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에 간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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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에 간 클래식
김태용 지음
페이스메이커

책소개

곡의 제목은 잘 몰라도 음악을 들으면 “아, 이게 그 음악이었어?”라고 무릎을 탁 치게 되는 익숙한 음악들을 이 책에 담았다. 영화 속 한 장면에서 흐르는 클래식이 더 친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요약본 본문

실화에 기반한 영화 속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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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의 음악 [보헤미안 랩소디]

록음악의 성지인 영국에서는 2명의 여왕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록밴드 ‘퀸’은 전설적인 존재다. 2018년 보컬 프레디 머큐리와 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가 개봉하며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다. 퀸의 멤버인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와 드러머 로저 테일러는 동료이자 친구인 프레디가 다시금 제대로 평가받길 바라며 2009년부터 영화 제작을 준비했다. 자신들이 속한 퀸과 프레디의 음악 여정을 솔직하게 전달하길 원했던 것이다. 영화는 퀸의 생생한 기록들과 현장감을 살려낸 한 편의 다큐멘터리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보다 살아 있는 멤버들이 간직하던 과거의 기억을 통해 그들의 노래와 예술성을 빛나게 한 밴드 퀸에 대한 영화적 헌사라고 보는 것이 맞겠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의미:

영화의 제목인 는 퀸이 1975년에 발표한 4번째 정규앨범 의 수록곡으로 앨범 발매 전 싱글로 선발매된 퀸의 대표곡이다. 영국 싱글 차트에서 9주 연속 1위를 차지했으며, 단 3개월 만에 100만 장 이상의 앨범 판매고를 올렸다. 무엇보다 프레디가 직접 작사와 작곡을 도맡았다는 점에서 프레디의 뛰어난 음악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퀸이 세계적인 밴드로 도약할 수 있었던 상징적인 곡이기도 하다.

는 클래식음악과의 연관성이 적지 않다. 프레디가 오페라를 좋아해서인지 성악의 아리아 느낌이 노래에 반영되어 있다는 점이 상당히 흥미롭다. 하지만 중간에 삽입된 오페라스러운 부분을 라이브 공연에 쓰기 어려워 콘서트에서 직접 보여줘야 할 경우 퀸은 도입부와 코다만을 연주해야 했다. 프레디의 오페라 사랑은 그뿐만이 아니다. 1987년에 발매한 프레디의 2집 솔로앨범 에서 그는 오페라 가수 몽세라 카바예와 함께 노래하며 3옥타브를 넘나드는 고음역의 키를 소화해 디바의 목소리에 전혀 밀리지 않는 가창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스페인 출신의 카바예는 세기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와 비견되는 최고의 디바 중 한 명이다. 스페인의 보물이자 세계문화유산으로까지 거론되었던 그녀의 국제적 명성은 칼라스의 극렬함과 대치되는 온화함에서 비롯되었다. 카바예의 폭발적인 고음은 짜릿함의 극치라기보다 풍요로움의 정수라 할 수 있다. 리리코와 콜로라투라를 넘나들며 어지간한 배역들을 두루 섭렵했기에 그녀의 오페라 레퍼토리는 다양하다. 칼라스의 계승자라고까지 언급될 만큼 그녀의 이탈리아식 고난도 창법은 참으로 대단했는데, 그럼에도 그녀 자신은 독일 스타일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같은 깔끔하면서 담백한 작품들을 더 선호했다.

그리고 또 하나 특별한 정보를 미리 알아둔다면 영화를 보는 색다른 즐거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은 의 제목에 담긴 음악적인 내용들이다. 먼저 첫 단어인 ‘보헤미안’은 프랑스어 ‘보엠’으로부터 파생되었다. 체코 서부의 보헤미아 지방의 유랑민족 ‘집시’ 혹은 ‘방랑자’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집시라고 하면 부정적인 느낌이 들지만 보헤미안 혹은 집시는 19세기부터 사회적 관습으로부터 자유로운 생활을 하는 예술가, 문학가, 배우, 지식인 등을 가리키는 교양과 학식을 두루 갖춘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다. 보헤미안과 반대되는 말은 개인적 실리만을 따지는 속물적 사람들을 지칭하는 ‘필리스틴’인데, 의역해보면 필리스틴은 교양 없는 사람, 보헤미안은 개념 있는 사람들인 거다.

집시에 관한 또 하나의 편견은 그들이 대부분 가난하고 거주지가 불분명한 떠돌이 생활을 할 것이라 여긴다. 그러나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의 집시들처럼 금속공예를 통해 상당한 부를 축적해 화려한 저택을 소유하면서 부유하게 살아가는 경우도 많다.

집시가 명성이 자자한 것은 그들의 탁월한 음악성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바이올린을 쥐고 태어난다고 할 정도로 집시들의 천재적 음악성과 연주력은 확연히 두드러진다. 현대 헝가리 태생의 바이올리니스트 로비 라카토시와 요제프 렌드바이가 그러한 연주자들이다. 라카토시와 렌드바이가 연주하는 집시 바이올린 스타일은 감각적 리듬감을 바탕으로 한 빠른 속도와 현란한 기교다. 이들의 연주에는 트릴과 피치카토 기법들이 자주 쓰이는데, 이러한 기법들은 악보 그대로 연주하는 것이 아닌 매번 다르게 연주되는 즉흥적 표현들이다.

그러면 ‘랩소디’는 무슨 뜻일까? 랩소디는 ‘서사시의 일부분’ 혹은 ‘미쳤다’라는 그리스어의 뜻에서 유래되었고, 이를 광시곡으로 풀이해 자유로운 형식의 환상곡풍 기악곡으로 분류한다. 주로 기악음악에 적용되지만 요하네스 브람스처럼 성악곡에 붙어 있는 경우도 있고, 종종 유럽의 민요나 담시곡에서도 쓰인다. 광시곡의 기원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시곡은 집시와 관련이 깊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연극을 위한 독창자가 ‘서창’으로 불렀던 이후 집시들이 이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변형시켜 노래와 악기로 보여준 것에서 기인한다. 그러한 연유로 17세기 바로크 오페라의 출발은 집시와 전혀 무관하지 않다. 한편 브람스의 , 프란츠 리스트의 , 벨라 바르톡의 외, 조지 거슈윈의 등 피아노를 위주로 한 여러 대가들의 광시곡들은 지금까지도 걸작으로 평가받는 인지도 높은 작품들이다.

비극적 음악:

에는 총 3곡의 오페라 가운데 푸치니의 오페라가 두 번 나온다. 하나는 퀸의 BBC 생방송 출현 후 프레디와 여자친구 메리 오스틴이 다정하게 함께 있는 장면에서 흐르는 오페라 의 2막 아리아 ‘어느 갠 날’, 다른 하나는 영화 중반 대저택을 구매한 프레디가 밤에 메리에게 전화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의 1막 아리아 ‘왕자님, 들어주세요’다. , , 모두 전 세계적으로 많이 공연되는 푸치니의 명작들이다.

은 초초라는 15세의 게이샤와 일본에 파견 중인 미군 대위 핀커튼에 대한 이야기다. 초초의 사랑은 진심이지만 핀커튼에게는 가벼운 불장난이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런데 핀커튼은 초초를 일본에 남겨두고 미국으로 돌아간다. 핀커튼이 떠난 뒤 아들을 낳게 된 초초는 아이를 키우며 3년의 세월 동안 하염없이 핀커튼이 돌아오기만을 소망한다. 그러나 핀커튼은 미국 여성과 결혼해 살고 있다.

한편, 하녀 스즈키는 핀커튼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며 초초를 단념시키려 하지만 초초는 남편의 복귀를 굳게 믿으며 스즈키를 심하게 면박한다. 초초는 스즈키를 꾸짖은 뒤 아리아 ‘어느 갠 날’을 노래한다. 소프라노의 목소리로 초초의 마음을 위로하는 내용이지만 ‘죽음’이란 가사를 통해 그녀의 비참한 운명을 암시하기도 한다. 극은 초초의 자결로 비극적인 결말을 맺는다. 실제 프레디와 메리의 이성적 사랑은 지속되지 않는다. 영화에서 프레디가 메리에게 커밍아웃을 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완성되지 못하고 프레디는 병에 걸려 죽음을 향해 간다.

그러므로 이 배경음악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할 복선으로 볼 수 있다.

의 아리아는 프레디의 마음에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왕자님, 들어주세요’는 남자 주인공 타타르의 왕자 갈라프를 남몰래 연모하는 여자 노예 류가 노래한다. 왕자가 중국 공주 투란도트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해 목숨을 잃고 자신도 죽게 될 것이라며 왕자를 향한 감춰둔 사랑과 슬픈 마음을 드러내는 노래다. 오보에가 비탄에 빠진 순정적 여인 류의 마음을 나타내고 여기에 하프가 장식하면서 서정성을 부각시킨다. 이 곡은 성악 독주회에서 자주 다뤄지며 앞서 ‘어느 갠 날’과 더불어 푸치니의 아리아 중에서도 유독 인기 있는 곡이다.

영화에서 프레디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메리에게 알리고나서부터 서로가 소원해지지만 두 사람 사이의 연민과 사랑은 여전하다. 퀸의 다른 멤버들은 어느새 가족이 생겨 걱정이 없으나 프레디는 여전히 혼자다. 그래서 프레디는 메리가 사는 집 근처로 거주지를 옮겨 그녀와 늘 가깝게 있고 싶어 한다. 프레디는 밤중에 메리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처지에 대한 괴로움과 외로움을 달래고 그녀에게 진심으로 다가가길 원한다. 그렇지만 메리는 마음의 상처가 크다. 여기에서 류의 절절한 아리아가 프레디의 복잡한 심경을 적절하게 대변하며 흐른다.

1980년대 초반 프레디는 HIV(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 에이즈) 확진을 받게 되면서 1991년 45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영화에서 사용된 3곡의 오페라들은 모두 비극적이다. 비록 는 해피엔딩이지만 푸치니가 작품을 모두 완성하지 못하고 안타깝게 타계했다는 점에서 비극과 연결될 만하다. 극 중 3막에서 류가 억울하게 고문당하고 자결하는데 푸치니는 바로 이 류가 죽는 부분까지만 작곡한 후 후두암 수술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끝으로 의 하나 남은 오페라는 어디에 삽입되어 있을까? 퀸이 레코드사의 제작자 레이 포스터와 미팅하는 장면이다. 프레디가 레이 앞에서 LP판을 재생시키는데, 이것은 마리아 칼라스가 노래한 조르쥬 비제의 오페라 중 1막 아리아 ‘사랑은 길들이지 않는 새’, 일명 ‘하바네라’다. “사랑은 제멋대로인 새, 누구도 길들일 수 없어. 원하지 않으면 불러도 소용없지. 협박도 애원도 소용없는 일….” – ‘하바네라’ 가사 中

영화에서 프레디가 레이에게 칼라스의 ‘하바네라’를 들려주며 그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최고의 음악을 만들 것이라고 장담한다. 에 진짜 오페라가 들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페라 애호가인 프레디는 최대한 오페라와 비슷한 느낌을 내고자 했다. 그것은 오페라를 모방했다기보다 클래식음악의 깊은 가치를 따르고자 한 것으로, 가사에 ‘비스밀라(‘신의 이름으로’라는 뜻의 아랍어)’, ‘갈릴레오(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과학천재)’ 같은 난해한 언어를 넣어 일반적 가사를 초월했고 이를 설명하길 거부했다. 결과는 강렬했고 성공적이었다. 역사상 유일무이한 6분의 예술! 바로 퀸이기에 가능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영화 속 클래식

환상적인 가상현실을 만끽하다 [레디 플레이어 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힘은 건재했다. 영화 을 보고 난 후 감독의 영향력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를 새삼 절감할 수 있었다. 미국 작가인 어니스트 클라인의 첫 소설 『레디 플레이어 원』을 기반으로 한 거장의 연출은 현실과 가상의 두 세계관을 ‘가상현실 게임’을 통해 놀랍도록 절묘하게 호환시켜놓았다. 원작자인 어니스트는 영화가 완성되고 두 번이나 관람했다고 한다.

토카타와 푸가:

은 2045년의 미래에 ‘오아시스’란 가상현실 게임에서 주인공 웨이드 오웬 와츠가 이곳에 숨겨진 이스터 에그를 찾는다는 스토리다. 오아시스에 감춰진 3개의 미션을 성공시킨 자만이 오아시스의 창시자인 제임스 할리데이의 막대한 재산과 오아시스의 소유권을 가질 수 있다. 빈민촌에 사는 웨이드는 오아시스에 접속해 이스터 에그를 찾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 미션을 성공시키기 위해 오아시스를 찾는 대부분의 접속자들도 웨이드처럼 인생역전의 기회를 얻기 위해 분주하다. 하지만 미션을 깨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그래도 오아시스의 개발자는 이 난해한 퍼즐 속에 자신의 어린 시절인 1980~1990년대의 문화에 힌트를 남겨놓았다.

우선 이 영화를 관람하기 전 미리 봐두어야 할 영화들이 있다. 시리즈, , 등이다. 본 영화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들로서 선행 관람 후 영화를 본다면 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본격적인 미션은 제임스 할리데이가 사망하기 전 남긴 유언으로부터 시작한다. 웨이드의 게임 속 아바타 이름은 파시발이다. 할리데이는 누구나 아이템을 얻을 수 있도록 게임 곳곳에 숨겨두어 아이템 사냥을 통해 코인을 충전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놓았다. 게임에서는 방어력이 약하면 아바타가 위험해지고, 코인이 많을수록 레벨이 높아져 강해진다. 하지만 아바타가 죽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어렵게 축적한 가상화폐, 무기 등이 모두 사라지는 것이다.

2025년 할리데이는 친구 오그던 모로와 함께 오아시스를 처음 출시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면서 신적 존재로 추앙받게 된다. 그러나 2040년 급작스럽게 할리데이가 사망한다. 그것이 발단이다. 할리데이는 영상 메시지를 통해 이스터 에그를 먼저 찾는 유저에게 회사의 전체 지분과 오아시스의 소유권을 넘기겠다는 유지를 남긴다. 자산 가치만 무려 5천억 달러 이상이다. 이 영상 메시지는 관속에 누워 있는 할리데이를 조명하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이때 나오는 오르간 소리가 바흐의 음악이다.

바흐의 여러 오르간 래퍼토리 가운데 아마도 만큼 잘 알려진 곡도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은 바흐가 20대 전후의 시기에 작곡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대략적인 연대는 1703~1709년경 혹은 1708~1717년경으로 보고 있다. 제목의 ‘토카타’의 의미는 이탈리아어 동사인 ‘닿다, 만지다’의 뜻인 ‘토카레’에서 비롯된 것으로, 17~18세기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성행했던 건반 악기용의 곡을 말한다. 토카타의 특징은 기교적이고 즉흥성을 띤 건반형식인데, 바흐의 이 작품에도 극적이고 충동적 요소가 강함을 느낄 수 있는 폭풍 같은 멜로디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 건반 위에서 즉흥연주를 위해 음을 길게 유지할 수 있는 오르간의 특성을 이용해 오르간 주자가 한 손으로 음을 지속시키는 동안 다른 손으로 빠른 음들을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식이다.

환상 교향곡의 이스터 에그:

첫 번째 미션은 레이싱이다. 웨이드의 파시발은 아바타인 쇼, 다이토 등의 친한 헌터들과 함께 미션에 도전한다. 여기서 또 한 명의 새로운 인물을 만난다. 그 아바타는 식서 킬러인 아르테미스다. 식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대기업 IOI에 의해 고용된 기업형 게임헌터들이다. 그들이 이름이 아닌 숫자 ‘6’으로 불리는 것은 IOI의 방침에 따른 것이다. IOI는 할리데이의 회사를 뛰어넘어 1인자의 자리를 차지하고자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잔인한 조직이다. 오아시스를 차지하기 위해 뛰어난 인재들을 다수 영입해 전략팀을 꾸리는 등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아르테미스는 그런 IOI의 식서들만을 전문적으로 사냥하는 아바타로 IOI가 미션에 성공하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을 한다. 그녀에 대한 소문은 웨이드도 이미 잘 알고 있다. 레이싱의 막판 골인지점에서 파시발은 거대 괴수에 가로막혀 레이싱을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그 뒤에서 돌진해오는 아르테미스를 막아서며 그녀의 아바타를 괴수의 공격으로부터 구해낸다. 그녀는 웨이드 덕분에 살았지만 그녀가 타고 있던 바이크는 괴수에 의해 박살난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의 러브라인이 형성되고 웨이드의 미션 깨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웨이드는 할리데이의 과거사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미션이 공개된 오아시스 내에 할리데이 저널이란 자료정보관이 생기면서 웨이드는 늘 이곳을 찾는다. 할리데이 저널은 그의 개인 사진과 영상물, CCTV 기록으로 구성되어 3차원 가상현실로 렌더링된 것이며, 여기에서 할리데이가 즐긴 영화, 게임, 책, TV가 모두 정리되어 있다. 미션을 성공시킬 유일한 단서가 있는 곳이다.

웨이드는 자신이 분명 할리데이 저널에서 무엇인가를 놓쳤다고 생각한다. 벌써 천 번이나 본 2029년의 영상에서 웨이드는 마침내 그 해답을 찾게 되고 아주 손쉽게 첫 미션을 성공한다. 파시발은 1위에 등극하며 첫 미션을 성공시킨 최초의 유저가 된다. 첫 미션을 통과하면 두 번째 미션의 단서가 주어지고 부상으로 10만 코인을 획득할 수 있다. 웨이드는 이 코인을 가지고 오아시스 내 아바타 아웃피터로부터 고가의 게임 아이템들을 구매한다. 웨이드가 구매한 아이템 중에는 X1 햅틱 부트 슈트란 것이 있는데, 이는 가상에서도 현실과 같은 몸의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고가의 게임슈트다. 이것을 입고 게임을 하면 게임 속 물리적 충격이 그대로 몸으로 전해져 실제와 같은 현실감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게임 속에서의 구매가 현실 세계의 유저들에게 직접 전달되는 과정은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짜릿함을 선사한다. 하지만 이 슈트의 판매처는 IOI다. 결국 웨이드는 악당들에게 자신의 집 주소를 제공한 셈이다.

두 번째 미션의 단서를 통해 웨이드는 오아시스 출시 6일 전인 2025년의 기록물에서 실마리를 찾는다. 그 실마리는 할리데이가 사랑했던 여인 키라다. 키라는 게임명이고 실제 이름은 카렌 언더우드로, 친구 모로의 아내다. 할리데이가 카렌이 모로와 결혼하기 전 한번 만났던 여자로 그녀와의 첫 만남에서 영화를 보았다. 바로 이 영화가 두 번째 미션을 풀 열쇠다. 웨이드는 아르테미스와 동료들과 함께 할리데이 저널에서 2025년 키라와의 데이트가 있었던 그 주의 영화들을 검색한다. 그중 주어진 단서와 맞아떨어지는 영화 하나를 찾는다. 그것은 스탠리 큐브린 감독의 공포영화 이다. 가상현실 속에서 영화 이야기를 직접 체험하며 그 속에서 미션을 성공시켜야 한다. 파시발과 동료들이 영화 속으로 진입한다. 그때 들려오는 금관악기의 기묘하고 스산한 선율이 음산함을 더한다.

영화에서는 저음역 금관악기의 선율만 따로 각색해 등장시켰지만 이는 분명 프랑스의 대작곡가 루이 엑토르 베를리오즈의 교향곡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교향곡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이 작품은 중 5악장 ‘마녀들의 밤의 향연과 꿈’이다. 영화에 나오는 금관 사운드의 사용은 실제 연주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는 오케스트라에서 튜바라는 악기로 연주된다. 그런데 튜바는 본래 작곡가가 쓰고자 했던 악기가 아니었다. 원래대로라면 오피클레이드라는 금관악기를 써야 하는 게 맞다. 은 오피클레이드가 최초로 등장하는 주요 작품이다. 오피클레이드의 소리는 트롬본과 음역대가 동일한 중저음이다. 지금의 금관악기들이 구현해내기 어려운 독특하면서 깊고 풍미 있는 음색을 자랑한다.

영화와 음악은 하나의 공통분모로 묶여 있다. 그것은 ‘환상’이다. 할리데이가 그토록 사모했던 여인 키라와의 관계를 푸는 영화 속 환상과 베를리오즈의 작곡 배경과 연관된 음악 속 환상이 그렇다. 먼저 영화는 할리데이가 키라와 하지 못했던 이상적인 데이트를 실현시켜줘야 한다. 단서와 일치하는 영화를 골라 그 이야기 속에서 키라를 찾아내 현실에서 엄두내지 못했던 할리데이의 환상을 유저들이 실현시켜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듯 영화의 핵심이 이스터 에그를 찾는 것이라면, 영화 제작진들이 베를리오즈의 작품을 선택한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 에도 베를리오즈가 감춰놓은 이스터 에그가 존재한다. 할리데이에서 키라가 있다면, 베를리오즈에게는 해리엇 스미드슨이 있다. 헤를리오즈가 쓴 환상이란 제목은 그가 사랑했던 아일랜드 출신의 여배우 해리엇 스미드슨을 암시한다. 영화식으로는 이스터 에그지만, 베를리오즈의 음악에서는 이를 ‘고정상념’이라 한다. 쉽게 설명하면, 음악에서 해리엇이란 여인을 상기시킬 수 있도록 특정 선율을 삽입해 감상자들로 하여금 그녀를 떠올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더 쉽게는 곡의 ‘주제 선율’ 정도로 이해하면 좋다.

베를리오즈가 이렇게까지 해리엇에 집착했던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가 작곡가로 성공을 거두기 전 파리 공연을 위해 영국에 온 셰익스피어 극단의 해리엇 스미드슨을 보고 첫눈에 반해버렸던 것이다. 베를리오즈는 해리엇의 마음을 얻고자 노력했지만 당시 베를리오즈는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것 없던 무명의 작곡가나 다름없었다. 결국 매몰차게 자신의 구애를 무시한 해리엇의 태도에 큰 상처를 받은 베를리오즈가 작심하고 작곡한 곡이 바로 이다. 내용은 현실의 자신을 대입한 젊은 음악가와 해리엇을 염두에 둔 매력적인 여성이 사랑에 빠진다는 몽상이다.

실제 베를리오즈가 이 곡의 일부를 아편을 복용하면서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20세기 지휘계의 거장 레너드 번스타인은 그의 음악을 두고 “환각상태에 빠진 최초의 음악적 탐험”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야말로 절망 속에서 해리엇을 향한 극단적 사랑의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다. 영화와 음악의 공통점이라면 당연히 사랑일 테고, 그 열렬한 사랑의 대상을 게임 속 이스터 에그와 음악 속 고정상념으로 활용했다는 점일 것이다.


드라마틱한 영화 속 클래식

서번트 증후군의 천재적인 연주 [그것만이 내 세상]

1887년 영국의 의학박사 존 랭던 다운이 처음 사용한 의학용어가 있다. 바로 ‘서번트 증후군’이다. 다른 말로는 ‘백치 천재’라고도 한다. 이는 낮은 IQ를 가진 석학이나 천재를 뜻하는 것으로, 자폐증이나 지적장애를 가진 이들에게서 특정 분야의 우수한 능력이 발휘되는 현상이다.

영화 은 음악 서번트 증후군을 소재로 한 영화다. 서번트 증후군을 연기한 오진태 역의 배우 박정민은 이 영화를 위해 피아노 연습에만 무려 900시간을 할애했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피아노를 전혀 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영화 내에 쓰인 피아노 음악들은 900시간을 연습한다고 잘 칠 수 있는 수준의 곡들이 아니다. 프로들도 까다로워 하는 대곡들이다. 하지만 그는 연주 표현을 어색함 없이 재현해내 관객들에게 영화 이상의 감동을 선사했다.

주옥같은 피아노 명곡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시리즈와 한국 영화 , , 등에서 보여준 이병헌이란 배우의 존재감은 그만큼 대단했다. 영화 에서도 그랬다. 이병헌이란 배우 한 명의 등장이 얼마만큼 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 영화였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음악적 연출의 완성도를 이끈 사람은 바로 박정민이었다. 영화 전반에서 활약한 박정민의 지적장애 연기와 압도적인 피아노 연주 퍼포먼스가 단연 큰 역할을 했고, 이병헌이 박정민을 서포트하는 양상으로 시종일관 코믹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과거 WBC웰터급 동양 챔피언인 전직 복서 조하는 대학로 거리에서 전단지 아르바이트와 틈틈이 스파링 파트너로 대전료를 벌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어느 날 조하는 친구 동수를 만나 식당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식당일을 하는 친어머니 주인숙과 우연히 마주친다. 조하와 인숙의 만남은 10여 년 만이다. 조하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서러움으로 마음의 상처가 깊다. 그런 조하를 바라보는 인숙의 마음은 그저 미안하고 가슴 아플 뿐이다. 인숙은 장애를 가진 진태를 데리고 산다. 진태는 아버지가 다른 조하의 이부동생이다. 과거 인숙은 술주정뱅이 남편의 가정폭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어린 조하를 두고 재혼해 새 삶을 살게 되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진태다. 하지만 진태는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채 살아가야 하는 인숙의 아픈 손가락이다.

조하는 어머니를 만나 술을 마신 뒤 정처 없이 길을 걷다 도로 위에서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금세 의식을 회복하며 멀쩡히 일어난다. 사고를 낸 당사자는 조하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인다. 교통사고의 가해자는 부잣집 딸이다. 조하는 회장이라 불리는 딸의 어머니에게 위로는커녕 범죄자 취급을 받는 수모를 겪게 되고, 딸은 조하에게 미안해 하며 따로 그를 찾아가 자신이 사고를 낸 경위에 대해 설명한다. 조하를 다치게 한 그녀의 회상 신에서 빗길 속 과속운전 장면이 보인다. 그녀의 질주와 동시에 라흐마니노프의 의 유려한 선율이 흐른다. 이야기를 듣고 난 조하는 그녀에게도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러시아의 작곡가이자 지휘자, 그리고 명피아니스트인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는 1909년 미국으로 건너가 지휘와 피아노 연주로 명성을 떨쳤다. 19세기의 차이콥스키가 일궈낸 국제적 낭만주의 어법을 계승시키며 다양한 음악장르들을 쏟아낸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은 총 4곡이며, 그중 과 협주곡이 널리 연주되고 있다.

한편, 인숙은 조하의 친구 동수에게 조하의 행방을 알아내 조하에게 같이 살자는 제안을 하고 조하는 그런 어머니의 제안을 받아들여 무심한 척 인숙과 진태의 집에 들어가게 된다. 불편하긴 하지만 당장 숙식을 해결할 처지가 못 되는 조하에게는 친구 동수의 말대로 복권 당첨이나 마찬가지다. 드디어 조하와 진태 두 형제가 만난다. 아직 조하는 진태의 상태를 정확히 모른다.

복지관에서 청소 일을 하고 있는 인숙에게 직원이 국내에서 열리는 프레데릭 피아노 콩쿠르에 진태를 내보내라고 권유를 한다. 그 옆에서 진태는 간드러지는 피아노곡을 연주하고 있다. 직원은 프레데릭 콩쿠르는 상금 500만 원이 걸린 대회고, 프레데릭 스쿨의 문성기 원장이 주관하기 때문에 후일 피아니스트로의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문 원장은 제자 한가율을 국제 쇼팽 콩쿠르 2위에 올렸을 만큼 명성이 자자하다.

마침내 복지관에서 진태의 연주로 쇼팽의 이 흘러나온다. 앞서 프레데릭 콩쿠르나 프레데릭 스쿨의 ‘프레데릭’은 쇼팽의 이름이다. 피아노의 대명사 쇼팽을 내세운 만큼 영화에서는 쇼팽작품의 사용 빈도가 높다. 무려 4곡이나 쓰였다.

진태가 좋아하고 즐겨 듣는 피아노 연주는 피아니스트 한가율의 것이다. 한가율은 조하를 차로 친 부잣집 딸이다. 한가율 역은 배우 한지민이 맡았다. 그녀는 과거 뺑소니 사고로 다리 하나를 잃고는 피아노를 잊은 채 절망 속에서 살아왔다. 그런 한가율의 과거를 알게 된 조하는 그녀를 찾아가 진태의 연주를 평가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가율은 이를 거절한다. 체념한 조하가 진태를 데리고 나가려던 중 진태는 가율의 집에 놓인 피아노를 발견하고는 쇼팽의 을 친다. 진태의 놀라운 실력에 발길을 멈춘 가율은 진태에게로 다가가 자신이 건반을 누른 뒤 진태의 반응을 살핀다. 진태는 곧장 가율의 것을 따라 친다. 가율은 의자에 앉아 진태의 실력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진태와 함께 2중주곡을 연주한다.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한 이 작품은 브람스의 이다. 브람스의 은 크게 전 4집으로 정리되어 있다. 곡 수로 따지면 전부 21곡이다. 이 곡들은 본래 피아노 연탄곡으로 쓰인 것들이다.

19세기에 자주 등장하는 란 국가의 이름이 들어가는 제목들은 실제 헝가리의 음악양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대개 헝가리 집시음악 스타일을 따른 것들이다. 18세기 후반 비엔나에서 활동하던 하이든이 집시의 양식을 도입해 유행시킨 것이 그 발단이라 할 수 있다. 유럽 대다수의 국가들은 집시를 심하게 배척했다. 15세기 무렵 집시가 난폭하고 불결하다는 풍토가 만연해지면서 집시는 당연히 죽어 마땅한 존재로 여길 정도였다. 하지만 영국과 오스트리아만큼은 집시에 대해 관대했다. 그들에게 직업을 알선했으며, 시민의식을 가르쳤다. 특히 오스트리아에서는 그 이전까지 독일어로 ‘치고이네르’라고 불리던 부정적 이름을 금지시키고 ‘신 헝가리인’이라 불리도록 했다. 오스트리아의 작곡가들이 집시음악에 관심을 보이게 된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불가능,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의견일 뿐이다: 영화가 개봉하기 전 클래식음악을 소재로 만들었고, 그 속에서 나오는 음악이 피아노 연주라는 정보부터가 필자의 신뢰를 확 낮춰놓았다. 게다가 전문 연주자의 타건이 아닌 직접 배우가 연주한다는 사실에서 기대감 또한 무너졌다. 피아노 연주의 연출은 대타가 가능해 배우의 연기력과 편집만 받쳐준다면 크게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직접 타건을 하는 상황과는 차원이 다르다. 아무리 표정 연기가 좋아도 실제가 아니면 그 이상의 몰입감을 주기 어렵다. 어색할 수밖에 없는 게 클래식음악 영화의 단점이다. 그러한 점에서 은 정면 돌파를 감행한 셈이었다. 그럼에도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영화를 보며 필자를 깜짝 놀라게 했던 장면은 진태가 대학로 공원 거리에서 선보인 피아노 연주 장면이다.

인숙이 집을 비우는 동안 조하는 동생 진태에게 전단지 돌리기를 돕게 한다. 그러던 중 진태가 갑자기 사라진다. 사방으로 진태를 찾다가 발견한 곳은 대로 건너편 누구든 연주할 수 있는 야외 피아노 공연장이다. 조하는 진태의 피아노 연주를 이곳에서 처음 듣게 된다. 진태의 연주에 앞서 먼저 예쁜 꼬마 아가씨가 모차르트의 중 3악장 연주를 끝낸다. 그러자 진태가 슬그머니 앞으로 다가가 전단지를 피아노 위에 올려놓고는 악보 대신 게임영상을 보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다. 진태를 찾던 조하는 피아노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본다. 동생의 환상적인 연주 실력에 눈을 떼지 못하던 조하는 이를 계기로 진태를 다시 보게 된다.

사실 이 장면이 대단했던 이유는 배우 박정민의 연주 연기 때문이었다. 개봉 전까지 소문이 파다했던 엄청난 연습량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극 중 진태가 연주한 작품은 베토벤의 ‘월광’ 중 3악장이다. 영화에서 들리는 음악 소리는 배우의 연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소리 자체는 프로 피아니스트의 연주다. 어마어마한 재능의 아마추어가 900시간을 연습한다고 해도 연기하면서 이렇게 안 틀리고 연주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피아노 소리와 배우의 손동작을 일치시켜야 한다. 박정민의 피아노 터치 연기는 생각보다 놀라웠다. 물론 자세히 보면 구간마다 미스 터치가 보이지만 영화의 몰입에 방해를 주지 않을 정도의 안정된 자세와 나름의 흡사한 타건을 선보였다. 분명 아무나 할 수 없는 도전이자 모험이었다. 모두 그의 능력이다. 정말 칭찬받아 마땅하다.

흔히 이 작품을 ‘월광 소나타’로 통칭한다. ‘월광’이란 이름은 독일의 낭만 시인 루드비히 렐슈타프가 곡의 1악장을 듣고서는 “스위스 루체른 호수의 달빛 아래 물결에 흔들리는 작은 배처럼”이라고 은유한 데서 나온 말이다. 잘 생각해보면 렐슈타프 탄생 2년 후에 작곡된 작품이었으니 ‘월광’이란 말은 소나타가 출판되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통용되었던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베토벤 작품27은 두 곡의 소나타를 포함한다. 그것이 및 ‘월광’이다. 베토벤이 30세를 전후한 시기에 작곡한 것으로 당시 최초의 교향곡이나 현악 4중주들이 등장하던 때와 맞물려 두 곡 모두 음악적 성격이나 방향성이 뚜렷하고 의욕적인 작품들이다. 이 곡들은 베토벤의 초판악보에 의거해 작곡가가 직접 붙인 ‘환상곡풍 소나타’란 부제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월광 소나타의 본래 부제는 ‘환상곡풍 소나타’라 할 수 있다. 작품27은 첫 출판부터 대성공을 거두었다. 렐슈타프의 표현으로 문학적 상상을 자극했던 탓인지 작품의 인기는 더더욱 높아져만 갔다. 그러나 베토벤은 ‘월광’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것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했다고 전해진다. 영화에서 보여준 3악장은 피아노만이 보여줄 수 있는 효과를 톡톡히 맛볼 수 있다. 감히 베토벤의 피아노 음악 가운데 이 이상의 매력을 갖춘 표현력이 있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진태가 뒤늦게 콩쿠르의 특별상을 얻어내 갈라 콘서트에서 차이콥스키의 중 1악장을 감동적으로 연주해내는 장면이다. 박정민의 피아노 연주 장면에서 최상의 컨디션을 보여준 부분이다. 보는 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불가능,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의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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