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어떻게 부자의 무기가 되는가

부키 / 2020년 9월 / 283쪽 / 16,000원

법은 어떻게 부자의 무기가 되는가

법은 어떻게 부자의 무기가 되는가

천준범 지음

저자 소개

글쓰기를 좋아하는 변호사다. 쓰고 싶은 주제가 떠오르면 메모장에 제목을 써 뒀다가 몇 년 후에 이어 쓰곤 한다. 학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결국 법으로 밥을 먹기로 결정했다. 변호사를 하면서 회사의 인수합병이나 주주들 사이의 경영권 분쟁 같은 정통 기업법에서부터 ‘관’을 상대해야 하는 공정거래나 행정소송까지 다양한 경험을 했고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기업과 법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에 관심이 지대하고 많은 사람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일에 매력을 느낀다. 미국 유학 후 2016년부터 2년간 유니콘으로 성장하는 스타트업에서 근무했다. 그 안에서 법무, 인사, 총무를 담당하면서 새로운 문화와 젊은 기업의 가능성에 눈을 떴다. 2018년에는 온라인 플랫폼인 퍼블리에〈독점기업이 돈 버는 방법〉을 게재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고, 이를 바탕으로 2019년에는『초기업의 시대』를 펴냈다.

책소개

이 책은 한국 재벌이 돈을 벌었던 방법과 그것을 막기 위해 추가된 재벌(규제)법 등에 대해 설명한다. 저자는 우리 법은 기존의 법제 울타리 안에서 재벌을 규제하려 했기에 많은 구멍을 만들었다면서, 재벌과 관련된 경제와 법 개념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또 재벌의 밀어주기, 몰아주기, 통행세 수취, 주가를 이용해 합병하는 법, 지주회사 마법 등을 공개하고, 법적 해결책도 제안한다.

요약본 본문

일단 치킨 가게부터 차려 봅시다

재벌이 돈 버는 방법 vs 재벌(을 규제하는) 법

이 책에서는 ‘재벌법’이라는 말을 쓸 예정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법의 분류에 재벌법이라는 분야는 없다. 참고로 법전의 분류에 따라 그 경계를 구분해 보면, 상법의 ‘회사 편’ 중에서 재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여러 규정, 재벌의 경영권 승계를 둘러싸고 나온 회사법 관련 판례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중 합병을 포함한 자본거래를 규율하는 부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중 대규모 기업 집단과 내부 거래 규제에 관한 부분, ‘세법’ 중 상속과 일감 몰아주기 등 재벌 거래를 규제하기 위해 도입된 부분이 이제부터 설명할 ‘재벌법’에 속한다.

재벌법은 대부분 재벌이 사업을 잘해서 돈을 버는 것 이외에 개인적으로 돈을 더 벌 수 있는 방법 또는 세금이나 책임을 피해서 돈을 아끼는 방법을 고안해 냈을 때, 그 방법을 금지 혹은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니 재벌이 돈 버는 방법과 재벌을 규제하는 법은 사실 동전의 양면과 같다. 다음 장부터는 본격적으로 재벌이 돈을 벌어 왔고, 현재도 돈을 벌고 있는 방법, 그대로 따라 하면 누구나 재벌처럼 부를 증식할 수 있는 비법에 대해 설명할 것이다. 앞으로는 ‘재벌이 돈 버는 방법’을 줄여서 재벌법이라 할 것이다. 물론 ‘이런 방법을 규제하기 위해 만든 법’도 재벌법이라고 부를 것이다. 두 가지가 사실 같다는 점은 이야기한 바 있으니, 이렇게 줄여 쓰더라도 이해해주면 좋겠다.

재벌법 기초 편 - 법을 알면 돈은 스스로 증식한다

기초 1단계 - 회장님 직접 밀어주기

가장 기초적인 재벌(이 돈 버는 방)법은 쉽다. 회장이든 다른 사람에게든 회사가 돈을 주면 된다. 받은 사람이 증여세만 정확히 내면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회사는 그냥 증여할 수 없다. 아무 대가도 받지 않고 회삿돈을 다른 사람에게 증여할 경우, 그런 결정을 한 임원이 자신의 돈으로 해당 액수를 회사에 채워 넣어야 하고(손해배상), 심각한 경우 철창신세를 질 수도 있다(업무상 배임죄).

합법적으로 회사가 회장에게 돈을 밀어주는 기본적인 방법은 연봉으로 주거나 배당금으로 주는 것이다. 그런데 회장에게 배당금으로 돈을 밀어줄 경우 회사 밖으로 흘러나가는 돈이 너무 많아진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재벌 대기업들은 배당금보다 경영진으로 참여하고 있는 회장 또는 그 가족들의 급여나 보너스(상여) 등을 포함한 연봉을 높게 책정하는 방법을 주로 이용해 왔다. 그러나 이 방법에는 한계가 있다. 우선 사람들은 대부분 근로 소득을 ‘일한 것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연봉을 너무 많이 받으면 그것이 적당한지 의문을 제기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연봉을 과도하게 높여 놔도 회사가 성장할수록 회장이 돈을 더 많이 잃게 되는 상황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시가총액이 1000억 원, 연 매출액이 1000억 원인 회사에서 회장이 연봉으로 10억 원을 받는다고 생각해 보자. 일단 이렇게 받으면 과도하게 챙긴다고 사람들의 눈총을 받을 것이다. 이런 부담 속에서 회장이 세금을 제외하고 자신의 연봉 전부를 회사 주식을 사는 데 쓴다고 해도, 늘릴 수 있는 회사 자본은 극히 적다. 일단 소득에 대한 세금으로 약 4억 원을 납부한 뒤 나머지 6억 원 정도로 1000억 원의 가치가 있는 회사의 주식을 시가로 산다면, 회장의 지분율은 겨우 0.6% 정도만 늘어날 뿐이다. 이렇듯 회장이 연봉을 아무리 많이 받아 봤자 계속 성장하는 회사의 지분을 크게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회장은 ‘내 회사인데, 늘어나는 성장의 열매를 조금이라도 더 누리고 싶다’라고 생각한다. 또 지분율이 낮아지면 경영권을 지키는 것도 어려워진다. 그래서 회장에게는 마법이 필요했다.

1996년 10월 30일, 한국의 대표적인 재벌 대기업이 입장권 1장 값으로 입장권 10장을 바꿀 수 있는 마법 쿠폰을 주주들에게 팔겠다고 했는데, 무언가에 홀린 듯 모든 주주가 그 좋은 쿠폰을 사지 않겠다고 했다. 그 바람에 외부의 제3자가 마법 쿠폰을 독차지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후 제3자는 쿠폰을 모두 입장권으로 바꿔서 20년이 지난 후 1000배가 넘는 이익을 거두었고, 이 대기업의 경영권을 거머쥐게 되었다. 참고로 앞에서 말한 ‘마법 쿠폰’은 현실에서 전환사채(CB)라고 불리는 증권이다.

재벌(이 돈 버는 방)법의 첫 단추는 이렇게 끼워졌다. 회장에게 ‘비싼 것을 싸게 파는’ 단순한 밀어주기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엄연히 가격표가 붙어 있는데도 그것을 싸게 판다면 곧바로 눈에 띈다. 특히 회사가 가지고 있는 비싼 것을 특정한 사람에게 싸게 팔면 그런 결정을 한 임원은 심각할 경우 은팔찌를 찰 수도 있다(업무상 배임죄). 그래서 언뜻 보기에는 가격표가 없어 보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권리’를 회장에게 주거나 싸게 파는 방법을 고안해 낸 것이다.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 전환사채나 신주인수권부사채를 싸게 팔아서 회장에게 회사의 성장에 따라 크게 돈을 벌 기회를 주는 것이 기초 1단계 재벌(이 돈 버는 방)법이다. 이 밖에도 싼 이자로 돈 빌려주기, 회사 직원 파견해 주기, 회장 건물에 사무실 두기와 같은 다양한 방법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이 방법들은 25년이 지난 지금 ‘무작정 따라 하기’를 할 수 없다. 단순한 방법이기도 하고 너무 오래되어서 그동안 이를 막는 법이 지뢰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세금도 정확히 내야하고, 적발될 경우 과징금이나 형사 처벌도 무겁다. 무엇보다 마법 쿠폰은 널리 알려진 방법이기에 함부로 따라 하기가 부담스럽다. 물론 곳곳의 지뢰밭을 피해 위의 고전적인 방법을 이용하는 경우가 있긴 하다.

이제 ‘숨바꼭질’ 이야기를 해보자. 이런 ‘직접 밀어주기’ 식의 재벌(이 돈 버는 방)법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본격적인 재벌 ‘법’을 탄생시켰다. 가장 먼저 사람들은 직접 밀어주기 사례를 보고 ‘불공정한 거래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졌다. 회사가 회장에게 싼 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것은 정가에 비해 싸고, 회사가 회장 건물에 사무실을 두고 비싼 임대료를 지불하는 것은 정가에 비해 비싸니 공정하지 않아 보였던 것이다. 또는 ‘불공평’하다고도 생각했다. 그래서 1996년 ‘공정거래법’의 ‘불공정 거래 행위’를 규제하는 제23조 제1항에 새로운 조항이 하나 생겼다. 제7호가 신설된 것이다.

‘제23조 (불공정거래행위의 금지) ① 사업자는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행위로서 공정한 거래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행위(이하 “불공정거래행위”라 한다)를 하거나, 계열회사 또는 다른 사업자로 하여금 이를 행하도록 하여서는 아니 된다. ~중략~ 제7호-부당하게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에 대하여 가지급금ㆍ대여금ㆍ인력ㆍ부동산ㆍ유가증권ㆍ무체재산권등을 제공하거나 현저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여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를 지원하는 행위’ 1998년에는 세법에도 비슷한 의미의 새로운 규정이 추가됐다. 사실 이렇게 누군가를 ‘직접 밀어주는’ 거래는 그것 자체가 불공정하다기보다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이용되었기에 부당한 방법이었다. 즉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매긴다’는 세법의 큰 원칙에 어긋나는 문제였다. 참고로 1998년 세법에 새로 도입된 규정은 아래와 같다. ‘법인세법 제52조(부당행위계산의 부인) ① 납세지 관할세무서장 또는 관할지방국세청장은 내국법인의 행위 또는 소득금액의 계산이 대통령령이 정하는 특수관계에 있는 자(이하 “특수관계자”라 한다)와의 거래로 인하여 그 법인의 소득에 대한 조세의 부담을 부당히 감소시킨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법인의 행위 또는 소득금액의 계산(이하 “부당행위계산”이라 한다)에 관계없이 그 법인의 각 사업연도의 소득금액을 계산할 수 있다. ② 제1항의 규정을 적용함에 있어서는 건전한 사회통념 및 상관행과 특수관계자가 아닌 자간의 정상적인 거래에서 적용되거나 적용될 것으로 판단되는 가격(요율ㆍ이자율ㆍ임대료 및 교환비율 기타 이에 준하는 것을 포함하며, 이하 이 조에서 “시가”라 한다)을 기준으로 한다.’

기초 2단계 - 회장님 회사에 몰아주기

1996년에 벌어진 마법 쿠폰 사건은 설계자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정도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20세기의 마지막 해인 2000년에는 회장이 고발되기까지 했다. 게다가 ‘부당거래법’이라는 커다란 장벽 두 개가 재벌(이 돈 버는 방)법의 앞을 막아서자, 21세기에는 이 장벽을 피해 가는 방법이 연구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그리 어렵고 복잡한 방법은 아니었다. ‘부당한’ 거래를 금지하는 법이 생기자, ‘부당하지 않은’ 거래를 통해 밀어주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회장님 회사와 거래할 때 너무 싸게 팔거나 너무 비싸게 사 주면 부당하고 불법이라고 하니, 너무 싸지 않게 팔고 너무 비싸게 사지 않는 거래를 시작한 것이다. ‘회장님 회사에 (매출) 몰아주기’를 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므로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여러분이 운영하고 있는 회사에서 꼭 필요한 일을 떼어 내어 새로운 회사를 차리고, 여러분의 회사는 예전과 똑같이 일하면 된다. 단,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이때 새로운 회사의 주주는 ‘회사’가 아닌 ‘여러분’이 되어야 한다.

2001년 2월 22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재벌 대기업 그룹에 계열회사 하나가 조용히 추가되었다. 이 회사를 설립할 때 회장과 가족은 자본금 50억 원을 내고 100% 주주가 되었다. 그리고 이 회사는 설립된 첫해에 거의 20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듬해인 2002년에는 3700억 원을, 5년 차인 2005년에는 무려 1조 5000억 원을 벌어들였다. 어떻게 이런 마법과 같은 일이 또 일어났던 걸까?

이 마법의 회사는 같은 그룹 내 계열회사들이 꼭 필요로 하는 일을 하는 곳이었다. 이 그룹은 자동차를 한 해에 500만 대도 넘게 만드는데, 자동차는 여러 공장에서 생산된 2만 개가 넘는 부품을 조립해 완성하고, 이 완성차는 국내 판매는 물론 전 세계로 수출된다. 수많은 기계 부품과 그 부품이 조립된 모듈, 또 그 모듈을 조립해서 완성한 차를 소비자에게 전달하기까지 공장에서 공장으로, 창고에서 창고로, 공장과 창고에서 소비자에게로 어마어마한 기계들을 운송하려면 거대한 물류 체인이 필요하다. 이런 막대한 운송과 물류 업무가 모두 새로 설립된 이 회사, ‘회장님 회사’로 집중되었던 것이다.

21세기 마법의 회사는 ‘일감 몰아주기’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20세기의 재벌법은 ‘너무’ 싸게 팔거나 ‘너무’ 비싸게 사 주는 것을 불법이라고 규정했기 때문에, ‘같은 값으로 사고판다면’ 그 양이 많아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허를 찔린 것이다. 이때부터 일종의 박리다매식 재벌(이 돈 버는 방)법이 시작됐다. 회장님의 회사는 이제 다른 회사들보다 더 싸게 사 와서 더 비싸게 파는 방법으로 한 번의 거래에서 높은 이익을 남기지 않는다. 그 대신 누가 뭐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적당히 이익을 남기면서 덩치를 키우고, 이를 통해 전체 규모와 이익의 양을 늘렸다. 이런 방식의 거래는 괜찮다는 소문이 나자 이 방법은 유행처럼 빠르게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새로운 마법의 회사들이 부당거래법을 피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정부는 당황했다. 법을 개정하려면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일이었다. 부랴부랴 ‘비슷한 값이어도 너무 많이 거래하는 것은 부당한 것’이라는 새로운 논리를 개발했고, 이런 논리로 공정거래위원회는 회장님 회사에 과징금 수백억 원을 내라고 밀어붙였다. 이에 회장님 회사는 그 과징금을 취소해 달라고 소송을 했지만, 고등법원도 정부의 손을 들어 주어 모두가 대법원의 판결만 기다리고 있던 때였다. 이렇게 5년 만에 2조 원 이상의 가치로 평가받는 ‘잭팟’을 터뜨린 회장님 회사를 보면서 화가 난 사람들이 있었다. 누구였을까?

바로 회장님 회사에 물류와 운송을 맡긴 자동차 회사의 주주들이었다. 물류와 운송은 자동차 회사에 꼭 필요한 사업인데 회사가 직접 하거나 자회사를 설립해서 하지 않고, 왜 회장님 회사와 거래를 하느냐고 자동차 회사의 주주들이 따졌다. 아무리 같은 값으로 거래하더라도 돈이 자동차 회사로 들어오지 않고 회장님에게 흘러 들어가는 것은 불공평하며, 무엇보다 ‘자동차 회사의 경영진이 회사를 배신한 것’이라고 항의했다. 경영진이 회사를 배신하는 것을 법률 용어로 ‘배임’이라 한다. 자동차 회사의 주주들은 자동차 회사가 밀어준 덕분에 회장님 회사가 벌어들인 1조 원을 회장이 갚아 내야 한다는 소송을 시작했다. 그 돈은 원래 회장이 아니라 자동차 회사의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3년 동안의 긴 소송 후, 2011년 회장이 자동차 회사에 배상해야 하는 손해액은 고작 800억 원 정도라는 판결이 나왔다. 그것은 ‘같은 값이어도 너무 많이 거래하면 부당한 것이고 경영진이 회사를 배신한 것’이라는 주장이 인정되어 나온 손해액은 아니었다. 워낙 많은 거래를 하다 보니 그중 ‘현저히 유리한’ 조건으로 한 거래가 일부분 있었다고 봤을 뿐이었다. 그리고 다음 해, 자동차 회사는 정부가 부과한 과징금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취하한다. 대법원 판결은 나오지도 못했다. ‘일감 몰아주기’라는 새로운 재벌(이 돈 버는 방)법이 불법의 딱지를 떼고 ‘절세 전략’의 하나로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부당거래법은 20세기 재벌(이 돈 버는 방)법을 막기 위해서 생긴 것이었다. 그런데 21세기라고 이런 숨바꼭질이 없었을까? 물론 있었다. 이런 새로운 재벌(이 돈 버는 방)법을 막기 위한 새로운 재벌(을 규제하는) 법이 곧 생겨났다. 우선 2010년에는 ‘너무 싸거나 비싸게 거래하는 것’에 이어 ‘너무 많이’ 거래하는 것도 부당하다는 내용이 부당거래법에 새로 추가됐다. 그리고 2011년에는 상법에 ‘회사 기회 유용’을 금지하는 제397조의2가 신설되어서 2012년에 시행되었다. 같은 해 회장과 가족이 상당한 지분을 가진 회사와 거래를 많이 한 결과로 그 회사에 이익이 날 경우, 그 이익을 회장과 가족에게 ‘증여’한 것으로 보는 세법 조항도 신설되어 시행되었다. 과연 새로운 법들은 재벌(이 돈 버는 방)법을 완벽히 틀어막는 데 성공했을까? 궁금하다면 다음 문을 열고 세 번째 방으로 들어갈 차례다.

기초 3단계 - 회장님 회사 끼워 넣기

장사는 첫째도 목, 둘째도 목, 셋째도 목이라는 말이 있는데, 목 장사의 원칙은 재벌(이 돈 버는 방)법에도 응용되었다. 회장님 회사를 목으로 이용한 것이다. 가장 최근에 알려진 사건은 ‘치즈 통행세’라고 불리는 한 피자 프랜차이즈 회사의 거래다. 이는 작은 중견 프랜차이즈 회사의 사례로 이 방법이 유명세를 치르긴 했지만, 사실 이는 재벌 대기업들이 오래전부터 흔히 쓰던 방법이었다.

‘통행세 거래’는 앞에서 보았던 몰아주기와 기본적으로 비슷하다. 회사에 꼭 필요한 물건이나 서비스를 공급받을 때, 회장님 회사를 세워서 원래 공급하던 회사와 공급받는 회사 사이에 끼워 넣는 것이다. 즉 ‘치즈 회사 → 피자 회사’ 2단계로 이루어지던 거래를 회장님이 치즈 유통회사를 하나 세워서 ‘치즈 회사 → 회장님 회사 → 피자 회사’ 3단계로 바꾸면 된다. 그러면 회장님 회사는 기존 치즈 회사가 피자 회사와 거래하면서 남겼던 이익 중 일부를 가져가게 된다. 이런 새로운 재벌(이 돈 버는 방)법이 정당한지 부당한지에 대한 논란은 한참 계속되었다. 어떤 문제가 결론이 잘 나지 않는 건 어려워서가 아니라 문제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도 핵심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중간에 끼어 들어간 회장님 회사가 ‘실제 수수료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을 하고 있느냐’를 판단해야 했다. 하지만 유통의 본질은 ‘연결’이다. 좋은 물건을 생산하는 사람과 이 물건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연결해 주기만 하면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이것도 부당거래법에 들어가게 되었다. 2013년 개정된 공정거래법 제23조 제1항에는 아래와 같이 새로운 내용이 몇 줄 추가됐다.

‘제23조(불공정거래행위의 금지) ① 사업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로서 공정한 거래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행위(이하 “불공정거래행위”라 한다)를 하거나, 계열회사 또는 다른 사업자로 하여금 이를 행하도록 하여서는 아니 된다. 7. 부당하게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통하여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를 지원하는 행위. 가.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에 대하여 가지급금ㆍ대여금ㆍ인력ㆍ부동산ㆍ유가증권ㆍ상품ㆍ용역ㆍ무체재산권 등을 제공하거나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는 행위. 나. 다른 사업자와 직접 상품ㆍ용역 거래하면 상당히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거래상 실질적인 역할이 없는 특수관계인이나 다른 회사를 매개로 거래하는 행위.’

새로 생긴 부당거래법에는 추상적인 구절이 세 개나 들어 있는데, ‘부당하게’ ‘상당히 유리’ ‘실질적인 역할이 없는’이라는 3 문구는 하나를 두고 몇 날 며칠 동안 밤샘 토론을 해도 결론이 나지 않을 정도로 추상적인 주제다. 참고로 원래 목을 잡고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시키는 중간 역할의 유통회사 없이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거래할 경우, 당연히 가격 면에서 상당히 더 유리해진다. 하지만 물량이나 가격 관리를 직접 해야 하고 유통에 대해 잘 모르니 자칫 속을 수도 있다. 분쟁이나 소송이라도 걸리는 날에는 뭐가 돈이 덜 드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된다. 결국 부당한지 아닌지에 따라 불법을 결정하겠다는 껍데기만 남은 이 법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도는 공허한 울림이 되고 말았다.

재벌법 중급 편 -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부자가 되는 주식 투자의 비밀

중급 1단계 - 합병과 분할 이용하기

앞에서 본 밀어주기, 몰아주기, 통행세와 같은 재벌(이 돈 버는 방)법은 사실 고단하다.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거래해야 하고 수없이 이루어지는 거래들의 조건 하나하나를 신경 써야 한다. 게다가 부당거래법이 생기고 진화하면서 그에 대응하는 논리를 짜내어 수비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 되었다. 반면 합병을 이용할 경우 몇 년 동안 해야 하는 일을 한 방에 끝낼 수 있다. 재벌법 중급 편의 시작은 바로 주식회사의 합병을 이용하는 ‘부풀려서 붙이기’ 방법이다.

부풀려서 붙이기는 쉽다. 회장님 회사의 덩치를 키운 다음에 원하는 회사에 붙이면, 합병된 회사에 대한 회장님의 지분이 한꺼번에 늘어난다. 간단한 계산으로 이해할 수 있다. 회장님이 100% 지분을 가진 회사의 가치가 100억 원이고 붙이려는 회사가 900억 원이라면, 합병 후 회장님은 1000억 원짜리 회사의 지분 10%를 갖게 된다. 그런데 붙이려는 회사의 가치가 900억 원인데 회장님 회사가 600억 원이라면 회장님은 합병 후 회사의 40% 지분을 갖게 된다(수식으로 하면 600 (600+900)이다). 그런데 회장님 회사가 600억 원인데 붙이려는 회사의 가치가 900억 원에서 400억 원으로 쪼그라들었다면? 회장님은 합병 후 회사의 지분을 무려 60%나 갖는 최대주주가 될 수 있다(수식으로 하면 600 (600+400)이다). 따라서 ‘부풀려서 붙이기’는 일단 회장님 회사의 덩치를 키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덩치를 키우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전망이 밝거나 수익성이 좋은 신사업을 회장님 회사에서 한다든가 꼬리 물기처럼 돈 잘 버는 회사가 다시 회장님 회사에 많은 돈을 투자해서 사업을 밀어주는 경우도 있다. 가끔 회계상으로만 크게 보이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이제 분할로 넘어가 보자. 회사 분할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주주 지분율이 똑같이 유지되면서 분할되는 ‘인적 분할’이고, 다른 하나는 원래 회사의 100% 자회사로 분할되는 ‘물적 분할’이다. 그런데 이 분할 방법들은 모두 재벌(이 돈 버는 방)법으로 이용되기 어렵다. 합병의 마법에서 보듯 회장님은 지분율이 한 방에 높아지기를 원하는데, 인적 분할의 경우 아무리 쪼개도 주주들의 지분율이 똑같은 미니 회사들이 생길 뿐이고, 물적 분할은 아무리 쪼개도 회사가 100% 지분을 갖는 자회사들만 생길 뿐이다. 즉 인적 분할을 하든 물적 분할을 하든 그 자체만으로는 ‘회장님 회사’를 만들 수 없다. 그런 탓에 사전 준비 작업으로 주로 이용되는 것이다.

한편 회사를 쪼갤 때 어떻게 나눌지 회사 마음대로 할 수 있다. 회사를 분할하고자 한다면, 회사 스스로 ‘분할 계획서’라는 것을 쓰고 그 계획서대로 이행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회사 안에는 여러 종류의 사업이 뒤섞여 있다. 치킨코리아가 사업이 잘되어서 햄버거, 피자, 중식당, 뷔페 사업도 하게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회사를 분할할 때 전망이 좋은 사업부와 부진한 사업부로 나눠서 전망 좋은 사업을 A사로, 부진한 사업을 B사로 몰아줄 수 있다. ‘A사는 치킨, 햄버거 사업을 한다. B사는 피자, 중식당, 뷔페 사업을 한다’라는 내용을 분할 계획서에 적으면 끝이다.

중요한 건 회사 내에는 어느 사업부에 귀속된다고 딱히 볼 수 없는 재산이 많다는 사실이다. 치킨코리아 본사 사옥 내에 강당이 있고, 그 안에 의자가 1000개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이 의자들은 치킨 사업부 것일까, 피자 사업부 것일까? 공동으로 쓰는 물건들은 분할 계획서를 쓸 때 어디에 속한다고 적기만 하면 된다. 회사는 그 재산을 기존 회사 또는 분할로 신설되는 회사 중 어느 회사에 줄 것인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만약 회사가 다른 회사에 투자해서 주식을 갖고 있다면 그 주식은 어느 사업부의 것일까? 그것 역시 적당히 어느 사업부의 것이라고 계획서에 명시하면 된다. 이렇게 조립된 레고 블록을 쪼개고 다시 조립하듯, 기존 회사의 재산을 마음대로 나누어서 새로 생기는 회사로 구성하는 것이 회사 분할의 비법이다. 그리고 이때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자기주식’이다.

중급 2단계 - 자기주식 이용하기

우리나라 상장회사가 자기주식을 갖는 것이 허용된 건 1994년부터다. 전체 지분의 10% 내에서, 또 회사가 번 돈에서 비용을 빼고 잉여금이 있을 때 가능하다는 조건이었다. 미국에서 회사가 자기주식을 취득하는 큰 이유는 주가 상승을 위해서다. 하지만 자기주식의 취득이 허용되지 않던 때, 우리나라 ‘재계’에서 주식회사의 자기주식 취득을 허용해 달라고 한 가장 큰 이유는 ‘경영권 방어’를 위해서였다. 회사가 자기주식을 취득하면 왜 주가가 오르고 어떻게 경영권 방어가 되는 걸까?

첫째로 주가가 오르는 것은 쉬운 원리다. 회사가 직접 자기 회사의 주식을 사면 시장에 공급되는 주식의 수가 줄어든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서 그만큼 가격이 오르는 것이다. 둘째, 경영권 방어는 어떤 의미일까? 회사는 취득한 자기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그렇다면 경영권 방어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걸까? 예를 들어 계속 투자를 받아 성장한 치킨코리아가 주식을 모두 10만 주 발행했고, 그중 대주주인 재원의 지분이 45%가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재원의 지분은 과반수가 아니므로 이사 선출과 같이 중요한 문제를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이때 치킨코리아가 자기주식 1만 주, 그러니까 전체 주식의 10%를 취득한다면 어떻게 될까? 1만 주에 대해서는 의결권이 없어지고, 지분율을 계산하는 분모(즉, 발행 주식 총수)에서 빠진다. 원래 재원은 45%를 가졌었는데, 회사가 자기주식을 취득하자 전체 9만 주 중 4만 5000주, 비율로 따지면 50%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재원은 회삿돈으로 자신의 지분율을 5% 높인 것과 똑같은 효과를 누리게 됐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 회사가 자기주식 1만 주를 취득한 다음, 돈 많은 재원의 친구에게 파는 것이다. 이때 친구는 재원을 지지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면 지분율은 어떻게 될까? 원래 45% 지분을 가진 재원은 회사가 자기주식 1만 주를 취득하자 의결권 50%를 갖는 것과 같아졌다. 그다음 치킨코리아가 가졌던 자기주식 1만 주를 재원의 돈 많은 친구에게 팔자 그 친구는 바로 10%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결과적으로 재원과 재원이 친구의 의결권을 합치면 55%가 된다(60%가 아니다. 재원의 의결권도 다시 45%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런 효과 때문에 현실에서 주로 이용되는 방법은 바로 이 두 번째다. 이때 재원의 친구와 같은 사람을 백기사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는 본격적인 재벌(이 돈 버는 방)법이라고 할 수 없다. 회삿돈으로 회사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지킬 수는 있지만, ‘돈을 버는’ 방법은 아니니 말이다. 자기주식으로 마법을 부리려면 회사 분할과 자기주식을 한꺼번에 이용해야 하는데, 바로 그 방법은 ‘지주회사의 마법’을 이용하는 것이다.

열쇠를 찾으면 세상이 바뀔 수 있을까

재벌법의 현실은 무죄

현재 재벌법에서 사장이 회사가 아니라 회장을 위해 일했을 때 범죄자가 되는 경로는 두 가지다. 첫째는 회장을 밀어주고 몰아주는 거래를 하다가 부당거래법을 위반했을 때, 공정거래위원회가 회사에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사장을 고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회장이나 사장이 개인적으로 책임을 지고 감옥에 가는 경우는 흔치 않다. 개인이 재판까지 가도 대부분 벌금으로 끝난다. 부당거래법 자체가 ‘거래’에 관한 법(공정거래법)에서 출발했고, 법원도 ‘회사가 거래를 하는 과정에서 생긴 문제’라는 인식이 있어 감옥까지 보내는 경우는 드물다. 재판 기간도 오래 걸린다.

둘째는 사장이 회장을 위해 일하다가 ‘사장으로서의 의무’를 위반했을 때다. 사장으로서의 의무는 뭘까? 법에서는 ‘선관주의의 의무’나 ‘충실 의무’라고 한다. 덧붙이면 고의로 사장의 의무를 위반해서 회사에 손해를 입힐 경우, 죄가 된다. 그때는 회장도 같이 범죄자가 될 수 있다. 사장은 어떤 것을 더 무서워할까? 당연히 두 번째다. 회사가 법을 어기는 바람에 자신이 회사 대표로서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사장 개인이 법을 위반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감옥에 갈 가능성도 높을뿐더러 회장까지 공범으로 함께 처벌된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회장을 위해 일한 보람이 없다.

한편 우리나라의 재벌법들이 재벌(이 돈을 버는 방)법을 막는다고는 하지만, 빠져나갈 수 있을 만큼 문이 꽤 열려 있다. 만약 치즈 통행세 판결에서 회장이 A를 끼워 넣은 것에 유죄 판결을 받는다고 해도, 이것을 본 다른 회장이 친척 B를 중간에 끼워 넣으면서 번듯한 사무실도 주고 일을 좀 하라고 한다면 어떨까? 그러면 부당거래법에도, 사장 의무법에도 어긋나지 않는다. 그런데 법이 이래도 되는 것일까? 생각해 보자. 그렇게 거래의 중간에 끼어든 A나 B에게 흘러 들어간 회삿돈은 원래 누구에게 갔어야 하는 돈일까? 그것이 부당거래법이나 사장 의무법을 위반한 것이 아닐지라도 그 돈은 회사의 이익이 되어 회사의 다른 주주들에게 배당됐어야 하는 돈이다. 결국 다른 주주들과 회장 사이에 이해상충이 생긴 것이고, 회장이 다른 주주를 포함한 회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결정함으로써 이들을 배신한 것이다. 더 쉽게 말하면, 회장이 공과 사를 구별하지 않은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세 글자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재벌법의 모든 문제는 허무하게도 언뜻 보면 좋아 보이는 다음과 같은 짧은 법 문구 하나에서 출발한 것이다. ‘상법 제382조의3(이사의 충실 의무)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 부당거래법, 지주회사법, 사장 의무법과 같은 재벌을 규제하는 법이 재벌이 돈 버는 방법과 끊임없는 숨바꼭질과 헛발질을 계속하는 이유는 이 상법 조항, 충실 의무법에 적혀 있는 ‘회사를 위하여’라는 여섯 글자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재벌이 돈 버는 방법은 ‘회사를 위하여’ 무언가를 하는 중간에 ‘회장이 이익을’ 얻도록 설계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자. 밀어주기, 몰아주기와 통행세 거래는 회사 거래의 효율성, 보안성, 긴급성과 같은 회사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명목으로 진행되었고, 합병과 분할, 자기주식을 이용한 지주회사 전환 역시 경영 효율화나 지배구조 투명성 제고처럼 겉으로는 ‘회사를 위하여’ 필요한 거래였다. 그래서 이런 거래를 하는 회장이나 사장은 자신이 충실 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재벌법을 이용해 회장의 이익과 지분율을 높이는 거래가 이루어졌다는 것, 회장의 이익이 극대화되는 시점에서 상장회사의 거래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모두 분명한 결과적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거래에 대해서 회장에게 이익이 됐음에도 그저 ‘회사를 위해서’ 일하는 중에 부수적으로 일어났다고 설명하면 우리나라의 사장 의무법, 특히 충성 의무법을 별 문제 없이 통과할 수 있는 게 지금까지의 현실이었다. 이렇게 핵심 스트레이트 펀치가 가드에 막히자 법은 부당거래법, 세법, 유용금지법과 같은 변죽만 울리는 잽으로 공격을 시도해 왔다. 하지만 잽은 피하기도 쉽고 맞더라도 당사자는 큰 충격을 받지 않는다. 판정으로 갔을 때 잽을 많이 날렸다고 이긴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충실 의무법의 ‘회사를 위하여’라는 말에는 당연히 ‘회사와 같은 배를 탄 모든 주주를 위하여’라는 뜻, 그러니까 ‘주주 중 어느 하나를 특별 대우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 들어 있다. 즉 회사를 위한다는 말에는 당연히 전체 주주들의 공평한 이익을 위해 일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참고로 합병과 같은 거래는 회사의 실제 이익과 아무런 관계가 없고, 오로지 합병에 참여하는 회사 주주들의 이익과 손해에만 관련된 것이다. 법적으로 합병은 소멸하는 회사의 주주가 헌 주식을 반납하고 새 주식을 받는 ‘주주들의 거래’이므로, 이런 거래를 할 때 ‘회사를 위해서’ 일하라는 말은 전혀 맞지 않는다. 합병 비율을 어떻게 정하든 회사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런 상식들은 인정되지 않고 있다. ‘회사를 위하여’라는 말은 ‘모든 동업자를 위하여’라는 말과 그 의미가 다르지 않은데, 우리 대법원은 ‘회사를 위한 것은 맞지만 모든 동업자를 위한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긋고 있다. 법은 문언 자체가 중요하다. 그런데 법문에는 ‘회사’만 있고 ‘동업자’, 즉 ‘주주’라는 단어가 없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법 제382조의3에 다음과 같이 ‘총주주’라는 세 글자를 넣어 보면 어떨까? ‘상법 제382조의3(이사의 충실 의무)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와 총주주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 그냥 ‘주주’라고 하지 않은 이유는 사장이 수많은 주주 중 어느 한 명만을 위해 일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총주주, 세 글자를 법에 넣으면 문제는 의외로 간단해진다. 지금까지 나왔던 모든 재벌법에 관한 이야기를 한 줄기로 모아서 말끔하게 정리할 수 있다. 복잡한 법리와 요건을 고민할 필요도 없고 회장과 사장이 분명하게 ‘공사 구별’을 했는지만 보면 된다.

그러면 밀어주기와 몰아주기에서 그 거래의 대가가 시장에서 거래하는 가격보다 ‘상당히’ 높았는지 낮았는지 아니면 규모가 ‘상당히’ 많은 것이었는지, 그래서 회사에 이익인지 손해인지 머리 빠지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 해당 거래가 회사의 특정 주주, 예컨대 회장에게 특별히 이익이 되는 것은 아닌지만 보면 된다. 아무리 시장 가격이었다고 해도 회장님 회사와 거래했다면 결과적으로 회장에게 이익이 된 것이다. 이런 거래를 했을 경우 회장은 회사에 어떤 이익이 있었는지를 소명하고 다른 주주들을 설득해야 한다. 조건이 회장에게 너무 유리했거나 회사에 불리했다면 세금으로 해결하면 된다.

통행세 거래도 실제로 끼어 들어간 회사가 역할을 했느냐 안 했느냐 따질 필요 없이 특정 주주의 회사가 끼어 들어간 것 자체로 이익이 되었으므로 충실 의무를 위반한 것이 된다. 끼어 들어간 회사가 중간에서 어떤 역할을 했고, 그래서 회사에 이익이 됐다면 그에 대해 다른 주주들을 설득해야 한다.

합병이나 주식 교환처럼 주주들의 이익이 직접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경우에는 총주주가 손해를 입는 것은 아닌지 철저히 신경 써야 한다. 만약 회장님 회사와 합병할 때 우리 회사의 가치가 조금이라도 느슨하게 평가된다면 사장이 그 차액만큼 회사에 손해를 배상할 각오를 해야 한다. 상장회사의 경우, 주주 보호를 위해 조금이라도 더 주가가 높을 때 합병하기 위해서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는다면 역시 충실 의무 위반이 된다. 지주회사를 만들기 위해서 회삿돈으로 산 자기주식을 회사를 위해 쓰지 않고 회장의 지분율 증대를 위해 이용하는 것도 곧바로 충실 의무 위반이다. 이때는 자기주식을 산 회삿돈만큼 그 결정을 한 사장이나 회장이 다시 회사에 배상해야 한다.

총주주를 법에 넣어 두면 시간과의 싸움도 사라진다. 앞으로 어떤 새로운 재벌이 돈 버는 방법이 나오더라도 국회에서 새 재벌 규제법을 만들거나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느라 몇 년의 세월을 보내는 숨바꼭질을 끝낼 수 있다. 모든 재벌법은 회사의 돈을 이용해 거래를 하면서 다른 주주들에게는 손해를 입히더라도 회장에게는 확실한 이익을 주는 방법을 고안함으로써 탄생한다. 그러므로 총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규정해 두면, 사장은 어떤 형태로든 회장을 다른 주주들과 달리 취급하는 거래를 하지 못하게 된다. 이사의 충실 의무법에 ‘총주주’ 세 글자를 넣으면 이렇게 많은 것이 바뀔 수 있다.

본 도서요약본은 원본 도서의 주요 내용을 5% 정도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원본 도서에는 나머지 95%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보다 많은 정보와 내용은 원본 도서를 참조하시기 바라며, 본 도서요약본이 좋은 책을 고르는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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