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가지 인생 질문

마일스톤 / 2020년 11월 / 263쪽 / 15,000원

여덟 가지 인생 질문
북코스모스 회원이 되시면 오디오 듣기 이용이 가능합니다.

여덟 가지 인생 질문

J. 더글러스 홀러데이 지음

저자 소개

조지타운대학의 인기 있는 MBA 교수로 백악관에서 국제 관계를 조정하는 특별 대사로 일했다. 경영자를 위한 네트워킹 조직인 패스노스를 창립하여 CEO와 기업가들이 부와 명예에 집중되니 성공의 의미와 가치를 재정의하고 ‘인생에서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뉴욕에 사모펀드 그룹인 파크애비뉴 이쿼티 파트너스를 공동 창립하여 성장 가능성을 가진 회사들의 가치를 높이는 데 힘쓰고 있기도 하다. 프린스턴 신학교, 노스캐롤라이나대학, 옥스퍼드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다.

책소개

이 책은 더 큰 의미를 지닌 삶으로 가는 길을 제시한다. 저자는 목적은 인생의 여러 결정을 이끌고, 행동에 영향을 주며, 목표를 만들고, 방향 감각을 제공하고, 의미를 만들어낸다면서, 자신의 이야기에서 방관자가 되지 말 것을 상기시키며, 의미 있는 관계와 유용한 삶의 실천이 우리에게 미칠 진정한 영향을 공개한다. 아울러 의미 있고 풍성한 삶의 핵심이라고 믿는 8가지 실천 과제를 체계적으로 제시한다.

요약본 본문

첫 번째 질문 ­ 당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이야기는 의미와 목적이 있는 삶을 보여주는 표현 방식인데, 자신의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 이해하지 못할 경우, 자칫 우리는 내 이야기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살 수 있다. 예로 피터 버핏은 지구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의 아들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 문제에 관한 선택권이 없었다. 아버지가 억만장자인 워런 버핏인 덕에 그에게는 많은 문이 쉽게 열렸다. 굳이 묻는다면, 스탠퍼드대 입학도 그의 실력보다는 아버지 덕분이었다.

어느 날 피터가 다음과 같이 퉁명스럽게 던진 말이 나에게 강하게 다가왔다. “우리는 모두 태어나면서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피터는 그것을 잘 알았다. 그의 사회적 지위 탓에 사람들은 그에게 큰 무언가를 기대했다. 그는 정해진 경로를 따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세계가 돌연 바뀌었다. 피터가 대학 2학년 때 그의 아버지가 자신의 세 자녀에게 유산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피터는 더 이상 수십억 달러를 가진 아버지의 상속자가 아니었다.

이제 다시 평가의 순간이 왔다. 그는 불안했다. 그 직후 피터는 어머니로부터 할아버지가 그에게 9만 달러 정도의 유산을 남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즉시 피터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사는 것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대학을 그만둔 그는 뉴욕으로 갔고, 그곳에서 음악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신중하게 관리하면 물려받은 돈으로 2년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후 그는 뛰어난 연주자 겸 작곡가가 되었고, 케빈 코스트너가 출연한 블록버스터〈늑대와 춤을〉의 OST 작업에 참여하면서 그래미상을 수상, 실력을 인정받았다. 피터는 자신이 아버지가 정해 놓은 길을 따라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피터는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했고,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당신은 당신에게 큰 영향을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당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디자이너 겸 작가인 엘르 루나는 이 도전 과제를 간결하게 표현한다. 그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위(Should)와 의무(Must)의 차이를 알아야 하는데, 당위는 사회와 부모가 주는 메시지이고, 의무는 개인적인 열정, 마음과 관련된 것이다. 루나는 저서 『당위와 소명의 교차점』에서 이렇게 밝혔다. “소명은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이며,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 우리 삶의 여정이다.” 당위는 주변 환경, 곧 가족과 문화가 제시하는 메시지로부터 주어진다. 피터 버핏의 당위는 그를 불행한 스탠퍼드대 금융 전공자가 되게 했다. 하지만 그의 소명은 그가 뉴욕으로 가서 음악가의 삶을 살게 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라

삶의 이유를 발견하는 첫 단계는 우리가 경험한 모든 것 안에 있는 더 큰 목적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려면 진지하게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어야 한다. 이것은 발견의 여정이며, 스토리텔링이다. 우선 자신의 이야기를 자세히 써서 신뢰할 만한 친구와 나누어 보라. 피상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과거를 면밀히 살펴보고 그것이 지금 자신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생각해보라. 부모가 당신에게 기대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당신이 되고자 했던 최초의 꿈은 무엇이었는가? 지금껏 어떤 활동을 가장 즐겼는가? 가장 힘든 선택은 무엇이었고,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였는가? 가장 도전적인 순간은 언제였는가?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면 연약한 모습이 드러나고, 일을 통해 더 깊은 차원의 우정으로 나아갈 수 있다. 친구의 피드백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더 잘 정리하고 놓친 부분도 알 수 있다. 친구와 함께하건 전문가와 함께하건 상관없이, 우리는 자신의 출발점과 태어나면서 속하게 된 이야기가 어떻게 현재를 만들었는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조금 힘든 과정이지만 이것은 우리를 해방시켜 준다.

두 번째 질문 ­ 진정한 우정을 갖고 있는가?

7월 어느 여름날 저녁, 나는 오래된 목선 페리호에 있었다. 내 옆에는 평생 친구이자 전도유망한 변호사인 후안 에드거 피카도가 앉아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희망과 두려움,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 솔직하고 편안하게 얘기를 나눴다. 중간중간 통제할 수 없을 만큼 재밌고 즐거운 대화가 오갔다. 그때 근처 벤치에 앉은 중년의 신사가 우리를 보고 있었고, 그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두 분이 어떤 철학과 종교를 가졌는지 모릅니다만,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군요.”

환영해야 할지 거절해야 할지 모르는 채, 우리는 “예, 삶은 좋은 것이니까요.”라고 말하듯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때까지 나는 진실한 관계가 얼마나 강력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지 몰랐다. 그런데 그 신사는 미숙하지만 서로 깊이 연결된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진실한 무언가를 발견하고 그에 끌렸던 것 같다. 풍성하고 오랜 인간관계 없이는 의미와 목적이 있는 삶을 살 수 없다. 그래서 우정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진정한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최근 사회적 고독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이 신사처럼 더 깊은 관계를 찾고 있다. 우정은 고립에 따른 어려움에 대응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공통의 관심사를 통해 남성과 여성이 함께할 수 있는 모임은 많다. 신앙 모임이 될 수도 있고, 일과 관련된 모임이 될 수도 있다. 마음에 드는 알맞은 모임을 찾아 그룹에 참여해도 좋고, 개인적인 친분을 쌓아도 좋다. 분명한 사실은 조물주가 우리를 이런 관계를 추구하도록 만들었다는 점이다. 의미와 목적이 있는 삶을 살려면 반드시 깊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 우리의 창조자는 때로 우리를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다른 사람과 연결되도록 설계했다. 진정한 관계를 맺지 못하면 우리의 마음과 정신은 위축된다. 고독은 매우 고통스럽고 끔찍한 처벌이다.

곧장 뛰어들어라

진정한 우정을 쌓는 최선의 방법은 관계에 정성을 쏟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험을 감수하고 용감하게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내라. 그리고 약점을 나누고 지도를 요청하라. 또 지혜를 나누고 연결 가능성을 열어두라. 그리고 일단 관계 맺기가 시작됐다면 관계가 성숙할 시간을 기다려라. 그렇다면 누가 당신과 진정한 우정을 나눌 수 있을까? 결함이 없거나 실패한 경험이 없는 사람을 찾지 마라. 그런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에서 가장 좋은 친구는 나와 비슷한 사람이다. 나의 깨진 부분, 나의 부족한 부분, 그리고 승리뿐만 아니라 방황도 함께 기꺼이 나눌 사람이 나의 친구다. 우리는 완전을 추구하고, 강점과 일관성을 보여주길 원하도록 만들어졌다. 하지만 약점을 인정하지 않는 한 결코 좋은 친구가 될 수 없다. 반복하건대, 용기를 내서 당신의 진짜 모습을 나누어라.

세 번째 질문 ­ 삶에 감사하는가?

삶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당신의 할머니가 당신에게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라고 말씀하셨던 순간을 기억해보라. 할머니가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시간을 내 복을 세어보는 것이 왜 중요할까? 간단히 말하면 우리는 자신의 삶을 엉망으로 만드는 일들을 열거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이미 그런 일들을 잘 알고 있고, 그런 일들 때문에 새벽 3시에 잠에서 깨어 안절부절못하며 와인 병을 딴다. 진정한 비결은 집중이다. 정기적으로 또 의식적으로 감사하게 느끼는 구체적인 것을 찾아내면 된다. 이렇게 하면 삶과 현실을 아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

감사 메모, 감사 목록 작성, 축복 세기를 통해 우리는 그런 실천을 하지 않는 사람보다 더 낙관적이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감사의 유익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연구를 통해 감사를 실천하는 사람은 대조 집단에 비해 양질의 수면을 취하고 운동도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한편 감사에 관한 대부분의 연구는 그동안 성인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감사 행위가 아이들에게도 유익한지 연구했고, 그 결과 더 많이 감사하는 사춘기 아이들은 덜 감사하는 또래보다 더 행복하고 학문적으로 더 열정적이며, 우울증이 적고, 불안과 반사회적 행동이 더 적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어서 이 연구는 정상 궤도를 이탈한 사춘기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결과도 있다고 말한다. 즉 4년 이상 감사하는 분위기에서 성장하면 부정적 성향의 뚜렷한 감소와 사회 친화적 행동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세 가지 감사로 시작하라

매일 아침, 나는 감사한 일 세 가지를 적는다. 내 머리 위의 지붕, 괜찮은 건강, 전날 걸려온 친구의 전화, 탁자에 놓인 향기 가득한 커피 한 잔 같은 것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내가 기록하는 감사는 이렇듯 매우 평범하다. 하지만 이런 일상의 기쁨을 맛보는 과정에서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런 일이 지속되어 연말이 되면 나에게 경탄과 행복을 선사하여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해준 수백 가지 목록이 쌓인다. 그리고 12월 31일, 나는 목록 카드에 구멍을 내어 철을 한 뒤 훗날 다시 볼 수 있도록 잘 보관해둔다. 한편 일기를 쓰면 더 깊은 감사의 날들을 보낼 수 있다. 손으로 직접 쓰면 더더욱 좋다. 일기는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내면에서 끊임없이 돌아가는 정신적 엔진이 쉴 수 있도록 해준다. 일기는 조용한 동반자다. 그것을 보기만 해도 평화로운 느낌이 든다.

당신의 두뇌를 재설계하라

행복하고 일이 잘 풀릴 때는 감사하기가 쉽다. 반대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을 때는 감사보다는 원망하거나 한탄하게 되는 날이 더 많다. 이상적인 것은 좋을 때와 나쁠 때, 즉 인생의 모든 순간에 감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항상 행복하고 일이 잘 풀리는 사람은 없는 만큼 늘 감사하면서 살 수는 없다.

우리는 감사를 통해 미래를 신뢰하게 된다. 이것은 마치 스키와 비슷하다. 통제력을 유지하려면 언덕 아래로 몸을 굽혀야 하는데, 두려운 일이다. 감사를 통해 두려워하는 것을 향해 몸을 기울여야 통제력이 커진다. 앞쪽보다는 뒤로 몸을 기울이는 것이 더 안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것이 스키 슬로프 위에서나 삶에서나 엄청난 공포에서 비롯된 익숙한 반응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날을 돌아보며 묵은 원한을 갚겠다는 다짐을 하고, 미래를 모험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또 “과거에 이러했더라면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가상의 시나리오를 나열한다. 하지만 가상의 시나리오는 아무런 힘이 없다. 그러니 거기서 벗어나라.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새로운 중심을 설정하라. 일단 당신의 중심을 감사할 수 있는 것으로 바꾸면 삶이 선물로 보일 것이다.

네 번째 질문 ­ 용서하고 봉사하는 법을 알고 있는가?

성장에 필수적인 두 가지 중요한 주제는 타인에 대한 관심과 용서다. 먼저 진심에서 우러나온 마음이 아니라면 당신은 지금 다른 사람의 관심사와 필요에 집중할 수 있는 건강한 상태가 아니다. 당신의 눈은 당신의 내부를 향한다. 당신은 당신 안의 분노와 내적 혼란을 다스리고 정당화하느라 분주하다. 이렇듯 슬픔의 삶을 사는 동안 당신은 주변 사람의 필요에 관심을 갖거나 알아차릴 수 없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그럴 자격이 없어서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용서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영혼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용서를 통해 자유로워지고, 다른 사람들을 향한 사랑과 관심을 경험할 수 있다. 그래서 이타적인 관심은 타인과 자신에 대한 용서에서 시작된다. 심리학자 로버트 에몬스는 말한다. “우리는 감사하면서 동시에 분노할 수 없고, 또는 용서하면서 동시에 복수심을 가질 수 없다.” 다시 말해, 이것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용서하지 않는 것은 자신이 독을 마시고 다른 사람이 죽길 기대하는 것이다. 불관용은 삶에 해롭고, 삶을 마비시키며, 파괴에 이르게 한다. 하지만 용서하면 어떻게 될까? 치유하고, 희망을 주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당신은 주는 사람인가?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고 그것을 삶의 핵심적인 원리로 보는 사람들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문화는 자신을 교만하게 하고 외롭게 만드는 성취를 자랑스러워한다. 또 깊고 의미 있는 관계보다 일을 더 우선시한다. 하지만 봉사와 관심의 렌즈를 통해 삶을 바라볼 때에만 우리는 진정으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타인을 용서하고 관대함을 보여주는 사람을 생각할 때면 존 뉴턴이 떠오른다. 거친 뱃사람이었던 아버지의 손에서 자란 뉴턴은 분노와 울분에 찬 청년이었고, 종종 반항적인 행동을 하여 선박의 구금실에 갇히곤 했다. 이후 20대 초반, 뉴턴은 자신의 삶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영적 전환을 경험한다. 그리고 새로운 길을 찾은 뉴턴은 인생의 후반기에 널리 알려진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어메이징 그레이스〉로 알려진 이 시는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찬송가 중 하나인데, 이 시는 뉴턴의 고통스러운 삶과 새로운 길을 묘사한다.

용서와 봉사라는 주제는 이처럼 한 사람의 삶에서 결합되어 나타날 수 있다. 뉴턴은 은혜의 경험에서 용서에 대한 이해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유력한 자와 힘없는 자를 위한 봉사의 삶으로 옮아갔다. 뉴턴은 영국 성공회 목사로 안수를 받고 올니와 런던 교구에서 사역을 했는데, 그는 이곳에서 특별히 가난한 자를 위한 설교와 목회 사역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나중에 한때 자신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노예무역의 폐지를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그의 삶은 우리가 명료한 시각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변화하고 용서하고 보답하겠다고 결단할 때 일어날 수 있는 근본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입증하는 강력한 증거다. 그런데 용서를 하고 용서를 받으려면 겸손해야 한다. 어쨌든 용서는 다른 사람을 위해 살 수 있는 문을 열어주며, 타인을 위한 삶은 목적의식과 성취감이 있는 삶의 핵심이다.

다섯 번째 질문 ­ 성공과 실패의 개념을 정의할 수 있는가?

성공과 실패에 대한 관점은 우리가 무엇을 진정 소중하게 생각하고 신뢰하는지 보여준다. 그렇다면 성공은 무엇일까? 성공을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성공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무의식적 사고 깊숙이 새겨져 있으며, 때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각자가 정해 놓은 안정, 성공, 재산이 기준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재산 목표치를 설정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할까? 예를 들어 우정이나 화해, 보답, 혹은 명상이나 수련을 통해 더 나은 자신이 되는 것을 포함하여 좀 더 넓은 의미로 성공을 바라볼 수는 없는 걸까?

그렇다면 좁은 의미의 성공 개념이 놓친 것은 무엇일까? 의미는 생각하지 않은 채 부의 축적만을 성공의 기준으로 삼으면 궁극적으로 삶에 만족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보았듯이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다른 사람과 진정한 유대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것이다. 성공에는 이런 더 큰 목적이 포함되어야 한다. 성공과 실패에 대한 뿌리 깊은 생각을 다시 숙고하고 상상하려면 편안한 마음으로 깊이 자기를 성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자신을 면밀히 살펴보면, 어떤 요소가 특별히 진짜 중요한 것에 대한 자신의 관점과 신념을 형성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실패의 중요성

우리는 실패를 폄하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숨겨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반면에 성공은 드러내야 하는 것, 멋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규칙을 지키면 결국엔 잃게 되는 것이 많다. 2016년,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조교수였던 요하네스 하우쇼퍼는 자신의 뼈아픈 실패를 기록한 이력서를 준비하기로 했다. 그는 그것을 ‘실패 이력서’라 이름 붙이고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 그러고는 이렇게 썼다. “내가 시도한 것 중 대부분은 실패했습니다. 실패는 쉽게 보이지 않지만 성공은 잘 보입니다. 때로 나의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대부분 성공적이라는 인상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오로지 성공만을 예상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포스팅이 주목을 받자 그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이 빌어먹을 실패 이력서가 그동안 내가 이룬 학문적 성과보다 더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성공으로 가는 과정에는 실패가 가득하다. 우리는 이를 알고 있지만 큰 소리로 말할 정도로 용기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역설적으로, 실패는 우리를 진정한 성공의 길로 인도한다. 실패의 교훈에 주의를 기울이면, 실패는 실제로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

회복력을 통해 성숙하라

우리가 성공 개념, 즉 실패할 가능성을 받아들이다 보면 성공에 꼭 필요한 특성이 분명히 드러나는데, 바로 회복력이다. 실패나 고난에서 회복하는 방법을 모르면 우리가 추구하는 성공은 결코 이룰 수 없다. 연구에 따르면, 성공하는 사람들은 회복력이 크다. 아무런 문제 없이 사는 사람에게 성공이 찾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좌절과 역경은 회복력을 시험하고 발전시킬 기회를 제공한다.

한편 나는 사람들이 회복력을 갖고 태어나는지 아니면 학습을 통해 획득하는지 궁금해 했는데, UCLA 공중보건대학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회복력은 훈련에 의해 습득되는 습관이다. 더 많이 훈련할수록 역경에서 회복하는 능력이 더 커진다. 회복력은 마치 모든 일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인생 관리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나는 이 말에 대체로 동의한다.

여섯 번째 질문 ­ 위험을 기꺼이 수용할 수 있는가?

아마 당신에게는 나의 삼촌 잭과 같은 친척이 있을 것이다. 그는 수많은 사업 아이디어를 구상했지만 하나도 실현하지 못했다. 이 스펙트럼의 끝에는 회계사인 나의 아버지가 있는데, 한결 같은 그는 42년을 같은 회사에서 일했다. 그의 일과는 항상 똑같고, 안정되고, 믿음직스러웠다. 한마디로 그는 도덕적인 모델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엔 이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젊은 기업가들이 과감하게 규칙과 경계선을 깨고 있다. 위험을 감수하는 대담한 방식을 통해 ‘새로운’ 일을 창조하는 접근 방식이 이제 소중한 가치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위험은 좋은 것일까, 아니면 염려해야 하는 것일까? 위험이 의미 있는 삶의 기본이며 소중히 여기고 환영해야 하는 것이라 하자. 그럼 어떻게 하면 신중한 위험 감수자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런 능력은 타고난 것일까, 아니면 훈련을 통해 기를 수 있는 걸까?

마고 마홀 비스나우는 오랫동안 이 ‘위험 감수’ 문제에 대해 고민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통해 독특한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이 주제에 대해 나에게 빛을 던져주었다. “무엇이 기업가들로 하여금 위험을 편하게 여기게 만드는가?” 비스나우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 간단한 방법을 사용했다. 그녀는 젊은 기업가들에게 부모가 그들을 위험 감수자로 양육했는지 물었다. 그들의 대답은 놀랍게도 한결같았다. 그들은 모두 위험을 감수하고 인정하는 부모나 보호자를 두었다. 이것이 전부다. 인생의 목표가 위험 없는 삶을 사는 것이라면, 우리는 의미와 성취가 있는 성공적인 삶을 살지 못할 것이다. 위험이 없다면 성장하지 못한다. 물론 모두가 극단적인 혹은 모험적인 위험 감수자가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삶에서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가치 있게 여기고 받아들일 필요는 있다.

유익한 위험을 감수하라

한 연구자는 ‘탐험 유전자’를 갖고 있지만 위험을 회피하고 정착 형태의 삶을 살았던 개인들은 약해지거나 영양실조에 걸리는 경향이 있었고, 반대로 자신의 특별한 유전자에 따라 과감하게 모험을 떠나 탐색하고 탐험하는 삶을 산 사람들은 건강하고 의욕적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적절한 위험을 감수하게 만드는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데, 이 환경은 장소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협회의 이사회 의장 겸 케이스 재단의 최고경영자인 진 케이스는 재단의 15년 역사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두려워하지 않을 때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고, 두려움과 조심스러운 태도가 의사 결정의 주요 요인이 될 때 가장 성과가 낮았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인생을 돌아볼 때 이 말은 나에게도 사실이었다. 그러면서 케이스는 위험을 감수하기 위한 다섯 가지 기본 요소를 밝혔다. 만약 두려움 없는 위험 감수자가 되고 싶다면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를 명심하라. ‘① 과감하게 도전하여 역사에 남을 일을 하라. ② 용기를 내어 위험을 받아들여라. ③ 실패를 중요하게 여겨라. ④ 당신의 계획을 뛰어넘어라. ⑤ 절박함으로 두려움을 물리쳐라.’

그렇다면 위험 감수는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모든 위험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쁜 것도 아니다. 이것은 자신의 위험 수용력에 따라 판단해야 할 부분이다. 나는 우리가 익숙한 것을 떠나 앞에 놓인 경계선으로 나아가는 결단력 있는 행동을 통해 성장하고 유익을 얻는다고 확신한다.

일곱 번째 질문 ­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가?

우리의 부모 세대는 자신의 직업을 목적에 대한 수단으로 여겼다. 당시에는 직업이 월급 이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들에게 열정을 쫓는다는 현대적 개념은 무척 생소한 것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직업이 특별한 목적, 즉 가족에게 먹을 것과 쉼터, 의복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믿었다. 결코 직업이 그들을 신나게 만들거나 더 나은 삶을 추구하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이처럼 순수한 노동에 대한 확고한 헌신은 아마도 두려움에 기초했을 것이다. 부양의 수단으로 직업을 보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삶과 일이 어긋나면 상황이 달라진다. 나는 노동의 더 큰 목적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큰 부분이 사라진다고 믿는다. 나는 우리가 온전히 연결되고 통합적인 삶을 사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일, 여가, 가족, 봉사를 비롯한 우리의 모든 생활이 포함되어야 한다. 물론 이것은 매우 이상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

요즘 사람들은 일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연구자들의 보고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는 더 많은 연봉보다 목적과 의미를 추구할 수 있는 직장을 선택한다. 이것은 중요한 변화다. 내가 볼 때 이러한 변화는 오래 전에 이루어졌어야 한다. 하지만 모든 변화가 그렇듯 여기에는 새로운 문제가 대두된다.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은 일의 중심은 열정이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미국의 사회주의 언론지〈자코뱅〉의 객원 편집자이자 『열정 절벽』의 저자인 미야 토쿠미추는 글을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대한 오늘날의 강박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이런 강박이 자신의 목적에 기초하지 않는 일을 폄하한다고 주장했다. 일의 가치는 일하는 사람의 열정을 충족시키는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전체론적으로 접근할 때 일의 가치를 더 많이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과제는 비록 일이 어렵다 해도 대담하게 일에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일과 삶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균형 있는’ 보다 ‘통합적인’이라는 용어에 집중한다. 솔직히 나는 탁월한 성과를 이룬 사람들이 지금껏 균형 있는 삶을 살았다고 믿지 않는다. 내가 그런 예다. 백악관 보좌관으로 일할 당시 나는 많은 연봉을 받았지만 노동 강도는 무척 셌고, 근무 시간도 매우 길었다. 다행히 근무 만기일이 정해져 있었기에 지독한 노동 강도를 견딜 수 있었다.

당신에게 직업이 어떤 의미든 간에 그 직업과 잘 지낼 수 있는 철학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일이라는 건 대체로 힘든 것이지만 그것이 요점은 아니다. 우리는 일을 통해 기여하고, 그 기여에 대한 대가를 받기 위해 일한다. 통합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왜 일하는지를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일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에 대해 전체론적인 시각을 갖는 것이다.

중세 시대 한 순례자가 샤르트르 대성당에서 일하는 두 명의 석공과 나눈 이야기가 있다.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첫 번째 석공은 흥미 없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매일 벽돌을 쌓는 일이죠. 지겨운 고역입니다.” 하지만 두 번째 석공의 대답은 달랐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기리는 기념물을 만들고 있습니다.” 갤럽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 세계 근로자의 13퍼센트만이 두 번째 석공과 같은 태도로 일하고 있다. 두 석공은 똑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한 사람만이 자신의 노동에 대한 고상한 비전, 곧 그에게 활기를 주고 힘든 일에 목적을 부여하고 있다. 삶의 경험이 연속적이고 전체적일 때, 즉 몸과 정신과 영혼이 균형을 이룰 때 우리는 최고의 삶을 살 수 있다. 파블로 피카소가 말했다. “중요한 것은 예술가가 하는 일이 아니라 그의 존재 자체다.” 그에게 있어 자신이 한 일은 곧 그의 존재 자체였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일과 삶에 관해 이러한 접근보다 더 나은 것이 있을까? 

여덟 번째 질문 ­ 남길 만한 유산이 있는가?

우리는 평범하지만 삶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내고 유산을 남길 수 있다. 옥스퍼드대학 코퍼스 크리스티 칼리지의 정원 벤치에는 러셀 크록포드(1957-1981)라는 사람을 추모하는 작은 명판이 붙어 있는데, 이 명판에는 크록포드에 관해 이렇게 적혀 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 이 명판을 깊이 숙고한 뒤 나는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깊다고 결론 내렸다. 크록포드의 생은 짧았지만 그는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했다는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 명판은 우리에게 열쇠가 되어 준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발휘하는 열정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신 우리가 헌신한 것에 대한 판단은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한다. 우리의 삶에 대해 나름대로 안다고 생각하는 청중들에게 아첨하는 일도 그만두어야 한다.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하는 행동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만들어 보여주는’ 개인 SNS에 대한 강박 역시 만족을 주지 못한다.

리더로서 우리는 다른 방식을 모델로 삼아야 한다. 먼저 행복과 성취에 대한 인식을 내 안에서 끌어올려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다. ‘한 사람의 청중’을 위한 삶이 주는 또 다른 유익은 스스로 만들어낸 압박에서 해방되어 결과에 대한 걱정 없이 목적이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데 있다. 우리는 대부분 내가 가진 유산에 대해 진지하게 숙고하지 않는다. 이런 고민은 불가피하게 인간의 유한성과 죽음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생각이 바뀌고 있다.

미국 전역에 죽음과 관련된 카페가 생겨나고 있다. 백여 개 이상의 도시에 생긴 죽음 관련 카페는 애도를 돕거나 인생을 정리하는 계획을 세우기 위함이 아니라, 말을 꺼내기 어려운 죽음에 관해 편안한 분위기에서 마음을 나누기 위한 것이다. 죽음 카페 운동의 설립자 존 언더우드는 죽음 카페를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토론하면서 의미를 찾고 중요한 것을 성찰하는 공간”으로 본다. 조용히 앉아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유산을 포함한 여러 문제를 탐색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기억될까? 우리가 사는 동안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기여했는지는 다른 사람들이 결정할 것이다. 하지만 삶을 되돌아보고, 무엇을 유산으로 남기고 싶은지를 생각해 보는 것은 여러모로 유의미하다. 유산으로 남길 메시지를 조작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당신은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

소중하게 여겨라

10년 전 플로리다 소재 리갈 보츠의 최고경영자가 내게 특이한 선물을 보내왔다. 구슬로 가득 찬 유리 꽃병이었다. 그가 보낸 쪽지에는 내 나이를 추정해 내 여생이 얼마나 되는지를 대략 계산한 다음, 꽃병에 그 숫자만큼의 구슬을 채웠다고 쓰여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다달이 구슬을 한 개씩 제거하라고 덧붙였다. 이 일로 나는 인생의 짧음과 유한함을 생각하면서 삶을 더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17세기 시인 존 던이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했던 일이 생각난다. 던은 책상 위에 사람의 두개골을 올려두었던 것 같다. 두개골은 항상 이렇게 일깨워주었다. “인생은 짧다. 살아 있는 동안 일하라.”

우리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에 관한 질문에 분명한 대답은 없다. 나는 많은 사람을 내 사무실로 초대해 그들의 소명과 필생의 과업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것은 마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이 퍼즐을 푸는 데 도움이 되는 몇 가지 유용한 방법을 알고 있다. 놀랍게도, 그 답은 뻔히 보이는 곳에 숨겨져 있다.

나는 사람들에게 최초의 기억에서부터 현재의 삶까지 살펴보면서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하나는 “당신은 정말 무엇을 하고 싶었습니까?”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은 당신이 무엇을 잘한다고 말했습니까?”이다. 이 간단한 두 질문이 얼마나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주는지 놀라울 정도다. 소명을 찾는 젊은이들에게 내가 제안하는 또 다른 활동은 자신의 삶을 5년 단위로 쪼개보라는 것이다. 1-5세, 5-10세, 10-15세 등으로 구분한 뒤, 이 시기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당신은 무엇을 하고 싶어 했고, 천성적으로 어떤 것에 능숙했는가? 그런 것을 할 때 어떤 부분에서 신이 났는가? 그 일을 팀으로 했는가, 아니면 혼자 했는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 또는 글쓰기를 배우는 것을 좋아했는가?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는가?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찾는 문제해결사였는가? 당신은 다른 사람을 이끄는 것을 좋아했는가, 아니면 따르는 것을 좋아했는가?

당신은 내 질문들의 요점을 알 것이다. 우리의 천성은 일찍 드러난다. 이 질문들에 대답함으로써 얻은 자신에 대한 지식을 삶에 적용하면, 자신의 소명을 훨씬 더 잘 발견할 수 있다. 나아가 이를 통해 당신 자신과 천성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진정한 유산을 만들 수 있다.

텍스트 상자: 본 도서요약본은 원본 도서의 주요 내용을 5% 정도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원본 도서에는 나머지 95%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보다 많은 정보와 내용은 원본 도서를 참조하시기 바라며, 본 도서요약본이 좋은 책을 고르는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0 댓글
본문 피드백
모든 댓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