇 달 동안 돈을 묶어 둘 의향이 있는 사람들은 10만 달러 적금 계좌를 개설하거나 트레저리 빌(Treasury bills) 또는 T-빌(T-bills)로 알려진 단기 국채를 매입해서 더 많은 이익을 챙겼다. 하지만 일부 투자자들은 여유 자금을 장기간 묶어 두기 싫어했고, 투자자들 중에는 거금을 투자할 여력이 없는 사람도 있었다. 두 사람은 이런 투자자들을 위해서 단기 국채와 고액 적금 계좌처럼 높은 이자 수익을 제공하는 투자 상품을 개발하기로 결심했다.

어느 날 오후 벤트에게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벤트는 “전 브라운을 쳐다보며 뮤추얼 펀드는 어떠냐고 말했죠.” 뮤츄얼 펀드는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되는 자금이다. 퇴직 계좌가 있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한두 개 이상의 뮤추얼 펀드에 투자하는 투자자일 가능성이 높다. 뮤추얼 펀드에 투자한다는 것은 사실상 해당 뮤추얼 펀드를 구성하는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하는 것과 같다. 뮤추얼 펀드의 가치는 펀드를 구성하는 주식과 채권의 가치와 함께 매일 오르고 내린다.

브라운 앤드 벤트는 주식이나 채권에 대한 투자가 아니라, 은행에 있는 돈처럼 느껴지는 뮤추얼 펀드를 만들고자 했다. 예금 계좌의 편의성을 모두 갖지만 이자율이 높은 뮤추얼 펀드 상품을 원했다. 그래서 뮤추얼 펀드 모델을 약간 변형하기로 했다. 뮤추얼 펀드에 사람들이 투자하면 그들은 투자자의 돈을 단기 국채 형태로 정부에 대출해주고, 고액 적금 계좌의 형태로 은행들에 대출을 해줬다. 이 금융 상품들은 매우 안전한 단기 투자 상품이었다. 너무나 안전해서 뮤추얼 펀드 가격은 펀드를 구성하는 주식이나 리스크가 높은 채권처럼 매일 오르내리지 않았다. 브라운 앤드 벤트는 주가를 주당 1달러로 정했다. 그리고 외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주가를 주당 1달러로 유지할 수 있는 회계 시스템을 사용했다. 그야말로 은행에 맡긴 돈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뮤추얼 펀드를 ‘적금 펀드’라 부르려 했지만, 뮤추얼 펀드를 규제하는 증권거래위원회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적금 펀드’만큼이나 재미없는 ‘리저브 펀드’(Reserve Fund)라는 이름을 붙였다. 리저브 펀드는 ‘준비금’이란 의미를 담고 있었다. 바로 정확히 그들이 노린 것이었다. 리저브 펀드는 1972년부터 운용되기 시작했다. 1973년 말까지 그들은 리저브 펀드를 통해 1억 달러를 운용했다. 몇 년 만에 경쟁 펀드들이 많이 생겨났다. 이것들은 머니마켓펀드(money-market funds), 즉 MMF라고 불리게 될 새로운 종류의 펀드들이었다. 머지않아 사람들은 자신의 머니마켓펀드로 수표를 발행할 수 있게 됐다. 다시 말해 머니마켓펀드에 들어 있는 돈으로 소비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마침내 머니마켓펀드에 투자한 돈은 은행에 맡긴 돈처럼 사용되기 시작했다!

머니마케펀드에 뛰어든 대형 은행: 벤트와 브라운이 작은 사무실에서 머니마켓펀드의 씨앗이 되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 지 10년이 흐른 시점인 1982년, 머니마켓펀드에 2,00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이 흘러 들어갔고, 매년 수십억 달러의 돈이 머니마켓펀드 시장에서 움직였다. 벤트와 브라운은 고액 적금 계좌와 단기 국채에 계속 투자했지만 다른 펀드 회사들은 새로운 투자 상품을 찾기 시작했다. 일부는 펀드 자금으로 ‘기업 어음’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주로 안전하고 탄탄한 기업의 어음을 매입해 어음을 발행한 기업에 단기로 돈을 융자해 줬고, 1980년대 머니마켓펀드는 기업 어음의 최대 매수자가 됐다.

그리고 거대한 자금이 은행에서 머니마켓펀드로 흘러 들어갔다. 미국 거대 은행 중 하나인 씨티은행이 막대한 자금 흐름에 뛰어들었는데, 그들은 법조계와 금융업계를 교묘하게 활용해 소위 ‘자산 담보부 기업 어음’(ABCP)을 만들어 냈다. 자산 담보부 기업 어음은 머니마켓펀드 운용사에 기업 어음을 발행하기에는 계정 상태가 안정적이지 않은 기업들에게 돈을 빌려주기 위한 새로운 수단이었다. 곧 다른 은행들도 머니마켓펀드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1990년대 초반까지 수십억 달러가 자산 담보부 기업 어음으로 흘러 들어갔고, 은행들은 매달 더 많은 자산 담보부 기업 어음을 팔았다.

넘쳐흐르는 돈이 만든 금융 거품: 20세기의 마지막 수십 년 동안 금융 산업은 놀랍도록 성장했다. 그 결과, 부자와 기업 그리고 연금 펀드 운용사와 각국 정부는 넘쳐 나는 돈 때문에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그 많은 돈을 어딘가에 투자하는 대신 예금 계좌에 잠깐 넣어 뒀으면 했다. 다음 주에 급여를 지급하거나 다음 달에 퇴직금을 지급할 때 쓸 돈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머니마켓펀드에 투자했다. 그리고 머니마켓펀드 운용사들은 이 막대한 자금을 보통 은행처럼 정부 보증도 없고 예금과 대출도 하지 않는 월가의 투자 은행에 빌려주기 시작했다. 21세기 초반의 거대한 금융 거품을 팽팽하게 부풀린 공기는 다름 아니라 그저 잠깐 안전하게 저장할 장소가 필요했던 돈이었다.

21세기 들어 첫 10년 동안 부동산 시장은 호황이었다. 신용 등급이 아주 낮은 사람들조차도 주택 담보 대출을 잔뜩 받아서 가격이 과도하게 오른 주택을 구입했다. 신용 등급이 낮은 사람들이 터무니없이 비싼 주택을 구입하기 위해서 받은 주택 담보 대출금의 출처는 바로 머니마켓펀드였다. 그런데 2006년 주택 가격의 상승세가 멈췄고 기업 재무 책임자와 머니마켓펀드 운용사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산 담보부 기업 어음을 통해 주택 담보 대출 상품에 투자했던 투자 펀드 운용사에게 돈을 되돌려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몇몇 투자 펀드 운용사들은 그들에게 돌려줄 돈을 마련하지 못했다. 그러자 불안감을 느낀 사람들은 너도나도 자신들의 투자금을 돌려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대형 투자 회사 핌코 소속의 경제학자 폴 맥컬리에게 이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었다.

그림자 금융이 만든 위험: 폴 맥컬리는 2007년 여름 은행 총재들과의 미팅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정말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림자 금융 시스템에서 뱅크런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때까지 그 누구도 이 새로운 금융 시스템을 ‘그림자 금융’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림자 금융은 전통적인 금융 시스템의 리스크를 모두 안고 있었지만, 변변한 안전망 하나 없었다. 그래서 그림자 금융은 전체 경제 시스템을 파괴할 수 있는 뱅크런 위험에 완전히 노출되어 있었다.

2007년 그림자 금융은 전통적인 금융보다 비대해졌다. 기업 재무 담당자, 머니마켓펀드 운용사 그리고 연금 펀드 운용사는 수조 달러에 달하는 현금을 그림자 금융에 투자했다. 하지만 불안감을 느낀 그들은 돈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미국 역사상 최악의 뱅크런이 촉발됐다.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소형 투자 은행 베어스턴스에서 첫 번째 뱅크런이 발생했다.

2008년 3월 머니마켓펀드 운용사들은 베어스턴스에 자금을 빌려주는 것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고, 빌려준 돈을 모두 되돌려 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베어스턴스는 그들에게 되돌려 줄 돈이 없었다. 베어스턴스는 상업은행이 아니었다. 그래서 일반 예금은 없었고 연방준비은행으로부터 자금을 빌릴 수도 없었다. 하지만 연방준비은행은 ‘특이하고 긴박한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자금을 빌려줄 수 있는 법 조항을 근거로 베어스턴스에 130억 달러를 빌려줬다. 연방준비은행은 최후의 대출 기관으로서 최악의 뱅크런을 막기 위해서 그림자 금융에 돈을 퍼붓기 시작했다.

베어스턴스는 연방준비은행에서 빌린 돈으로 영업을 개시했고, 주말이 되자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JP모건 체이스가 현금으로 베어스턴스를 인수했다. 연방준비은행은 인수 거래의 조건으로 베어스턴스로부터 300억 달러의 주택 저당 채권을 매입하는 데 동의했다. 그렇게 베어스턴스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마침내 주책 저당 채권은 안정화됐고, 연방준비은행은 이자와 함께 빌려준 돈을 회수했다.

몇 달 뒤에 또 다른 투자 은행에서 뱅크런이 터졌다. 바로 리먼 브라더스였다. 리먼 브라더스는 베어스턴스와 같은 투자 은행이었지만, 규모가 훨씬 컸다. 2008년 9월 리먼 브라더스에 돈을 맡긴 거의 모든 사람이 돈을 돌려 달라며 찾아왔다. 하지만 리먼 브라더스는 그들에게 돌려줄 돈이 한 푼도 없었다. 그 누구도 사려고 하지 않는 주택 저당 채권만 잔뜩 안고 있었고, 9월 15일 파산을 선언했다.

진짜 돈이 된 그림자 화폐: 이후 자산 담보부 기업 어음에 투자해 그림자 금융에 참여했던 씨티은행과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정부 공채와 보증으로 수천억 달러에 달하는 구제 금융을 받게 됐다. 이로써 그림자 금융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 낸 그림자 화폐는 비용을 단 한 푼도 지불하지 않고 수십 년 동안 돈에 제공되는 모든 안전망을 누리게 됐다. 그리고 이로써 그림자 화폐가 진짜 돈이 됐다.

머니마켓펀드와 그다음 위기: 2008년 금융 위기 시기에 정부가 제공한 보험은 위기를 지나 만료됐다. 사람들은 몇 년 동안 머니마켓펀드를 어떻게 관리하고 규제할 것인지를 두고 열띤 토의를 했다. 결국 머니마켓펀드 시장을 규제하기 위해 새로운 법률이 마련됐지만, 머니마켓펀드 업계는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많이 얻어 갔다. 법인과 기금처럼 오직 대형 투자자만이 참여할 수 있는 머니마켓펀드 상품들은 가치의 변화를 일일 단위로 보고해야 한다. 하지만 일반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운용되는 펀드는 투자자들에게 실질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이전과 같은 회계 시스템을 사용한다. 사람들은 여전히 머니마켓펀드 계좌를 이용해서 개인 수표를 발행할 수 있다. 머니마켓펀드 운용사들은 은행처럼 규제를 받진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머니마켓펀드에 맡긴 돈을 은행에 맡긴 돈처럼 생각한다.

2020년 봄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되자 혼비백산한 사람들은 또다시 머니마켓펀드에서 돈을 회수해 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수십억 달러가 머니마켓펀드 시장에서 빠져나갔다. 이에 미국 정부는 다시 한 번 부랴부랴 펀드를 보호하려고 나섰다. 마니마켓펀드가 불러온 2008년 공황 사태가 주는 핵심 교훈은 ‘돈을 따라가라’는 것이다. 전통적인 금융 시장에서 돈이 흘러가는 곳을 살펴보란 의미가 아니다. 그림자 금융의 관점에서 새로운 종류의 유사 화폐가 탄생하는 곳을 면밀히 살피란 의미다. 사람들이 대출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대출을 받는 곳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여기에 돈을 맡기면 은행에 맡긴 돈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말인즉, 지금 당장이라도 완전한 액면가로 인출이 가능한 돈이다. 1690년 금세공업자들이 발행한 차용 증서, 1930년 은행 예금 또는 2007년 머니마켓펀드 사태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돈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가진 모든 사람이 한 번에 그것을 현금화하겠다고 결심하면 또다시 세계 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악화될 것이라는 것이다.

나가며 ­ - 돈의 미래

돈은 선택이다. 또는 연속적인 선택들의 결과가 돈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돈이 선택의 결과라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돈은 그냥 돈처럼 느껴진다. 다시 말해서 지금 우리가 돈이라고 부르며 사용하는 것들은 처음부터 돈이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통찰력 있는 누군가가 “우리는 잘못된 것을 돈인 양 사용하고 있어. 여기 돈으로 사용하기 더 좋은 것이 있지.”라고 말한다. 그러면 나머지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게 진짜 돈이야. 당신은 지금 말도 안 되는 미친 소리를 하고 있어!”라고 반박한다. 보통은 이쯤에서 언쟁이 끝난다.

하지만 종종 금융 위기가 닥치거나 정권이 교체되거나 신기술이 등장한다. 아니면 세 가지가 동시에 복합적으로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면 갑자기 모두가 돈에 대해서 이상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고 손가락질 받던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는 금이 가치를 담보하던 지폐나 가치를 담보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지폐 또는 컴퓨터에 빼곡히 기록된 숫자처럼 새로운 무언가가 있다. 지금도 똑똑한 많은 사람이 우리가 터무니없는 것을 돈으로 사용한다고 생각하고, 그 돈을 대체할 더 좋은 것이 존재한다고 확신한다. 사람들은 미래의 돈이 지금의 돈과는 완전히 다를 것임을 안다. 단지 어떻게 다를지 모를 뿐이다. 미래의 돈에 기대하는 세 가지 가능성이 있다.

현금 없는 세상: 돈은 여러 방향으로 변할 수 있다. 그중에서 가장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세상에서 지폐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이미 오랜 시간에 걸쳐 일어나고 있다. 2020년을 기준으로 중국의 모바일 결제 애플리케이션 알리페이의 이용자는 대략 10억 명에 이른다. 모바일 결제 애플리케이션이 급속히 증가했지만, 세계 도처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예를 들면 해가 갈수록 유통되는 지폐의 양이 세계 경제 성장률보다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2020년 미국에서는 1인당 지폐 보유량이 5,000달러를 넘어섰다. 사람들이 이 돈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탈세와 마약 밀매 그리고 인신 매매와 장물 밀매를 위해서 현금을 사용하고 있다. 이런 추론이 가능한 이유는 시중에 유통되는 거의 모든 지폐가 고액권이기 때문이다. 고액권은 일상생활에는 유용하지 않지만 특히 범죄와 탈세에 아주 유용하다.

현금으로 인한 범죄율은 증가하고, 현금은 스스로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테니 범죄를 근절하기 위해서 정부 차원에서 현금을 없애야 하지 않을까? 전 국제 통화 기금 수석 경제학자이자 현재 하버드대학교에 몸담고 있는 켄 로고프는 현금을 반대해 온 대표적인 인물인데, 그는 지폐를 완전히 없애는 데는 반대하고, 대신 고액권 지폐를 없애고 소액권 지폐를 주화로 대체하자고 주장한다. 로고프가 제시한 지폐 없는 세상의 장점은 또 있다. 그는 지폐가 없다면 중앙은행에서 마이너스 금리를 설정하기 더 수월해지므로 국가들이 더 빨리 경제 위기에서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2009년에 전격적으로 기준 금리를 0퍼센트에 아주 근접하게 인하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여전히 실업률은 높았고 지출은 적었고 경제는 침체됐다.

이미 현금이 사라지고 있는 국가도 있다. 바로 스웨덴이다. 2000년대 중반 스웨덴에서는 폭력 강도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고, 그 이후 현금 사용이 급격히 하락하기 시작했다. 2018년 한 설문조사에서 스웨덴인 중 13퍼센트만이 최근에 현금으로 결제했다고 응답했다. 강도 피해를 입은 은행의 지점 중 절반 정도는 현금을 인출하거나 예치하는 서비스를 중단하고, 고객들에게 카드나 모바일 결제 앱의 사용을 권장했다. 일각에서 은행의 이런 움직임에 반발했다. 그러자 2019년 스웨덴 정부는 은행을 대상으로 현금 입출금 서비스를 의무화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현금은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중앙은행과 상업 은행 그리고 그림자 금융이 돈을 만들고 관리하는 기본적인 방식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은행이 더 이상 돈을 만들 수 없다면: 민간 은행은 세상에 있는 대부분의 돈을 보관할 뿐만 아니라 돈을 만들어 낸다. 은행에서 대출을 해주면 결국 수익금이 누군가의 은행 계좌에 예치된다. 은행은 이렇게 돈을 만들어 낸다. 거의 100년 동안 뛰어난 경제학자 중 일부는 이를 두고 정말 형편없는 돈의 관리 방식이라 말했다. 예들 들면, 1930년대부터 피셔를 포함해 미국의 가장 유명한 경제학자들이 돈을 만들고 파괴하는 은행들의 능력을 ‘오늘날 미국의 통화 및 금융 시스템에서 가장 헐거운 나사’라고 주장했다. 그들이 제시한 해결책은 정부가 은행을 없애는 것이었다.

정부가 은행 설립을 금지한다는 것은 마치 급진주의자들의 꿈처럼 들린다. 하지만 자유시장을 사랑하고 정부 개입을 경계하는 많은 경제학자들이 민간 은행에서 돈을 만들어 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알다시피 자유시장을 옹호하는 밀턴 프리드먼이 은행을 없앨 것을 제안했다. 또 경제학자 존 코크런은 은행을 ‘옛 자본가의 거대한 악몽’이라 불렀다. 코크런과 프리드먼 그리고 피셔는 한발 비켜서서 은행 시스템을 지켜봤다. 그리고 “잠깐만, 굳이 이래야만 하는 걸까? 문제의 핵심은 기본적으로 은행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다른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야.”라고 말한다. ‘① 은행은 돈을 보관하고, 사람들이 돈을 벌고 지불하는 것을 더 쉽게 만든다. ② 은행은 대출을 한다.’

그들은 은행의 두 가지 기능을 분리하자고 주장했다. 그들의 아이디어는 오늘날의 ‘부분 지급 준비금 제도’와 반대되는 ‘100퍼센트 지급 준비금 제도’나 ‘전액 지급 준비금 제도’ 혹은 ‘내로 뱅킹’(narrow banking, 보험사나 증권사가 시중 은행과 동일하게 지급, 결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라 불린다. 세부 내용은 다르지만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간단하다. 우선 ‘돈 창고’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은행의 입출금과 대출 기능이 분리된 새로운 세상에서 사람들은 돈 창고에 돈을 보관하고, 예치된 돈으로 공과금을 내고 ATM으로 현금을 인출할 수 있다. 돈 창고는 연방준비은행의 계좌에 사람들의 돈을 보관한다. 돈 창고에 돈을 보관하는 대신 약간의 보관료를 지불하게 될지도 모른다. 꽤 유용한 서비스다.

다음 ‘대출 전문 기관’이 등장한다. 자금은 대출을 회수하지 못해 손해를 입는 것을 알고 있는 투자자를 통해 마련된다. 바로 뮤추얼 펀드의 운영 방식이다. 뮤추얼 펀드는 투자자의 돈으로 회사채를 매입하여 기업에 대출해주고, 기업이 돈을 갚지 않으면 투자자는 손해를 본다. 이처럼 은행에서 대출 기능이 사라진다면 뮤추얼 펀드처럼 대출만 전문적으로 하는 기관이 생겨날 수 있다. 이런 세상에서는 뱅크런과 같은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돈 창고에 맡긴 돈을 갑자기 모든 사람이 전부 찾아가더라도, 걱정할 것은 없다. 돈 창고는 사람들이 맡긴 돈을 돌려주면 그만이다. 멋진 세상이 아닌가!

그럼에도 이런 세상에 두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첫째, 돈을 잠시 어딘가에 맡겨 이자를 받기를 바라는 사람들, 돈을 빌리고 싶은 사람들, 이윤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항상 존재한다. 사람들은 계속 그림자 금융을 재창조할 것이다. 만약 2000년대 초반처럼 그림자 금융이 비대해지면 큰 문제가 된다. 하지만 그림자 금융이 빚어낸 문제는 규정만 잘 마련하면 어쩌면 해결될 수도 있다. 단, ‘어쩌면’ 말이다. 두 번째 문제는 첫 번째 문제보다 더 이상하고 흥미롭다. 은행의 입출금 기능과 대출 기능을 제한한다면, 엄청난 액수의 돈이 사라질 것이다. 은행이 돈을 만들어 낼 수 없다면 그 많은 돈을 어디서 만들어 내야 할까? 간단히 말하면, 중앙은행이 담당하면 된다. 돈의 권력을 둘러싼 역학 관계가 민간 은행에서 중앙은행으로 기울게 될 것이다.

일하길 원하는 모두에게 일자리를 주는 세상: 2019년 초에 하원의원으로 선출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츠가 대규모 정부 사업을 제안하기 시작했다. 그가 제안한 정부 사업에는 일하고 싶어 하는 모든 미국인에게 정부 기관에서 일할 기회를 주는 사업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비용을 어떻게 마련할 생각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거두면 되지 않겠냐고 답했다. 말미에는 일단 돈을 쓰고 비용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돈에 관해 조금 이상한 이론을 새롭게 제시하고 있었다. 그가 제시한 이론은 수십 년 동안 조용히 지지 세력을 모으다가 갑자기 수면 위로 떠올랐는데, 그 이론은 현대통화이론(Modern Monetary Theory)으로 불린다. 이 이론의 기원은 거의 1세기를 거슬러 올라간다. 1990년대 초 헤지 펀드 매니저 워런 모즐러는 이탈리아 재무장관을 만나기 위해서 로마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는 이탈리아 은행으로부터 리라로 돈을 빌려 이탈리아 정부에 높은 이자율로 빌려줄 생각이었다. 그러면 거의 비용을 들이지 않고 막대한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단, 이탈리아 정부가 대출금을 꼬박꼬박 상환한다면 말이다. 그래서 그는 채무 불이행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무장관을 만나러 갔다.

모즐러는 재무장관에게 채무를 상환할 돈이 필요하면 돈을 찍어 내면 된다는 사실을 이해시키려 했다. 재무장관은 그의 주장에 동의했다. 그래서 모즐러는 이탈리아 은행에서 리라로 빌린 돈을 이탈리아 정부에 대출해 줬다. 이탈리아 정부는 이자를 붙여서 모즐러에게 빌린 돈을 갚아 나갔다. 모즐러는 이렇게 해서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한편 미국 의회와 대통령은 예산 적자를 막기 위해서 증세를 단행했다. 여느 부자들과 마찬가지로 모즐러는 증세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증세가 불필요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이론까지 갖추고 있었다. 미국은 물가 상승률이 낮았고 실업자가 존재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정부는 이런 상황에서 세금을 인상하는 대신 지출을 늘려야 마땅했다. 정부 지출을 위해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거둬야 한다는 논리는 시대를 역행한다고 모즐러는 주장했다.

마침내 모즐러는 힘 있는 사람들을 설득해 자신이 옳고 다른 사람들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한때 함께 일했던 상사를 통해서 많은 역대 대통령과 일했던 도널즈 럼즈펠드와 만날 기회를 얻었다. 럼즈펠드는 모즐러를 세금 인하를 주장하는 경제학자 아서 래퍼에게 보냈다. 이후 모즐러는 래퍼의 동료에게 2만 5,000달러를 지불하고〈연화 경제학〉이란 논문을 함께 작성하게 된다.

논문은 “엄청난 풍요의 시기에 우리의 지도자들은 빈곤을 조장한다. 우리는 더 많은 교사를 채용할 수 없다고 들었다. 하지만 많은 교사가 일할 곳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점심으로 무료 급식을 제공할 여유가 없다고 들었다. 하지만 잉여 음식이 버려지고 있다.”라고 시작한다. 적자에 대한 걱정을 멈추라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있고 미사용 자원이 존재하는 한 정부는 필요한 만큼 돈을 찍어 낼 여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이 논문을 읽지 않았다. 이후 모즐러는 자신과 유사한 생각을 하고 새로운 사고방식에 현대통화이론이란 이름을 붙인 비주류 경제학자 몇몇을 만나게 된다. 1990년대 중반에 경제학자 스테파니 켈턴은 모즐러가 자금을 지원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그는 모즐러의 이론에 흥미를 느꼈지만 회의적이었다. 그는 정부 지출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싶었다.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정부 지출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몇 달 동안 난해한 문서들을 보며 조사하기 시작했다. 연방 정부의 지침서를 읽고 미국 재무부에서 정부 계좌 입출금 업무를 처리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돈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는 정부가 재화와 서비스를 구입함으로써 달러가 만들어진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런 방식으로 경제 시스템에 새로운 통화가 유입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부가 세금을 징수하거나 국채를 발행해 통화량을 줄인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적자에 대한 걱정이 과하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그리고 정부가 풍요로운 시기에 돈으로 훨씬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들의 주장에서 아마도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정부가 일하길 원하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고, 나아가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가 상승률이 증가하기 시작하면 정부는 세금을 인상해 과열된 경기를 안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2015년, 켈턴의 현대통화이론은 버니 샌더스의 관심을 끌었다. 켈턴은 샌더스의 경제 자문위원이 됐고 기자들에게 현대통화이론에 대해서 설명했다. 2년 뒤에 민주당이 하원 다수석을 차지하고 새로 선출된 하원의원이 현대통화이론을 근거로 정부가 비용 걱정 없이 더 많은 정책을 펼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현대통화이론은 또다시 힘을 얻었다. 하지만 현대통화이론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정치인은 아무도 없는 듯했다. 이 말인즉, 정부가 지출을 늘려야 하는 경우에 과도한 정부 지출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미국 의회는 통화량을 줄이고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세금을 인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비민주적으로 돈을 만들고 관리한다. 정치인들은 국가 통화를 통제하고 관리하도록 중앙은행을 지정한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중앙은행에 거의 개입하지 않는다. 만약 중앙은행이 수조 달러를 만들어 위기에 처한 그림자 금융을 구제하길 원하면 중앙은행은 그렇게 할 수 있고,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 기준 금리를 대폭 인상시키길 원한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 심지어 금리가 인상되면 많은 사람이 실업자가 되더라도 말이다. 이것이 우리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세상이다. 우리는 돈에 관해서 민주주의를 포기하고 중앙은행이 스스로 최선이라 생각하는 방식으로 돈을 관리하도록 했다. 켈턴과 현대통화이론 지지자들은 굳이 이런 식으로 돈을 관리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돈은 좀 더 민주적으로 관리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 사람들을 실직으로 내몰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렇게 하려면 우리는 마음을 굳게 먹고 스스로 돈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선출한 대표들이 돈을 합리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본 도서요약본은 원본 도서의 주요 내용을 5% 정도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원본 도서에는 나머지 95%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보다 많은 정보와 내용은 원본 도서를 참조하시기 바라며, 본 도서요약본이 좋은 책을 고르는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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