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페이스 혁명이 온다

나비의활주로 / 2021년 6월 / 416쪽 / 18,800원

인터페이스 혁명이 온다

인터페이스 혁명이 온다

신성석 지음

저자 소개

현재 한솔그룹에서 IT 분야 사업개발, M&A, 신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엔씨소프트, 네이버에서 전략과 사업개발을 했으며, 스타트업을 창업하여 직접 앱 관련 사업을 하기도 했고, 플래티어에서는 사업개발을 진행했다. 서강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고 이후 IT 분야에서 탄탄한 경력을 쌓았으며, 변화무쌍한 IT 분야의 트렌드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점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던 중 이 책을 쓰게 되었다. 늘 새로운 기술에 관한 관심이 많으며, 앞으로도 다양한 주제에 관한 책을 쓸 예정이다. 저서로는 《읽어야 이긴다》가 있다.

책소개

AI가 주목받으면서 이제 음성 인터페이스도 주류 시장에 편입되었다. 말로 명령을 내리고 소리로 결과를 듣거나 아니면 특정 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시대이다. 이제 인간의 오감을 통한 인터페이스는 상호 복합적으로 적용될 것이다. 이미 터치나 햅틱과 같은 인터페이스는 일반화되어 있으며, 후각에 대한 인터페이스, 뇌파를 이용하여 컴퓨터와 인터페이스하는 기술 등도 시도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인터페이스가 기업의 제품과 성공, 실패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고, 학술적인 내용보다는 주로 인터페이스 관련 사례들을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소개하고 있다.

요약본 본문

컴퓨터와 인터페이스의 발달 그 불가분의 관계

GUI: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의 모방 전략

컴퓨터 분야만큼 인터페이스 변화가 급격하게 변화하는 산업도 드물다. 컴퓨터는 최초로 발명된 이후부터 점차 소형화되면서 마침내 PC가 개발되었다. 그리고 스마트폰처럼 초소형 기기에 컴퓨터의 성능을 구현하여 터치로 명령을 내리는 인터페이스가 가능해졌다. 또한 AI스피커처럼, 음성 인터페이스를 이용하여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도록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PC가 발명된 후에 크게 바뀌지 않은 인터페이스도 존재한다. 인터페이스 측면에서 컴퓨터의 역사를 잠깐 살펴보자.

초기 컴퓨터에는 그야말로 현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입력 인터페이스가 있었다. 진공관을 이용한 컴퓨터인 애니악은 배선을 일일이 바꿔주어야만 했으며, 천공카드를 이용하거나 여러 개의 스위치를 켜거나 꺼서 입력해야 했다. 키보드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컴퓨터에 입력하기 위한 인터페이스는 훈련된 일부의 사람만 다룰 수 있는 수준이었으며, 출력 인터페이스도 테이프에 기록되어 나오는 수준으로 이를 해석하기가 쉽지 않았다. 현재의 모니터와 같은 출력 인터페이스는 존재하지 않았다. 최초의 컴퓨터는 입력과 출력 인터페이스가 현재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었다.

우리가 현재도 사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입력 인터페이스인 키보드는 1970년대 초 개인용 컴퓨터(PC)가 개발되고, 1970년대 중반 코모도어, 애플Ⅱ, 아타리 등을 사용하면서 널리 보급되었다. 키보드가 대중에서 널리 알려진 게 50년이 넘었지만 모양과 기능을 추가해서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키보드가 대표적인 입력 인터페이스로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PC가 급격하게 보급되면서 흑백모니터는 대표적인 시각 인터페이스로 자리를 잡는다. 비록 텍스트 기반으로 구성된 화면이었지만 PC에 있어서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출력 인터페이스를 갖추게 된 셈이다. 모니터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흑백에서 컬러로 발전하게 되고 현재는 고해상도의 컬러 모니터가 화면 인터페이스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마우스는 PC 기술이 발전하고 GUI(Graphical User Interface)가 도입되면서부터 사용되었다. 초기만 해도 GUI는 연구소에서만 사용할 뿐 일반 대중에게는 생소한 개념이었다. GUI가 대중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한 시기는 1984년, 슈퍼볼의 광고로 발매를 시작한 매킨토시가 폭발적으로 보급되면서부터이다. GUI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그래픽을 처리할 수 있는 뛰어난 하드웨어가 필요했으며, 가격도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일반인은 이미 텍스트 인터페이스에 너무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그래픽 인터페이스가 꼭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는 스티브 잡스조차 초기에는 그래픽 인터페이스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매킨토시 개발 시에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넣지 않으려고 했지만 제프 라스킨의 설득으로 매킨토시에 GUI가 채용되게 되었다고 한다.

PC가 도입되던 시절에 IBM은 매킨토시와 경쟁하기 위해서, 하드웨어 표준 인터페이스만 지키면 누구나 호환 PC를 만들 수 있도록 하드웨어 인터페이스를 공개한다. 애플이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소프트웨어에 적용하여 혁신을 이루었다면, IBM은 하드웨어 인터페이스를 공개함으로써 시장을 지배하게 된다. IBM 호환 PC가 저렴한 가격으로 시장을 차지하게 되면서 애플의 시장 점유율은 10퍼센트 정도에 머문다. 당시 IBM 호환 PC는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의 텍스트 인터페이스 기반인 MS-DOS를 운영체제로 선택함으로써 마이크로소프트를 세계적인 회사로 만들어 주었다.

애플의 매킨토시가 혁신적인 그래픽 인터페이스와 직관적인 사용법으로 시장에서 성공하자 이를 지켜본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는 그래픽 인터페이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매킨토시의 GUI를 모방한 윈도라는 제품을 개발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3.0은 1990년대에 출시되어 2년 만에 2,000만 카피가 팔리면서 시장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둔다. 이후 마이크로소프트는 GUI를 개선하고 성능과 안정성을 높인 마이크로소프트 윈도95를 출시하면서 전체 PC 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에 오르게 된다.

PC 태동기에 그래픽 인터페이스로 무장한 매킨토시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는 대다수의 일반인도 컴퓨터를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MS-DOS가 간단한 명령어를 입력을 해줘야만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다면,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이용한 윈도는 간단히 클릭만으로도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어 편리하다. 결국 그래픽 인터페이스는 일반인들이 키보드와 마우스라는 입력 인터페이스를 이용하여 쉽고 직관적으로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 모두 GUI를 고안하고 최초로 개발한 주역은 아니지만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가 혁신적인 인터페이스로 시장에서 성공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힘들다.

인터페이스 혁신 불감증으로 기업과 기술의 운명이 결정되다

디지털카메라의 등장과 코닥의 착각

1881년, 조지 이스트만이 설립한 코닥은 1990년대 미국 필름 카메라 시장에서 90퍼센트 이상의 점유율을 가진 성공 기업이었다. 1980년대의 코닥은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코닥 연구소는 최첨단 기술을 개발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하면서 급격하게 쇠퇴하여 코닥은 2012년에 미국 법원에 파산 신청을 하기에 이른다. 코닥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사실 코닥 연구소는 수많은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했으며, 많은 특허를 보유하고 있었다. 코닥은 1975년 세계 최초로 디지털카메라를 개발했고, 현재에도 쓰이는 디지털 이미지 처리 특허를 약 1,100개 정도 보유하고 있었다. 세계 최초로 디지털카메라를 개발한 코닥이 디지털카메라의 급격한 보급으로 무너졌다는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필름 카메라는 사진을 찍고 기록하는 매개체가 필름이며 이를 현상소에서 인화를 해야만 무엇을 찍었는지 알 수 있었다. 즉 사진을 인쇄하기 위해서는 필름이라는 인터페이스가 필요했으며 인쇄된 결과물을 봐야만 어떤 사진이 어떻게 나왔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보니 초점이 맞지 않거나 사진이 잘못 나와도 비용을 지불해야만 했고 사용자도 이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이에 반해 디지털카메라는 사진이라는 결과물을 얻기 위해 저장장치와 이를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추가한 것이다. 코닥은 최초로 디지털카메라를 개발하고 관련 기술을 확보했지만 코닥 경영진은 필름 카메라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디지털 카메라가 시장에 미칠 영향력, 그리고 디지털로 인터페이스가 변함에 따라 사진에 대한 사용자의 경험과 인식이 바뀔 것이라는 점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코닥의 실패 원인은 급격한 인터페이스 혁신이 올 것이라고 사실을 외면하고, 과거의 성공에 안주했기 때문이다. 즉,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대한 오판과 디지털 인터페이스의 도입에 따른 사용자 경험과 인식 변화를 미처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코닥이 필름 카메라 시장에서 성공한 요인은 카메라를 가져오면 코닥 현상소에서 인화까지 책임져주는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되기 시작하고, 디지털카메라 시장의 가능성을 인식한 후지필름은 재빠르게 디지털카메라를 출시한다. 디지털카메라가 시장을 잠식하기 시작하자, 코닥은 이지쉐어라는 브랜드로 새로운 전략을 수립해 코닥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코닥 프린터로 코닥 현상소에서 인쇄해주었다. 기존의 원스톱 서비스로 이룬 성공을 디지털에도 비슷하게 적용한 전략이었다.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한 전략이었지만 코닥의 몰락을 막지는 못했다. 코닥이 간과한 점은 바로 디지털카메라로 저장 매체와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바뀌면서 사진 자체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이 급격하게 변화했다는 점이다. 즉 사진을 찍는 최종 목적이 인화 또는 인쇄한 사진을 얻는 것에서 디지털 또는 인터넷 등에서 사진을 보고 즐기며 공유하기 위한 것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물론 가장 잘 나온 사진이나 필요에 의해서 인화를 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예전처럼 인화해서 남기려고 사진을 찍지 않는다. 이제는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살펴보고 그 중에서 잘 나온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지인과 공유하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휴대폰에 카메라가 내장되고 성능이 좋아지면서 이러한 현상은 점차 가속화한다.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이를 친구나 가족에게 전송하기도 하고, 현상소에서 인화하기보다는 PC의 모니터에서 확인하고 감상한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폭발적으로 성장함에 따라서 사진은 이제 친구나 가족 또는 인터넷 사용자와 공유하는데 더 많이 쓰인다. 또한 디지털카메라는 즉석에서 사진을 확인하고 삭제할 수 있으며 다양한 설정을 즉석에서 적용할 수도 있다.

코닥은 카메라 시장에 있어서 새로운 인터페이스의 변화(필름→메모리, 현상소→디지털 화면)를 미처 인식하지 못했으며 잘못된 방향으로 전략을 수립함으로써 몰락의 길을 걸었다. 현재의 인스타그램처럼 사진 기반의 SNS를 보면 코닥이 근본적인 인터페이스 변화에 대해서 둔감하고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다 무너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니 왕국이 침몰하게 되는 진짜 이유

2000년대 초반까지 소니는 워크맨, 바이오, 플레이스테이션, TV 등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으면서 ‘기술의 소니’, ‘소니 왕국’ 등으로 불리며 세계 최고의 전자업체로 군림한다. 그러나 소니는 서서히 몰락의 길로 접어든다. 소니 몰락의 이유를 많은 전문가들은 혁신의 늪에 빠진 것으로 진단한다. 혁신의 늪이란 혁신으로 성공한 기업은 지속적으로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만 하는데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결국 몰락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소니는 기존에 구축한 가전 왕국이라는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서 ‘월드 베스트 제품’을 만드는 데에 집중한다. 최고의 제품만이 성공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블루오션과 같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것보다는 기술개발 자체에 매몰되고 만다. 소니의 핵심 분야인 기술 중심의 제품도, 경쟁사의 빠른 기술 모방과 저가 전략 등으로 경쟁에 밀려 여러 분야에서 추월당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소니는 몰락해갔다.

소니의 초기 전략은 월드 베스트 기술로 개발된 제품은 뛰어난 기술에 대해 소비자들이 알아서 적응할 것이기 때문에 기술 개발 자체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워크맨이나 바이오 브랜드의 PC/노트북은 이런 전략의 산물이었다. 소비자들은 소니의 워크맨과 뛰어난 이동성과 디자인을 가진 바이오 노트북에 열광했지만, 소니는 이후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지 못하고 만다.

1971년 소니는 당시 TV 다음으로 많이 사용하던 VCR을 개발했으며, 1975년에 베타맥스 방식을 개발하여 가정용 비디오 레코더 시장을 선점한다. TV의 프로그램을 녹화하거나 영화 등을 볼 수 있도록 하는 인터페이스인 비디오테이프의 등장이다. 뒤 이어 JVC가 VHS방식의 기술을 개발한다. 소니는 자사의 기술이 품질이 높으며, 뛰어난 기술이라고 맹신한 나머지 이 기술을 소니만 독점적으로 사용도록 결정한다. 이에 반해, JVC는 VHS 기술을 공유하여 다른 회사에서도 제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라이센스를 개방한다. 1984년이 되자, 기술 공유와 라이센스 생산이 쉬운 VHS는 일본 시장의 80퍼센트를 점유한다. 결국 소니는 1989년에 베타맥스 방식의 VCR생산을 중단한다. 소니의 베타맥스 방식은 분명 기술적으로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소비자가 기술이 뛰어난 제품보다 다양한 콘텐츠를 보유한 제품을 선호한다는 점을 소니는 간과했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소니의 MD에서도 발생한다. 워크맨의 성공과 기술 우선 전략의 실패를 거울삼아, 1990년대 초 CD의 불편함을 제거하고 휴대가 쉽고 작고 매력적인 MD 플레이어를 시장에 출시한다. 시장에서는 작고 디자인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MD가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 또한 콘텐츠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닫고 소니는 소니 뮤직을 설립하여 콘텐츠 수급에도 공을 들인다. 결코 베타맥스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소니의 이러한 전략도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만다.

제품이 혁신적이고 전략을 잘 세웠는데도 시장은 왜 외면했을까?  CD가 음악 이외에 데이터 저장용으로도 쓰이고 CD라이터가 PC 등에 기본적으로 내장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CD를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고 또한 음원 파일도 복사 할 수 있게 되면서 CD플레이어가 더 많이 사용되게 되었다. 그리고 플래시 메모리를 내장한 MP3플레이어가 시장에 본격적으로 나오면서부터 MD가 밀려났다. 소니는  MD가 일본 내에서는 아직도 시장에서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MP3플레이어의 위력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소비자는 휴대하기 편하고 혁신적인 MP3플레이어로 전환하고 있는데, 소니는 일본 내수 시장의 성공에 안주하고 있었다. 이처럼 내수 시장에서의 성공에 만족해 세계 시장의 흐름에 뒤처져 점차 세계 시장진출이 막히고 내수 시장이 작아지면서 위기를 겪게 되는 현상을 갈라파고스화라고 하는데 소니의 MD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여기에다 2001년 애플이 1세대 아이팟을 출시하여 소니에 결정타를 날렸다. 이 시기에 P2P 공유 서비스 냅스터가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쉽게 MP3 파일을 구하고(물론 정당하게 구입하지 않은 불법이었다) MP3플레이어에서 들었다.

소니는 MD뿐만 아니라 자체 이동식 저장 매체인 메모리스틱에서도 유사한 전략을 취해 자사의 제품에 독자적인 규격의 메모리스틱을 고집한다. 소니 PSP, 디지털카메라, DSLR 등은 시장에서 성공한 제품이 있었기 때문에 메모리스틱은 생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은 SD카드나 CF카드가 PC를 제외한 전자제품에 주로 쓰이는 이동식 저장 매체로 자리잡게 되면서 메모리스틱도 사양길로 접어든다. TV 개발에서도 소니는 기술을 중시하여 화질이 우수한 프리미엄 TV를 주로 생산한다. 그러나 소비자는 가격 대비 성능이 우수하고 디자인이 뛰어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TV를 선택했고 소니의 가전 사업은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소니의 실패 사례에서 보듯이, 시장에서 성공하는 제품은 뛰어난 기술뿐만이 아니라 그 제품이 얼마나 널리 퍼져 있고 일반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요소이다. 따라서 기술의 관점이 아닌 소비자와 소통의 관점에서 인터페이스를 바라봐야 한다. VHS의 사례처럼 소비자들이 시장에서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인터페이스를 만들어 주는 것이 성공의 요소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기기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기능을 더 많이 넣기 위해서는 이를 컨트롤 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잘 연구하고 설계하여 사용자가 보다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결국 소니의 실패 원인은 사용자와 기기 간을 연결해주는 매개체로서의 인터페이스를 간과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구글, 검색 박스로 인터넷을 지배하다

인터넷의 폭발적인 성장과 인터페이스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인터넷은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정보의 바다라는 웹은 이 시기에 다양한 정보 제공을 넘어서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한다. 클라이언트/서버에서 처리하던 일을 웹에서 진행하기도 하고, 오프라인에서만 가능하던 일을 웹을 이용해 하게 되면서 웹 자체가 오프라인에서만 가능하던 서비스를 온라인으로 바꾸어주는 새로운 인터페이스로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1994년 처음으로 문을 연 야후를 포함하여, 당시 사이트들은 대부분 정보를 제공해주는 웹 페이지 중심이었다. 이때 피자헛은 최초로 페퍼로니 피자를 인터넷을 통해서 주문할 수 있는 페이지를 개설한다. 또한 1995년 제프 베조스는 아마존 사이트를 개설해 오프라인 서점에서 판매하던 도서를 웹이라는 인터페이스를 통해 온라인에서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옥션 사이트인 이베이도 아마존과 같은 시기에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주로 벼룩시장 등에서 거래가 이루어지던 중고품이나 구하기 힘든 부품을 웹에서 거래할 수 있는 서비스가 등장한 것이다. 전자 상거래 역사의 시작이었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웹을 새로운 인터페이스로 하는 수많은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이러한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필요하게 된다. 당시에는 전화나 우편물 등을 주로 사용했고 이메일도 일부 사용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메일은 일부 회사나 학교, 연구 기관 등 자체 이메일 서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이었다.

1996년, 잭 스미스와 사비어 바티아가 최초의 온라인 무료 이메일 서비스인 핫메일 사이트를 오픈한다. 1997년이 되자 핫메일 이용자 수는 급격하게 증가하여 9백만 명에 도달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MSN 관리자인 마르코 드멜로에게 전 세계의 사용자에게 무료 웹 메일을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거나 찾으라는 미션을 부여한다. 이에 드멜로는 자체적으로 빠른 시간 안에 무료 이메일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무료 이메일 서비스를 인수하는 것이 좋겠다고 보고한다.

1997년 12월, 마침내 빌 게이츠는 핫메일을 인수하는 4억 달러 계약에 사인한다. 핫메일은 인수 후에 MSN 서비스의 하나로 통합이 된다. 당시 야후도 광고 기반의 무료 웹 메일 사용자가 증가하는 것을 인식하고, 야후 포털 서비스의 핵심이 될 것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야후는 핫메일의 경쟁 서비스였던 로켓메일을 인수하여 야후메일 서비스를 시작한다.

국내에서도 일부 사람들은 핫메일과 로켓메일에 가입하여 웹 메일 서비스를 이용했지만 메뉴와 UI가 영문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사용하는 데 불편함이 많았다. 이때 등장한 것이 한메일 서비스다. 한메일은 2000년대 초반 점유율 70퍼센트에 육박할 정도로 한국의 대표적인 웹 메일 서비스로 자리 잡는다. 이는 인터넷 포털 ‘다음’으로 성장하는 가장 중요한 동력이 된다. 기본 기능은 해외 웹 메일 서비스와 유사했지만 한글로 메뉴와 설명이 구성되어 있고 한국적인 UI를 제공해주면서 대다수의 인터넷 사용자들은 한메일 계정을 1개 이상씩 생성하게 된다. 1999년, 다음 카페 서비스가 시작하면서 이제 웹을 매개로 하는 커뮤니티가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웹이라는 인터페이스가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통해서 우리의 생활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생각해보라.

인터넷 뱅킹도 웹 인터페이스를 통해서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바꾼 사례다. 초기 은행은 통장을 가지고 지점을 방문해야만 은행 업무를 볼 수 있었다. 1996년에 코먼웰스뱅크가 최초로 인터넷 뱅킹 서비스를 시작해 웹을 통해 계좌를 조회하고 이체를 할 수 있게 된다. 인터넷 뱅킹은 직접 은행을 찾아가서 직원을 대면하고 처리하던 일의 많은 부분을 대체한 획기적인 서비스이다. 여기에 새로운 인터페이스들이 하나씩 추가된다. ATM 기기가 등장하면서 돈을 인출하기가 예전보다 쉬워졌다. 또한 폰뱅킹이 추가되면서 전화로 이체하거나 조회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이제 인터넷 뱅킹은 모바일 뱅킹으로 발전하여,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은행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후 웹이라는 인터페이스를 통해 많은 서비스가 시도되었다. 웹 메일과는 다른 실시간 커뮤니케이션 인터페이스인 인터넷 메신저가 등장하고, 웹에서 결제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페이팔과 같은 서비스도 등장한다. 1990년대 말에는 뉴스가 종이신문 대신 온라인으로 제공되기 시작한다. 웹이야말로 우리 생활의 많은 부분을 온라인으로 변화시킨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인터페이스이다.

전 세계 동영상 플랫폼의 최강자 유튜브의 다양한 요소와 인터페이스

유튜브의 창업자 스티브 첸은 초기 페이팔에서 근무했다. 직장 동료들과 조촐한 파티를 한 후에 유튜브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는다.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을 동료에게 공유하고자 했지만, 사진은 이메일로 쉽게 공유할 수 있었던 반면에 용량이 큰 동영상을 공유할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이러한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2005년 4월 15일에 최초로 동영상을 업로드하여 공유한다. 유튜브는 동영상 공유를 위해 어도비의 플래시 기술을 동영상 재생 포맷으로 선택함으로써, 브라우저나 OS에 상관없이 재생이 가능했다. 지금은 HTML5를 쓰고 플래시는 퇴출되는 기술이지만 당시에는 동영상 재생까지 가능한 뛰어난 기술이었다.

유튜브 서비스에 앞서, 국내에서는 2004년 10월에 판도라TV라는 세계 최초의 UCC(User Created Contents; 사용자가 직접 제작한 콘텐츠) 동영상 포털 서비스가 시작된다. 국내의 빠른 인터넷 속도와 디지털카메라의 급속한 보급으로 많은 사용자를 모으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유튜브의 성공에 비해, 현재 판도라TV와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했던 국내 사이트들은 사용률이 극히 저조하다. 세계 최초의 서비스를 시작했음에도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언어적인 장벽을 빼놓을 수는 없다. 한국어로 된 동영상 콘텐츠가 해외에서 크게 호응을 얻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시장만 놓고 보더라도 작은 시장이라고 볼 수는 없다. 아마도 SNS 인터페이스를 제공했는지 여부가 주요 요인이었을 것이다. 유튜브는 초기 서비스를 설계할 때부터 외부 블로그나 사이트 등 웹 페이지에 코드를 복사해서 넣으면 해당 사이트에서 쉽게 동영상을 재생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제공했다. 유튜브 동영상을 삽입한 페이지에서는 유튜브의 썸네일 로고와 로고 타이틀 등으로 유튜브에 업로드된 동영상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인텔 인사이드 마케팅처럼, 유튜브의 동영상임을 표시해주면서 유튜브의 브랜드를 널리 알릴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사용한 것이다. 판도라TV는 2006년 11월에야 외부 사이트에 공유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했지만 이때는 이미 늦었다.

유튜브 공유 인터페이스는 페이스북과 마이스페이스의 SNS경쟁에도 영향을 미쳤다. 페이스북은 유튜브 동영상 공유를 쉽게 할 수 있도록 오픈 정책을 취했다면, 마이스페이스는 초기에 유튜브 동영상 공유를 금지하고 자사의 플랫폼을 사용하는 정책을 취한다. 이에 반발하여 마이스페이스 사용자가 자유롭고 편리한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던 페이스북으로 이탈한다. 유튜브는 개인의 참여를 쉽게 만들고 공유할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웹 2.0을 대표하는 서비스로 발돋움한다. 유튜브는 초기부터 전 세계를 대상으로 동영상 서비스를 진행했으며, 접속하는 국가에 따라서 해당 국가의 동영상을 보여주는 인터페이스를 제공했다. 만일 전 세계 사용자에게 동일한 동영상만 제공했다면 영어 이외의 언어권 사용자들은 해당 국가의 동영상 플랫폼을 그대로 사용했을 것이다.

2006년 유튜브는 매일 1억 개의 동영상이 재생되었지만 뚜렷한 수익 모델이 없었고 서버와 트래픽에 드는 비용도 상당했다. 구글은 이런 유튜브를 16억 5천만 달러에 인수한다. 그 후 5년간 구글 유튜브 사업부는 천문학적인 적자를 기록했지만 구글은 동영상 데이터 수집과 HTML5의 고해상도 지원, 저작권 보호, 동영상 편집, 자동 번역 등에 지속적으로 투자한다. 그리고 유튜브에 텍스트와 동영상 광고를 삽입하기 시작하면서 유튜브는 마침내 전체 동영상 광고 시장을 장악할 정도로 성장하고 구글 광고 매출에서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제 유튜브는 엔터테인먼트의 가장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으로 자리매김했으며 나아가 기업의 핵심적인 마케팅 수단이다. 광고에서 수익이 발생하고 이런 수익을 동영상을 업로드하는 유튜버에게 배분해주어, 유튜버라는 새로운 직업이 생겨났다. 유튜버가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광고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일부 받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자, 동영상과 실시간 방송, 유튜브를 보는 시청자까지 빠르게 증가한다. 국내에서도 유튜브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 1위이다. 초기부터 유튜브는 아마존, 넷플릭스처럼 사용자의 취향을 분석하여 유사한 동영상을 추천하며 많은 동영상을 소비하도록 유도한다.

유튜브의 다양한 요소와 인터페이스가 현재 전 세계 동영상 플랫폼을 지배하는 원동력이다. 웹에서 다른 획기적인 서비스가 등장하지 않는 한 소비자가 직접 제작하고 공유하는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는 오랜 시간 1위 자리를 유지할 것이다.

손가락이 지배하는 터치 인터페이스 전성시대

손가락이 가져다준 혁신

2007년, LG전자는 명품 브랜드 프라다와 함께 세계 최초의 풀 터치 컬러 스크린을 지원하는 ‘프라다폰’을 출시한다. 뛰어난 디자인으로 어느 정도 명성을 떨쳤지만 감압식 터치스크린의 단점을 개선하지 못했고 이러한 불편한 인터페이스로 인해 야기된 안 좋은 사용자 경험은 시장에서 성공하는데 장애물이 된다. 경쟁사인 삼성전자 역시 2008년, 애니콜 햅틱이라는 브랜드로 프라다폰과 동일한 감압식 터치스크린을 내장하고, 정교한 진동을 지원하는 햅틱 인터페이스를 추가로 지원하는 폰을 시장에 출시한다. 프라다폰과 햅틱폰은 모두 국내에서 어느 정도 인기를 끌지만, 2008년 후반 정전식 터치스크린의 뛰어난 반응성과 편리함으로 무장한 아이폰 3GS가 출시되면서, 감압식 터치스크린을 도입한 휴대폰 기기들은 시장에서 사라진다.

  2005년 애플은 비밀리에 제스처 기반의 멀티 터치 전문 기업 핑거웍스와 그 회사의 특허를 인수한다.  이후 애플은 자사의 이름으로 멀티 터치와 관련된 특허를 등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기술을 기반으로 애플은 정전식 멀티 터치를 지원하는 아이폰을 개발하여 출시한다. 아이폰의 성공은 디자인 이외에도 정전식 멀티 터치를 포함한 인터페이스 혁신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애플은 멀티 터치 인터페이스 구현을 통해서 제스처 인식 기능을 아이폰에 구현한다. 손가락을 옆으로 쓸면 이전 또는 다음 사진이 나타난다든가, 화면을 터치하여 밑으로 내리면 스크롤이 되고, 화면에 손가락 두 개를 벌리거나 오므리면 확대/축소가 되는 기능이다. 이러한 기능은 기존의 감압식 터치스크린이나 나아가서는 마우스의 포인터 입력 방식으로는 불가능한 전혀 새로운 방식의 인터페이스 혁신이다.

또한 애플이 아이폰 출시 시에 중요하게 생각했던 인터페이스는 감압식 터치에서 불편했던 쿼티 키보드 입력방식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애플은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여 소프트 키보드 입력 인터페이스를 고안한다. 키 터치 시에 큰 팝업으로 해당 글자를 보여줌으로써 입력 즉시 확인할 수 있는 인터렉션을 추가하여 사용자 경험을 개선한다. 또한 상황에 따라서 다른 종류의 키보드를 표시해 줌으로써 제한된 화면에서 최대한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여러 타입의 키보드 레이아웃, 브라우저 주소를 입력할 때는 필요한 키가 표시된 레이아웃을 표시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인터페이스는 오랜 시간 노력과 섬세한 기획에서 나온 결과로 아이폰의 등장 이전에는 특별히 반영되지 않은 요소였다.

아이폰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정전식 터치 인터페이스 이후 다양한 기기로 확대되면서 손가락은 가장 각광받는 입력도구가 되었다. 이후 정교한 입력을 위해서 정전식 방식으로 압력을 동시에 감지할 수 있는 전용 펜이 등장하기도 한다. 터치 인터페이스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입력 인터페이스에 영향을 주었으며, 버튼 중심의 인터페이스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애플의 멀티 터치 인터페이스 기술은 사람의 제스처가 직관적으로 현실적인 경험을 반영할 수 있음을 보여주며 터치 기술의 핵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될 인터페이스 전쟁

이커머스 시장의 무한 팽창 그리고 라스트 마일

이마케터 닷컴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이커머스 시장은 2020년에 4조 58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한다. 국내에서도 2018년에 100조 원을 돌파했으며, 향후 매년 20퍼센트 이상씩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글과 같은 거대 인터넷 기업도 검색을 통해서 아마존과 이커머스 경쟁을 하려고 하지만 현재까지는 효과가 미미한 편이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의 경우 네이버와 쿠팡이 그 중심에 있는데, 네이버는 스마트 스토어를 중심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확장하고, 쿠팡은 물류 시스템과 운송 시스템을 구축하여 새로운 방식의 서비스를 시도하고 있다.

오픈 마켓 비즈니스 모델은 전통적으로 상품 판매자와 구매자의 거래를 중계해주고 수수료 매출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이에 비해서 네이버는 자체적인 쇼핑몰과는 별도로 상품의 가격을 비교 검색해주는 서비스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판매자들은 네이버의 상품 검색 결과에 노출시키기 위해서 네이버 광고와 네이버 상품검색 DB 연동에 많은 노력과 비용을 들이고 있다.

네이버는 스마트 스토어를 업데이트하여 출시하면서 다양한 마케팅 시도와 더불어 다양한 방법으로  판매자를 유인한다. 스마트 스토어를 개설한 판매자에게서 별도의 입점 수수료를 받지 않고 검색에 노출될 수 있도록 해주거나, 네이버 페이 서비스로 결제하고 각종 포인트를 적립할 수 있는 대규모 마케팅 캠페인을 실시한다. 또한 다양한 분야별 쇼핑 섹션을 구성하여 직접 경쟁에 나설 수 있도록 하기도 하고, 오프라인 매장의 상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해주는 O2O 개념의 서비스도 제공하며, 쇼핑몰 창업을 도와주는 체계적인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기존의 이커머스 기업들은 이제 검색 시장을 지배하는 네이버라는 강력한 경쟁자를 맞이한 셈이다.

국내 1위 이커머스 기업 쿠팡은 로켓 배송으로 유명하다. 쿠팡의 로켓 배송은 라스트 마일(이커머스에서 소비자와 만나는 최종 단계를 말한다)을 혁신하면서 시장에서 큰 호응을 얻어냈다. 라스트 마일은 배송 단계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구간으로 꼽히며, 배달 사고, 교통체증, 배송 차량의 주차 문제, 분실 및 도난, 파손 등 다양한 문제로 인해서 비용이 늘어난다. 기존의 쇼핑몰 업체는 물류 전문 기업에 배송을 맡겨왔지만 업체 간 가격 경쟁으로 수익이 낮아지면서 자체 물류망을 구축하게 된다.

쿠팡의 로켓 배송은 빠른 배송 시간뿐만 아니라, 자체 직원을 통해서 고객의 만족이 높은 편이다. 쿠팡은 이러한 라스트 마일 확보를 위해서 자금을 투입했으며 매출이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 누적 적자가 1조 8천억 원에 이르고 있다. 쿠팡은 성장과 함께 늘어난 물량에 대응하기 위해서 쿠팡 플렉스라는 새로운 라스트 마일 서비스를 도입한다. 유휴 차량이나 시간이 있는 일반인이 쿠팡 플렉스에 등록하고 물량을 배정받아 일정한 수수료를 받아 가는 모델이다. 아직 시행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보완할 점이 있지만 새로운 시도인 만큼 이커머스 기업들이 주시하고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라스트 마일 배송 서비스들이 등장하여 시도 중이다. 전 세계 이커머스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아마존은 프라임 나우 서비스를 위해서 드론이나 로봇 등을 사용하거나 쿠팡 플렉스와 유사한 크라우드 소싱을 사용하기도 한다. 아마존은 이러한 라스트 마일 전쟁에서 앞서가기 위해 아마존 키라는 새로운 서비스를 발표하였다. 아마존 키의 핵심은 배송 시 문 앞에 물건을 놓아두었을 때 분실 사고가 빈번한 점을 개선하기 위해서 아마존 프라임 회원의 댁내까지 배달해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클라우드 캠이라는 보안카메라와 스마트 도어락이 필요하다.

작동 방식은 비교적 간단하다. 문 앞까지 물건이 배송되면, 배송 직원은 고객에게 배달이 왔음을 알려주고 고객이 일회용 비밀번호를 전송해주면 문을 열고 배달 물건을 집 안에 놓고 문을 잠그고 가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크라우드 캠으로 녹화되고 실시간으로 확인도 가능하다. 이러한 서비스는 개인 공간을 외부인에게 공개해야 한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으나 라스트 마일을 위한 혁신적인 시도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본 도서요약본은 원본 도서의 주요 내용을 5% 정도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원본 도서에는 나머지 95%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보다 많은 정보와 내용은 원본 도서를 참조하시기 바라며, 본 도서요약본이 좋은 책을 고르는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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