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100곡

무라카미 하루키의 100곡
북코스모스 회원이 되시면 오디오 듣기 이용이 가능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00곡
구리하라 유이치로 지음
내친구의서재

책소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 등장하는 100곡의 음악을 록, 팝, 클래식, 재즈 등 장르별로 정리하고, 그 음악을 해설하면서 하루키 작품에서의 의미나 역할, 작가와의 연결고리를 알아보는 약간은 특이한 문학+음악 가이드 북이다.

요약본 본문

무라카미 하루키의 100곡
구리하라 유이치로 지음
내친구의서재 / 2019년 2월 / 280쪽 / 16,000원

1장 1980년대 이후의 음악-1960년대적 가치관의 소멸

마이클 잭슨 〈Billie Jean〉
무라카미 하루키는 〈Thriller〉 뮤직비디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좀비』라는 단편까지 썼으면서 마이클 잭슨에게는 냉담했다. 그리고 오로지 〈Billie Jean〉만 인용한다. 예를 들어, 『댄스 댄스 댄스』에서는 이렇다. 남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던 ‘나’는 고대 이집트를 무대로 고탄다와 조디 포스터가 사랑에 빠지는 흡사 영화 같은 망상에 빠진다. 그곳에서 두 사람 사이에 마이클 잭슨이 난입한다. “그는 사랑 때문에 에티오피아에서 사막을 넘어 멀리 이집트까지 왔다. 캐러밴의 모닥불 앞에서 탬버린인가 무언가를 들고 〈Billie Jean〉을 부르고 춤추면서.”

『1Q84』에서는 수도 고속도로에서 차량 정체에 빠진 아오마메가 비상계단을 통해 국도 246호선으로 내려가려는 장면에서 “스트립쇼 무대” 같은 상황을 나타내는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오기도 한다. 〈Billie Jean〉의 가사는 상당히 뜬금없다. ‘나’는 영화 속에서 빠져나온 듯한 미녀 ‘빌리 진’을 알게 되고, 빌리 진은 그녀의 아이를 ‘나’의 아이라고 주장하며 ‘나’를 함정에 빠뜨린다는 내용인데, “조심해, 거짓은 진실이 되니까”라는 구절이 눈에 띈다.

『1Q84』의 테마가 이 구절과 상관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므로 두 사실을 연결 짓고자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너무 깊이 들어간 해석이 아닌가 싶다. 포인트는 아마도 『댄스 댄스 댄스』 후반에 등장하는 “마이클 잭슨의 노래가 청결한 역병처럼 세상을 뒤덮었다”라는 표현에 있다. 『댄스 댄스 댄스』에서는 1980년대라는 시대가 다양하게 형용되는데, 그중 하나로 철학이 ‘소피스티케이트’된 시대라는 표현이 있다. 널리 펼쳐진 자본의 망에 의해서 모든 가치가 세분화ㆍ상대화되어버린 세계라는 의미다. “그런 세상에서는 철학이 점점 경영 이론을 닮아갔다.” “청결한 역병”과 “소피스티케이트된 철학”은 거의 같은 것을 말한다. “그런 세상”을 상징하는 것으로 〈Billie Jean〉이 뽑힌 것이다.

라디오헤드 〈Kid A〉
『해변의 카프카』는 열다섯 살의 카프카 소년이 가출하는 것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집을 나온 그는 라디오헤드 《Kid A》와 프린스 《Greatest Hits》, 존 콜트레인 《My Favorite Things》라는 알 수 없는 조합의 곡들을 MD 워크맨으로 듣는다.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카프카 소년은 학교가 끝나면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낸다. 책을 읽는 것 말고도 시청각 부스에서 CD를 듣는다. “그곳에 있는 것을 오른쪽부터 순서대로 하나씩 들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듀크 엘링턴이나 비틀스나 레드 제플린의 음악을 만났다.”

심야 버스로 다카마쓰에 도착한 카프카 소년의 발길은 역시 도서관으로 향한다. 소년의 MD 워크맨에는 녹음 기능도 달려있었다. 라디오헤드, 프린스, 콜트레인은 다카마쓰에서 새롭게 녹음한 것일지도 모른다. 라디오헤드는 네 번째 앨범인 《Kid A》로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처음으로 달성한다. 데뷔 당시에는 그런지나 얼터너티브 록 밴드로 인식되었지만, 세 번째 앨범 《OK Computer》부터는 포스트 록이나 일렉트로닉적인 음향 탐구를 시작해서 《Kid A》에서는 더욱 추상적인 음향이 구축된다. 라디오헤드의 최대 개성은 리더이자 리드 보컬인 톰 요크의 내향적인 정신성에 있으며, 《Kid A》는 그 개성이 잘 드러난 앨범이다. 카프카 소년이 듣는 음악으로 딱이라 할 수 있다.

『해변의 카프카』 출간 당시 기한 한정 홈페이지 ‘소년 카프카’가 개설되었다. 독자가 보낸 메일에 하루키가 직접 답변한다는 취지였는데 그 수가 1220건에 이르렀다! 하루키가 독자와 주고받은 문답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임편집이라는 형태로 출간된 『소년 카프카』에 수록되어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라디오헤드에 반응한 독자가 많았다. 소설 속에서 단 두 번 등장했을 뿐인데 말이다. 하루키도 《Kid A》에 대해서 “멋진 앨범이에요. 만약 제가 열다섯 살이었다면 줄곧 그 앨범을 들었을 겁니다”라고 적었다.

비틀스 〈Norwegian Wood〉
비틀스의 여섯 번째 앨범 《Rubber Soul》은 처음으로 수록곡 전곡을 오리지널 곡만으로 채운 앨범으로, 영국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발매되어 9일 만에 12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린 히트 앨범이다. 비치 보이스의 브라이언 윌슨은 이 앨범의 영향을 받아서 후에 명반 《Pet Sounds》를 만든다.

두 번째로 수록되어 있는 〈Norwegian Wood〉는 존 레논이 애인과의 정사를 아내 신시아에게 들키지 않게 은유적으로 묘사한 곡이다. 조지 해리슨이 인도 현악기인 시타르로 이 곡의 대명사인 솔로 프레이즈를 연주한다. 베스트셀러가 된 장편 『노르웨이의 숲』에서는, 제목으로 인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작중에서 테마곡의 역할을 담당한다. 다만 등장 방식은 상당히 독특하다. 주인공인 ‘나’가 원곡을 듣는 장면은 소설 속에 단 한 번도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이야기의 서두, ‘나’가 탄 비행기가 착륙 후에 배경음악으로 교향곡 버전 〈Norwegian Wood〉가 흘러나온다. 그 멜로디에 ‘나’는 심하게 동요하며 “내가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잃어버린 많은 것”을 떠올린다. 예를 들어 그것은 지금부터 20여 년 전인 1969년, 처음으로 섹스를 한 다음 날에 모습을 감춘 대학 시절의 연인 나오코에 대한 것이자, 나오코와 교대하듯이 ‘나’의 앞에 나타나는 같은 대학에 다니는 미도리와 관련된 것이다. ‘나’에게 호의를 품은 두 여성 사이에서 흔들리던 때의 이야기를 서른일곱 살인 주인공이 풀어놓는 설정은 곡의 가사와도 관련성이 짙다.

다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정신병을 앓아서 시설에 들어간 나오코에게로 ‘나’가 병문안 가는 장면이다. 나오코의 룸메이트인 레이코 씨는 나오코의 요청으로 〈Norwegian Wood〉를 연주하는데, 곡은 이윽고 연인이 그 곡을 좋아했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된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것은 ‘나’의 집을 레이코 씨가 찾아왔을 때다. 다시 모습을 감춘 나오코를 위해서 그녀가 좋아했던 〈Norwegian Wood〉를 비롯해서 곡을 차례차례 연주하는 레이코 씨. 그녀는 나오코의 선곡 센스를 분석한다. “마지막까지 감상주의의 지평에서 벗어나지 않았네”라는 말에서 1960년대=청춘시대에 미련을 남기고 어른이 되지 못한 채 죽어간 초기 작품의 등장인물 ‘쥐’가 떠오른다.

하지만 하루키는 ‘죽음’과 ‘시대’라는 과거 작품들의 테마를 은근히 비추면서도 〈Norwegian Wood〉를 어디까지나 ‘나’ 개인의 연애를 상징하는 음악으로 사용한다. 그가 이 작품에 단 광고 문구인 “100퍼센트의 연애소설”이라는 말에 거짓은 없다.

50곡 째에 이날 두 번째가 되는 〈Norwegian Wood〉를 연주하고, 더불어 바흐의 푸가까지 연주한 레이코 씨는 ‘나’에게 “저기, 와타나베 군. 나랑 그거 하자라고 제안한다. 두 사람은 단 하룻밤뿐인 섹스를 한다.

그곳에 있던 것은 연주를 끝낸 만족감이었을까, 아니면 연애 감정이었을까. 다시 이야기 처음으로 돌아가서 추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나’가 교향곡 버전 〈Norwegian Wood〉에서 떠올린 것은 조지 해리슨이 연주하는 시타르가 아니라, 레이코 씨가 연주하는 기타였음이 틀림없다. 그때 품은 감정이란, 나오코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일까, 나오코 이외의 여성과도 사랑을 나눈 죄악감일까.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이야기의 경치는 순식간에 바뀌고, 읽으면 읽을수록 의문은 깊어질 뿐이다.

이 작품의 원제 『Norwegian Wood』가 ‘노르웨이의 숲’이 아니라, ‘노르웨이산 가구’를 뜻하는 것이 아니냐며 소설 출간 후에 오역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에세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문집』)에서 “Norwegian Wood”란 “까닭은 잘 모르겠지만, 모든 것을 애써 감추는 애매모호하고 심오한 무언가”라고 정의하고, 숲 쪽이 “어찌 되었든 멋진 제목 아닌가” 하고 결론짓는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역시 ‘나’가 미도리에게 사랑을 고백해서, 어찌 되었든 멋지게 마무리 되었다.

2장 록-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밥 딜런 〈Blowin’ in the Wind〉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의 주인공은 감정을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는다. 아무리 싫은 일이 있어도 감정을 폭발 한계까지 억누르며 담담히 살아간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나’도 그랬다. 하지만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 그는 마음에 흔들림을 느낀다. 슬픔이나 고독감을 뛰어넘은 감정의 물결이 ‘나’를 덮친다. 얼마 후 눈을 감으니 그 동요는 사라졌다. 이윽고 ‘나’가 탄 차의 스테레오에서 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d〉가 흘러나온다.

같은 시기에 피터 폴&메리가 리메이크한 버전은 1963년 빌보드 싱글 차트 2위를 기록했다. 이 곡의 가사는 지극히 추상적이다. 얼마만큼의 길을 걸어야 한 사람 몫의 인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얼마만큼의 바다를 건너야 비둘기는 모래사장에서 쉴 수 있을까? 얼마만큼의 포탄이 쏟아져야 무기가 영원히 사라질까?

3절 구성으로, 각각 세 가지 질문이 나오고 마지막에는 모두 그 대답은 불어오는 바람 속에 있다고 결말을 짓는다. ‘나’는 눈에 비치는 세계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예를 들어 그것은 평등하게 내리쬐는 태양빛이자 요 며칠 동안 만났던 박사와 손녀나 도서관의 여자나 록을 좋아하는 택시기사에 대해서다. ‘나’는 남겨진 시간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축복하기 위해서 쓰기로 한다.

‘나’의 최대의 이해자인 독자는, 그의 행동이나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경치에 공감은 해도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까지는 알지 못한다. 〈Blowin’ in the Wind〉와 마찬가지로 여러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는 ‘여백’이 ‘나’라는 캐릭터와 작품에 매력적인 수수께끼를 남긴 채 이야기는 닫혀간다.

하루키는 등장인물의 심리를 다 그려내지 않음으로써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도록 했다. 자유도가 높은 이야기로 만드는 이런 방법은 미스터리 작가 레이먼드 챈들러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챈들러의 『기나긴 이별』을 하루키가 일본어로 옮겼는데, 소설과 옮긴이 해설을 읽으면 구조를 자세히 알 수 있다.
비틀스 〈Yesterday〉
비틀스, 그중에서도 폴 매카트니가 작곡한 곡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 때로 웃긴 형태로 등장한다. 예를 들어 『1973년 핀볼』에 등장하는 여자는 을 하루에 스무 번이나 흥얼거리는데 절묘하게 후렴구 앞에서 끊는다. 『여자 없는 남자들』에 수록된 단편 에서는 폴 매카트니가 작곡한 가 재미있고 이상하게 사용된다.

는 결코 웃긴 곡이 아니다. 커버 버전의 수가 기네스북에 등재되었을 정도로 비틀스의 수많은 명곡 중에서도 특별히 유명한 이 곡은 열네 살 때 돌아가신 폴의 어머니에 대한 사모곡이다. 그런 명곡을 “어제는 / 내일의 아래께(그저께)고, 아래께의 내일이래요”라고 간사이 사투리로 노래하는 남자가 등장한다.

기타루는 어느 날 ‘나’에게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한다. 자신의 애인인 에리카와 사귀어보지 않겠냐는 것이다. 결국, 그녀의 승낙 하에 제안은 실현. 두 사람은 한 번 데이트를 하지만 관계는 발전되지 않고 끝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기타루가 갑자기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모습을 감춘다. 16년 후에 ‘나’는 일과 관련된 파티에서 에리카와 재회하고, 그녀에게 기타루의 의외의 현재 상황을 알게 된다.

고독했던 스무 살의 ‘나’가 경험했던 기묘한 친구와의 만남과 기묘한 연애의 기록. 그것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에 의해 되살아난다. 얼핏 보면 감상적인 연애 이야기다. 하지만 그곳에 노이즈가 섞인다. 도쿄 출생인데 간사이 사투리를 입에 담고, 태도는 거친데 에리카에 대해서는 묘하게 수줍어하는 기타루라는 남자. 그의 비밀이 이야기 속에서 가장 흥미를 끈다. 무엇보다 간사이 사투리로 부르는 가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엄숙한 장면에서도 머릿속에는 “내일은 어제의 아래께고~”가 재생되어서, 감상에 몰입할 수가 없다. 물론 그것이 이 소설의 재미이기는 하지만.

도어스 〈Alabama Song〉
『기사단장 죽이기』의 주인공 ‘나’는 음반 가게에 있을 때 문득 아내인 유즈를 남기고 떠나온 집에 있는 밥 딜런의 《Nashville Skyline》이나 “이 수록된 도어스 앨범”의 소유권을 신경 쓴다. 도어스의 데뷔 앨범에는 대표곡 도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굳이 을 예로 드는 이유가 우리로서는 신경 쓰일 수 밖에 없다.

은 오페라 《마하고니 시의 흥망성쇠》에 나오는 곡을 커버한 것이다. 원곡은 매춘부가 술과 남자와 돈을 찾아서 위스키 바를 찾는다는 내용인데, 도어스 판은 남자가 사냥감이 될 여자를 찾는 이야기로 바뀌었다. ‘나’가 위스키를 마시는 장면이 『기사단장 죽이기』에서는 몇 번인가 나오며, 마신 후에는 대개 기묘한 일이 발생한다. 이 알 수 없는 선곡은 단순히 곡이 좋아서일까, 아니면 ‘나’가 위스키에게 운명을 조종당하고 있음을 나타내기 위해서일까.

번역가인 고노스 유키코는 ‘무라카미 하루키 『기사단장 죽이기』 회도 생굴도 위스키 안주로 먹던데 그거 맛있나요?’라는 인터뷰 리뷰 기사에서, 친구인 아메다가 ‘나’와의 식사 자리에 시바스 리갈을 지참한 장면에 주목하고는, “21세기에 ‘술이나 음식에 까다롭다’는 30대 남성이 굳이 블렌드 위스키의 대표 주자를 고르다니 이해하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현재 보급판이 2천엔 대인 술을 특별한 상표라고 생각하는 것은 비교적 고가였던 1980년대까지의 감각이라는 것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무대가 되는 2000년대 후반 시점에서 서른여섯 살인 ‘나’가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The River》를 “그립다”고 말하는 것도 나이에 어울린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작중 세계는 《1Q84》에서 묘사된 것처럼 현실과 미묘하게 다른 세계인 걸까? 다른 사람의 글이었다면 설정 실수로 치부되었을 테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라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3장 팝-잃어버린 미래를 애도하다

비치 보이스 〈California Girls〉
비치 보이스라는 미국 서해안 음악을 하는 그룹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보통 이상의 애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작품 속에서 그는 어떤 식으로 비치 보이스와 관련되는 고유명사를 다루었고, 그것은 독자에게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졌을까? 1979년 6월호 《군조》에 신인상 수상작으로서 처음으로 이 작가의 작품이 게재되었을 때, 그곳에 통주저음으로 흐르는 라는 곡명은 당시 독자에게 어떤 이미지를 안겼을까?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을 세밀하게 뜯어보면, 내리쬐는 태양 아래에서 비키니를 입은 여자가 흰 모래밭을 달려가는 듯한 밝은 이미지로 비치 보이스가 쓰이는 경우는 극히 적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이 그룹의 곡이 작품 속에 흐르면 그곳에는 항상 불길한 예감이 감돈다. 비치 보이스의 이름은 그 곡을 읊조리거나 듣는 것만으로 등장인물이 반드시 비극을 겪는 음악으로 기억된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나’의 카스테레오에서 흘러나오는 에 맞춰서 휘파람을 불었던 고탄다가 이야기 후반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댄스 댄스 댄스』가 있을 것이다. 『노르웨이의 숲』 마지막에서 레이코 씨가 레이 찰스나 캐럴 킹뿐만 아니라 비치 보이스의 곡을 연주하는 장면에는 나오코의 죽음이 강렬하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고,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의 단편 에서 을 가라오케 바에서 열창하는 주인공은 과거에 아이들 낙태한 탓에 상대 남자의 죽음을 염원했다. 이렇듯 비치 보이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서 누가 ‘죽음’의 음악으로 울려 퍼졌다.

그것이 ‘죽음’의 배경음악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비치 보이스의 곡과 함께 주인공의 곁을 떠나는 등장인물은 적지 않다. 의 번역 가사까지 게재했던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여자가 ‘나’에게 빌려준 LP가 비치 보이스의 LP라는 것이 판명된 시점에서 그녀가 훗날 실종될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또 『댄스 댄스 댄스』의 렌터카 안에서 의 후렴구를 둘이서 합창했던 유키가 마지막에 ‘나’의 곁을 떠나는 장면의 지나칠 정도의 애절함을 과연 어떻게 형용해야 좋을까. ‘나’는 그러한 감정을 ‘상실함’이라고 직접 밝힌다. 이런 식으로 비치 보이스를 ‘상실’이나 ‘죽음’과 연관 짓는 해석이 특별히 놀랍지 않은 것은, 우리가 브라이언 윌슨이 세계적으로 재평가된 1990년대 이후의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 비치 보이스의 초기 작품을 《Pet Sounds》를 통해 들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입맛에 맞는 팝송으로서가 아니라, 그 배후에 자리한 고독이나 좌절 등의 주제나 뛰어난 음악성의 씨앗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의 오싹오싹한 인트로는 의 의외성을 통해서 전경화되며, 는 버트 바카락을 오마주한 로 승화되는 오프닝 곡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에서 노래하는 순수한 마음을 의 절망과 떼어내서 생각할 수는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다는 것은 《Pet Sounds》를 통해서 비치 보이스의 초기 작품을 듣는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과거의 한 시점에서 잃어버린 미래를 애도하는 행위이자, 그 도착된 시간에 스스로의 몸을 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상실감에 몇 번이나 눈물을 흘리면서 그곳에서 천천히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디딘다.

4장 클래식-다른 세계의 전조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제17번〉
『해변의 카프카』에서 등장인물이 한 음악에 대해 한참 동안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오시마 씨’가 ‘나’(=카프카 소년)에게 슈베르트의 소나타 제17번에 대해 거침없이 설파하는 부분이다. 이 소나타는 불완전하고, 그렇기 때문에 끌리게 된다고.

하루키는 음악에 대해 쓴 에세이집 『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에서도 이 곡을 대대적으로 다루었는데, 수많은 슈베르트 소나타 중에서도 특히 좋아한다고 적었다. 그리고 『해변의 카프카』의 오시마 씨가 말하는 슈베르트론은 작가의 관점과 완전히 동일하다고 보아도 좋다. 특히, 슈베르트 소나타에 있는 ‘장황함’이나 ‘정돈되지 않은 느낌’, ‘어수선하고 불편한 느낌’이 마음에 와 닿는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막힘없이 자유로운 세계라고 강조한다.

분명히 슈베르트의 음악은 가볍다. 그러나 그 일상적이고 가벼운 음악이 갑작스럽게 어두운 빛을 띠더니 듣는 이를 상상을 초월하는 세계로 순식간에 이동시킨다. 그러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한 얼굴로 평소의 일상이 되돌아온다.

천재적인 감각으로 다채로운 세계를 누비는 모차르트의 음악과도, 활극에 가까운 극작법으로 듣는 이를 정신 못 차리게 하는 베토벤의 음악과도 다르다. 슈베르트의 음악은 결코 그런 예리한 전개를 보이지 않는다. 우직한 얼굴로, 아무 일 없는 일상의 곁에 정체 모를 세계가 진득하게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마치 누구의 소설과 같지 않은가? 그렇다, 본인도 애써 모른 척하고 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은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와 매우 닮아 있다. 공통된 키워드는 ‘한 치 앞은 다른 세계.’

이 곡은 슈베르트의 소나타 중에서 결코 유명하다고는 할 수 없다. 4악장 구성에 40분 가까이 걸리는 대작으로, 『해변의 카프카』에서 오시마 씨의 말처럼 불완전함이 두드러진다. 방향 감각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듯한 어색한 변화,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전개. 전체적인 통일감도 희박하고 조각조각 흩어진 것 같은 인상. 마지막 악장의 귀여우면서도 능청스러운 주제를 들으면 그 당돌함에 쓴웃음을 짓게 될 정도이다. 동시에 그것이 어둠을 띠는 중간부의 서늘한 느낌도 훌륭하다.

『댄스 댄스 댄스』나 『태엽 감는 새』 정도가 이 소나타 제17번의 세계에 가깝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묘한 인물이 갑자기 등장해서 소극적인 화자를 이상한 방향으로 끌고 간다. 『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에서는 하루키 자신이 이곡의 연주 앨범 열다섯 장을 늘어놓고 연주 평을 하고 있어서 실로 재미있다.

그가 추천하는 피아니스트는 유진 이스토민, 발터 클린, 클리포드 커즌,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 모두 담백하고 차가운 연주를 하는 사람들이다. 정성스럽게 표현한다거나 지나치게 지적인 인상을 주는 등 연주자의 체취가 강하게 느껴지는 연주는 철저히 멀리하고, 제각각인 악장을 무리 없이 부드럽게 갈무리해내는 뛰어난 균형 감각을 지닌 연주만이 여기에 남았다. 다시 말해, 제멋대로 흩어진 소재를 하나의 이야기로 완만하게 묶어내는 능력이다. 이것도 흡사 무라카미 하루키 같지 않은가. 특히 그가 처음으로 듣고 애착을 가진 이스토민의 앨범은 특유의 건조한 터치와 매끄럽고 밝은 음색이 두드러진다. 그렇다, 이 화법이야말로 하루키 월드 그 자체가 아닌가!

리스트 《순례의 해》에서 〈르 말 뒤 페이〉
역동적으로 세계 간의 이동을 그려낸 『해변의 카프카』나 『1Q84』와는 달리,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간신히 단일 세계에 자리 잡고 인간 심리의 섬세함을 클로즈업한 작품이다. ‘다른 세계’는 주인공 쓰쿠루의 꿈이라는 출입구를 통해 희미하게 암시되며 끝을 알 수 없는 공포를 살짝 엿보이지만, 그는 그곳으로 가지 않고 사람들의 네트워크에 의해 구제받는다.

이 작품에서는 등장인물의 내면 깊은 부분을 연결하는 역할이 음악에게 주어졌다. 쓰쿠루와 시로와 구로, 그리고 시로와 구로를 합친 것 같은 하이다. 그들의 마음속을 연결하는 것은 리스트의 피아노 곡집 《순례의 해》에 담긴 다.

전 4권으로 이루어진 《순례의 해》는 리스트가 여행이나 문학 작품에서 받은 인상 등을 모은 스케치집이다. 는 첫 권인 의 여덟 번째 곡으로, 이 장대한 모음곡 안에서는 단독으로 연주되는 경우가 거의 없는 상당히 수수한 곡이다. 이 제목은 일반적으로 등으로 번역되며, 하이다는 쓰쿠루에게 “전원 풍경이 사람의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이유 없는 슬픔”이라고 설명했다.

인상적인 단선율로 시작해서, 몇 소절마다 조성이 변화하며 이리저리 헤맨다. 주부에 돌입하면 민요풍의 선율(스위스 용병의 노래가 원곡)이 들려오지만, 금방 처음의 분위기로 돌아가고 만다. 중간부에서 갑자기 장조로 조바꿈하는 부분은 달콤한 우울감을 느끼게 하지만 그것 역시 오래가지 않는다.

시로의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곡이라 할 수 있다. 참고로 이 곡은 20대의 젊은 리스트가 《여행의 앨범》이라는 작품집의 한 곡으로 작곡했다. 그 원곡을 들어보면 시작은 똑같지만 중간은 완전히 분위기가 바뀌어 춤곡풍의 신나는 음악이 된다. 완전히 다른 인상을 주는 작품이었던 것이다. 20년 뒤, 어른이 된 리스트가 새로운 모음곡을 만들면서 이렇게 음울한 곡으로 만들어버렸다는 말이 된다.

이 곡은 과거의 시로가 연주했던 곡이다. 쓰쿠루가 그 곡과 재회하는 것은 하이다가 가져온 베르만의 연주 음반을 통해서다. 리스트 연주자로 이름난 베르만이지만, 리스트의 곡 중에서도 같은 복잡한 곡을 말도 안 되는 테크닉으로 완벽하게 연주해서 관객들을 경악케 하는 스타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순례의 해》를 들으면 숙련된 매력이 더해졌는지 깊이 있는 표현이 상당히 두드러진다. 풍부한 색채로 음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듯이 연주하고 있어서 조금은 무겁고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다. 아마도 이것은 쓰쿠루가 시로에게 갖는 마음일 것이다. 그 탐미적인 연주는 그야말로 ‘색채를 가진’ 리스트다. 무색이었던 쓰쿠루는 색채를 동경하고 있었으니까.

이 소설에는 또 하나의 연주가 등장한다. 쓰쿠루가 구로를 만나러 핀란드에 갔을 때, 구로가 집에서 틀어준 알프레드 브렌델의 연주 음반이다. 브렌델은 베토벤이나 슈베르트 등 독일 음악을 주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다. 그가 리스트를 연주하면 투명하고 이지적이며 탄탄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말하자면 ‘단정함’ 다시 말해 ‘색채가 없는’ 연주다.

구로는 한때 쓰쿠루를 좋아했다고 한다. 즉, 구로의 쓰쿠루를 향한 마음이 이 무색의 브렌델의 연주를 듣게 됨으로써 지금까지 단절되어있던 것이 사실은 모두 이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음악을 통해 현실의 자기 자리를 발견한다. 만약 이 음악이 없었다면 상당히 유치한 소설로 끝나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제2번〉
『노르웨이의 숲』에서 주인공 ‘나’는 ‘나오코’가 있는 요양소를 방문해 둘만의 시간을 보낸다. 이후 그 밀회를 권한 ‘레이코 씨’가 기다리는 곳으로 함께 돌아간다. 그때 레이코 씨가 라디오를 들으면서 첫 부분의 선율을 휘파람으로 불었던 음악이 이 제3악장 안단테다. 이 곡은 이상할 정도로 이 장면에 녹아들어 있다. 나오코의 유도로 사정하고 나서 그녀에게서 언니의 자살 이야기를 듣는 둘만의 시간을 보낸 ‘나’의 심상에 대해 이렇게까지 분명하게 말해주는 음악은 없지 않을까.

시작 부분의 첼로 선율은 자애롭고, 그것이 오케스트라와 피아노 독주로 이어진다. 때로 열을 띠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신기하게 담담한 체념이 지배하는 것이 특징이다. 중간부에서 원래 조로 돌아올 예정이었던 첫 선율이, 갑자기 음을 높여 단조로 연주된다. 그 은근한 어둠에 죽음의 그림자가 떠오른다.

0 댓글
본문 피드백
모든 댓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