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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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
최복현 지음
휴먼드림

책소개

이 책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고,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삶에서 여유를 찾도록 도와준다. 경제속도에서 찾는 여유,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찾게 해 줄 것이다.

요약본 본문

여유
최복현 지음
휴먼드림 / 2008년 10월 / 270쪽 / 11,000원

여는 글_ 일상화된 과속에서 벗어나 경제속도를 찾는 여유
여유, 여유에는 공간적인 여유도 있고 시간적인 여유도 있다. 일상에서 이야기하는 여유는 공간적 여유라기보다는 시간적 여유를 말한다. 물론 이 시간적 여유는 마음의 여유를 이야기한다. 여유의 사전적 의미는 ‘시간이나 공간적으로 넉넉하여 남음이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를 마음의 여유로 끌어다 붙이면 ‘느긋하고 차분하게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마음의 상태. 또는 대범하고 너그럽게 일을 처리하는 마음의 상태’를 나타낸다.

여유를 누리는 사람은 일이 남에 비해 적거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별 볼 일이 없으면서도 늘 분주하고 바쁜 것 같지만 실상 얻어지는 결과는 신통치 않다. 반면에 여유 있게 살아가는 것 같으면서도 충분히 자기 할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 여유 있게 마음을 갖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그의 일이 많고 적음에 별 관계가 없다. 일에 대한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느냐, 쉽게 말하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일에 임하느냐에 달려 있다. 생각 없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일을 생산적으로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일해야 한다.

어떤 우연이나 인연으로 알게 되었든 개인은 개인으로 멈추지 않고, 더불어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다. 우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사과 한 알이 떨어지자 놀란 토끼는 달아나기 시작한다. 이를 시작으로 숲 속의 동물 모두가 도망을 치기 시작한다. 숲속은 일대 혼란에 휩싸인다. 이 우화처럼 우리도 누군가 바삐 움직이면 덩달아 바쁘다. 연쇄반응이 일어나 모두가 바삐 움직인다. 그 흐름을 누군가 멈추어야만 하는데 그런 사람이 없다. 바쁘다는 것과 여유 있다는 것은 삶의 질의 차이가 아니라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느냐의 차이이다.

지금은 초고속의 시대이다. 공간에서 공간으로의 이동도 빨라졌고 인터넷과 같은 정보의 유입과 유출도 초고속이 되었다. 이렇게 빨리빨리를 위한 모든 활동들은 사실 시간절약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기계화, 전산화되었지만 우리의 일상은 오히려 더 바빠져서 경제속도를 위반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우리는 남보다 더 높이 오르려는 욕망, 더 빨리 앞서가려는 욕망, 더 가지려는 욕망 때문에 인생이라는 길 위를 달려오며 과속을 하고 있다. 우리는 과속만 배웠지 경제속도가 주는 지혜를 잊고 살아온 셈이다. 여유를 찾는 것은 삶의 과속 또는 지나친 저속 상태에서 벗어나 삶의 경제속도를 되찾는 일이다. 삶의 여유를 갖는 순간부터 우리는 창의적인 삶을 살 수 있다. 창의적으로 생각하려면 우선 다양한 삶을 체험하는 것이 좋다. 삶의 경제속도를 유지한다는 것은 우리가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다. 누릴 것은 누리고, 베풀 것은 베풀며, 개인의 행복은 물론 더불어 사는 즐거움을 만끽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인생의 목적이다.

제1장 우선멈춤

내 그림자 감추기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어느 날 밖에 나가셨다 오시더니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림자가 두 개로 보이면 죽는다는데, 내 그림자가 두 개였어.” 평생 시골에서 빛이라곤 해와 달밖에 못보고 사셨던 아버지는 그림자는 하나뿐이라는 인식으로만 살아오셨다. “아버지, 그림자는 빛이 여러 방향에서 비추면 여러 개로 보이는 거예요. 여긴 가로등이 있어서 양쪽에서 비추니까 그렇게 보였던 거예요.”

자신의 그림자를 볼 때마다 마음에도 들지 않고 보기가 싫어져서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걸음을 빨리 해서 자신과 자신의 그림자를 떨어뜨리려 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걸을 때마다 그림자가 꼭 따라붙는 것이었다. 그는 점점 더 빨리 걸었다. 그래도 그림자는 따라온다. 그는 더 빨리 뛰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그림자는 기를 쓰고 더 빨리 따라온다. 그는 그림자를 피해 도망가다 결국 지쳐서 쓰러져 죽고 말았다.

만일 그가 그토록 자기 그림자가 싫었다면 차라리 어떤 그늘에 숨어들었어야 한다. 그러면 그는 자기 그림자로부터 멋지게 도망칠 수 있었고, 그 그늘 아래서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나치게 일에 매달리면 그 일이 꼬여버릴 수도 있다. 열정은 일을 빨리 진행되게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지나칠 경우 빨리 가려고만 하는 마음, 급하게 서두르기만 하는 마음 때문에 여유가 생기지 않아 일이 더 지체될 수 있다.

길을 가다가 문득 하늘을 한번 쳐다보는 여유, 들에 나가 들에 부는 바람을 맞는 여유, 그것들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삶을 살찌우고 일에 능률을 가져다주는 자양분이 된다. 일은 어떤 물리적인 힘보다는 마음의 힘이 더 강하게 작용한다.

내가 본 나
벌이 끊임없이 날개를 파닥이는 이유는 부지런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움직이지 않고는 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덩치가 큰 새를 보면 날개를 그다지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는데도 벌보다 훨씬 빨리 그리고 더 멀리 날아간다. 참으로 편안하고 경제적으로 보이는 움직임이다.

한 사람이 혼자서 사막을 여행하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마을에 도착해야만 했다. 더구나 타들어가는 목은 물 한 모금을 절실히 원하고 있었다. 오아시스라도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지만, 사방을 둘러봐도 모래산뿐이다. 그는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혀 걸음을 재촉한다. 마침 사람의 발자국을 발견하고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그 발자국을 따라가면 마을이 나타나리라는 기대로 열심히 걸어갔다. 그러나 아무리 걸어도 마을도 오아시스도 나타나지 않았다. 밤이 되자 그는 섬뜩한 생각에 그 발자국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놀랍게도 그 발자국은 자신의 발자국이었다. 그는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바쁘게 살다 보면 때로는 자신을 망각하고 살 때가 많다. 늘 시행착오만 되풀이하며 제자리를 맴돌고 있으면서도 모른다. 우리에게 어떤 아픔의 날이 닥쳐올지 모르면서 자족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자신이 지금 어떤 모습인지 자신이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의 현 상태를 파악하려면 우선 마음을 내려놓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누구도 자신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는 않는다. 잠시 푸른 들판으로 눈을 돌리고 마음을 다독일 줄 알아야 한다. 지금 나 혼자만이 제대로 살고 있다고 자만하거나 자족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내 삶의 속도를 높여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며 진정한 삶의 의미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행운을 찾아서
사람은 누구나 평탄하게 살기를 원한다. 하지만 우리 삶에는 우여곡절이 너무나 많다. 어찌 보면 그리 짧지 않은 삶에는 평탄한 삶의 길보다는 오히려 험난하고 예기치 못한 곡절들이 더 많다. 그런 삶 속에서 우리는 행복하기를 원하며 행복을 추구하며 산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행복을 위해 돈을 벌고 운동을 한다. 행복의 조건이 돈이라면 돈에 매달리고 건강이라면 운동에 몰두한다. 그래도 힘겨우면 그 행운을 위해 로또를 구입하기도 하고 경품응모도 해본다. 그런데 행운이란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가 우리를 약 올린다.

우리가 찾아가기 전에 그 행복이란 게 우리를 찾아오면 참 좋을 텐데 말이다.

약속시간에 늦어 횡단보도 앞에 서 있을 때 기다리기라도 한 듯 파란불로 바뀌는 행운은 늘 찾아오지 않는다. 바쁘면 바쁠수록 이상하게도 빨간불이 켜져 있을 때가 더 많다. 우리의 삶은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는 것과 흡사하다. 우리 마음의 위험 신호, 몸의 위험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 나가면 자칫 몸과 정신이 황폐해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이다. 내 삶의 신호등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드는 것이다. 그 신호등이 파란불이든 빨간불이든 내가 만드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가 가는 곳마다 파란불이 저절로 나를 마중 나와 나에게는 늘 푸른 신호등만 나타나기를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가 내리면 우산을 펴서 그 비를 피하고 바람이 불면 벽에 기대어 바람을 피한다. 진흙탕이 싫으면 발에 장화를 신고 가시가 버거우면 장갑을 낄 줄 안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렇게 삶을 살아가는 지혜, 문제를 피해가는 지혜가 있다. 그럼에도 문제만 생기면 여유를 잃고 그 문제 앞에서 당황한다. 우리 삶에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내 지난 삶을 돌아볼 기회로 삼으면 되고 난관에 부딪히면 그 앞에서 내 능력과 가치를 다시 한 번 점검해보면 된다.

우리 삶의 빨간불을 억지로 수동으로 조작하기보다는 여유롭게 그 불이 파란불로 바뀌기까지 그동안의 삶을 돌아보는 여유를 가지는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일 앞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자기 성찰만 있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그 무한한 잠재능력은 얼마든지 꺼내 쓸 수 있다.

제2장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휴식은 휴식답게
새를 새장에 오랫동안 가두어두었다가 풀어놓으면, 한동안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제대로 날지도 못한다. 우리들도 막상 일에서 잠시 놓여 자유로운 시간을 갖게 되어도 그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른다. 어떤 사람은 휴가를 이용해 밀어놓았던 집 안 정리를 하기도 한다. 그것은 일의 연장이지 휴식이 아니다. 여가 시간은 철저하게 여가를 즐겨야 한다. 그렇게 끊고 맺는 훈련을 해야 여유를 찾을 수 있다. 자유가 주어지는 한 그 자유를 아주 보람 있고 멋지게 활용할 수 있어야 그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 5일제 근무가 시작되면서 많은 이들은 하루라는 소중한 시간을 일에서 놓여 지내게 되었지만, 그 소중한 시간들을 나름대로 활용하기보다는 그냥 놀러 다니는 일로 보내고 마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에게 자유 시간이 더 주어지는 것은 자기계발을 위해 쓰라는 의미이다. 쉴 때 쉬더라도 미래지향적으로 그 쉼을 누려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 자유에 너무 낯설어서 보람 없는 날들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언제나 열심히 일만 하는 사람이 가진 고충은, 그들은 자유시간을 얻으려고 무리해가면서 열심히 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그 자유시간을 얻고 나면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서 우물쭈물하다가 소중한 시간을 다 보내고 만다”고 니체는 말한다.

일이 많은 사람일수록 휴식은 더욱 필요하다. 너무 일에만 몰두하다 보면 자신의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마저 불편하게 만들어서 유지되던 평화를 깨뜨릴 수도 있다. 실제로 5일제 근무가 시행된 이후로 가정의 불화가 늘어나고 가정이 깨어져 이혼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능력이 있는 사람은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바쁜 사람들이 아니라 여유를 가지고 자기 일을 묵묵히 해내는 조용한 사람들이다. 바쁜 행동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기보다는 자기 내공을 쌓아서 아무리 바빠도 티를 내지 않으며 살아야 한다. 공치사하지 않으며 남이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나가야 한다. 자신과 주위를 위해서도 슬기로운 휴식을 가질 줄 알아야 하고, 주어진 자유시간을 보람 있게 보내야 한다. 더구나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가족 공동체 내에서 그 휴식을 어떻게 보람 있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창의적인 방법과 합의가 필요하다.

마음의 여유를 찾아주는 자신감
무슨 일이든 일에 자신감을 가지면 그 일을 처리하는 방법이 쉽게 떠오른다. 하지만 자신감을 상실하게 되면 아무 생각도 없이 미련하게 그 일에 매달려 스트레스만 받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감을 갖고 살아야만 한다. 하지만 자신감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많은 실력을 쌓을 때 생긴다. 또한 자신을 잘 다스려서 내공을 길러야만 자신감을 갖게 되고 일 처리를 아주 말끔하게 할 수 있다. 일의 양은 몸으로 때울 수 있어도 몸을 움직이는 건 마음의 일이다. 따라서 일을 잘하고 못하고는 자기 내공에 달려 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현장을 시찰하고 있었다. 그가 어느 작업현장을 지나가다가 인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현장을 보니 9명이 아주 힘겹게 재목 하나를 운반하고 있었는데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곳의 현장감독은 그냥 옆에서 지켜보고만 있었다. 워싱턴이 웃옷을 벗어놓고 가서 그 일을 열심히 도와주었다. 그러고 나서 감독관에게 이렇게 물었다. “왜 당신은 보기만 하고 일이 진행되지 않는데도 가만히 있는 거요?” 그러자 감독관은 “나는 감독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오.”라고 대답했다. 그때서야 워싱턴은 자기 명함을 꺼내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런 사람인데 다음에도 어려운 일이 있으면 불러주시오.”

자신감이 있으면 아무리 남들이 천하다는 일을 한다고 해도 전혀 부끄럽지 않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여유 있게 대처할 수 있다. 바쁠수록 가끔은 멈춰서야만 여유를 찾을 수 있다. 여유란 한가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쁜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신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당당함으로써, 자신감을 가짐으로써, 마음의 여유를 되찾아 자신뿐 아니라 모두를 편안하게 하는 존재로 살아가야만 한다.

시간 활용의 우선순위
사람들에게 “왜 운동을 안 해” 하고 물으면 “시간이 없어서”라고 대답한다. 뿐만 아니라 뭔가를 요청하면 “시간이 없어서”라고 거절하곤 한다. 하지만 시간은 늘 있어왔으며 언제나 시간이 존재하기에 우리는 살아 있다. 단지 우리는 그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지 못하고 무의미하게 보내기 때문에 시간이 없다고 말하며 시간이란 핑곗거리를 무기로 삼는다.

시간은 그것을 잡아 쓰든 그냥 방치하든 똑같이 흘러간다. 그러므로 헛되이 시간을 보내지 않도록 해야 할 일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하루의 10분이든 한 시간이든 미래를 위해 날마다 꾸준히 투자하면 나의 3년 후, 10년 후가 한층 더 나아진다.

언젠가 미국 소매상협회에서 판매원의 전화마케팅 조사를 한 일이 있다. 그런데 이 조사에 의하면 판매원의 48퍼센트가 손님에게 한 번 전화하고 반응이 없으면 판매를 포기한다고 한다. 그리고 25퍼센트는 두 번 전화하고 포기하고 15퍼센트는 세 번 전화를 하곤 포기한다고 한다. 결국 88퍼센트의 판매원이 한 번 내지 세 번의 전화로 판매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단지 12퍼센트만이 끈질기게 전화를 하는데, 이들이 전체 판매량의 80퍼센트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결국 88퍼센트의 판매원은 겨우 20퍼센트의 거래밖에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내 시간을 최우선으로 어디에 쓰느냐가 중요하다. 시간 활용의 우선순위를 잘 정할 줄 아는 사람은 시간을 지배하며 사는 사람이다. 시간은 흘려보내는 대상이 아니라 끌어다 써야 할 대상이다. 시간의 주인이 되는 것은 좋은 습관이고, 시간의 하인이 되는 것은 나쁜 습관이거나 무기력하게 시간을 흘려보내는 그릇된 습관이다.

책 읽는 습관
가끔 종각 근처에 가면 잊혔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종로서적, 종로 2가를 든든하게 지키고 있던 종로서적이 창립 100주년을 얼마 남기지 않고 문을 닫고 만 일이 쓸쓸하게 다가온다. 마치 지식의 상징처럼 굳건히 종로를 지키고 있던 서점, 현재 40대 이상으로 서울에 살았다면 한두 번쯤 찾았음직한 정겨웠던 서점. 경영악화와 이러저러한 이유로 문을 닫고 말았지만 김홍도의 그림이 들어간 포장지로 책을 싸가지고만 다녀도 무척 자랑스럽고 마치 지식인이 된 듯한 그런 기분, 그래서 그 포장지를 아끼고 아껴 책을 읽고 나면 다른 책을 또 싸서 폼 재고 다니곤 했던 일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모든 일은 시간이라는 포대기에 싸여 과거로 보내진다. 지금의 우리는 과거라는 퇴적물이 남긴 산물일 뿐이다. 그리고 그 과거를 생각하며 그 속에 침잠하고 있는 동안 우리는 모든 추억에 잠겨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고 그때의 젊음도 되찾는다. 가끔은 내 시계추를 과거로 돌려 과거를 회상하는 일도 의미 있는 일이다. 그리고 미래라는 오지 않은 일들은 속속 현재라는 이름으로 내게로 다가온다. 과거는 현재의 퇴적물이지만 미래는 현재가 만들어내는 꿈이다. 그 미래도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아름다운 현실이 된다.

내가 이만큼 살 수 있었던 건 책의 힘이다. 독서를 하면 머리가 좋아지고 치매 예방에 좋다고 한다. 자녀들에게 ‘공부해라, 공부해라’ 성화하지 말고 부모가 먼저 독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말로 하는 교육보다 몸소 모델이 되어주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책 읽는 일이 습관적으로 자리 잡아서 책 속에서 경제를 찾고, 책 속에서 탈출구를 찾고, 책 속에서 기쁨을 찾을 줄 아는 멋진 삶을 살아야 한다.

제3장 생각의 여유

삶의 문제 자문하기
누구나 바쁠 때는 그 일에만 몰두할 뿐 주위를 돌아보지 못한다. 그래서 늘 제자리만 빙빙 돌며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설령 억지로 밀고 나아갈 수는 있어도 그 전진은 이내 속도가 둔화되고 결국 멈추고 만다. 자신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어야 지속적인 발전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바쁘게만 살다 보면 그것을 확인할 시간이 없다. 거울을 들여다봐야 자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듯이 자신을 들여다봐야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우선 여유가 있어야 한다. 여유를 갖고 자신에 대한 질문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현재를 알아낸다. 세상의 비밀을 알려면 자신에게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세상을 보는 눈은 바로 나 자신에게 있다. 나를 모르는 상태에서 내가 알고 있는 남은 참 남이 아니며 나를 아는 순간 남의 참모습도 보이게 된다. 나를 알려면 여유를 내서 자신에 대한 질문을 해보아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일하는 진정한 목적은 한가로움을 얻기 위한 것’이며 ‘그 한가로움은 자유로움과 자매’와 같아서 일은 마음의 자유를 얻는 도구이다. 루이 부뉴엘이란 영화감독은 이런 말을 했다. “만일 누군가가 내게 ‘당신이 20년밖에 못 산다면 그동안 무엇을 하겠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하루 두 시간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꿈을 꾸겠다’고 답하겠다.”

사람은 일할 운명을 타고난 존재이므로 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은 살기 위해 일할 뿐이지 일하기 위해 사는 존재는 아니다. 그러므로 일에 따르는 휴식과 일에 따르는 즐거움이 일과 조화를 이루어야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가 있다. 일하는 만큼 또한 편안한 휴식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내 존재의 의미에 대한 자문, 그것은 소중한 자기 발전의 원동력이다. 세상 그 어떤 질문보다도 가장 소중하고 필요하고 좋은 질문은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돌아보는 자신에 대한 자문이다. 그런 마인드를 가진 사람은 충분히 일을 멈추고 쉼을 누릴 자격이 있다.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기
우리는 다른 사람은 잘 볼 수 있지만 나 자신은 제대로 보지 못한다. 내 뒷모습을 아무리 보려고 노력하지만 볼 수가 없다. 또한 내 얼굴을 보려고 하지만 내 눈과 평행을 이루고 있어 볼 수 없다. 단지 역상으로 비치는 거울을 통해 보게 되는 내 얼굴을, 카메라에 찍히는 내 모습을 진정한 나로 착각하며 살고 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남에 대한 관심이 많고 남의 이야기는 많이 하지만 정작 자신에 대한 관심이나 자신에 대한 탐구는 하지 못한다. 비록 내 겉모습은 늘 역상으로밖에 볼 수 없지만 나의 속 모습은 혼자 있는 시간에 사색을 통해서라면 볼 수 있다.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 줄 아는 여유가 필요하다. 그래야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길 수 있다.

로버트 슐러 목사는 “왜 자신을 사랑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다음과 같은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당신은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이다. 둘째, 당신만의 지문이 있다. 당신만의 각인을 이 세상에 새길 수 있다. 셋째, 당신에게는 독자적인 능력이 있다. 보이지 않는 그 가능성을 발견하고 실현하라. 넷째, 당신에게는 소명이 있다. 당신은 독자적인 목적을 위해 태어났다.

누가 뭐래도 나는 이 세상에 단 한 사람인 소중한 존재이다. 또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존재의 이유가 있듯이 신이 우리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것은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신이 우리를 이 땅에 소중하게 태어나게 해준 그 이유를 찾아내고 내 몫의 짐을 져야만 하며 내 몫의 의무를 다해야만 한다. 하인텔은 “자신에게 끊임없이 말해왔으나 듣지는 못했던 내면의 소리를 고요한 시간에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흥미 있는 일인가”라고 말한다. 자신 내면의 소리를 들으며 진정한 나를 찾아야 한다. 때로는 고적한 산길을 혼자 걸으며 마음의 정리도 할 줄 알아야 하고, 때로는 흐르는 물가에 앉아 그 흐름에 어울리는 생각에 잠겨 진정한 자신의 내면 모습을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

자가발전
시골에서 살 때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라 밤이면 무척 어두웠다. 맑을 때면 하늘엔 온통 은하수가 가득해서 장관이었는데 그런 밤에 좀 멀리 갈 일이 있으면 늘 자전거를 이용했다. 어두운 신작로길, 돌투성이 길이라 걸어서 가는 건 쉬워도 자전거를 타고 가려면 시도 때도 없이 넘어지곤 한다. 더구나 어둠 속에서 논두렁길을 자전거로 가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럴 때 애용하는 것이 자전거 전조등이다. 바퀴와 연결해서 바퀴가 돌아가는 회전력에 의해 불이 켜지는 장치인데, 기름 한 방울 없이도 바퀴와 장치의 마찰에 의해 전기가 발생하여 전조등의 전구에 불이 들어오는 것이다. 자전거는 진행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불은 불대로 들어와 길을 밝혀준다.

우리 삶도 이와 같이 자가발전을 할 수 있어야 미래가 보장된다. 자신의 일을 하면서 조금만 신경 쓰면 삶의 보너스가 주어진다. 수도가 없는 마을에 머슴 일을 하는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아침마다 물지게를 지고 제법 먼 우물에 가서 물을 지고 와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양동이가 닳고 닳아서 한 양동이에 작은 금이 생겼고, 물을 길어 집으로 오는 도중에 그 양동이에서 조금씩 물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그 머슴은 물이 새는 것을 모르는지 날마다 늘 같은 모습으로 묵묵히 물지게로 물을 길어오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 머슴이 지나다니는 길가에는 여러 가지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주인이 참고 참다가 머슴을 불러 이렇게 물었다. “아니 이 어리석은 사람아, 자네가 지고 다니는 양동이에 금이 가서 물이 새는 것도 모르나? 그렇게 물이 새면 헛수고 아닌가?” 그러자 머슴은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네, 저도 물이 조금씩 새는 것을 알고 있었지요. 그래서 저는 그 길가에 여러 가지 꽃씨를 뿌려놓았던 거예요. 길가에 핀 꽃들을 못 보셨나요? 물을 길어 오는 동안 조금씩 새는 물 덕분에 꽃씨가 싹을 내고 자라서 예쁜 꽃길이 되었잖아요. 저는 그 꽃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니니까 일이 힘들다기보다는 즐겁답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도 희망이 있으면 즐거워진다. 우리가 힘겹게 산을 오르거나, 귀찮은 일이지만 아침저녁으로 달리기 운동을 하는 진정한 이유는 지금의 즐거움보다는 내일의 건강을 보는 즐거움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하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희망이 전제되어야만 우리의 일은 기쁨이 되고 즐거움이 된다. 그러나 그 미래의 즐거움은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내 일에 충실하면서 자가발전을 할 때 비로소 찾아온다. 그 머슴이 꽃씨를 뿌려 일을 즐겁게 만들듯이, 자전거가 앞으로 잘 달리면서 잘 달릴수록 자가발전된 불빛이 더 밝게 빛나듯이, 지금 바로 자신이 하는 일에 충실하면서 자가발전할 수 있는 지혜로움과 남과는 다른 그 무언가의 노력을 할 때 미래는 즐거움을 안고 다가온다. 밝고 맑고 아름다운 나의 미래를 만들어갈 줄 아는 슬기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낼 줄 아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의 여유와 쉼을 찾는 비결이다.

좋은 습관 만들기
누구에게나 날마다 24시간이 주어진다. 그 시간은 오늘 다 써버리도록 되어 있으며 내일로 이월되지 않는다. 만일 내일 아침을 맞을 수 있다면, 아주 빳빳한 새 돈처럼 정말로 새로운 시간들, 24시간이라는 새로운 것들이 내 인생 지갑에 여지없이 채워진다. 그 새로운 것들은 내가 어떻게 쓰든 나의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수십 년 동안 지갑을 비우고 다시 채워진 지갑을 가지며 살아간다. 비움과 채워짐의 반복 속에 우리의 세포도 팽창과 수축이 이어지며 젊음이 늙음으로 가는 걸 느끼게 한다.

문득 그런 여정으로 흘러간 시간들을 돌아보면 나이와 삶 사이에는 나도 모르는 작은 변화들이 모여서 나 자신이 많이 달라져 있음을 느낀다. 젊었을 때는 열정의 힘으로 내 삶을 살았다. 그리고 그 삶은 나에게 충분한 유익을 주었으며 의미를 주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중년을 넘어서자 이제는 열정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열정의 산물이었을 수도 있는 습관의 힘만으로 살아간다. 습관은 작은 것들을 모아 크게 만드는 위대한 힘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나는 “젊어서는 열정의 힘으로 살고 나이 들어서는 습관의 힘으로 살아간다”라는 명제를 만들고자 한다. 그나마 지금 내가 내 삶을 추스르며 그런대로 잘 살아갈 수 있는 힘은 나의 삶을 규칙적으로 만들어주는 작은 습관들 때문이다. 젊음의 열정은 없을지라도 앞으로 남은 삶은 열정을 흉내 내며 살아가기 위해 좋은 습관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그 습관의 힘으로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

제4장 행복한 인간관계

대인관계의 적, 소문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 프레데릭 2세의 일화이다. 그가 어느 날 초콜릿 한 잔을 마시려고 옆방으로 갔다. 그런데 마침 손수건을 두고 온 것이 생각나서 그것을 가져오려고 침실로 건너갔다. 그동안에 천장에서 거미 한 마리가 떨어져 초콜릿 속에 빠졌다. 그는 초콜릿 한 잔을 다시 주문했는데 그 순간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요리사가 왕을 독살하려고 초콜릿에 독을 넣었던 것인데, 그 계획이 탄로난 것으로 착각한 요리사가 자살했던 것이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호들갑스럽게 떠벌리는 사람이 있다. 그 행위로 인해 그것은 자신에게 해가 될 뿐만 아니라 그 소문의 당사자도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더구나 초고속 인터넷 시대인 요즘엔 잘못된 소문으로 인해 끔찍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가정에 불화가 생길 수도 있고 사업을 망칠 수도 있으며 삶을 망치게도 하고 심하면 목숨까지 앗아가곤 한다. 그러므로 누군가에게 피해가 될 일이라면 한 번 더 확인할 필요가 있다. 자신에게 직결된 일이라면 한 번 더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우유부단한 것과 한 번 더 생각하는 것은 다르다. 늘 서둘러 말하는 사람, 서둘러 행동하는 사람이 실수를 하는 법이다.

말을 많이 하다 보면 남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고 그러다가 남의 말이나 소문을 왜곡하게 되고 그로 인해 서로 간에 싸움을 붙일 수도 있고 일을 망치게도 한다. 남들이 바쁘게 산다고 해서 거기에 휩쓸리기보다는 자기에게 맞는 삶의 속도와 삶의 리듬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남에게 득이 되는 삶은 아니어도 적어도 해가 되지 않는 삶은 살아야 한다.

세상의 아버지들
가끔은 누군가에게 기대어 쉬고 싶을 때가 있다. 하루라는 시간, 아침에 출근하면 회사에 있을 때만큼은 회사를 위해 써야 하는 시간이므로 개인적인 일은 잊고 산다. 그래서 출근하고 나면 무심하다 싶을 정도로 집에 전화하는 일이 일주일에 고작 한두 번 정도이고 주어진 일에만 몰두하려 애쓴다. 그렇게 습관이 되다 보면 어느새 그것이 나의 일에 대한 철학이 된다. 집에 오면 잠의 유혹을 물리치며 자판을 두드린다. 아마도 나의 아이들은 ‘아빠는 잠이 없어서 늦게 잔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새벽, 알람 소리에 맞춰 졸린 눈을 비비며 사정없이 뒤로 잡아당기는 잠자리의 유혹을 뿌리치고 일어나면 아마도 나의 아이들은 ‘아빠는 부지런해서’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세상의 아버지들은 누구보다 늦게 잠을 잔다. 세상의 아버지들은 누구보다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렇게 평생을 살아도 그 아버지의 고마움을 아이들은 잘 모른다. 그렇게 바지런을 떨지만 일상이 되어버려서 어쩌면 가족이란 구성원 모두는 그런 아버지의 깊은 뜻을 모를 것이다. 익숙한 것은 그래서 편안할지 모르지만 사람의 감정마저 무디게 만든다. 아버지라는 직업은 쉬기 위해 쉼터인 가정으로 돌아오지만 그 가정은 쉼터로만 남아 있지 않고 여전히 일터로 다가온다. 그래서 아버지라는 직업은 세상 그 어떤 직업보다도 위대한 직업이다.

농사철에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내 방 앞에서 헛기침을 하면서 내가 일어나기를 바라셨던 아버지, 그 마음을 알면서도 잠이 고파 못들은 척 이불을 뒤집어썼던 나의 그날들, 이제 아버지가 되어 이렇게 잠을 쫓으며 나의 아버지를 이해한다. 세상 모든 아버지들이 기대어 쉴 수 있는 어깨를 빌려주는 그런 마음의 쉼터가 되는 가정이었으면 좋겠다. 자신을 알아주는 한마디의 말에 감동해서 코가 짠해지는 아버지들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가족이라는 구성원이 많았으면 좋겠다.

Family, 패밀리라는 말은 원래 father(아버지)의 fa와 mother(어머니)의 m에다 나는의 i와, love(사랑)의 l, 그리고 you의 y가 합쳐진 말, 즉 “아버지, 어머니,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의 합성어라고 한다. 이 말대로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었으면 좋겠다. 우리 아버지들의 잠은 짧지만 그 잠이 사랑으로 달았으면 좋겠다.

강한 여자, 어머니
어머니는 분명 신체 구조적으로 나보다 연약한 여자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아무리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어도 삶에 지쳐 힘겨울 때면 갑자기 보고 싶어지는 분이 어머니이다. 또한 그 어머니의 넉넉한 가슴이 그리워진다. 나보다 체구도 훨씬 작고 무엇보다 나보다 강해 보이는 것이라곤 전혀 없는데, 삶에 부대끼는 날엔 왠지 어머니가 더 커 보이고 어머니에게 달려가면 왠지 마음의 위안이 될 것만 같아 불러보게 되는 이름, 그래서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대로 어머니는 위대하다.

여자, 참으로 나약한 존재로 세상에 와서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되고 어찌어찌 한 아이,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여자는 더 이상 여자가 아니다. 엄마라는 이름의 여자, 그는 누구보다 강하고 누구보다 위대하다. 몰래 숨어 울 수는 있어도 몰래 숨어 아파할 수는 있어도, 엄마라는 여자는 다른 세상 여자들과는 달리 울지도 않으려 하고 아픔도 감추려 하고, 안 좋은 모든 일들을 혼자 지고 가려고 한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는 그 흔한 말을 모를 리 없을 텐데 엄마라는 여자는 슬픔은 오히려 혼자만 갖고 기쁨이란 기쁨은 모두 자식들에게 나눠줄 줄만 아는 참 바보이다. 아무리 당신을 희생해도 티 하나 내지 않는, 일부러 티 나지 않는 일만 골라서 하면서도 아무 불평이 없는 엄마는 참 바보이다. 그러나 그런 당신의 희생이 있어서 가정이 바로 서고 자식들이 제대로 선다.

나 잘난 것만 알았지, 나 짜증나는 것만 알았지, 우리는 그 좋은 엄마를 때로는 무시하고 말대꾸로 늘 착한 엄마를 몰래 울게 만들며 살아간다. 그러고는 내가 엄마가 되어서야 비로소 엄마라는 여자의 소명을 알아간다. 저기 철없이 뛰어노는 말썽꾸러기 꼬마 아가씨들도 언젠가는 연약한 여자의 옷을 벗고 강하고 참 좋은 엄마로 굳게 설 날이 올 것이다. 오늘은 엄마의 숨은 봉사를 기억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행복을 주는 말
영어를 공용어로 쓰지 않는 비영어권 102개국 4만 명에게 70단어를 제시하고 정감이 가는 단어를 고르게 해보았더니 1위가 어머니mother라는 단어였으며, 2위는 열정passion, 3위는 미소smile, 뒤를 이어 사랑love, 영원eternity, 환상fantastic, 목적destiny, 자유freedom, 고요tranquil(l)ity 등이었다고 한다. 여기 제시된 단어들 중 어머니를 제외한 모든 단어들은 대동소이한 것 같다. 하지만 우리에게 정감을 주는 이 단어들을 우리는 하루에 몇 회 정도나 사용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아마도 이 단어들에 정감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그나마 정서적인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두뇌 속에 머물러 있는 단어들이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명석한 두뇌 속에 간직된 단어들, 지금 당장 입 밖으로 내보내고 싶은 단어들은 혹여 부정적인 단어들일지도 모른다. 기왕이면 우리가 정감을 갖는 단어들로 우리 마음을 가득 채워야 한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하는 말들이 좋은, 긍정적인 단어들이어야 한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들이 고운 단어들이어야 하며 우리 입 밖으로 나가는 단어들은 아름다운 단어들, 인간적인 단어들, 예쁘게 들려오는 단어들이어야 한다.

일과 쉼의 구분
세상은 자전거 페달과 같아서 밟으면 밟는 만큼 더 바빠진다. 가끔 하던 일을 멈추고 긴 심호흡이라도 한 번 해볼 일이다. 우리는 주어진 시간들을 나름대로의 창의성을 가지고 내 것으로 변형시켜야 한다. 그 시간의 주인이 되어 그 시간을 이용할 줄 알아야만 한다.

우리는 모두에게 주어진 똑같은 시간들을 창의적으로 찾아내는 존재들이다. 정치 싸움도 일정 기간의 휴식이 주어지면 왠지 저절로 풀린다. 다시는 건너지 못할 강을 건넌 듯한 부부 간의 싸움에도 일정 기간의 휴식이 주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관계가 회복되기도 한다. 공부가 주업인 학생들도 50분 수업하고 10분의 휴식이 주어져야 효과적이다. 아무리 대학생들이라도 90분 이상의 수업을 소화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긴 주례사라고 감동을 주는 것도 아니며, 긴 설교라고 더 은혜로운 것도 아니다.

“바쁘게 서두르는 것이 어떤 성과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고요히 쉬는 것이 참으로 새로운 발견들과 생각들을 불러일으킨다”는 말처럼 일과 휴식은 적절히 배분되어야 창의적인 시간들을 생성해낼 수 있다. 주어진 시간들에서 창의성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살아야 한다. 말을 만들어내고, 글을 만들어내고, 일을 만들어내고, 제품을 만들어내고, 열매를 만들어내고, 보고서를 만들어내는 것은 시간의 산물이다. 그렇게 생산되는 시간의 산물들이 효율적이고 좋은 것들이어야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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