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의 철학

행성B / 2021년 7월 / 324쪽 / 17,900원

사장의 철학

사장의 철학

안상헌 지음

저자 소개

삶의 문제를 탐구하는 인문학자다. 인문학을 보급하는 ‘애플인문학당’을 운영하고 있으며 ‘아르카디아(ARCADIA)’라는 철학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물론 여러 기업과 단체에서 강의도 하고 있다. KBS1TV 「문화공감」을 진행했고, 경남교육청 인문학 교육진흥위원, 단국대학교 강사, 국민연금공단 HRD전문강사를 지냈다. 지은 책으로 『미치게 친절한 철학』, 『새로운 공부가 온다』, 『인문학 공부법』, 『청춘의 인문학』 외 다수가 있다.

책소개

사업은 사람을 알고, 시대를 읽고, 가치를 창조하는 종합예술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사업가의 철학이 있다. 성공하는 사업가는 자기만의 철학이 있다. 철학을 배우고 익힌다면 실패를 줄이는 것은 물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에도 일조할 수 있다. 이 책은 사장들을 위해 쓴 실전 철학 매뉴얼로, 인간 본성을 꿰뚫어 보게 하고, 천변만화의 시대에 대응할 철학이라는 무기를 제공한다. 소크라테스처럼 새로운 관점에서 질문하고, 공자처럼 통찰하며, 니체처럼 욕망하는 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남다른 경영철학으로 성공한 기업과 CEO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업 현장에서 철학을 적용하는 실체적 방법을 보여준다.

요약본 본문

1부 세계적 브랜드는 철학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구글과 아마존은 어떻게 플랫폼 제국이 됐을까?

아고라: 아리스토텔레스는 폴리스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폴리스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직장, 동호회, 교회, 노동조합, 독서회 등이죠. 인간은 혼자 살 수 없습니다. 혼자서는 생존이 불가능하고, 인간답게 살기도 어렵습니다. 폴리스의 중심으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곳이 아고라입니다. 아고라는 ‘모이다’라는 뜻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을 말합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아고라는 시민이 모여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의 말을 듣거나, 소크라테스 같은 철학자가 토론하는 곳이었습니다. 상인들이 노점에서 물건을 파는 시장, 운동 경기가 열리기도 했죠.

아고라는 우리가 왜 SNS에 접속하는지를 알려 줍니다. 우리가 페이스북에 접속하는 가장 큰 이유는 소통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글과 사진, 영상으로 알립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로 답하죠. 내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좋아요’가 늘어납니다. ‘좋아요’ 숫자가 많을수록 기분이 좋아지죠. 페이스북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만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알리고, 콘텐츠를 홍보하고, 역량을 자랑합니다. 페이스북은 사회적이면서 정치적입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보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인간의 본성, 사회성과 정치성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고대 철학자의 생각에 현재 우리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플랫폼, 접속의 시대: 포노사피엔스는 ‘스마트폰을 항상 들고 다니며 신체 일부처럼 사용하는 현대인’을 이르는 말입니다. 세상은 스마트폰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스마트폰이 필수품이 됐습니다. 아울러 오늘날 우리 시대를 상징하는 말은 ‘접속’입니다. 네이버에 접속해서 검색하고 다음에 접속해서 메일을 보내죠. 유튜브에 접속해서 영상을 보고, 페이스북에 접속해서 이야기를, 인스타그램에 접속해서 사진을 올립니다. 접속이야말로 우리 시대 인간의 모습을 상징하는 핵심 키워드입니다.

접속이 핵심 키워드가 됐음을 증명하는 결정적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플랫폼의 출현입니다. 구글,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은 ‘플랫폼 4대장’으로 불립니다.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디지털 제국들이죠. 이들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강력한 플랫폼을 보유했기 때문입니다. 접속의 물결은 플랫폼으로 몰려들었고, 이들은 플랫폼을 무기로 활용했습니다. 플랫폼이 뭘까요?

플랫폼은 ‘여러 사람이 참여해서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는 환경 혹은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네이버, 다음, 구글, 유튜브, 넷플릭스 등이 모두 플랫폼입니다. 여기 접속해서 뉴스를 보고, 물건을 구매하고, 영상을 보고 소통합니다. 이 모든 활동이 접속을 통해서 이뤄집니다. 우리는 깨어 있는 동안 자신이 선호하는 플랫폼에 상주합니다. 나아가 이제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제작한 콘텐츠를 보여주려 합니다. 글과 사진, 동영상 등을 제작하고, 그것으로 자신이 누구인지 알리고 싶어 하죠. 이처럼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훌륭하게 제공할수록 플랫폼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 겁니다. 고대 그리스인이 아고라를 찾듯이, 우리는 플랫폼에 접속합니다.

사람을 읽는 아마존: 성공한 펀드 매니저였던 제프 베조스는 인터넷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보고, 1994년 아마존을 설립합니다. 온라인 서점으로 시작해서 DVD, 컴퓨터 소프트웨어, MP3 다운로드로 분야를 넓히다가 장난감, 전자 제품, 가구까지 판매하는 종합 쇼핑몰로 진화하죠. 처음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아마존이 첫 흑자를 기록한 2002년까지 인고의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성공 궤도에 오르게 만든 것이 플랫폼이죠.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쇼핑할 때 가장 불편해하는 것이 뭘까요? 바로 복잡함입니다. 회원 가입하고, 주소 등록하고, 신용카드 번호 입력하고… 그러다 지쳐 포기합니다. 아마존은 복잡한 절차를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원클릭 기술을 개발하고 특허를 냅니다. 이전에는 물건을 살 때마다 결제 정보를 입력했지만, 이제 클릭 한 번으로 종전의 배송 주소와 신용카드 번호까지 불러올 수 있습니다. 고객이 환호한 것은 당연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고객의 정보입니다. 고객의 정보를 가졌다는 것은 어떤 고객이 어떤 제품을 구매했고, 어떤 성향이 있으며,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한마디로 사람을 아는 것이죠. 사람은 각자 성향이 있고, 그것을 알면 설득하기 쉽죠.

아마존은 고객의 정보를 가지고 그들을 설득하기 시작합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을 구매하면 ‘이 제품을 구매한 분들이 구매한 제품’ ‘이 제품과 관련된 추천 상품’ 등이 표출됩니다. 지금이야 당연하게 여기지만, 당시엔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수집한 빅 데이터는 ‘아마봇’이라는 AI가 담당합니다. 고객의 성향 데이터를 분석해서 각 페이지에 보일 상품을 재구성하기 때문에, 고객마다 다른 페이지를 보게 되죠. 결과는 매출 증대로 이어졌습니다. 고객의 정보가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한 셈이죠.

분위기를 탄 아마존은 사업을 확장해 A부터 Z까지 모든 물건을 팔겠다는 목표를 세웁니다. 아마존 스토어, e-book 킨들 같은 디바이스 판매로 확장한 뒤 클라우드 플랫폼과 인공 지능 영역까지 넓혔습니다. 그리고 전자상거래의 폭식자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이끌고 있죠습니다. 고객이 머물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하고, 거기서 얻은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했기에 이 모든 것이 가능했습니다. 사람을 알고 사업을 한 것입니다.

나만의 아고라를 찾아라: 자기만의, 우리 회사만의 아고라를 갖고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마존과 구글의 시작은 작았습니다. 온라인 서점, 검색 사이트라는 독특함이 그들의 무기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킬러 콘텐츠죠. 우리들도 각자 잘하는 것이 있습니다. 남들보다 뛰어나고 독특하고 매력 있는 어떤 것 말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고객이 내 플랫폼을 찾을 이유가 없습니다. 사람이 뭔가를 찾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구매, 검색, 메일, 공감, 소통, 뉴스, 비즈니스, 재미 등 각자 목적이 다릅니다. 그 목적을 쉽고 재미있고 저렴하게 달성할 수 있다면 다시 그곳을 찾겠죠.

기업만 플랫폼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플랫폼은 개인에게도 중요합니다. ‘나’라는 사람이 플랫폼입니다. 많은 사람이 나에게 접속합니다. 나와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하고,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위로를 얻습니다. 그들이 내게 접속하는 이유를 안다면, 그리고 그 매력을 끌어올린다면 더 많은 사람이 찾아오겠죠. 나의 킬러 콘텐츠는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지만, 인터넷 환경은 인간의 모습을 바꾸고 있습니다. 이제 ‘나는 접속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진실이 될 것입니다. 접속의 시대, 사람을 아는 것이 힘입니다.

성공한 사장들은 어떻게 일할까?

노예는 어떻게 주인이 되는가: 로마제국은 침략 전쟁으로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고대의 전쟁은 땅을 차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더 큰 목적은 노예를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노예노동을 통한 생산이 고대사회의 물적 토대였기 때문이죠. 주인은 노예를 소유하고 명령하며, 그의 노동으로 편하게 먹고 지냅니다. 그런데 점점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편안하게 먹고 지내는 주인이 노예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농사도 노예가 짓고, 음식도 노예가 하고, 잠자리까지 노예가 봐줘야 합니다. 노예가 주인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노예에게 의존하는 상황이 됐죠.

노예는 강제 노동에 시달리지만, 노동을 통해서 변해갑니다. 자연에서 재료를 얻고, 그것을 가공해 유용한 결과물을 만듭니다. 자신의 노동으로 가치 있는 뭔가를 만들 수 있음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노예는 자신이 힘을 가진 창조적 존재임을 자각합니다. 이제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역전되죠. 주인은 노예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자기 존재 가치를 느낄 수 없습니다. 노동은 창조적 활동이기에, 노동하는 과정에서 인식력이 높아집니다. 노예는 노동을 통해 주인으로 재탄생합니다. 이것이 헤겔이 말하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죠.

마르크스는 헤겔을 이어받아 한술 더 뜹니다. 마르크스에게 노동은 인간 자체입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자, 자연을 가공해서 자연에 영향을 미치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자신이 속한 자연을 노동으로 바꿉니다. 그 과정에서 인간도 변하죠. 우리는 일한 뒤 보람을 느낍니다. 자부심이 생기고, 살아 있음을 자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역량이 커지고, 더 나은 노동의 가능성이 열리죠. 결국 노동이 인간을 만듭니다. 작가가 글을 쓰고, 프로그래머가 코딩하고, 셰프가 고기를 굽는 것은 노동의 결과입니다. 작가, 프로그래머, 셰프는 노동이 만든 것입니다. 노동이 없다면 인간은 동물일 뿐이죠. 노동이 인간을 만든다는 것은 이런 의미입니다.

현대인은 생계유지를 위해 일합니다. 먹고살기 위해서 일하다보니 재미가 없습니다. 힘든 일을 피하려 하고, 어려운 일은 쳐다보고 싶지도 않습니다. 마르크스는 이를 ‘노동의 소외’라고 표현합니다. 인간이 노동에서 소외됐다는 것입니다. 원인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때문이죠. 노동자는 노동의 결과를 돈으로 받을 뿐, 자신이 노동으로 만든 것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자기 일로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노동에서, 삶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성공하는 사람이 일하는 방식: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다름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는 부정적인 의미지만,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자신을 긍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창업하는 경우 이것은 중요합니다. 기업을 일구는 사람은 대부분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기 때문입니다.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마크 저커버그는 모두 자기중심적으로 살았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때가 오기까지 기다리지 못합니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하려는데 학교를 언제까지 다녀야 하는 거야?’라는 의문을 품고 학교를 그만둡니다. 관심 없는 공부를 하는 대신 비디오게임을 하거나 책을 보거나 여행을 합니다. 이런 자기중심성이 엄청난 도전을 하게 만들고, 남들이 생각지도 않은 일에 달려들게 합니다. 일하는 방식도 자기중심적입니다. 모든 일을 자기통제 아래 진행하고, 생각과 행동도 통제합니다. 통제력을 발휘한다는 생각이 자신감을 불러오고, 그 자신감이 일에 달려들게 하죠. 성공하는 사람은 자기중심적이고, 통제력의 달인입니다.

일론 머스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목표가 크다는 것이 특징이죠. 보통 사람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목표를 세웁니다. 그는 어린 시절 책과 컴퓨터에 빠져 살았습니다. 학교와 마을 도서관에 있는 책을 몽땅 읽은 뒤 사서에게 새 책을 주문해달라고 졸랐습니다. 컴퓨터를 접한 뒤에는 프로그래밍에 빠져 살았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좋은 대학에 가는 꿈을 꿀 때, 일론 머스크는 화성에 식민지를 건설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 목표는 여전히 진행행이죠. 테슬라로 자동차 산업의 판도를 완전히 바꾼 그는 이제 화성을 식민지로 삼고, 진공 터널을 지어 지구와 연결하고, 인간의 뇌에 AI를 심으려 합니다. 그는 모험을 좋아하고,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에 차있습니다. 일에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쏟으면서도 지치지 않고 도전하는 것은 이런 자기중심적 사고 때문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노동의 소외는 일론 머스크나 스티브 잡스 같은 이들에게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일은 돈벌이 수단이나 의무 방어가 아닙니다. 자기를 실현하고 삶을 펼치는 과정이죠. 노예노동이 아니라 자신의 힘을 떨치며 삶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성공한 사람은 일에 대한 철학이 있습니다. 노동으로 노예를 넘어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 성공한 사업가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부 성공하는 사업가는 어떤 철학에 집중하는가

철학자와 사업가의 5가지 공통점

철인왕의 등장: “철학자가 왕이 돼야 한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철학자가 왕이 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왜 철인왕을 주장할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철학자가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세상이 어떤 것인지 탐색하고, 지혜를 발휘해서 그곳을 향해 전진하는 사람이 철학자입니다. 원칙도, 가치관도 없는 사람은 현실과 타협하다가 나라를 망치기 십상이죠. 물론 철학자가 꼭 왕이 돼야 하는 건 아닙니다. 철학자가 왕이 될 수도 있고, 왕이 철학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리더에게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국가나 조직에 철학이 없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그야말로 동물적 본능과 사적 이익만이 지배하는 곳이 됩니다. 자기 이익을 채우기 위해 패거리를 이루고, 무리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온갖 술책을 부립니다. 자기 안위와 욕망이 판치는 곳에서 행복한 미래를 꿈꾸기는 불가능합니다. 회사든 국가든 리더는 철학으로 무장하고, 그 철학으로 자신이 속한 집단을 이끌어야 합니다. 플라톤이 한 말은 이런 의미입니다.

플라톤이 죽고 500년 뒤, 그가 꿈에 그리던 철학자 왕이 등장합니다. 바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입니다. 그는 기울어가는 로마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군주이자, 배움과 사색을 실천한 철학자죠. 위기에 처한 로마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덕분에 안녕을 누렸습니다. 그를 보면 왕과 철학자가 비슷한 점이 많음을 발견합니다. 왕은 다음 다섯 가지 점에서 사업가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① 고독: “너의 판단력을 존중하라. 자연이 정연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너의 이성적 판단을 따르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철학자는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철학자는 남들이 생각하지 않는 문제를 안고 혼자 답을 찾아가는 고독한 사람입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황제에 오른 161년, 로마는 기울어가고 있었습니다. 가진 자들의 횡포로 농민들이 땅을 버리면서 빈익빈 부익부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파르티아의 침략으로 소모적인 전쟁을 치러야 했으며, 페스트가 창궐해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로마의 황제 자리는 결코 부귀영화만 누리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중대한 사안을 혼자 결정하고, 호시탐탐 노리는 정적과 싸우며 시끄러운 귀족의 요구까지 다루어야 했습니다. 한마디로 골치 아픈 자리입니다. 그가 “너의 판단력을 존중하라”고 스스로 다짐한 것은 이 때문이죠.

사장의 자리는 고독을 견딜 수 있는 사람만이 앉을 수 있습니다. 사원들은 사장과 밥도 같이 먹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따르는 듯하지만 언제든 돌아설 준비가 되어 있고, 혹시나 하고 도와줄 사람을 간절히 찾지만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그들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업의 시작에서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모든 의사 결정은 오로지 사장에게 달렸습니다. 모든 것이 자기 책임입니다. 엄청난 짐을 지고  가는 사장이나 왕에게 고독은 숙명입니다.

② 통찰: “항상 전체적으로 보라. 모든 것의 원인을 파악하고, 그것이 어디에 있으며, 어떤 목적이 있고, 어떻게 끝나는지 살펴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말합니다. 철학자는 통찰을 추구합니다. 감각으로 파악되는 것을 넘어 보편적 법칙을 발견하고, 이성을 발휘해 무질서에 숨은 진리를 찾으려 합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원인을 추적하고 목적을 발견하기 위해 배우고 분석하고 사색했습니다. 그가 남긴 《명상록》은 하루를 돌아보며 성찰한 일기입니다. 거대한 제국을 이끌 힘이 철학적 통찰에 있음을 《명상록》에서 발견합니다.

사업가에게도 통찰은 중요합니다. 사업은 사람에게 필요한 가치를 발견하고 제공하는 일입니다. 그러자면 사람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왜 원하는지, 어떻게 하면 기뻐하는지 들여다봐야 합니다. 함께하는 사람이 무엇에 감동하고, 무엇에 움직이고, 무엇을 잘하는지 신경 써야 합니다. 일을 왜 하는지, 어떻게 하면 개선되는지, 어디서 문제가 발생하는지 찾아내는 안목도 필요합니다. 사업가는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패턴을 읽어내고 필요한 일을 일으키는 사람입니다. 어지러운 정보를 걷어내고, 근저에 흐르는 맥락을 살피는 매의 눈이 필요하죠. 사업가에게 통찰은 필수적입니다.

③ 용기: “내일 죽을 사람처럼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하라.” “너는 배를 타고 항해를 마쳐 이제 항구에 닿았다. 배에서 내려라. 네가 또 다른 삶을 살기 위해 간다면, 거기에도 신들은 반드시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말합니다. 철학자는 아무도 가보지 않은 곳을 탐험하는 사람입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욕망은 어디서 오는가?’, ‘인식에 한계가 있는가?’ 의문을 품고 아무도 가보지 못한 세계로 들어섭니다. 아무런 정보도, 도와줄 사람도 없습니다. 오로지 혼자 탐험해야 합니다. 용기야말로 철학자의 필수 덕목입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의 안정과 영토 확장을 위해 일생의 대부분을 전쟁터에서 보냈습니다. 또한 거대한 제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혁을 추진해나갔습니다. 그리고 국가 재정이 위기에 처했을 때는 자신이 가진 보석은 물론, 황실 집기까지 팔아서 재원을 마련했고, 황제의 모범에 감동한 사람들이 호응하여, 재정난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사업가도 불확실한 상황에 뛰어들어 새로운 질서를 찾아냅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영역에 도전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듭니다. 세상은 변하는데 사람과 조직은 머무르려 합니다. 게으른 마음과 정체된 조직의 심장에 새로운 피가 흐르도록 동기를 심고 낯선 곳으로 항해를 시작하는 사람이 사업가입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먼저 나서는 사람, 개척과 개혁의 선두에서 용기를 발휘하는 사람이죠.

④ 철학: “인생은 전쟁터와 같고, 명성은 허무하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잠시 머물다 갈 뿐이니, 삶에서 유일하게 기댈 곳은 철학이다. 각자의 가치는 그가 가치 있게 추구하는 것과 같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말합니다. 철학자는 자기 철학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을 의심하라”고 한 회의주의자 피론은 달려오는 마차를 보고 정말 마차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몸을 던졌고, “인간은 자유다”라고 외친 사르트르는 노벨상을 거부하고 레지스탕스에 뛰어들었습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우주가 이성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므로 문제를 일으키는 감정을 통제하고 이성으로 세상을 파악하면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죠. 독실한 스토아학파인 그는 자기 철학을 실천하며 살았습니다.

“We’re in Business to save our home planet.” 우리의 터전인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사업을 한다는 기업이 있습니다. 캐나다에 본사를 둔 파타고니아입니다. 창업주 이본 취나드는 등산을 좋아하는데, 자신이 사용해온 장비들이 환경을 파괴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사랑하는 산과 들을 지키기로 합니다. 친환경 등산 장비를 만드는 사업으로 이제는 서핑, 자전거, 낚시 등 레저 용품을 만드는 국제적 기업이 됐습니다. 자연과 교감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엔진이 없는 ‘조용한’ 스포츠 용품을 공급하죠. 파타고니아는 매출의 1퍼센트를 환경 단체에 지원하고, 온난화 문제와 싸우고 있습니다. 50년 가까이 기업이 유지ㆍ확장된 것은 환경 파괴에 맞선다는 기업의 철학을 철저히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⑤ 절제: “황제의 지위를 누리며 호화로운 삶에 젖지 않도록 조심하라. 검소하고, 선하고, 순수한 태도로 신을 공경하며 정의와 자비, 상냥함으로 자신의 의무에 충실한 용감한 사람이 돼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말합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철저히 절제된 생활을 했습니다. 따뜻하고 편한 침대를 버리고 차가운 바닥에서 잤습니다. 사람들이 환호하는 검투장 관람도 멀리 했죠. 지나친 욕망은 고통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감정에 휘둘리면 국가 경영이라는 자신의 임무에 집중할 수 없기에, 단순한 일상을 유지하며 에너지를 한곳에 집중했습니다.

현명한 사업가의 삶도 단순합니다. 이리저리 쫓아다니느라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습니다. 자신이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번잡한 곳을 피하고, 쓸모없는 것을 버리고, 일상을 단순화하는 절제력을 발휘합니다. 절제된 삶으로 사업에 에너지를 집중하죠. 사업가는 용기를 품고, 지혜로 무장해, 절제로 진군하는 철학자입니다.

3부 통찰력은 어떻게 얻는가

스티브 잡스는 왜 소크라테스와 점심을 먹으려고 했을까?

소크라테스와 질문: “소크라테스와 점심 한 끼를 할 수 있다면 애플의 모든 기술을 포기해도 좋다.”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말했을까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철학과 관련이 있다는 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의 어떤 점이 스티브 잡스를 사로잡았을까요? 아마도 철학의 핵심, 바로 질문의 힘이었을 겁니다. 소크라테스는 누구보다 질문을 잘했고, 그 힘으로 고대 아테네를 뒤흔들었습니다. 사람은 생각합니다. 그리고 생각의 시작은 질문이죠. 어떻게 질문하느냐에 따라 생각의 폭과 깊이, 수준이 달라집니다. 질문을 잘하면 문제를 전혀 다른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문제를 재정의하는 거죠. 항상 같은 관점에서 문제를 보고 그 대안을 찾아내는 방식은 소모적입니다. 문제를 새로운 관점으로 볼 때 통찰력이 생깁니다. 철학은 문제를 재정의하고, 이를 통해 통찰력을 이끌어냅니다. 그 방법이 질문이고, 소크라테스는 질문을 가장 잘 다룬 사람이죠.

질문의 기술: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능력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지혜입니다.” “지혜란 무엇인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여러 가지 해결책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 “문제가 시작된 이유를 찾으면 됩니다.” “그것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 “과거를 돌아보면 됩니다. 일이 일어나는 순서를 살펴보면 문제의 핵심을 알 수 있으니까요. 선생님, 질문에 대답하다 보니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문제를 풀려면 과거를 돌아보고 자기를 성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질문하고 대답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인식에 도달하게 하죠. 산파처럼 새로운 깨달음을 낳게 한다는 점에서 산파술이라고 부릅니다. 질문은 대답을 모색하고 새로운 생각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것이 질문의 힘이죠. 철학은 질문을 다루는 학문입니다.

매출이 떨어져 고민인 회사가 있습니다. 경쟁이 심해져서, 고객의 취향이 바뀌어서, 제품에 문제가 있어서 등 원인을 찾겠죠. 그다음에는 대안을 내놓을 겁니다. 값을 내리거나, 홍보 방법을 바꾸거나, 불량을 줄이는 방법 등이 있습니다. 이때 산파술을 사용하는 사람은 ‘왜 제품을 만들지?’, ‘왜 사업을 하지?’ 등 스스로 질문하며 다른 차원의 인식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차원이 다른 질문은 문제를 낯설게 하고, 새로이 바라보게 합니다. 대안을 찾기 전에 문제를 재정의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힘이자 공부하는 이유입니다.

마인드가 다른 사람: “사람들은 우리가 무엇을 만드는지 보고 구매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왜 만드는지 보고 결정한다.” 사이먼 사이넥은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에서 질문이 경영과 생활에 미치는 힘에 대해 매력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그는 ‘why’라는 질문을 강조하죠. ‘이 일을 왜 하는가?’, ‘제품을 왜 만드는가?’ 같은 질문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우리 회사 제품을 구매하는 이유는 제품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제품을 만드는 철학에 동의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why’는 목적이나 존재 이유를 밝히는 철학적 질문입니다. 이에 대답할 때, 철학 있는 사람과 기업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철학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함께 일하고, 그 철학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제품을 구매하겠죠. 애플은 “우리는 다른 가치를 추구합니다. 그래서 이런 제품을 만들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애플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에 동의하는 이들입니다. 당연히 충성심 높은 고객이 되겠죠.

평범한 사람들은 ‘what’을 질문합니다. 먼저 ‘뭘 만들까?’, ‘뭘 할까?’ 생각하는 겁니다. ‘우리가 뛰어난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디자인도 예쁜데 구매하시죠’라는 식입니다. 이런 방식은 철학이나 가치가 아니라 제품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제품만 눈에 보이기 때문에 고객은 언제든 다른 제품을 찾아 떠날 수 있습니다. 청소년이 종전의 직업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 대학생이 여러 기업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 퇴직을 앞둔 직장인이 여러 프랜차이즈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괴츠 베르너는 『철학이 있는 기업』에서 장수 기업의 성장 비결을 설명하며 ‘왜, 무엇을 위해 그 일을 하는가?’를 질문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해야 돈을 벌지?’, ‘어떻게 해야 문제가 해결되지?’ 대신 ‘왜 하는가?’라는 질문이 필요하다고요. “우리는 대부분 노하우에 집중하지만, 노와이(know-why)가 훨씬 중요하다. 노와이를 묻는 사람은 예산이나 이익이 아니라, 사업의 목표와 의미에 몰두한다. 그런 기업에서 이뤄지는 모든 논의와 대화는 차원이 다르다.”

우리는 만들어진 지식이나 경험을 통해 세상을 이해합니다. 이런 방식은 편하지만, 종전의 관점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새로운 질문은 논의와 대화의 차원을 바꿉니다. 전혀 새로운 인식에 도달하게 하고, 차원 높은 논의를 불러옵니다. 괴츠 베르너는 장수하는 기업은 이런 질문을 던졌고, 자기 가치를 추구해왔다고 분석합니다.

고객에서 인간으로: 철학을 공부하는 이유 중 하나는 관점의 변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살아가다 부딪히는 문제에 대응하는 방식을 바꾸려면 새로운 철학이 필요합니다. 그때 문제를 다르게 보고, 창의적으로 풀어갈 수 있습니다. 지금 철학의 중요성이 되살아나는 것은 시대가 철학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경영 기법을 통한 문제 해결이 한계에 달하고, 기업 간 기술 수준이 비슷해진 시점에 기업은 인문학을 눈여겨봤죠.

인문학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들여다봅니다. 인문학은 사람을 고객으로 대하던 기업이 인간의 관점이라는 더 큰 차원으로 인식을 전환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묻던 기업이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질문하기 시작했죠. 그 선두에 선 사람이 스티브 잡스였고, 소크라테스와 한 끼 식사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책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모두 플라톤이나 크세노폰 같은 제자들이 남긴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질문하는 사람이지,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질문을 통해 세상을 알아가고 문제에 접근하면 되기에, 이론으로 만들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론을 만들면 거기 갇혀 문제를 새롭게 보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철학을 배우는 사람들은 이론적 지식을 갈구하며 그것으로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소크라테스는 지식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보라고 권합니다. 아는 지식, 익숙한 관점 대신 새롭고 차원 높은 눈으로 보라는 말입니다. 그 방법이 질문하고, 질문의 힘을 얻는 것이 우리가 철학을 하는 이유입니다.

4부 사장은 어떻게 철학으로 강해지는가

사업은 음모다

불행의 시작: 가난한 나라와 부유한 나라 사람 중 누가 더 행복할까요? 통계는 일관성이 없습니다. 가난한 나라가 행복하다는 결과도 있고, 부유한 나라가 행복하다는 결과도 있으니까요. 이런 조사는  의미가 없습니다. 설문 조사는 조사일 뿐이고, 행복은 ‘내가 어떻게 느끼냐’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단칸방에 네 식구가 모여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일용직 노동자고, 어머니는 호떡 장사를 했습니다. 연탄불로 난방을 하고, 물을 데워 세수했습니다. 간밤에 연탄불이 꺼지면 아침에 얼음물로 세수한 기억이 생생합니다. 주인집까지 다섯 가구가 함께 사는 판자촌이었지만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은 이웃도 그렇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연탄불이 꺼지면 불을 빌려주고, 정전이 되면 한 집에 모여 앉아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옆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였지만, 사생활 침해로 시끄러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네 집에 놀러갔습니다. 콘크리트로 지은 집에 처음 가보았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평범한 중산층이지만, 당시에 그런 집은 흔치 않았습니다. 친구가 혼자 쓴다는 방에는 TV에서나 보던 침대가 있더군요. 그 후 친구가 달리 보였습니다. 옷도 다르고, 행동도 다르고, 씀씀이도 다른 그 친구가 부러웠습니다. 볼 필요가 없는 것을 본 탓입니다.

에피쿠로스의 처방전: 헬레니즘 시대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상대적 박탈감의 문제를 잘 이해하고, 명확한 처방까지 만들어 실천했습니다. 그의 처방은 지금 우리에게도 분명한 행복의 길을 제시합니다. 에피쿠로스는 재산을 털어 정원이 딸린 집을 구하고, 그곳에 학교를 열었습니다. 집 앞 정원을 학교처럼 운영해 정원학교라 불렸습니다. 정원에 사람들을 모아 철학을 가르치고, 숙식을 함께했습니다. 그가 철학을 배우는 공동체를 만든 이유는 뭘까요?

“가장 순수한 안전은 대중의 고요와 은거에서 생겨난다”. 에피쿠로스는 그의 저서 『쾌락』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에피쿠로스는 대중에게서 멀어지고, 쓸데없는 지식과 정보를 차단하기 위해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현대사회를 대중사회라고 합니다. 대중은 대량생산과 소비에 익숙하고, 생산의 패턴이 획일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회가 흘러가는 방향에 따라가는 것이 대중이기 때문입니다. 비판적 사고로 자기 생각을 펼치기보다 충분한 돈, 안전한 삶처럼 사회가 말하는 욕망에 이끌립니다. 이런 경향이 자기다운 삶을 저해합니다.

에피쿠로스가 대중에게서 멀어지라고 하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대중은 “네 인생을 사는 것은 위험해.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소리를 들어”라고 외칩니다. 그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도 다른 사람에게 들은 거죠. 대중은 스스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디어의 소리를 듣고 그대로 옮깁니다. 그들은 두려워합니다. 자기 생각을 가지고 스스로 길을 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고,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버거운 일입니다. 대중은 그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에피쿠로스는 “밀짚에 누워도 두려움이 없는 것이 마음의 평정을 잃은 채 호화로운 금 의자에 앉는 것보다 낫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예전보다 훨씬 많이 가졌음에도 미래를 두려워하며 평온을 잊고 삽니다. 우리는 정보가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지만, 많은 정보는 새로운 문제를 불러옵니다. 생각만 복잡해지거나 잘못된 정보로 판단을 그르칠 수도 있습니다. 홈쇼핑 채널을 보지 않았다면 사지 않았을 제품이 집에 널렸습니다. 고급 승용차를 탄 친구에게 자극받아 구입한 자동차 할부금 때문에 힘들어 합니다. 철학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서 분명해집니다. 자기 철학이 있다면 대중의 소리, 세상의 정보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자기를 혹사하지도, 아이들을 치열한 생존경쟁의 장으로 내몰지도 않을 겁니다. 어떻게 살지는 내가 결정합니다. 자기 철학이 있을 때, 그 결정을 지키고 살 수 있습니다.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아는 사장이라면 사업을 지나치게 확장하려는 욕심을 버릴 겁니다. 남의 것, 타인의 소리에 민감할수록 무리하게 사업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고 아예 귀를 닫고 있을 순 없습니다. 세상의 변화를 파악해야 하니까요. 중심이 중요합니다. 중심을 잡고 정보를 봐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철학을 꾸준히 키워가야죠.

우정은 음모다: 에피쿠로스는 우정을 음모라 부릅니다. 그가 말하는 음모란 ‘생각이 맞는 사람들이 펼쳐가는 관계의 힘’입니다. 마음 맞는 친구를 만나 뭔가를 함께하면 행복합니다. 에피쿠로스가 정원학교를 만들고 공동체 생활을 한 이유가 함께 우정을 쌓으며 음모를 꾸미기 위해서입니다.

그의 공동체는 철학이 비슷한 사람이 모여 함께 공부하고 일하고 생활하는 곳입니다. 철학을 공부하고, 필요한 것을 만들어 자급자족하며 살았습니다.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으로 만족한 삶이었습니다. “물 한 잔과 빵 하나면 신도 부럽지 않다”는 말에 에피쿠로스의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적은 것으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데, 왜 더 많이 가지려 하느냐는 겁니다. 더 많이 가지려면 더 많이 일하고 경쟁해야 하고, 그럴수록 행복은 멀어집니다. 적은 것으로 만족하면 즉시 행복할 수 있겠죠.

에피쿠로스는 쾌락주의자로 불립니다. 그가 말하는 쾌락은 육체적으로 고통 받지 않는 것, 정신적으로 혼란을 겪지 않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평정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마음이 편안하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가진 게 없어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면 쾌락이고 행복입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친구와 음모를 꾸며야 합니다. ‘우리 이렇게 살자’고 약속하고 실천하는 겁니다. 이때 외부에서 들려오는 정보를 통제해야죠. 물리적 통제와 공유하는 철학은 정신적 방패가 돼서 그들을 보호해줄 겁니다. 이런 보호 장치가 없으면 대중의 소리에 쉽게 현혹되고 흔들립니다. 같은 철학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함께 있기에 무리한 욕망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자기 철학을 실천한 에피쿠로스는 두 가지 커다란 행복을 얻습니다. 평정심과 수많은 친구입니다. 평정심을 얻는 원천 가운데 하나가 친구입니다. 친구는 외로움을 덜어주고, 존재감을 확인하게 해주며,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완화해주는 존재니까요. 에피쿠로스는 자기 시대의 어떤 사람보다 친구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의 철학에 동의하는 친구들이 다른 친구를 데려왔을 테니까요.

사업가는 친구가 많습니다. 저녁마다 사람을 만납니다. 사람이 힘이기 때문이죠. 이때 뜻이 맞지 않는 사람은 피해야 합니다. 가치관이 다르면 가까워질수록 괴로운 일이 생깁니다. 멀리 있을 때 드러나지 않는 것이 가까워지면 보입니다. 그것이 구체적인 생활과 일로 연결되면 갈등이 생깁니다. 힘을 합쳐야 하는 상황에서 갈등으로 에너지를 분산하면 될 일도 안 되죠. 철학이 맞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사업이고, 사업은 음모입니다.

철학은 흔들리며 자란다: 철학은 고정된 지식이 아니라, 생각의 상태입니다. 변하고 성장하죠. 에피쿠로스는 자신의 철학을 지키고 키우기 위해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이런 공동체는 철학이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혼자 책을 읽는 것보다 독서 모임에 참여하는 할 때 책을 계속 읽을 가능성이 큽니다. 함께 배움을 지속할 때 철학도 튼튼하게 자랍니다.

철학을 지식이라고 생각하면 아는 것에 만족하게 됩니다. 그러나 지식은 지식일 뿐입니다. 삶은 지식이 아니라 생활이고, 생활은 활동입니다. 활동이 되지 못하는 지식은 무의미합니다. 지금 자기 생각, 자기 철학이 있다면 그 철학이 활동이 되게 해야 합니다. 이때 함께할 사람이 있다면 더 좋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우리에게 자기 철학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삶으로 보여줍니다. 에피쿠로스는 행복하게 산 모양입니다. 헤르마르쿠스가 스승의 삶을 다음과 함께 표현합니다. “에피쿠로스의 삶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때, 온순함과 자기만족 측면에서 전설로 생각될 수 있다.”

본 도서요약본은 원본 도서의 주요 내용을 5% 정도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원본 도서에는 나머지 95%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보다 많은 정보와 내용은 원본 도서를 참조하시기 바라며, 본 도서요약본이 좋은 책을 고르는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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