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쇄신

도서출판 북스힐 / 2020년 4월 / 284쪽 / 15,000원

민주주의 쇄신

민주주의 쇄신

네이선 가델스, 니콜라스 베르그루엔 지음

저자 소개

네이선 가델스 : 베르그루엔연구소 공동 창업자이며 「워싱턴포스트」의 협력사인 「월드포스트」편집장을 맡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가 선정한 2012년 최고의 도서 『21세기 지성적 거버넌스: 서양과 동양 사이 중도의 길』을 니콜라스 베르그루엔과 함께 집필했다. 그 외 저서로는 『이라크 이후 미국의 우상』, 『변화하는 세계질서』, 『세기 말에』가 있다.
니콜라스 베르그루엔 : 베르그루엔연구소 창업자이면서 회장이다. 또한 「월드포스트」공동 발행인이며 ‘베르그루엔 홀딩스’ 회장이다. 『21세기 지성적 거버넌스: 서양과 동양 사이 중도의 길』을 네이선 가델스와 함께 집필했다.

책소개

이 책은 디지털의 발달로 새로운 양상을 보이는 자본주의 시대에 세계화와 사회계약 문제를 점검하고 민주주의가 나아갈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다. 저자들은 무엇보다 먼저 민주적 관행과 제도 자체를 쇄신하는 통제력 회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통제력을 회복하기 위해 민주주의, 사회계약, 세계의 상호 연결성을 어떻게 쇄신할 것인가 심사숙고하기 위한 3가지 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요약본 본문

프롤로그 ? 민주주의, 사회계약 그리고 세계화 재고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민주주의가 선동정치가들에게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악몽이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실현되었다. 이와 비슷하게, 유럽에서는 기존의 사회, 정치, 경제 원칙에 대립각을 세우는 포퓰리즘과 우파 신민족주의의 정치적 각성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때 정치적 질서를 지배했던 주류 중도주의 정당들을 변두리로 내몰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선거, 유럽 내 포퓰리즘의 쇄도로 인해 이런 거버넌스의 위기가 초래된 것은 아니다. 거버넌스의 위기는 서구 사회 전반에 걸친 민주적 제도의 부패로 나타난 증상으로, 내부 기득권층의 조직화된 특권에 사로잡혀 세계화로 인해 나타난 불만과 급속한 기술 변화에 따른 붕괴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포퓰리즘 당원들은 부패한 제도를 더 위험하게 만들 작정으로 공화국을 영속시킬 수 있는 제도적 견제와 균형이라는 원칙을 공격하면서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와 제도를 버리고 있다.

디지털 시대, 거버넌스의 역설

서양의 이런 시련은 2가지 서로 연관된 발전과 관련되어 있으며 그로 인해 상당히 진행되고 있다. 한 가지는 대중사회가 소셜미디어 참여 세력으로 중무장한 다양한 집단으로 점점 더 세분화하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디지털 자본주의의 출현으로 생산성 증가와 부의 창출이 고용 및 소득의 향상과 무관해지는 상황이 도래하는 것인데, 이러한 변화로 인해 거버넌스는 한 쌍의 역설적인 난제에 직면한다.

첫째, 소셜네트워크 시대 민주주의의 역설은, 전에 없이 많이 참여하기 때문에, 대항력 있는 관행과 제도를 통해 공정하게 사실을 확인하고, 심사숙고해서 현명한 선택을 하며, 공정거래를 중재하고, 장기적 정책 수행을 위한 합의를 구축하는 것이 그리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둘째, 디지털 자본주의 시대 정치경제의 역설은, 혁신적인 지식 주도의 경제가 더욱더 역동적일수록 안전망과 기회망을 더욱 튼튼하게 재정립해 끊임없는 붕괴와 더불어 초래된 부와 권력의 격차에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민주적 제도를 쇄신하는 새로운 접근법을 제안한다. 그것은 바로, 새로운 형태의 직접민주주의를 현재의 대의정치에 통합시키면서, 동시에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공화국의 자멸을 피하고자 그렇게나 중요하게 여겼던 일종의 ‘중심추 역할을 하는 심의기관’을 국민의 자치권으로 부활시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미래에 부와 기회를 공정하게 나누고 공유할 방안을 제안한다. 우리의 미래에는 똑똑한 기계가 궤도를 따라 움직이면서 노동을 대체하고 임금을 떨어뜨리며 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근로의 성격을 변화시킬 것이다.

중국이 가는 곳

포퓰리스트들이 무역협정으로 생활수준을 떨어뜨린 세계화를 맹비난할 때 그들 대부분은 중국을 염두에 둔다. 하지만 중국이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를 이용해 통상과 자유시장정책을 적극적으로 밀고 나갈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전원합의 주도의 장기지향적 일당 정치체제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중국은 번영으로 가는 길이 권위주의적 규율과 양립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런 점에서, 30년에 걸친 중국의 성장은 점점 더 기능장애를 겪는 서구 사회 앞에 냉엄한 거울을 들이댄다.

정치적 자유의 대가가 분열과 양극화라면 이는 엄청난 기회비용을 치르는 것이다. 포퓰리즘과 분리주의 운동에 의해 분열된 지금의 유럽을 포함한 서구 사회가 내부적으로 악다구니 속에서 멈추어 선 가운데 중국은 대담하게 성큼성큼 앞으로 나가고 있다. 중국은 선제적으로 최신 인공지능 기술의 정복을 목표로 삼았고, 고대 실크로드를 ‘세계화의 다음 단계’로 부활시키고 있으며, 주도적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차기 세계질서의 형상을 만들고 있다.

서구 사회가 이런 소란스럽고 분명한 경종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 잠결에 걸어 다니다 필시 세계무대에서 이류 사회로 전락할 것이다. 물론 서구사회가 독재정치와 권위주의로 방향을 틀 것을 권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민주주의 국가들이 다음 선거주기라는 단기적 시야를 뛰어넘지 않는 한, 그리고 통치 합의에 이르는 길을 발견하지 않는 한, 그들은 남들이 박차고 달려 나가면서 날린 먼지 속에 남겨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통제력 회복

민주주의와 정치경제를 다시 생각하기 위한 사고의 틀을 제시하고자 우리는 자주적인 공동체의 자치적 통치 방식에 세계화가 끼어드는 것에서부터 소셜미디어, 로봇과 같은 기술의 급격한 발전과 모든 사회가 점점 더 다문화적 구성요소들로 이루어지는 것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변환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비롯되는 불확실성으로 인한 불안감이 포퓰리즘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다는 주장을 펼쳐본다.

세계화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민족국가와 공동체가 그들의 생활양식을 반영하고 그들의 규범과 제도를 온전하게 유지하는 결정을 내리며 이로울 것 없는 범세계주의를 외치는 부류를 멀리 있는 무역재판소나 이방인들이 관리하는 여타 국제기관에 넘겨주는 결정을 내리는 역량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연히 이들은 자주적인 국민이 ‘민주적 심의’를 통해 이러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깔끔한 논리는 우리가 이미 지적한 부패하고 기능장애 상태인 현실을 간과한다. 따라서 ‘통제력 회복’은 무엇보다 먼저 민주적 관행과 제도 자체를 쇄신하는 것이어야 한다.

쇄신의 정치

현대 사회에서 가장 책임감 있는 변화 과정은 쇄신이고, 쇄신은 창조와 파괴 사이에서 평형을 이루는 지점이며, 가치 있는 것은 남기고 더 이상 쓸모없거나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것은 버리는 것이다. 끊임없이 붕괴하는 새 시대에 쇄신은 거버넌스의 정수다. 쇄신은 사회 안에서, 민족국가들 사이에서, 그리고 글로벌 네트워크와 관련을 맺으며 안정적으로 진화하는 가운데 이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이 책에서 우리는 통제력을 회복하기 위해 민주주의, 사회계약, 세계의 상호 연결성을 어떻게 쇄신할 것인가 심사숙고하기 위한 세 가지 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① 대의정치를 보완하는 새로운 중재기관의 설립을 통해 소셜네트워크와 직접민주주의를 제도권으로 통합시킴으로써 포퓰리즘 없는 참여에 권한을 부여한다. ② 모든 시민에게 미래의 기술뿐만 아니라 ‘로봇 소유’의 주식 지분도 제공함으로써 디지털 자본주의의 부를 확산시키면서 일자리 대신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사회계약을 변경한다. ③ 국내적으로 ‘긍정적 민족주의’, 필요할 경우 국제협력, 중국과 미국 간 전략적 경쟁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이해관계를 수렴하는 파트너십을 통해 세계화를 조절한다.’

포퓰리즘 분출의 이면

도널드 트럼프는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대안적 사실’ 캠페인과 외부 세계 및 인지된 내부의 적들에 대항하는 외국인 혐오 표방 욕설을 트위터로 송출했다. 다행히 미국 시민사회는 구석구석 아주 다양하고 튼튼하다. 트럼프 행정부의 성패는 두고 볼 일이지만 경고음이 계속 울리고 있다. 이런 상황은 느닷없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과거 수십 년에 걸친 민주주의 자체의 부패에 기인한다. 미국을 비롯해 어디에서건 교훈은 명백하다. 국민주권에 의한 합법적 시스템에서 엘리트가 묵묵부답으로 보통시민을 저버릴 때, 선동정치가들이 호민관임을 자처하며 격렬한 분노에 탑승해 권력을 장악하여, 그동안 공들여 어렵사리 세운 것들을 파괴해버린다. 이로 인한 가장 치명적이고 바로잡기 어려운 손실은 건전한 정부를 만들고 권력 사용을 통제할 수 있는 관습과 제도에 대한 믿음 상실이다.

약속이 가진 위험

과학자와 공학도의 얘기를 들으면, 인류는 인공지능, 재생의학, 사물인터넷과 같은 기술의 융합 덕분에 건강하고 풍요로운 시대의 문턱에 서 있다. 여기에 경제사상가들이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는 꿈을 더하면 우리 모두를 함께 묶는 세계화는 동반 성장의 시나리오 안에서 각자에게 향상된 삶을 약속한다. 이들 중에서도 특히 빌 게이츠는 새 백신에서 스마트폰, 모바일뱅킹에 이르는 혁신 덕택에 “가난한 국가 국민들의 삶이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향후 15년 내 더 빨리 개선될 것이다”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적절한 거버넌스가 없으면, 게이츠가 언급한 빈곤 지역 출신 젊은이는 난민이 되어 그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선진국으로 위험한 길을 찾아 헤맬 것이며, 엄청나게 생산성을 끌어올린 로봇은 몇몇 소수를 위해서만 상당한 부를 창출하고 생계비를 지급하는 직업을 대체해 사회적 불평등을 더 심화시킬 것이며, 우리가 알듯, 기후변화로 지구에서의 삶이 파괴될 것이다.

분열의 징후는 양극화된 파트너십뿐만 아니라 부활한 토착주의와 민족주의, 심각한 종교전쟁, 지정학적 진영의 재등장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변 도처에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 중 그 누구도 지금 이 순간 말랄라(Malala, 파키스탄의 여성교육운동가)나 이슬람 파시스트 중 어느 쪽이, 또한 민족주의나 전제주의 중 어느 쪽 사람들이 우리의 앞길을 규정할지 단언할 수 없다.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는 먼저 근본적인 혼란의 역학관계를 파악해야 한다. 사실은 2가지 현실이 동시에 존재할 뿐만 아니라 하나는 다른 하나의 조건이다. 거대한 부가 창출되고 전례 없이 교류하고 어디든 연결이 가능한 사회에서 불평등, 사회적 혼란, 정체성의 상실이 증가하면서 이에 대항하는 두렵고 무시무시한 반응은 세계화에 대항하는 반란치고는 너무도 대담하고 기술변화에 대항하는 반란치고는 너무도 급속해서 담대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우리의 본성으로는 거의 감당할 수 없을 정도다.

우리는 어쩌고?

2016년 가을, 독일 부수상 지그마어 가브리엘은 그의 조국과 유럽의 나머지 지역 내 정치를 휘젓는 반발을 정확하게 기술했다. 그는 “보통시민들이 알고 있듯이 처음에 정부 당국이 은행들의 긴급구제에 수십억 달러를 썼고 지금은 전쟁에 짓밟힌 시리아와 도처에서 온 난민들에게 아낌없이 돈을 쓴다. 반면에 긴축정책을 통해 연금, 실업급여, 사회보장 혜택을 삭감한다. ‘우리보고 어쩌란 말인가?’라고 시민들은 묻는다.”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고통 속으로 숨어들 때 도덕적으로 올바른 본성은 점점 더 그 날개를 잃는다. 이러한 태도는 시민을 성인으로 만들지 않을 수 있으나 죄인으로도 만들지 않는다.

엄청난 문화적 탈바꿈 시대에 선거와 국민투표로는 해결되는 것이 거의 없다. 이상적인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세계화, 디지털로 인한 붕괴, 증가하는 문화적 다양성에 의해 초래되는 복잡한 미래에 대처해야 하는 일은 하나의 위협이다. 앞날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되돌아가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거의 모든 사회를 반으로 나눌 것 같은 현재의 정치적 교착상태는 단지 서막일 뿐 마지막 장이 아니다. 그것은 유동적인 이행 과정에서 사회 이야기의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

신과 컴퓨터

보편적 이성과 효율은 세계화와 함께 오늘날 우리가 보는 융합과 기술의 확산을 낳지만, 문화적ㆍ정치적 상상력은 위협을 느낄 경우 그 반대로 작용한다. 즉 같은 부류의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인식을 존중하고 알 수 없는 힘의 파도에 대항해 정체성을 구성하는 친숙한 삶의 방식 안에서 서로 다양한 방식으로 피난처를 찾는다. 결국 반발의 근원은 기술 변화의 결과든, 세계화, 이민 또는 이들 간 조합의 결과든, 이러한 ‘자신의 운명에 대한 통제권 상실의 인지’라 할 수 있다. 오늘날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난제는 새로운 국면에서 이러한 상실된 통제력을 어떻게 재정립할 것인가이다.

미래에 대한 소속감과 소유권의 재정립은 공동체의 ‘통제력 회복(taking back control)’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이는 무엇보다 민주적 심의 관행과 제도의 쇄신을 의미한다. 비록 이러한 목표를 다룬다고 해서 우리 사회를 휘젓고 있는 모든 불안과 불안정이 해결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이는 개방사회가 자신들의 미래에 관해 핵심적 선택을 하는 플랫폼이기 때문에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능장애를 바로잡지 않는 한 가까운 미래에도 먼 미래에도 어려운 문제를 풀어나갈 통치 합의를 이루기 어렵다.



민주주의의 쇄신

서구에서 대조되는 미래상을 두고 벌이는 경쟁은 민주적 심의의 관행과 제도를 통해 해결되어야 한다. 사회와 기술의 변화로 인해 그런 제도적 처리방식이 낙후되었거나 구식이라면 새 조건으로 민주적 심의 관행과 제도를 우선 쇄신해야 한다. 단순히 우리 당원들을 권력의 전당으로 돌려보내선 문제를 재생산하기만 할 뿐이다. 전제정치로 방향을 트는 것도, 기능장애에 빠진 민주정부 형태에 절뚝거리며 들러붙는 것도 21세기 개방사회를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다.

위기에 처한 대의정치

흔히 FHC로 알려진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회학자 페르난두 엔히키 카르도주는 1995년부터 2003년까지 2차례에 걸쳐 브라질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학자로서 그는 종속 이론(소위 주변 국가들은 저축, 투자, 해외로부터의 기술 이전이 없으면 저개발국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이론)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대통령으로서 카르도주는 이론을 실천하는 방안으로 국유 산업 중 일부를 사유화하여 투자를 끌어들이고 재정 규율을 도입해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통제했다. 그렇게 하여 그는 후에 브라질의 기적이라 불리는 발전 기반을 다져 빠른 성장과 불평등 축소를 이끌었다. 그러나 그 후 몇 년 동안 이어진 부패와 재정 책임에 대한 포퓰리스트들의 무관심으로 모든 것이 곤경에 처했다.

그래서 FHC가 선진 서방 국가들과 오늘날 브라질의 애로사항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귀 기울일 만하다. 수개월에 걸친 군중 데모와 2016년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의 탄핵에 뒤이어, 카르도주는 베테랑 정치꾼의 직감과 사회과학자의 날카로운 관찰력을 동원해 도처에 자리 잡은 민주주의에 대한 공통 난제를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우리는 엄청난 경제적, 기술적 변화의 충격을 서구의 전통적 민주주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브라질에서도 목격하고 있다. 민족국가들은 세계화로 휘청거린다. 사회는 새로운 노동 분업에 의해 더 구조적으로 해체되고 문화적 다양성의 확대로 긴장과 불균형에 노출된다. 이 모든 것이, 어떻게 하면 사회적 결속력을 보존하고 일자리를 확보하며 불평등을 줄일지에 대한 불확실성과 함께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로 이어진다.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에서는 계층 간의 차이를 다른 형태의 사회적 정체성과 혼동한다. 기존 정당들은 자리를 잃어버릴 것이다. 권한을 빼앗긴 대중의 슬픔과 연관 짓고 그 슬픔을 해결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이 대의민주주의의 종말로 남겨진 빈자리를 채운다.

이것이 위험 가득한 상황이다. 북아메리카와 유럽에서 뿌리 깊은 대의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해 있다. 이 위기의 핵심은 사람들의 열망과 사회의 요구에 대응하는 정치제도의 역량 사이에 격차가 벌어지는 것이다. 우리 시대 아이러니 중 하나는, 정치제도에 대한 이러한 신뢰 부족과 더불어 자신들의 삶을 만들고 그 사회의 미래에 영향을 줄 선택을 할 줄 아는 시민들의 탄생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정치제도와 사회의 요구가 다시 연결될 수 있게 하면서 시민과 국가, 국민과 공익기관 사이의 틈을 메우는 것이다.’

소셜미디어 참여세력

오늘날의 민주주의가, 신뢰할 수 없는 정보가 가열시킨 양극화와 마비로 인한 자멸을 피하면서 세계무대에서 독재체제와 경쟁하여 성공하려면,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세력에 대응하는 혁신이 필요한데, 그 혁신은 소셜미디어 참여세력과 달아오르는 직접민주주의를 향한 대중의 열망을 포용해야 한다. 또 이는 네트워크로 연결된 대중의 감정을 즉각적으로 씻어버리는 가짜 주장, 잘못된 정보, 편협성, 마술적 사고를 심의해 확인하는 절차를 포함하는 공정한 제도와 관행의 설계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포퓰리즘을 파악하지 않고 참여를 수용한 혁신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의 지혜를 활용해야 할 것이다. 이들 건국의 아버지들은 ‘대중의 견해를 확장시키기 위해’ 권한을 위임받은 기관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이 혁신은 20세기에 들어설 당시 진보주의운동 중에 미국의 여러 주가 만든 혁신을 바탕으로 설계될 것이다. 이 당시 진보주의자들은 시민들이 직접 법을 만들 수 있는 국민발안제라는 직접민주주의와 무당파 전문직 종사자들 및 각 분야 전문가들이 운영하는 명석한 정부를 결합시키고자 했다.

그에 따라, 오늘날 민주주의 혁신의 핵심은, 가장 우려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개방된 플랫폼을 통해 선제적으로 대중에게 묻고, 박식한 관리들이 그 문제 해결을 위한 공정성에 바탕을 둔 효과적이고 합의된 정책 제안을 만들게 하며, 법제화 이전에 그 제안의 승인 여부를 시민들에게 직접투표를 통해 묻는 것이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서민은 권력투쟁에 여념 없는 정당들보다 실용적 해결책을 대할 때 덜 편파적이고 더 개방적이다. 이처럼 자치정부가 작동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바꾸면 권력이 분산된 이 시대에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면서 인정받지 못하게 된 대의민주주의의 합법성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혁신은 기존 정당들과 당선자들에 대해 로비 점유권을 유지하는 이익단체들의 벽으로 가려진 입법부 밖에서 시민들이 행동을 시작하는 탄탄한 방법이 될 것이다.



사회계약의 수정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기계가 생산함에 따른 결과는 그 물건들을 어떻게 분배하느냐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기계가 생산한 부를 모두가 공유하면 각자 호화로운 여가 생활을 하며 삶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기계 주인들이 부의 재분배에 대항해 성공적으로 로비한다면, 사람들 대부분은 비참할 정도로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보면, 진행 방향이 기술로 인한 유례없이 확대되는 불평등과 함께 후자로 향한 듯하다.’ - 스티븐 호킹

세계화의 방향이 잘못되어 포퓰리스트들의 불만을 유발하는 경제적 불안정이 초래되면, 스티븐 호킹이 지적한 대로 디지털 경제가 수백만 명의 일자리와 삶을 파괴할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 사회와 민주복지국가들이 직면할 가장 심각한 당장의 난제는 똑똑한 컴퓨터가 대체하는 노동, 컴퓨터 때문에 격이 낮아지는 노동에 가해질 충격과 그에 상응해 고임금 일자리와 저임금 일자리 간 한층 심화되는 노동력의 양극화 현상을 다루는 것이다.

이렇게 곧 닥칠 현실을 생각하면서 다음과 같이 핵심적인 우리의 주장을 펴고자 한다. 디지털 자본주의 시대 거버넌스의 역설은, 끊임없이 혁신하는 지식 주도의 경제가 더욱더 역동적일수록 재정립되는 사회안전망과 기회망은 더욱 튼튼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끊임없이 혁신하는 역동적인 지식 주도의 경제로 인해 초래될 끊임없는 파괴와, 부와 권력의 격차에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보 시대에 사회적 권력의 새로운 분배에 맞춰, 매우 생산적이지만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임금을 떨어뜨리는 기술이 창조한 부를 모두가 공유해야 한다. 마르크스가 남긴 금언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서, 필요에 따라 각자에게”를 지금의 디지털 자본주의 시대에 적용해, ‘생계비가 나오는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하는 디지털 경제의 무능력에서,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각자에게’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디지털 시대에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사회계약 내용 중 2개의 조항을 수정해야 한다. 첫 번째 조항은 노동시장이 직장 내 과업의 유동적 변화에 더 잘 적응하고 근로자들의 복지를 직장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복지망으로 보호해 충격을 완화하는,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개척한 ‘유연 안전성’이라는 정책이다. 실업 수당과 의료보험은 국가가 보편적으로 제공해야지 특정 직업이나 회사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두 번째 조항은 부자들에게 세금을 징수해 재분배하는 방식에서 탈피해 ‘선분배’ 정책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선분배정책이란 혁신으로 인한 끊임없는 파괴를 다루는 데 필요한 기술을 강화하고 모든 시민의 자본 자산을 튼튼히 하는 정책이다. 오늘날 주된 사회적 균열, 즉 교육수준의 격차를 좁히기 위한 공공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는 이런 정책 변화를 떠받치는 핵심 기둥 중 하나이고, 나머지 기둥은 모든 시민이 미래의 새로운 부를 창출할 로봇 자산을 공유함으로써 불평등을 줄이는 것이다.

유연 안전성(flexicurity)과 선분배(pre-distribution)

디지털 시대를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의 핵심은 유연 안전성과 선분배의 결합이며, 사회계약상 이 항목은 다음 세 가지를 수반한다. 첫째, 끊임없이 변화하는 혁신경제에서 일자리 대신 근로자를 보호하는 유연한 노동시장정책의 설계다. 여기에는 보편적 혜택과 직업훈련이 포함되어야 한다. 둘째, 고임금과 저임금 기회 사이의 소득 격차를 줄이기 위한 공공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다. 셋째, 디지털 자본주의에 의해 생산된 부, 사용자와 소비자에 의해 발생한 데이터 자체가 연료가 되어 창출된 부 안에서 모두가 자본을 공유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모든 거대 기업의 소유권이 다음 세 범주의 주주들 사이에 배분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 범주는 개인투자자, 직원 그리고 대중 전반이다.

시민 전체를 위한 자기자본 공유: 보편적 기본자본

노동을 대체하고 임금을 떨어뜨리는 기술과 공유경제가 향후 수십 년 안에 성장할 것이기 때문에, 고용이 점점 더 생산성으로부터 단절되더라도 모든 시민이 새로운 부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면서 ‘모든 시민을 위한 배당금’을 제공하는 후기복지제도를 준비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는 몇 가지 중복되는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다. 아마 선진경제에서 자산-공유 설계를 위해 가장 손쉽게 조정할 수 있는 모델이 의무적인 국민저축과 투자펀드일 것인데, 싱가포르, 호주를 포함해 몇몇 국가에서 이미 그와 같은 펀드를 운영한다. 일하는 성인은 모두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하며 고용주, 직원, 정부는 분담금을 내야 한다.

캘리포니아는 이런 사례를 따라 2016년에 ‘캘리포니아의 안전한 선택 퇴직 플랜’을 만들었는데, 이 퇴직 플랜은 고용주에게서 사적 플랜을 받지 못하는 시민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투자 펀드를 설립했다. 일리노이주 등도 비슷한 플랜을 고려중이다. 한편 호주의 펀드를 통한 투자 수익은 소액 저축자들의 자산을 늘려주어 불평등을 감소시키지만, 이 캘리포니아 펀드는 퇴직연금에 국한된다. 한편 싱가포르 중앙적립기금(CPF)은 연금 수령권 부여 기간을 채운 후부터 퇴직뿐만 아니라 의료와 주택에 들어가는 비용 지출을 위해 기금을 인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에 더 가깝다.

자본주의 이후에 관한 시나리오

기업의 소유권을 완전히 정비하는 것을 포함하는 자본주의 이후에 관한 시나리오를 상상할 수 있다. 꽤 큰 기업이 자기자본을 3등분해 3분의 1은 개인 투자자들에게, 3분의 1은 고용주들에게, 3분의 1은 우리가 제안한 일종의 보편적 투자펀드 형태로 일반 대중에게 나눠줘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세 번째 공적 지분은 모두를 위한 자기자본의 공유를 탄생시킬 뿐만 아니라 피케티가 지적한 것처럼 불평등의 근본 원인인 투자자와 고용인 사이의 깊은 골을 메울 것이다. 이 개념이 설득력 없어 보일 수도 있으나, 오늘날 미국에서 적어도 50%의 회사 지분을 직원이 소유한 기업이 수백 개에 달한다.

이 장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누가 로봇을 가질 것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했다. 우리가 간추려 설명한 제도들이 실제로 어느 정도 결합될 수 있으면 그 답은 “우리 모두가 소유한다”가 될 것이다. 혁신경제에 의해 발생한 새로운 부를 그처럼 포괄적으로 공유해야만 그 새로운 부가 사회적으로 지속가능할 것이다. 그러한 제도가, 자신들의 고생을 이민자나 세계의 무역 파트너 탓으로 돌리는 포퓰리즘 운동에 불을 지피는 경제적 불안을 해결하는 답이다. 지금 이 순간 이러한 견해에 대한 합의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으나, 다른 대안이 없으므로 곧 합의에 도달할 것이다. ‘소유권 공유’만이 실행 가능한 ‘논제로(nonzero)’ 해결책이다. 즉 디지털 방식으로 변형된 자본주의의 새로운 경제에 의해 직면한 난제들을 해결할 방안, 모두에게 공정한 혜택이 돌아가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세계화 통제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에 가장 엄청난 발전은 세계화이며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 양상은 중국이 빈곤에서 탈출해 세계경제의 최상위층으로 도약한 것이다. 수억 명의 중국 저임금 근로자가 통합된 세계 노동시장과 개방경제시장에 유입되어 중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만들었으며, 기술의 발전과 함께 서구의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제조업을 파괴시키고 제조업이 생계수단인 그 지역 주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러스트 벨트(미국 북동부 5대호 주변의 쇠락한 공장지대) 지역에서 낙후된 삶을 살면서 지금의 포퓰리즘을 선동하는 서구 시민들 사이에서 중국은 그 자체로 재앙이다.

중국의 경제적 부상은 지정학적 질서를 지배하는 미국에 대한 가장 의미 있는 도전이기도 하다. 간단히 말해, 서구 사회가 보통 사람들을 위해 세계화의 고삐를 죄기를 원하면 중국과 대치하든지 협력하든지 둘 중 하나의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좋든 싫든 중국은 세계무대의 중심으로 돌아왔다. 중국이 하든 하지 않든, 그들이 무엇을 하든, 기후변화와 싸우든 무역전쟁에 참여하든 최신 기술을 정복하든,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중국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의 미래를 알게 되는 길이다.

하나의 세계, 수많은 시스템

각국이 국권을 자체적으로 재확립하고 단일 규모의 세계화가 모든 국가에 딱 맞게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향후 몇 십 년 동안 세계 질서의 특징은 많은 시스템을 가진 하나의 세계가 될 것이다. 상호 의존망 속에서, 세계경제의 무게중심이 한때 군림했던 선진 세계에서 신흥 경제국들로 옮겨가고 있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결부된 서로 다른 문화와 문명들 사이에서 이러한 현실을 수용하는 새로운 타협이 모색되어야 한다.

약간의 안정과 함께 이러한 진화가 전개되려면, 다수의 문명적, 문화적 상황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거버넌스 모형이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여부의 판단 근거가 결과에 대한 경쟁이어야 하며, 지배적 이념의 도그마나 타인에 의한 간섭 또는 힘에 의한 부과여서는 안 된다. 요컨대 ‘다양한 평형’의 글로벌 시스템은 그 안에 힘의 사례가 아닌 사례의 힘이 존재한다. 그것이 ‘단일 규모가 모든 것에 딱 맞게 적용되지 않는’ 세계화의 모습일 것이다.

필수불가결한 동반자로서 미국과 중국이라는 기반 위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새로운 세계 질서는, 첫째, 헤게모니의 긴 공백에서 비롯된 다양성의 회귀에 순응하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지정학적으로 ‘하나의 세계, 수많은 시스템’으로 체계화되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규칙 기반 시스템은 일종의 ‘베스트팔렌 그 이상’일 것이다. 즉 우려를 낳는 글로벌 이슈에 대해 파트너십을 맺고 국가 간 및 국가 간 힘의 균형의 ‘구성 요소’ 일체를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신뢰 구축 협동 방식과 제도를 가진 시스템은 전체적인 힘의 배치에서 하나의 대안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요소다.

이러한 조건에서 세계질서를 안정시키기 위해 미국과 중국은 공개 교역과 투자, 안정적인 금융 흐름, 기후 보호, 여행과 항해의 자유, 건강지식과 과학 발전의 공유와 같은 글로벌 공공재의 보증인 역할을 해야 한다. 수렴된 이해관계에 기초해 세워진 ‘비가치 기반’ 파트너십이라는 이 주춧돌은 필연적으로 동류 사람들 사이의 ‘가치에 기반한 다수 강대국주의’와 공존해야 할 것이다.

이 주춧돌의 역할은, 국가나 국가 내 조직화된 집단에 의한 묵과할 수 없는 인도주의적 원칙 위반은 예외로 하고, 타인들에 대항해 무력을 사용하거나 조직적으로 전복을 꾀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가치가 공동의 목표 추구와 방향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연합 노력을 동원하는 것일 터이다. 가치가 충돌할 때, “편들지 않고,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것”이 행동 방식일 것이다. 더욱더 평등한 힘의 세계에서 제국주의, 중재, ‘상대국가 건설’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고, 반드시 역효과를 낳는다.

관여와 투명성을 특징으로 하는 정책들은 안정감을 낳지만, 원주민 보호주의, 격리, 검열은 의심과 오해를 낳는다. 실제로 진행되고 있는 것에 대해 동일한 정보를 공유할 경우, 모든 참가자 사이에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수는 있으나 그 대신 인간적 이해를 불러온다. 다른 사람들의 동기와 의도를 모른 채 암흑 속에서 살게 되면 사건들을 ‘잘못된 비유의 힘’에 내맡긴다. 예를 들어 ‘뮌헨 같아’ 또는 ‘냉전 같아’와 같은 비교는 모두 너무 쉽게 갈등을 초래한다. 다른 한편으로, 다른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이 적어지면, 시야가 넓어지고 문화는 외부의 영향력을 더욱더 반갑게 받아들인다. 이것은 모든 참가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의 합이 증가하는 긍정적 합계의 생태계로 이어진다. 이 생태계에서는 각자 구별되는 형태의 거버넌스로 운영하고, 이들은 다른 것들과 경쟁함으로써 한층 더 완성된다.

그와 같은 안정적인 틀 안에서만 사회는 충분히 안심한 상태에서 개방하고 공동의 이익을 인정하고 협력을 추구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과학과 기술의 진보를 모두가 공유할 수 있고 동시에 다양한 문화들이 새로운 세계문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타화수분에 의해 풍성해지면서 번성할 수 있다.

에필로그 ? 우리의 미래상이 현재를 만든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무엇보다 새로운 문제에 낡은 해결책을 들이대는 상상력이 부족한 일반적 제안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우리는 또한 지금과 같은 붕괴 시대에는 문제를 바로잡을 최종적 해결책이나 명확한 종착점은 없으며, 단지 지속적인 혁신을 통해 끊임없이 진화하는 상황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거버넌스의 목표는, 안정과 변화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 즉 우리가 붙인 용어인 ‘진화론적 안정성(evolutionary stability)’을 이루어 사회적 변형의 속도와 범위가 우리의 점진적으로 풍성해지는 사고에 의해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21세기의 우월한 지도자들은 정책을 간결하고 분명하게 설명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미몽에서 깨어난,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이 다시 한 번 그들의 삶을 스스로 지배할 수 있을지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도널드 트럼프, 블라디미르 푸틴,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과 같은 포퓰리즘적 지도자들은 이상적인 과거에 심어진 불만의 자세를 취한다. 이러한 외국인 혐오적, 폐쇄된 사회적 접근법과 대조적으로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같은 젊은 지도자들은 복합적인 미래에 뿌리를 둔 열망을 담은 정책들을 쏟아낸다. 그러나 이들도 재임 동안 정치적으로 휘청거릴 수 있으나, 후자 부류에 속하는 지도자들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들은 개방성, 포용성, 다양성, 혁신성, 지속가능성을 담은 정책들을 사회의 핵심적인 저력이며 쇄신을 향한 길로 인식하고 수용한다.

세계가 허물어지지 않고 함께 갈지 여부는 대조적인 비전들이 경쟁한 결과, 우리가 원하는 미래에 관한 선택사항들을 구성한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더 강해지고 단호해지기 위해, 꾸준히 끊임없이 실현될 수 있는 기회가 함께하는 비전은 국민과 국가에 다음과 같은 확신을 주어야 한다. 즉 그들은 또다시 자신들의 운명을 책임지게 된다는 확신, 그들의 삶에서 무엇인가를 이룰 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시도할 기회를 공정하게 갖게 된다는 확신이다. 노벨 화학상을 받은 과학자 일리야 프리고진에 따르면, 현재가 미래를 결정한다기보다는 우리가 가진 미래의 이미지가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할지 결정한다. 이러한 통찰력을 지니면서, 오늘날 우리 사회를 성공적으로 쇄신하기 위해, 우리는 모든 사람이 각자 존재할 장소를 갖게 되는 설득력 있는 미래상을 그려야 한다.

본 도서요약본은 원본 도서의 주요 내용을 5% 정도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원본 도서에는 나머지 95%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보다 많은 정보와 내용은 원본 도서를 참조하시기 바라며, 본 도서요약본이 좋은 책을 고르는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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