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중년의 일상 탈출 고백서

탐나는책 / 2020년 8월 / 415쪽 / 14,800원

어느 중년의 일상 탈출 고백서

어느 중년의 일상 탈출 고백서

하이디 엘리어슨 지음

저자 소개

프리랜서 작가이며 컨설턴트이다. RV 어드벤처 회사에 글을 싣고 온라인 뉴스에 RV 여행에 관한 기사를 50편 이상 썼으며, 교육 과정과 매뉴얼을 개발했다. 『어느 중년의 일상 탈출 고백서』는 그녀의 첫 작품이다. 현재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에 살고 있다.

책소개

이 책은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일과에 지쳐 가던 어느 중년의 일상 탈출기다. 저자는 어느 날 거울 속에서 낯선 자신의 모습을 보고 고민하다가 집을 팔아 캠핑카를 구입해 홀로 여행을 떠나는데, 그 여행은 그녀를 성장시키고 그녀의 인생을 바꿔 놓는다. 저자는 지금, 그리고 바로 우리가 있는 서 있는 이 자리에서 행복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요약본 본문

그린 몬스터 : 2006년 8월

나는 그린 몬스터를 바라보았다. 잔뜩 들떴던 마음이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첫 운전 교습을 받으려고 강사와 잡아둔 약속이 방금 취소되었다. 이 어마어마한 크기의 캠핑카를 운전할 방법을 가르쳐 줄 다른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9미터 길이의 캠핑카는 측면에 2가지 색조의 초록색 줄이 있었다. 캠핑카는 신중하게 생각해서 살 수밖에 없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내 소유로 하기 위해 망설이지 않고 서명을 하러 왔다. 그러고 나면 캠핑카를 몰고 로키 산맥을 넘는 일만 남았다.

눈앞이 캄캄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라스베이거스 RV 공원 사무실의 로비로 들어갔다. 방금 내 캠핑카를 끌고 온 마이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나는 마이크가 제시한 서류 몇 장에 서명했고, 그는 내게 자동차 키를 건네며 물었다. “이제 완전히 고객님 차가 되었군요. 축하드립니다! 여행을 계획해 두셨어요?” “돌아갈 직장이 없어요. 얼마 전에 일도 그만두고 집도 팔고 갖고 있는 물건도 다 처분했어요. 1년 동안 쉬면서 캠핑카로 여행만 할 계획이에요.” “우와, 고객님 혼자서요?” “나와 반려견 둘이서요.” “용기가 대단하시네요. 행운을 빕니다!” 마이크는 나와 악수를 하고 일어섰다.

나는 시운전을 두어 번 했을 뿐, 캠핑카를 몰아본 경험은 전혀 없었다. 앞으로 이 거대한 자동차에 내 승용차를 연결해서 다녀야만 했다. 그 말은 곧 길이가 13미터도 넘는 차량을 운전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더구나 나는 그 차로 후진할 줄을 몰랐다. 그때가 2006년 8월이었고, 나는 다음 날 라스베이거스 공항에 가서 21살인 내 딸 캐미를 차에 태울 계획이었다. 그런 다음 내가 성장한 미네소타 주로 곧장 가서 부모님을 만날 예정이었다. 캐미는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에 있는 직장에서 고작 일주일의 휴가를 받았다. 그래서 나는 지체할 수가 없었다. 이것은 내가 운전 교습을 받았든 안 받았든 길을 떠나 앞으로 3,000킬로미터를 달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승용차에서 작은 보더콜리 믹스견 라일리를 꺼내 다시 캠핑카로 걸어갔다. 라일리를 조수석에 앉힌 후 앞으로 빙 돌아 운전석으로 갔다.

심호흡을 하고 시동을 걸었다. 나는 변속 기어를 드라이브에 슬며시 넣고 거울로 몇 번이고 확인하며 고객용 주차 공간에서 천천히 나왔다. 나는 별다른 문제없이 주차장에서 야영지로 차를 몰고는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난생처음 캠핑카를 몰고 1킬로미터를 무사히 달렸다! 풀스루 야영지를 예약해 두기를 잘했다. 여기서는 직진만 하면 되고 차량을 후진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도 차의 폭이 워낙 넓다 보니 야영지가 도살장의 활송 장치처럼 좁게 느껴졌다. 내게는 그린 몬스터를 살살 구슬러 로키 산맥을 넘어 미네소타까지 가야 할 책임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첫 목적지에 불과했다. 내 계획은 차를 끌고 전국을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갑자기 심장박동이 세 배로 빨라졌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집을 팔고 직장을 그만두다니! 다른 직장을 못 구하면 어쩌려고? 게다가 이제는 이 덩치가 산만한 녀석을 관리해야 하다니. 도대체 내가 뭘 하는 건지 모르겠네.’ 나는 내 인생이 기우뚱했던 그날과 이런 무모한 짓을 저지르게 만들었던 절박함을 돌이켜 보았다. 그날은 월요일이었고, 다른 수많은 회색빛의 단조로운 날들과 다를 바 없이 시작되었다. 그때 나는 사람들로 가득한 통근열차를 타고 한 시간 거리의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따분하기 짝이 없는 직장으로 가고 있었다. 열차는 엠바카데로 센터에 있는 정류장에 도착했다. 지하역에서 사무실까지 세 블록을 가면서 노숙자들을 힐끔힐끔 보았다. 노숙자들은 잡담을 하고 빈둥거리고 한가롭게 거닐고 있었다. 특히 이날은 노숙자들과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했다. 나를 지배하는 감정을 노숙자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고, 그 감정이 어찌나 위협적인지 어디로든 도망치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내가 향하는 곳과 멀리 떨어져 있기만 하다면 어디든 상관없었다.

노숙자들에게 부러운 감정이 일었다. 그들이 마냥 부러웠다. 노숙자들은 갚아야 할 주택담보대출이 없고 지불해야 할 청구서도 날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매일 똑같은 일과를 반복하며 사무실의 칸막이 안에서 매일 여덟 시간씩 일하지 않아도 되었다. 노숙자들에게 시간은 무한한 상품이었다. 그래서 허둥지둥 서두를 필요가 없고, 너무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활동을 하느라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었다. 기울어진 나의 세계에서는 그렇게 보였다. 그래서 무척…… 끌렸다. 나는 다람쥐 쳇바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지쳐 있었다. 자유를 누리고 싶었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전통적인 성공 모델인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살았다. 보수가 좋은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하고, 집을 장만하고, 온갖 덫을 구매하라. 매년 아주 짧게 주어지는 몇 주간의 휴가에 만족하라. 내가 스스로 선택한 삶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다. 게다가 내게 방랑벽이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내 딸 캐미 외에 내게 힘을 불어넣어 준 건 여행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노숙자들이 부럽다고? 분명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나는 변화, 인생의 중대한 변화가 절실히 필요했다. 여행을 할 때면 살아나는, 잃어버린 나 자신의 일부를 되찾아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집을 구매 가격의 2배에 팔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잠시만이라도 내가 원하는 건 뭐든 할 시간과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거대한 문이 활짝 열린 기분이었다. 1년 가까이 걸리기는 했지만 준비를 하면서 희망과 기대가 점점 커졌다. 이제 나는 그 출구로 나가고 있었다.

4개월 전, 나는 투손에 있는 대학 캠퍼스에서 3일 과정의 수업을 들었다. 하수 탱크를 비우는 일에서부터 간단한 RV 수리에 이르는 모든 것을 배웠다. 사흘째 되는 날에는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수업에 들어가 앞쪽에 있는 책상에 앉았는데, 내 맞은편에는 다정한 미소를 띤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 여자는 45살인 나와 같은 또래로 보였는데, 이 수업에서 그런 나이는 드물었다. 나는 그녀가 금세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신디라고 했다. 우리는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이후 나는 몇 달 동안 조사를 했고, 라이프 언 휠스, 인터넷 포럼, 다른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를 통해 지식을 쌓았다. 그러고 나자 RV에 관해서는 일자무식이었던 내가 RV 아인슈타인으로 변모해 타이어 공기압 상대성 이론을 막힘없이 쏟아내게 되었다. 그날 저녁 나는 여행을 준비하고 캠핑카 생활에 적응하느라 너무 바빴다. 내가 지쳐서 침대에 쓰러져 바로 곯아떨어졌을 때는 늦은 시간이었다.

출발하다 : 2006년 8월~9월

다음 날 아침 승용차를 끌고 공항에 가서 캐미를 태워 그린 몬스터로 돌아왔다. 이후 연장 케이블을 설치하고 캠핑카 뒤쪽에 승용차를 연결하고 나니 오후 2시였다. 드디어 출발. 나는 혼잡한 고속도로에 서서히 진입했다. 320킬로미터쯤 달리고 나자 운전대를 너무 꽉 잡은 탓에 어깨가 아팠다. 중간에 하룻밤을 머물기로 했다. 나는 야영장을 찾아 주차를 했다. 나는 캐미와 라일리를 산책시키며 말했다. “이번 여행에는 풀스루 야영지가 있는 야영장에서만 머물기로 했어. 매일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도 힘이 드는데, 승용차를 분리하고 후진해서 주차까지 해야 하는 걱정은 없을 테니까.” 그것은 현명한 결정이었다. 우리는 매일 어두워진 뒤에 캠핑장에 도착했고, 어느 날은 밤 10시 30분이 되어서야 왔다.

콜로라도 주에 접어들자 운전하는 것이 조금 더 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로키 산맥을 넘었다. 이후 네브래스카 주를 횡단할 때는 단조로웠다. 바짝 말라 보이는 들판이 끝도 없이 수 킬로미터 이어져 있었다. 우리는 사우스다코타 주를 향해 북쪽으로 달리다가 미네소타 주를 향해 동쪽으로 갔다. 일단 35번 주간(州間) 고속도로에 올라타고 다시 북쪽으로 가기 시작하자 낯익은 땅에 들어와 있었다. 덜루스, 그리고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집에 가까이 이르자 나는 점점 마음이 설렜다.

자동차 정비사이자 카레이서였던 아빠는 이제 나이가 칠십대인데 아직도 바퀴 달린 기계에 관해서라면 자신이 전문가라고 자부했다. 엄마는 아빠보다 몇 살 어리고 말씨가 상냥했다. 나는 아빠와 엄마를 꼭 끌어안았다. 그런 다음 진입로에 캠핑카를 주차하려고 하자 아빠가 거들어 주었다. 나는 아빠와 엄마에게 캠핑카 내부를 잠깐 구경시켜 주었다. 그다음 며칠 동안 캐미와 나는 숲속에 있는 아늑한 부모님의 집에서 그동안 못 쉰 것까지 한꺼번에 편안히 쉬었다.

이후 어느 날 내가 캐미에게 말했다. “네가 정말 보고 싶을 거야. 너를 두고 이 모험을 떠나려니 나쁜 엄마가 된 것 같아.” 캐미가 말했다. “나쁜 엄마가 되는 것이 아니에요. 이제 엄마는 치열한 생활에서 벗어나 즐기실 때가 됐어요. 이건 엄마한테 딱 맞는 여행이에요. 이 여행을 하려고 그동안 정말 열심히 일하셨잖아요. 저도 엄마가 보고 싶을 거예요.” 나는 캐미를 안아 주었다. 내가 24살일 때 캐미가 태어났고, 그때부터 나는 혼자 캐미를 키웠다. 중간에 캐미의 아버지와 재회한 적도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캐미는 콜로라도 주, 포트 콜린스에 있는 대학에 가기로 했다. 나는 캐미가 대학 생활을 경험한다고 생각하니 흥분했다. 하지만 막상 캐미를 기숙사 방에 데려다 주자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캐미가 대학에 간 지 6개월 정도 되었을 때는 거대한 바위처럼 무거운 것이 굴러 와서 나를 납작하게 짓눌렀다. 나는 내가 혼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거울을 통해 바라본 내 모습은 가관이었다.

내 친구들과 가족들은 이 시기에 내가 우울해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었는지는 그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나는 탈진과 감정 마비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스스로 빠져 들어간 실의에서 나를 일으켜 줄 긍정적인 무언가가 절실히 필요했다. 나는 모든 걸 두고 에어스트림 트레일러(여행용 트레일러의 미국 브랜드)를 끌고 어디로든 달아나는 공상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노숙자들을 부러워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때였다. 이제 나는 자유로운 삶을 위해 다람쥐 쳇바퀴에서 탈출했다. 다만 에어스트림 트레일러 대신 캠핑카가 있었다. 2주 후에 나는 뉴멕시코 주에 갈 예정이었다. 라이프 언 휠스에서 만난 신디와 앨버커키 열기구 축제에서 RV로 여행하는 신디의 친구 몇 명을 만나기로 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목적지에 도착해 어떤 눈총을 받게 될지 전혀 몰랐다.  

어울림 : 2006년 10월

앨버커키 국제 열기구 축제는 매년 열리는 행사로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열기구 축제이다. 나는 RV 주차장으로 안내하는 표지판을 따라갔다. 나보다 먼저 도착한 신디가 일러준 방향도 참고했다. 그린 몬스터를 주차를 하자마자 라일리는 조수석 밑에서 나타났다. 우리는 신디를 찾으러 출발했다. 나는 신디의 캠핑카를 발견하고 문을 두드렸다. 신디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잠시 후 모나와 함께 나왔다. 모나는 신디가 키우는 17살짜리 개였다. 라일리와 모나가 안면을 튼 뒤에 우리는 RV 지역을 돌아다녔다. 신디는 몇몇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했고, 우리는 계속 산책을 했다. 걷다 보니 열기구를 띄우는 들판까지 갔다. 신디와 나는 장터와 노점을 둘러보고 각자 시간을 보낸 뒤, 나중에 만나기로 했다.

내 야영지를 향해 걸어가는데, 사람들 몇몇이 소곤거리며 이따금씩 그린 몬스터를 향해 눈살을 찌푸리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가까이 가자 그들 가운데 한 명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까 만난 단체의 일원인 배리였다. “바퀴가 저렇게 레벨링 블록 측면 위에 떠 있으면 타이어에 안 좋아요.” 배리가 말했다. “아, 알겠어요. 고맙습니다. 다시 해 볼게요.” 나는 벌게진 얼굴로 운전석에 올라탔고, 몇 사람의 도움으로 캠핑카를 후진해 레벨링 블록을 내려온 다음, 몇 번을 앞뒤로 왔다 갔다 한 끝에 마침내 일행이 만족하게끔 타이어 네 개를 전부 블록의 가운데에 올려놓았다. 그들은 일제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 나는 윗입술에 난 땀을 닦고 운전석에서 내려왔다.

열기구 : 2006년 10월

다음 날 나는 라일리의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아침 일찍 잠에서 깼다. 나는 누운 채 창의 차광막을 올려 하늘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열기구 수백 개가 이른 아침의 햇살 속을 떠다니고 있었다. 장관이었다. 침대에 누워 창밖으로 지나가는 이 색다른 광경을 보면서 나는 낯선 감정에 휩싸였다. 기쁨을 느꼈다. 사무실로 걸어가면서 노숙자들을 부러워하던 때를 회상했다. 삶에 지친 나머지 노숙자들의 ‘자유’를 부러워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는 이곳에 있지 않았을 터였다. 서둘러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갈 때 내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내 동료 여행객들 중 몇몇이 근처에 모여서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신디도 있었다. 신디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나를 보고 다가왔다.

“여기 같이 오자고 초대해 줘서 고마워.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완벽한 출발이야. 이 열기구들처럼 나도 하늘을 나는 기분이야.” 나는 신디에게 말했다. “나도 그래.” 신디는 활짝 웃었다. 나는 내 야영지 근처에 주차한 다른 여자들 몇 명을 알게 되었는데, 자신감 있고 모험심이 강한 그들의 모습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루시는 화끈한 웃음소리와 넘치는 재치 덕분에 거의 모든 사람들과 만나자마자 친구가 되었다. 대화를 나누며 루시는 이혼을 했고 캠핑카 상시 여행자라고 내게 말했다. 애니는 몇 년 전에 루시와 친구가 되었고, 각자 캠핑카를 끌고 종종 함께 여행을 한다고 내게 말했다.

이 여자들은 캠핑카를 능숙하게 관리했고 타이어 공기압, 탱크 비우기, 엔진 정비 같은 주제에 막힘이 없었다. 나도 그들처럼 내 캠핑카를 자신 있게 관리하고 싶었다. 캠핑카는 이 단체를 결집시키는 핵심 주제였다. 나는 사람들이 몇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캠핑카를 어떻게 업그레이드했는지 보여주고, 차 관리에 대해 아주 상세히 토론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경청했다. 그리고 우리 여덟 명은 길이가 7미터인 애니의 캠핑카에 우르르 타고 앨버커키 북쪽으로 한 시간을 달렸다. 주차를 한 후 우리는 등산로 입구에 모여 단체 사진을 찍었다. 그런 다음 등산로를 오르기 시작했다.

다음 날 우리는 등산을 한 뒤에 우리가 주차한 RV 근처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잡아요!”하며 누군가가 소리쳤다. 불안해 보이는 닥스훈트 두 마리가 짖어대며 우리 쪽으로 달려왔고, 그 뒤를 쫓아오는 한 여자도 보였다. 그 개는 곧장 나를 향해 달려오더니 미친 듯이 날뛰며 내 다리를 기어오르려고 필사적으로 버둥거렸다. 내가 껑충 뛰어서 피하는 동안 개를 쫓던 여자가 마침내 따라잡아서 개 목걸이에 줄을 잽싸게 맸다. 그러자 그 즉시 개는 진정되는 듯 보였다. “당신 개들이 꽤 흥분한 것 같아요.” 단체 구성원 중 한 명인 알렌이 말했다.

“제 개가 아니고, 제 옆에 있는 트레일러에서 지내던 남자의 개예요. 그 남자가 심장마비로 쓰러졌고, 이 개들은 오랫동안 그 남자와 함께 갇혀 있었어요. 개들이 짖는 소리를 들은 또 다른 이웃이 그 남자한테 무슨 일이 있는지 확인하러 갔어요. 그러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남자를 발견하고 구급차를 불렀어요. 저는 그 사람들을 도우려고 이 개들을 산책시켜 주는 것뿐이에요. 그런데 가엾은 개들이 몹시 겁을 먹었어요.”

나는 이 일로 충격을 받았다. 혼자 여행을 하면 한순간 모든 일이 틀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혼자 여행하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까 봐 걱정해 본 적 있어?” 나는 신디에게 물었다.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했지. 하지만 그러고 나서 깨달은 건 집에서 혼자 살든 캠핑카에서 혼자 살든 마찬가지라는 거야. 나는 뇌종양이 걸렸다는 사실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미래에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모르는 일에 대해 걱정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어. 그건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더 이상 그런 걱정은 안 할 거야. 대신 내 꿈대로 살 거야.” “나도 그럴 거야.” 나는 대답했다.

여행지에서 일어난 죽음 : 2006년 11월

신디와 나는 앨버커키를 떠날 때 뉴멕시코 주립공원 연간 통행권을 구입했고, 이번 기회를 이용해 뉴멕시코 주의 많은 야영지에 가 보았다. 그중 몇 군데는 호수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미네소타에서 성장하며 늘 보거나 캘리포니아에서 야영할 때 그 근처에 있었던, 나무로 둘러싸인 예쁜 호수는 아니었다. 우리는 루시와 애니를 만나기 위해 록하운드 주립공원으로 갔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루시와 애니는 이미 야영장에 와 있었다. 우리는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런 뒤 내가 물었다. “등산을 갈까 하는데, 같이 갈 사람 있어요?”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그럼 나중에 만나서 해피 아워(happy hour, 이 여행기에서는 지인들끼리 모여 술이나 음식을 먹는 경우를 말함)를 보낼까요?” 라고 제안하자 다들 동의했다. 나는 혼자 등산을 하기 위해 등산복을 입고 캠핑카에서 나왔다. 그리고 곧 부보안관의 차량 여러 대가 흙길을 질주해 야영장 관리인의 캠핑카 옆에 주차하는 것을 목격했다. 나는 루시의 캠핑카 밖에서 캠프 의자에 앉아 있는 루시, 신디, 애니에게 걸어갔다. “무슨 일일까요?”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전혀 모르겠어.” 신디가 말했다. 이윽고 더 많은 차량이 도착하고, ‘CSI’라는 글자가 박힌 셔츠를 입은 사람들 몇 명이 언덕을 오르내렸다. “저 산으로 못 올라가겠어요.” 내가 말하자 “안 가는 게 좋겠어.”라며 루시가 동의했다.

우리는 궁금해서 이웃인 빌에게 무슨 일인지 아느냐고 물었더니 “언덕 위에 있는 바위 뒤에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됐대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뉴멕시코에 도착한 뒤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하고 있었지만, 곧 나 혼자 있게 될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사건은 여자 혼자 여행할 때 어떤 위험한 일이 생길 수 있는지 잘 보여 주었다. “총을 소지하고 있나요?” 빌이 물었다. “아니요. 우리나라에 총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그리고 총이 있다고 우리가 더 안전해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후추 스프레이는 있어요?” “아니요, 하지만 이 사나운 투견은 있어요.” 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빌은 체중이 11킬로그램인 온순한 라일리를 바라보며 웃었다.

이후 내가 새로운 친구들과 뉴멕시코를 여행한 뒤로 6주가 흘렀다. 이제 우리는 각자 제 갈 길을 갈 때가 됐다. 신디는 건강 검진을 받기 위해 캘리포니아 주 남부로 향하고, 애니는 필라델피아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루시는 아들을 만나러 가고, 나는 혼자 애리조나 주를 탐험한 뒤 캘리포니아로 돌아가서 크리스마스 때 캐미를 만날 계획이었다. 이 재미있는 여자들과 헤어지는 것이 슬펐다. 하지만 두 달 뒤에 바하 반도를 여행할 때 다시 만나기로 했으니 그날이 오기를 고대했다.

계획 변경 : 2007년 5월~6월

5월 초순, 공포가 엄습했다. 8개월 동안 여행을 다녔고, 1년을 계획한 자유로운 여행이 4개월 뒤면 끝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막 캠핑카를 관리하는 일이 손에 익고 길에서의 생활에 적응하는 중이었다. 나는 4개월 뒤에 다시 생존 경쟁의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은행 잔고가 줄고 있어서 돈 들어올 데가 있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새로 찾은 자유를 이대로 포기하고 예전 생활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계속 여행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공포에 휩싸인 지 얼마 후 신디의 전화를 받았다. “야영장에서 일자리를 얻었어.” “정말? 나도 방금 일자리를 구해볼까 생각 중이었는데, 어떤 일이야?” “캘리포니아 남부의 RV 공원에서 하는 아르바이트야. 난 사무실 일을 도울 거야. 임금도 받고 공짜로 캠핑카를 주차할 수도 있어. 일할 사람을 더 구하는 것 같아. 사람을 더 채용할 건지 관리인에게 물어봐 줄까?” “그럼 나야 좋지.” 야영장에서 일을 하면 여행 기간을 좀 더 연장할 수 있을 터였다. 신디는 더 많은 정보를 알게 되면 전화해 주겠다고 했다.

며칠 후에 신디는 내게 전화를 걸어 공원에서 여전히 일할 사람을 구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나는 지원을 했고 채용이 되었다. 내가 일할 곳은 로스앤젤레스와 샌디에이고 사이에 있는 테메큘라 근처 언덕의 외딴 곳에 있었다. 나는 야영장에 도착하고 얼마 후 일을 시작했다. 며칠 동안은 사무실에서 일을 했고, 그 뒤 며칠은 잡초를 뽑고 톱밥제조기에 솔을 넣는 일 외에도 다른 바깥일을 했다. 신디와 나는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낼 때가 많았고, 덕분에 우리의 우정은 더욱 돈독해졌다. 주 3일만 근무하다 보니 4일 동안은 인근 지역을 답사할 수 있었다. 나는 캘리포니아 주의 중부 해안 지역을 좋아했다. 그 중에는 태평양에 자리한, 약 6,000명의 주민들이 사는 고풍스런 마을인 캠브리아가 있었는데, 중부 해안 지역에 사는 친구들이 있어서 되도록 자주 방문했다.

테메큘라에서 캠브리아까지는 약 480킬로미터였다. 그래서 나는 돌아오는 긴 주말까지 기다렸다가 여행을 했다. 친구들과 함께 캠브리아의 미술관과 상점들을 느긋하게 구경했다. 그리고 몬타냐 데 오로 주립공원을 걸으며 시간을 보냈다. 차를 타고 RV 공원으로 돌아가면서 내가 얼마나 운이 좋은지 깨달았다. 즐겁게 여행을 다니면서도 가족과 친구들을 꽤 자주 만나고 있으니 말이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감사는 나와는 거리가 먼 감정이었다. 그때는 우울증에 꽁꽁 갇혀 있어서 감사함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감사할 일이 파도처럼 계속 밀려와서 가슴이 벅찰 지경이었다.

야영장에서 일을 시작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였다. 이웃 포도밭에서 새들과 다른 생물들을 포도나무에서 쫓아내려고 동물 퇴치용 폭죽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라일리는 그 소리에 겁을 먹었다. 나는 RV 공원의 관리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내 문제를 설명했다. 관리인은 포도원 주인에게 폭죽을 그만 터트릴 수 있는지 물어보겠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나는 RV 공원 관리인에게 이제 가야겠다고 말하고 그곳을 떠났다. 신디와 다른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려니 서운했다. 하지만 라일리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캐미를 만나러 베이 에어리어로 차를 몰았고, 그곳에서 한 달 이상 지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관계 : 2007년 6월

나는 여행을 계속할 수 있도록 다른 아르바이트를 구해야 했다. 그런데 한 달 전에 야영장에서 일할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회를 알게 되었다. RV 클럽 가운데 한 곳이 회원들을 위한 월간 잡지를 발행했는데, 그런 잡지에서 항공사진 회사의 판매원이 쓴 기사를 읽었다. 기사에서 그 판매원은 어떻게 RV를 타고 여행하며 항공사진을 팔 수 있었는지 설명했다. 나는 그 내용을 읽고 흥미가 생겨서 판매원에게 이메일을 보내 그 일에 대해 물어보았다.

판매원은 답장을 보내 일의 진행 방식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워싱턴의 영업부장인 제이크에게 전화를 걸어 자세히 알아보라고 권했다. 그러면서 나에 대해 제이크에게 일러두겠다고 말했다. 2주 뒤에 제이크로부터 이메일을 받았고, 제이크는 전화를 해 달라고 제안했다. 우리는 전화로 인터뷰를 했고, 제이크는 내게 한번 해 보라고 권했다. 그 회사는 나파 밸리에서 찍은 항공사진 몇 장을 내게 보냈다. 나파 밸리는 내가 머물고 있는 베이 에어리어에서 두 시간도 안 걸리는 곳이었다. 사진 꾸러미를 열었을 때, 나는 엽서처럼 완벽한 사진을 보고 행운을 만난 것 같아서 믿을 수가 없었다. 대부분 포도밭과 나파 밸리의 멋진 풍경을 찍은 사진이었다.

이후 나는 나파에 야영지를 구하고, 포도밭을 다니며 주인들을 만나러 다녔다. 나는 전형적인 붙임성 좋은 판매원은 아니지만 사진을 꽤 잘 팔았다. 무엇보다도 나는 그 일이 재미있었다. 나는 주민들과 만나서 대화하는 것이 즐거웠고, 그들은 대부분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나는 정해진 보수를 받았다. 나파에서처럼 판매가 잘 되면 아르바이트에 맞먹는 적당한 보너스도 받을 수 있었다. 사진이 너무 예뻐서 안 팔릴 수가 없었다. 제이크는 내게 계속 일을 하라고 권했고, 나는 그러기로 했다.

외로운 흰 늑대 : 2007년 9월~12월

집을 팔아서 저축해 둔 돈이 아직 좀 있었지만, 은행 잔고가 꾸준히 줄고 있었다. 항공사진을 더 팔아야 했다. 나파에서 성공적으로 판매를 해내자 영업부장은 나한테 몹시 일을 시키고 싶어 했다. 나는 매출이 더 좋은 아이오와 주로 이동했다. 그 후 텍사스 주, 애리조나 주, 네바다 주를 방문하며 가는 길에 사진을 팔았다. 애리조나를 제외하면 그 지역들은 내 버킷리스트의 상위를 차지하는 목적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 회사가 사진을 찍은 지역으로 가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하는 덕택에 내가 전에 가본 적이 없는 곳곳을 여행하는 삶을 계속할 수 있었다.

한편 그 회사는 네바다 주 파럼프의 사진을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파럼프는 라스베이거스에서 1시간 거리에 있었다. 고지대 사막이 있는 이 마을은 평소라면 내가 택할 목적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데스밸리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사진 판매가 순조로워서 당분간 파럼프에서 지내며 일하기로 했다. 파럼프에는 한 달 이용료가 저렴한 RV 공원이 있었다. 기본적인 시설만 갖추어진 공원이었지만, 그곳에는 여행자들의 좋은 공동체가 있었는데, 바로 그곳에서 혼자 여행하는 또 다른 배짱 좋은 여자 첸테이를 만났다. 첸테이는 아동 도서 삽화를 그리는 화가였다. 최근 집을 판 뒤로 캠핑카로 여행을 다니고 있었다. RV 공원에서 우리는 유일한 단신 상시 여행자였다. 우리에게는 공통의 씨앗이 있었고 거기에서 우정이 꽃을 피웠다.

여행에 대한 환상이 깨지다 : 2010년 10월~2011년 2월

나는 습기 많은 텍사스 주의 아주 외진 곳에서 두 달을 지냈다. 추수감사절을 외롭게 보냈는데, 비참했다. 텍사스는 내게 영 맞지 않았다. 내가 전에 두 달을 보낸 네바다 주 카슨시티보다 사진이 더 잘 팔리기는 했다. 그래도 텍사스를 벗어나고 싶었다. 나의 고독한 방랑 생활은 모험이라기보다는 마지못해 하는 일상에 가까웠다. 영화 관람, 산책, 식사를 함께 하고 싶을 때마다 언제든 연락할 수 있는 친구들이 그리웠다. 텍사스에 오기 전에는 두 달 동안 그런 친구들이 있었다.

나는 두 건의 일을 의뢰받아 텍사스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하나는 단기 계약직 교육 설계 업무였다. 다른 하나는 RV 여행사에 여행 기사를 써 주는 아르바이트였다.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으면 캠핑카에서 2가지 일을 모두 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나는 캐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좋은 소식이 있어! 그리로 가서 크리스마스를 보낼 거야. 게다가 잠시 머물다 갈 거야!” “우와! 언제 오세요?” 캐미가 환호했다. “캘리포니아 남부에 들러 전기 발판을 수리하고 견인 장치 배선을 고쳐야 해. 하지만 다음 주쯤에는 도착할 거야.” 잊을 만하면 돈을 달라고 요구하는 그린 몬스터에 진저리가 났다. 그래도 캘리포니아에서 살았다면 지불했을 임대료나 대출금을 생각하면 그리 나쁘지 않았다.

1월 말의 어느 날, 나는 캠핑카 침실에서 청소기를 돌리다 카펫에서 이빨 일부를 발견했다. 내 이는 아니었으므로 라일리를 불러 입을 들여다보았다. 예상대로 어금니 하나가 부러져 있었다. 나는 라일리를 수의사에게 데려갔다. 수의사는 라일리의 입안을 보더니 “치수가 노출돼 있어서 감염을 막기 위해 남은 치아를 제거하는 게 좋아요.”라고 말했다. 나는 이틀 뒤로 약속을 정했다. 그리고 라일리의 치과 수술이 있던 날 아침, 인턴 수의사가 내게서 라일리의 목줄을 받아들며 말했다. “라일리를 종일 지켜보고 별 이상이 없으면 진통제를 한 번 더 맞고 귀가하면 돼요. 5시 이후에 데리러 오세요.”

내가 약속 시간에 돌아오자 인턴 수의사가 라일리를 데리고 왔다. 그런데 꼬리를 흔들지도 않고 얼굴에 미소를 띠지도 않았다. 우리가 함께 한 10년 동안 라일리가 나를 보고 반기지 않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라일리의 미움을 산 게 분명했다. 힘든 밤이었다. 라일리는 낑낑거리며 서성거렸다. 아침이 되자마자 동물병원에 전화를 했더니 약 횟수를 늘리라고 권했다. 다음 날 라일리가 훨씬 나아져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믿음직스러운 작은 동반자에게 생각보다 더 의지하고 있었다. 녀석 없이 여행을 하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나자 우리는 다시 평소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밀폐된 캠핑카 안에서 겨울을 보내려니 힘들었다. 비와 추위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실내에 있어야 해서 갑갑할 때가 더 많았다. 이 깡통에서 벗어나야 해. 나는 2월 말에 교육 설계 일을 끝냈다. 그래서 하와이로 여행을 가서 겨울 우울증을 이겨내기로 했다. 라일리는 내가 없는 동안 수술에서 완전히 회복되어 캐미와 함께 지냈다. 하와이는 좋은 약이 되었다. 비좁은 캠핑카를 벗어나서 기분이 너무 좋았고, 하와이 휴가가 끝나는 것이 아쉬웠다. 나는 마지못해 비행기를 타고 캠핑카로 돌아왔다.

먹구름이 끼다 : 2011년 3월~6월

나는 크레이그리스트(온라인 생활 정보사이트)에서 프리랜서 작가를 구한다는 RV 여행사의 광고를 보고 지원했다. 그런 다음 전화 인터뷰를 하고 견본 글을 제출한 뒤에 채용되었다. 이후 의뢰인이 전화로 다음과 같이 했다. “우리는 파럼프에서 RV 집회를 하고 있어요. 여기 오셔서 사람들과 행사에 대해 취재하고 기사를 써 주면 좋겠어요.” 부모님이 라스베이거스에 와서 한 달 동안 지낼 계획이었고, 파럼프는 불과 한 시간 거리에 있었다. 나는 집회에 참석도 하고 부모님도 만날 수 있었다.

이후 나는 라스베이거스와 파럼프를 거쳐 캘리포니아 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센트럴 밸리로 왔고, 오렌지 과수원과 낙농장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비세일리아에서 사진이 잘 팔려서 몇 달 머물기로 했다. 이 마을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놀랍기도 하고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첸테이와 비세일리아에서 만나기로 했다. 우리는 좋은 음식과 훌륭한 음악이 있는, 크로대디즈라는 그 지역의 아지트를 발견했다. 매주 일요일 저녁, 그곳에는 다양한 음악가들이 출연해 연주를 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즉흥 공연을 했다. 그들 가운데 몇 명은 정말 재능이 있었다. 우리는 일요일마다 찾는 단골이 되어 저녁을 먹고 와인 한두 잔을 마시며 음악을 즐겼다. 가끔 일어나서 춤을 추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상점들 앞을 지나가다가 한 가게의 진열장이 시선을 끌어서 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 안에 독특한 식기 세트가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식기 세트에 매료되었다. 꽃과 나비가 있는 접시를 보고 있으니 그냥 기분이 좋았다. “이 깨지기 쉬운 그릇을 캠핑카에서 사는 사람이 갖는 건 말이 안 되지만 사고 싶어. 플라스틱 접시에 음식을 먹는 게 지겨워진 것 같아.”나는 첸테이에게 말했다.

나는 내가 이 여행을 시작하게 된 동기, 노숙자들의 자유를 부러워할 정도로 심각했던 우울증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이제 바뀌었고 더 이상 우울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뭘까? 단순히 내가 원하는 대로 하고 나 자신과 소통할 시간과 자유를 누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관례적인 아메리칸 드림을 쫓는 정해진 틀에서 벗어났기 때문일까? 그 답을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을 해서 감사했다. 나는 점원에게 말했다. “이 세트를 전부 가져갈게요. 잘 싸서 상자에 담아 주세요.” 그리고 첸테이에게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시 정착할 때가 됐어. 이제 계속할 수 있는 정규직 일자리를 찾아야겠어.”

그 뒤에 크레이그리스트에서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컨설팅 회사의 교육 설계 일을 몇 군데 지원했다. 하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그래서 계속 항공사진을 팔았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저녁, 첸테이와 나는 크로대디즈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별안간 감당하기 벅찬 슬픔과 상실감에 휩싸였다. 그 감정이 어디서 왔는지, 왜 갑자기 그런 기분이 엄습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첸테이를 보며 말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해야 해. 이 모퉁이를 돌면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으니까” “맞아.” 첸테이도 내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는 내가 와인을 마시고 취했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나는 취해서 갑자기 슬퍼진 건 아니었다. 하지만 설명할 길이 없어서 잠자코 있었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아빠가 병원에 가서 검사를 몇 가지 받았는데, 대장암이라고 하더구나.” “네? 얼마나 심각하신데요?” 그 순간 그날 밤 크로대디즈에서 느꼈던 감정이 떠올랐다. 문제가 생긴 걸 보니 어쩌면 그건 육감일 수도 있었다. 나는 아빠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았다. 아빠는 두 번의 심각한 심장병, 전립선암 방사선 치료, 다섯 차례의 혈관 우회 수술을 견뎌냈다. 엄마는 나를 안심시키려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빠는 강한 분이에요. 이번에도 이겨내실 거예요.” “그래, 아빠는 괜찮을 거야.” 그러고 나서 나는 아빠와 통화를 했다. 아빠는 평소의 무뚝뚝한 성격으로 모든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언니 둘과 오빠가 수술 날에 병원에 갈 계획이어서 옆에서 시중들 사람은 많았다. 그래서 나는 아빠 생일인 몇 주 뒤인 9월 초에 도착할 수 있도록 비행기를 예약했다. 부모님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운전을 하지 않고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나는 베이 에어리어로 돌아가서 라일리를 캐미의 집에 맡겼다. 그런 다음 비행기를 타고 미네소타로 갔다.

제자리로 돌아오다 : 2011년 7월~11월

내가 집에 도착하니 아빠는 평소에 늘 차지하던 소파에 엎드려 있었다. 지난 40년을 돌이켜 보면 예나 지금이나 아빠는 늘 소파에 누워 있다. 이후 2주 동안은 내가 기억하기로는 부모님과 함께 보낸 가장 달콤한 시간들 중 하나였다. 나는 성장할 때 아빠에 대한 감정이 복잡했다. 내가 십 대였을 때 아빠는 집을 자주 비우고 술에 빠져 사느라 가족에게 상처를 주었다. 그래서 나는 아빠에게 화가 났고 아빠를 용서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아빠는 언제나 의지가 강하고 독립적으로만 보였다.

그런데 이 남자에게서 이제 연약한 모습이 보였다. 결국 아빠는 술과 담배를 끊었지만 무리한 생활 습관으로 결국 몸이 망가지고 말았다. 하지만 아빠는 가족을 사랑했다. 이제 나는 그 사실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아빠의 음주와 행동이 우리 가족에게 입힌 상처를 용서할 수 있었다. 한편 미네소타에서 지내고 있을 때 한 컨설팅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전에 여러 컨설팅 회사의 교육 설계 업무에 지원을 했는데 그중 한 회사였다. 회사 측은 내가 베이 에어리어로 면접을 보러 오기를 원했다. 나는 일주일 뒤에 면접을 보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부모님이 집을 팔 수 있도록 거들었다. 상자에 든 물건을 버릴 것, 팔 것, 기증할 것으로 분류해 모아두었다.

베이 에어리어로 돌아온 나는 면접을 보고 채용되었다! 근무일은 8월 1일부터였고, 보수는 항공사진 판매로 버는 액수보다 훨씬 많았다. 뿐만 아니라 보험과 연금도 제공했다. 내가 여행하는 동안 누리지 못한 혜택이었다. 여행하는 동안에는 돈을 많이 벌지 못해서 여유가 없었지만, 이제 은퇴에 대비해 다시 저축을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 일은 내가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했던 일보다 훨씬 더 흥미롭고 도전적이었다. 게다가 글 쓰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꿈이 실현되었다.

이제 캠핑카를 끌고 여행하는 나날은 끝났다. 나는 캠핑카 키를 잠시 걸어 두고, 다시 관례적인 생활로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돈 걱정 없이 원하는 곳으로 여행을 갈 수 있도록 금전적으로 여유로워지고 싶었다. 또한 지속적인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다. 나는 여행, 모험, 자유를 통해 정신을 살찌운 덕택에 치유가 많이 되었다. 내 인생의 다음 단계를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2006년을 돌이켜 보면 나는 캠핑카로 1년 동안 여행할 결심을 하고 길을 떠났다. 그런데 1년이 5년으로 연장되었다. 캠핑카로 5년간 혼자 여행한 일은 내 인생을 바꿔 놓은 경험이었다. 개인적으로 엄청나게 성장한 시기였다. 여행자들과 친구가 되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알게 되었고 소중한 우정이 생겼다. 실수를 하기도 했다. 가슴 아픈 실수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감을 얻었고 나 자신을 더 잘 알게 되었다. 나는 혼자 길에서 그린 몬스터와 싸워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했다. 내가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적응할 수 있다는 것, 집을 온갖 물건으로 가득 채우지 않아도 즐겁게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보다도 두려움에 직면하고 도약할 때 멋진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천진난만했던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렸다. 어찌된 일인지 그 아이는 그 이후로 켜켜이 쌓인 삶의 고난과 실망에 짓눌려 있었다. 그런데 이 중년의 여정을 통해 엉겨 붙은 층이 벗겨지자 나는 진정한 모습을 되찾았다. 반딧불이들을 보고 감탄하고 그것이 발산하는 빛과 고래 떼를 바라보며 기뻐할 수 있는 사람으로 돌아왔다. 놀다가 넘어져도 몸을 일으켜 다시 인생의 길을 굴러갈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다시 우울해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경험을 통해 나 자신의 새로운 면모를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 나는 더 강하고 오뚝이 근성이 있으며 지혜로웠다. 만일 폭풍이 다시 몰아친다고 해도 다음번에는 더 잘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달 후에 우리는 타운하우스(단독주택을 두 채 이상 연속으로 붙여 지은 집)로 이사했다. 울타리를 두른 작은 마당이 있고 침실 두 개가 딸린 집이었다. 새 집에는 딱 한 가지 애로점이 있었는데 RV 주차가 허용되지 않았다. 나는 가까운 곳에서 RV를 주차할 수 있는 차고지를 발견하고 그린 몬스터를 주차했다. 그런 다음 캠핑카에서 나머지 필요한 물건들을 꺼내 승용차에 싣고 시동을 걸었다. 나는 차를 몰고 가다가 백미러를 힐끗 보았다. 눈에 익은 초록색 줄무늬가 시야에서 점점 멀어졌다. 온갖 부품 문제와 값비싼 수리비 때문에 속을 썩기는 했지만, 5년간 여행을 하면서 그린 몬스터에 애착이 많이 생겼다. 내게 그린 몬스터는 마법의 양탄자였다. 차를 몰고 가는 데 목이 메어왔다.

본 도서요약본은 원본 도서의 주요 내용을 5% 정도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원본 도서에는 나머지 95%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보다 많은 정보와 내용은 원본 도서를 참조하시기 바라며, 본 도서요약본이 좋은 책을 고르는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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