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행복한 사람

스스로 행복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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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행복한 사람
랄프 왈도 에머슨 지음
끌레마

책소개

버락 오바마, 헤럴드 블룸, 마이클 잭슨 등 수많은 천재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어준 이 책은 저자의 글들 가운데 우리 삶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과 해답만을 모아 엮은 책이다.

요약본 본문

스스로 행복한 사람
랄프 왈도 에머슨 지음
끌레마 / 2013년 1월 / 232쪽 / 13,800원

1장 스스로 주인이 되는 길

존재에 증명은 필요 없다
나의 재능이 아무리 하찮고 보잘것없어도, 나는 지금 이렇게 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스스로 확신을 얻거나 동료들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서 자신에 대해 어떤 부차적인 증명도 할 필요가 없다. 정말로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이것은 일상생활에서나 영적인 삶에서나 똑같이 어렵다. 그러나 중요한 것과 하찮은 것을 구분하는 훌륭한 기준이 되어준다. 세상의 견해를 좇아 사는 것은 쉬운 일이다. 홀로 자신의 생각만을 좇아 사는 것도 쉽다. 그러나 위대한 사람은 군중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더없이 온화하게 독립적이고 우아한 삶을 유지한다.

설명이 필요 없는 행위
여러 다양한 행위도 그때그때 정직하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면, 그 속에서 하나의 동일성이 생겨난다. 모두 다른 것처럼 보여도 각각의 행위들이 동일한 의지에 따라 조화를 이룬다. 조금 거리를 두고 높은 차원에서 생각해보면 다양성은 보이지 않는다. 더없이 훌륭한 배도 바람에 따라 수없이 방향을 바꾸며 지그재그로 항해한다. 하지만 멀리서 보면 배의 행로는 대체로 일직선을 그린다. 마찬가지로 진정성이 있으면 우리의 행위는 저절로 설명이 되고, 우리의 다른 행위들도 더불어 설명이 된다. 그러나 영합은 어떤 것도 설명해주지 못한다. 자신의 생각에 따라 행동하라. 그러면 이제까지의 모든 행동들이 이제 우리 자신을 정당화해줄 것이다.

그대 자신으로 살아라
나는 부모를 봉양하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한 사람의 충실한 남편이 되고자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전에 없던 새로운 방식으로 이런 역할들에 충실할 것이다. 나는 당신들의 관습에 따르지 않을 것이다. 나 자신이 될 것이다. 당신들을 위해서 더 이상 나 자신을 길들이지 않을 것이다. 당신들도 나를 길들일 수 없다. 당신들이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면 우리는 더욱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 해도, 나는 당신들이 마땅히 그렇게 하도록 변함없이 노력할 것이다. 내가 싫어하는 것이나 좋아하는 것도 숨기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마음 깊은 곳에 신성이 숨어 있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내 안에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있을 때마다, 가슴이 시키는 일이 있을 때마다 그것이 무엇이든 열심히 할 것이다.

당신이 고귀하다면 난 당신을 사랑할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위선적인 애정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을 것이다. 진실하기는 해도 나와 같은 진리를 품고 있지 않다면, 당신 자신의 친구를 찾아가라. 나는 내 친구를 찾을 것이다. 이것은 이기심이 아니라 겸허하고 진실한 마음에서 하는 말이다. 아무리 오랫동안 거짓 속에서 살았더라도 당신과 나 그리고 모든 인간의 궁극적인 관심은 진실 속에서 사는 것이다.

어디를 가든 내가 나를 따라다닌다
여행은 어리석은 사람의 낙원이다. 한 번이라도 여행을 떠나 보면, 여행지가 생각처럼 신기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집에서 생각할 때는 나폴리나 로마에 가면 그곳의 아름다움에 취해 슬픔을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가방을 싸 들고 친구들과 작별의 포옹을 하고 배에 오르지만, 결국 나폴리에서 그 꿈은 깨지고 만다. 바로 옆에 내가 피해온 분명한 사실, 변함없는 슬픈 자아가 그대로 버티고 있다. 바티칸과 궁전들을 찾고, 아름다운 풍경이나 상징에 도취한 척하지만, 실제로는 도취되지 않는다. 내가 어디를 가든 내 안의 거인이 나를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주체적인 인격체로 홀로 서라
인내하고, 인내하라. 모든 선한 것, 모든 위대한 것의 그림자를 친구 삼고, 그대 자신의 무한한 생명력에 대한 통찰을 위안 삼아, 우주의 원리를 연구하고 전달하라. 타고난 재능을 발현하고,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을 자신의 일로 받아들여라. 이 세계에서 하나의 주체적인 인간으로 서지 못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하나의 인격체로 평가받지 못하고, 각자 이루어내야 할 고유한 결실을 맺지 못하고, 몇백 명이나 몇천 명으로 이루어진 어떤 분파나 당의 일원으로서만 인식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북이니 남이니 하는 지리적인 요인에 따라 의견이 엇갈리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2장 미루지 말고 오늘을 살아라

인생이라는 신비
경이로 가득 차 있지 않다면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없으리라.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떠 창가로 다가간다. 그리고 먼동이 터오는 풍경을 바라보며, 과거의 내 모든 생활습관을 뭉개버리고 새로운 날들로 나를 초대하는 대자연의 신비로운 비밀을 발견한다.

무심의 지혜
어떤 생활방식이나 행동양식에도 반대 의견은 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곳곳에서 부딪히는 반대 의견에도 무심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가장 현실적인 지혜 가운데 하나이다. 쓸데없는 생각으로 자신을 망치지 말고, 어디에 있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삶은 철학적인 것도, 비평적인 것도 아니다. 오로지 강인한 것이다. 인생에서 최고의 행복은 자신이 찾아낸 것을 의심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사람, 세상과 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다.

행복과 지혜
자연은 한눈파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므로 아이들에게, “얘들아, 조용히 밥이나 먹어. 먹을 땐 잡담하는 게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은 자연의 참뜻을 전하는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한눈팔지 않고 우리 눈앞에 다가온 시간을 채우는 것이 행복이다. 지금 이 순간을 잘 마무리하고, 길 위에 놓은 한 걸음 한 걸음에서 여행의 목적을 발견하고, 가능한 한 유익한 시간을 많이 가지는 것이 진정한 지혜이다.

소박하고 진실한 삶
허영심이 강한 여행자는 왕후나 귀족, 귀부인에게 들은 말이나 행동을 들먹이며 자신의 삶을 그럴듯하게 포장한다. 야심에 찬 속물은 자신의 수저나 브로치, 반지 등을 자랑하고, 화려한 명함이나 자신에게 쏟아진 찬사를 잘 간직해둔다. 좀 더 교양 있는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특별히 흥미 있고 시적인 일들을 강조한다. 로마에 갔던 일이나 그가 만난 천재, 그가 아는 명망가, 어제 본 멋진 풍경, 산에서 한 생각들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삶에 낭만적인 색조를 덧칠한다.

그러나 신을 예찬하는 사람은 소박하고 진실하다. 전혀 허풍스럽지 않으며, 좋은 친구도 갖고 있지 않고, 기사도 정신도 없고, 모험적인 사건도 없고, 다른 사람들의 칭찬을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지금 이 순간 속에, 평범한 일상의 진실한 경험들 속에 머문다. 현재의 순간과 평범하고 사소한 일들이 그의 생각에 스며들어 빛의 바다마저 흡수하기 때문이다.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진정으로 그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그대에게 이끌린다. 그대는 지금 친구를 찾아 뛰어다닌다. 그러나 발은 부지런히 움직이되 정신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 친구를 찾지 못해도, 그것이 최선이라고 받아들이면 된다. 그대 안의 힘은 그의 안에도 있다. 그러므로 둘이 만나는 것이 최선이라면, 그 힘이 둘을 만나게 할 것이다.

그대는 지금 그대의 재능과 취향이 이끄는 대로, 인간에 대한 사랑과 명예에 대한 갈망으로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그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하자. 그래도 그런 상황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아직 그대가 그 일을 할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대가 준비가 되면 그 일은 자연스럽게 그대에게 다가올 것이다.

부자의 참된 의미
부자란 수입과 지출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지출이 수입보다 적고, 이런 상태를 꾸준히 유지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 사람을 아는 법
그가 읽은 책과 그가 사귀는 친구, 그가 칭찬하는 대상, 그의 옷차림과 취미, 그의 말과 걸음걸이, 눈의 움직임, 방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3장 참된 만족의 조건

단점도 때론 도움이 된다
속의 수사슴은 자신의 뿔은 자랑스러워하고 다리는 싫어했다. 그러나 사냥개가 쫓아왔을 때 다리 덕분에 살고, 이후에 뿔이 가지에 걸려 죽었다. 이처럼 누구나 일생을 살면서 자신의 단점에 감사해야 할 때가 있다. 진리와 씨름해보지 않으면 진리를 충분히 깨달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단점으로 고생해보고 자신에게 없는 장점을 다른 것으로 극복해봐야,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사회생활에 장애가 되는 기질적인 단점을 갖고 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단점을 계기로 혼자 있는 것을 즐기고 스스로를 돕는 습관을 길러야 할 것이다. 그래서 상처 입은 조개처럼 단단한 껍질 속에 찬란한 진주를 품어야 할 것이다.

비난이 칭찬보다 안전하다
비난이 칭찬보다 안전하다. 나는 언론의 지지를 받는 것을 싫어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나에게 불리한 말을 듣는 동안에는, 성공할 것 같은 확신이 든다. 그러나 꿀처럼 달콤한 칭찬의 말을 들으면, 아무런 대책 없이 적 앞에 나선 사람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굴하지 않는 한, 모든 해악은 은인과 같다. 샌드위치 섬의 토인들은 그들이 죽인 적의 힘과 용기가 자신들에게 옮겨온다고 믿었다. 칭찬의 유혹에 저항하는 만큼 우리의 힘은 강해진다.

사랑, 앎, 아름다움에는 결코 제한이 없다
정직은 어떤 대가를 지불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미덕이나 지혜에는 아무런 대가가 없다. 미덕을 행할 때 우리는 온전히 존재하게 되고, 세상에 무언가를 보태게 된다. 이런 순수한 시각에서 생각해보면, 사랑에는, 앎에는, 아름다움에는 지나침이 있을 수 없다. 영혼은 미덕의 제한을 용납하지 않으며, 언제나 낙천주의를 주창할 뿐 결코 염세주의를 말하지 않는다.

영혼의 성장만이 진정한 이득이다
미덕으로 인한 이득에는 아무런 부담도 없다. 그러나 물질상의 이득에는 대가가 따른다. 아무런 공도 노력도 없이 얻은 이득이라면, 나에겐 이득을 볼 아무런 근거가 없다. 이런 이득은 어느 날 바람이 불면 날아가버리고 만다. 나는 노력하지 않은 이득이 저절로 굴러들어오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4장 자신의 삶을 주 교재로, 책은 주석으로

배우는 자의 조건
배우는 자는 자유로워야 한다. 자유롭고 용감해야 한다. ‘자신의 본성에서 우러나지 않는 한 어떤 속박도 받지 않는다’라는 자유의 정의에 따라야 한다. 배우는 자는 또한 용감해야 한다. 배우는 자라면 마땅히 공포를 버려야 한다. 공포는 언제나 무지에서 솟아난다. 위험한 시기에 자신은 보호받는 계층이라고 생각하고 두려움을 회피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또 타조처럼 꽃이 만발한 숲에 머리를 숨기거나, 두려움을 잊고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 휘파람을 부는 아이처럼 시를 읊조리면서 일시적으로 평화를 구하는 것도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위험은 여전하고, 두려움은 우리에게 더욱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배우는 자는 당당하게 돌아서서 두려움을 직면해야 한다. 두려움의 눈을 들여다보고, 본성을 탐색하며, 근원을 살펴야 한다. 바로 앞에서 두려움이라는 사자가 새끼를 낳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한다. 그러면 두려움의 본성과 영역을 완전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의 탄생
배우는 자는 주위의 세계를 자신 속에 받아들인다. 이 세계에 대해 명상하고,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을 다시 토해낸다. 세계는 생명이 되어 그의 마음속에 들어갔다가, 진리가 되어 그에게서 나온다. 생명력이 짧은 상태로 들어갔다가, 불후의 사상이 되어 나온다. 죽은 사실이었던 것이 이제는 살아 있는 사상이 된 것이다. 사상은 이제 스스로 설 수 있고, 걸을 수 있다. 인내하고, 비상하며, 영감을 준다. 그것을 만들어낸 마음의 깊이만큼 높이 날고, 오래 노래 부른다.

생활이 우리의 사전이다
학자는 활동에 욕심을 내야 한다. 생활은 우리의 사전과 같다. 시골에서의 노동, 도시 생활, 장사와 제조업을 배우는 일, 여러 사람들과의 진솔한 교제, 학문과 예술에 바치는 시간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다. 그 모든 활동을 통해 우리의 생각을 나타내고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언어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연설가의 말을 듣든, 그가 사용하는 언어의 빈약함과 풍요로움을 보고 그가 얼마만큼의 삶을 경험했는지 알 수 있다. 건물을 짓는 데 사용하는 타일과 층샛돌이 채석장에서 나오듯, 말은 우리의 삶 속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가 문법을 배우는 방식이다. 대학이나 책은 단지 들판이나 공장에서 만들어진 언어를 복사할 뿐이다.

행동하지 않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행동하지 않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진정한 학자 치고 용맹심이 없는 사람은 없다. 행동은 사상의 출발이자 사상이 무의식에서 의식의 상태로 변화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살아온 만큼만 안다. 우리는 누구의 말에 생명력이 있고, 누구의 말에 생명력이 없는지 즉시 알아챈다. 우리 주위에는 영혼의 그림자 혹은 나의 그림자인 세계가 널리 펼쳐져 있다. 그 세계는 나의 사상을 열어주고, 나 자신을 알게 해주는 열쇠와도 같다.

나는 그 소란 속으로 기꺼이 달려 들어간다. 옆 사람의 손을 잡고 무리 속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은 채 함께 괴로워하고 함께 일한다. 우리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인생을 아는 만큼만 불모의 황무지를 정복하고 그곳에 나무를 심을 수 있으며, 나의 존재와 영역을 확장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체력을 아끼기 위해서나 한가하게 낮잠을 자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책 속에서 만나는 나만의 전기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은 안다. 역사나 시, 이야기 속에도 얼마나 중요한 보물이 들어 있는지를. 시인은 기이하고 비현실적인 상황을 묘사하는 인물이 아니라, 모두에게 진실한 고백을 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잘 이해되는 오래된 시 속에서 자신의 비밀스러운 전기(傳記)를 발견한다. 자신만의 은밀한 모험 속에서 이솝과 호머, 하피즈, 아리오스토, 초서, 스코트의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만나고, 자신의 머리와 손으로 그 이야기들을 확인한다.

5장 그저 아는 것이 진리이다

그저 아는 것이 진리이다
아이들을 다룰 때, 나의 라틴어나 그리스어 실력, 나의 업적, 돈 같은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나의 영혼만이 도움이 될 뿐이다. 내가 고집이 세면, 아이도 똑같이 나에게 고집을 부린다. 그러면 난 부끄럽게도 완력을 이용해서 아이를 때리게 된다. 하지만 내가 고집을 버리고, 영혼의 소리에 따라 움직이고, 영혼을 둘 사이의 심판관으로 삼으면, 아이의 눈에서도 똑같은 영혼이 빛난다. 나와 더불어 존경과 사랑으로 충만해진다.

우리는 진리와 마주하면, 즉시 그것이 진리임을 알아차린다. 회의적인 사람이나 냉소적인 사람들이 뭐라 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듣기 싫은 소리를 들으면 이렇게 묻는다. “그것이 진리라는 것을, 당신 말이 맞다는 것을 어떻게 알죠?” 그러나 진리를 보면 그것이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진리임을 안다. 눈을 떴을 때 자신이 눈을 뜨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인간은 수원이 감추어져 있는 강물과 같다
인간은 수원이 감추어져 있는 하나의 흐름과 같다. 우리의 존재는 근원을 알 수 없는 어떤 것에서 우리에게로 흘러든다. 미래를 가장 정확하게 예측하는 사람도 다음 순간 어떤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나서 우리를 방해할지 알 수 없다. 나도 어떤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나의 의지보다 한층 고차원적인 근원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사상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모르는 어떤 곳에서 시작해, 내 마음속으로 흘러드는 저 강물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내가 수혜자임을, 수원이 아니라 이 신비로운 물을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는 구경꾼임을 깨닫는다. 나는 다만 갈망하고 바라보며 받아들인다. 이 광경이 내가 아닌 어느 아득한 원동력에서 시작된 것임을 깨닫는다.

진짜와 가짜
뛰어난 변론가로 인정받는 사람이나 세상의 이치를 잘 아는 사람과 자신의 생각에 도취되어 이런저런 예언을 해대는 광적인 신비가. 이 두 부류의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은 다음과 같다. 한쪽은 사실의 참여자 혹은 소유자로서 자신의 ‘마음 안으로부터’, 다시 말해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난 말을 한다. 반면에 다른 한쪽은 단순한 방관자로서 ‘마음 밖으로부터’ 말을 하거나 다른 사람의 생각을 토대로 아는 척한다.

풍경과 나
빠르게 달리는 기차의 차창으로 아주 익숙한 시골 풍경을 바라볼 때, 얼마나 새로운 생각들이 우리를 스치는가! 가장 익숙한 대상도 조금만 다르게 보면 우리를 더없이 즐겁게 해준다. 암실에서 보면, 열차 안의 판매원이 끌고 다니는 수레도, 함께 여행하는 가족의 모습도 우리를 즐겁게 한다. 몸을 숙여 가랑이 사이로 풍경을 보라. 20년 동안 보아온 풍경도 말할 수 없이 새롭고 재미있게 보일 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관찰자와 풍경, 인간과 자연 사이의 차이점을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외경 어린 기쁨을 맛본다. 세계는 끊임없이 변하는 풍경으로 존재하는 반면 우리 안의 어떤 것은 결코 변하지 않음을 알게 되면서 숭고한 감정을 느낀다.

사물을 자신의 생각에 맞추는 사람, 자신의 생각을 사물에 맞추는 사람
감각적인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사물에 맞춘다. 반면에 시인은 사물을 자신의 생각에 맞춘다. 전자는 자연이 뿌리 박혀 고정된 것이라고 보는 반면, 후자는 자연을 유동적인 것으로 보고 자연 위에 자기의 존재를 새긴다. 그래서 감당하기 힘든 세계도 시인에게는 부드럽고 다루기 쉬운 곳이 된다. 시인은 먼지나 돌에도 인간성을 부여해서 그것을 이성의 언어로 표현한다. 그러므로 상상력은 이성이 물질계를 이용하는 수단이라고 할 수도 있다.

셰익스피어는 자연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능력이 어느 시인보다도 탁월했다. 그는 제왕 같은 시혼(詩魂)으로 삼라만상을 마치 장난감처럼 이 손에서 저 손으로 던지면서 마음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상상들을 표현하는 데 이 장난감을 이용했다.

위대한 창조자가 되는 길
모든 위대한 시인들의 내면에는 그들이 구사하는 어떤 재능보다도 우월한, 인간성에 대한 지혜가 들어 있다. 저자나 재치 있는 사람, 정당인, 세련된 신사도 인간 자체를 대신하지는 못한다. 인간성은 호머 속에서, 초서 속에서, 스펜서 속에서, 셰익스피어 속에서, 밀턴 속에서 빛을 발한다. 그들은 진리에 만족하고 적절하게 표현한다. 그래서 열등하지만 인기 있는 작가들의 광적인 열정과 격렬한 색채에 길들여진 사람에게는 너무 딱딱하고 차갑게 여겨질 것이다. 그들은 유익한 영혼에 자유로운 흐름을 허용해서 시인이 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 영혼은 그들의 눈을 통해 자신이 창조한 것을 다시 보고 축복한다. 그 영혼은 지식보다 우월하고, 그것이 만들어낸 어떤 작품보다도 지혜롭다.

6장 자연은 영혼을 치유하는 병원

인간을 신처럼 만들어주는 약
자연은 약과 같다. 해로운 일이나 어울림 때문에 망가진 몸과 마음을 원래의 상태로 회복시켜준다. 상인이나 변호사는 거리의 소음과 술책에서 벗어나 하늘과 숲을 바라보며 다시 인간이 된다. 자연의 영원한 고요 속에서 진정한 자기를 발견한다. 눈의 건강에는 지평선이 필요하다. 먼 곳을 바라볼 수 있는 한 우리의 눈은 결코 피로해지지 않는다.

어스름한 새벽녘부터 해가 떠오를 때까지 나는 집 맞은편 언덕 꼭대기에서 펼쳐지는 아침 풍경을 감상하면서 천사가 느꼈을 법한 정서를 경험하곤 한다. 심홍색의 바닷속 물고기처럼 긴 구름 몇 자락이 하늘을 헤엄친다. 그러면 나는 마치 해안가에 서 있는 것처럼, 창가에서 고요한 바다 속을 들여다본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나도 자연의 빠르고 다양한 변화와 함께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활기와 황홀함이 내 몸까지 전해지면 아침 바람과 더불어 부풀어 오르고 아침 바람과 더불어 호흡한다. 자연은 쉽게 얻을 수 있는 몇 가지 요소들로 우리를 진정 신처럼 만든다!

세상에 홀로 아름다운 것은 없다
자연은 근본적으로 비슷하면서도 유일한 형상들의 바다이다. 나뭇잎 하나, 햇빛 한 줄기, 풍경 한 폭, 대양 등은 모두 우리의 마음에 비슷한 감동을 준다. 이 모든 형상의 공통점, 즉 완전함과 조화가 바로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움의 표준은 모든 자연 형상, 자연의 총체이다.

이탈리아인은 아름다움을 ‘하나 속에 들어 있는 다수’라고 정의한다. 어떤 것이든 홀로 아름다운 것은 없다. 전체 속에 있을 때에만 비로소 아름다울 수 있다.

자연의 무한한 힘
자연이 모든 개인에게 미치는 도덕적 감흥은 자연이 개인에게 보여주는 진리의 양과 같다. 그러나 이 진리의 양을 누가 측정할 수 있겠는가? 파도에 시달린 바위가 어부에게 확고한 결의에 대해 얼마나 많이 가르쳐주는지 누가 가늠할 수 있겠는가? 폭풍우 머금은 구름 떼가 휘젓고 다녀도 주름살 하나 얼룩 한 점 남지 않는 푸른 하늘이 인간에게 고요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일깨워주는지 누가 알겠는가? 짐승들의 무언극을 보면서 우리가 근면이나 신의 섭리, 애정을 얼마나 많이 배우는지 누가 가늠할 수 있겠는가?

자연이 위대한 이유
대기가 투명한 것은 수많은 별들을 보여주어 인간에게 숭고미를 느끼게 하기 위함이다. 도시의 거리에서 이 별들은 얼마나 위대해 보이는가! 별이 천 년에 하룻밤밖에 보이지 않는다면, 인간은 별을 얼마나 열렬히 찬미하고 의지할까? 얼마나 많은 세대를 거치며 신의 찬란한 도시에 대한 기억을 전할까? 하지만 이 아름다움의 사절들은 저녁마다 나타나 우리에게 타이르듯 미소 지으며 우주를 비춰준다. 별은 우리에게 경건함을 불러일으킨다. 언제나 존재하지만 다다를 수는 없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을 열고 자연의 감화력을 받아들이면, 모든 자연물이 우리에게 다가와 이와 유사한 감흥을 선사한다.

자연과 함께하는 삶
자연의 신비를 알고부터 나는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이제는 쾌락에 빠질 수 없으리라는 것을. 다시는 인간이 만들어낸 하찮은 것들을 갖고 놀 수 없으리라는 것을. 이미 사치스럽고 까다로운 사람이 되어버렸음을. 더 이상 우아하지 않은 삶은 살 수 없으리라는 것을. 시골사람들이야말로 내가 여는 축제의 주인공이 되리라는 것을. 그들이야말로 최고의 것을 알고 있다. 이 땅에 얼마나 많은 아름다움과 미덕이 있는지를 알고 이런 매력에 다가갈 줄 아는 사람들이다. 시골 사람들이야말로 진정으로 부유하고 고귀한 이들이다.

자연의 계산된 낭비
꽃이나 나무는 고작 한 알의 씨앗을 퍼뜨리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아주 많은 씨앗으로 허공과 대지를 채운다. 그래서 수천 개의 씨앗이 썩어 없어져도 수천 개의 씨앗이 땅에 뿌리를 내린다. 이 가운데서 수백 개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 수십 개의 씨앗만 제대로 성장한다. 그리고 이 가운데 하나가 조상의 대를 잇는다.

모든 자연물은 이처럼 계산된 낭비를 보여준다. 동물이 침입하지 못하게 울타리를 치게 하는 공포감, 겁에 질려 몸을 움츠리게 만들고 뱀을 보거나 갑작스러운 소음을 들었을 때 깜짝 놀라게 만드는 공포감은 근거 없는 수많은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진짜 위험에서 우리를 보호해준다.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것
동물이나 아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순수한 행동은 농부나 사냥꾼, 선원처럼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 도시는 성장을 강요하고 우리를 말이 많은 유쾌한 사람으로 만든다. 하지만 우리를 인위적인 존재로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개개인의 타고난 본성과 타고난 장점이다. 그것은 영원한 아름다움이자 경이이다. 이 경이는 아무리 알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자연과의 대화를 통해 소중히 간직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인간 본성에 대한 이런 경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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