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대나무처럼 자란다

다니비앤비 / 2020년 8월 / 265쪽 / 16,000원

인생은 대나무처럼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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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대나무처럼 자란다

변봉덕 지음

책소개

이 책은 스마트홈 IoT 전문 기업이자 홈 시큐리티 분야에서 글로벌 톱 브랜드로 자리 잡은 코맥스 변봉덕 회장의 경영 철학과 인생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인생과 경영 철학을 담은 이야기를 진심 경영, 프런티어 경영, 위기 경영, 가치 경영, 역발상 경영, 미래 경영으로 나눠 소개하고, 아울러 성공을 꿈꾸는 젊은 후배들에게 선배 경영인으로서 전하고 싶은 희망의 메시지도 함께 전한다.

요약본 본문

▣ 저자 변봉덕

(주)코맥스 대표이사 회장. 1940년 평안남도 평양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6. 25전쟁이 터지자 남쪽으로 피난 내려와 서울에 정착했다. 한양대학교 수학과와 동 대학 경영대학원 경영학과에서 공부했으며, KAIST 최고정보경영자과정을 수료했다. 2018년 한양대학교에서 명예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8년 중앙전자공업사를 창업했다. (주)코맥스 대표이사로 재직하면서 한국전자공업협동조합과 한국전자공업진흥회 이사, 성남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했다. 1994년 ‘수출산업포장 대통령상’과 2001년 ‘수출산업표창국무총리상’을 수상했으며, 2004년 국가생산성 혁신대회 종합부문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2006년 제43회 무역의날 ‘석탑산업훈장’을 수상했으며, 2012년 ‘대한민국 글로벌 CEO’에 선정되었다. 2013년 국가브랜드 대상 ‘최고 경영자 부문’에 선정되었고, 2017년 제12회 전자ㆍIT의 날 ‘금탑산업훈장’, 2018년 ‘한국의 영향력 있는 CEO 리더십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 Short Summary

인터폰부터 비디오폰, 스마트홈 시스템과 시큐리티 솔루션에 이르는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중견기업 ‘(주)코맥스’는 젊은 시절 몇 차례 사업을 실패하고 빚더미에 앉아 있던 변봉덕 회장이 ‘이번에는 절대 실패할 수 없다’는 절박한 각오로 문을 연 ‘중앙전업사’라는 작은 사무실에서 시작했다. 미래에는 통신 분야가 유망할 거라는 판단에 전화교환기와 인터폰 사업을 선택한 그는 진심을 담은 도어 투 도어 방식의 영업으로 조금씩 사업을 키워 나갔다. 이후 국내 최초로 개발한 도어폰의 성공으로 전국 규모의 판매조직을 구축하며 자리를 잡았지만, 가슴을 뜨겁게 하는 꿈에 도전하기 위해 과감히 해외시장 개척에 나섰고, 현재 전 세계 120여 개국에 코맥스 제품을 수출하는 커다란 성과를 만들어냈다.

이 책은 스마트홈 IoT 전문 기업이자 홈 시큐리티 분야에서 글로벌 톱 브랜드로 자리 잡은 코맥스 변봉덕 회장의 경영 철학과 인생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인생과 경영 철학을 담은 이야기를 진심 경영, 프런티어 경영, 위기 경영, 가치 경영, 역발상 경영, 미래 경영으로 나눠 소개하고, 아울러 성공을 꿈꾸는 젊은 후배들에게 선배 경영인으로서 전하고 싶은 희망의 메시지도 함께 전한다.

저자는 창업 이후 지금까지 순탄하게 성장해온 것처럼 보이는 코맥스에도 수많은 위기의 순간이 있었는데, 그 모든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원칙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정면 승부하며 책임을 감수하는 정도경영의 자세 덕분이었다며,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위기를 겪고 있는 지금도 변화의 본질을 주의 깊게 통찰한 다음 기본으로 돌아가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진심 경영 - 진심을 다해야 길이 열린다

진심의 다른 이름은 ‘열심’

‘열심’이란 말이 진부하게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오래도록 익고 익은 말에는 그만큼 더 깊은 의미가 담겨 있게 마련이다. ‘열심(熱心)’이 무엇인가? 한자 그대로 풀이하자면 뜨거운 마음이다. 뜨거운 마음이 무엇인가? 그것은 간절한 마음이다. 간절한 마음이 있으면 안 될 일도 되게 만들고, 때론 막힌 길도 뚫어낼 의지가 생긴다. 그것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생각이 아니라, 비논리적인 마음이자 의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비논리적인 마음이나 의지가 참 많은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을 살아오면서 직간접적으로 여러 번 경험했다. 사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가 그랬다.

내가 중앙전업사를 창업했을 때가 1968년 4월 1일, 스물아홉 살 무렵이었다. 그때 나는 이미 사업에 여러 번 실패한 상태였다. 나이는 자꾸 먹어 가는데, 손대는 사업마다 실패를 거듭하자 상당히 초조해져 있었다. 가족, 친지, 친구 등 주변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돈을 빌려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이미 빚더미에 앉아 있던 터라, 그 많은 빚을 다 갚기 위해서라도 사업을 포기할 수 없었다.

중앙전업사는 그런 진퇴양난의 상황 속에서 시작되었다. 청계천 4가 허름한 한옥의 방 한 칸을 빌려 사무실로 썼다. 자본금이라고는 전화 한 대를 포함해 200만 원이 전부였다. 그러나 돈보다 더 큰 자본은 “무엇이든 돌파하고 말겠다!”는 각오였다. “이번에는 절대로 실패할 수 없다!” 이런 각오와 의지가 내 안에 가득했다. 그만큼 나는 절박했다. 처음에 손댄 것은 ‘전화교환기’였다. 전화기 한 대를 놓기가 힘들던 시절이었다. 웬만한 가정집에서 전화기를 놓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고, 주로 여관이나 호텔, 빌딩, 사무실에서 전화국으로부터 국선을 끌어와서 교환기를 통해 전화를 사용하던 때였다.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나는 전화교환기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지만,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앞으로는 통신 분야다”라는 확신을 갖고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단 하나, 전화교환기를 새로 짓고 있는 건물에 팔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건축설계를 하는 친구를 찾아가 물었다. “새로 짓는 건물들은 어떻게 알 수 있나?” 친구는 말했다. “건축사 관련 협회에서 모든 설계를 심의해서 정부에 건설 허가를 받아야 공사에 들어갈 수 있다네.”

나는 바로 협회 사무실로 달려갔다. 아무도 나의 문의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건축대장이라는 것이 있어서, 어느 지역에 어떤 건물이 언제 공사를 진행하는지 상세한 정보가 적혀 있었다. 담당자에게 계속해서 부탁하고 공을 들인 결과 마침내 건축대장을 복사해 올 수 있었다. 사무실에서 그 건축대장 복사본을 딱 펼쳐놓으니 서울 지역 공사 현황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마치 작전지도와도 같았다. 내가 어디로 달려가야 할지 훤히 알 수 있었다.

다음 날부터 나는 그 작전지도를 옆에 끼고 공사 현장을 돌았다. 한 공사 현장을 갔을 때의 일이다. 공사 자재가 잔뜩 쌓여 있고 공사가 한창이었지만 집주인은 만날 수 없었다. 매일같이 찾아가 자재 지키는 직원에게 담배도 사주면서 말문을 텄다. 그리고 슬슬 집주인에 대해 물었다. 집주인이 언제 오는지, 성격은 어떤지, 어떤 사업을 하는 사람인지…… 나는 자재 지키는 직원으로부터 집주인이 새벽에만 잠깐 들른다는 정보를 얻어내어 그 시간에 맞춰 공사 현장으로 갔다. 과연 집주인이 일찍부터 나와서 인부들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하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돌아가려는 집주인을 놓칠세라 재빨리 다가갔다.

“저는 중앙전업사의 변봉덕이라고 합니다. 전화교환기가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전화교환기? 그게 뭔데?” 전화교환기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별로 없던 시절이었기에 나는 전화교환기가 뭔지, 어떻게 설치해야 하는지 자세히 설명했지만 어르신은 잘 들으려 하지 않았다. 손사래를 치며 돌아서는 그의 등에 대고 간절함을 담아 이렇게 말했다. “어르신! 세를 잘 놓을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건물을 지을 때부터 전화교환기를 설치하면 됩니다. 그래야 입주자들을 유치하기 쉽고, 건물 가치도 올라갑니다. 또 전화기 임대사업을 함께 하면 수익성도 높습니다. 전화교환원 인건비는 빠지고도 남지요.”

그제야 그가 나를 돌아보더니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나의 첫 고객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첫 고객은 먼저 중앙의 전화교환기를 턱 하니 설치하더니 다음에는 지인들에게 전화교환기를, 아니 변봉덕을 소개해주었다. 전화교환기 사업은 그렇게 벼랑 끝에서 시작되었다. 벼랑 끝이 있기에 더 절박할 수 있었고, 그 절박함이 반드시 해내겠다는 투지가 되어 타오를 수 있었다. 당시 나는 건설이나 전화교환기에 대해 아는 것은 적었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판매’를 이뤄낼 수 있었다.

프런티어 경영 - 꿈을 향한 도전은 끊임없이 계속된다

꿈을 이룰 수 있는 첫 번째 조건, 도전

알렉산더가 넓은 영토를 차지하게 된 이유는 그가 원정을 떠났기 때문이다. 자기 나라 안에만 머물러 있었다면 그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도 그가 목숨을 건 먼 항해를 떠났기 때문이다. 이처럼 꿈을 이룰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은 도전하는 것이다. 꿈만 꾸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꿈을 이룰 수 없다. 도전도 하지 않았는데 무슨 성공이 있겠는가. 물론 도전하지 않으면 실패도 없겠지만 말이다. 성공과 실패는 적어도 무언가에 도전했다는 증거인 셈이다.

사람들은 가끔 내게 해외 영업 성공의 비결을 묻곤 한다. 그 대답의 첫 번째는 “도전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가 될 것이다. 또 사람들은 묻곤 한다. 고객은 어떻게 구했느냐고, 소개를 받거나 해서 계약이 성사된 것이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 나의 고객은 100% 개척이었다. 해외에서 소개받고 개척한 고객은 없었다. 우선 첫발을 디뎠을 때는 양손에 커다란 가방을 들고 맨해튼 메인스트리트를 무작정 걸으며 전자상가들을 일일이 찾아 들어가 영업을 했다. 그러다가 아무래도 시간과 에너지를 너무 소진하는 것 같아 전화번호부와 지도를 하나 구해서 밤마다 호텔방에서 작전지도를 만들었다. 전화번호부에 나오는 전자 관련 상점 번호와 주소를 확인하고 지도에 표시를 해둔 것이다.

과거 군 시절 그러니까 카투사로 옮기기 전에 작전병을 맡아 진지 구축을 기획하며 전술을 짜곤 했었는데, 바로 그때처럼, 진지하게 고심하며 여기저기 점을 찍어두었다가 날이 밝으면 그 점을 찍어둔 곳을 향해 쏜살같이 가방을 들고 영업을 나가곤 했다. 다행히 맨해튼 메인스트리트 쪽에 우리 인터폰에 관심을 보이는 상점들이 몇 곳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현금거래를 원했다. 수출을 해야 하는 나로서는 현금이 아니라, 신용장이 필요했다. 알고 보니 그들은 소매상들이었다. 전광석화처럼 그들이 어디서 인터폰을 구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도매처를 물어보았더니 다음과 같이 답했다. “롱아일랜드나 뉴저지 쪽에 수입업자들, 무역 도매상들이 많이 있소. 우린 거기서 물건을 싸게 들여와서 파는 것이오.” 내가 갈 곳은 여기가 아니라 바로 거기였다. 그래서 한달음에 달려가 전화번호부에서 롱아일랜드나 뉴저지 쪽에 있는 무역상, 도매상들을 찾아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아예 통화 자체를 거부하는 곳도 있었고 귀찮아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30분이면 됩니다. 딱 30분만 설명할 기회를 주십시오”라고 생떼를 쓴 적도 많았다. 어렵게 기회를 얻으면 30분이 곧 1시간이 되고, 또 1시간을 2시간으로 만들면서 조금씩 배팅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물론 첫 대면부터 물건 사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사전에 그 나라의 역사, 스포츠, 문화 등을 많이 공부해서 갔다. 바이어를 만나면 우선 그 나라의 역사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네들에 대해 칭찬해주면, 동방의 작은 나라에서 온 세일즈맨이 자기네 나라에 대해 그렇게 많이 알고 있다는 점에 놀라는 동시에, 칭찬에 기분이 좋아져서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 대화가 무르익고 나에 대한 호감도가 생겼을 때 제품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우리 제품은 가격 경쟁력이 있었다. 아직은 국내 인건비가 저렴할 때라 다른 나라의 제품보다 가격을 저렴하게 맞출 수가 있었으니까. 그런데 마지막까지 걸림돌이 된 것은 우리 제품의 품질에 대한 우려였다. ‘검증이 안 된 나라의 물건을 덥석 샀다가 고장이라도 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우려부터 불식시켜야 했다. “그런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한국은 작은 나라이고 우리 회사도 작은 기업이지만, 품질만은 CEO인 내가 책임지고 감독하기 때문에 세계 최고라고 자부합니다. 한번 믿어보십시오. 우수한 제품을 저렴하게 잘 구했다 생각하게 되실 겁니다.” 진심을 다해서 말하면 마음이 통한다.

나의 진정성에 그들도 점차 나를 믿고 물건을 보내달라며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이처럼 아는 사람 하나 없고 거래처도 하나 없는 타국에서 내가 잡은 동아줄은 옐로우페이지(업종별 전화번호부)였다. 나는 그것을 ‘전화번호부 영업’이라고 부른다. 전화번호부 영업은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나 다름없는, 가본 적이 없는 미지의 땅을 하나씩 공략해 들어가는 것이었다. 1970년대 초반에 중소기업이 고유한 브랜드로 전 세계에 수출을 한 경우는 아마 우리 중앙전자공업사가 유일했다는 사실이 지금도 자부심으로 남아 있다. 각자에겐 각자의 프런티어가 있다. 누군가의 프런티어는 거대한 사막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프런티어는 작은 숲 하나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규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꿈이 있고, 그 꿈을 향해 도전한다는 것이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다.

위기 경영 - 바람이 불면 풍차를 돌려라

전량 리콜로 도약의 기회를 얻다

코맥스 역시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고비를 넘기며 성장했다. 창업 초기 때의 일이다. 지인들에게 큰 빚을 지면서까지 힘들게 도어폰을 개발했지만, 시장에서 철저히 외면당하자 직원들도 하나둘 떠나가고 침체에 빠진 적이 있었다. 실의에 빠진 나머지 한때 자살까지 시도하려 했다가 마음을 다잡고 남산에서 내려와 다시 도어폰 시장에 뛰어들었을 때였다.

하늘이 도왔는지, 판매가 이뤄지기 시작하더니 주문이 끊이지 않고 밀려들었다. 더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의 사고가 터졌다. 불량 신고가 주문보다 더 밀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사무실에서는 불량 신고 전화벨 소리가 요란스럽게 계속 울려대고, 심지어 설치 기사가 고객의 집에 도어폰을 설치해주고 채 사무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작동이 안 된다!”며 불량 신고가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다. 2개월 동안 생산한 제품이 모두 불량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알아보니 새롭게 교체한 스위치 부품이 문제였다. 고객들의 원성이 대단했다. 쌍욕을 해대거나 삿대질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모욕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사생결단으로 다시 만든 도어폰 제품이 전량 다 불량이라니. 그 현실 앞에서 쓰디쓴 절망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결단을 내렸다.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전량을 다 교체해주기로 했다. 나의 결단에 반대하는 직원도 있었다. 생산한 제품을 전량 교체해주면 손실 규모가 커져서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한다며 다들 만류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상황에서 2달치 생산 물량을 다 교체해주면 어떻게 버틸 수 있겠는가. 그러나 무엇보다 고객과의 신뢰가 가장 중요한데, 당장 눈앞의 이익 때문에 신뢰를 잃을 수는 없었다. 나는 일일이 고객의 가정에 방문해서 불량으로 불편을 끼친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리고, 도어폰을 모두 새 제품으로 교체하는 전량 리콜로 승부수를 띄웠다.

나는 물세례를 받고도 허리를 굽혀 죄송하다는 말만 연신 드렸다. 그리고 그런 고객에게도 절대 허술히 하지 않고 오히려 더 철저하게 새 제품으로 교체했고, 설치 이후에도 작동이 제대로 되는지 또 다른 문제점은 발생하지 않았는지 꼼꼼하게 살폈다. 마음 한구석에는 전량 교체에 따른 손실로 회사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참담한 심정이었지만, 내가 판매한 제품에 대해서는 내가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후 손해를 감수하고 추진한 전량 리콜은 위기가 아니라 기회가 되었다. 새 제품으로 교체한 후 제품 사용법이라든가 궁금한 점들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며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자 고객들의 마음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긴 기업 이미지와 고객 신뢰는 깊게 뿌리내렸다.

1970년대 초였으니 소비자들이나 업계에서 ‘리콜’이란 단어조차 잘 사용하지 않을 때였다. 그러나 코맥스는 그 시절에 전량 무상 교체를 통해 고객으로부터 신뢰를 얻으며 긍정적인 기업 이미지를 분명하게 각인시킬 수 있었다. 코맥스의 우수한 품질은 하루아침에 저절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숱한 위기를 겪으며 이뤄낸 품질 향상과 기술혁신을 통해 얻은 결과이다. 위기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것을 잘 활용하면 오히려 위기 이전보다 모든 상황이 더 좋아질 수 있다.

포스트 코로나, 기본으로 돌아가라

지금 우리는 인류가 이제껏 경험해본 적 없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 앞에 서 있다. 불과 몇 달 전에 세상에 퍼진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개인의 건강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기업과 나라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질병 예방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삶의 본질적인 패러다임 변화를 예고하는 문제로 커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생활의 일상화는 이전부터 예고되어 왔던 4차 산업혁명에 의한 지능정보사회의 도래를 순식간에 앞당겨놓았고, 모든 기업은 이런 위기에 대비할 시간적 여유도 없이 커다란 변화의 파고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모든 이들이 이런 질문을 스스로 혹은 전문가에게 던지고 있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두 세대가 넘는 세월 동안 기업을 이끌면서 세상의 변화를 수도 없이 경험해온 내 입장에서는 변화라는 게 새로운 것이 아니다. 언제나 변화는 있어왔고 그 변화를 이겨내는 힘은 언제나 ‘기본’에서 출발하는 것이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닥칠 변화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과거의 방법을 답습하자는 게 아니다. 변화의 본질을 주의 깊게 통찰한 다음 그에 맞게 대처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 나는 항상 다음 3가지를 강조한다.

첫째, 지식의 축적으로 나만의 빅데이터를 축적해야 한다. 변화가 두려운 이유는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경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공부해야 한다. 책을 읽고 조사하고 공부하면서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시대를 알아가야 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종이책을 보라고 하면 잔소리로 치부하기 십상인데, 그래도 깊이 있는 사유를 경험하려면 전문가의 견해가 담긴 종이책을 보라고 권하고 싶다. 책 외에도 강의, 세미나, 멘토와의 대화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변화의 본질을 익히고 공부해서 새로운 시대에 대한 나만의 빅데이터를 축적해야 한다. 그것이 축적되기 시작할 때 자신감도 쌓인다.

둘째, 관계의 공유로 나만의 네트워크를 확대해야 한다. 지식의 축적이 나의 전문성의 깊이를 만드는 작업이라면, 관계의 공유는 나의 폭을 넓혀가는 작업이다. 다가올 시대는 한 분야의 전문성만으로는 헤쳐 나가기 어렵기 때문에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한 연대를 통해 나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한마디로 광폭의 시야를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최근에 융복합이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등장하면서 기업 내에서도 지식과 경험을 두루 겸비한 제너럴리스트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그런 맥락이다.

셋째, 오픈 마인드로 변화에 동참해야 한다. 변화해야 한다고 하면 두려워하거나 위축되기 쉽다. 위기에서 비롯된 변화는 어렵고 골치 아프고 고생스러운 것이라는 생각부터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화는 젊은 친구들이 새로운 게임이 나왔을 때 호기심에 도전해보는 새로운 버전의 게임일 뿐이라고 발상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변화를 두려워한다면 도태될 수 있지만 변화를 즐기려고 하면 성공의 기회가 된다. 그러니 새로운 게임을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그 게임에서 전력을 키우고 필살기를 익혀 최강자로 거듭나려는 변신을 시작하자. 인생도 변화무쌍한 게임처럼 즐기려는 마인드가 필요하다.

가치 경영 - 가장 소중한 가치는 믿음이다

한결같은 믿음으로 함께해야 한다

사업 초창기 때부터 나는 고객 만족, 고객 감동을 강조해왔다. 고객 만족의 기본은 역지사지에서 나온다. 입장을 바꿔서 즉 고객의 입장에 서서 고객은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해보면 고객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이 나오는 법이다. 그런데 나는 고객을 단순히 최종 소비자에 국한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제품을 취급하거나 판매하는 대리점, 하도급업체, 원부자재 공급업체도 나의 고객으로 여겼다. 더 나아가 단순히 팔고 사는 거래 관계로 보지 않고 한 배를 타고 사업을 하는 파트너이자 동반자로 여겼다. 그들과 나는 중앙전자의 제품을 매개로 해서 이어져 있고, 그들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이 되고 나의 성공이 곧 그들의 성공이 되는 공동운명체라는 것이 대리점을 대하는 나의 가장 기본적인 철학이었다. 그러한 철학은 대리점 구축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이어지고 있다.

중앙전자는 일찍부터 대리점을 두고 전국적인 유통망을 갖춰 나갔다. 자본금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리점 설립은 상당히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방안이었다. 다행히 우리 제품에 대한 인지도가 있어서인지 전국에서 대리점을 개설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제법 많았다. 그중에는 중앙전자 인터폰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있으니 대리점 사업을 해서 돈 좀 벌어보겠다고 덤비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신설 대리점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우선 사업에 대한 장밋빛 환상을 심어주기보다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조목조목 설명을 해주었다. 또한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중앙전자 제품을 가지고 한탕하듯 돈 벌어보겠다는 생각이라면 아예 사업을 시작하지도 말게. 대신에 정말 열심히 일하면서 함께 해볼 마음이라면 외상으로라도 물건을 대주겠네. 결제 날짜도 자네 스스로 지킬 수 있는 날로 정하게. 대신에 그 날짜만큼은 칼같이 지켜야 하네. 신뢰는 거저 쌓이는 게 아니야. 약속을 지킴으로써 쌓아가는 거지.”

대개의 기업에서는 대리점을 낼 때 무엇보다 재정적인 능력, 안정도를 최우선적으로 보았지만 중앙전자는 달랐다. 처음부터 1,000만 원 상당의 물건을 당장 현금으로 구입해서 장사를 하겠다는 사람보다는, 돈이 없거나 고작 몇 십만 원어치의 물건만 가져갈지라도 회사의 방침과 철학을 공유하며 성실하게 영업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을 원했다. 당시 1,000만 원이라면 결코 작은 돈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지원자의 재정 능력보다 경영 마인드를 더 우선적으로 보았고, 서로 믿고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만 대리점 사장으로 선택했다. 서로 믿는다는 전제에서 하는 것이니 담보 하나 받지 않고 계약 문서 한 장 남기지 않은 채 구두 계약만으로 대리점을 내주곤 했다. 그러다 보니 “중앙전자 대리점은 돈만 가지고는 할 수 없다”는 말이 생기기도 했다.

이렇게 객관적으로 볼 때는 다소 불안하리만큼 쉽게 대리점을 허락해주자 회사 경리부에서는 반대 의견이 좀 나왔다. 돈 들고 찾아와서 대리점을 개설하겠다는 희망자가 줄을 섰는데 구태여 재정 능력도 없는 사람에게 대리점을 맡길 이유가 있느냐, 굳이 그런 사람과 계약을 하겠다면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최소한의 담보라도 확보해두는 게 안전하지 않겠냐는 말이었다. 경리부로서는 당연한 염려였고 그 말도 일리가 있었지만, 나는 이익이나 돈보다는 믿음이 중요했고 그 믿음을 ‘믿고’ 싶었다. 그래서 이렇게 설득하며 나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아닐세. 돈보다는 열심히 하려는 의지와 성실성, 고객에 대한 투철한 서비스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는 걸세. 그러니 그런 철학을 공유하고 함께 원칙을 지켜나갈 수 있는 사람과 함께 가야 하는 거지. 돈이야 앞으로 같이 벌면 되지 않겠나?”

참으로 고맙게도 그렇게 믿고 대리점을 내준 이들은 대부분 신뢰와 약속을 저버리지 않았다. 특히 중앙전자 직원으로 있다가 대리점을 차린 경우가 많았는데, 나는 회사에 필요한 인재가 퇴사해서 대리점을 차린다고 해서 말리거나 하지 않았다. 기업은 인재를 키우고 인재의 성장을 도와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굳이 우리 회사에만 묶어두지 않겠다는 마음이기도 했거니와, 직원이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보다 중앙전자 대리점 사업을 하기에 적합한 인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원들이 대리점을 차리는 것을 오히려 적극 독려하고 힘껏 밀어주었다. 사업자금이 부족하다고 하면 돈도 빌려주고, 퇴직금도 규정된 기한이 되기도 전에 일찌감치 받아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이렇게 믿어주면 그들은 나의 믿음에 어긋나지 않게 영업 활동을 펼치고 고객을 섬기며 사업을 해주곤 했다.

여하간 사람을 믿는다는 것은 기분 따라 상황 따라 믿었다 안 믿었다 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믿어주는 것이다. 배신을 당하는 일이 생길 수는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면서까지 경영할 수는 없다. 믿지 못하는 사람과 어떻게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믿지 않으면 일을 맡기지 말고, 일을 맡긴 이상 끝까지 믿어야 한다. 설령 그 끝이 배신으로 돌아온다 할지라도, 크게 믿어주면 작은 배신에 내 사업이 흔들리지는 않으리라.

역발상 경영 - 답은 언제나 현장에 있다

역발상으로 국내 최초 도어폰을 개발!

기업의 모든 순간이 치열한 두뇌 싸움이지만, 특히 제품 개발이야말로 두뇌 싸움의 최전방이라 할 수 있다. 코맥스의 역사 또한 제품 개발의 역사나 마찬가지이다. 특히 도어폰 개발은 ‘국내 최초’라는 의미가 있기도 하거니와 나로서도 본격적인 제품 개발의 첫 경험이었기에 아주 특별한 순간이었다. 도어폰 개발을 하느라 수많은 빚을 지게 되었는데, 그렇게 많은 빚을 지면서도 도어폰 개발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나름대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도어폰이라는 제품을 정해놓고 개발하려고 계획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타사의 인터폰과는 다른 중앙만의 인터폰을 만들기 위해 고객의 입장에서 계속 생각했다.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제품 개발을 어떻게 할 것인지 방향성이 나오는데, 그런 의미에서 역발상이란 역지사지 발상과 다르지 않다.

“전화기처럼 고객들이 서로 자유롭게 통화할 수 있는 인터폰을 만들 수는 없을까?” 즉 기존의 인터폰에 새롭게 통화 개념을 도입하는 것을 구상했던 것이다. 당시 국내에는 인터폰이라는 말은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았고, 그 기술도 수화기를 통해 내부에서 통화를 하는 정도에 그치는 수준이었다. 외부와 내부를 연결해서 통화를 할 때는 잡음이 많고 대화가 끊어지기가 일쑤였다. 특히 가정에 다는 인터폰은 프레스 투 토크(press to talk) 방식이어서, 말을 할 때는 버튼을 누르고 하다가 상대방의 말을 들을 때는 버튼에서 손을 떼야 했는데, 그러다 보니 익숙하지 않은 소비자들은 대화할 때 서로 타이밍을 맞추기가 어려워 불편이 컸다.

그래서 대문에 달린 스피커와 집 안에 있는 전화기를 연결해서 손쉽게 대화할 수 있는 인터폰을 만들기 위해 몇 달 동안 두문불출, 방문을 걸어 잠그고 연구에 몰입했다. 수학을 전공한 내가 기술 개발에 대해 얼마나 알았겠는가. 인터폰을 직접 만들 수 있는 기술은 내게 없었지만, 소비자가 사용하기에 편리한 기능은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나름대로 도면을 그려 나갔다. 그렇게 완성된 일차 도면을 가지고 통신기기 제작 기술자에게 찾아가 자문을 구했더니, 다행히도 “도면대로만 하면 단시일 내에 충분히 제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이후 실제 개발에 착수하니 예상과 달리 4개월 넘는 시간이 더 소요되긴 했지만, 기존 인터폰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신제품 인터폰을 개발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우리가 개발한 인터폰은 내부 수신자만 수화기를 들고 외부 송신자는 수화기 없이 마이크를 통해 집안의 사람과 자유롭게 통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문의 자동개폐 기능까지 첨가한 획기적인 제품이었다.

당시는 국내 통신기기 기술 수준이 미군 부대에서 나온 제품을 뜯어서 재조립하는 수준에 그치던 시절이었다. 그나마 통신기기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는 한두 곳에 불과했고, 대부분의 업체가 수입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작은 기업인 중앙에서 자유로운 음성 통화가 가능한 새로운 형태의 인터폰을 개발했다는 것은 대단한 쾌거였다. 무엇보다도 대문에서 누군가 초인종을 누르면 “누구세요?” 하고 달려 나가야 했는데, 이제는 도어폰만 있으면 집 안에서 편안하게 수화기를 들어 방문자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으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라이프스타일이 달라지는 획기적인 상품이 아닐 수 없었다. 소비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도어폰’은 그렇게 탄생했다.

중앙전자가 개발한 도어폰은 한국형 주택 문화와 가옥 구조를 고려하여 거기에 가장 적합한 통신기기를 개발한 것이었다. 한국 가옥 구조는 대문과 마루 사이의 거리가 멀어서 방문자가 벨을 누를 때마다 대문까지 나가야 하는 불편이 컸는데, 이러한 불편을 해결하기 위한 발상의 전환에서 도어폰을 개발할 수 있었다. 참고로 국내 최초였기에 이 신제품에 대한 이름도 중앙전자에서 붙이게 되었고, 그 개발 배경을 고려하여 ‘도어폰’이라 명명했다. 고객의 라이프스타일까지 바꾼 도어폰은 비록 개발까지 많은 자금이 들어가 나를 빚더미에 오르게 하는 데 일등 공신 역할을 했지만, 초창기 중앙전자가 성장하는 데도 결정적인 견인차가 되었다.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발상의 전환이 낳은 결과였다.

미래 경영 - 변화를 즐기는 사람이 강하다

변화를 즐겨라 즐기는 사람이 ‘최강’이다

반세기에 달하는 세월 동안 기업을 경영했다. 그동안 크고 작은 어려움이 적지 않았지만, 시대가 달라지고 기술이 변할 때마다 항상 신속하게 감지하며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혁신을 거듭하며 돌파구를 찾았기에, 매출 1,000억 원대의 탄탄한 중소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나는 그것을 ‘혁신의 에너지’라 부르고 싶다. 혁신의 에너지가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고 더 나아가 성공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혁신의 에너지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즐기는 힘’이다. 변화를 즐길 줄 알아야 변화에 대처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평소 이렇게 강조한다. “자기가 하는 일을 즐겨라. 새로운 기술이나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변화 그 자체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 변화 속에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은 아침마다 그날 할 일을 생각하며 매일 설레는 마음으로 눈을 떴다고 한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그날 코맥스의 일을 생각하며 기대한다. 그것은 단지 비즈니스가 아니라, 내 꿈을 향한 달음질이기에 설레고 기대가 되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꿈과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면, 시련이나 장애를 만나도 기꺼이 헤쳐 나갈 수 있다는 마음이 생기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할 수 있다. 나 역시 그러했다. 처음 도어폰을 개발할 때도 세계무대를 누빌 때도, 중국 시장을 개척할 때도, 홈 네트워크를 개발할 때도…… 언제나 나는 즐겁게 일을 했다. 돈 자체보다 일 자체를 사랑했다. 일하는 즐거움이 바로 나에게는 ‘혁신의 에너지’가 되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지능정보사회가 다가오고 있다. 영화나 공상과학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모습으로 세상이 변한다니, 사실 나 역시 낯설기만 하다. 팔순을 바라보는 나는, 이 글을 읽는 젊은 독자들보다 그러한 변화가 훨씬 더 낯설게 느껴진다. 새로운 변화는 필연적으로 두려움을 낳는다. 낯설다는 이유만으로도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낯선 세상에 적응하지 못해서 나만 도태되는 것은 아닌지 두려운 마음이 앞서기도 한다. 그러나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발전할 수 없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혼자가 아님을 기억하는 것이다. 지난 세월 동안 대리점, 고객, 해외 에이전트 모두가 나의 동반자로서 큰 힘이 되었다. 지금은 기술과 산업이 융합하는 시대다. 이제 혼자서는 안 된다. 서로 협력해야 한다. 함께 가는 것이 더 안전하고 빨리 갈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얼마 전 한 기자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성장 전략을 묻기에 이렇게 대답했다. “홈 IoT는 어느 한 기업이 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 통신회사도 있어야 하고 가전업체들과도 협력해야 한다. 그들도 혼자서 할 수 없기에 우리와의 협력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중소ㆍ중견기업, 국내뿐 아니라 외국 기업과도 손을 잡으면서 보다 크고 강력한 네트워크를 만들어가고 있다.”

필요한 기술을 혼자서 다 개발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외부와 협력 관계를 만들어가는 게 현명하다. 코맥스가 글로벌 기업인 아마존, MS, IBM, 국내 3대 이동통신사, 카카오 등과 같은 서비스 플랫폼 기업은 물론, 삼성, LG와 같은 가전기업과 적극적인 협력 관계를 진행하고 있는 것도 다 같은 맥락이다. 또 코맥스는 미래기술 분야에서 스타트업 기업들과 중소기업이 함께 시너지를 내는 동반 성장 생태계를 구성하기 위해 지난 2017년 자회사 ‘코맥스 벤처러스’를 설립했다. 코맥스 벤처러스는 체계적인 육성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스타트업 기업과 협업 모델을 만들어서 스타트업이 미래 기술 시장에 진입해 성장해갈 수 있도록 지원해 나갈 계획이다. 나는 두려움 대신 꿈을 꾼다. 새로운 제품과 기술이 창조하는 새로운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는 세상을!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최강이다. 『논어』에 나오는 “어떤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는 공자의 말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고전에 나오는 고루한 옛말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뤄가는 모든 순간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말’이었다.

본 도서요약본은 원본 도서의 주요 내용을 5% 정도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원본 도서에는 나머지 95%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보다 많은 정보와 내용은 원본 도서를 참조하시기 바라며, 본 도서요약본이 좋은 책을 고르는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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