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과 육식

사육과 육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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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과 육식
리처드 W. 불리엣 지음
알마

책소개

인간과 동물 관계의 역사를 ‘사육’이라는 개념을 통해
추적하고 있는 책이다. 인간과 동물의 분리 시기를
전기사육시대, 사육시대, 후기사육시대로 구분 짓고 사육의
핵심적인 특징들을 보여준다. 동물과 접촉하면서 살았던
세대가 사라져버린 후대에 인간과 동물 관계의 미래가
어떻게 변화할지 생각해본다.

요약본 본문

동물과 멀어지다

미국 문화에서 섹스와 피에 관한 사실적인 묘사가 강세를 떨치고 있다. 슬라이스 앤드 다이스 필름
(Slice and Dice Film, 노골적인 살육을 드러내는 공포영화에 대한 은어)과 같은 잘 팔리는 시리즈물
들(, , , , )이 세상에 나와 점점 더 거리낌 없이 피가 뿜어져 나온다. 사실적으로
묘사되는 섹스에 대해서 말하자면, XXX(treple-X) 등급의 대여 비디오나 호텔 TV에서 보여주는 소프
트코어 포르노그래피, 온갖 종류의 성적 취향을 만족시키고자 하는 수천 개의 웹사이트들이 성행한다.

이렇게 섹스와 피에 관한 사실적인 묘사가 미국 문화에서 강세를 떨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제안
하려고 하는 답은 이렇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무슨 뚱
딴지 같은 소리인가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육시대(domesticity)’의 사고방식이 ‘후기사
육시대(postdomesticity)로 이행되면서 우리의 시각과 행동에 엄청난 변화가 나타났다는 점에서 그 관
련성은 점점 더 무시하기 어렵게 되었다.

‘사육시대’와 ‘후기사육시대’는 이 책의 핵심개념이다. 두 개념 모두 지금까지 정의되거나 식별된 적이
전혀 없었지만 비교적 간단하다. ‘사육시대’는 가축(애완동물이 아닌)과 대다수 가족 구성원이 날마다
접촉하면서 살아가는 사회적·경제적·지적 공동체를 특징으로 한다. 대다수 미국인들에게는 지나간 세
대의 생활양식이지만 대다수 개발도상국들에서는 오늘날의 현실이기도 한 농경 생활을 의미한다.

‘후기사육시대’는 두 가지를 특징으로 한다. 첫째, 후기사육시대 사람들은 자신들이 의존하고 있는 식
량, 직물, 가죽을 제공하는 동물과 물리적· 심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살아가므로 그런 동물의 출산, 교
미, 도살 과정을 본 경험이 없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흔히 애완동물로 불리는 반려동물과는 대단히
밀접한 관계(마치 인간인 것처럼)를 유지한다. 둘째, 후기사육시대는 그에 선행했던 사육시대와 마찬
가지로 여전히 동물이 제공하는 제품을 풍부하게 소비하면서도, 심리적으로는 사육된 동물이 제품으
로 바뀌는 산업적인 과정과 이런 산물이 시장에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하면서(좀처럼 생각하지도
않지만) 죄의식, 수치심, 역겨움을 느낀다.

사육시대에는 사육동물과 야생동물을 죄의식을 느끼지 않으면서 죽였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어린 시
절부터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동물을 도축할 때의 선혈 낭자한 장면을 자주 목격했다. 사육사회는
일찌감치 아이들을 섹스와 피에 노출시킴으로써 마음을 단련시키고 섹스와 피를 환상 속에서가 아니
라 현실적인 육욕과 관련해서 생각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성인이 되면 상상적인 묘사에 그다지 반응
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후기사육시대의 도시 생활에서는 적어도 동물에 관한 한 교미하는 모습과 유
혈이 낭자한 모습을 볼 수 없다. 때문에 후기사육사회는 육욕의 사실성으로부터 멀어져 섹스와 피의
환상으로 나아가는 추세를 되돌려 놓을 수 없게 된다. 즉, 사육시대에서 후기사육시대로 이행함으로써
초래된 변화의 무의식적인 반응 가운데 하나가 섹스와 피의 환상에 매료되어 그 수위가 점차 높아지
고 있는 것이다.

선택적 채식주의의 역설: 인간/동물 관계가 엄청나게 변화하면서 섹스와 유혈에 관한 포르노물이 급
증한 것은 주로 무의식적인 데 반해, 다른 반응들은 변화된 조건을 보다 의식적으로 반영한다. 의식
적인 후기사육시대적 행동 양상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선택적 채식주의이다. 이러저러한 이유들
(비인간적인 조건에서 자라 고기를 제공하는 동물에 대한 동정심, 그런 사육 환경으로 인해 초래되는
박테리아, 항생제, 스테로이드제 오염에 대한 공포, 고기를 먹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거리낌)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선택적 채식주의자가 되면, 육식을 금하는 가풍이 있는 사람과는 달리
양심에 따라 특정한 고기나 모든 고기를 피한다. 후기사육사회에 들어와서 채식주의는 급속히 퍼져나
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기의 생산량은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미국이 육류 생산에 있어
서 세계 최대 혜택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비용 대비 효과를 높이고 20세기 후반 동안 계속해서 육류
가공 산업화 방식을 세련되게 함으로써 가능했다. 고기는 종이에 포장된 햄버거의 형태나 1회용 스티
로폼 접시와 폴리에틸렌 랩으로 포장된 익숙한 모습으로 소비자들의 손에 들어왔다. 소비자들이 원하
는 모습이 바로 그런 것이기도 했다. 소비자들은 동물을 살찌워 도축하고 토막을 낸다는 사실을 가능
한 잊어버리려고 했다. ‘개선’된 동물 사육 방식은 전 세계적으로 육류 소비를 점점 더 증가하도록 부
추기게 되었다.

육류 소비 증가와 동시에 선별적인 채식주의의 확산은 후기사육시대라는 하나의 국면, 즉 생산량은
극대화하면서 소비자 비용은 최소화하는 것에서 기인된 역설적인 현상이다.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동
물을 사육하고 가공 처리하는 데 대해 동물 농사와는 무관한 실재적 잠재적 채식주의자들이 반발하고
있지만 그런 비인간적인 방식을 통해 축산업자들은 오히려 고기 소비를 보다 용이하게 해주고 시장을
확대할 수 있게 된다.

분리와 이행의 단계들

동물종으로서 우리는 언제나 다른 동물종들과 더불어 살아왔고, 그 동물종과 우리 자신을 분리함으로
써 우리를 규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분리를 합리화하고 강화하고 상징하기 위해 고안
해낸 범주와 경계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바뀌어왔다. 나는 연속적인 역사시대를 4단계의 시기로 인위
적으로 구분하고 그 시대들의 이름을 만들어냈다. 전기사육시대, 사육시대, 후기사육시대, 그리고 그
들 사이의 이행기이다. 내가 이름 붙인 네 시기 중에서 세 시기는 200년이 채 되지 않은 개념, 즉 사
육(domestication)이라는 개념에 의존하고 있다. 이 장은 이렇게 인간/동물의 분리 시기를 구분 지은
데 대한 상세한 견해를 설명한다.

인간이든 인간 이전의 원시 인류인 호미니드든 간에, 우리의 조상이 언제 그리고 왜 스스로를 특정한
종으로 인식하게 되었으며, 이 과정을 ‘분리’로 지칭하게 되었는지는 오직 추측만 가능할 따름이다.
그들은 친족관계인 호미니드종과 같은 존재로서 동일한 환경 속에서 집단으로 생활했을까, 아니면 호
미니드를 다른 동물로 분류했을까? 그들은 동물을 실질적인 조건(예를 들어, 그들과 섹스하는 존재들,
그들이 잡아먹는 존재들(먹잇감), 그들이 잡아먹힐까봐 두려워 도망쳤던 존재들(포식자), 다가와도 무
심했던 존재들)으로 범주화했을까, 아니면 세속적인 용도와는 관련이 없이 범주화했을까? 이러한 추
측들로 살펴보건대 분리는 우월감을 함축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을 동물과 다르다고 파악함으로
써 우리의 먼 조상들은 아마도 자신들을 동물보다는 능력이 있고 중요하다고 간주했을 것이다.

분리의 시기로부터 ‘전기사육시대’로의 이행, 즉 인간/동물 관계의 두 번째 거대한 분수령도 개념화
하기는 어렵다. 인간이 자기 종에 대해 최초로 의식하는 범위를 넘어서고 동물을 예술의 대상, 이야
기의 주제, 종교적인 경배의 대상으로 생각하기까지, 수만 년 혹은 수백 만 년이 경과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기사육시대적인 사고는 상징적인 힘과 영적인 힘을 가진 동물세계와 대면하면서 틀림없
이 겸손이라는 요소를 첨가했을 것이다.

전기사육시대에서 ‘사육시대’로의 이행도 인간/동물 관계에서 또 하나의 거대한 분수령이다. 사육시대
는 인간이 생활공간과 식량을 몇몇 동물, 특히 쉽게 길들일 수 있는 어린 새끼들과 공유하면서 살아
왔을지 모른다. 하지만 수만 년, 수백만 년 동안 전기사육시대적인 형태의 공존 이후에 일부 사람들
은 자신들과 함께 살고 있는 동물들을 보호하여 야생동물과 짝짓기를 하도록 내버려두는 대신 같은
종끼리 교배를 시키고 마침내는 특별한 산물이나 용도를 위해 그런 동물들을 이용했다. 사육동물이
바로 그런 결과물이다. 초기에는 신성을 구현하는 존재 또는 조상들로 간주되었을 야생종들이 점차
포식자로 분류되었으며, 사냥을 위한 사냥감이자 공간과 자원을 두고 인간과 경쟁하는 존재, 해로운
짐승, 혹은 생포되어 관찰 대상이나 구경거리로 전락하거나, 무대에 올려진 싸움에 등장하는 존재가
되었다. 사육동물들이 점차 유용해짐에 따라 동물에게 부여했던 전기사육시대의 영적인 특질은 증발
해버린 것이다. 황소에 멍에를 메워 쟁기를 끌게 하는 판에 황소를 신으로 생각한다면, 신에게 쟁기
를 끌도록 하는 행동은 부적절하다고 보지 않겠는가. 사육시대는 동물을 숭배하고 상상 속에서 동물
과 함께한다는 생각보다는 동물을 이용한다는 생각이 점차 압도하게 되었다.

‘후기사육시대’라는 마지막 이행기는 인간과 동물이 더 이상 함께 살지 않는다.(애완동물을 별도로 한
다면) 미국에서 이런 현상은 산업화와 이촌향도의 결과였다.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그런 사람들
이 소비하는 사육동물 사이에 가로놓인 간극은 엄청나게 벌어졌다. 이와 같은 관계의 변화는 앞장에
서 기술했던 후기사육시대의 모든 특이성과 불안(동물이 제공하는 제품을 사용하면서 그 과정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는 윤리적 불안)을 점차 야기하게 되었다. 후기사육시대의 핵심적인 특징은 인간과 동
물을 구분하고 이로 인한 윤리적인 결과에 대한 광범한 토론의 장을 열게 한다는 점이라 할 수 있다.

사냥꾼과 채집자

전기사육시대 수렵과 채집은 오로지 혹은 1차적으로 먹을거리를 위해서라는 가정을 함축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가정은 당연시 될 수 있을까? 이 장은 전기사육시대가 동물일반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를 살펴본다.

동물은 전기사육시대 인간들의 정신적 풍경에서 자연의 어떤 측면보다도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반영한
다. 예술(동굴 벽화)은 동물에 관한 전기사육시대 사람들의 태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창문이다. 거의
모든 유럽의 구석기시대 동굴 그림에는 동물이 묘사되어 있다. 이에 대한 최초의 학문적인 설명은 수
렵에 초점을 맞췄다. 초기 인류들은 그들이 잡아먹었던 동물을 그려놓고 주술적인 힘을 빌려서 더 많
은 동물을 잡을 수 있도록 기원하기 위해 그림을 그려놓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림 이미지들
중에서 명백하게 사냥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인류의 예술품이 먹는 음식에
초점을 맞춘 경우는 거의 없다. 하나의 예를 들어본다면 앙드레 그루아 구랑(Andre Leroi Gourhan)은
70개의 동굴 벽화를 조사한 뒤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구석기 시대 동물 그림은 먹을 수 있는
종들을 모아놓은 것이라기보다는 동물우화집을 구성한 것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즉 동굴 벽화에는 말, 소, 수사슴과 암사슴, 매머드, 순록, 곰 등으로 동물들이 대단히 편중되어 있는
데, 집단에게 고기를 제공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다면 물고기, 새, 돼지는 왜 없는가라는 질문이 나
올 수 있다. 훗날 유럽인들의 식단에 등장하게 되는 이런 동물들을 생각해본다면 이것은 분명히 제기
될 만한 수수께끼이다. 묘사된 동물종과 그것을 그린 사람들이 살았던 환경에서 출현했던 사육종의
형태사이에서도 상호 연관이 있는 경우는 그다지 흔치 않은 것이다. 예를 들어 개는 가장 초기부터
흔한 사육 형태였지만 선사시대 예술에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개를 식용으로 삼았던 지역에서
도 개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전기사육시대의 사람들이 수렵으로 고기를, 채집으로 야채를 얻은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동굴 벽화에서처럼 동물에 관한 그들의 사고는 단지 위(胃)를 만족시키는 것 이상이다. 식량으로서의
필요성이 예술적인 선호를 반드시 지배한 것은 아니라는 결론이다. 이는 전기사육시대의 인간/동물의
관계가 식량 생산을 중심으로 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었던 시대라는 점을 입증한다. 따라서 동물을 사
육한 이유가 오로지 혹은 1차적으로 먹을거리를 얻기 위해서라는 ‘수렵과 채집’이 함축하는 가정은 당
연시될 수 없다.

선사시대의 모든 인류 집단은 동물에 관한 생각을 점차 섬세하고 세련된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갔으며
그런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가시적 표현을 창조해냈다. 그렇다면 이들이 동물 그림을 그린 목적은
무엇일까? 이에 관해서는 많은 추측을 불러일으키는데 제례의식을 표현한 것이라는 추측이 많다. 이
것은 수렵, 소비, 신성함 사이의 연결고리를 암시한다.

의도인가 우연인가

이 장은 ‘사육동물=유용한 동물’이라든 등식을 살펴보고자 한다. 사육동물의 물질적 용도와 정서적 용
도를 구분한 뒤, 사육동물의 기원이 대부분 물질적 용도에 맞추어져 있음을 살피고, 우유와 유제품의
사례로 사육동물의 기원에 대한 시각을 새로운 관점에서 제시한다.

동물이 ‘유용하다’고 말하면서 우리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동물들이 지니고 있는 특별한
재능, 즉 사냥, 목축, 해충 박멸, 폭발물과 마약 탐지, 송로버섯 발견에 이용할 뿐만 아니라 어떤 일
을 실행하거나 사람들을 운반하는 일 등에 그들의 에너지를 사용한다. 보다 쉽게 우리의 머릿속에 떠
올릴 수 있는 것들은 우유, 달걀, 깃털, 모피, 양모, 가죽, 고기, 뼈, 뿔과 발굽 등과 같은 동물의 몸
과 관련된 제품들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즉 의심의 여지없이 사용되는 동물과 동물이 생산한 제품
들을 ‘물질적 용도(material use)’라고 부를 것이다.

애완동물이 제공해주는 동반자 역할 또한 동물의 용도가 아닌가? 새장에 갇힌 새의 아름다운 소리,
황금잉어의 매력적인 몸짓, 그리고 공작새가 꼬리를 부채처럼 화려하게 펼치는 것은 어떤가? 나는,
이 모든 동물의 용도를 ‘정서적인 용도(affective use)’라고 부르고자 한다. 정서적 용도는 인간의 생
활을 물질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이라기보다는 애정, 미적인 감상, 영적인 고양 등과 같은 감수성과 관
련되어 있다.

사육화의 기원에 관한 대부분의 논의는 물질적인 용도에 초점을 맞춘다.(여기서 사육화는 인간의 의
도적인 활동이라는 관습적인 의미를 뜻한다.) 하지만 우리가 이용하는 발명과 발견의 궁극적인 용도
는 반드시 그런 발명과 발견을 실제로 목표했거나 현실화한 것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인간은 불을 길들이면서 인간들이 찰흙을 구워서 도자기를 굽거나 용광로에서 철을 정련할 것이
라고는 꿈에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증류하는 법을 발명하면서 언젠가 이것을 이용해 보드카를 만들
고 끈적끈적한 원유로부터 가솔린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우유와 유제품 역시 그
러하다.

우유와 유제품: 동물의 젖을 얻으려는 동기로 인해 양, 염소, 암소 그리고 아마도 낙타와 말 등의 사
육화가 우선적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이 대다수가 믿고 있는 주장이다. 동물의 젖을 선호하여 동물을
가축화했다는 이론적 근거는 전형적으로 유제품(버터, 물소의 젖, 요구르트, 치즈 등)에 대한 인식을
전제한다. 하지만 인간은 젖이 무엇으로 변할지 전혀 모르는 사회에서 왜 용기에 연유(liquid milk)를
모으려고 했던 것일까? 어떤 과정으로 동물의 젖을 소비하게 되었는지 심각한 질문이 제기된다.

서구 유라시아와 북부 아프리카의 광대한 대륙에서 보면 인간 집단은 의심의 여지없이 이미 가축이
되었던 암소, 암양, 암염소 같은 동물로부터 젖을 짜서 용기에 모을 만한 여러 가지 이유가 분명 있
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어쨌거나 음료로 소비하거나 유제품으로 변형시키
는 것이 아닌 다른 용도가 개입되었던 것처럼 보인다.

정서적인 용도를 염두에 두고 추측해보자면, 동물의 젖을 처음으로 구했던 사람들은 제례용으로 그것
을 사용했을 것이라고 제안하고 싶다. 실제로 임신한 여성이나 갓 태어난 아이를 차치한다면 젖은 풍
요와 다산의 주요한 물리적 지표이다. 따라서 그릇에 담긴 연유는 원래는 다산성을 기원하는 제의를
위해 차려졌을 수도 있다. 거대한 젖가슴과 임신하여 불룩한 모습으로 출현한 ‘비너스’가 초기 구석기
시대의 작은 조형물로 출토된 이후부터 풍요와 다산은 인류에게 지속적인 관심사였음이 증명되었다.
아나톨리아(현재의 터키)는 소, 양, 염소가 가축화된 심장부로 여겨지는데, 그곳에서 젖과 수유의 상
징적인 역할은 풍요의 여신(여러 개의 젖가슴을 가진 키벨레Kybele)을 숭배하는 역사적 시대로 입증
된 바 있다. 예를 들어 풍요와 다산의 상징으로서 제단에 젖을 따르거나 신에게 바치는 제주로서 땅
에 젖을 따르거나 혹은 여신의 조상을 씻기는 데 젖을 사용했으리라고 생각해볼 만하다.

이런 추측의 요지는 용기에 연유를 모으는 것이 우유와 유제품의 원천으로서, 인간에게 영양분을 공
급하기 위해 동물을 가축화하고 궁극적으로 착취한 것이라기보다는 정서적인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이
라는 제안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려는 데 있다.

힘센 사냥꾼에서 야가마나로

야생동물을 포획하여 가둬놓고 충분히 순치될 정도로 오랜 세월 격리 생식을 해왔던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이 장은 전기사육시대에서 사육시대에로의 이행이라는 전반적이고 보다 광범한 맥락에
서 사육의 이유를 찾는다. 희생의 제의적인 양상이 중요해짐에 따라 사육의 이유를 찾고 그것이 가볍
게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나는 수렵시대 힘센 사냥꾼이 야가마나(Yajamana), 즉 초기 사육시대의 희생제의를 주관한 제주였다
고 제안하고 싶다. 야가마나라는 용어는 다소 익숙하지 않은 어휘인데, 문자적인 의미는 고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로 제사를 주관하는 ‘제주’를 의미한다. 나는 야가마나를 논의의 편리를 위해 왕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야가마나는 자기 백성들을 대신하여 희생제의를 수행하고 명령하는 자였다. 그는 일반
적으로 희생제의에 자기 백성들이 참석하도록 허락하고 희생동물의 고기를 나누어 가지도록 했다. 동
물을 죽이고 결과적으로 그 고기를 분배함(신성시된 고기인 제례의 제물은 후원자들과 공동체에게 영
적 만족과 사회적 만족을 가져다준다)으로서 힘센 사냥꾼과 야가마나라는 용어 속에서 ‘왕족’의 위상
과 종교적인 제의가 결합하게 된다.

전기사육시대 힘센 사냥꾼이 사냥을 통해 자기 공동체에게 제공되었던 고기가 사육시대로의 이행과
더불어 야가마나에 의해 살아 있는 동물(포획되어 마침내 길들여지는)로 대체되어 희생물로 바쳐진다.
희생제의는 정기적으로 거행되었을 수도 있다. 혹은 즉위식, 통치자의 매장, 영광스러운 손님의 방문
과 같은 특별한 상황에서 일어났을 수도 있다. 또한 비상사태로 인해 희생제물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렇게 희생제물을 바쳐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사냥감을 찾아나선 사냥꾼이 매번 살아 있는 야
생동물을 잡아올 것이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 제주들은 사냥꾼이 어쩌다 우연히 마주친 야생의 새끼
양을 잡아오거나, 야생 멧돼지를 그물로 생포하여 산 채로 마을로 데려오는 데만 의존할 수가 없다.
희생 동물을 손에 넣는 일은 골칫거리였음이 분명하다. 때문에 살아 있는 동물의 도살을 요구하는 제
의로 인해 동물을 살려두는 것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가둬놓고 키운 희생물은 처음에는 아마도 야생동물의 대용물이었을 것이다. 포획한 짐승을 번식시키
고 빨리 잡아먹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사실상 사냥은 지속적으로 필요했을 것이다. 동물이 더 많아지
고 더 커지면 흘리는 피 또한 많아지고, 고기도 많아지며, 신들도 더 좋아할 것이고, 그럴수록 야가마
나의 위상은 올라갔을 것이다.

하지만 희생제의의 가장 끔직한 면은 수세기에 걸쳐 줄어들었다. 유혈 희생제의가 사라지게 됨에 따
라 동물에게 보이지 않는 신성과 영혼의 세계와 접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전기사육시대의 신앙
도 함께 사라졌다. 전기사육시대 후반부에 출현한 예술은 인간/동물 관계가 영적이고 미학적인 감수
성에 서로 깊게 스며들어 있는 세계를 묘사한다. 많은 신화와 민담에서도 동물을 이용해 미래를 예측
하거나 특정한 동물을 보이지 않는 세계의 사자로 간주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
은 사육시대가 진행됨에 따라 전부 사라지거나 무의식적으로 가라앉게 되었다. 동물이 보이지 않는
정령의 세계를 매개한다는 믿음은 사육동물이 보다 유용해짐에 따라 사라져 신비감을 상실하게 되었
다. 사육시대의 고급문화는 종종 예술적인 목적으로 그것을 소생시킬 뿐이다. 전기사육시대적인 신앙
은 사육시대에도 여전히 오랫동안 지속되다가 물질적인 용도에 압도됨으로써 마침내 잊혀진다.

허구적 동물의 출현

사육시대 문화는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일치하는 점이 있다. 첫째, 공들여 만들어낸 사육사회는 동물
을 착취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야생동물과 거리를 유지한다. 둘째, 대다수 개인들은 길들여진 동물들과
함께 자랐으며, 반려동물을 가시적·상상적 풍경 속에서 정상적인 일부로 간주한다. 셋째, 사육동물들
과 그들이 제공하는 산물들은 교환과 소비의 대상으로서 경제적· 사회적 시스템의 일부로 통합된다.
이러한 특징들은 동물의 희생제의와 같은 정서적 용도와 동물에 관한 정령 신앙이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쇠퇴한 것과는 달리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경제적 발전과 병행하여 사육시대에서 후기사육시대로 이행하면서 동물에 대한 인식에는 괄목할 만한
변화가 생긴다. 산업화와 인구 성장은 영국의 도시화 정도와 결합되어 있었다. 당시 미국, 아르헨티
나, 오스트레일리아는 여전히 농촌사회(사육사회)였다. 결과적으로 영국은 일찍부터 축산품을 위한 사
육동물을 도시 거주자로부터 격리시키는 방향으로 진행하는 데 약간 앞서나갔다. 대신 19세기가 시작
될 무렵 점화되었던 동물에 대한 인간적인 감정은 세기가 진행됨에 따라 많은 영국인들의 가슴에 불
을 지폈다. 동물에 대한 새로운 생각이 증폭됨에 따라, 그들의 사상은 해외의 영어권 인구들 사이에
급속하게 퍼져나가게 되었다. 상상력의 영역에서 미국과 영국의 작가, 만화가, 영화제작자들은 개별
동물들에게 이름을 부여하고 옷을 입히고 스토리 안에서 곤경을 헤쳐나가는 주역으로 만들었다. 이
장은 이렇게 출현한 허구적 동물들을 소개한다.

메리 오하라의 는 19세기로 바뀔 무렵 와이오밍에 사는 한 소년이 야생마를 길들이
는 이야기다. 이 소설은 1941년에 출판되었는데, 인간의 관점이 압도적이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은 1945년에 출판된 에서 스탈린주의의 공포를 풍자하는 데 동물 주
인공들을 보다 더 극적으로 이용했다. 그는 돼지를 탐욕스러운 존재로, 말은 고귀한 존재로 묘사했다.
1986년 아트 슈피겔만(Art Spiegelman)은 라는 작품에서 이와 동일한 장치를 이용했다.
수피겔만은 포식자 나치를 고양이로, 희생자인 유대인을 쥐로 표현했다. 도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동물의 상투형을 사용함으로써, 이 두 작가는 전기사육시대는 아닐지라도 초기 사육시대에 뿌리를
둔 동물 이야기라는 오래된 전통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동물을 이용하여 윤리적인 교훈을 가르치거나 인간의 특징을 전형화하는 것에서 희화화(고야의 동판
화는 의사, 교사, 다른 명예로운 전문직 종사자들을 당나귀로 표현함으로써 인간의 위선을 풍자한다)
로 넘어가게 되면서, 나아가 동물은 언어적 희롱의 대상으로 비하되기도 했다. 동물 이름(수탕나귀,
암캐, 뱀, 벌레, 돼지, 늑대)를 들먹이며 욕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모멸감을 주려는 의도이며 특정한
동물과 이런 식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어디서나 보편적인 관행처럼 보인다.

허구적 동물의 출현과 더불어 동물에 대한 인도적인 처우를 위한 제도들도 생겨났다. 동물 생체 해부
실험이 1860년대 의료 커뮤니티에 의해 점차 유망한 연구 방법으로 간주되자, 동물학대방지협회
(RSPCA)에게 이는 어려운 도전 제기였다. 생체 해부를 저지르는 흉측한 자들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의사, 생리학자였고, 게다가 동물 생체 실험이 궁극적으로 인류에게 엄청난 혜택을 가져다준다는 주장
을 쉽게 반박할 수 없었다. 협회는 1876년 동물학대금지법을 후원해 자격증을 가진 사람만이 생체 해
부를 할 수 있도록 허용했지만, 자격증을 획득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같은 해 여성 참정권
의 공공연한 옹호자인 프랜시스 파워 코브(Frances Power Cobbe)는 로마 카톨릭 추기경이자 노동자
권리의 옹호자이며 협회의 부회장이기도 한 헨리 에드워드 매닝(Henry Edward Manning)과 더불어
생체 해부로부터 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빅토리아거리협회를 설립했다.(지금은 전국반(反) 생체해부협
회가 되었다.)

인간과 동물 관계의 미래

인간/동물 관계의 변화 패턴은 우리 사회가 전기사육시대인지, 사육시대인지, 후기사육시대인지에 관
해 가르쳐주는 바가 크다. 하지만 그런 패턴은 또한 모든 동물종 가운데서 인간종의 위상에 관한 변
화하는 현실을 반영한다. 몇 천 년 전 선사시대의 인류의 조상들은 동물에 관해 어떻게 생각했는가,
오늘날 우리는 동물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리고 몇 십 년 후에 나타날 우리의 후손들은 동물
을 인간의 사회적 제의나 경제적인 프로세스로 이용하는 것을 넘어서 어떤 의미를 부여하게 될 것인
가. 지구의 동물군은 우리가 그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과거이자 미래다. 이 장은 후기사육시대의 생
활양식이 색다른 양상으로 펼쳐지고 있는 일본의 사례를 들고, 인간과 동물 관계의 미래가 어떻게 변
화할지 생각해볼 수 있게 질문을 던지는 부분이다.

일본인들의 방식: 후기사육시대적인 불안이 영국과 미국에서 분명히 드러나 있는 반면 일본에서는
그다지 심하지 않은 편이다. 오늘날 일본 문화는 전기사육시대 전통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이는 동물
에 대한 태도, 즉 공자의 자비심 원리와 감정을 가진 동물을 존중하라는 불교의 가르침, 동물의 정령
에 관한 신토(Shinto) 신앙에 바탕을 둔 태도에 의존하고 있다.

애완동물의 소유도 일본인 나름의 특이한 궤적을 그린다. 1990년대 초반부터 펫붐이 일어나 최근 들
어 개와 고양이가 인기를 얻고 있다. 1996년 무렵에는 일본 전체 가구 중 49.1 퍼센트가 어떤 종류
든 애완동물을 소유했다. 이 수치는 미국의 애완동물 소유 수치에 육박한다. 일본의 전자산업 또한
상상의 존재인 다마구치(‘사랑스런 알’) 같은 가상 애완동물과 로봇 애완동물의 발전시켰다.

고양이의 현대적인 변형은 헬로 키티에 잘 구현되어 있다. 헬로 키티는 만화적인 형상이다. 빨간색
머리 리본을 하고 있는 입이 없는 흰 새기 고양이이다. 산리오 사는 1974년 이 캐릭터를 개발했는데,
이제는 화장지에서 주방 용품, 팩스 기계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소비 용품에 등장하고 있다. 산리
오 사는 헬로 키티 캐릭터로 1년에 10억 달러의 로열티를 벌어들인다. 일본에서 그리고 미국의 많은
어린이들에게서 이 동물 아이콘의 압도적인 인기는 놀랍기 그지없다. 헬로 키티는 미국의 미키 마우
스와 달리 영화로 상영되거나 만화책으로 출판된 적도 없다. 헬로 키티는 인간화된 만화적인 동물이
라기보다는 영적인 아이콘이다. 여하튼 어떤 경우든 간에, 생명력을 가진 영혼의 개념이 서구의 애완
전통에서보다는 훨씬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일본의 사례는 일본인들의 역사에서 동물이 차지한 위치
에 바탕을 두고 영적인 동물들을 이용하여 우리 시대의 관심사를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후기사육시대 인간/동물의 관계는 어디로 향하게 될까? 동물과 접촉하면서 살았던 세대가 완전히 사
라져버린 후대에는 인간/동물 관계가 어떻게 변화할까. 인간/동물 관계의 실제 세계에서 마주 지체
될 인간/동물 관계의 미래는 후기사육시대적인 양식이 보여준 동물 착취가 전 세계적으로 얼마나 팽
창할 것이며 그로 인해 점점 더 분노하게 된 후기사육시대 활동가들이 그것에 얼마나 저항할 것인가
에 달려 있다. 당분간 어느 진영도 낙관할 계제가 못 된다. 육류가공업자와 채식주의자 들, 사냥꾼과
밍크 해방주의자 들, 제약회사와 동물실험 반대자들 사이에 중도적 노선은 없다. 철학자들, 과학자
들, 작가들, 영화제작자들은 엄청난 소용돌이 속으로 끌려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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