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모듈레이션

더봄 / 2021년 1월 / 310쪽 / 18,000원

브랜드 모듈레이션

브랜드 모듈레이션

신승학 지음

저자 소개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저술한 미래학자이자 27년 넘게 경제와 금융, 산업 현장을 발로 뛰고 있는 언론인이다. 현재 명품방송 MBN 보도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경희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학교에서 MBA를 취득했다.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미래경영 전략학 박사, 경희대학교 관광학(컨벤션) 박사 학위를 받은 박사(Ph.D.) 2관왕이다. 언론인으로서의 공적을 인정받아 두 번의 대통령 표창, 최우수 박사 논문상, 최우수 지식경영 논문상, 시티 대한민국 언론인상, 올해의 방송인상(2016) 등을 받기도 했다. 누구보다 전 세계의 변화를 발 빠르게 감지해 국가적 화두를 제시해온 저자는 아시아 최대 글로벌 비즈니스 포럼인 ‘세계지식포럼’, 대한민국 2030들에게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는 ‘MBN Y 포럼’을 수년간 이끌며 대한민국에 전 세계 트렌드를 가장 먼저 전달하는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한국 언론인 최초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2008년 12월에 열린 ‘클린턴 글로벌 이니셔티브’ 아시아 총회에서 사회를 보기도 했다.

책소개

서울대학교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한 뒤 웹 2.0의 시작을 알린 윙버스, 소셜커머스의 시초인 데일리픽, SNS 글로벌 미디어 그룹인 봉봉 등 다양한 스타트업의 공동투자자로 참여했다. 이 중 윙버스와 데일리픽은 각각 네이버와 티켓몬스터로 M&A되었고, 티켓몬스터에서는 144명의 크리에이티브 보직과 모바일 플랫폼을 총괄하여 소셜커머스를 모바일 플랫폼으로 이식시키는 일을 맡았다. 현재는 ‘신이 나를 만들 때’ 컨텐츠로 잘 알려진, 전 세계 월 2억 명의 방문자를 만들어낸 봉봉의 디자인최고책임자(CDO)로 참여 중이면서, 다양한 스타트업의 브랜드 컨설팅과 대학 강의, 강연활동 등을 이어가고 있다.

요약본 본문

들어가는 말 - 모듈레이션(Modulation): 조율하여 증폭시키다

종이 한 장을 들어 앞으로 던져보자. 종이는 중력과 공기 저항을 받아 몇 번 휘날리다가 곧바로 앞에 떨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종이로 멋진 비행기를 접어 바람을 타게 만들면 어떨까. 던지는 힘에 바람의 힘까지 더해지며 종이는 더더욱 먼 곳까지 날아갈 것이다. 바람만 멈추지 않고 계속 불어줄 경우 어쩌면 종이는 무한대로 비행할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종이의 이동 거리를 늘리듯, 특정 개체에 에너지를 더해서 전달 거리를 증폭시키는 행위를 모듈레이션이라고 부른다.

모듈레이션은 신호나 정보가 보다 멀리 확산되는 환경을 조율하는 행위로서 오늘날 라디오, 무선통신 등에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는 기술이다. 우리가 실생활에서 청취 가능한 음성 신호는 보통 20Hz에서 20kHz 내외의 짧은 거리 대역폭을 가지고 있는데, 신호의 진폭과 주파수를 변조시키고, 높은 안테나를 세우는 등의 모듈레이션 과정을 거치면 아주 먼 곳까지 음성 신호를 보낼 수 있게 된다.

브랜드가 전파되는 과정에서도 이런 모듈레이션 현상을 찾아볼 수 있다. 아무리 좋은 내공을 가진 브랜드라 해도 본연의 에너지만으로는 대규모 외부 확산을 기대하기 힘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보조하기 위해 마케팅이라는 활동이 수반되지만, 브랜드가 실생활에 파고들어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파급력을 마케팅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단순히 좋은 마케팅과 좋은 브랜드가 스스로 가공해낸 현상이 아닌 브랜드가 탄생한 시점의 시대상, 이를 관통했던 사회, 정치적인 현상들이 복합적으로 모듈레이션을 일으킬 때 브랜드 본연의 잠재력을 넘어 거대한 시장의 파급력을 보인 경우가 많다.

예로 세계 대전을 통해 유럽이 초토화되며 포드, GM 등 다분히 ‘미국적인 브랜드’들이 대량으로 등장했던 시대나, 달러를 기축통화로 한 국가 간의 무역이 전 세계를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으며 ‘글로벌 브랜드’들의 탄생을 불러왔던 것 등이 그렇다. 또 1970년대 이후 미국 제조업이 몰락하면서 일본과 독일 그리고 중국 등 ‘제3국 브랜드’들이 전 세계를 휩쓸었던 사례, IT 기술 혁신과 함께 구글, 페이스북 등 새로운 형태의 브랜드들이 시대를 거듭하며 등장한 케이스도 이러한 맥락을 뒷받침한다. 모듈레이션이 동작한 브랜드들은 항상 다양한 사회, 경제적 현상의 연속된 상호작용 속에서 나타났다.

개척자들의 브랜드

생산성 증가가 브랜드를 모듈레이션하다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시작되었지만, 본격적인 규모의 경제를 달성한 것은 미국의 포드였다. 포드는 자동차 산업을 통해 최초로 대량 생산이라는 개념을 실현해냈고, 이를 산업계 전반으로 전파시켰다. 인류는 이 시점부터 풍족한 내구재 공급을 경험하게 되었으며, 할부 제도라는 소비촉진 방안을 만들어 기업의 생산을 뒷받침했다. 이후 GM이 대량 생산 시스템 내의 상품성 다변화에 성공하면서, 대량 생산과 소비가 균형을 이루는 최고의 호황기가 펼쳐지지만, 1920년대 후반에 시작된 대공황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게 된다. 대공황 발생 후 3년 동안 미국 시장의 소비 중 40%가 사라졌고, 창고에는 악성 재고가 쌓여갔다. 기업들은 판매를 위해 더욱 치열한 경쟁에 내몰렸는데, 이 같은 과정에서 현대적인 브랜드의 개념이 나타난다. 소비자 중심으로 변해버린 시장은 대량 생산 시스템의 구축에만 기대던 대다수의 기업에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이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던 기업에는 둘도 없는 성장의 기회이기도 했다. P&G는 소비자와의 밀접한 관계 형성을 전제로 한 브랜드 충성도 구축에 성공했고, 듀폰과 같은 기업들은 막강한 자본력을 이용해 세상을 바꿔놓을 만한 브랜드들을 선보였다.

현대적인 브랜드는 이렇게 그 시작점을 찾아들어 갈 경우 인류의 총생산량 증폭의 과정과 맞물리며, 소비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현되었다. 브랜드는 생산과 소비의 연결 관계를 꿰뚫어 본 기업들이 만들어낸 일종의 근대화된 판매전략 중 하나였지만, 동시에 급격한 생산성 증가가 모듈레이션해낸 결과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포드와 GM, P&G와 듀폰 등은 브랜드를 개척한 1세대 기업이라고 부를 만하다. 몇몇 사례를 보다 자세히 살펴보자.

대량 생산이 모듈레이션을 일으키다

현대적인 브랜드를 유발시킨 최초의 근대화된 대량 생산 시스템은 미국 자동차 산업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1903년 포드 자동차를 창업한 헨리 포드는 1908년 극도로 간소화된 생산 공정과 단일한 옵션으로 850달러짜리 모델 T를 내놓는 데 성공한다. 모델 T는 경쟁사 대비 약 1200달러 이상 저렴했음에도 포드는 이에 만족하지 않았고, 더욱 낮은 가격의 자동차를 만들기 위한 생산 공정 개선을 이어갔다. 이때 탄생한 것이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인데, 이 시스템은 자동으로 돌아가는 생산라인에서 작업자가 같은 일만 반복하면 되는 공정으로서 차량 1대의 조립 시간을 88% 이상 줄일 수 있었다.

모델 T 생산량은 1912년 6만 대의 규모에서 1914년 20만 3천여 대로 늘어났다. 이렇게 대량 생산으로 인해 규모의 경제가 만들어지자 가격 역시 빠르게 하락했는데, 1920년 이후 모델 T의 가격은 대다수 미국 급여생활자들의 구매력을 충족시키는 300달러 선으로 떨어졌다. 포드의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은 자동차를 대량 생산하기 위한 방편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산업화가 한창이던 전 세계 제조업에 대량 생산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했고, 이때부터 인류는 공산품의 풍족한 공급을 경험하기 시작한다.

P&G가 최초로 현대적인 브랜드를 말하다

대공황을 탈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식의 시장 접근이 필요했다. 극도의 침체기 속에서 소비를 담보로 한 대량 생산 유지는 자멸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비자 중심의 시장 변화를 주시하고 있던 기업들은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들은 시장이 깊은 침체기에 들어가더라도 제품의 경쟁력만 소비자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다면, 오히려 후발주자들을 고사시켜 더욱 독보적인 점유율 차지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이때부터 브랜드는 단순히 상품을 구분 짓는 물리적인 속성을 넘어, 소비자와의 무형의 관계 속에서 호감과 신뢰를 쌓아가는 현대적인 개념에 좀 더 가까워진다.

이런 시각을 경영 일선에 가장 먼저 반영한 기업은 P&G다. 미국의 생필품 제조사인 P&G는 고품질 세탁비누 옥시돌 출시 2년 만에 대공황을 겪게 되는데, 신제품 홍보를 위한 기존의 대규모 마케팅이 더 이상 동작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제품을 알릴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모색한다. 그중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것이 광고 에이전시와 함께 제작한 Ma Perkins라는 라디오 드라마였다. 1933년부터 미국 NBC를 통해 송출된 Ma Perkins는 여성과 주부층을 겨냥한 휴먼 드라마로, 주인공들이 극중 옥시돌을 언급하는 방식으로 제품을 노출했으며, 방송 앞뒤로 광고를 붙여 주요 청취자들이 옥시돌 브랜드에 익숙해지게끔 했다. 드라마의 회차가 증가할수록 청취자들은 옥시돌을 주인공들이 사용하는 우수한 품질의 비누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브랜드에 대한 막연한 호감이 형성되면서 매출 역시 빠르게 늘어났다.

물론 옥시돌의 품질이 뛰어났던 것도 큰 역할을 했지만, 소비자와의 관계 형성에 투자한 꾸준함이 점차 효과를 나타낸 것만은 분명했다. 이런 P&G의 전략은 소비자들이 경쟁사의 제품보다 P&G의 제품에 충성도를 갖게 하는 효과를 만들어냈으며, 실물경제의 어려움 속에서도 P&G가 50%에 가까운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는 원인이 된다. 이후 P&G는 브랜드를 하나의 무형 자산으로 간주하여, 소비자를 겨냥한 브랜드 평판과 신뢰에 주목하기 시작했으며, 이를 통해 더 이상 생산자가 우위에 설 수 없는, 소비자 중심으로 변해버린 대공황이라는 침체기를 버텨낼 수 있었다. 대공황이 P&G에게는 커다란 브랜드 모듈레이션의 장으로 작용했던 셈이었다.

대규모 자본이 새로운 브랜드를 창조하다

대공황을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했던 또 다른 사례는 미국 시장의 엄청난 호황 속에 축적된 막대한 자금력이 만들어낸 대규모 연구개발(R&D)을 꼽을 수 있다. 여기에 1920년대 황금기를 이끌었다는 자신감이 융합되며, 공격적인 투자로 대공황을 정면 돌파하려는 기조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최첨단 화학 산업이 있었다. 화학 산업은 원래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기업들이 주도해왔으나, 1차 대전 후 주 무대가 미국으로 옮겨지며, 엄청난 자본력을 가진 미국 기업들을 끌어들였다. 이 중에서 브랜드의 관점으로 바라볼 만한 가치가 있는 기업은 바로 듀폰이다.

듀폰은 1928년부터 미국 기업 최초로 내부에 연구개발 전문 부서인 중앙연구소를 설치하는 방식으로 화학 산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후로 7년 간 무려 2700만 달러가 투자되었으며,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탄생한 것이 20세기 최대의 발명품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나일론 섬유이다. 이후 1940년 나일론 원료로 제작된 스타킹이 판매를 시작했을 때, 초기 물량 400만 켤레를 사흘 만에 매진시켰고, 다음 해까지 듀폰은 3400만 달러의 매출을 거둬들일 수 있었다. 이는 듀폰의 7년 동안의 연구개발비를 능가하는 금액이었다. 듀폰의 공격적인 투자가 드디어 거대한 성과로 나타난 것이다.

듀폰의 나일론 발명은 단순히 하나의 신소재가 세상에 등장한 것 이상의 의미였고, 막대한 자금력을 통해 혁신적인 브랜드를 창출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현이기도 했다. 이때부터 미국 시장은 혁신적인 제품이 창출해내는 엄청난 부가가치를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연구개발을 중심으로 한 수많은 브랜드를 배출하기에 이른다. 이후 시대의 패러다임을 주도하게 될 컴퓨터, 전자 산업 그리고 인터넷 및 모바일 등 세상을 바꾸는 첨단 브랜드들은 언제나 미국 시장에서 먼저 나타났다.

글로벌 브랜드 시대

달러가 주도하는 글로벌 브랜드 시대가 펼쳐지다

20세기 초 미국의 뛰어난 기업들이 대량 생산과 대중 소비를 통해 브랜드의 개념을 개척했다면, 2차 대전은 이런 브랜드들을 전 세계로 퍼트리는 역할을 했다. 전쟁 중 엄청난 양의 스팸과 코카콜라 같은 미국산 브랜드들이 뿌려졌고, 산업 기반을 잃게 된 많은 국가들을 미국산 브랜드의 영향력 아래 노출시켰다. 이후 미국이 브레튼 우즈 체제와 가트를 통해 달러 중심의 자유무역 기조를 정착시키면서 이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글로벌 브랜드의 시대가 펼쳐진다.

글로벌 브랜드 시대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국경에 관계없이 글로벌화된 브랜드를 능동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할리우드를 통해 문화적 헤게모니까지 장악했던 미국 브랜드가 가장 유리했고, 실제 글로벌 브랜드 시대는 다각적인 세계화라기보다 미국화에 좀 더 가깝게 진행되어갔다. 이런 현상을 종종 미국화(Americanization)라고 설명하기도 하는데, 미국화는 자본주의 진영의 국가들을 중심으로 전 세계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많은 면에서 미국과 같은 양상으로 변해가는 현상을 지칭한다.

게다가 공산 진영과의 이데올로기 대결은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더욱 강하게 확장시켰으며, 주도권을 쥐었다고 판단한 미국 기업들은 효율과 합리성으로 대변되는 미국식 라이프스타일을 전 세계에 주입시켰다. 당시 수용자적 입장의 국가들은 이를 선진화된 브랜드 경험으로 받아들였고, 이 과정에서 글로벌 브랜드 시대는 미국스러움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양상으로 굳어지게 된다. 코카콜라 사례를 살펴보자.

코카콜라가 미국을 상징하다

스팸만큼 전쟁에 필수적인 자원은 아니었지만, 미군이 진입한 곳이면 어디든 보급되어 미국적 이미지를 강력하게 각인시킨 브랜드가 있다. 전쟁 중 무려 50억 병 이상이 뿌려진 코카콜라였다. 사실 코카콜라는 1930년대 말까지 캐나다와 남미 일부 국가들을 제외하면 거의 국제적인 영향력을 나타내지 못했는데, 2차 대전은 이런 코카콜라를 단숨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브랜드로 만들어 놓았다.

코카콜라는 1886년 약사 존 펨버턴이 여러 약재를 혼합해 만든 강장제에 가까운 약품이었다. 이를 약재상이자 사업가인 아사 캔들러가 1898년부터 사업권을 사들여 청량음료로 변화시켰고, 1919년 우드러프 가문에 인수된 뒤에는 미국 최대 음료 제조 회사로 성장했다. 이런 코카콜라는 1차 대전 중 경영상의 큰 위기를 겪게 되는데, 미국 정부가 설탕을 전쟁 자원으로 분류해 공급을 제한한 탓이었다. 때문에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코카콜라 경영진은 필사적으로 대정부 로비에 뛰어들어 코카콜라를 전시 우선 품목으로 인정받는 데 성공한다. 청량음료가 군인들의 사기 진작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가 통했던 것이다. 또한 연합군 총사령관 아이젠하워와 군 고위층이 코카콜라를 전쟁터로 직접 주문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코카콜라는 2차 대전 중에도 공장의 가동을 멈추지 않고 생산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병에 담긴 코카콜라를 전쟁터로 수송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수송선의 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군은 코카콜라를 현지에서 직접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1944년부터 세계 각지의 총 59곳에 코카콜라 보틀링 공장이 설치되었고, 이를 통해 무려 50억 병의 코카콜라가 전 세계로 뿌려졌다. 이는 당시 그 어떤 공산품보다도 많은 생산량이었는데, 물자 부족에 시달리던 많은 이들에게 미국의 패권과 자본주의의 위력을 각인시키는 역할을 했다.

코카콜라의 해외 진출은 무임승차나 다름없는 특혜였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생산 공장은 그대로 남아 코카콜라의 해외 진출기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코카콜라에게 길들여진 사람들이 계속해서 코카콜라를 찾았기에 코카콜라의 판매량은 지속적으로 늘어날 수 있었다. 이렇게 2차 대전은 미국의 압도적인 산업 생산력을 바탕으로 코카콜라, 스팸과 같은 미국산 제품들을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시켰다.

제3국 브랜드들의 등장

미국 제조업이 붕괴하고 그 자리를 일본과 유럽 브랜드들이 파고들다

브레튼 우즈 체제는 달러를 기축통화로 인정하는 자유무역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금본위제에서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했던 한계 때문에 미국은 만성적인 무역적자에 시달려야 했고, 고평가된 달러는 미국 브랜드들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졌다. 여기에 2차 대전의 피해를 극복해낸 일본과 서유럽 브랜드들이 시장에 진입하면서부터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브랜드 시대는 막을 내린다. 일본 자동차 브랜드들은 엄청난 효용성으로 미국 소형차 시장을 장악했고,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일본의 전자제품 브랜드들도 미국 기업들을 차례로 쓰러트렸다. 동시에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성장한 유럽의 브랜드들 역시 전 세계 시장에서 미국 브랜드를 위협했다.

결국 미국 경제는 침체의 터널로 빠져들어 갔으며, 빠르게 유출된 미국의 금 보유량은 달러에 대한 금태환마저 정지시켰다. 30년 가까이 이어온 브레튼 우즈 체제가 닉슨 쇼크로 인해 해체되면서, 이런 화폐 시장의 위기는 현물시장으로 옮겨가 두 번의 오일 쇼크를 초래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 폴 볼커는 20%의 높은 금리로 위기를 탈피하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수익률이 악화된 미국 제조업 브랜드들을 연쇄적으로 무너트리는 결과를 낳았다. 이렇게 브랜드 개척의 시대로부터 이어져온 미국 브랜드들의 위상은 점차 무너졌고, 그 자리를 급격히 성장한 일본과 서유럽 브랜드들이 차지하게 된다. 일본의 전자제품 사례를 살펴보자.

일본 브랜드가 세계 최고를 넘보다

미국 제조업의 몰락 속에 1980년대 초반이 되면 전 세계 10대 전자제품 브랜드 중 6개가 일본 기업으로 채워진다. 이런 일본 브랜드의 급격한 부상은 1960년대에 대규모로 진행된 OEM 수주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기술적 진보를 위한 일본 기업들의 집요한 노력을 무시할 수 없다. 일본 기업들은 OEM 생산 과정 속에 선진 기술을 적극적으로 내재화했고, 기회가 될 때마다 미국 기업들의 특허와 기술 권리를 꾸준히 사들였다. 게다가 미국 전자업계가 소련과의 냉전에만 집중한 나머지 첨단 군사기술, 우주과학 등을 제외한 민간 부문의 기술 유출에는 보수적이지 않았던 관계로, 일본 기업들은 견제 없이 미국 기업들의 상용화된 기술을 응용해 놀라운 기술 발전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런 일본 제조업의 성장기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브랜드는 바로 워크맨을 개발한 소니이다.

소니는 1945년 와세다 공대 출신의 이부카 마사루와 오사카 제국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모리타 아키오가 도쿄의 니홍바시 백화점 내에 라디오 수리점을 차리면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미군에서 흘러나온 각종 전자제품들을 통해 미국의 선진기술을 익혔고, 전기밥솥, 전기방석, 레코드 픽업, 진공판 등을 만들어 판매했다. 이후 도쿄통신공업주식회사(도츠코)라는 법인을 만들어 방송사 NHK에 다양한 방송장비 등을 납품하면서 회사 규모를 키웠으며, 1950년부터는 진공관 기술이 사용된 마그네틱테이프 레코더인 G-Type 등의 개발에 성공해 본격적인 전자제품 제조업체로서의 면모를 갖춰냈다.

이런 소니가 본격적인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1952년 미국의 웨스턴 일렉트릭으로부터 트랜지스터 특허 사용권을 2만 5000달러에 사들이는 모험을 단행하면서부터이다. 소니는 특허 사용권 자체를 인수했고, 약 2년여의 시행착오 끝에 드디어 1955년 최소형 트랜지스터 라디오 TR-52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 비록 미국의 리전시(Regency)사가 한 달 먼저 트랜지스터 라디오 TR-1을 발표한 관계로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는 놓쳤지만, 소니의 기술력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다.

트랜지스터 기술력에 자신감이 붙은 소니는 영상 분야에도 뛰어들어, 1959년 최초의 8인치짜리 휴대용 트랜지스터 TV인 TV8-301를 개발했고, 1962년에는 더 작은 5인치짜리 TV(TV5-303)를 선보였다. 1967년에는 기존 컬러 TV보다 압도적으로 밝고 선명한 트리니트론 브라운관 기술을 양산해내면서 트랜지스터 이외의 분야에서도 기술력을 자랑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술의 소니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만든 것은 1979년 발매된 워크맨이었다.

당시 기술 수준으로 보면 공간의 제약 없이 어디서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혁신에 가까웠다. 게다가 워크맨은 최초로 음악을 개인화한 기기였으며, 전자제품이 가족이나 구성원들 간의 공유물이 아닌 개인소유가 되는 경험을 처음으로 전달한 제품이기도 했다. 워크맨은 출시 2개월 만에 초도 물량 3만 대가 모두 매진되는 등 여러 차례 증산을 단행했음에도 수요를 맞추기 어려울 정도로 팔려나갔다. 심지어 너무 유명해진 탓에 영어 문법이 맞지 않는 워크맨(Walkman)이라는 단어가 전 세계시장에서 휴대용 음악 재생기기의 대명사처럼 사용되어버릴 정도였다. 워크맨은 1995년까지 무려 1억 5000만 대가 생산되었으며, CD(Compact Disc)와 MD(Mini Disc) 등 새로운 미디어까지 감안하면 생산량은 4억 대를 넘겼을 것으로 예상된다. 워크맨의 성공은 미국 제조업의 몰락 속에 일본 브랜드가 전 세계 패권을 장악할 신호탄과도 같았다.

디지털 브랜드 시대

미국의 제로금리가 디지털 브랜드 시대를 더욱 가속화하다

제조업의 패러다임을 잃어버린 미국 시장은 폴 볼커의 고금리 정책을 노리고 모여든 대규모 자금을 활용해 훨씬 뛰어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IT 산업을 만들어냈다. 이후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야후를 비롯한 닷컴 기업들의 전성기가 펼쳐졌고, 이들이 제시한 장밋빛 전망은 주식 시장의 과열로 이어졌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닷컴 기업들에게는 수익모델이 분명하지 않다는 약점이 있었지만, 아마존과 이베이의 등장 이후 이런 우려마저도 종식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IT 산업과 닷컴 비즈니스를 본격적인 성장 동력으로 인식하는 디지털 브랜드의 시대가 나타난다.

하지만 닷컴 기업들에 대한 무분별한 투자 기조는 강력한 버블을 조성했고, 명확한 수익원을 제시하지 못한 닷컴 기업들을 하나둘 쓰러트렸다. 나스닥은 1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내려앉았으며, 그 다음해까지 무려 5조 달러를 시장에서 증발시켰다. 이때, 미 연준의 의장 그린스펀이 사상 초유의 저금리를 통해 위기 상황을 돌파하려 하는데, 이런 연준의 행보는 고위험군 투자에 대한 손실을 정부가 보전해 준다는 인식으로 연결되었고, 결국 미국 시장은 고수익을 얻을 수 있는 디지털 브랜드들에 대한 투자를 멈추지 않게 되었다. 이후 구글과 같은 걸출한 기업들의 등장이 이어지며, 디지털 브랜드의 시대는 우리의 삶에 더욱 많은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 인터넷 혁명 사례를 살펴보자.

인터넷 혁명이 시작되다

1969년 미국 국방부 산하의 고등연구계획국은 아르파넷이라는 네트워크를 완성하여 600km 떨어진 연구소들 사이의 통신에 성공한다. 군사 작전 중 위급한 상황이 벌어질 때 중요한 데이터를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기 위한 목적의 연구였다. 이것이 인터넷(Internet)의 시초가 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1989년 유럽입자물리연구소의 팀 버너스 리 박사가 월드 와이드 웹(WWW)이라는 표준 활용 가이드를 제시하면서 일반인들에게도 인터넷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때 월드 와이드 웹의 가능성을 인지한 미국 국립 슈퍼컴퓨터활용센터(NCSA)의 아르바이트생 마크 앤드리센이 1993년 웹 브라우저(Web Browser)인 모자이크(Mosaic)를 개발하여 한 달 평균 5만 다운로드를 일으키는 등 큰 주목을 받는다.

모자이크는 최초의 웹 브라우저는 아니었지만, 다른 프로그램들과 달리 이미지와 텍스트를 유기적으로 표현해내는 멀티미디어 구현 능력이 뛰어났고, 무엇보다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1994년 마크 앤드리센은 NCSA가 모자이크 개발에 대한 합당한 대우를 해주지 않자, NCSA를 떠나 독자적으로 모자이크 커뮤니케이션즈를 세우는데, 여기서 출시된 제품이 바로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Netscape Navigator)이다.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는 모자이크보다 한층 탁월한 멀티미디어 처리 성능과 함께 다양한 플러그인(Plug-in)을 설치할 수 있어서 출시하자마자 전 세계 웹 브라우저의 70%를 장악했다. 넷스케이프로 인해 전 세계 인터넷 사용자의 수가 약 1600만 명까지 늘어날 수 있었으며, 이때부터 인터넷을 활용한 비즈니스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었다. 웹 브라우저를 통해 인터넷이 대중화되자 무수히 많은 웹 사이트들이 나타났는데, 전 세계 웹사이트의 숫자는 1995년 2만 4000여 개로 늘어났으며, 사용자들은 점차 인터넷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정보를 찾아내는 데 어려움을 느꼈다.

이때 인터넷상의 유용한 정보들을 모아 사용하기 쉽게 분류해 주는 웹 디렉토리 사이트, 일명 웹 검색(Web Search Engine) 사이트들이 등장하는데, 닷컴 기업으로 상징되는 야후(yahoo.com)와 라이코스(lycos.com), 인포시크(infoseek.com), 익사이트(excite.com) 등이 그 주인공이었다. 1996년 3600만 명까지 폭증한 인터넷 사용자들은 주로 이런 닷컴 사이트들을 통해 인터넷을 브라우징했고, 이 네 사이트가 달성한 페이지뷰(Page View, PV)는 하루 평균 무려 2700만 건에 달했다.

제조업의 패러다임을 잃어버린 미국 경제는 이렇게 엄청난 성장성을 보인 신생 닷컴 기업들에게 열광할 수밖에 없었으며, 1996년 라이코스를 시작으로 야후와 익사이트, 인포시크 모두 나스닥 상장에 성공하게 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당시 8억 4800만 달러로 가장 높은 몸값을 기록한 야후의 경우 창업한 지 1년 남짓한 시점이었고, 직원 수는 49명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같은 놀라운 성과는 시장으로 하여금 닷컴 기업들을 제조업에 이은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받아들이게 했으며, 여기서부터 이전의 비즈니스 패러다임과 분명히 차별되는 디지털 브랜드의 시대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초창기 닷컴 기업들은 자신들의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면서 많은 사용자를 모은 뒤, 이를 기반으로 거대한 기업 가치를 평가받았다. 일단 많은 사용자를 확보하기만 하면 가까운 미래에 큰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반대로 해석하면, 당시 닷컴 기업들에게는 명확한 수익 모델이 없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런 틈을 파고들어 닷컴 기업이면서도 확실한 수익 모델을 제시하는 기업들이 나타나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아마존과 이베이였다. 아마존은 인터넷으로 할인된 책을 판매함으로써 매출을 올렸고, 이베이는 경매 방식의 전자상거래를 통해 수수료를 챙겼다.

지금은 인터넷 전자상거래가 일상적인 비즈니스 형태이지만, 아마존과 이베이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엄청난 혁신으로 비쳐졌다. 이들이 제시한 명확한 수익 모델은 닷컴 비즈니스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들을 종식시켰고, 미국 시장을 더욱 깊숙이 디지털 브랜드들의 매력 속에 빠트리는 역할을 했다.

잠재력을 인정받은 디지털 브랜드들은 인터넷상에만 머무르지 않고, 점차 일상의 많은 부분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특히 이메일(Email)과 인스턴트 메신저(Instant Messenger)의 등장은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1996년 이스라엘의 미라빌리스사가 만든 ICQ는 출시 1년 반 동안 무려 120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했고, 다자간 채팅이나 친구 초대, 파일전송 등과 같은 기본 개념을 정립해 미국 시장에 인스턴트 메신저 붐을 일으킨다. 1999년 미국 최대 통신 사업자인 AOL은 2억 8700만 달러에 ICQ를 인수했으며, 이후 마이크로소프트와 야후마저 가세한 미국 인스턴트 메신저 시장은 4400만 명의 가입자 수를 넘어설 정도로 거대한 규모를 보인다.

초연결 브랜드 시대

엄청난 유동성 공급은 디지털 브랜드 시대가 고도화된 초연결 브랜드 시대를 모듈레이션했다

디지털 브랜드의 정점을 구가했던 닷컴 열풍 뒤에 불어 닥친 서브프라임 사태는 전 세계 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가했지만, 이를 계기로 양적완화라는 전무후무한 유동성이 공급되며, 디지털 브랜드 시대는 더욱 고도화의 길로 접어든다. 특히 3G 통신 기술의 발달과 맞물린 애플의 스마트폰 출시는 인터넷 기반의 디지털 브랜드들을 모바일 패러다임으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했고, 이는 곧바로 모바일 플랫폼에 특화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등장으로 이루어졌다. 이후 속도가 더욱 빨라진 4G 기술은 네트워크 접속의 공간적인 제약을 무너뜨리면서,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플랫폼들을 급속도로 성장시켰으며, 이때부터 더 많은 용량의 데이터가 사용자와 플랫폼 사이에 실시간으로 오고 가는 초연결 브랜드 시대의 기반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이와 함께 사용자와 플랫폼 간의 연결성은 일상적인 소비 수요에서도 시간적, 공간적 거리감을 완벽히 제거한 공유경제의 성장 동력을 만들어냈고, 규모 면에서도 놀라운 성장을 나타냈다. 이제 플랫폼이 확보해낸 엄청난 양의 데이터는 데이터 그 자체가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AI 기술을 거쳐, 인간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는 자율주행 기술까지 진화한 상태이다.

이미 거시적인 측면에서 브랜드 패러다임은 생산자가 브랜드 가치를 주입하는 단계를 지나, 그 어느 때보다도 사용자와의 유기적인 소통을 가능케 하는 시점에 도달해 있다. 앞으로 네트워크 연결에 대한 비용이 감소하고, 연결 속도가 증가할수록 초연결 시대의 패러다임에 올라탄 브랜드들은 새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는 많은 기회의 장을 부여받을 가능성이 크다. 벌써부터 대중화가 시작된 차세대 5G 통신과 수많은 재화들이 네트워크에 연결되는 IoT 기술 등은 이런 현상을 가속화 시키고 있으며, 2020년 전 세계 코로나(COVID-19) 대확산을 이유로 또다시 쏟아지기 시작한 엄청난 유동성 역시 초연결 브랜드 시대를 한층 더 심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고속 무선 데이터통신에 대해 살펴보자.

고속 무선 데이터통신이 사용자와 플랫폼을 더욱 긴밀히 연결하다

모바일이 만들어낸 급격한 브랜드 패러다임의 변화는 4G 통신 기술을 통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4G 통신 기술은 2012년부터 미국을 비롯한 일본과 대한민국 등 전 세계 주요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상용화되었으며, 2017년까지 전 세계 무선 데이터망의 72% 수준인 약 28억 명을 커버할 수 있을 정도로 확산되었다. 이와 함께 고속화된 무선 데이터통신은 곧바로 대용량 데이터가 오고 가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의 성장으로 이어져, 전 세계 모바일 네트워크의 사용량을 급격히 증대시키기 시작한다. 동영상 플랫폼의 대표주자인 유튜브는 2017년 4G 네트워크 커버리지가 가장 앞선 대한민국에서 모바일 앱 사용자 체류시간 1위로 올라섰다. 같은 해 미국 주문형 동영상(VOD) 서비스의 75%를 장악하던 넷플릭스도 미국 시장에서 발생한 전체 모바일 앱 스토어 매출의 독보적인 1위를 달렸다.

늘어난 모바일 사용량은 플랫폼에 더욱 폭발적인 사용자 데이터를 제공하여, 이전 시대보다 훨씬 정밀하고 강력한 개인화 알고리즘을 탄생시켰으며, 2019년 유튜브 사용자들의 동영상 시청 시간 중 약 70% 이상이 이러한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발생하도록 만들었다. 4G 통신기술은 이렇게 모바일 디바이스 안으로 사용자를 더욱 강력하게 끌어들이면서, 사용자와 플랫폼 간의 연결성을 더욱 극대화했다.

사용자와 모바일 플랫폼 간의 공고한 연결성은 모바일 네트워크상에 존재하는 서비스뿐만 아니라, 일상 소비 수요에서도 시간적, 공간적 거리감을 제거해가기 시작한다. 사용자를 효과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된 플랫폼들이 모바일 네트워크상에서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공급 단계를 줄여내며 대안적 소비를 제시하게 된 것이다. 이를 공유경제라고 불렀는데, 오프라인의 잉여자원을 실시간으로 필요한 사용자에게 재분배하는 비즈니스 모델로서 모바일 플랫폼의 성공에 고무되어온 미국 시장의 큰 주목을 받는다. 대표적으로 자신의 차량을 공유하는 우버와 남는 방을 임대해 주는 에어비앤비가 있었고, 사무실을 타인과 함께 쓰는 개념으로 시작한 위워크 역시 같은 맥락의 공유경제 모델로 인기를 끌었다. 이렇게 고속화된 무선 네트워크 통신은 사용자와 플랫폼을 더욱 밀접하게 연결하면서 초연결 브랜드 시대를 더욱 증폭시켰고, 공유경제를 통해 그 영향력을 더욱 규모화해냈다. 

가까운 미래의 브랜드

팬데믹(Pandemic)이 발생하다

2019년 12월 중국에서 보고된 새 유형의 코로나바이러스는 전 세계적으로 예상치 못한 위기를 만들어내면서, 이전 시대에 경험해보지 못한 많은 사회, 경제적 문제들을 불러왔다. 이 같은 초유의 사태에 대해 미 연준은 또다시 제로금리를 시행함과 동시에 2008년의 서브프라임 당시보다 두 배의 유동성을 쏟아 붓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하지만 아직도 팬데믹 상황의 정확한 끝을 알기 어렵고, 인위적인 부양책에 대한 반작용 및 예상 밖의 시나리오들이 만들어 낼 추가적 조정 가능성도 남아 있다.

향후 1~2년 내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표출된 일련의 현상들을 살펴본다면, 기존 패러다임을 지배해온 브랜드들의 시장 지배력이 더욱 강화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수 있다. 애플, 페이스북, 알파벳(구글 모회사),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로 대표되는 5대 테크기업의 합산 가치가 2020년 8월 미국 주가지수 척도인 S&P500의 20%를 추월해 유럽 전체 주식 시장을 넘어선 상태이고, 테슬라 역시 3월 중순 대비 최대 상승폭이 800%를 넘어섰다. 금융 역사 이래 최대의 유동성이 만들어낸 상승 기조가 초연결 브랜드 패러다임의 심화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더욱 광범위한 연결이 나타나다

4G 통신 기술보다 이론상 20배 이상 빠른 5G 통신기술이 상용화된다. 5G는 향상된 데이터 전송 속도뿐만 아니라, 1㎢ 반경 내 100만 개 이상의 디바이스를 연결할 수 있는 데이터 처리 능력으로 플랫폼과 사용자 간의 데이터 연결을 더욱 고도화시켰다. 반응 속도 역시 시, 청각 인지력의 25배 수준인 1밀리 세컨드(1㎳=1/1000초)까지 줄어 사실상 완벽에 가까운 네트워킹을 구현해냈다. 아직 4G에 비해 높은 주파수 대역 탓에 훨씬 많은 통신 인프라를 설치해야 하는 문제가 남아 있지만, 5G 통신은 곧 초연결 패러다임을 뛰어넘는 새로운 단계의 연결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광범위해진 연결성은 사용자 최적화에만 머무르지 않고, 플랫폼 자체를 개인화 기재로 변환하여 플랫폼에 진입한 사용자들에게 서로 다른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는 또 다른 차원의 초개인화 패러다임을 모듈레이션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사용자의 무의식적인 행동과 생활패턴, 자신도 알지 못했던 선호도가 반영된 수준까지 브랜드 개인화가 진행될 시점이 멀지 않았으며, 이것이 현실화되었을 때 브랜드는 기존의 일원화된 인지 행태를 벗어나 더욱 파편화된 양상을 나타낼 듯하다.

데이터의 진원지가 이동하다

초연결 브랜드 시대를 모듈레이션했던 데이터의 고도화는 지금까지 브랜드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볼 때 주목받지 못했던 지역에서 더욱 가시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바로 거대한 데이터의 왕국이라고 부를 수 있는 중국이다. 중국은 1990년대 디지털 패러다임 전환에는 성공적으로 올라타지 못했지만, 데이터가 주요 매개체가 되는 초연결 패러다임의 시점 이후 전혀 다른 양상을 보였다. 2020년 가장 많은 다운로드를 기록한 앱은 유튜브나 페이스북이 아닌, 중국 바이트댄스의 틱톡이었다. 그리고 글로벌 유니콘 스타트업 상위 10개 중 절반이 중국 기업으로 채워진 상태이며, 초연결 패러다임의 상징인 공유경제 사용자 수는 2017년 7억 명을 넘어 이미 전 세계 최대 규모로 올라섰다. 게다가 사회주의에 기반한 중국 정부 정책 기조 덕분(?)에 중국 플랫폼 기업들은 개인 동의와 같은 윤리적인 문제를 무시한 채 사용자의 방대한 데이터를 손쉽게 취득하고 분석하는 것이 가능해 보인다. 무려 8억 명이라는 스마트폰 사용자의 데이터 개방과 통제를 의도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국가인 중국은 다가올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 과정 중 가장 유심히 주목해야 할 시장임이 분명하다.

본 도서요약본은 원본 도서의 주요 내용을 5% 정도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원본 도서에는 나머지 95%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보다 많은 정보와 내용은 원본 도서를 참조하시기 바라며, 본 도서요약본이 좋은 책을 고르는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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