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에 숨은 세계사 여행

스크린에 숨은 세계사 여행
북코스모스 회원이 되시면 오디오 듣기 이용이 가능합니다.
스크린에 숨은 세계사 여행
김익상 지음
창해

책소개

문명의 발전과 접변을 살펴보는 ‘아포칼립토’, 진나라 통일을 기묘한 방식으로 해석하는 ‘영웅’, 현대에 부활한 과학과 종교의 전쟁을 다루는 ‘천사와 악마’, 무술을 통해 중국의 자존심을 확인시켜주는 ‘황비홍’ 등의 작품을 소재로 하여 역사적 인물의 면면을 새롭게 발견하도록 이끌어준다.

요약본 본문

원숭이에서 인간으로_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 <불을 찾아서>

인간, 도구를 발명하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인류는 어떤 ‘변이’의 계기로 갑자기 도구를 발명했을까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1968년에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영화적 상상력을 동원해 재미있게 설명합니다. 영화는 500만 년 전, 인류의 새벽(Dawn of the Man)이라는 자막으로 시작합니다. 아프리카 어디쯤으로 보이는 사막에 원숭이 비슷하게 생긴 무리가 모여 있죠. 아마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일 텐데 이들은 아직 동물에 가까운, 아니 거의 원숭이와 같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들이 사는 곳에 검은 비석 같은 커다랗고 이상한 물체가 나타나죠. 모노리스Monolith란 이름이 붙은 이 물체 주변에 호기심이 발동한 원숭이들이 어슬렁거리는데, 갑자기 이 물체에서 ‘삐-‘ 하는 소리가 나기 시작합니다. 원숭이들 중 더러는 귀를 막고, 더러는 겁을 먹고 도망칩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원숭이 무리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무리 중 한 놈이 들소 시체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우연히 정강이뼈를 쥐고는 땅바닥을 이리저리 툭툭 쳐보는 겁니다. 마침 정강이뼈는 몽둥이처럼 길쭉하고 단단해서 휘두르기도 좋았죠. 드디어 ‘도구’가 발명된 순간이죠. 모노리스에서 나온 음파에 원시 인류의 지력智力을 깨우는 에너지라도 있었던 걸까요? 도구 사용법을 깨달은 원숭이는 잠시 후 다른 원숭이 무리와 마주치게 됩니다. 먹이를 두고 다른 무리와 싸움이 붙었는데 아까 정강이뼈를 도구로 사용한 그놈이 정강이뼈로 상대방의 우두머리를 ‘퍽’ 하고 후려치니까 그냥 맥없이 쓰러진 겁니다. ‘정강이뼈를 든 원숭이 집단’은 인류 최초의 전투에서 승리하게 되죠. 한마디로 ‘도구’가 ‘무기’로 진화한 셈입니다.

그렇다면 500만 년 전 원숭이 인간에게 도구를 사용하게 한 지혜를 불어넣은 모노리스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모노리스의 의미를 묻는 기자에게 “그것의 의미를 설명하는 순간 의미가 없어진다.”라고 말했답니다. 만일 “그렇다.”라고 대답하면 뻔한 것이고 “아니다.”라고 부인하면 또 다른 설명이 필요하니까 알아서 짐작하라는 거겠죠. 어차피 영화적 상상력의 산물이니까 이 부분은 여러분이 알아서 판단하길 바랍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큐브릭 감독의 상상처럼 외계 생명체의 영향을 받았든지 아니면 진화 과정에서 변이로 스스로 깨우쳤든지 도구의 사용은 인간의 문명 건설에 대단히 중요한 계기가 되었답니다. 도구는 신체 능력을 증가시키고 힘을 세게 만들어주는 일종의 ‘로봇 팔’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겁니다.


문명의 차등적 발전과 접변_ <10,000BC> / <아포칼립토>

인간이 인간을 다스리기 위한 필수 수단, 종교
장 자크 아노 감독의 <불을 찾아서>와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10,000BC>가 다루는 약 7만 년 전의 시간 속에 나타난 중요한 차이는 ‘종교’의 등장입니다. 도구와 언어를 만들고 문명을 건설한 인간은 모듬 살이(사회생활)를 하면서 점차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으로 나눠지는데, 종교는 이런 구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영화에서 들레이 부족을 납치해 거대한 피라미드를 쌓도록 강제 노동을 시키는 부족의 지도자는 최고 권력자이자, 종교 지도자입니다. 이를 신정일치神政一致라고 하는데 고대 사회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죠. 인간의 우두머리를 신의 아들 또는 신의 대리인, 아니면 신 그 자체라고 떠받드는 신정일치 체제는 기계의 도움 없이 모든 것을 인력으로만 해야 했던 고대 문명 건설에 꼭 필요한 수단이었습니다.

들레이가 사랑하는 여인을 되찾기 위해 노예들 틈에 섞여 반란을 일으키는 장면을 보면 노예들이 “우우~” 하면서 지배자들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막 달려들다가도, 사제가 “부웅~” 하면서 인간신人間神의 출현을 알리는 나팔을 불면 모두 겁을 먹고 무릎을 꿇지 않았습니까. 만약 들레이가 창을 던져 제사장을 쓰러뜨리지 않았다면 반란은 실패로 돌아갔을 겁니다. 노예들도 그제야 제사장도 인간이란 걸 깨닫고 다시 반란에 가담하죠. 재미난 건 들레이가 죽은 제사장에게 “이 자者는 신이 아니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신은 없다!”가 아니었죠. 즉, 들레이가 부정한 것은 제사장의 신격神格이지 신의 존재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반대로 신이 없다고 외쳤다면 오히려 실패했을 겁니다. 그만큼 절대자, 초월자에 대한 믿음은 인간의 본성이니까요.


서양의 제국탄생_ <300> / <글래디에이터>

문명의 대충돌을 그린 영화 <300>
잭 스나이더 감독의 영화 <300>은 기원전 480년에 벌어진 그리스 페르시아 전쟁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전쟁은 왜 일어났으며, 그것이 지닌 역사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리스가 있는 발칸 반도 지역은 지리적으로 유럽 대륙의 동쪽 끝과 아시아 대륙의 서쪽 끝이 마주보는 지점입니다. 따라서 아시아 지역(또는 오리엔트 지방)에서 짱을 먹은 세력이 ‘어디 더 먹을 땅이 없나?’ 하고 서쪽을 넘보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지역이죠. 그때 오리엔트를 지배하던 세력이 페르시아였고 발칸 반도에는 그리스 민족이 아테네, 올림피아, 스파르타 같은 도시에 조그만 나라를 세워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오리엔트 지역에서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기반으로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등 강력한 고대 왕국이 이미 찬란한 문명을 건설했고 당시 페르시아가 대제국을 건설하여 천하를 호령하고 있던 때였거든요. 거기에 비하면 그리스의 도시 국가들은 나라라고 부르기도 뭐한 상태였죠. 그런데 페르시아 황제 크세르크세스의 입장에서 납작 엎드려도 신통치 않을 놈들이 영 말을 안 듣고 사사건건 대드는 것입니다. 전쟁을 시작하기 전, 크세르크세스는 사자를 보내 스파르타에게 항복하라고 권유(또는 협박)를 합니다. 그런데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가 아주 강골이었죠. 레오니다스 왕은 결코 굴하지 않고 페르시아 사자를 깊은 굴 속에 밀어버리죠. “우리는 스파르타인이다. 항복이란 없다!”라고 소리를 지르면서요.

300의 전사로 수십만을 대적하다
레오니다스 왕은 항복하자는 겁쟁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300인의 결사대를 이끌고 페르시아 대군을 맞으러 나갑니다. 스파르타 군사는 모두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단련된 일당백의 전사들이었습니다. 또한 전투가 벌어진 테르모필레 협곡이 전략적인 요충지라서 이곳만 튼튼히 방비하면 적은 병력으로도 효과적인 수비를 할 수 있었죠. 이렇게 막고 서 있으니 군대가 아무리 수만, 수십만이 와도 뚫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죠. 스파르타 결사대는 결사 항전으로 페르시아의 대군을 한동안 막아내지만 내부의 배신자가 페르시아 군대에게 스파르타를 포위할 수 있는 길을 알려주는 바람에 결국 전멸하고 맙니다. 300의 전사들은 비록 모두 죽었지만 조국을 위해 싸운 정신은 오늘날까지 길이 전해내려 왔습니다.

비록 스파르타의 300명 결사대는 전멸했지만 그들이 남긴 불굴의 저항 정신이 없었다면, 그 후에 정신 차린 그리스의 남은 도시들이 연합군을 결성하여 페르시아라는 강한 적을 상대로 계속 싸워 끝내 물리치지 못했을 겁니다.

즉 그리스가 테르모필레의 ‘전투’에서는 졌지만 페르시아를 상대로 한 ‘전쟁’에서는 이긴 것이죠. 백여 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는 반대로 그리스의 동방 세력(페르시아)에 대한 복수가 시작됩니다. 그리스에서도 변방인 마케도니아 지방에서 일어난 알렉산드로스Alexandros 대왕이 대정복 활동을 벌이면서 이번에는 반대로 페르시아가 완전히 그리스 앞에 무릎을 꿇게 되는 겁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시기에 그리스 문명은 절정의 꽃을 피웠고, 나중에 로마가 이를 이어받아 그리스-로마 문명이라는 서양 문명의 기초를 세웠습니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충돌과 십자군 전쟁_ <킹덤 오브 헤븐>

십자군 전쟁의 진짜 이유
서양 역사에 있어서 십자군 전쟁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양쪽에서 십자군 전쟁을 보는 시각이 사뭇 다르죠. 서양에서 보면 십자군 전쟁은 이교도에게 기독교를 보호하고 순례의 자유를 지켜낸 대단한 사건이요, 성스러운 전쟁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슬람의 시각에서 보면 유럽의 ‘변경에 사는 프랑크인이 부린 침략 난동’이었고, 역사적인 의미 부여도 크게 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른 이유로는 당시 프랑크인들 즉, 유럽인들이 이슬람 입장에서는 동로마에 비해 그리 대단한 존재가 아닌 탓도 있습니다. 이슬람에게는 자신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비잔틴(동로마)이 더 중요했으니까요. 한편, 동로마는 수도를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로 옮긴 다음부터 비교적 평온하게 살고 있었는데 새로 일어난 이슬람 세력에 위협을 느끼고 있었죠. 그리고 무슬림이 예루살렘을 차지하고 있어서 성지 순례도 원활하지 못했습니다.

십자군 전쟁은 종교적인 이유로 시작되었지만 사실은 대단히 정치적인 동기를 숨기고 있었고, 한편 경제적인 필요도 크게 작용했죠. 당시 유럽은 나라별로 이미 임자가 정해져 있어서, 영토를 넓히려면 다른 나라를 쳐야 했는데 같은 ‘기독교 형제 국가’끼리는 전쟁을 벌일 명분이 약했습니다. 거기에 비해 이슬람은 빼앗을 명분도 있고, 예루살렘 성지도 회복하고 완전히 ‘꿩 먹고 알 먹고’였죠. 그래서 십자군 전쟁에는 군인이나 기사들 말고도 당시 유럽에서 먹고살기 힘들었던 하층민, 부랑자도 많이 따라갔습니다. 십자군 원정을 통해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서 말이죠. 그러니까 십자군은 말이 전쟁이지, 실제로는 일종의 ‘개척 이민’ 행렬이었던 셈이죠. 전쟁은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한 경제 행위’라는 본질이 다시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십자군 전쟁의 실황중계 <킹덤 오브 헤븐>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은 기독교가 십자군 원정을 시작하고 난 100년 후를 배경으로 시작합니다. 예루살렘의 영주이자 십자군 기사 ‘고프리’가 시골 대장장이 아들 ‘발리안’을 찾아와서 이렇게 말하죠. “프랑스에서는 집도 절도 없던 자가 예루살렘에서는 한 도시의 주인이 될 수 있고, 도시를 가졌던 자가 거지 굴에서 비럭질을 하기도 한단다. 그곳, 세상의 끝에서는 어떻게 태어났느냐보다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가 더 중요하지.” 즉 현실에서 비참하게 사는 사람에게 예루살렘은 ‘약속의 땅’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왜 기독교와 이슬람은 예루살렘을 서로 차지하려 했을까요? 공교롭게도 예루살렘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모두에게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성지聖地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니 참 골치 아픈 동네죠?

아무튼, 예루살렘에 도착한 발리안은 도중에 죽은 아버지를 대신해서 기사들을 이끄는 영주가 되어 무슬림과 대결을 하는데, 하필 적이 이슬람 역사상 최고의 장군인 ‘살라딘’입니다.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사는 것이 바로 이런 경우가 아닐까요? 쥐도 급하면 고양이를 문다고 원래 예루살렘을 공격한 목적 자체가 성지 회복인데, 그것을 모두 파괴하면 껍데기만 남으니 그렇게 찾은 예루살렘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협상을 제의합니다. 결국 살라딘은 발리안의 제안에 응하죠. 이제라도 항복을 한다면 모든 사람의 목숨을 살려주고 안전하게 기독교 영토로 보내주겠노라고. 협상을 끝내고 돌아서는 살라딘에게 발리안이 묻습니다. “예루살렘은 당신에게 어떤 곳이죠?” “아무것도 아니야. 모든 것이기도 하고.”

모든 것이지만 아무 것도 아닌 곳. 그래서 지금도 예루살렘은 피를 흘리고 있을까요? 리들리 스콧 감독은 기독교인, 이슬람인,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은 ‘모든 것’이지만, 나머지 인류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킹덤 오브 헤븐>의 마지막 장면에서 감독은 자신이 꿈꾸는 ‘천상의 왕국’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투가 끝나고 예루살렘에 입성한 살라딘은 정작 기독교인들이 바닥에 함부로 팽개치고 떠난 십자가를 바로 세웁니다. 이 장면이야말로 영화를 통틀어 감독이 하고 싶은 메시지를 한마디로 응축하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가 이런 멍청한 전쟁을 하지 않고, 종교와 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할 날은 언제일까요?


대항해시대와 유럽의 세계 침략_ <미션>

대항해시대, 세계 문명의 큰 전환점
대항해시대는 15세기에서 17세기까지 약 200여 년간 유럽인들이 세계를 누비며 항로를 개척하고 무역을 벌이던 시기로, 인류 역사상 가장 광범위하고 충격적인 문명 접변이 일어난 시기입니다. 근대 이후 세계의 모습을 만든 여러 결정적인 사건이 이때 벌어졌죠. 그러면 대항해시대 이전과 이후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첫째, 접변 지역의 ‘광범위함’입니다. 이전의 교류는 주로 육로를 통해 유라시아 대륙 위주로 이루어진 반면, 대항해시대는 배를 타고 대륙과 대륙을 넘나드는 전 지구적인 범위였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차원이 다르죠. 둘째로, 교류의 ‘규모’가 달랐습니다. 이전에는 한 번에 옮기는 화물의 양에 한계가 있었지만 대항해시대는 배로 교역을 하니까 움직이는 사람과 물건이 훨씬 많았죠. 마지막으로, 가장 ‘폭력적’인 문명 접변이 벌어진 시기였습니다. 즉, 대항해시대에 유럽인들의 본격적인 세계 침략이 시작되었다는 겁니다.

위선과 수탈의 생생한 증언 <미션>
때는 1750년, 지금의 브라질과 파라과이, 아르헨티나에 걸쳐 있는 세계 최대의 이구아수 폭포 지역이 롤랑 조페 감독의 영화 <미션>의 배경입니다. 이곳에는 예부터 원주민 ‘과라니’ 부족이 살고 있었는데 스페인 예수회 선교사들의 전도로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해서 평화롭게 살고 있었습니다. 영화는 엄청난 물보라를 일으키며 천둥처럼 떨어지는 폭포수를 거슬러 절벽을 올라가는 한 남자의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그는 예수회 신부 ‘가브리엘’이죠. 가브리엘은 과라니 족을 전도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밀림으로 들어가는 중입니다. 숲 속으로 들어간 가브리엘은 품 안에서 오보에를 꺼내 불기 시작합니다.(여기서 나오는 곡이 그 유명한 ‘가브리엘의 오보에’ 즉 ‘넬라 환타지아’입니다.) 그 소리를 듣고 원주민들이 화살을 겨누며 몰려들지만 가브리엘은 계속 연주를 하죠. 그들을 해칠 의사가 없다는 표시를 하기 위해 음악으로 선교를 하는 겁니다.

이렇게 원주민들과 섞이기 시작한 가브리엘은 마침내 폭포 상류 지역에 성당과 마을을 짓고 과라니 족을 중심으로 한 선교촌을 건설합니다. 그러나 평화도 잠시,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자들은 땅의 주인이 바뀌었다며 가브리엘 신부와 과라니 족에게 무조건 나가라고 합니다. 정말 어이없는 일이죠. 게다가 과라니 족을 선교한 예수회는 개혁적인 성향으로 이미 유럽 나라들의 정부와 사이가 안 좋았기 때문에 만일 교황청의 철수 명령을 거부하면 본 고장인 유럽 예수회 본부가 곤란을 겪는 복잡한 상황까지 얽힙니다. 그래서 신부들은 자기가 먼저 살려면 대놓고 과라니 족 편을 들기가 곤란한 상황이었죠. 신앙보다 중요한 것이 밥그릇이니까요. 결국 대부분의 사제들은 철수하고 소수의 사제들만 끝까지 과라니 족과 운명을 함께하겠다며 남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그동안 그들이 말하던 하나님의 사랑은 다 무엇입니까? 과라니 족의 하나님과 유럽인들의 하나님은 다른 하나님인가요? 더 많은 땅과 재물을 빼앗아야 했던 탐욕 앞에서는 하나님의 땅마저 장애물일 뿐이었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또다시 분명한 사실을 확인하는군요. 인간의 탐욕은 종교나 이데올로기, 고상한 명분으로 포장되는 그 어떤 것보다 앞선다는 것을 말합니다.


일본의 근대화와 아시아 침략_ <라스트 사무라이>

깡패처럼 일본의 문을 열어제낀 미국
신대륙 발견 이후 서양 열강의 아시아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한국과 일본, 중국 세 나라는 같으면서도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열강이라는 맹수들 앞에 먹잇감으로 떨어진 신세는 같았지만 그에 대응하는 방식은 사뭇 달랐죠. 중국은 넓은 영토와 막강한 자원을 가졌으면서도 온 나라를 열강의 약탈 무대로 내주고 말았습니다. 조선은 청나라에 조공을 바치고 일본과는 제한적이나마 무역을 했지만 그 외의 모든 나라와는 문을 닫는 쇄국주의鎖國主義 정책을 고수하고 있었습니다. 근대 이전까지는 일본도 기본적으로 쇄국정책이라는 점에서 조선과 비슷했지만 적어도 네덜란드와는 교류를 하며 최소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파악하는 귀는 열어놓고 있었죠.

미국은 개국을 요구한 방법부터 달랐습니다. 일본이 고분고분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동인도 함대 제독 페리는 아예 군함을 끌고 와서 떡하니 일본의 수도인 에도만(지금의 동경만)에 정박해놓고 ‘개국할래, 안 할래?’라는 식으로 깡패처럼 무례하게 개국을 요청했습니다. 일본도 거절해봐야 예전처럼 그냥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걸 깨달았죠. 미국은 개국을 안 하면 아예 부수고 쳐들어올 기세였거든요. 그리하여 미국의 강압에 못 이긴 일본은 1854년에 미-일 화친 조약을 맺고 개국의 길로 돌아서죠. 이어서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러시아 등과 줄줄이 통상 조약을 맺게 되자 일본도 중국처럼 서양 열강의 먹잇감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명확해보였습니다.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로 넘어갔고, 강대국 중국도 힘 한번 못 쓰고 당했는데 일본이라고 별수 있겠습니까.

무사도와 근대화를 묻는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
그런데 결정적으로 문제가 생깁니다. 일본을 강력한 근대 국가로 바꾸려면, 먼저 하는 일도 없이 백성에게 군림하는 사무라이 계급을 모두 평민으로 만들어야 했던 겁니다. 그래서 메이지 정부의 실력자인 오쿠보는 사무라이가 칼을 차고 다니는 것을 금지하고 상투도 자르라고 명령하는 등 일본인을 서양 국가의 일반 시민처럼 만들려고 했죠. 이것을 사민평등四民平等 정책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전통 사무라이 세력을 대표하던 사이고가 드디어 메이지 정부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는데, 이것이 일본 역사의 마지막 내전 세이난 전쟁西南戰爭입니다. 에드워드 즈윅 감독의 <라스트 사무라이>는 바로 이 세이난 전쟁과 사이고 다카모리를 모델로 한 영화죠.

영화는 남북 전쟁의 영웅 네이선 알그렌 대위가 일본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일본에 도착한 알그렌은 일본군을 훈련시키지만 아직 여러 가지로 실전에 투입하기에 준비가 안 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오무라(오쿠보 모델) 측의 무리한 요구로 할 수 없이 전투에 나서죠. 막상 전투가 시작되자 맹수같이 달려드는 사무라이 군대 앞에 오합지졸 정부군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알그렌은 포로가 됩니다. 카츠모토(사이고 모델)는 알그렌을 자신의 근거지로 끌고 가고, 이때부터 전형적인 미국 군인과 전형적인 사무라이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됩니다. 카츠모토는 오히려 알그렌을 데려와 치료해주고 여러 대화를 나눕니다. 서양 사정은 어떠한가, 미국은 어떻게 해서 부강한 나라가 되었는가, 미국 사무라이(군인)는 어떤 정신으로 싸우는가 등등.

아무튼 이렇게 알그렌은 카츠모토를 통해 일본의 정신을 배우면서 점차 몸과 마음이 사무라이가 되어갑니다. 드디어 다시 군사를 정비한 정부군이 카츠모토의 근거지로 쳐들어오고, 사무라이를 진압하려고 일본에 온 알그렌은 이제 스스로 ‘마지막 사무라이’가 되어 일본 정부군과 싸우는 역설이 벌어집니다. 카츠모토는 몰려오는 정부군 병력을 앞에 두고 알그렌에게 묻죠. “그래, 그 테르모필레 싸움에서 스파르타군들은 어떻게 되었나?” “모두 전멸했지.” 그들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나눈 다음, 적진을 향해 망설임 없이 돌진합니다. 말하자면 <300>의 레오니다스 왕과 일본의 카츠모토(사이고 다카모리)는 죽을 줄 알면서도 명예를 위해 끝까지 싸운다는 점에서 같은 인물로 만들고 있는 겁니다. 감독이 사무라이와 미국의 정신이 본질적으로 같다는 무리수를 두는 설정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학살_ <인생은 아름다워> / <쉰들러 리스트>

눈물과 웃음으로 승화시킨 학살의 비극 <인생은 아름다워>
때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이탈리아. 히틀러와 손잡은 파시스트 정권이 이곳에도 유대인 박해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던 시절입니다. 주인공 유대인 ‘귀도’는 운명처럼 만난 초등학교 교사 ‘도라’와 사랑에 빠져 아들 ‘조슈아’를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죠. 그런데 나치의 손길이 뻗어오면서 귀도와 조슈아는 유대인 수용소에 끌려가게 되고, 도라는 유대인이 아니지만 남편과 아이를 사랑했기 때문에 자청해서 함께 수용소로 끌려갑니다. 살벌한 수용소 생활에도 귀도는 아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우리는 특별한 사람들이라 여기 온 거야. 여기서 벌어지는 모든 생활은 게임이야. 이 게임에서 1,000점을 먼저 따면 진짜 탱크를 상품으로 받게 된단다.”라며 아들이 공포를 이겨낼 수 있도록 재미난 상황을 만들어갑니다.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의 마지막 장면은 유대인 학살이라는 비극을 눈물과 감동으로 승화시킨 명장면입니다.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고 낙천적으로 살려는 주인공의 노력이 오히려 더욱 가슴을 찡하게 만듭니다. 일부에서는 이 영화를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라는 비극적 역사를 코미디로 삼았다.”며 비판했지만 결코 감독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슬픔은 삼킬 때 더욱 깊어지고 정말 슬픈 상황에서는 울음보다 한 조각 웃음이 오히려 그 감정을 더 잘 전달합니다. 감독은 인류사적 비극을 휴머니즘과 유머를 통해 오히려 차원 높게 승화시킨 것이죠. 아들을 살리려고 희생하는 부정父情이 이토록 아련한데, 어떻게 이 영화가 유대인 학살을 가볍게 다룬 영화입니까.

흥행 감독 스필버그의 영화적 반성문 <쉰들러 리스트>
독일인의 민족주의와 반유대주의 감정을 부추기며 집권한 히틀러는 유대인을 ‘2등 시민’으로 선포하며 탄압의 수위를 높입니다. 그러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유대인은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수용소에 갇히면서 생명까지 위협받는 처지에 놓이죠. <쉰들러 리스트>는 바로 그 과정을 다룬 영화입니다. 그런데 유대인 학살을 다룬 영화가 이것이 처음은 아니죠. <쉰들러 리스트> 말고도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할리우드 영화는 거의 모두가 직 간접적으로 유대인 학살을 다루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일단 유대인 학살이라는 만행을 널리 알려서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강력한 경각심을 돋우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할리우드를 유대인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쉰들러 리스트>를 만든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또한 유대인인데, 그가 이 영화를 만든 데에는 약간의 사연이 있습니다.

아카데미상을 주는 미국의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는 유대인이 중심이 된 보수적인 원로 영화인들의 단체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보기에 스필버그 정도라면 제2차 세계대전과 나치를 비판하는 영화를 진작 만들었어야 하는데 오락 영화나 만들어 돈 버느라고 ‘유대인으로서의 민족적 의무’를 게을리한다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은 것이죠.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스필버그는 드디어 <쥬라기 공원>의 대성공에 이어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고발하는 <쉰들러 리스트>를 연이어 내놓았습니다. 이 작품은 흥행에서도 성공했을 뿐 아니라 그에게 생애 최초로 아카데미상이라는 영광을 안겨주었죠.

흑백 화면에 담긴 유대인 학살의 참상
<쉰들러 리스트>는 오스카 쉰들러라는 독일인의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원래 쉰들러는 별 볼일 없는 사업가였는데, 나치 장교들과 끈을 잘 댄 덕분에 군용 식기를 납품하는 사업권을 따냅니다. 그리고는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강제 수용소에 갇힌 유대인을 근로자로 투입해서 품삯도 제대로 안 주고 노동을 시킵니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유대인 회계사 ‘아이작’은 교묘한 방법으로 필요 인원보다 많은 사람을 몰래 공장으로 빼돌려 동족의 생명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쉰들러도 이런 상황을 대강 눈치챘지만 모르는 체했습니다. 유능한 회계사가 알아서 공장을 척척 운영해주고, 돈도 쑥쑥 잘 벌리니 본인은 그냥 놀기만 하면 됐거든요. 그러나 전쟁이 종말을 향해 치달아가면서 이런 상황도 힘들어집니다.

어느 날 쉰들러는 게토(유대인 거주 지역)에서 독일군에게 쫓기는 유대인 소녀의 참상을 목격하고 마침내 큰 깨달음을 얻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양심을 회복한 것이지요. 그 후부터 쉰들러는 본격적으로 독일군에게 뇌물을 줘가면서 유대인들을 자신의 공장으로 빼돌려 목숨을 구하는 일에 착수합니다. 이렇게 수용소에서 빼오는 인력을 적은 명단이 바로 생명의 리스트, 즉 <쉰들러 리스트>인 것이죠. <쉰들러 리스트>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라는 소재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이전 할리우드 영화와 맥락을 같이 하지만, ‘독일인 중에서도 유대인을 구한 사람이 있었다’는 시각을 첨가해 새로운 감동을 줍니다. 영화는 세 시간 반에 가깝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고, 감동적이면서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이 일품입니다.


20세기의 패자, 미국의 현대사_ <포레스트 검프>

영웅도 악당도 없는 영화 <포레스트 검프>
로버트 저멕키스 감독의 영화 <포레스트 검프>는 ‘포레스트 검프’라는 가상 인물의 여정을 따라 미국과 세계 현대사의 굴곡을 경험하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는 영웅도, 악당도 없이 그저 담담하게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이 있을 뿐입니다. 드넓은 대지, 뉴욕에 치솟은 마천루, 엔터테인먼트의 중심 할리우드,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와 실리콘벨리가 상징하는 첨단 기술. 미국은 어떻게 보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는 약속의 땅 같습니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 9·11 테러, 폭력, 인종 갈등 등을 생각하면 정말 사람 살 곳이 못 되는 것 같기도 하죠. 만일 미국인이 “한국은 어떤 나라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결국 그 나라를 규정하는 것은 ‘사람이 사는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겠습니까. <포레스트 검프>는 그런 평균적인 미국인의 삶을 묘사한 영화입니다.

성인이 된 포레스트가 겪는 격동의 미국 현대사
사실 <포레스트 검프>가 다루는 미국 현대사의 이슈들은 하나같이 예민한 것들입니다. 인종 차별이 대표적이죠. 그러나 영화는 그런 주제를 결코 피해가지 않으면서도 거북스럽지 않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흑인과 소수 인종이 미국 사회에서 받은 차별 문제는 지금도 심심치 않게 터져 나오곤 하는데 다민족 국가인 미국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사회적 비용입니다. 베트남 전쟁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전까지의 미국 전쟁과는 달랐습니다. 최초로 미국인이 패배한 전쟁이라는 것 말고도 미국인들 스스로가 ‘부끄러운 전쟁’이라고 생각한 첫 전쟁이기도 했으니까요. 원래 미국인들은 자기 나라에 대한 자부심과 애국심이 대단한 국민입니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너도나도 조국을 지키겠다고 자원해서 군대에 나갔고, 심지어 어떤 이들은 몸이 약해 군대에 못 간다고 자살까지 했답니다.

미국인들은 ‘백인이 세상의 주인이 되는 것이 신이 부여한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백인들이 다른 인종을 지배하고 인도하는 부담을 지고 산다(White man’s Burden)’는 해괴한 논리를 갖고 있습니다. 이런 억지에 따라 150년 전에 미국인들은 서부를 개척한다는 명분으로 수많은 인디언들을 짐승처럼 죽이면서 대륙 지배를 정당화했죠. 지금도 세계의 경찰국가를 자처하면서 다른 나라 일에 개입하는 미국인의 무의식에는 서부 개척 시대의 오만함이 살아 있는 겁니다. 베트남 전쟁은 이런 백인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 사건이었습니다. 베트남인들을 원시인보다 못하게 생각한 미국인들은 이런 결말을 상상도 못했을 겁니다.

삶은 날아가는 깃털처럼 계속되고
베트남에서 돌아온 포레스트는 공허해진 마음에 무작정 달리기를 시작하죠. 신이 그에게 준 유일한 재능을 다시 사용하는 겁니다. 마지막 장면, 포레스트의 발밑에서 하얀 깃털이 날아오릅니다. 어디선가 그를 지켜보는 엄마와, 아내와, 친구의 영혼처럼. 이렇게 영화는 끝이 납니다. 바보 포레스트 검프의 인생 여정을 따라 두 시간 동안 미국의 현대사를 경험한 관객들은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포레스트 검프야말로 가장 현명한 사람이 아닐까? 정작 바보는 욕심에 눈이 멀어 다른 사람들을 보지 못하고 사는 우리가 아닐까?’라고요.

0 댓글
본문 피드백
모든 댓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