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돈

책이있는마을 / 2020년 10월 / 311쪽 / 18,000원

보이지 않는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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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돈

천헌철 지음

책소개

이 책은 금융의 역사를 전쟁이라는 주제와 엮어 금융의 중요성을 전달한다. 저자는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돈을 풀었던 시기나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돈을 풀고 있는 현재는 유사한 상황이라면서, 전쟁을 치르기 위해 찍어 낸 돈이 전쟁이 끝난 후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역사에서 교훈을 얻기 위해서는 현재의 국제경제 및 금융을 규정하는 질서와 규범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요약본 본문

전쟁과 금융

인류는 부를 쌓기 위해 금ㆍ은 등 금속 통화는 물론, 석유ㆍ철광석ㆍ면화 등과 같은 물자를 확보하기 위한 전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 또는 전쟁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기술과 전략이 계속 개발되었다. 그런데 기술을 개발하거나 전쟁 전략을 실행하는 데에는 자본이 든다. 일반적으로 전쟁 수행에 필요한 돈은 세금으로 거둬들이고 화폐를 발행하고 국내외의 자금을 차입하여 마련한다. 하지만 국민에게 세금을 부과해 모든 전비를 충당한 전쟁은 거의 없다.

화폐의 발행이나 국내외 차입은 중앙은행이나 금융기관의 개입을 통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전쟁은 금융의 진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작용된 구조가 금융시장의 형성과 제도의 발전에 크게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현대적인 개념의 이자를 주고 전쟁 비용을 조달하는 차입에 의한 방법이 개발ㆍ사용된 것은 르네상스 시기의 이탈리아에서였다. 14세기와 15세기 동안 이탈리아의 피렌체ㆍ베니스ㆍ밀라노ㆍ로마 등 도시국가들은 크고 작은 전쟁이 일상이었는데, 이 국가들은 현재와 같은 군대, 즉 상비군이 없었다. 따라서 전쟁을 치르려면 돈을 주고 용병을 고용해야 했다.

용병들에게 전쟁은 직업이었고 뛰어난 용병대장에게는 많은 돈이 필요했다. 용병부대는 전쟁에 져도 돈을 받아갔다. 처음에는 용병부대에 지급해야 할 돈을 시민이 낸 세금 수입으로 충당했지만, 전쟁이 길어짐에 따라 세금 수입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피렌체 도시국가는 용병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이자를 주는 조건으로 채권(prestanze)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했다. 미래에 발생할 세금 수입으로 원금과 이자를 갚는 구조였다. 전쟁 중인 국가의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은 원금을 받지 못할 리스크가 높다. 따라서 그에 상응하는 높은 이자율을 요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투자자는 채권을 발행한 국가가 전쟁에서 승리하면 패전국으로부터 받는 전쟁 배상금이나 점령한 지역에서 거둬들이는 세금으로 채권을 상환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전쟁에 질 경우 원금을 날리는 것도 각오해야 한다.

한편 이탈리아는 도시국가로 구성되어 있어 대부분의 금융은 국가 간에 이루어지는 국제금융이다. 더욱이 교황청을 대신해 유럽 각지로부터 헌금을 수납하는 과정에서 피렌체의 통화 플로린뿐만 아니라 영국의 스털링, 베니스의 두카트 등 다양한 통화가 개입되어 국제금융이 발전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국제금융의 기본 개념과 국가와 은행의 관계에 대해 잠깐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국제금융은 외국에 자금을 빌려주거나 외국으로부터 자금을 빌리는 행위다. 이때 자금을 빌리는 국가, 즉 차입 국가에 대한 위험이 고려된다. 이를 국가 신용 위험 또는 국가위험이라고 한다. 이것은 현지 통화를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로 바꿀 수 없거나, 교환이 가능하더라도 기축통화를 외국으로 보내는데 금액 한도가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아울러 자금을 빌려주는 자, 즉 대출을 해준 자나 채권에 대한 투자자를 보호해 주는 법률이 있는지, 그 현지 법률이 임의로 변경되어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는 데 제약이 있는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차입 국가가 지불유예, 즉 모라토리엄을 선언해 외국으로 자금을 보내는 것을 전면적으로 금지할 수도 있고, 외국인이 투자한 자산이나 채권을 차입국 정부가 몰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전쟁 수행 국가는 자국에 있던 적국의 자산을 서로 몰수했다. 이런 행위는 국내금융에서는 있을 수 없는 위험이다.

국가(궁정)와 은행의 관계는 오늘날처럼 국가가 은행을 통제하는 관계가 아니었다. 국가는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리는 채무자 중 하나였다. 예를 들어 가정에서 아버지의 소득으로 경비를 지출했는데 지출이 많아지면 소득이 있는 자녀로부터 빌리는 것과 같다. 지출이 너무 많아지면 은행 역할을 했던 자녀를 포함해 친인척들이 참여하여 자금을 모아서 아버지에게 빌려준다. 여기서 자녀는 개인은행가이고 친인척으로부터 자금을 모은 사람은 주식회사 형태의 은행이나 중앙은행이라고 보면 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영국ㆍ프랑스ㆍ독일 정부는 모두 개인은행가나 중앙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렸다. 세금 수입으로 정부의 지출액을 충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금융이 활발히 일어났고 필요에 따라 개인은행, 주식회사 은행, 중앙은행이 만들어졌다. 이때 빌려주고 받는 돈은 실물과 동일하거나 실물과 교환이 가능한 증서였다. 돈은 금화ㆍ은화 등과 같은 직접 통화와 함께 금ㆍ은 교환권이 있는 증서 또는 토지ㆍ물품ㆍ수출환어음 등의 실물과 교환 가능한 증서로 이루어졌다.

한편 은행이 발행한 증서를 은행권이라고 하는데, 요즘과 달리 은행은 누구나 은행권을 발행할 수 있었다. 이런 은행권은 태환권이 부여된 지폐였다. 참고로 실물과의 교환권이 없는 은행권을 불태환 지폐라고 하는데, 정부(재무부)가 발행하는 채권은 화폐도 아니고 실물 교환권도 아니기 때문에 태환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중앙은행이 독일 재무부의 채권을 지폐로 인정해 줌으로써 통화량이 급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요즘의 화폐는 모두 태환권이 없는 불태환 지폐다.

제1차 세계대전

이 전쟁은 1914년 7월 28일부터 1918년 11월 11일까지 일어난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세계대전인데, 이는 전 세계의 경제를 두 편으로 나누는 거대한 강대국 동맹끼리의 충돌이었다. 한쪽 편은 영국ㆍ프랑스ㆍ러시아의 삼국 협상을 기반으로 한 협상국(연합국)이며, 다른 한편은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동맹국이었다. 이런 진영은 재조직화되어 협상국은 이탈리아ㆍ일본ㆍ미국이 합류하면서 28개국으로 확장되었고, 동맹국은 오스만 제국과 불가리아가 추가되면서 4개국으로 확대되었다.

이후 1917년 10월 혁명에 성공한 레닌이 바로 독일과 휴전하면서 동부전선에서 전투가 멈추었고, 동맹국은 러시아의 영토를 획득했다. 그러나 동맹국은 서부 전선의 전투에서는 계속 패배했다. 결국 1918년 9~11월에 불가리아, 오스만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등이 항복했다. 또한 독일도 11월 혁명 이후 휴전에 합의하면서 연합국의 승리로 전쟁은 끝이 났다(1918년 11월 11일).

이 전쟁에 사용된 전쟁 비용은 1913년 기준 약 824억 달러(2013년의 가치로 1조 9,466억 달러)에 달했다. 전비 조달에서 각국 정부는 자국의 은행에 직간접적으로 많이 의존했다. 독일과 프랑스는 전쟁에 승리하면 전쟁 배상금으로 전쟁 비용을 갚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세금 징수보다는 금융에 의존했다. 미국은 전쟁 참가 기간(1917~1918) 동안 일반회계로 전체 전비의 29% 수준을 사용했고, 영국은 전쟁 기간(1914~1918) 동안 전체 전비의 28%에 달하는 금액을 세금이나 공공 부문에서 확보했다. 반면 같은 기간 프랑스와 독일이 세금 등으로 전비를 충당한 비율은 각각 15.4%, 13.7%였다.

28개 연합국이 참전하면서 연합국 간에 자금 지원도 이루어졌다. 연합국 간 채권채무 관계를 보면, 미국 참전 전에는 영국과 프랑스가 연합국인 러시아ㆍ이탈리아 등에 자금을 지원했고, 미국 참전 후에는 미국이 영국ㆍ프랑스 등을 포함한 모든 연합국에 자금을 보냈다. 참고로 미국이 연합국에 지원한 금액은 총 103억 달러였다. 영국도 83억 달러를 연합국에 지원했고, 프랑스도 22억 달러를 연합국에 지원했지만, 프랑스가 갚아야 할 미국과 영국에 대한 채무가 50억 달러에 달했다.

이후 연합국 사이의 채권ㆍ채무 정리 문제는 독일이 부담할 배상금 처리 문제와 연계되어 각국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프랑스는 영국과 미국에게 빌린 차입금을 상환하려면 상당액의 전쟁 배상금을 독일에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미국은 연합국을 지원했지만 채무를 탕감하거나 깎아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더욱이 프랑스는 제정 러시아에 빌려준 대출 등 40억 달러를 모두 떼였다. 볼셰비키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혁명 정부가 제정 러시아의 빚은 갚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영국도 러시아와 오스만제국으로부터 6억 달러를 몰수당했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연합국은 연합국 간 채권ㆍ채무 해결 자금도 고려하여 독일에 전쟁 배상금을 요구했다. 1921년 4월 27일 연합국의 배상위원회가 결정한 독일의 배상 총액은 1,320억 금마르크(66억 파운드)로 42년간 상환하는 조건이었다. 독일 내부에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라는 반발이 심해 콘스탄틴 페렌바흐 내각이 총사퇴했고 카를 요제프 비르트 내각이 들어섰다. 이후 독일은 전쟁 배상금을 갚는 과정에서 끝없는 통화가치 하락과 경제 추락을 경험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은 1939년 9월 1일부터 1945년 9월 2일까지 치러진,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남긴 파괴적인 전쟁이다. 전쟁은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1939년 9월 1일에 시작되었다. 독일ㆍ이탈리아ㆍ일본을 추축국으로 하는 동맹이 결성되었고, 여기에 6개국이 더 가담했다. 이에 맞선 연합국은 미국, 영국, 중국, 소련 등을 중심으로 전쟁이 끝날 때까지 50개국에 이르렀다.

1942년 연합국은 아프리카 북부, 소련, 태평양 등지에서 추축국의 진격을 막아 내고, 1943년에 이탈리아, 1944년에 프랑스에 상륙한 후 1945년에는 독일로 진격했다. 결국 독일은 1945년 5월 7일에, 일본은 8월 15일에 항복했다. 전쟁으로 유럽과 아시아 지역이 거의 파괴되었다. 그리고 유럽 주도의 시대는 가고 미국과 소련이 강력한 국가로 떠올랐다.

영국은 전쟁 기간 중 국방비로 총 228억 파운드를 지출했는데, 미국과 캐나다로부터 빌린 돈을 전쟁이 끝난 지 61년 만인 2006년까지 갚았다. 미국은 전쟁 참여 기간 동안 총 3,370억 달러를 전비로 지출했다. 그 밖의 54개 국가의 전비를 합산하면 천문학적 수치가 나올 것이다. 따라서 전비에 대한 조달 분석은 큰 의미가 없으므로 전후 금융 체제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1944년 7월 미국 브레턴우즈에서 연합국들이 ‘국제 무역, 지불 및 투자에 관한 전후 시스템(이하 전후 통화시스템으로 약칭)’을 설계ㆍ고안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이 회의에서는 존 케인스가 제시한 케인스 플랜과 해리 화이트가 제시한 화이트 플랜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이후 오랜 협상 끝에 1947년 금 준비금을 토대로 국제안정화기금을 마련하자는 화이트 플랜을 채택하고, 국제통화기금(IMF) 창설에 합의했다. 또 신질서의 양대 기관의 하나인 국제재건개발은행(이후 설립된 International Development Association을 포함, ‘세계은행’)을 설립했다. 이른바 브레턴우즈 체제가 출범한 것이다. 더불어 이 시스템을 보완하는 기관으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의한 기구{이후 세계무역기구(WTO)로 개편}를 1947년 제네바에 설립했다. 참고로 케인스 플랜은 국제수지 적자 국가의 금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국제적립통화를 새로 창설하는 국제청산연맹 형태의 통화 시스템이었으나, 실상은 금 보유량이 많고 막강한 경제력을 보유한 미국 달러를 기본으로 한 금환본위제의 도입에 회원국이 동의한 것이다. 아무튼 브레턴우즈는 금 1온스당 미국 달러 35달러를 고정시키고 다른 통화를 미국 달러에 고정시켰기 때문에 사실상 ‘달러본위제’라고도 불린다.

IMF는 환율을 통제하도록 설계되었으며 세계은행은 전쟁으로 파괴된 나라의 재건을 지원하도록 설립되었다. 실제로 이로 인해 25년 동안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무엇보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유럽의 경제 재건을 위해 시행된 미국의 마셜 플랜으로,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유럽과 미국은 함께 장기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소위 제3세계에서 마셜 플랜과 같은 정부 간 원조 프로그램이 시도되었지만, 다분히 정치적 동기에 연동되었기 때문에 당초 재건 목적을 이루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또한 미국의 마셜 플랜과 브레턴우즈 체제에 따른 금융과 지원을 전쟁의 가해자인 독일과 일본도 이용할 수 있게 한 데 대한 불만도 있었다.

독일과 일본의 절망적인 상황을 희망으로 바꾸게 된 계기도, 양국의 경제 기적이 가능하게 된 기회도 바로 브레턴우즈 체제를 활용할 수 있게 해 준 영국, 엄밀하게는 케인스의 허락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데 왜 케인스는 전쟁 가해국인 독일과 일본에 그런 기회를 제공해 주었을까? 아마도 케인스의 사회주의적 성향에 따른 관대함뿐만 아니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세력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미국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으면 그런 결정을 할 수 없었으리라 생각된다.

또한 프랑스는 공공 부채 비율이 매우 높은 미국이 외환 보유 통화로서의 지위에 따라 달러를 마구 찍어 내어 세뇨리지(seigniorage, 2015년 현재 기축통화인 달러를 제작하는 데 드는 비용인 6센트와 실제 1달러 간의 차이 94센트가 미국에 이익이 된다는 ‘화폐 주조 차익 효과’를 세뇨리지 효과라고 함) 혜택을 누린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참고로 오늘날에도 미국 달러가 기축통화로서의 가치를 유지하고 있어 세뇨리지 효과는 그 어느 때보다 크다고 할 수 있다.

이후 1971년 닉슨 대통령이 금 보유고의 부족으로 달러화에 대한 금교환권을 제거했다. 이에 따라 브레턴우즈 체제가 없어진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변동환율제가 재도입되었고, 유로본드 같은 역외 시장이 발달했다. 자연히 무역도 자유화되었지만 그에 따른 자본의 이동도 자유롭게 바뀌었다. 브레턴우즈 체제를 도입할 당시에 목표로 했던 자본의 통제는 사실상 물 건너간 일이 되었다.

한편 IMF와 세계은행은 차관 지원의 전제 조건으로 ‘개혁이 없으면 돈도 없다’는 원칙 하에 소위 ‘워싱턴 컨센서스(재정 규율 정비, 세제 개혁, 이자율 자유화, 건강과 교육 지출 증대, 재산권 보호, 국영기업의 민영화, 시장 자유화, 환율 경쟁력 확보, 무역장벽 제거, 외국인 직접투자의 장벽 제거 등이 주요 내용임)’를 적용했다. 참고로 이러한 항목은 외국의 자본이 차관을 받고자 하는 국가의 주요 자산이나 자본을 손쉽게 확보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전제 조건이기도 하다. ‘세뇨리지’와 더불어 외국의 자본이 자국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면 대상국의 각종 장벽을 없애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전쟁과 금융에 대해 기술했다. 20세기 후반부터 글로벌화가 진전되면서 전 세계는 경제활동에 적극적이다. 이는 또 다른 전쟁, 경제 전쟁을 예고하고 있다. 경제활동을 통해 이익을 얻는 방향으로 국제무대의 중심축이 움직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OECD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OECD는 1960년 12월 14일 파리에서 설립되었다. OECD의 금융 관련 공식 조직은 무역위원회 산하의 수출신용보증그룹이다. 하지만 실제 중요한 의사 결정은 회원국 간의 비공식 기구인 참가자그룹(Group of the Participants)에서 이루어진다. 앞으로 설명할 수출신용보증그룹에서의 활동을 살펴보면 국제 상거래에서 더욱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글로벌 경제와 금융

국가 수출금융 지원 체제의 탄생

제1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1919년 자유무역으로 대표되는 자유방임주의는 전환점을 맞았다. 참고로 전쟁 전 유럽의 강대국은 세계화와 자유무역으로 세계 경제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쟁 이전에 전 세계 생산량의 43%를 차지했던 유럽은 전쟁 후에는 그 비중이 34%로 떨어져 미국 수준에 못 미쳤다. 또 전쟁 후 유럽은 미국에 채무를 갚기에도 벅찼다. 그래서 유럽은 국가가 중심이 되어 산업 재건에 나섰고 자금 공급을 주도했다. 구체적으로 경제적 민족주의를 내세워 산업을 보호하고 수출을 장려하기 위한 조치들을 시행해 나갔다. 그래서 관세 전쟁이 시작되고, 산업을 국유화했고 전략 산업 보호를 위해 보조금을 지원했다. 그렇게 하여 보호무역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국은 국제무역을 확대하기 위해 전쟁 전의 국제금융 메커니즘을 회복하는 등 자유무역 체제로의 복귀를 꾀했다. 영국은 자유무역 체제로 가장 큰 혜택을 누린 국가였기 때문이다. 영국은 1919년 실업자를 구조하고 파괴된 수출을 재건하기 위해 수출신용보증부(ECGD)를 설립했고, 1925년 5월 금본위제를 회복했다. 하지만 파운드화의 실질 가치는 10~20% 평가절하하여 수출 가격 경쟁력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 이와 같이 영국이 자유무역 체제로 복귀하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 전역에 들불처럼 번진 무역 전쟁으로 결국 영국도 경제적 민족주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수출을 재건하고, 수출시장을 유지하려면 금융의 공여가 필요했다. 특히 소련 시장의 위험이 커지면서 이에 대한 금융 공여가 필요했다. 영국에 이어 독일(1926), 이탈리아(1927), 프랑스(1928), 스페인(1928), 노르웨이(1929) 등 다른 유럽 국가도 무역 전쟁을 대비하는 수단으로 공적 수출신용기관을 설립했다. 국가 수출금융 지원 체제에서 유럽 국가는 대부분 단기의 보험ㆍ보증으로 금융을 제공했다. 장기 대출을 지원하는 경우에는 보조금이 포함된 우대금리를 적용하여 지원했다.

일본도 1930년 수출 보험을 도입했고, 1950년에 일본수출은행(이후 일본수출입은행으로 개명)을 설립했다. 미국도 공적 보조금을 받지 못하고 있던 자국 기업이 소련 시장에 대한 수출 경쟁에서 불리해지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수출입은행을 1934년 2월에 설립했다. 처음부터 유럽 국가들은 자국 기업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공적 보조금 금융으로 지원하면서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졌다. 미국은 다른 국가와 달리 초기 30년간 보험과 보증은 도입하지 않고 직접 대출만 취급했다.

한편 한국은 1968년 제2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의 조기 달성을 위해 일본수출입은행법을 토대로 1969년 7월 28일 한국수출입은행법을, 일본의 수출신용보험법을 토대로 1968년 12월 31일 수출보험법을 제정했다. 이후 1976년 외환은행의 대행체제에서 인수받아 한국수출입은행이 설립되었고, 1992년 한국수출입은행 위탁 업무에서 분리되어 한국수출보험공사(현 한국무역보험공사)가 설립되었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공적 수출신용기관이 어떤 기관인지 알아보자. 공적 수출신용은 자국의 수출 촉진을 위해 재정 자금을 재원으로 상업금융의 한계를 보완하는 데 제공되는 대출ㆍ보증ㆍ보험이다. 이를 취급하는 기관을 공적 수출신용기관(또는 수출신용기관)이라고 한다. 전통적인 역할은 자국산 재화와 용역의 수출을 촉진하고 지원하는 데 있으며, 전쟁, 몰수, 국유화 등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 수출자가 입게 될 손실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 부문이 대출ㆍ보증ㆍ보험의 형태로 지원하고 있다.

또한 수출신용기관은 외국과 연대하여 자국의 경제 발전에 필요한 해외 원자재의 개발과 신시장의 개척을 지원하고, 우방을 지원하고 적대국을 응징하며 신상품과 전략 산업의 생산과 개발을 지원하며, 가난한 국가의 경제 발전을 증진하고 외국인 직접투자를 장려하고 외국 기업으로부터 물품을 수입할 수 있는 역량을 높이도록 노력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국내 고용을 창출하며 매출과 수익을 증대하고 수출 확대를 통한 국가의 조세 수입 기반을 넓히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정리해보자. 양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유럽은 세계 은행가로서의 지위를 상실했고 미국이 그 지위를 이어받아 팍스아메리카 시대가 도래 했다. 전후 도입된 브레턴우즈 체제로 자본의 이동이 통제되었지만 공적 수출신용을 통해서는 자본의 이동이 가능했다. 자국의 수출 증진을 위해 국가는 공적 보조금 금융을 활발히 지원했다. 미국은 이 공적 수출신용 분야에서도 국제적 규범과 질서를 마련하는 데 앞장섰다. 보조금 요소를 감축하기 위해 오랫동안 협상이 진행되었고 마침내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최근 미-중 무역 갈등과 함께 자국 산업 보호주의 움직임이 재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2018~2020년에 걸쳐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고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했으며, 중국산 통신장비 수입 금지, 중국 기업에 대한 반도체 부품 수출 금지, 미국 공무원 연금의 중국 투자 금지를 시행했다. 특히 2020년 5월 19일에는 나스닥 상장 요건을 강화해 미국 시장에서 중국 기업의 자금 조달을 어렵게 했다. 중국은 이에 맞서 미국산 농산물에 대해 수입 제한을 언급했다. 일본은 위안부 배상 관련 외교ㆍ정치적 문제에 반도체 가공에 필수적인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등 일본산 부품을 한국에 수출 금지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지는 무역장벽들이다.

자유무역이 활발했던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글로벌 금융을 주도했던 개인은행가, 자금 수요 확대에 부응하기 위해 국가가 인가한 주식회사 형태의 은행, 그리고 20세기 상반기에 국가가 직간접 참여하고 있는 수출신용기관으로 이어지는 금융 주인공이 21세기에는 어떻게 이어질지 알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한국은 수출 주도 경제이다. 2019년 기준으로 대외 의존도는 64%이고 수출 의존도는 33%이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수출 증가는 장기적으로 고도화가 높은 상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한국은 수출시장에서 고도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즉 2015년 이후 한국의 수출의 감소와 정체는 수출 고도화 부족에 따른 글로벌 경쟁력 약화에 기인한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해답을 찾기 위해 먼저 선진국은 어떻게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는지 문화적인 측면을 살펴보자.

문화로부터 배운다: 독일은 기업의 90% 이상이 기업 오너와 그의 일가가 경영을 맡고 있는 가족기업이다. 성공한 가족기업의 비결은 오랜 시간에 걸쳐 남들이 엿볼 수 없는 기술을 축적한 데 있다. 가족기업은 가족과 기업이 운명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경영자는 단기적인 수치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 의사 결정을 할 때는 우선적으로 그 결정으로 자녀 또는 후임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심사숙고한다.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여러 세대를 염두에 두고 의사 결정을 한다. 여기서 기업이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것은 독일의 은행 체계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은행 체계는 민간은행, 지방은행 스파르카세(Sparkasse), 신용조합 등 세 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은행이 장기적인 기업 전략에 따라 장기의 대출을 지원해 주고 있다. 특히 기업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컨설팅 서비스를 은행이 제공해 준다. 또한 독일 특유의 기업 승계 관련 회사법이나 판례를 통해 사회가 전반적으로 기업 승계를 인정하고 있는 것도 영향이 크다. 자동 승계보다는 경영 능력에 대한 가족 의견 수렴 절차 같은 인물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있기에 계속 기업으로서 장수했던 것이다. 아울러 임금이 수년 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면 매우 낮은 수준의 상속세를 부과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상속세를 면제하도록 규정한 것도 한 요인이다.

독일 기업이 은행으로부터 장기 자금이나 컨설팅을 받을 수 있는 배경에는 매우 발달된 관계금융이 있기 때문이다. 독일에는 2개의 이사회(집행이사회 및 감사이사회)가 있는데 유관 은행의 현직 임원이 감사이사회의 이사로 참여하여 해당 기업에 대한 경영 정보를 자세히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어려움이 발생했을 때에는 컨설팅을 해 주고 다른 기업들과의 경쟁관계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기업 승계가 보장되는 여건을 바탕으로 한 후세를 위한 장기 계획, 이를 함께 뒷받침하는 은행의 협업 문화가 기술 강국 독일의 비결이다. 여기에는 경영 정보의 투명성, 즉 정직이 협업의 출발점이다.

미국 기업의 경쟁력은 자유 시장경제에서 비롯된다. 철저한 시장경제 논리에 따라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살아남는 환경이고, 경쟁에서 살아남는 기업에는 보상이 뒤따르기 때문에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다. 그래서 세계적인 기업들이 만들어지고 세계적인 대학에서 뛰어난 학술논문이 나오고 우수한 인재가 배출되어 기업의 경쟁력이 강화되었다. 외국에서 아메리칸드림을 좇아 인재와 인력이 미국으로 몰려들었고 이것이 선순환 구조가 되어 기업의 경쟁력이 향상되었다. 세계 최고의 뉴욕 자본시장은 수익성이나 미래 잠재력이 높은 기업을 찾아 투자함으로써 새로운 혁신에 대한 유인이 되었다. 유럽이나 일본과는 달리 은행이 주도하는 금융이 아니라 자본시장이 주도하는 금융이기 때문이다.

평평한 운동장을 만들자: 수출신용기관만 비교하면 한국의 수출신용기관은 다른 나라의 기관에 비해 상품과 제도를 더 다양하게 갖추고 있고 더 탄력적으로 운용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수출신용협약을 따르지 않는 상품에 대해 투명성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OECD와 미국 등의 회원국은 해외투자자금, 마켓윈도우(상업적 조건으로 차입해 상업적 조건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제도), 언타이드론 등이 수출신용협약의 조건을 따르지 않는다고 하여 향후 논의가 필요한 분야로 보고 있음}

수출신용기관은 지원조건을 수출신용협약이나 시장에 따라 결정하고 있다. 문제는 글로벌 금융 경쟁력이 낮은 한국이 금융 자문 및 사업 개발 등 민간 부문 영역을 선진국 수준으로 보완해야 평평한 운동장이 되고 대외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데 있다. 이언 길레스피 캐나다수출개발공사 사장이 언급했듯이, 글로벌 은행과 같은 파트너 은행이 없는 국가에서는 수출신용기관이 시장을 따라가지 않고 시장을 리드해야 한다. 즉 선진국 시장에 있으나 한국에 없는 부문이 보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 경쟁력을 높이려면 금융 경험, 사업 발굴 및 자문, 국제 법률 등 3대 부문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인재를 국내외에서 확보할 수 있는 여건이 필수적이다. 캐나다 수출신용기관은 인재 채용을 굳이 캐나다인만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서울을 뉴욕이나 런던 같은 국제금융 중심 도시로 발전시켜야 한다. 많은 해외 금융기관들이 런던에 집중하는 이유는 국제금융시장으로서 최적의 비즈니스 환경을 제공받기 때문이다. 비록 오랜 역사를 가진 런던을 따라가지는 못해도 서울이 최소한 싱가포르나 홍콩과 유사한 아시아의 금융센터로는 발돋움해야 한다. 그런데 법률과 교육 부문은 은행이 보완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참고로 싱가포르와 홍콩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대학이 있는 것은 국제금융센터와 무관하지 않다. 인천 송도에 녹색기후기금(GCF),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 등 국제기구를 유치했던 경험을 활용하고, 국제기구와의 시너지 창출을 위해서도 국제금융센터가 필요하다. 지구상 마지막 남은 투자처로서 북한이 언젠가 개방될 때 지정학적 우위를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서울을 국제금융센터로 발전시켜야 한다.

선진국 수출신용기관은 모두 국제금융센터나 수도에 있다. 이러한 선진국의 사례를 고려할 때 글로벌 금융을 전담하는 한국의 수출신용기관을 서울에 존속시키는 것이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유리하다. 금융기관들이 떠나게 되면 어쩌면 다시는 국제금융센터를 만들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수출신용기관들의 경쟁 상대는 선진국 유사 기관이거나 선진국 민간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다. 물론 항상 경쟁 관계는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협력관계도 될 수 있다. 하지만 상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전문지식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조직 운용에 자율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현재보다 좀 더 자율성이 부여되어야 한다. 그래야 평평한 운동장이 빨리 만들어질 수 있다.

스스로 노력하는 기업을 도와주자: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선진국 수준의 비가격 경쟁력이 높아야 하는데, 비가격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이다. 기술 수준은 기업이 가장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혼자 이룩하기는 어렵다. 고도 성장기를 지나 디지털 경제로 대변되는 신기술의 전환기에 접어들고 있는 사회에서 기업, 특히 중소ㆍ중견기업이 변신을 모색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은행은 장기 고객을 유지하는 측면에서도 역할을 찾아야 한다. 미래를 준비하는 기업이 있으면 함께 기다려 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은행에 이익이 된다면 그것이 시장의 원리이다.

상대가 있는 국제 비즈니스는 꾸준히 상대 입장에서 접근해야 사업 발굴과 같은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는데, 그렇게 하려면 전임자의 정책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문화가 있어야 된다. 처음 정책을 수립할 때 이해 당사자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한다면 사람이 바뀌어도 방향성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기업은 투명하고 정직해야 한다. 기업은 존경받아야 한다. 국가의 경쟁력은 바로 기업의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빵이 없어 사기꾼이 넘쳐나고 배임이 횡행했던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의 역사를 보면 중요한 것은 경제이고 기업이다. 글로벌 외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인들은 위대하다. 그래서 기업 비리에는 엄정 대응하더라도 좋은 기업과 나쁜 기업은 구분해야 한다.

글로벌 비즈니스를 디지털로 연결하자: “지금 한국의 산업은 ‘불타는 플랫폼’에 서 있다”는 진단이 있었다. 불타는 플랫폼은 노키아의 CEO였던 스티븐 엘롭이 사용해 유명해진 단어다. 해상 유전 플랫폼에 있던 한 노동자가 어느 날 폭발 소리를 듣고 깨어보니 플랫폼이 모두 불타고 있었다. 번지는 불에 타 죽든가 바다로 뛰어드는 선택만 있는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뛰어들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일반적으로 해오던 생각과 행동과는 다르게 판단하고 결단을 내려야 하는 위기에 선 시점이라는 의미다.

한국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도움을 주는 기관들도 마찬가지로 불타는 플랫폼에 서 있다. 수출신용기관은 선진국 빅 뱅크와 같은 디지털 기반 금융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수출신용기관은 외국의 수출신용기관과 민간 부문을 모두 고려하여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1980년대 해외 직접투자가 처음 확대되었던 시기에 기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국가별 해외투자정보와 다양한 자금을 제공했던 한국 수출신용기관의 선구적인 역할이 이후 상업은행의 해외 투자 사업 지원에 디딤돌이 되었다. 또 1979년 11월 외국인 앞으로 처음 8,100만 달러를 대출한 것을 시작으로 한국 수출신용기관들은 해외 프로젝트 파이낸스로 지원 영역을 확대했다. 이후 조기 상환제 도입, 신디케이션 참여 초대 등 많지는 않지만 수출신용기관의 다양한 방법이 민간 자본의 해외 사업 기회로 연결되었다. 하지만 디지털 금융은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는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은행은 디지털 영역을 책임지는 최고정보관리책임자(CIO)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으며, 도이체방크ㆍ캐피털원 등은 실리콘밸리에 핀테크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가 1년간 IT에 투자한 비용은 구글이 데이터센터에 투자한 비용에 육박할 정도이다. 독일, 캐나다 등 일부 국가의 수출신용기관은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하여 신용보험이나 수출보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대부분 국가의 수출신용기관은 아날로그 방식의 업무를 유지하고 있다. 보증ㆍ보험의 상품은 은행이 자금 공여자가 되므로 고객 서비스의 차원에서는 민간 상업은행의 역량이 경쟁력이 된다. 따라서 선진국의 디지털 금융 역량이 한국을 앞서가고 있다.

디지털 금융이 언젠가는 해외에 적용될 것이다. 해외 프로젝트 파이낸스 거래에 대해 시장이 수출신용기관들의 참여를 원했던 1998년처럼 디지털 금융도 시장의 요구로 도입해야 될지 모르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프로젝트 파이낸스 거래에서 시장이 요구하기 전에 이미 시장과 호흡하고 있었던 리딩 수출신용기관들이 있었던 것처럼, 이 분야에도 선도적인 수출신용기관이 있을 것이다. 한국도 해외시장 정보에 밝은 수출신용기관들이 기업의 해외 진출을 디지털 금융과 플랫폼 방식으로 제공해 수요자를 만족시킬 수 있다. 혼자 힘들면 국내 금융사, ICT, 포털 인터넷 기업 등과 머리를 맞대고 길을 찾아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민간 은행도 이제는 해외 영업망을 많이 확충하였기 때문에 상호 도움을 줄 수 있다. 공급자 중심의 글로벌 밸류체인을 넘어서 해외 수요자에게도 매력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여 한국 수출신용기관, 아니 민관이 진정한 글로벌 강자가 되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본 도서요약본은 원본 도서의 주요 내용을 5% 정도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원본 도서에는 나머지 95%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보다 많은 정보와 내용은 원본 도서를 참조하시기 바라며, 본 도서요약본이 좋은 책을 고르는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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