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기행

막걸리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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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기행
정은숙 지음
한국방송출판

책소개

이 책은 2009년 7월, MBC 시사 매거진 2580에서 막걸리
예찬가인 일본인 야마시타와 정은숙 작가가 함께 기획한
막걸리기행을 새롭게 구성하였다. 책을 읽다보면 지나간
시절의 추억과 향수, 낭만, 사람 사는 푸근한 정에 막걸리가
있는 대폿집을 찾아가서 맛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질 것이다.

요약본 본문

막걸리란?

‘청주와 탁주’ 한국의 전통적인 발효주(곡주)는 대부분 주재료인 곡물과 누룩, 그리고 물로 빚는다. 우선 곡물을 쪄서 만든 고두밥을 잘 식힌 후, 잘게 부순 누룩이나 물에 불린 누룩 그리고 물과 함께 섞어 술독에 넣는다. 술독을 25도 전후의 온도에 놓아두면 4~5일 정도, 늦으면 7~10일 정도 지나면 발효가 거의 끝난다. 이렇게 발효된 술을 어떻게 채주하느냐에 따라 ‘청주(淸酒)’와 ‘탁주(濁酒)’로 나누어진다. 발효된 술덧(고두밥에 누룩과 물을 넣어 발효시킨 거르기 전의 상태)에 용수(원통형 모양의 술 거르는 용구)를 넣은 뒤 고이는 맑은 술이 청주며 약주(藥酒)라고도 한다. 한편 맑은 술, 즉 청주를 떠내지 않고 그대로 거른 술을 탁주라 하며 청주를 뜬 후 술지게미를 체에 받쳐 손으로 주물러 거칠게 거른 술도 탁주라 한다. 일반적으로 청주에 비해 빛깔이 흐리고 탁해서 탁주라 하였다.

막 거른 술, 막걸리 ‘막걸리’는 ‘막(마구) 거른 술’이라는 뜻이다. 술 빛깔이 탁하다하여 ‘탁배기’, 술 빛깔이 하얘서 ‘백주’, 농사 때 마시는 술이라 하여’농주’라 하였으며 지역에 따라 젓내기술(논산), 탁배기(제주), 탁주배기(부산), 탁쭈(경북), 왕대포, 흐린 술 등으로 불려 왔다. 탁주류의 대표적인 막걸리는 쌀을 누룩으로 발효시킨 후, 술의 양을 늘리거나 도수를 낮게 하기 위해 찬물을 넣어가며 거른 술을 말한다.

두 가지의 동동주 늘 정체성으로 논쟁의 대상이 되는 술 ‘동동주’가 있다. 고문헌을 보면 동동주라는 말은 없다. 대신 ‘부아주(浮蛾酒)’,’부의주(浮蟻酒)’로 언급하고 있다. 밥풀이 떠올라 있는 모습이 흡사 나방이나 개미가 떠 있는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분쇄된 누룩을 물에 불린 후 짜낸 누룩물에 찹쌀 고두밥을 섞어 3일 정도 술독에 넣어 두면 고두밥이 위로 떠오른다. 그 상태의 술을 ‘부아주’ 또는 ‘부의주’라 하여 여름철에 즉석주로 마셨다. 즉, 국(누룩 등)에 의해 전분이 분해되면서 가벼워진 고두밥이 술덧 위로 떠오르는데 이 상태로 마시는 술이 ‘부아주’ 혹은 ‘부의주’이며 요즘 말로 ‘동동주’인 것이다.

‘생막걸리와 살균 막걸리’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대부분의 양조장 막걸리는 쌀이나 소맥분(밀가루)을 발효시킨 12~18도 정도의 원주에 물과 감미료, 구연산 등을 넣어 6~8도로 제성한 것으로, 크게 ‘생막걸리’와 ‘살균 막걸리’로 나눌 수 있다. 생막걸리란 미생물(유산균, 효모균)이 살아 있는 막걸리를 말한다. 미생물이 살아 있고 도수가 낮은 생막걸리는 넘치거나 변질하기가 쉬워 장기간 보존하기가 어렵다. 실온(약 10도)에서 5~10일, 냉장이라면 한 달 정도가 상미 기간이다. 미생물의 활동을 정지시킨 것이 살균 막걸리다. 1992년에 ‘인천탁주’에서 처음 팩으로 포장한 고온 단시간 살균 막걸리’농주’가 출시되었으며, 그 후 1993년 ‘국순당’의 ‘바이오 탁’, 1996년 ‘서울탁주’의 ‘월매’ 등 살균 캔막걸리가 출시되면서 막걸리 업계에 살균 막걸리라는 새로운 바람이 불게 되었다.

막걸리의 성분과 효능 과거에는 숙취의 대명사로 불리던 막걸리가 최근 건강과 미용에 좋다고 알려져 각광을 받고 있다. 막걸리는 도수가 6~7도 정도로 맥주(4.5도)보다는 약간 높지만 포도주(12도)나 소주(25도)보다는 낮기 때문에 몸에 부담이 적어서 요즘에는 여성들도 많이 찾는다. 막걸리의 성분을 보면 80%가 물이고, 남은 20% 중에서 10%는 식이섬유, 알코올 6~7%, 단백질 1~2% 그리고 탄수화물 지방, 비타민 B C 와 유산균, 효모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막걸리 한 병에 들어있는 유산균은 100억~800억 개에 이른다. 이는 일반 요구르트 제품 100병에 맞먹는 양으로 장에서 염증이나 암을 일으키는 유해 세균을 파괴하고 면역력을 강화시켜 준다. 효모 성분에는 소화 흡수를 돕는 효소가 다량 함유되어 소화 장애를 개선할 수 있으며 식욕을 높일 수 있다.

과음하지 않는다면 어떤 술보다 건강에 이롭다. 최근 건강주의 이미지가 강한 건 이 때문이다. 저도주이기도 한 막걸리 역시 알코올 성분이 있기에 숙취에 효과가 있는 양질의 단백질과 비타민, 무기질이 풍부한 안주가 좋으며 되도록 막걸리의 순한 맛을 음미할 수 있도록 자극적이지 않은 것이 좋다. 궁합이 잘 맞는 안주로는 파전 김치전 등의 전류, 빈대떡, 도토리묵, 홍어삼합, 두부김치, 돼지편육, 묵은 김치, 생선구이 등을 들 수 있다.

제1장 전라도와 충청남도를 가다

논산

남자들만의 추억거리 논산 대한남아로 태어난 ‘덕’에 아니면 그 ‘업보’로 인해 이 땅의 사나이들은 병역의무를 짊어진다. 그리하여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부모와 자식, 사랑하는 연인, 깨벅쟁이(전라도 사투리로 발가벗고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을 말함) 친구 등 어떤 관계든 군에 들어가는 이와 이별을 나눈다. “우리의 젊음을 위하여, 건배.” “건강한 군 생활을 위하여.” “…를 위하여.”

남자들이 입대해서 군대에 배치되기 전에 기초 군사 훈련을 받는 가장 대표적인 곳이 바로 논산의 육군훈련소다. 과거 한촌이었던 연무읍은 훈련소가 생기면서 빵 등 부식을 군납하는 업체, 식당, 여관, 이발소 등이 빠르게 들어섰다. 부근에는 군에서 나오는 짬밥(군인들이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을 받아 돼지를 키우는 이들도 많았다. “옛날 대폿집, 그게 지금도 남아 있깐유, 다 없어졌슈!” 훈련소의 옛 추억과 함께해 온 대폿집을 찾는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연무읍내에서 대폿집 찾는 것을 그만 두고 택시 기사가 알려 준 훈련소 앞 금곡 2리에 있는 대폿집을 찾아 나섰다.

훈련소 앞의 대폿집 마을의 작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조용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한 시장 골목, 그 흔한 개 짖는 소리조차 없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시장 모퉁이에 있는 ‘부안집’도 마찬가지였다. 문 유리창에 노란 글씨로 큼지막하게 ‘왕대포’라 쓰여 있으니 대폿집이 틀림없다. 참으로 반갑다 ‘왕대포’. 시골 대폿집에서는 어떤 안주를 주문할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때그때 적당하게 술상을 차리는 것이 대폿집의 매력이다. 그날 밥반찬이 그대로 안주가 되기도 한다. 주인 할머니가 내온 막걸리는 ‘양촌순수생막걸리’. 병 라벨에는 풍요로운 가을 들녘에서 풍악을 울리는 농악대의 모습이 만화풍으로 그려져 있는데, 깃발에 쓰여 있는 ‘농주천하지대본(農酒天下之大本)’이라는 글자가 익살스럽다.

양촌순수생막걸리는 80여 년이 넘은 세월을 이어 온 ‘양촌양조장’에서 쌀 30%, 소맥분 70%의 비율로 빚은 알코올 도수 7도의 막걸리다. 아저씨 한 분이 “논산에서는 양촌막걸리지. 이동막걸리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지만, 여기 사람들은 그거 안 마셔. 한잔합시다!”라며 술을 권한다. 이동막걸리는 유명세에 늘 사람들의 비교대상이 된다. ‘양촌양조장’에서는 탄산의 청량감을 선호하는 요즘의 경향을 반영해 효모균을 활성화시켜 자연적인 청량감을 주는데 힘을 쓰고 있다. 자연 탄산의 상쾌함은 숙성 기간이 길지 않은 생막걸리 맛의 매력이다.

농한기에 시골의 대폿집에서 술 한 잔을 하고 있다 보면 약주를 좋아하는 동네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어이, 사진 모델 해주면 막걸리 한잔 받아 주는 겨?”우스갯소리를 건네며 빈 잔을 내미는 고씨 아저씨. 어린아이처럼 익살스럽게 웃는 아저씨의 농에 맞장구를 치며 내민 빈 잔에 막걸리를 힘차게 따라 부었다.

전주
전주의 막걸리 타운 비빔밥의 고장으로 알려진 ‘전주’는 풍요로운 식문화를 갖고 있는 전통 도시다. 최근 전주를 상징하는 키워드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것은 바로 ‘전주막걸리’다. 전주의 식문화를 알리는 대명사로 인기 상승 중인 ‘전주막걸리’. 전주막걸리는 다른 막걸리와 무엇이 다른 걸까. 막걸리 그 자체보다는 막걸리를 제공하는 방식에 그 특징이 있다. 주전자 가득 부은 막걸리의 가격은 1만 2천 원~1만 5천 원. 주전자 하나를 시키면 전라도 한정식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12~20여 가지의 안주가 공짜로 따라 나온다. 주전자를 추가하면 할수록 새로운 안주가 계속해서 나온다. 마치 누가 이기는지 해보자는 듯하다.

‘막걸리 타운’에서 가장 잘 알려진 곳은 삼천동 골목이다. 소문 듣고 찾아 온 타지인들의 모습이 예전보다 많이 눈에 띄는 걸 보니 전주막걸리가 확실히 뜨긴 떴나 보다. 전주시에서도 ‘막프로젝트’라 하여 외지인을 유인할 수 있는 매력 요인으로 ‘전주막걸리’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대부분의 막걸리집들이 전주의 대표적인 막걸리 제조업체인 ‘전주주조공사’와 ‘대성주조공사'(현재, 대성주조는 전주주조에 인수되어 ‘전주삼화주조’로 사명이 변경됨)의 막걸리를 내고 있기 때문에 막걸리 맛은 거의 동일하다.

“술은 맑은 술로 할까요?”막걸리밖에 없는 것이 아니었던가? 지역에 따라 막걸리를 ‘흐린 술’이라고는 하나, ‘맑은 술’이라니 도대체 어떤 술이란 말인가? 막걸리 병을 냉장고에 4일 정도 보관해 두면 침전물이 아래로 내려 앉아 위로는 투명한 술이 고인다. 이렇게 침전시켜 놓아 맑은 술만 따라 마실 수 있게 한 술이 이곳의 ‘맑은 술’이다. 예전부터 이렇게 가라앉혀 윗 술만 마시는 사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대놓고 선택하라는 것은 찾는 이가 많다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특히 전라도 지역이 이런 ‘맑은 술’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맑은 술 막걸리’, 굳이 말하자면 막걸리 청주인 셈이다.

살짝 데친 굴, 새콤달콤하게 무친 도라지, 탱글탱글 삶아낸 꼬막, 두부김치, 돼지편육, 삶은 소라, 그리고 조기매운탕, 찐 밤, 삶은 옥수수, 귤 등은 주전자 하나에 따라 나온 안주들이다. 주전자가 주방을 들락날락 할수록 귀한 특별 안주가 대기한다. 끝까지 젓가락을 놓을 수 없으니, 마음 비우기가 참으로 힘들다. “안주 가짓수도 그렇지만 재료 하나하나 허투루 쓰지 않는다요. 조기매운탕에 들어간 고사리도 한국산이지라.” 야무진 인상의 주인아주머니의 자부심이 엿보인다. 안주가 좋으면 술이 따르는 법인데, 이는 전주막걸리를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사람들의 인정도 예전 같지 않게 야박해져 가는 요즘에 훈훈한 막걸리 인정을 맛볼 수 있으니 길 멀다 하지말고 찾아 올 일이다.

제2장. 충청북도와 안동을 가다

안동

막걸리와 왕소금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과 대강양조장이 있는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의 경계선에 있는 고갯길이 바로 죽령(해발 689m)이다. 회곡양조장은 안동 시내에서 차로 20분 걸리는 풍산읍 회곡리에 있다. 술은 때와 장소, 같이 마시는 사람, 분위기 등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지기 마련인데, 그날 양조장 탁자 위에 놓인 왕소금을 입안에 녹이면서 마셨던 막걸리의 맛을 잊을 수 없다. 솔티 독(Salty dog), 마가리타(Margarita) 등 소금을 가미한 칵테일을 즐겨 왔지만, 왕소금 하나만 있어도 막걸리를 이렇게 맛나게 마실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변변한 안주거리가 없던 옛날, 더운 여름에는 막걸리 한 사발과 두서너 알의 소금으로 지친 몸에 영양과 염분을 보충했으리라. 그 후 맛좋은 소금만 보면 막걸리 생각이 났다. 멕시코의 술 데킬라만큼 막걸리에도 소금의 맛과 이야기가 있다. 이렇게 안동을 다시 찾은 것도 그때 그 맛을 잊지 못해서다.

진천
근대 문화유산이 되다 “누나, 진천에 오래된 양조장이 있는데 그곳 막걸리가 끝내줘. 마시면 다른 막걸리는 못 마실걸. 한번 와 봐!” 진천에 직장을 둔 후배에게 전화를 받고 충청북도 중부에 위치한 진천으로 향했다. 80여 년 전에 지어진 술도가는 자연 원리만을 이용한 과학적인 설계 시공으로 술을 빚는 데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건축학 전공으로 전직 건축 설계사였던 이규행 사장도 곳곳에 숨어 있는 지혜에 혀를 찰 정도라고 한다. 2003년에 이곳은 근대 양조장으로서 보존 가치를 인정받아 ‘근대문화유산(등록문화재 제58호)’으로 지정되었다.

제3장. 부산과 경상도를 가다

부산

‘사십계단’을 오르며 땅거미가 내리는 저녁 무렵 술집을 찾는 주당들의 눈은 더 빛나기 시작한다. 주당의 눈으로 해 떨어지는 부산의 거리를 걷고 있다. 초량시장에서 시작하여 상해거리(중국거리), 텍사스 뒷골목, 영주시장, 동광동의 골목길은 인천, 원산과 함께 국내 첫 개항지, 일제 강점기의 근대도시, 한국 전쟁의 피난지로서 그 흔적이 지금도 곳곳에 배어 있는 부산의 향수와 애환이 깃든 거리들이다. 길목 어딘가 희미한 전봇대 전등 아래 예스런 대폿집이 있지 않을까 싶어 부산에 올 때마다 자주 걷는 길이다. 우선 ‘사십계단’ 쪽으로 향했다. ‘사십계단’을 오르면 동광동 인쇄골목길이 나온다. 어둠이 깔린 한적한 길가, 유독 눈에 띄는 붉은 등불은 빈대떡 집에서 밝힌 초롱이다.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빈대떡이라는 이름이’가난한 사람의 떡(빈자貧者의 떡)이라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빈대떡은 민초들과 함께해 온 음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피난 시절 시장통이며 골목에 많았던 장사 중에 하나가 빈대떡 장사였다. 이북에서 즐겨 먹던 빈대떡은 막걸리와 오랫동안 단짝을 이룬 음식이다. 빈대떡은 역시 녹두를 맷돌에 갈아야 제맛이다. 주인아주머니가 곱게 갈은 녹두에 돼지고기, 숙주, 고사리, 파 등을 넣고 노릇노릇하게 지진 빈대떡을 내왔다. 서울 피맛골의 빈대떡집으로 유명했던 ‘열차집’ 처럼 돼지기름을 두른 뒤 돼지고기 몇 점을 넣고 지져 낸 옛날식 빈대떡과는 다르다. 요즘은 사람들이 돼지기름 냄새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식용유를 쓰는 곳이 많은데, 이래저래 들어 간 재료들을 보면 빈대떡은 더 이상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부쳐 먹는 ‘貧者의 떡’은 아닌 듯하다.
서울에 ‘장수막걸리’가 있다면 부산에는 ‘생탁’이 있다. 현대적인 설비와 지하 300m의 암반수로 빚은 ‘생탁’. 맑은 우윳빛을 띤 생탁은 연한 단맛과 함께 산미(酸味) 그리고 탄산수처럼 톡 쏘는 맛이 강해 기름진 빈대떡과도 잘 어울린다. 무를 채 썰어 고춧가루 양념에 새콤하게 무친 무생채 또한 입안을 산뜻하게 해서 빈대떡의 느끼한 맛을 가시게 해준다. 어둠이 더해가는 ‘사십계단’의 저녁, 50년 전 그때 그 시절 빈대떡 한 접시에 막걸리 한 잔으로 갈증과 허기와 서러움을 달랬을 아버지들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산성막걸리의 일기일회 동래 금정산의 능선 안쪽 아늑한 분지에 자리 잡은 ‘산성마을’. 부산 하늘 아래에서 이렇게 호젓한 산성 마을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나그네로서 큰 행운이다. 내가 직접 마셔본 막걸리 중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막걸리가 이곳 ‘산성막걸리’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지 못한다고 하더니 틀린 말이 아니다. 동래에 오니 그 맛이 머릿속에 떠올라 좀처럼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주세법에 따라 몰래 빚어야만 했던 누룩과 막걸리. 늘 불안에 싸여 있던 산성마을에 쨍하고 해 뜰 날이 찾아 왔으니, 그 때가 1979년이다. 산성막걸리 맛에 감복한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 지시에 따라 ‘민속주 1호’로 지정된 것이다. 대통령이 서거하기 3개월 전이었다.

이곳에서는 어느 식당을 가든 ‘산성막걸리’를 마실 수 있다. 마을 어귀의 지붕이 낮은 조그마한 식당에 들어갔다. 기대가 컸던 까닭일까? 옹기그릇에 담겨 나온 막걸리 맛이 기대에 못 미친다. 보존 상태에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 산미가 너무 강하고 은은하게 맴도는 향과 단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단맛과 신맛, 매운맛이 적절히 조화된 감칠맛에 전통누룩에서 오는 구수한 향이 오감을 일깨워 주던 산성막걸리의 맛이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내 입맛의 간사함도 있으리라! 그러나 냉정히 말하면 좋은 막걸리의 맛은 ‘일기일회(一期一會)’라 하겠다. 살아있는 술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르는 술답게 막걸리는 환경 변화에 민감한 술이기 때문이다. 막걸리와 함께 이곳의 명물인 흑염소 불고기가 나왔다. 불고기 양념을 한 염소 불고기는 석쇠에 구워 잡냄새가 없고, 연탄불의 맛이 스며들어 고소하고 부드럽다. 이곳에서 흑염소 불고기와 막걸리 한 잔은 통과의례와도 같다.

밀양

음악을 들으며 익어가는 막걸리 옛날 경상도 자랑에 ‘대구는 탕반(湯 ), 전주는 비빔밥, 밀양은 막걸리라’는 말이 나오고, 팔도 장타령에 ‘오밀조밀 밀양장 막걸리 맛에 못보고~’라는 구절이 나오는 것을 보면 밀양의 막걸리 맛이 이만 저만 좋았던 것이 아니었나 보다. 막걸리를 좀 마신다는 사람들은 밀양의 명물하면 으레 밀양막걸리를 떠올렸다고 하니 마음이 설레지 않을 수 없다. 가을 억새로 유명한 천황산에 들어앉은 표충사로 가는 길목, 그 길목에 있는 밀양의 양조장을 찾았다. 100여 년 된 시골 양조장은 박종대 사장 부부의 삶의 터전이 되어 있었다.

양조장 앞뜰 간이 테이블에 앉아 겨울 햇살을 쬐며 이야기를 나눴다. “발효 단계에 있는 술에 음악을 들려줍니다. 효모 등의 미생물이 춤추게 하면 발효가 더 잘되 더 맛있고 영양이 풍부한 술이 되지예.”과학적인 뒷받침은 뒤로 한 감성 풍부한 시인이며 사진가인 그다운 발상이다. “미생물이 활동하는 발효 식품에 음악을 들려주면 맛이 좋아진다’, ‘첼로 연주를 듣는 된장 대 인기’라는 말은 들은 적이 있지만 막걸리에 음악을 들려준다는 것은 처음 듣는다. 음악을 들으며 익어가는 막걸리의 맛은 어떨까? 막걸리를 한 모금 마셨더니 부드러운 과일향이 입안에 번진다. 농후하면서도 섬세한 맛이 경쾌하게 목을 타고 넘어간다. 마신 뒤에 오는 은은한 여운이 바로 다시 잔을 들게 하였다.

제4장. 강원도와 경기도를 가다

고양

막걸리 박물관 여러 척의 나룻배를 이어 만든 다리가 놓였다고 해서 붙여진 경기도 고양시의 ‘배다리’. 이곳에 ‘대통령의 막걸리’를 빚은 술도가로 유명한 ‘능곡양조장(현 배다리 술도가)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막걸리를 즐겨 마셨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 당시부터 능곡양조장을 운영해 온 이가 박관현(75세)관장이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1966년 여름, 대통령은 당시 서울 시장과 고양시에 있는 골프장에 다녀오는 길에 시원한 막걸리 한 잔이 하고 싶었다. 그래서 들어간 곳이 인근 삼송동에 있는 ‘실비옥’이라는 주막이었다.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켰는데 그 맛이 너무 좋아서 어디 막걸리냐 물었더니 능곡양조장에서 빚은 막걸리라고 했다. 대통령의 입맛을 한 순간에 사로잡은 덕분에 그 뒤 이곳 막걸리는 청와대에 진상(進上)되는 막걸리가 되었다.

청와대 납품 막걸리 1965년에 쌀로 술을 빚는 것을 금지시키고 밀가루 막걸리를 정착시키려고 한 장본인인 대통령이, 정작 자신은 쌀막걸리를 마신 것이 되지 않는가. 얄궂은 세상살이다. 청와대 납품 막걸리라는 훈장을 얻었지만 그만큼 애로사항도 많았다고 한다. 양조장이 특별 관리 대상이 되다 보니 관할 경찰서 관계자가 갑자기 들이닥쳐 막걸리 보관실을 검사하기도 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마시는 술을 빚게 되니까 위생복을 입으라고 하더라고. 의사가 입는 허연 가운을 입고 작업을 했지.”박관장은 그 시절을 추억하며 허허 웃는다.

농사를 권장하던 대통령의 술 막걸리를 가리켜 ‘오덕삼반(五德三反)’이라고 한다. 오덕(五德)이라 함은 취하되 인사불성일 만큼 취하지 않음이 일덕, 새참에 마시면 요기되는 것이 이덕, 힘 빠졌을 때 기운 돋우는 것이 삼덕, 안 되던 일도 마시고 넌지시 웃으면 되는 것이 사덕, 더불어 마시면 응어리 풀리는 것이 오덕이라는 말이다. 삼반(三反)을 보자. 놀고먹는 사람이 막걸리를 마시면 속이 끓고 트림만 나며 숙취를 부른다 해서 근로지향의 반유한적(反有閑的), 서민으로 살다가 임금이 된 철종이 궁 안의 미주를 마다하고 토막의 토방에서 멍석 옷 입힌 오지항아리에서 빚은 막걸리만을 찾아 마셨던 것처럼 서민지향의 반귀족적(反貴族的), 군관민이 참여하는 제사나 대사 때 합심주로 돌려 마셨으니 평등지향의 반계급적(反階級的)이라는 것이 삼반을 의미한다. 서민 지향의 반귀족적인 막걸리. 막걸리를 찾았다는 철종처럼 농가 출신인 박정희 전 대통령도 막걸리를 찾았는지 모른다.

궁중에서 전해진 비법 박물관 1층 시음장과 마당에 설치된 텐트 안에서는 배다리술도가에서 빚은 막걸리를 마실 수 있다. 막걸리를 주문하자 주전자에 넣은 쌀막걸리와 함께 먹음직스럽게 붉은 빛이 도는 배추김치가 나왔다. 쌀 90%, 소맥분 10%, 전통누룩을 사용하지 않는 대신 소맥분 입국을 사용해 술을 빚는다. 10%의 소맥분은 입국을 만드는 데 사용한다. 잡맛이 없는 깨끗한 맛이 일품이다. 차게 해서 마셔도 좋고 차지 않은 상태에서 마셔도 목넘김이 부드럽다. 박 관장의 막걸리에는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비법이 있다. 창업자인 1대 박승언 씨는 궁중상궁으로부터 술 빚는 법을 전수받았다. 조선 말 철종 때 퇴궐한 상궁은 궁에서 ‘전약(한방을 다리는 관직)’이었는데 궁중 술에도 정통했다. 그 비법을 살려 빚은 술의 맛이 좋아 장안에 평판이 자자했다고 한다. 그 비법 중 몇 가지가 구전으로 나마 내려와서 지금도 술 빚는 데 응용되고 있다.

포천

군대 마케팅의 성공 신화 막걸리 하면 포천, 포천하면 막걸리를 떠올린다. 이렇게 된 데에는 ‘이동주조’의 창업자인 고(故) 하유천 씨의 공적이 가히 크다고 할 수 있다. 황해도 출신인 하유천 씨는 조선 시대에 이곳에서 빚은 술이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다는 이야기와 함께 해발 904m 백운산의 맑은 물이 모여 흐르는 백운계곡 지하 암반수의 물맛을 보고 확신을 가졌다고 한다. 포천의 물맛이 좋다는 것은 예부터 알려져 있었다. 그는 당초 암반수를 사용해 청주, 소주, 막걸리를 빚었으나 점차 막걸리에 전념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군대 마케팅’을 위해서였다. 경기도 북부에 있는 포천에는 군부대가 집중되어 있다. 1960~70년대에는 군부대에 막걸리가 공급되었다. 식량의 자급자족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그 시절 만복감과 영양을 함께 보충할 수 있는 막걸리는 군인들에게 좋은 먹거리였다. 포천막걸리는 포천에서 군복무를 마친 장정들이 입소문을 내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고, 이동주조의 ‘포천이동막걸리’가 대표적으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이동막걸리가 유명해지면서 그 후광 효과로 포천의 대표 먹거리인 ‘이동갈비’도 덩달아 인기를 얻게 됐다.

전국의 술독을 모아라 현재 ‘이동주조’를 운영하는 이는 하유천 씨의 딸 하명희 이사다. 지금도 여전히 항아리 술독에 술을 빚는 것은 그녀의 아버지 하유천 씨가 ‘항아리 예찬가’로 불렸을 정도로 옹기 술독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술은 숨 쉬는 항아리(술독)에서 빚어야 좋은 맛을 내고 부드러움도 오래 간다.” 그는 전국을 돌며 술 담는 항아리를 수집했다고 한다. 어른 두 명은 족히 들어갈 것 같은 400리터의 큰 술독은 일제 강점기부터 사용되어 온 것이다. 그의 집념 덕분에 ‘이동주조’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항아리 술독을 가진 양조장이 되었다. “항아리는 스스로 온도를 조절합니다. 온도에 따라 호흡을 하지요. 스테인레스 발효통은 스스로 온도 조절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냉각수 파이프를 넣어 조절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된장이나 김치와 같이 술을 자연적으로 발효하고 숙성시켜 좋은 맛을 내는 데는 항아리만큼 좋은 것이 없지요.”

일본에서 막걸리를 빚지 못하는 이유 현재 ‘이동주조’에서는 세 종류의 생막걸리(쌀, 밀가루, 동동주)와 살균막걸리(쌀, 호박, 검은콩, 더덕, 동동주 등)를 빚고 있다. 이동주조는 1993년에 처음으로 일본에 막걸리를 수출했다. 일본 수출이 점차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일본법인 ‘이동재팬’을 설립했으며 일본의 대형 슈퍼 등에서도 이동막걸리가 판매되고 있다. 그녀는 맥주처럼 살균막걸리도 차갑게 마시는 것이 맛있다고 한다. 그녀는 일본에 직접 막걸리 생산 라인을 갖추는 것에 대해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라며 그러나 “이동막걸리를 일본에서 생산하는 것은 어렵지요” 하고 확고하게 말한다. 그 이유는 역시 ‘물’이다. “제조 방법은 어디든 비슷하지만, 맛의 90%는 물이 좌우합니다.” 물을 고집하는 것은 선대로부터의 내림인가 보다.

제5장. 막걸리가 있는 대폿집

서울 – 종로 인사동

인사동의 길목, 예스럽게 꾸민 민속주점이 많지만 옛날 대폿집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그래서 때로는 종로 뒷골목에 위치한 ‘남원집’과 같이 사람 냄새가 모락모락 날 것 같은 허름한 대폿집에 발길을 돌리는 것도 좋다. 북적거리는 분위기를 원한다면’ 와사등’, ‘낙원시장’, ‘味갈매기살’도 좋다. 그 중 골목 모퉁이 드럼통 테이블에 앉아 달빛, 별빛, 바람을 맞으면서 구운 돼지고기에 술 한 잔 걸칠 수 있는 ‘味갈매기살’의 정취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몇 차에 걸쳐 막걸리를 마실 생각이라면 시원한 솔잎향이 그대로 담겨 있는 솔바람동동주가 기다리는 ‘천강에 비친 달’에 들러 보자. 된장비빔밥으로 유명한 ‘툇마루집’의 명물인 ‘가자미식해’는 이북식 발효 음식으로, 막걸리를 좋아한다면 한번 먹어봐야 하는 안주다.

서울 – 북부 동대문

민족주의적 교풍으로 과거 ‘막걸리 대학’이라 불리던 고려대학. 그 주변 뒷골목에는 지금도 학생들이 드나들며 청춘을 함께했던 저렴한 술집들이 남아 있다. 제기동의 ‘나그네파전’, ‘고모집’, ‘충주집’, 휘경동의 ‘나그네파전’ 등은 과거 막걸리 한 잔에 세상을 논하는 학사주점의 열기를 느낄 수 있다. 성북구의 ‘신신식당’, 흥인동의 ’30년 전통 홍어찜’은 인생 경력이 좀 있는 막걸리파에게 딱 좋다. ‘신신식당’에서는 욕쟁이 할머니가 시골에서 직접 띄운 누룩을 사용해 빚은 농주(동동주)와 토속적인 시골 음식을, ’30년 전통 홍어찜’에서는 할머니가 누룩, 찹쌀, 물만으로 정갈하게 빚은 막걸리에 홍어찜, 홍어회 등의 곰삭은 홍어 요리의 깊은 맛을 맛볼 수 있다.

서울 – 서부 동부 남부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번화가 신촌이나 이대 앞의 민속주점을 뒤로 하고 가고 싶은 곳은 공덕동의 ‘청학동부침개’나 ‘마포 진짜 원조 최대포’. 각종 재료에 밀가루로 튀김옷을 입혀 지져낸 전이며 돼지 소금구이, 껍질구이는 막걸리 안주에 적격이다. 비라도 올라치면 공덕시장으로 향해보자. 전 골목뿐만 아니라 푸짐하면서 저렴하기도 한 족발 골목도 유명하다. 서울 변두리에서 막걸리를 맛보고 싶다면 천호동도 좋다. 천호동의 막걸리집은 홍어 안주를 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곰삭은 홍어 맛에 때로는 얼굴이 일그러지기도 하지만 일단 한번 익숙해지면 참을 수 없이 유혹적이다.

부산 – 서민문화가 꽃핀 부산

막걸리와 궁합이 잘 맞는 생선구이에 막걸리를 한잔 걸치고 싶다면 자갈치시장 뒷골목이나 용두산 공원 아래 고갈비 골목도 좋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피난민들이 몰려 왔던 그때 그 시절 부산의 추억을 함께하고 싶다면 부산역에서 가까운 ‘영주시장’이나 중앙동 ‘실비집’이 있다. 그리고 학생 민주화운동이 고조에 이르렀던 1980년대의 학원가를 느끼고 싶다면 부산대학 앞 학사주점 ‘108강의실’이 있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 막걸리와 안주를 즐기고 싶다면 궁중파전을 재현한 ‘동래할머니파전’이나 부산의 문화예술인이 자주 다닌다는 ‘부산포’도 좋다. 맑은 공기를 맡고 싶다면 구덕령 꽃마을에 있는 ‘잠이순두부’에 들러 직접 빚은 막걸리 한잔에 목을 축이는 것도 좋다.

지방 – 시골 대폿집을 어떻게 찾아 갈까?

아는 이 없는 타지에서 오래 된 대폿집을 찾기란 쉽지 않다. 현지의 택시 기사에게 물어 보라. 기사들이 그 지역에 대해 빠삭하게 아는 것도 있지만 그들 자신이 ‘싸고 맛있는 대폿집’을 자주 이용하는 이유도 있다. 또 다른 유력한 정보통은 양조장이다. 오래된 그 지역 양조장에 들러 막걸리를 시음하면서 “이 막걸리 받아 가는 대폿집 없을까요?”라고 물으면 대개 흔쾌히 알려준다. 갈 곳이 없어 헤맨다면 우선 시장으로 가자. 대폿집다운 가게를 만나지 못 할 수도 있지만, 시골 시장에는 막걸리를 내는 대중식당과 좌판식당이 꼭 있다. 또한 옛날 모습을 한 대폿집은 시장 가까운 번화가에 있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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