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속성

부키 / 2020년 12월 / 352쪽 / 20,000원

시장의 속성

시장의 속성

레이 피스먼, 티머시 설리번 지음

저자 소개

레이 피스먼 - 보스턴대학교 경제학과 행동경제학 교수다. 하버드대학교에서 경영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컬럼비아대학교 경영대학원의 사회적 기업 교수 및 사회적 기업 프로그램 공동 책임자를 역임했다. 다른 저서로『부패: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할 것』(공저),『조직: 사무실의 근본 논리』(공저),『경제 깡패들: 부패, 폭력 그리고 국가의 빈곤』(공저) 등이 있다.

티머시 설리번 - 캘리포니아대학교 출판부의 상임 이사다. 버몬트대학교에서 역사학 석사 학위, 하와이대학교에서 세계사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미디어 경영진 전략을 공부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출판부의 편집장을 역임했고, 베이직북스와 포트폴리오 출판사, 프린스턴대학교 출판부에서 일했다.

책소개

이 책은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발표된 중요한 경제학 논문들을 선별해, 경제 이론들이 현실 세계를 어떻게 설명해 왔는지, 그리고 역으로 그 이론들이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형성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해 왔는지 설명한다. 아울러 아마존, 구글, 애플, 우버, 에어비앤비 등의 기업들이 이런 창조적 아이디어들을 길잡이 삼아 어떻게 시장을 선도하는지 생생한 사례를 통해 보여 준다.

요약본 본문

우리가 시장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 시장의 힘과 원리

포로수용소에서 목격한 세계 경제의 축소판

1939년 리처드 래드퍼드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다가 학업을 중단하고 군에 입대했다. 1942년 리비아에서 포로로 붙잡힌 그는 이탈리아에 있는 임시 포로수용소로 실려 갔다가, 독일의 무스부르크라 외곽에 위치한 7A 포로수용소로 이송되었다. 래드퍼드가 도착했을 때는 그곳에는 미국인부터 유고슬라비아인까지 수많은 국적의 병사들로 넘쳐났다. 종전 후 래드퍼드는 다시 케임브리지로 돌아갔다. 한편 그는 7A 포로수용소 경험을 그의 첫 번째이자 우리가 알기로는 마지막인 학술 논문의 재료로 사용했는데, 논문의 제목은「포로수용소의 경제적 조직」이었다.

이 논문은 7A 포로수용소를 하나의 시장으로 묘사한다. 그것은 유별난 특징을 가진 시장이었는데, 노동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거래와 가치 창출이 아주 활발했기 때문이다. 이 수용소로는 적십자가 보내 주는 생필품 꾸러미들이 들어왔다. 캔에 든 우유, 당근 통조림, 잼, 버터, 비스킷, 소금에 절인 소고기 통조림, 초콜릿, 설탕, 당밀, 담배 같은 품목이었다. 그런데 당연히 모든 포로가 비스킷과 소고기를 똑같은 정도로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배급받은 생필품을 서로 교환하는 거래를 하기 시작했다. 버터 한 조각과 담배 두 개비를 캔 우유 한 통과 교환하는 식이었다.

처음에 이 교환 시스템은 포로들 간의 호의에서 생겨났다. 그러나 교환 행위의 상당 부분은 수용소의 혹독한 조건에서 단지 조금 더 ‘안락’을 누리며 생존하려는 수용소 거주자들의 냉정하고 합리적인 계산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안락’은 포로들에게 저마다 서로 다른 것을 뜻했다. 즉 어떤 이에게는 커피 한 잔, 또 어떤 이에게는 차 한 잔을 뜻했다. 한편 독일군은 포로 병사들을 국적별로 분리해 수용했기 때문에 그 경계선이 수용소 내의 무역 장벽이었다. 그래서 특권을 누리는 소수의 포로만이 다른 나라 병사들과 접촉할 수 있었고, 그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는 포로들이 전문 트레이더가 되었다.

프랑스인들은 정말 커피를 좋아했다. 그래서 프랑스인들과 처음으로 수출입 비즈니스를 시작할 수 있었던 소수의 영국 병사들은 영국인 동료들과 거래해 커피 배급품을 확보했다(영국인 병사들은 차를 구하려고만 해서 커피를 싸게 팔았다). 이어서 그들은 프랑스인들 쪽으로 가서 프리미엄을 높게 얹어 커피를 팔았다(그 대가로 프랑스인들은 좋아하지 않지만 영국인들은 좋아하는 차를 받았다). 그 결과 영국인 트레이더들이 이문을 남기기는 했어도 두 나라의 병사들 모두 더 안락한 생활을 누렸다.

마찬가지로 인도 부대 소속의 네팔 출신 용병들은 소고기를 먹지 않았는데,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운 좋은 병사들은 거의 쓸모가 없는 당근 통조림을 그들에게 넘기는 대가로 유럽인들 사이에 거래가 활발한 소고기를 받았다. 이와 같은 개별적 선호와 유인이 작용하면서 수용소 담장 안에 세계 경제의 축소판이 생겨났다. 한편 포로들은 파운드화나 달러화 같은 경화가 없는 상황이라서, 모든 물품의 가격을 기존의 통화가 아니라 담배로 표시했다. 마가린 1회분 배급량으로 담배 일곱 개비를 살 수 있고, 이 담배 일곱 개비로는 초콜릿 한 토막 반을 살 수 있는 식이었다. 참고로 수용소 안에는 막사가 많았는데, 각 막사가 국지적인 시장으로 기능했다. 다수의 막사에서 통용되는 물품 가격은 잘 알려져 있었고 일관성을 유지했다. 물론 가격이 서로 어긋날 때도 있었다. 가령 한 막사에서 마가린 1회분 배급량의 가격이 담배 여섯 개비인데 다른 막사에서는 여덟 개비인 상황이 발생하면, 기민하고 활발한 차익 거래자들이 낮은 가격의 물품을 사서 높은 가격에 팔아 신속하게 이익을 취했고, 그 과정에서 가격 차이가 사라졌다.

수용소 내 시장은 자유지상주의로 치닫는 무질서한 난장판이 아니었다. 포로들 중 상급 장교들은 시장을 제약 없이 내버려 두기보다 약간의 감독과 개입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담배가 화폐로 등장한 뒤 영국의 최고위 장교가 일반적으로 수용되는 가격을 수용소 곳곳의 나무 게시판에 표시해 놓고, 그 가격을 기준으로 이익을 덧붙이지 않는 선에서 물품을 거래할 수 있는 공간을 설치했다. 이 장치 덕분에 물품을 사거나 팔 때 이리저리 계산해서 따져 봐야 하는 불편함이나 불확실성이 많이 줄어들었다. 애연가들이 담배를 피우려고 식료품과 위생 물품을 팔아 버리면 굶주림과 감염병의 위험이 있다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적십자에서 공급되는 화장실 위생용품은 거래에서 배제되었다.

생명을 구하는 시장의 힘

포로수용소에서 시장은 삶을 더 안락하게 만들어 주는 것에만 그치지 않으며, 시장은 생명을 구할 수도 있다. 독일군 포로수용소에서 시장을 운영할 자유를 누렸던 래드퍼드와 동료 포로들의 경험과 수용소 소장이 거래를 금지했던 태평양 일본군 포로수용소의 경험은 아주 대조적이었다. 일본군 포로수용소에서는 상급 장교 포로들이 식품과 물자를 나누어 주었고 배급 물품의 거래는 금지되었다. 이 규칙을 위반한 포로들은 사실상 사형 선고인 독방 감금 처벌을 받았다. 그런데 사망률을 보면 남태평양의 고압적인 포로수용소가 (경제학적으로 말해) 자유방임적인 독일군 포로수용소보다 12배나 높았다.

원리는 같지만 갈수록 커지고 빨라지고 섬세해지는 시장

아주 포괄적으로 말해, 시장이란 참여자들이 자신의 선호를 표현하는 행위를 통해 자원 배분에 곧바로 영향을 미치는 기회를 누리는 단지 하나의 기술이고 메커니즘이다. 즉 사람들이 어떤 물건을 원하며 또 얼마나 간절하게 원하는가를 바탕으로 물건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선호를 표현하는 행위’, 즉 무엇을 얼마만큼이나 원하는가는 보통 우리가 지불하고자 하는 가격을 뜻한다. 우리는 식료품점에서 돈을 건네고 땅콩버터를 산다. 시카고상품거래소의 트레이더들은 거래장에서 약속어음을 주고받으며 돈육 선물계약을 매매한다. 당신이 은퇴 자금을 운용하려고 주식을 매수해 보유하면 금융 미디어를 살펴보면서 보유 종목들의 가치를 점검한다. 이러한 모든 트레이딩의 결과로 시장 현장에서 출현하는 가격들은 모든 물건과 서비스의 공급량이 우리의 욕구와 욕망에 비해 얼마나 충분한지를 포착하는 놀라운 일을 수행한다. 이것이 시장의 전부라면 탐구해 봤자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지 모른다. 시장은 그냥 시장인 것이다. 시장이 변해 봐야 얼마나 변했겠는가?

사실 그렇기도 하다. 우리는 여전히 돈을 지불하고 물건과 서비스를 산다. 그렇지만 우리가 지난 반세기 동안 경험한 도약은 심대했다. 무엇보다 시장의 규모와 범위가 확장되었는데, 이는 많은 거래가 온라인으로 옮겨진 결과다. 아마존이 ‘모든 것을 파는 상점’으로 불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리고 인터넷을 활성화한 바로 이 컴퓨터 혁명 덕분에 (비록 모든 거래는 아니지만) 많은 거래가 수백만 배 더 빨라지고 저렴해졌다. 이런 변화를 가져온 새로운 거래 형태의 전형적인 사례로는, 수많은 인터넷 사이트의 전자상거래를 비롯해,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다음번 휴가에 쓸 항공권, 인쇄물에서 인터넷을 통해 구독하는 디지털 문서로 바뀐 잡지 등 다양하다. 이처럼 많은 것이 바뀌기는 했어도 오늘날의 시장은 1945년 래드퍼드가 묘사한 시장과 똑같은 원리에 의해 지배된다. 그때에 비해 시장이 훨씬 더 커지고 빨라졌을 뿐이다. 동시에 그 시장 원리가 적용되는 상황이 갈수록 더 확장되고, 새롭게 바뀌고 있으며, 더 섬세해지고 있다. 한편 가격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 시장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가령 데이트할 동반자를 찾는 어떤 사용자가 매치닷컴(Match.com)에 접속해 신랑감이 될 만한 독신자 중 몇몇을 접촉하기로 선택한다면, 이는 사랑을 찾는 시장에서 선호를 표현하는 행위다. 그러나 여기에는 가격이 존재하지 않으며, 돈을 주고받는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시장 혁명 속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과 결정을 할 것인가

상상 가능한 거의 모든 것의 배분이나 교환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메커니즘을 의도적으로 설계한다는 점이 우리 시대를 정의하는 특징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근저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가 주변에서 목격하는 시장 혁신에 발맞추어 시장을 이해하는 사고방식의 혁명이다. 그동안 경제학자들의 몇 가지 발상에서 비롯된 새로운 시장 제도들이 생겨났다. 예를 들어 구글의 알고리즘으로 작동하는 애드워즈(AdWords) 광고 경매라든가, 신장을 이식받아야 할 환자에게 신장을 할당하는 시스템, 학교에 신입생을 배정하는 제도 등이 그렇게 탄생했다. 아울러 전통적인 시장의 작동 방식을 더 깊이 이해하는 착상들도 생겨나서 기존의 시장을 더 효과적으로 설계하고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시장을 바라보는 통찰과 시장에 참여하는 행동, 이 쌍둥이 혁명은 서로 겹칠 때가 많았다. 경제학은 (처음에는 언어로, 나중에는 수학적 방정식으로) 세상을 단지 묘사하는 일에 머물렀지만, 통찰력 깊은 착상을 적용해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을 만들어내는 일로 이동했다. 훈련된 학계 경제학자들이 상거래 영역으로 파고들지 않았다면 이론이 그렇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 못했을지 모른다. 더구나 이 같은 경제학의 현장 진출은 ‘빅데이터 시대’가 대단한 바람을 타는 시기에 이루어졌다. 그 덕분에 경제학자들이 행동을 추적하고 모형을 조금씩 수정해 정교화할 뿐 아니라, 이상적인 상황에서는 데이터 적용을 되풀이할 때마다 시장의 작동을 조금씩 더 개선하는 역량이 계속 확장될 수 있었다.

이렇게 새로운 시장을 설계해 만들어 낸 것은 비효율을 걷어 내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테면 구매자와 판매자가 아는 정보의 격차를 줄이고, 놀고 있는 자동차와 텅 빈 아파트처럼 활용률이 떨어지는 자산을 사용하고, 가격을 놓고 의미 없이 씨름하는 일을 제거하려는 목적에서 새로운 시장이 창조되었다. 그리고 넓은 의미로 보아 시장의 각 측면에서 참여하는 사람들이 거래 상대방을 더 효과적으로 발견하도록 지원하려는 취지에서 태어난 시장도 있었다. 이것은 반가운 일이다. 다른 모든 것이 변함없이 그대로라면, 효율에 관한 한은 더 많은 것이 더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 옹호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시장이 순전히 이롭기만 할 때는 거의 없다. 세상은 시장이냐, 아니면 포로수용소식 명령과 통제냐 둘 중 하나를 택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시장이 모든 사회 문제의 해결책은 아니다. 효율의 낙원이 도래하더라도 모두가 평등하지만은 않다는 점을 인식한다면, 시장이 만병통치약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효율이라는 미덕이 소리 소문 없이 은연중에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변하게 되면, 사회로서의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다른 가치들이 냉대를 받는다.

이 이야기에는 또 다른 측면이 하나 더 있다. 시장이 우리의 삶 속으로 갈수록 더 침투함에 따라 좀 더 넓은 차원에서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지는 전적으로 불분명하며, 그래서 결국 사회가 어떠한 모습이 될 것인지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동안 정책 결정자와 기업은 최근에 나타난 경제적 사고의 혁명에서 배운 통찰과 직관을 길잡이로 삼아 광대한 실험에 버금가는 일을 계속 벌여 왔다. 그 실험에 활용된 것이 새로운 종류의 시장이다. 그런데 그 새로운 시장들로 말미암아 전혀 예측하지 못했거나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나타날 때도 있다. 실제로 우리는 이러한 실험의 한복판에서 살고 있다. 실험에 피험자로 참여하는 우리는 거의 언제나 이 실험으로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별 관심이 없고 알아채지도 못한다. 그렇더라도 시장 설계자들이 모든 답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지는 말아야 한다.

시장근본주의자들도 색깔과 정도 면에서 다양하지만, 우리가 제일 많이 접하는 사람들의 논조는 섬세한 뉘앙스라는 것이 없는 유형일 때가 많다. 그들은 시장의 위력을 역설하는데, 득과 실을 절충하는 고려가 없어 보인다. 이는 득실의 상충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경제적 분석의 핵심이라는 점에 비추어 보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들의 주장은 어렵지 않게 물리칠 수 있겠지만, 2가지 점에서 쉽지가 않다.

첫째, 그들 중 현실 세계, 특히 정계나 업계에서 놀라운 힘을 휘두르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큰 정부에 분개하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실리콘밸리에서 사이버유토피아를 설파하면서 서로 사이좋게 자리를 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럴 만도 하지 않은가? 세상의 병폐를 해결하기 위한 실용적인 행동 경로를 분명하게 제시하는 이야기에는 무언가 매력적인 것이 있다. ‘시장이 곧 구원’이라는 논조의 이야기가 바로 그러한 매력을 발휘한다. 둘째, 시장근본주의자들에게는 다른 유리한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그들 이야기가 때때로 옳다는 점이다. 예전 독일군과 일본군의 포로수용소 생활을 경험한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물어보면 그 점이 당장 드러난다. 이것저것 다 고려하더라도, 시장은 뭐가 됐든 결국 사람들이 가장 값지게 여기는 것을 얻도록 해 주는 강력한 도구라는 것이다.

그러한 세계관의 스펙트럼에서 당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알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는 새로운 시장들을 이해해야 하고, 그로 인해 무엇을 얻게 되고 무엇을 잃을지 그 득실을 절충하는 선택을 해야 한다. 우리의 미래에서 시장이 수행할 역할을 결정하는 일은 근본적으로 중요한 문제다. 바로 그 점에서 우리가 지금 직면한 선택을 좀 더 효과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 이 책의 포부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큰돈을 벌 수 있다 : 플랫폼 경제학

상파뉴에서 생긴 일

중세 때 지역 명품인 직물로 유명했던 이탈리아 도시 프라토의 한 상인이 1299년 상파뉴 지방의 당시 ‘감독자’라고 불리던 재판관들에게 공식적으로 불만을 제기했다. 참고로 1180년경 이래 상파뉴에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 무역 박람회를 개최했고 온 유럽의 상인과 금융인이 그리로 몰려들었다. 한 차례의 박람회는 상인들이 도착해 자리를 잡는 8일간의 도입기로 시작되었다. 뒤따라 직물 박람회, 가죽 박람회, 향신료 및 기타 상품 박람회를 위해 할당된 날들이 쭉 이어졌다. 마지막 나흘 동안에는 상인마다 장부에 기록해 둔 거래를 정산해 값을 치르곤 했다.

그 프라토 상인은 피렌체의 어떤 고객이 박람회가 종료될 때까지 지불해야 할 청구서를 결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돈을 떼어먹고 런던으로 도망간 피렌체 고객이 프라토 상인에게 갚아야 할 돈은 1600리브르 투르누아(중세 프랑스의 화폐 단위)에 달했고, 이 금액은 거액이었다. 박람회의 감독자들(샹파뉴를 관장하는 백작으로부터 박람회를 관리하고 사법적 문제를 감독할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들)은 그 피렌체 상인에게 편지를 여러 차례 보낸 뒤, 그가 회신하지 않자 런던 시장을 접촉했다. 그런데 런던 시장은 사안을 조사한 뒤 피렌체 상인이 갚지 않은 채무는 없다고 판단했는데, 만약 이 조사가 중세 때의 여느 행정 절차처럼 이루어졌다면, 그 피렌체 사람은 시장 휘하의 어떤 공무원을 돈으로 매수한 다음, 이제 문제가 다 해결됐다고 여겼을 것이다. 런던 시장은 샹파뉴 감독자들에게 그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며, 그 피렌체 상인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 명백한 사안이니 더 논의할 여지가 없다고 통지했다. 하지만 박람회 감독자들은 해당 피렌체 상인뿐만 아니라, 런던의 모든 상인에 대해 일체의 상거래를 금지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결국 피렌체 상인은 이듬해 박람회 때 1600리브르 투르누아 전액을 지불했다. 이것은 런던 시장이 고집해 성사된 일이었는데, 틀림없이 런던의 상인들이 시장을 재촉해 이루어졌을 것이다. 샹파뉴 감독자들이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영국 법정에 그러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은 중세 상거래에서 샹파뉴 박람회의 역할이 얼마나 막강했으며, 그 막강한 역할을 유지하려고 샹파뉴 백작이 얼마나 노력했는가를 말해준다.  

자유시장경제학의 근본주의자들은 경제적 교환이 자생적으로 생겨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포로수용소에 공급된 적십자 보급품이 수용소 안에서 거래되었던 것처럼 사람들이 거래의 기회를 포착하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경제의 틈새를 메우는 교환이 저절로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회 제도가 그러하듯, 실은 시장도 사랑과 관심이 있어야만 번창할 수 있다. 샹파뉴 백작은 ‘시장 조성자(market maker)’로서 자신이 수행하는 핵심 역할을 직감으로 알았다. 그 역할이란 올바른 부류의 시장 참여자들을 불러들이고, 잘못된 부류를 몰아내고, 규칙을 수립하며, 위반자들을 처벌하는 것이다. 그 역할의 대가로 그는 각 거래의 일부를 챙김으로써 어마어마한 부를 일구었다.

시장이 작동하도록 시동을 걸고 시장이 계속 돌아가도록 유지하는 데 시장 조성자의 역할이 특별히 중요할 때, 우리는 그러한 시장을 플랫폼(platform)이라고 부른다. 신용카드, 페이스북, 아이폰은 모두 그 나름의 방식으로 다양한 집단의 거래 당사자들을 불러 모아서 신중하게 관리하는 시장터들이다. 예로 비자카드는 카드 소지자와 소매상을 불러 모으고, 페이스북은 광고주와 소셜 네트워크 사용자들을 불러 모은다. 아이폰은 iOS 기반의 앱 설계자들과 아이폰 사용자들을 불러 모은다. 샹파뉴 백작은 그 나름의 중세적인 방식으로 시장을 설계한 개척자였다.

모형을 설계하는 경제학자들의 노력이 갈수록 더 현실 세계의 현상을 중시하면서 선도적인 연구자들이 플랫폼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다면 시장(multisided market)’으로도 불리는 플랫폼이 어떠한 규칙에 따라 작동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대단히 아쉬웠던 점들이 어느 정도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제는 플랫폼을 작동시키는 요인과 플랫폼을 좀 더 효과적으로 구축하는데 길잡이로 삼을 수 있는 몇 가지 원리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한 원리의 다수는 시장을 설계하는 12세기의 혁신들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플랫폼들은 지금 우리 삶에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만큼 플랫폼에 참여할 때 생기는 장단점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플랫폼의 경제학

경제학자들은 플랫폼이란 말 대신에 ‘양면 시장(two-sided market)’이라든가, ‘다면 시장(multisided market)’이라는 말을 쓴다. 우리는 슈퍼마켓에 가고, 부엌을 수리하려고 도급업자를 구하는데, 이런 행위들은 구매자와 판매자로 이루어지는 시장 거래다. 구매자와 판매자, 두 측면이 존재하며 그들이 만나서 갖가지 시장가격이 형성된다. 경제 이론은 이러한 시장가격이 세상을 더 나은 곳, 적어도 좀 더 효율적인 곳으로 만들어 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슈퍼마켓(사실상 모든 상점)은 어느 정도까지는 한 번에 한 부류의 고객들만 상대하면 된다는 점에서 실제로는 ‘일면 시장(one-sided market)’이다. 슈퍼마켓에서는 선반에 비치된 식료품을 구매하며, 이때 손님들이 찾는 물건들을 골고루 충분하게 갖추는 것이 구매 관리자가 챙기는 일이다. 그 물건을 대는 납품업자가 손님과 마주칠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시장 참여자들끼리 좀 더 직접적으로 접촉해야 하는 시장들이 많다. 이처럼 정말로 다면성을 갖춘 시장들은 시장이 출발하도록 시동을 걸려면 공을 더 들여야 하며, 시장이 잠재력을 발휘하는 단계에 도달하려면 지속적인 보살핌이 필요하다. 이처럼 공을 더 들이는 사람, 즉 시장 조성자는 둘 또는 그 이상의 고객들이 만나는 플랫폼을 창조한다. 그리고 양 측면의 참여자들이 플랫폼에 나오고 싶어 하도록, 그리고 일단 나왔을 때는 거래에 만족하고 돌아갈 수 있도록 플랫폼을 설계한다. 아마존과 이베이는 거의 모든 물건의 구매자와 판매자를 상대로 이러한 시장 조성자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잠정적인 정의로 플랫폼을 두 집단(보통 구매자와 판매자)이 중개자를 통해 상호작용을 하는 시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중개자의 역할은 참여자들이 ‘보이지 않는 손’만을 길잡이로 삼을 때보다 더 행복하도록(그리고 시장의 효율이 더 높아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심판, 중재인, 보증인, 또는 경찰로서 플랫폼

양면 시장에 대한 이해를 분명한 내용으로 확립하는 데 기여를 한 경제학자는 201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장 티롤이다. 그는 산업조직론의 바이블에 해당하는 교과서를 썼는데, 산업조직론은 갖가지 시장이 왜 현실에 나타나는 모습처럼 조직되어 있는지를 이해하려고 하는 경제학의 한 분야다. 그가 플랫폼 연구에서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양면 시장을 양 측면의 참여자들 사이에 위치하는 플랫폼이 없으면 그들이 아예 서로를 발견하지 못해 거래가 성사되지 못할 시장으로 정의한다는 점이다. 만일 그들이 서로 만나 거래를 맺을 수 있다면 플랫폼 서비스를 이용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다양한 측면의 참여자들이 서로 합의하기 어려운 시장에서 한가운데에 자리 잡는 시장 조성자는 심판이나 중재인, 보증인 역할을 할 때가 많은데, 가끔은 경찰 역할을 할 때도 있다. 시장 조성자가 그러한 역할을 제대로 하면, 양 측면의 참여자들이 시장 조성자가 없을 때보다 서로 어울려 일할 때가 훨씬 많아지고 효율도 높아진다. 예를 들어 샹파뉴의 감독자들은 프라토 상인이 판매 대금을 받도록 챙겨 주었다. 당연히 다른 거래자들은 그 결과를 지켜보았고 샹파뉴 박람회는 번창했다. 마찬가지로 이베이와 우버, 아마존 같은 성공적인 인터넷 플랫폼은 대부분의 거래가 매끄럽게 처리되게끔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고, 그렇지 못할 때는 중재자로 나섰다(우버의 경우에는 운전자와 고객을 연결하는 방법을 주관하는 자사 소유의 알고리즘을 사용해 그러한 역할을 했다).

시장 조성자는 바람직하지 못한 참여자들을 플랫폼의 각 측면에서 걸려 낼 수 있지만, 이베이와 우버의 사례에서 보듯이 이 일을 플랫폼 참여자 본인들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다. 즉 참여자(고객)들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플랫폼 관리자가 길을 열어 주면, 이론상으로 군중의 지혜가 모여서 나머지 일들이 잘 처리될 것이고, 따라서 조지 애컬로프가 시장 기능의 적이라고 밝힌 정보 비대칭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런 해결책을 통해 인터넷 이전 시대에는 믿을 만한 공급자를 찾기 어려웠던 물건이나 서비스 분야에서 공급자와 수요자를 짝지어 주는 온갖 종류의 플랫폼들이 생겨났다.

돈을 물 쓰듯 퍼붓는 플랫폼 비즈니스

비즈니스 세계에 플랫폼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적합한 영역을 잡아서 규칙을 잘 수립해 두면 플랫폼 소유주들은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 큰돈을 벌 수 있다. 일단 거래를 일으키고 감시하는 일이 잘 돌아가도록 하부구조를 갖춰 놓으면, 모든 시장 참여자들이 사이트로 들어오도록 네트워크 외부효과가 거의 강제력을 발휘하므로 플랫폼 소유주들은 가만히 앉아서 돈이 굴러들어오는 것을 지켜보면 된다. 예로 우버는 탑승 거래가 한 건 생길 때마다 일정 비율을 가져가고, 구글은 인터넷 검색 알고리즘의 품질을 유지하기만 하면 자기네 검색 광고 비즈니스를 통해 돈을 찍어내다시피 한다. 이것을 고려하면 벤처 자본가들이 왜 반려견 산책에서부터 식료품점 구매와 배달, 중고차 구매, 의류 세탁, 집 청소 등 별의별 구상에 돈을 쏟아붓는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플랫폼을 소유하는 것이 굉장한 것임을 알게 되면, 곧이어 누가 지배적인 자리를 차지하느냐를 가리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이 때문에 플랫폼 사업에 나서려는 회사들은 처음부터 수백만 달러의 벤처 캐피털 출자를 받아둘 필요가 있다. 제품 개발 외에도 네트워크 비즈니스의 토대 역할을 하는 고객 기반을 ‘사들이는 일’에 자금을 펑펑 써야 할 때가 많다. 일례로 페이팔은 사업을 막 개시하면서 새 고객이 가입하기만 해도 10달러를 지급했고, 다른 고객이 가입하도록 추천할 때는 더 많은 돈을 지급했다. 이러한 사정을 소니만큼 잘 아는 곳은 없다. 1980년대 비디오테이프 기술 규격에서 자사의 베타맥스가 JVC의 VHS에 패배하는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소니는 2000년대에 다시 자사의 블루레이(Blu-ray) 기술이 도시바의 HD DVD 규격에 맞설 때 고화질 디지털 비디오 장치 시장에서 설욕할 기회를 얻었다. 두 기술 규격은 재생과 녹화 품질의 성능이 막상막하였다. 단지 어느 회사가 자기네 기술 규격을 사용하는 충분한 작품 목록과 사용자 기반을 구축하느냐가 문제였다.

양측은 계속 대응과 맞대응을 하며 치고받느라 엄청난 돈을 지출했다. 결국 저울은 블루레이 쪽으로 기울었다. 영화 제작사들이 하나둘씩 이미 블루레이 규격에 쏠린 세를 고려해 새 영화를 HD DVD로 내 봐야 별 소용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소니는 DVD 시장을 장악해서 벌 수 있었던 이익을 이미 오래전에 주도권 다툼을 하느라 써 버린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두 회사는 DVD 전쟁에 몰입하느라 더 커다란 기술 변동인 비디오 스트리밍을 시선에서 놓치고 말았다.

샹파뉴를 위해 건배

이런 내용을 두루 살펴보면 샹파뉴 박람회는 일면 시장이 아니라 플랫폼이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샹파뉴 백작이 애초부터 플랫폼을 설계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본능적으로 했던 일은 기본적으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 일을 잘했다. 샹파뉴 박람회는 중세식 플랫폼 설계에서 주로 그의 현명한 결정에 힘입어서 거의 한 세기 동안 번창했다. 백작이 남들을 돕고자 하는 선의로 그 일에 공을 들인 것은 아니었다. 샹파뉴 지도자들은 박람회 개최로 막대한 재산을 모았다.

백작은 어떻게 하면 박람회 겸 플랫폼이 잘 굴러갈 것인지 직관적으로 알았다. 즉 특수한 이해 집단으로부터 돈을 받고 특권을 내주지 않았으며, 그 대신 모든 사람에게 보장되는 일반화된 제도를 갖추었다. 공평한 법률을 확립했으며, 심지어 런던 시장과 같은 다른 통치자들까지 동원함으로써 다양한 차원에 걸쳐 법률을 집행했다. 1170년에는 박람회 감독자들을 임명해 박람회를 감시하고 당사자들이 서명하는 계약의 증인 역할을 하도록 했다. 또한 박람회 내에 4단계로 이루어진 법원을 설치해서 분쟁을 해결했고 계약이 이행되도록 보장했다(법원은 벌금 부과, 재산 몰수, 금지 명령, 투옥 집행의 권한을 보유했다).그리고 백작은 박람회 참가자들에게 폭넓은 보호와 안전을 제공했다.

그러나 규칙을 올바로 집행하는 백작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외부에서 작용하는 힘이 너무 많았던 데다 아마 여러 가지 유혹의 영향으로 인해 박람회는 결국 사라지고 말았다. 여러 차례의 전쟁에다 규칙 집행의 실패, 근시안적인 프랑스 국왕에 이르기까지 온갖 요인들이 플랫폼의 붕괴를 초래했다.

탐혹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플랫폼

여기서 현대의 플랫폼들이 배워야 할 교훈을 볼 수 있다. 탐욕이 자신을 무너뜨리는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박람회 상인들을 착취한 프랑스 국왕의 근시안적 태도와 똑같은 현대의 사례들이 많다. 시장 조성자들은 일단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에서 결정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나면, 그로부터 이득을 보려고 하는 유혹을 피하기 어렵다. 예로 우버는 운전자들을 신차에 투자하도록 설득하고 자기네 탑승 공유 플랫폼으로 유인한 뒤 운전자들의 수입에서 더 많은 몫을 챙긴 일로 비난을 받았다. 플랫폼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비전에 곧이곧대로 수긍하거나, 그와 반대로 기술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하려는 플랫폼 비판자들에게 항복하는 극단을 피하려면, 플랫폼이 행동하는 논리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거기에 대왕쥐가 산다 : 경쟁과 시장 윤리

시장은 때로 쥐들의 전쟁터일 수 있다

1960년 제임스 클러벨은 첫 소설『대왕쥐』를 발표했는데, 이 소설은 싱가포르 동부의 악명 높은 창이 포로수용소에서 클러벨이 경험한 포로 생활을 바탕으로 한 개인적인 이야기다. 소설은 1945년 초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피터 말로(클러벨 본인에 대응하는 등장인물)는 1942년부터 전쟁 포로가 된 젊은 영국인 공군 대위인데, 창이 수용소 안에서 가장 활발한 트레이더이자 암시장 상인으로 자리 잡은 미군 하사 ‘킹’의 관심을 끌게 된다. 말로의 뛰어난 현지어(말레이어) 구사력에다 지능과 인품에 큰 인상을 받은 킹은 자신의 암시장 거래에 말로를 끌어들이려고 한다.

이 일 때문에 말로는 수용소 안에서 영국인 헌병대를 맡은 로빈 그레이 대위의 주시를 받는다. 그레이는 암시장 거래를 박멸하고 킹을 체포하고 싶어 하며, 포로들 사이에 군기를 유지하고 동시에 자신의 지위도 유지하고자 한다. 노동 계급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그레이는 규칙 그 자체를 위해 규칙을 준수하며, 헌병장이라는 역할을 활용해 영국 사회에서는 누리지 못했을 지위를 얻고자 한다.

한편 시장 교환이 금지되어 있던 창이 수용소와 같은 곳에서 생존하기(아니면 생존할 승산이라도 높이기) 위한 유일한 길은 소단위 팀을 형성해 살아가는 것이었다. 서로 주고받는 팀원들의 호혜 의식이 시장을 대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어쩌다 운이 좋아 쓸 만한 것을 얻으면 그것을 팀원들과 함께 나누는 식이다. 만일 당신이 그것을 나누지 않으면(그리고 그 사실이 발각되면) 당신의 ‘부족’으로부터 추방당하고, 그러면 고통을 당해도 홀로 이겨내야 한다.

창이에서 그러한 팀이나 동반자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딱 하나 있었는데, 그가 바로 킹 하사였다. 킹의 생존 수단은 시장이었다. 그는 자신의 거래 수완 덕분에 폐쇄된 포로수용소 사회 속에서 큰 힘을 행사하는 세력가가 되었다. 킹은 그 자신과 (킹의 하수인 역할을 하는) 동료 미군 포로들의 생존을 지키려고 한국인 보초, 현지 마을 주민들, 다른 포로들을 거래 상대로 삼아 식품, 의류, 정보를 거래했고, 아주 드물게 거래에 나오는 귀중품도 닥치는 대로 거래했다. 한편 말로는 자신에게 접근하는 킹이 성가시다고 느낀다. 킹의 거칠고도 아주 미국적인 태도가 영국 상류층의 관념에 젖어 있는 말로와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말로는 결국 킹과 시장의 유혹에 굴복한다. 이후 전쟁이 끝나고 수용소가 해방된 뒤에 킹은 헌병에게 끌려가 암시장 활동에 대한 재판을 받는다.

한편 포로들은 식량을 얻으려고 옥사 안에서 쥐를 사육했는데. 수용소를 떠나게 되자 우리에 갇힌 쥐들을 버려두고 간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사육자가 사라진 쥐들이 서로 싸우며 잡아먹는데, 그 싸움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쥐가 ‘쥐들의 왕’이다. 킹이 트레이더로서 거둔 성공과 어우러지는 이런 쥐의 이미지가 소설의 제목으로 정해진 셈이다. 이 이미지가 묘사하는 뉘앙스는 ‘대왕쥐’가 시장이라는 관념과 뒤엉키는 복잡한 관계에 더해, 아마 우리 모두가 떠안고 있는 근심스러운 관계일 것이다.

시장은 사람이 생존하는 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시장이 없었을 때보다 더 안락한 삶을 누리는 데 도움을 줄 때가 많다(킹이 성공한 열쇠가 이것이다). 그러나 시장은 킹에게 과다한 보상을 안겨주는 탓에 고르지 못하고 불공정해 보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킹은 창이에서 더 잘 먹고, 더 잘 입고, 수용소의 다른 누구보다 훨씬 큰 힘을 행사한다. 또한 그레이 대위가 전통적인 사회 질서를 유지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임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그 질서를 뒤집어 놓는다. 나아가 시장은 우리의 모습을 바꿔 놓는다. ‘보이지 않는 손’의 비유가 풍기는 아름다움과는 딴판으로 시장에서 비롯된 우리의 행동이 우리 모두의 처지를 악화시키는 것이다(이것이 다른 사람들이 킹을 대단히 싫어하는 이유의 일부다). 그리고 경쟁 그 자체는 시장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좌우하는 혈액에 해당하지만, 이익을 소멸시킬 뿐 아니라 윤리와 연민의 정서를 몰아낸다. 윤리와 연민 따위는 값비싼 사치로 치부되는 탓이다.

경쟁은 우리를 비윤리적으로 만들 수 있다

2004년 하버드대학교 경제학자 안드레이 슐라이퍼는 한 소론에서 (자유시장론자들이 그리스도의 성배처럼 신성시하는) 경쟁 시장은 우리를 단순히 이기적으로 만드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비윤리적인 존재로 만드는 잠재력이 있다고 추정했다. 슐라이퍼는 윤리적 행동이 경제학자들의 용어로 정상재(normal good)와 같다고 전제하는데, 정상재란 우리가 부유해질수록 더 많이 소비하는 상품을 뜻한다(이와 대비되는 열등재(inferior good)는 우리가 부유해짐에 따라 소비를 줄이는 상품이다. 가난한 대학생들에게 오래도록 인기를 누리는 라면이 열등재의 대표적 예다).

슐라이퍼의 주된 논점은 일정한 상황에서 “경쟁은 비난받을 행동을 증가시킨다”라는 것이다. 애로와 드브뢰의 고전적인 논문에서야 시장 경쟁이 실현 가능한 온갖 세상을 통틀어 가장 효율적인 세상을 형성해 줄 것이라고 증명되어 있지만, 시장 경쟁은 사실 우리의 본모습을 십중팔구 우리가 달가워하지 않는 모습으로 바꿔 버릴 가능성이 있다. 시장 경쟁으로 인해 우리는 뇌물을 건네거나, 노동자들을 질병이나 사망으로부터 보호해 줄 지출을 기피하거나, 소비자들에게 해로운 문제를 유발하게 될 제품 품질에 대해 간편한 지름길을 택할 수 있다. 따라서 경쟁 시장은 우리를 나쁜 사람들로 만든다.

하지만 슐라이퍼는 곧이어 이런 자신의 주장에 대한 반론을 제시한다. 일례로 그는 기업이 지출하는 경비 중에 우리가 비윤리적일 뿐 아니라 비효율적이라고 볼 만한 여러 가지 ‘낭비성’ 지출이 경쟁 덕분에 제거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가령 백인 노동자만 고용하려고 고집하는 회사는 인종을 불문하고 훌륭한 자질을 갖춘 취업자들을 고용하는 회사에 비해서 불리한 여건에 놓일 것이다. 따라서 경쟁을 통한 시장의 압력이 인종주의적인 기업 소유주를 불리한 상태로 몰아가면, 그 소유주도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원칙을 재고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경쟁 시장이 여러 가지 결함은 있더라도 그 덕분에 사회 전체가 대체로 좀 더 부유해진다면, 조만간 좀 더 넉넉해진 사회 형편 덕분에 정직하고 올바르게 살고자 하는 우리의 선호를 넉넉히 발현할 여유가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앞에서 래드퍼드의 포로수용소 생활을 소재로 시장에 관한 논의를 시작했을 때, 시장은 선을 구현하는 힘으로 작용하는 듯했다. 사람들은 시장 덕분에 각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다. 하지만 이 책의 중심 전제를 기억하자. 그것은 우리의 현재와 미래가 어제와 오늘의 경제 이론의 뼈대 위에 구축된다는 것이다. 경제 이론은 처음에는 난해한 학술지에 등장했다가 세상으로 흘러나와서 새로운 유형의 시장이나 시장 비슷한 메커니즘이 탄생하고 성장하는 데 기여해 왔다. 그처럼 새로 생겨난 시장들과 시장 비슷한 메커니즘들이 오늘날 우리가 상호작용하는 생활의 커다란 부분을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시장이 우리 삶의 구석구석으로 파고드는 것을 별로 알아채지 못한 채 살아간다.

시장이 우리 행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보여 주는 증거와 시장이 우리 삶에 파고드는 새로운 양상을 같이 고려해 보면, 우리의 미래에 대해 적어도 조금은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우리 저자들은 이런저런 정부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일부러 꺼내지 않았다. 또한 정부 규제가 없는 상황에서 참여자들이 시장 거래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이러한 논의는 의미 있는 화제들이다.

우리는 정부 규제의 최적화에 대해 제안하지 않을 것이며, 시장 윤리에 대한 설교를 결론으로 제시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시장에 대해, 또 시장 논리가 우리 삶에서 수행하는 역할에 대해 사려 깊게 논의하려고 하면, 정부 규제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인지, 즉 시장이 잘하는 것은 무엇이고 잘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더 깊이 논의해야 한다. 2차 세계대전 이래 등장한 시장 혁신을 통틀어 보더라도, 시장이 효율성을 높이는 기적을 달성하려면, 어느 정도의 도움과 감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바꿔 놓은 사례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한 시장 혁신들을 더 잘 이해해야만 오늘날의 시장에서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장이 전쟁 포로들에게 식품을 배분해 줄 때는 놀랄 정도로 사회에 이롭지만, 인간 생명에 가격을 매기려고 할 때는 커다란 혼란을 유발하기 쉽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자유시장 비판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말을 달리 표현하자면, ‘때때로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는 모습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 것은, 그것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 까다로운 문제는 시장이 더 효율적인 사회를 창출하는 역할을 정말 잘 수행하기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승자와 패자를 만들 뿐 아니라, 삶을 공동체 게임으로 보는가 아니면 월스트리트의 경쟁으로 보는가 하는 우리의 사고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더 효율적인 세상으로 가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큰 대가를 기꺼이 치르고자 하는가? 이에 답할 사람은 우리 저자들도 아니고, 새로운 시장경제의 설계자들도 아니다. 그 대답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다.

본 도서요약본은 원본 도서의 주요 내용을 5% 정도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원본 도서에는 나머지 95%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보다 많은 정보와 내용은 원본 도서를 참조하시기 바라며, 본 도서요약본이 좋은 책을 고르는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0 댓글
본문 피드백
모든 댓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