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을 키운다는 것

비즈니스북스 / 2020년 8월 / 240쪽 / 14,000원

사업을 키운다는 것

사업을 키운다는 것

스가하라 유이치로 지음

저자 소개

도쿄의 도시락 배달 전문점 다마고야(玉子屋)의 사장. 2004년 사장으로 취임해 독자적인 생산과 배송 시스템, 정밀한 수요 예측, 인재 경영으로 회사를 성장시켰다. 이로 인해 2만여 개였던 일일 판매량이 7만 개, 연매출은 136억 원에서 1000억 원을 달성했다. 다마고야의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은 일본의 여러 미디어에 소개되어 주목받았으며, 2007년부터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재에 사례연구로 인용되었다. 저자는 어릴 때부터 ‘도시락집 아들’이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 가게를 물려받을 생각이 없었다. 자신만의 기업을 만드는 게 꿈이었던 그는 릿쿄대학교 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후지은행(현 미즈호은행)에 근무하며 회계를 배웠고 작은 마케팅 회사에서 유통과 물류를 배웠다. 그리고 마케팅 회사를 다니는 2년간 다마고야의 도시락을 먹으며 소비자로서, 창업 지망생으로서 다마고야가 얼마나 탄탄한 회사인지 깨달았다. 이후 아버지의 가게를 ‘기업’으로 키우겠다고 결심하고 본격적으로 경영에 뛰어들어, 그 능력을 인정받았으며 2015년부터 세계경제포럼 지역회의에 참가하고 있다.

책소개

5,000원짜리 도시락 하나로 8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독보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인정받아 스탠퍼드 MBA의 사례연구로 인용된 도시락 가게가 있다. 바로 도쿄의 도시락 배달 전문점 ‘다마고야’다. 다마고야의 혁신적인 생산  배송 시스템과 제품 브랜딩, 고객 관리, 인재 경영 노하우는 스탠퍼드 학생들에게도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다마고야 대표인 저자가 직접 스탠퍼드대 강당에 올라 다마고야의 비즈니스 모델과 인재 경영에 관한 강연을 하기도 했다. 불황 속 오프라인 기업의 약세가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오늘날, 작은 가게로 시작해 강한 기업으로 성장한 다마고야의 경영 스토리는 위기의 시대를 극복해나갈 수 있는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요약본 본문

제1부 스탠퍼드가 주목한 비즈니스 모델

작은 기업이 이뤄 낸 규모의 경제 - 하루 최대 7만 개 생산의 비밀

단 하나의 상품으로 매출 1,000억을 이루다: 도쿄 도심에서 일하는 직장인이라면 샛노란 병아리가 그려진 하얀색 배송차를 심심찮게 목격했으리라. 그 차량을 운행하는 회사는 450엔짜리 도시락을 하루 6만~7만 개 배달하는 다마고야다.

다마고야는 1975년 창업한 회사로, 나는 27세가 되던 1997년에 입사했다. 아버지가 만들고 성장시킨 회사를 물려받을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지만 운명처럼 경영을 맡게 되었다. 당시 사업 규모는 1일 2만 개를 넘나드는 정도였는데 내가 입사한 뒤부터 매년 순조롭게 배달량을 늘려서 10년 후인 2007년에 6만 개를 돌파했다. 현재 매출액 규모는 단일 메뉴 도시락으로 연간 70억 엔, 다마고야 그룹의 전체로는 연간 90억 엔(약 1,000억 원)에 달한다. 많은 사람이 내게 묻는다. “단일 상품만으로 꾸준히 매출이 증가하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짐작건대 이 책을 펼친 독자 여러분도 비슷한 궁금증을 갖고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그 비결을 낱낱이 공개하고자 한다.

놀라운 속도의 비밀, 1일 1메뉴와 기계화: 다마고야는 1일 1메뉴가 원칙이다. 이를 고수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단일 메뉴이므로 대량 제조가 수월하고 갑작스러운 수요 변동에도 발 빠른 대응이 가능하다. 아울러 대량으로 식자재를 납품받으면 그만큼 단가가 낮아진다. 같은 가격이라도 보다 양질의 식자재를 사용하게 되므로 비슷한 가격대 상품보다 경쟁력이 높아지는 셈이다.

도시락은 도쿄 오타구에 있는 공장(제1공장, 제2공장, 라이스 센터)에서 만든다. 전날 사전 작업을 해 두는 경우도 있지만 도시락 공장은 당일 오전 4시부터 가동하는 게 원칙이다. 오전 2시에 직원 10명이 출근해 식자재를 확인하며 품질 검사를 한 뒤 도시락 사전 준비에 착수한다. 4시가 되면 조리 및 취반 담당 직원 약 50명이 출근해서 본격적으로 도시락 생산을 시작한다. 정오까지 6만~7만 개의 도시락을 완벽하게 배달하는 또 다른 비결은 기계화다. 다마고야는 적극적으로 기계를 도입해 자동화와 효율화를 도모해 왔다. 특히, 반찬 조리는 일찌감치 기계화를 추진해 채소 자르기, 튀기기, 굽기 등 갖가지 조리 과정에 기계를 사용한다. 덕분에 제1공장에서 5만 개, 제2공장에서 2만 개로 합계 최대 7만 개 반찬을 세 시간 내에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수요 예측을 바탕으로 한 사전 작업: 조리 및 취반 담당 직원들은 새벽 4시에 출근하지만 아직 그날의 주문은 제로다. 오전 9시가 되어야 비로소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는 실제 주문량을 모른 채 밥과 반찬을 만들기 시작한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도시락을 만드는 건 아니다. 전날 직원들이 회의를 통해 다음 날 수요를 예측하고 산출한 수요량을 기반으로 먼저 도시락을 만들기 시작한다.

수요량은 날짜나 요일 등에 따라 수천 개가량 차이가 난다. 하지만 기본적인 수요량은 천재지변이 없는 한 하루에 5만 5,000개를 밑도는 일은 거의 없다. 반찬을 담은 도시락이 흘러나오는 레인은 총 세 개다. 편의점에 도시락을 공급하는 도시락 업체의 공장은 일반적으로 한두 줄이므로 다마고야 공장이 다른 도시락 공장보다 두세 배 많은 도시락을 생산하는 셈이다. 반찬이 레인에서 나오는 속도도 다른 도시락 공장의 배 이상이다. 빠른 속도로 많은 양의 반찬이 쏟아져 나오므로 반찬을 담는 직원들의 손놀림은 기계 못지않게 빠르고 정확하다.

레인 하나에서 나오는 반찬을 도시락 용기에 담는 수는 1분에 평균 100개다. 레인은 총 세 개가 있으니 1분간 만들어지는 반찬 도시락은 300여 개다. 이런 식으로 전날 예측한 수요량만큼 밥과 반찬을 오전 9시 30분까지 준비해 둔다. 9시 이후에 본격적으로 주문을 받기 시작하면 날씨와 주문 상황을 실시간으로 체크하면서 부족분은 납품 업체에서 신속하게 재료를 공급받아 수요를 맞춰 나간다.

원 아이템 비즈니스의 경쟁력 - 원가율 53퍼센트로 이익을 내는 법

여성 고객을 공략한 제품 브랜딩: 다마고야 도시락은 맛있다. 하지만 매일 먹을 정도는 아니다. 왜일까? 다마고야 도시락은 날마다 메뉴가 바뀐다. 일례로 햄버그스테이크가 그날의 메인 반찬이면 소스는 데미그라스 단 하나다. 사이드로 곁들이는 스파게티 종류도 미트소스 스파게티와 나폴리탄 스파게티 단 두 종류뿐이다. 이건 다마고야만이 아니라 당시 모든 도시락이 마찬가지였다. 맛보다는 양으로 승부하는 도시락, 그저 위장을 채워서 포만감을 느끼는 게 최우선인 도시락, 굳이 말하자면 남성이 선호할 만한 도시락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래서 여성이 선호할 만한 메뉴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허기를 때우기 위해 허겁지겁 도시락을 먹는 남직원의 모습을 본 동료 여직원이 자신도 먹고 싶어 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여직원이 맛있게 도시락을 먹는 모습을 보면 남직원도 먹고 싶어 한다. 다마고야가 꾸준히 판매량을 늘려온 데는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직만이 아니라 회사에서 일하는 사무직에도 호평을 받은 점이 주효했다. 사무직 고객의 주문을 늘리기 위해서도 여성에게 어필할 만한 메뉴 개선은 필수였다. 여성 고객을 공략하기 위해 다마고야는 메뉴 다양화를 실시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반찬 포장과 음식 색상에도 각별히 신경을 썼다.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메뉴 선정: 다마고야는 2주 치 식단을 한 달에 두 번 온라인으로 사전에 공지한다. 알찬 구성과 균형 잡힌 식단은 다마고야가 많은 고객에게 지지받는 요인 중 하나다. 1인분 도시락에는 메인 반찬과 사이드 반찬을 포함해 총 7~8개가 들어간다. 메인 반찬으로는 날마다 생선 혹은 고기가 포함되고 같은 메인 반찬이 한 달 사이에 다시 나오는 일은 없다. 같은 재료라도 조리법이나 양념을 바꾸는 등 다양한 식단을 제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한다. 반면 대다수 도시락 업체는 한 달분 식단을 미리 제공한다. 식단표를 나눠주는 수고를 덜고 조리 작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도 유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장점을 알면서도 다마고야는 굳이 2주라는 짧은 주기로 식단을 공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고객에게 최상의 도시락을 제공한다는 경영 철학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식단 주기가 길면 우연찮은 기회에 최상의 식자재를 발견해도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이미 공지한 메뉴를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2주 단위로 식단을 정하면 한결 대응이 수월하다. 시간이 촉박하더라도 최대한 좋은 식자재를 찾기 위한 전략이다. 도시락업체들은 대부분 일단 저렴한 식자재들을 구입한 뒤 도시락 메뉴를 정한다. 하지만 다마고야는 그 반대다. 고객이 좋아할 만한 메뉴를 두 달 치 계획한 다음, 이에 맞춰 식자재를 매입한다.

메뉴 선정은 오랫동안 아버지가 담당해 왔다. 사장이 메뉴의 기본적인 뼈대를 정하면, 이를 바탕으로 메뉴 회의에서 살을 붙여 결과를 보고하고 사장의 오케이 사인을 받으면 최종 메뉴가 결정된다. 1일 1메뉴를 고수하는 다마고야에서 메뉴 선정은 핵심 업무이자 창업 이래 사장의 고유 권한이었다.

더 많은 투자는 더 많은 수익으로 돌아온다: 다마고야가 파는 도시락 가격은 450엔이고 원가율(판매 가격에서 원가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7년 기준 53퍼센트다. 이는 곧 도시락 하나에 드는 재료비가 238엔이라는 이야기다. 이것은 순전히 식자재비만 계산한 것으로 용기값과 물류비, 인건비 등은 포함되지 않은 수치다. 도시락 종류에 따라 원가율은 다르지만 일반적인 도시락 업계의 원가율 평균은 40~42퍼센트 정도다.

다마고야가 동종 업계보다 높은 원가율을 고수하는 이유는 아버지가 다마고야를 창업하면서 세운 경영 철학과 관련이 있다. ‘고객에게 최상의 도시락을 제공한다.’ 이 철학을 실천하고자 수익이 나면 양질의 식자재에 투자한다. 아버지는 평소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원가율을 낮춰서 이익을 내더라도 절반은 세금으로 나간다. 어차피 나갈 돈이라면 고객과 직원에게 환원하는 게 낫다.”

도시락 판매량이 6만 개가 넘으면 식자재 납품업체에 발언권이 높아져 원가를 깎을 수 있다. 그러나 다마고야는 기존 식자재의 원가를 낮추기보다 더 양질의 식자재를 실제 가격보다 저렴하게 조달받아 도시락의 품질을 높이는 데 주력한다.

원가율이 높은데 어떻게 수익이 날까? 이 역시 자주 듣는 질문이다. 답은 간단하다. 재료비 이외의 비용을 줄이면 된다. 다마고야는 일회용 용기가 아니라 반복 사용이 가능한 재활용 용기를 쓰거나 반찬을 담는 속도를 타사보다 곱절 이상 높이는 방식으로 비용을 절감해 왔다. 낭비를 없앰으로써 발생한 수익을 또다시 품질에 투자해 고객의 높은 재구매율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든 것이다.

직원은 뽑는 것이 아니라 키우는 것

보석이 될 원석을 고르는 법: 내가 다마고야에 들어가기 전 인사결정권은 전적으로 아버지 몫이었다. 아들인 내가 이런 말을 하긴 쑥스럽지만, 아버지는 사람 보는 눈이 놀라울 만큼 정확하다. 면접에서 상대 눈을 바라보며 한두 마디 대화를 나누면 사람 됨됨이가 훤히 보인다고 한다. 내가 인사권을 맡게 되었을 때도 아버지 도움을 많이 받았다.

어떤 사람이 우리 회사에 맞을지 단언하긴 힘들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다마고야가 원하는 인재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살면서 실패와 좌절을 경험했더라도 부모나 친척 혹은 주변의 누군가로부터 애정을 받았다는 것. ‘어린 시절 누군가의 애정을 받고 자란 사람만이 타인을 이끄는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아버지의 지론이다. 그런 사람은 타인에 대한 관용과 수용성을 지닌 까닭이다. 반대로 절대 뽑지 않는 타입에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남 탓하는 사람이다. 면접에서 이전 회사를 그만둔 이유를 묻자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상사가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았습니다.”라며 변명을 늘어놓는 사람은 더 볼 것도 없다. 뭘 하든 핑계를 대며 부정적인 에너지로 똘똘 뭉친 사람은 주변에 악영향을 준다.

아버지는 내가 입사한 1997년부터 채용 권한도 넘겨주었다. 아버지 안목에는 못 미치지만 면접에서 내가 중요시한 포인트는 다음 세 가지였다. 정직함, 감사하는 마음 그리고 남 탓하지 않는 태도. 무엇보다 성장 과정에서 부모님과 형제 사이는 어땠는지, 애정을 받고 자랐는지에 중점을 두고 묻는다. 자연스럽게 웃는 모습도 중요한 포인트다. 아무래도 면접에서는 긴장하기 마련이라 웃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긴장감이 풀어지면서 자연스레 미소를 짓게 된다. 서비스업이 아니더라도 자연스러운 미소를 짓는 사람은 면접에서 좋은 인상을 남긴다.

제2부 사업을 키운다는 것

달걀 장수가 1,000억 기업을 만들다

품질로 승부할 수 없다면 가격으로 승부하라: “도시락집 이름이 왜 다마고야(달걀 가게)인가요?” 사람들에게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다. 다마고야를 창업한 아버지는 이바라키현 미토 출신이다. 할아버지는 미토에서 일가친척에게 조그만 땅을 빌려 집을 짓고 살았다. 앞마당에서 키운 닭이나 토끼를 팔아서 겨우 식구들 잎에 풀칠할 정도였다고 한다. 무일푼으로 시작한 장사는 시간이 지날수록 규모 있는 양계장으로 성장했다. 사업은 탄탄대로를 달리는 듯싶었지만 예상치 못한 위기를 만나고 만다. 직원에게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모조리 빼앗기고 부도가 난 것이다. 빈털터리가 된 일가는 야반도주하듯 도쿄로 향했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아버지만은 미토에 남겨져 친척 집에서 지내다가 중학교 1학년이 되어서야 도쿄로 올 수 있었다. 가족은 도쿄 오모리에 터를 잡고 근처에 사는 친척네 처마 밑에 좌판을 깔았다. 달걀이나 닭고기, 쌀 등을 팔아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고 아버지는 야간열차를 타고 미토로 가서 물건을 공수해 왔다. “다마고야상(달걀 장수)!” 당시 이웃들은 아버지를 이렇게 불렀다. 이것이 바로 다마고야라는 이름이 생긴 유래다.

처음에는 고기와 달걀만 취급했지만 사업이 번창하면서 생선도 판매하기 시작했다. 1969년 내가 태어났을 당시, 일가는 오타구의 간논도리라는 상점가에서 정육점과 생선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작은 아버지는 정육점, 아버지는 생선 가게 담당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운전하는 삼륜차 조수석에 타고 쓰키지 수산시장에 가곤 했다. 생선 장수는 새벽 3~4시에 일어나 어시장으로 출발하는 게 보통이다. 그래야 가장 신선한 생선을 살 수 있으니까. 하지만 워낙 아침잠이 많은 아버지는 아무리 일찍 일어나봤자 오전 8~9시였다. 그때 가봐야 가장 좋은 물건은 이미 다른 생선 장수에서 팔리고 난 뒤다. 하지만 장점도 있었다. 대부분의 물건들을 상당히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부지런한 생선 장수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에는 반값 할인을 시작한다. 아버지는 그럭저럭 괜찮은 생선을 시세보다 싸게 구입해 손님에게도 싸게 파는 방식으로 가게를 키워 나갔다.

새로운 타깃층과 니즈를 발굴하다: 사업적인 감각이 남달랐던 아버지는 생선 가게가 잘되자 사업을 확장하기로 결심했다. 1973년에 돈가스 가게를 오픈한 것이다. 본래는 주당으로 소문난 할아버지가 집에서 마음껏 벗들과 술잔을 기울일 수 있도록 만든 조촐한 가게였으나 개점하고 입소문이 퍼지자 낮에는 손님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아카사카의 고급음식점에서 일하던 요리사를 스카우트하는 등 맛에 아낌없이 투자한 덕분이 아닐까 싶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 때 가게에 자주 오던 근처 공장에서 “도시락을 주문하고 싶다”는 의뢰가 들어왔다. 아버지는 흔쾌히 수락했고 5~10개의 도시락을 보자기에 싸서 자전거로 배달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다마고야 도시락의 시작이다.

개업 후 2년이 지났을 무렵, 아버지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마루노우치나 니혼바시처럼 사무실 밀집 지역에 도시락을 팔면 어떨까?’ 이 생각은 동네 이웃만을 대상으로 장사하던 다마고야가 도쿄에서 가장 큰 도시락 배달 업체로 거듭나는 전환점이 되었다. 당시 요리를 배달하는 요식업은 우동집이나 중국집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배달 가능한 지역은 2킬로미터 반경이 고작이었다. 기업체가 빼곡이 들어선 도쿄 한복판에 도시락을 배달한다는 발상 자체가 당시엔 생소했다.

일본의 내로라하는 초고층 기업 본사들이 집결한 일본의 경제 1번지 마루노우치와 니혼바시에서 어떻게 도시락을 판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이는 아버지가 은행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있어 오피스 타운에서 직장인들이 점심을 어떻게 먹는지 잘 알았던 덕분이다. 대기업이라면 직원 식당을 갖춘 경우가 많지만 중소기업은 대부분 밖에서 끼니를 해결한다. 점심시간 12시 전후로 봇물 터지듯 회사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직장인 무리를 보며 아버지는 직감했다. 사무실 밀집 지역을 공략하면 공장과는 비교도 안 되게 많은 주문을 받을 수 있으리라.

‘블루칼라가 먹는 음식’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도시락을 화이트칼라에게도 확장하겠다는 아버지의 신념이 이러한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워낙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는 데다 은행 영업부에서 근무했던 아버지는 신나게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도시락을 홍보했다. 실제로 거래가 조금씩 성사되었고 1980년에 큰 거래를 성사시키면서 도시락 판매량은 수직상승했다. 대기업과의 독점 계약을 따낸 것이다.

당시 대기업 건물에는 직원 식당이 있었지만 불황이 이어지면서 식당 운영을 재검토하는 시점이었다. 아버지는 사측을 설득했다. “이렇게 비싼 긴자 노른자위 공간에 직원 식당이 있는 건 아깝습니다. 우리에게 도시락을 주문하고 식당 공간은 임대해서 수익을 얻는 게 회사 입장에서도 훨씬 이득입니다.”  결국 그 기업은 직원 식당을 닫고 도시락을 주문하기로 결정했다. 이 계약은 다마고야의 성장에 큰 디딤돌이 되었다. 대기업 한 곳의 하루 주문량이 600개가 넘는 데다 대기업과 계약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마고야의 신용도가 높아졌다. 영업도 한결 수월해졌음은 물론이다. 그리하여 1982년에는 일일 판매량이 2,000개를 돌파해 도시락 업체로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었다.

존폐 위기에서 일어선 힘: 도시락을 판 돈으로 여유로운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도 도시락집 아들이라는 사실을 창피하게 여기던 철딱서니 없던 시절, 그런 나조차도 ‘이러다 큰일 나는 거 아닌가’ 하고 마음을 졸였던 적이 있다. 1982년 5월의 어느 날 다마고야의 최대 고객인 대기업에서 도시락을 먹은 직원들이 집단 식중독을 일으킨 것이다. 당시 나는 중학교 2학년이었다.

도시락 업계에서 식중독 사건은 기업 이미지에 치명타라는 건 두 말할 여지가 없다. 설상가상 피해를 입은 고객은 다마고야 주문량의 자그마치 40퍼센트를 차지하는 대기업이었다. 방송과 신문에서 연일 식중독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여기까지다. 이제 회생은 불가능하다.’

식중독 사건으로 다마고야는 일주일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예상대로 고객사들의 주문 전화는 뚝 끊겼다. 경쟁 회사가 다마고야와 거래한 기업들을 돌아다니며 고객을 유치한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당장 계약을 취소하고 싶다는 문의가 줄을 이었고, 회사를 떠나는 직원들이 속출했다.

마이너스부터 다시 시작하다: 창업 이래로 꾸준히 주문량을 늘려오며 성장해 왔지만 식중독 사건으로 다마고야는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고객이 등을 돌리면서 주문량이 폭락하고 매출은 급감했다. 회사는 존폐의 갈림길에 몰렸고 누가 봐도 재기는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이었다. 더욱 절망적인 건 신용을 잃은 만큼 제로가 아닌 마이너스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다시는 식중독을 일으키지 않을 구조를 만들자!’ 다마고야의 재출발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가장 먼저 생산 과정의 기계화에 착수했다. 1호로 취반기와 배식기를 들였다. 취반기를 쓰면 쌀 씻기부터 밥을 지어 뜸을 들이기까지 원스톱으로 이루어진다. 배식기는 갓 지어진 따끈따끈한 밥을 1인분씩 도시락 용기에 자동으로 담아내는 기계로, 아직 어느 도시락 업체도 도입하지 않았을 때였다.

아버지는 여기서 더 나아가 도시락 용기를 씻는 세척기도 도입했다. 이전까지는 거대한 대야에 먹고 남은 도시락 용기들을 담아 직원들이 일일이 설거지했지만 기계를 사용하니 시간도 줄어들고 훨씬 깨끗이 씻겼고, 그만큼 위생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냉장고나 냉동고도 최신 제품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철저한 식자재 관리에 매진했다.

이만한 설비 투자를 하려면 상당한 자금이 필요했다. 당시 새 공장을 지은 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공교롭게 식중독 사건이 터진 뒤라 다마고야의 재정은 몹시 어려운 형편이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사비를 탈탈 털고 모자란 부분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최신식 기계를 들였다. 고객에게 질 좋고 안심할 수 있는 도시락을 제공하는 것, 아버지는 오직 그 일념 하나로 다마고야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실패를 교훈 삼아 새롭게 도약하다: 식중독 사건으로 대다수 고객사가 다마고야 도시락을 먹지 않겠다며 계약 해지를 통보해 왔지만, 고맙게도 몇몇 회사는 신뢰를 접지 않았다. 다마고야가 사회적인 질타를 받았음에도 다시 한 번 기회를 준 것이다. 그중에서도 직접적인 피해자인 대기업이 거래를 유지하기로 한 것은 다마고야가 다시 일어서는 데 큰 힘이 되었다. 회사 측에서는 다른 도시락으로 바꿀 방침이었으나 직원들이 나서서 “앞으로도 다마고야에서 도시락을 먹고 싶습니다.”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아버지와 직원들은 무릎을 꿇고 깊이 사죄했다. 진심이 통한 걸까? 담당자에게서 “임원들의 비난을 받을지도 모르지만, 앞으로도 다마고야 도시락을 계속 주문하겠습니다”라는 답을 들었다.

식중독 사건으로 다마고야는 사업 존폐의 위기에 내몰렸으나 그 과정에서 값지고 귀한 교훈을 얻었다. 무엇보다 음식을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위생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꼈다. 이를 위해 기계화를 시행한 것이 결과적으로 도시락을 대량생산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계기가 되었다. 고객 만족(CS)이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라는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았던 시절, 다마고야는 식중독 사건을 겪으며 CS와 CSR의 의미를 몸소 깨달았다. 진심으로 고객을 만족시킬 도시락을 만들어야겠다는 신념이 생겼다.

벼랑 끝까지 몰리는 위기를 겪은 후 환골탈태의 일념으로 묵묵히 나아간 끝에, 다마고야는 다시금 고객의 신뢰를 얻어 일어설 수 있었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던가. 식중독 사건은 다마고야가 경영 마인드를 새롭게 다지고 기업으로서 한 단계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1을 10으로 만드는 리더의 조건

사업을 일으키기 vs 사업을 10배로 키우기: 창업주는 0에서 1을 만드는 사람이다. 반면 사업을 물려받은 2대는 1에 1을 얹어 2를 만들고 2에 다시 1을 얹어 3을 만들어 간다. 0에서 1을 만드는 것과 1에서 차곡차곡 쌓아 10을 만드는 것, 어느 쪽이 더 힘들까? 논란은 있겠으나 굳이 비교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0에서 1을 만드는 데 능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1에서 10으로 늘리는 데 능한 사람이 있다. 0에서 1을 만드는 사람은 1에서 10으로 늘리는 건 서툴지도 모른다. 이런 타입은 1에서 10으로 늘려가는 데 금세 흥미를 잃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 다시 0에서 1을 만들고 싶어 한다. 날마다 창업을 꿈꾸며 머릿속에 아이템이 무궁무진한 사람이 여기에 해당한다.

반면 1에서 10으로 늘리는 건 잘해도 0에서 1을 만들어 내는 것에는 서툰 사람도 있다. 스타트업보다 완성된 조직을 크게 키우는 데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이런 부류다. 누군가 나에게 1975년에 도시락 가게를 만들고 2만 개까지 판매량을 늘리라고 했다면 분명 실패했을 것이다. 반대로 아버지가 1997년에 다마고야를 물려받아 2만 개에서 7만 개까지 판매량을 늘려 나가야 했다면 고전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이것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성향이 다를 뿐이다. 아버지는 “아들이 나보다 낫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경영 능력을 100퍼센트로 봤을 때 90퍼센트는 내가 우수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나머지 10퍼센트는 내가 아무리 기를 쓰고 노력해도 절대 가질 수 없는 것임을 나는 안다. 카리스마와 스타성, 사람을 끌어들이는 인간적인 매력, 인정을 베풀고 남을 포용하는 대인배 기질 말이다.

과거처럼 사장의 강력한 카리스마만으로 기업을 경영하던 시절은 이제 지나가고 있다. 자수성가한 CEO로 이름을 떨치며 승승장구하던 아버지가 과감히 경영권을 물려준 건 앞으로는 나와 같은 타입이 경영자로 적합할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은 아닐까. 서툴고 미숙한 아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으랴. 하지만 경영권을 물려준 이상 아버지는 나의 판단과 결정을 존중하며 묵묵히 뒤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이 점은 지금 돌이켜봐도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사업을 물려주는 사람과 물려받는 사람이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존중할 수 있다면 성공적인 사업 승계의 첫발은 뗀 셈이다. 경영자로서 특성이 다름을 아버지와 나는 서로 인정하고 존중했기에 다마고야의 사업 승계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흑자 중소기업이 폐업에 내몰리는 이유: 요즘 들어 문을 닫는 중소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나 또한 다마고야를 경영하면서 중소기업을 둘러싼 환경이 날로 열악해지고 있음을 피부로 실감 중이다. 그렇다고 절망하긴 이르다. 돌이켜보건대 지금껏 중소기업의 경영 환경이 순풍에 돛단 듯 수월했던 시절 따윈 없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대다수 중소기업은 시대의 거친 파도를 이겨내며 국가 경제를 든든히 뒷받침해 왔다.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나머지 실적 악화로 사업을 접는 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요즈음 폐업하는 회사의 절반 이상은 흑자 경영이다. 실적이 탄탄한 회사가 왜 폐업을 할까? 의문이 드는 게 당연하다. 가장 큰 이유는 후계자 부재다. 창업자는 가족과 직원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막중한 의무감으로 온갖 궂은일을 겪으며 악착같이 회사를 이끌어 왔다. 부모는 피와 땀으로 일군 회사를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어도 선뜻 권하지 못한다. 자신이 겪은 고생까지 물려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자식은 자식대로 힘들게 고생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란다. 철이 들 무렵부터는 ‘내 자식만큼은 힘든 고생을 시키고 싶지 않다’는 부모의 속마음을 은연중에 느끼고는 가업을 잇겠다는 결심을 주저한다. 앞서 말했듯 나 또한 학창 시절부터 ‘도시락집 아들’이라고 불리는 게 그렇게 창피할 수가 없었다. 나중에 크면 번듯한 정장 차림으로 출근하는 대기업 직장인이 되리라고 다짐하곤 했다.

기업 대표는 자나 깨나 회사 생각이다. 늘 업무에 쫓겨 집에서 자식을 볼 시간조차 턱없이 부족하다. 후계자 수업은 가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겠는가. 아무리 작은 조직이라도 조직을 이끄는 리더가 되려면 자질과 소양이 필요한 법이다. 그런데 이런 자질은 어릴 때부터 철저히 교육시키지 않으면 저절로 몸에 배기 힘들다. 나이가 들수록 후천적인 교육이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어린 나이부터 충분히 리더의 자질을 양성해야 하는데, 아이가 학원이나 학교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가정에서 부모와 소통하는 시간이 줄어들면 부모와 전혀 다른 인간형으로 자라날 가능성이 높다.

자식이 어릴 적부터 회사를 경영하는 인간형으로 자라지 않으면 성인이 된 후에 아무리 좋은 대학에서 경영학을 배우고 탁월한 스펙을 쌓아 사업을 물려받은들 순조롭게 기업을 이끌 확률은 높지 않다. 이처럼 중소기업에서 겪는 후계자 문제를 내밀하게 들여다보면 부모 자식 간의 복잡한 속내와 후계자 교육의 부재가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리더 교체는 빠를수록 좋다: 사업 승계의 대표적인 실패 이유 중 하나가 너무 늦게 물려주는 경우다. 경영권 위임을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후계자의 의욕도 떨어지고 직원들의 긴장감도 사라지고 만다. 이러다 자칫 사장의 건강에 이상이 생기거나 고령으로 기운이 쇠약해지면 원활한 사업 승계는 물 건너간다. 설상가상 그때는 이미 사장의 인맥이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을 공산이 크다. 회사에서 사장이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가 되는 건 시간문제다.

사장이 건강하고 영향력이 건재할 때 후계자에게 사업을 물려줘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후계자를 대동하고 단골과 거래처를 돌면서 “앞으로 우리 회사를 맡을 사람입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눈도장을 제대로 찍어 두면 사장의 알짜배기 인맥을 고스란히 물려받을 수 있다.

일단 후계자를 결정했다면 경험이 적고 경영 능력이 미숙해도 부장이든 상무든 어느 정도 결정권을 가진 직위를 부여하는 게 바람직하다. 경영 초보이니 실수는 당연히 할 것이다. 하지만 선대의 영향력이 건재한 동안에는 후계자가 시행착오를 거듭해도 충분히 수습할 수 있다. 귀중한 인맥과 고객 그리고 사장의 확고한 리더십이 존재하는 한 후계자를 향한 직원들의 불안과 불만을 어렵지 않게 잠재울 수 있다. 사장의 든든한 우산 밑에서라면 후계자도 최고 경영자로서 자질을 갈고닦을 여력이 있다.

처음에는 직원들 사이에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깊이 생각해서 결정한 일이니 앞으로 잘 보좌해 주게.”라고 힘을 실어 주면 직원들도 어수선한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각오를 다진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일단 후계자가 정해졌으면 사장이 건재할 때 즉각 실행하자. 그래야 새로운 체제로 원활하게 이행된다.

직원을 설득하고 아군을 확보하라: 사업 승계는 단순히 사업을 물려받는 게 아니다. 직원과의 관계도 물려받는다. 특히, 선대와 동고동락한 고참 직원들의 지지와 신뢰는 사업 승계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업무에 해박한 고참 직원과 후계자가 대립한다면 회사는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 그중 최악은 고참 직원들이 겉으로는 따르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딴마음을 먹는 면종복배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다마고야에서 내 방식을 이해하고 개혁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아군이 절실했다. 직원들과 개별적으로 만나는 와중에 괜찮다 싶은 인물이 있으면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잠재력이 있습니다. 임원으로 승진시켜 든든한 조력자로 삼고 싶습니다.”라고 아버지에게 넌지시 이야기를 꺼냈다. 아버지는 흔쾌히 오케이 사인을 줄 때도 있었지만 코웃음을 치면서 고개를 흔들 때도 있었다.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아버지의 판단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줄곧 운동만 해서 사회 경험이 적었던 나는 사람 보는 눈이 부족했기에 인재를 발탁할 때마다 아버지와 상의해서 결정했다. 아버지의 조언 덕분인지 그때 발굴한 인재들은 기대만큼 성장해 주었고 지금의 다마고야를 만든 일등 공신이 되었다.

무리한 확장보다 내실을 다진 결과: 1990년대 후반 거품 경제가 붕괴하면서 오랜 불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주머니 사정이 얄팍해진 사람들이 점심으로 외식 대신 도시락을 선택했다. 자연스럽게 도시락 산업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목표는 연간 20퍼센트 매출 상승이었다. 연 20퍼센트씩 증가하면 5년 후에는 매출이 두 배가 된다. 판매량은 날로 상승세를 이어 갔다. 내가 입사한 1997년에는 도시락 배달이 2만 개였는데 1년 후에는 2만 4,000개, 2년 후에는 2만 7,000개, 3년 후에는 3만 개로 꾸준히 늘었다. 다마고야가 치열한 도시락 업계에서 오랫동안 많은 고객의 지지를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450엔이라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도 집밥 못지않게 반찬 구성이 알차고 친환경 식자재를 사용해 건강에도 좋기 때문이다.

그런데 3만 개가 되자 문제가 발생했다. 기존 공장에 과부하가 걸린 나머지 증가한 수요량을 감당해내기 어려워진 것이다. 때마침 옆 동네 공장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새 공장을 세울 최적의 공간을 건설하고 생산 능력을 1만 개 더 늘렸다. “반드시 1만 개 주문을 따 낸다!”라며 직원들도 저마다 투지를 불태웠고 이듬해에 3만 5,000개, 그 이듬해에 4만 개를 달성했다.

일본 경제의 거품 붕괴는 다마고야가 생산설비에 투자하는 데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불황으로 물가가 하락하고 땅값도 싸졌으니 말이다. 새 공장을 세워 생산량을 1만 개 늘린 뒤 또 다른 부지를 값싸게 매입해 공장을 세웠다. 애당초 생산량은 4만 개까지만 늘릴 계획이었으나 제1공장, 제2공장, 세척 공장, 취반 전용 라이스 센터까지 세우면서 생산력이 급증해 하루 6만 개까지 공급이 가능해졌다.

본 도서요약본은 원본 도서의 주요 내용을 5% 정도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원본 도서에는 나머지 95%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보다 많은 정보와 내용은 원본 도서를 참조하시기 바라며, 본 도서요약본이 좋은 책을 고르는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0 댓글
본문 피드백
모든 댓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