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의 스승 장량

더봄 / 2021년 3월 / 371쪽 / 20,000원

제왕의 스승 장량

제왕의 스승 장량

위리 지음

저자 소개

본명은 바오광리로, 중국 안후이성 후이난시 출신 여성 작가다. 상하이 푸단대학에서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작가 겸 위안둥출판사 편집자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정증수호』 등이 있다.

책소개

이 책은 한 고조 유방을 도와 천하를 쟁취한 위대한 책사 장량의 일대기이다. 저자는 제왕의 스승이자 책략가로 불후의 공을 세운 장량의 생애를 ‘복수자의 삶’에서 ‘제왕의 스승’으로 성장해가는 변화 과정을 통해 생동감 있게 서술한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나타난 장량의 삶과 지혜를 통해 제왕학, 경영학, 처세학, 참모학 등의 정수를 짚어내고, 나아가 더욱 심원한 삶의 의미를 탐색하게 한다.

요약본 본문

복수

승상부의 공자(公子)

장량은 한(韓)나라 승상부에서 태어났는데, 어려서는 ‘희량’으로 불렸다. 장량의 집안은 가문의 바탕이 중후했고, 모친도 장량을 위해 적지 않은 훈장을 초빙하여 공부를 시켰다. 하지만 장량의 부친이 세상을 떠난 지 20년 만에 장량이 추구하던 한나라 재상의 꿈은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그 무렵 진나라는 일련의 개혁 정책을 시행하여 이미 천하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강국으로 성장했고, 가장 먼저 상대적으로 약소했던 한나라를 공격하여 멸망시켰고, 한나라 땅은 이때부터 진나라의 영천군이 되었다.

동방의 은자

『사기』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동방에서 창해군을 만나다.’ 장량은 동쪽으로 가서 은자인 창해군을 만났다고 한다. 그곳에서 장량은 12년을 보냈고, 그의 나이는 서른으로 접어들었다. 이 기간 동안 창해군은 장량에게 마음을 쓰면서 자신의 문객들을 몰래 움직여 적당한 자객을 찾았다. 진시황을 암살하려는 장량의 결심에 도움을 주려는 호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창해군이 장량에게 힘센 역사(力士) 한 사람을 추천했고, 그는 장량이 자신에게 진시황 암살 임무를 맡기고 싶다고 했을 때 바로 승낙했다. 장량은 때가 오기를 기다렸고, 드디어 진시황이 3번째 순행에 나선다는 소문이 돌았다. 장량은 창해군의 건의에 따라 구체적인 암살 과정과 도주 노선을 세밀하게 마련했다. 하지만 결국 장량과 역사의 박랑사 저격 사건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리고 진시황이 자객 체포령을 내렸지만, 당초 장량의 계획이 주도면밀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신속하게 황하 연안 샛길을 따라 몸을 피할 수 있었다.

천애

병서 이야기

하비에 몸을 숨기다: 진나라의 체포를 피하기 위해 장량은 황하 연안을 따라 동쪽으로 달아났고, 마지막에는 하남 땅에서 강소 땅으로 방향을 바꿔 하비라는 곳에 몸을 숨겼다. 장량은 진나라 군사의 수색과 체포를 피하기 위해 본래 성과 이름을 숨겼는데, 이때부터 진ㆍ한(秦ㆍ漢) 교체기를 풍미한 장량(張良)이란 이름이 정해졌고, 이 이름에 장량 인생 중후반기의 영광과 적막이 깃들게 되었다.

황석공을 위해 신발을 주워주다: 장량이 하비에 은거하고 나서 순식간에 몇 달이 흘렀다. 외부에서 철저한 수색 소문이 전해왔으므로 장량은 인적이 드물어지면 혼자 집 밖으로 나가 인근 들판을 거닐 뿐이었는데, 그가 늘 가는 곳은 기수라는 강이었다. 어느 날 저녁 장량은 또 기수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장량이 다리 위를 걸으며 깊은 생각에 빠져든 그때 거친 베옷 잠방이를 입은 한 노인이 맞은편에서 그를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장량의 면전을 지나치려는 순간 그 노인은 어찌된 영문인지 갑자기 신발을 다리 아래로 떨어뜨리며 장량을 보고 말했다. “젊은이! 얼른 내려가서 내 신발 좀 주워 와!” 장량은 불쾌한 기분이 들어 자리를 뜨려 하다가 상대방이 노인임을 깨닫고는 화를 누르고 다리 아래로 내려가서 신발을 주워 올라왔다. 그러자 그 노인이 감사 인사도 하지 않고, 다리를 앞으로 내밀며 “신발을 신겨줘!”라고 말했다. 장량은 좋은 일을 잘 마무리하자는 생각에 무릎을 꿇고 노인에게 신발을 신겼다. 노인은 신발을 신고 나서 고개를 끄덕이며 껄껄 웃다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 며칠 후, 노인은 죽간 한 권을 꺼내 장량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이 책을 숙독하면 제왕의 스승이 될 수 있다. 10년 후에 너는 하산하여 제왕을 보좌할 것이다. 또 13년 후에 네가 제북 땅을 지날 때 나를 다시 만날 것이다. 그곳 곡성 산 아래에 놓인 황석(黃石) 한 덩어리가 바로 나다.” 노인은 말을 마치고 장량만 다리 위에 남겨둔 채 몸을 돌려 바람처럼 사라졌다. 장량은 그 책이『태공병법』임을 알아보았다.

『태공병법』을 깊이 연구하다: 장량은 거처로 돌아와 죽간 책의 내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황석노인이 건네준 것은 병법 책 한 권이 아니라 드넓은 도량과 인내심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장량은 지모와 책략을 갖춘 큰 인물이 될 수 있었다. 장량의 사상은 확실히 이때부터 수준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장량은 세밀한 분석과 되새김을 통해 이전의 협객들이 기실 혈기만 믿고 만용을 부리는 사람에 불과했고, 그렇게 해서는 근본적으로 한나라 부흥의 소망을 실현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뿐만 아니라 장량은『태공병법』을 읽은 후 천하만사에 대한 이해도 더욱 철저해져서, 천하를 얻어서 잘 다스리려면 반드시 “요점과 근본을 잡아야 하고”, 이 ‘요점’과 ‘근본’이 바로 ‘청정하고 텅 빈 마음’(淸虛)과 ‘낮고도 부드러운 태도’(卑弱)임을 깨달았다. 참고로 이러한 것은 모두 도가에서 중시하는 사상이지만 “요점과 근본을 잡고”, “청정하고 텅 빈 마음과 낮고도 부드러운 태도”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유가의 인의와 예학도 융통성 있게 운용하여 함께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했다.

하비에서 협객으로 살다: 장량은 하비에서 ‘협객 활동’을 가장 중요한 일로 삼았다. 구체적으로 협객 활동을 어떻게 했는지는 사마천이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았다. 그러나 앞뒤 기록을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활동을 한 듯하다. 첫째, 마음에 맞는 벗을 널리 사귀었다. 둘째, 사람들의 불공평함을 해소해줬다. 셋째, 뛰어난 언변을 과시했다. 넷째, 돈을 잘 썼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장량이 늘 의협심을 발휘하며 재산을 희사하는 협객이라는 사실을 알고 모두 그와 사귀기를 원했고, 장량의 주위에는 점점 큰일을 추진할 만한 인재와 역량이 쌓이게 되었다.

풍운

유방과 교유하다

진시황이 병들어 일어나지 못하다: 기원전 120년(진시황 31년), 황제는 죽음의 순행을 시작했다. 이번 순행에서 진시황은 주로 신선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천하를 거의 한 바퀴 돌았는데도 진시황은 신선을 만나지 못했고 무슨 영단이나 불사약도 구하지 못했다. 오히려 도중에 피로가 쌓여 병이 위중해졌다. 병세가 갈수록 위중해짐에 따라 진시황은 자신의 생명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감지하고 유조를 내려 태자 부소에게 황위를 물려주려 했다. 그러나 조서가 출발하기도 전에 진시황은 목숨을 거뒀다.

장량이 봉기하다: 장량이 은인자중하며 2년을 더 기다리자 천하가 분할되었다. 진승이라는 젊은이가 대택향에서 ‘왕후장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겠는가?’라며 고함을 치자 전국에서 진나라에 반대하는 봉기가 폭풍우처럼 일어나 대지를 휩쓸었다. 그 시절 하비에서 멀지 않은 유 땅에 진가(秦嘉)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진승의 부하로 군사 한 부대를 이끌고 그곳에 주둔했다. 진가는 전국시대 초나라 왕실의 후예인 경구를 초왕으로 옹립한 후 초나라 깃발을 걸고 진나라에 항거하며 군사를 모으고 군마를 사들였다. 장량은 자신이 모집한 의군을 인솔하고 경구에게 투신하기로 결정했다.

유방을 만나다: 장량은 경구에게 투신하려 가는 도중에 뜻밖에도 유방을 만났다. 유방은 자신의 군대를 거느리고 하비성을 치러 가는 길에서 장량을 만났는데, 유방이 장량에게 말했다. “공이 이미 진나라에 항거하는 군사를 일으켰다면 어찌 나와 함께 하비를 치러 가지 않으시오?” 장량은 처음 전장으로 나가는 길에 후덕한 모습의 유방을 보고 바로 대답했다. “좋습니다. 저는 이제부터 패공을 따르며 저의 군대를 단련하겠습니다.” 이에 장량과 유방은 처음으로 친밀한 교류를 하게 되었다.

장량은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유방을 따라 하비로 진격했다. 의군들은 사기도 높고 작전도 뛰어나 단번에 하비성을 함락시켰다. 장량은 귀족 가문 출신이고, 유방은 평민 출신이라 겉으로 보기에는 신분이 매우 달랐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두 사람은 단번에 마음이 맞아 마치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난 것 같았다. 당시에 유방은 장량이 서생티가 강하고 생긴 모습도 다소 수척한 것을 보고는 적진을 치는 전선에 배치하지 않고 말을 관리하는 구장에 임명했다. 하지만 장량은 조금도 원망하지 않고 유방의 임명을 선선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즉시 군마를 모으고 조련하기 시작하여 군대의 수요에 부응했다.

장량은 전투가 멈춘 틈틈이 유방에게『태공병법』을 이야기했는데, 군대를 다스리는 방법에서 공수를 주고받는 대책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깨우친 내용을 들려줬다. 그런데 뜻밖에도 유방의 이해 능력이 매우 뛰어나서『태공병법』에 깊은 흥미를 보였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이해하지 못한 내용도 쉽게 알아들으며 훌륭한 병법이라고 연이어 칭찬했다. 유방의 입장에서는 군마를 관리하는 일개 구장의 학식이 보통 사람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가 제시하는 계책은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갈수록 장량을 존중하며 늘 자신의 곁에 두고 지모와 계책을 발휘하게 했다.

쟁패

유방과 항우의 쟁투

광무산 대치: 항우는 스스로 서초패왕이라 일컬었지만 초한전쟁에 참여한 이후 아주 곤란한 일을 당했다. 이미 몇 달 동안 유방은 성고를 점령했고, 항우는 형양을 점령하여 쌍방은 황하 강변 광무에서대치했다. 유방이 군대를 이끌고 광무산으로 들어간 것은 장량의 책략이었다. 광무는 형양과 성고 사이의 황하 남쪽 연안에 위치한 작은 구릉지대여서 통칭 광무산이라고 한다. 광무산 동쪽은 몽택과 이어져 있고, 서쪽은 사수와 연결되어 있으며, 그 중간은 끊어진 협곡인데, 이 협곡이 산을 둘로 깎아 세워 마치 봉우리처럼 보이게 한다. 초나라와 한나라 군대는 이 협곡을 사이에 두고 강경하게 대치하며 한 발짝도 양보하려 하지 않았는데, 초나라의 역량은 여기서부터 급속하게 쇠약해지기 시작했다.

항우는 광무산 전선을 제외하고도 형양성 안쪽의 사병과 백성에게 식량 보급도 해야 했는데, 항우는 이에 대한 부담을 느꼈을 뿐 아니라, 불행하게도 당시 천하의 식량 창고 오창은 유방의 통제 아래에 있었다. 유방은 장량의 건의로 항우와 함께 고양이가 쥐를 잡는 놀이를 했다. 우선 성고는 본래 항우가 점령했지만, 유방은 팽월에게 황하를 건너오도록 명령을 내려 초나라 성 동아를 공격하게 했다. 항우는 이 사실을 알고 자신이 직접 군대를 거느리고 팽월을 공격하러 갔다. 한나라는 이 기회에 군사를 움직여 항우 배후의 식량과 치중(양식과 군용물자를 실은 수레)을 모두 불태웠다. 그런 후에 유방은 항우가 서둘러 팽월을 추격하기를 기다려 즉시 군대를 이끌고 황하를 건너 성고를 점령했다.

항우는 전투를 마치고 회군했을 때 팽월이 또 미꾸라지처럼 돌아와 자신의 군량 보급로를 끊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시에 팽월은 또 초나라 후방으로 잠입하여 기만전술을 쓰며 끊임없이 초나라의 군량 보급로에서 소동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항우는 마음이 매우 어지러워져서 유방을 버려두고 다시 팽월과 싸우러 돌아갔다. 그러나 항우가 떠나자 유방은 다시 그 기회를 노리고 불의의 반격을 가했고, 이후 계속 항우와 성을 뺏고 뺏기는 싸움을 했다. 진격하기도 하고 후퇴하기도 하는 가운데 팽월과 유방은 암묵적으로 매우 긴밀한 연대를 과시했다. 항우는 용맹했지만 온종일 동분서주하느라 실로 힘든 나날을 보내면서 결국 한나라 군대에 대처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항우는 또 다른 한 가지 일 때문에 울분을 떨치지 못했다. 당시에 그는 팽월을 공격하러 가기 전에 성을 수비하는 대사마 조구에게 일렀다. “조 장군! 성고를 단단히 지켜야 하오.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경거망동하지 마시오. 모든 일은 내가 다시 돌아온 후에 처리하도록 하시오.” 그러나 한나라 군사들의 도발 솜씨가 더욱 수준이 높았다. 항우가 떠나자마자 조구는 성 밖에서 들려오는 욕설을 참지 못하고, 그들과 싸우러 달려 나갔다. 처음에는 조구가 승리하는 듯했고, 한나라 군대를 사수 강변까지 추격했다. 사수는 남에서 북으로 흘러 성고와 형양 사이를 통과한 후 마지막에 황하로 유입된다.

초나라 군사들이 강을 중간쯤 건넜을 때 한나라 군사들이 대비하고 있다가 몸을 돌려 달려들어 초나라 군사들을 대파했다. 조구는 또 다른 초나라 장수 사마흔과 그 광경을 보았다. 그는 패배를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칼을 뽑아 목을 찌르고 자결했다. 한나라는 초나라를 대파한 후 다시 성고를 점령했다. 이에 유방은 바로 성고를 거점으로 삼고 그곳에 주둔했으며 오창을 통해 식량을 공급했다. 이후 유방은 다시 형양을 단단히 포위하여 초나라 수비대장 종리매를 곤경에 빠뜨렸다.

이 무렵 항우는 이미 팽월이 점령한 10여 개 성을 함락하고 서둘러 서쪽으로 돌아와 형양의 포위를 풀고 종리매를 구원하려 했다. 항우는 군사를 이끌고 광무로 달려가 유방과 묵묵히 대치했다. 하지만 항우 입장에서 이런 묵묵한 대치는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는 일과 같았다. 왜냐하면 항우에게는 몇 가지 걱정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팽월이 여전히 항우의 후방에서 소란을 피우며 그의 군량 보급로 끊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었다. 둘째, 용저가 피살된 후 항우는 무섭을 한신에게 보내 유세하게 했으나 아직 소식이 없었다. 셋째, 한신이 제나라 왕에 봉해달라고 자청한 일이 성사되었으므로, 한신이 만약 남하하여 유방과 연합군을 구성하면 항우는 상당히 어려운 지경에 빠지고 만다. 이 때문에 항우는 가능하면 빨리 유방과 마지막 결전을 치르고 싶어 했다.

항우가 유방의 부친을 삶아 죽이려 하다: 항우는 이 무렵 특이한 계책을 시행했다. 그 계책은 범증이 생각해낸 것이다. 범증이 항우를 깨우치며 말했다. “우리가 팽성에서 대승을 거둘 때 유방의 부친 태공과 그의 아내 여치를 모두 포로로 잡지 않았습니까? 지금 두 사람에게서 승리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 항우는 범증의 말을 듣자마자 알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항우는 명령을 내려 유방의 가족을 데려오라고 했다. 유방 부자를 전선에서 만나게 할 참이었다. 그런 후 항우는 초나라 진영 앞에 큰 칼과 도마를 설치하고 유 태공을 그 위에 묶어놓은 후 유방을 향해 선언했다.

“유방 네 이놈! 어서 나와서 결전을 치르자. 그렇지 않으면 태공을 삶아 죽이겠다.” 유방은 보고를 들은 후 괴로웠다. 그는 즉시 장량을 찾았다. “항우의 포악한 행위는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소. 어서 방법을 생각해 보시오.” 장량이 말했다. “이것은 분명히 항우의 음모입니다. 혈연의 정과 관계된 일이지만 조심스럽게 처리하지 않으면 전군의 안전에까지 위험이 미칩니다.” 유방은 기다릴 수 없다는 듯이 다그쳤다. “이번에는 목숨을 걸고 항우와 결사전을 치르겠소.” 장량은 유방을 제지했다. “전하! 절대 안 됩니다. 그건 항우의 계략에 말려드는 행위입니다. 그렇게 하시면 태공을 구출할 수도 없고 전하의 목숨도 보장할 수 없게 됩니다. 전하께서는 항우의 만행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기만 하십시오. 지금 전하께서 항우를 두려워하지 않을수록 항우가 오히려 전하를 두려워하게 됩니다. 반대로 전하께서 항우를 두려워하면 할수록 항우는 전하를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그자가 전하를 두려워할수록 태공을 쉽게 살해하지 못하고, 그자가 전하를 두려워하지 않을수록 마음대로 태공을 살해할 것입니다.”

장량이 이렇게 말하자 유방도 잠시 생각하다가 마음을 다잡고 옛날 풍읍에서 불량배로 살던 때의 배짱으로 진영 앞으로 달려갔다. 그는 짐짓 아무 상관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항우에게 말했다. “지난날 나는 네놈과 함께 회왕의 면전에서 명령을 받들고 결의형제를 맺었다. 그러니 내 아버지는 네놈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네놈이 정말 우리 아버지를 삶아 죽이면 내게 그 국물 한 사발이라도 나눠다오. 내가 맛있게 들이키겠다.” 항우는 득의양양하게 이제 유방을 잡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다가 이처럼 깡패 같은 대답을 들었다. 항우는 기가 막혀 어쩔 줄 모르다가 바로 태공을 삶아죽이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때 항우 곁에 있던 항백이 즉시 그를 타일렀다. “태공을 죽이는 일은 매우 쉽지만 우리에게 유리하다고 볼 수 없소. 어쩌면 불필요한 질책을 초래할 수도 있소. 천하를 다루는 사람은 흔히 자기 혈친도 돌아보지 않는 법이오. 그를 죽여도 우리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소. 하물며 남의 부모를 죽이면 뜻밖의 재난을 야기할 수도 있소.” 항우는 잠시 생각하다가 태공을 삶아 죽이는 것은 자신의 영웅 형상과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느꼈다. 항우는 어쩔 수 없이 태공을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국가

한신의 병권을 교묘하게 회수하다

유방이 한신을 불안하게 여기다: 한신은 해하에서 ‘십면매복’ 작전으로 기발한 전투를 펼쳐 항우를 성공적으로 포위해 죽였다. 한신은 해하 일전에서 빛나는 전공을 세웠기에 서둘러 포로를 접수하고, 물자를 하나하나 점검하고, 전리품을 상부에 바친 후 유방에게 자신은 군사를 이끌고 정도(定陶)로 돌아가겠다고 요청할 심산이었다. 유방은 마침내 천하통일이라는 대업을 완수했으므로 그 자신도 더 없이 기뻐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기실 유방은 한신이 막강한 병력을 거느리고 있고, 그의 병력이 천하무적이므로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유방은 한신의 정도 회군을 허락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어느 날 유방은 장량을 곁으로 불러서 근심을 토로했다. “한신을 제거하지 않으면 나는 하루도 편히 잘 수 없을 것이오. 자방! 내게 만전의 계책 한 가지를 생각해줄 수 없겠소?”

장량은 유방의 말을 듣고 경악했다. 자신이 평소에 반신반의해온 예감이 너무나 정확하게 적중했던 것이다. 장량은 잠시 생각한 후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전하께서 한신을 죽인다 해도 아무 이익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한신을 죽이면 다른 몇몇 제후왕들도 불안해하다가 반란을 일으키려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천하가 어찌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이번 해하전투에서 ‘십면매복’ 작전은 전부 한신의 병력에 의지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장악한 병권이 너무 강력한 것도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적당한 기회에 그의 병권을 회수하는 것이 가장 좋겠습니다.”

그러자 유방이 말했다. “한신의 병권을 회수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오.” 이에 장량은 이렇게 대답했다. “전하! 소수무에서 있었던 일을 아직 기억하시겠지요? 전하와 하후영 두 분이 한신의 군영으로 가서 그의 병부를 박탈했습니다. 어찌 그 일을 본받지 않으십니까?” 이전에 분명 유방은 하후영 한 사람만 대동한 채 소수무로 가서 한신의 병부를 박탈한 적이 있었다. 유방은 생각을 가다듬고 다시 말했다. “내가 정도로 가서 한신을 만날 수도 있지만, 정도는 소수무가 아니고, 한신도 지난날 한신이 아니오. 이번에 정도로 가려면 단단히 준비를 해야 할 것이오.”

이에 장량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전하께서 대군을 이끌고 가시면 당연히 한신이 의심할 것입니다. 그러나 소수의 병력만 데리고 가시면 한신에게 이길 수 없으므로 차라리 데리고 가지 않는 편이 더 낫습니다. 하지만 한신이 예상하지 못하는 방법을 써야지요.” 그런데 어떤 구실을 대고 한신의 군영으로 갈 수 있겠는가? 유방과 장량이 주저하고 있을 때 밖에서 어떤 군사가 보고를 올렸다. “각지의 제후들이 모두 한왕 전하께 귀의했지만 노현의 제후만 여전히 항우를 위해 노현을 고수하며 항복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때 장량은 영감이 떠오른 듯 말했다. “제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노현은 작은 성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나 노현은 제나라와 아주 가깝습니다. 전하께서는 대군을 이끌고 노공을 공격하는 척하십시오. 한신은 전하께서 군사를 이끌고 오신다는 소식을 들어도 틀림없이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노현을 평정한 후에는 중원으로 회군하는 길이 정도를 거치므로, 그 참에 정도로 들어가 한신의 제나라 군대를 위로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때를 보아 한신의 병권을 회수하십시오.”

유방은 아주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고 바로 동의했다. 이에 유방은 즉시 한나라 군대 20만 대군을 이끌고 노현을 공격하기 위해 북상했다. 노공은 자신이 한나라 군대의 적수가 못 된다는 것을 알고 성문을 활짝 열고 머리를 조아리며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유방은 노공을 여전히 노현의 현령으로 임명한 후, 항우를 노현 서북쪽 곡성에 안장하고 원래 계획에 따라 중원으로 돌아가는 길로 들어섰다.

장량이 한신에게 권하다: 유방은 정도에 당도하여 한신과 철저하게 대결할 준비를 했다. 장량도 궁리를 거듭했다. 장량이 유방에게 말했다. “전하께서는 정도에 당도하신 후 몇 단계로 나눠 계책을 시행해야 합니다. 먼저 한신의 병권을 회수하십시오. 그런 후 다시 한신에게 초나라를 관리할 사람이 없는데, 한신이 초나라 풍속을 잘 알기 때문에 제나라 왕에서 초나라 왕으로 봉토를 바꾼다고 하십시오. 이 조치는 한신을 제나라 땅에서 떠나게 하여 북방의 걱정을 해소하는 방안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신으로 하여금 그의 본적지인 초나라 땅으로 금의환향하게 하는 방안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면 한신은 영광스럽게 고향으로 돌아가서 조상을 빛낼 수 있으니 일거양득의 조치가 아니겠습니까?”

유방은 너무나 기뻐서 웃으며 말했다. “훌륭한 계책이오.” 한신을 만난 후 유방은 과연 전혀 거리낌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내가 진나라에 항거하여 군사를 일으킨 이래로 해마다 전투를 치르느라 백성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며 사해가 다시 통일되어 태평한 시대가 오기를 학수고대했소. 이에 나는 이제 군대를 해산하고 전쟁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소. 이 때문에 장군께서는 이제 병권을 반납하기 바라오. 그렇게 해야 모두들 안심하고 서로 편안한 나날을 보낼 수 있울 것이오.”

한신은 유방의 몇 마디 말을 들어보고는 유방이 여전히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즉각 알아차렸다. 그래서 한신은 전혀 반항하지 않고 즉시 성의를 다해 대답했다. “항우를 격파한 후에 저도 줄곧 언제 병권을 돌려드릴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전하께서 직접 정도에 오셨으므로 제가 자진해서 병권을 돌려드려야 했습니다. 저의 느린 행동을 용서해주십시오.” 한신은 말을 마치고 인수와 병부를 가져오게 하여 자신이 직접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받들어 올렸다. 한신이 이처럼 공손하게 명령을 받들자 유방은 몰인정하게 다음 조치를 계속 시행하는 것이 좀 겸연쩍게 느껴졌다. 이에 유방은 하룻밤 편히 쉬기로 결정하고, 다음 일은 내일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하지만 한신은 유방이 또 앞으로 무슨 조치를 취할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먼저 유방의 잠자리를 잘 보살펴준 후 장량을 찾아와서 물었다. “선생께 가르침을 청하오. 전하께서 저를 불안하게 여기시는 듯하오.” 장량이 말했다. “기실 전하께서는 특별히 장군을 불안하게 여기시지는 않소. 전하께서 가장 마음을 놓지 못하시는 곳은 바로 북방이오.” 한신이 말했다. “그럼 내가 또 무슨 일을 해야 하오?” 장량은 잠시 생각하다가 간단하게 말했다. “지금 천하는 이미 평정되었고, 한왕 전하의 공이 으뜸이오. 대장군께서 다른 제후들과 함께 연명으로 글을 올려 전하를 황제로 모셔야 한다고 건의해 주시오.”

한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마땅히 그리 해야지요. 또 다른 일은……?” “내일 전하께서 대장군의 봉토를 바꿔서 초왕으로 봉하실 것이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시오. 화를 내며 대처하다가 소탐대실의 결과를 빚어서는 안 되오. 일이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전하의 시기심을 부추기지 말고, 순리에 따르며 오해를 없애야 하오.” 한신은 장량의 말을 듣고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으나 다시 생각해보니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그래서 한신은 장량에게 말했다. “내 마땅히 명심하리다.”

다음날 유방은 한신에게 말했다. “지금 초나라 땅은 평정되었지만 항우가 그곳에 오래 머물렀으므로 아직 민심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소. 나는 능력 있는 사람을 그곳으로 보내 백성을 편안하게 위무할 생각이오. 장군께서는 초나라 땅에서 태어났으니 초나라 풍속에도 밝으실 것이오. 나는 장군의 봉토를 바꿔 초나라 왕에 봉하고 하비에 도읍을 정하게 할 작정이오. 장군의 생각은 어떠하오?” 한신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바로 좋다고 답변을 했다. 유방은 한신의 선선한 동의가 뜻밖이었지만, 한신이 흔쾌히 동의하자 자신의 마음을 누르던 무거운 바위가 땅바닥으로 훌쩍 떨어지는 것 같았다.

도읍을 결정한 사람

군신들이 남궁에서 도읍 결정에 대해 논의하다: 한나라 5년(BC 202)이 되었다. 이제 정도는 천하 사람들이 주목하는 중심 지역이 되었다. 그리고 한신은 장량의 건의에 따라 팽월ㆍ영포 등과 함께 글을 써서 유방에게 황제의 보위에 오르기를 요청했다. 유방은 좀 부끄러워하는 체하다가 얼마 견지하지 못하고 2월 초사흘 황제 즉위식을 거행했다. 사람들은 그를 이제 ‘황상폐하’라 부르기 시작했다. 유방 가족들의 호칭도 바뀌었다. 유방의 아내 여치는 황후로, 아들 유영은 황태자로 개칭되었다. 즉위식을 거행했으므로 이제 도읍을 정하는 것이 급선무로 대두했고, 결국 우여곡절 끝에 관중으로 결정되었다.

유후를 자청하다

1차 분봉에 장량이 포함되지 않다: 유방이 관중으로 들어간 후 공신 분봉 문제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첨예한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이에 유방은 먼저 오랫동안 유방을 수행한 소하, 조참, 주발, 번쾌, 하후영, 관영에게 봉토를 수여했다. 여후의 오빠인 여택과 여석지도 제후가 되었다. 따져보면 이들은 모두 공훈이 혁혁한 위대한 공신이어서 이들을 제후로 분봉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1차 분봉에 장량이 포함되지 않았다. 분봉 제후 명단을 자세히 살펴보면 분봉된 사람들 대부분이 무장임을 발견할 수 있다. 확실히 그 시대 논공행상의 유일한 표준은 전공이었다. 물론 예외도 있다. 예를 들어 소하를 분봉한 것이 그것이다. 소하는 본래 문서담당 관리여서 군사를 이끌고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는 줄곧 관중과 한중의 내부 관리를 책임졌을 뿐이지만, 유방에 의해 분봉된 제후의 첫 자리를 차지했고, 찬후에 봉해졌으며 식읍 8천 호를 받았다.

그날 유방은 낙양 남궁에서 성대한 연회를 열고 문무백관을 초청했다. 술이 세 순배 돌자 유방은 갑자기 매우 심도 있는 문제를 제기했다. “짐이 처음 거병할 때 군사는 겨우 몇 백 명에 불과했소. 이후 큰 전투를 70차례, 작은 전투를 40차례 치르면서 마침내 오늘에 이르러 천하를 얻게 됐소. 이게 무슨 연유인지 말씀 좀 해보시오. 그런데 항우는 맞설 사람이 없을 정도로 용맹했고 강병만 백만이었지만 결국 패배하여 목숨을 잃고 천하까지 잃었소. 이것은 또 무슨 연유인지 말씀해보시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폐하께서는 생각이 주도면밀했지만 항우는 만행만 저지를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또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항우는 잔학하여 투항한 병졸들을 생매장해서 죽였습니다. 또 아방궁을 모두 불태워 민심을 잃었기 때문에 천하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백관들이 서로 뜨겁게 논쟁하며 열기에 싸여 있었지만 유방은 들으면서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때 왕릉이 자신의 의견을 표시했다. “폐하께서는 상벌을 분명하게 시행하며 사심을 개입시키지 않습니다. 또 전투에 승리할 때마다 투항해온 병졸들을 관대하게 대우하며 무고하게 죽이지 않으십니다. 이는 항우가 도저히 미칠 수 없는 점입니다.” 또 다른 장수 하나가 일어나 왕릉의 말을 이었다. “왕 장군의 말씀이 지당합니다. 폐하께서는 군대를 보내 성을 공격할 때 거기에서 얻은 전과는 모두 그 전투에서 전공을 세운 사람에게 귀속시켰습니다. 그러나 항우는 승리하고 나서도 공신에게 상을 주지 않았습니다. 이 점이 그가 천하를 얻을 수 없었던 주요 원인입니다.” 모두를 분분이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유방은 껄껄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러분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시는구려. 더 중요한 원인이 있소. 기실 짐이 볼 때 그가 천하를 잃은 주요 원인은 잘못된 용인술 때문이오. 방략을 품고 계획을 구상하여 신묘한 계산으로 장막 안에서 계책을 마련하고 천 리 밖에서 승리를 결정짓는 면은 짐이 장자방보다 못하오. 백성을 위무하고 나라의 재산을 잘 관리하면서 물자를 제때 공급하여 군대를 구제하는 면은 짐이 소하보다 못하오.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싸우면 승리하고 공격하면 이기는 작전과 지휘의 본령은 짐이 한신에 미칠 수 없소. 장량, 소하, 한신 세 사람은 모두 세상에 드문 기재요. 짐은 비록 이들보다 못하지만 이들이 나를 위해 헌신할 수 있게 했소. 이 점이 바로 짐이 천하를 얻은 원인이오.”

자진해서 유현 땅을 요청하다: 오래지 않아 유방은 또 신료들을 소집하여 공을 세운 장수들에게 봉토를 하사하려 했는데, 이번에는 첫 번째로 장량을 지목하며 말했다. “자방은 군중에서 계책만 마련했지만 천 리 밖 전투에서 승리를 얻을 수 있게 했소. 그대의 공로는 보통 사람과 다르오. 자방! 공이 짐에게 보여준 충성심에 보답하려 하오. 제나라 땅 중에서 3만 호를 마음대로 선택하여 봉읍으로 삼으시오.” 그러자 장량은 유방에게 사은숙배를 올리고 매우 간절하게 말했다. “신 장량이 재물을 탐하지 않고 공명도 뜬구름처럼 여긴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신은 오랫동안 몸이 약했고 병이 많았으므로 신을 풀어서 귀향하게 해주시옵소서. 이 밖에 달리 바라는 일은 없습니다.”

유방은 놀라며 말했다. “자방! 짐이 내리는 상이 부족해서 그러시오?” 장량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당초에 신은 하비에서 의군을 일으킨 후 유현에서 폐하와 만나 폐하의 인정을 받았고, 이에 오늘의 신이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신이 폐하를 만나지 못했다면 신에게 재능이 있다 해도 펼쳐볼 데가 없었을 것입니다. 풍요로운 제나라 땅은 공을 세운 다른 장수들에게 나눠주십시오. 신은 유현에 봉토를 받을 수 있으면 그걸로 만족하겠습니다.” 유현은 작은 시골 현 소재지로, 많아야 2천 호에 불과했다. 유방은 그의 태도에 탄복하면서도 더욱 좋은 상을 장량에게 내려주고 싶었다. 이에 재삼 제나라 땅 3만 호를 선택하라고 권했지만, 장량은 시종일관 고개를 가로저으며 유현을 달라고 고집했다. 유방은 장량의 사람됨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 이상 억지로 권하지 않고 바로 그 자리에서 큰 소리로 선포했다. “좋소! 지금부터는 자방이 바로 유후(留侯)요.” 이어서 유방은 20여 명의 공신을 무더기로 책봉했는데, 이들은 모두 무장이었다. 분봉에 관한 국가대사는 이렇게 원만하게 막을 내렸다.

위대한 모사

한초(漢初) 삼걸(三傑): 유방은 비록 황제가 되었지만 해마다 전쟁터를 치달리느라 베개를 높이 베고 잠들지 못했다. 이 때문에 그의 기분은 좋았다 나빴다 종잡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소하가 궁궐로 들어와 유방에게 말했다. “장안은 사람이 많고 땅이 부족합니다. 허나 폐하께서 노니시는 상림원에는 아주 넓은 땅이 황폐해 있습니다. 만약 백성들을 시켜 황폐한 상림원을 개간하여 농사를 짓게 하면 추수가 끝난 후 남은 볏짚이나 곡식 줄기로 상림원의 동물을 먹일 수 있을 것입니다. 어찌 일거양득이 아니겠습니까?” 근래에 유방은 기분이 좋지 않아서 소하가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과연 유방은 마음이 삐딱해져서 발끈 화를 냈다. “상국은 장사꾼들의 뇌물을 얼마나 받아먹었는가? 짐이 노니는 상림원을 어떻게 취급하기에 이런 망발을 늘어놓는가? 여봐라! 상국을 잡아 가둬라!”

상국 소하가 포박되자 조정 대신들은 소문을 듣고 모두 경악했고, 장량은 소하 사건에 대한 소문을 들은 이후 내심 슬픔을 금할 수 없었다. 황제가 언제부터 이렇게 의심 많은 사람으로 변했단 말인가? 이전에 황제는 전혀 이렇지 않았다. 한나라를 처음 세우고 천하를 막 평정했을 때 유방은 자신이 오늘의 영광을 갖게 된 까닭은 3분에게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라며 장량과 소하와 한신을 추켜세웠었다. 

그런데 겨우 몇 년 만에 유방은 더 이상 옛 신하들을 신임하지 않게 되었다.

먼저 한신에 대해 말하자면, 줄곧 조정에서 그를 두려워하고 근심했기 때문에 결국 여후와 소하가 책략을 마련한 후 그를 장락궁 종실로 유인하여 모반죄로 살해하고 그의 삼족까지 멸했다. 지금은 상국 소하까지 억울한 죄명으로 하옥되었다. 한초 3대 공신 중에서 죽일 사람은 죽이고, 가둘 사람은 가둬서 이제 겨우 장량만 아무 탈 없이 남아 있다. 한편 이 무렵 장량은 정사에 관여하지 않았지만, 소하와 관련된 일은 관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느껴 왕 위위에게 유방에게 간언을 올려달라고 부탁했다.

왕 위위가 여쭈었다. “폐하께 여쭈옵니다. 소 상국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폐하를 그처럼 화나게 했습니까?” 유방은 투덜투덜 분노를 터뜨렸다. “그자가 짐의 상림원을 가지고 백성들 좋은 일만 하려 했다. 이 어찌 백성을 꼬드겨 반란을 모의하는 일이 아닌가?” 왕 위위가 아뢰었다. “폐하께서 오해하신 듯합니다. 폐하!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초나라와 싸울 때나 진희와 영포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폐하께서는 병력을 이끌고 외부에 주둔했고, 관중은 소 상국이 지켰습니다. 그때 만약 그가 천하를 탈취할 생각이 있었다면 작은 힘도 들일 필요가 없었을 텐데, 어찌하여 지금까지 기다렸겠습니까?” 당시에 유방은 잠시 화를 참지 못하여 소하를 체포했지만 조금 지나자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그런 차에 왕 위위가 이렇게 말을 해주자 바로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즉시 소하를 석방하고 사과했다. 장량은 소하가 석방되었다는 말에 다소 안심이 되었지만, 자신도 살얼음을 밟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유방과 척희: 유방의 병세는 더욱더 위중해졌다. 그러나 중병을 앓으면서도 유방은 편안히 요양할 수 없었다. “폐하께 아뢰오!” 하후영이 황망하게 유방의 침실로 달려와 보고했다. “외부 전언에 따르면 어명을 받들고 연 땅으로 가서 노관의 반란을 평정한 번쾌 장군이 황후마마와 한패라고 합니다. 그들은 폐하께서 승하하시면 안팎에서 서로 호응하여 천하를 탈취하고 먼저 척희와 조왕 여의를 죽이려 한답니다.” 유방은 깜짝 놀라 일렀다. “어서 유후 장량을 모셔 오라.” 그러나 이 무렵 장량은 궁궐로 들어와 다시 계책을 내지 않은 지 이미 오래였다. 장량을 부를 수 없자, 유방은 진평이라도 불러오게 했다. 진평이 말했다. “번 장군은 황후마마의 제부이므로 쉽게 한 통속이 될 수 있습니다. 어서 번 장군의 병권을 빼앗아야 대란이 발생하지 않을 겁니다.” 유방은 진평에게 강력하게 분부했다. “짐은 그대 진평과 강후 주발에게 명한다. 어서 달려가서 번쾌를 체포하여 법을 정확히 집행하라.” 

진평과 주발은 연 땅에 당도하여 황제의 조서를 제시하고 번쾌를 체포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조정에서 오랜 세월 함께 뒹굴었으므로 호락호락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장안을 떠날 때 이미 여러 가지 복안을 생각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지금 황제가 감정을 앞세워 일을 처리하면서 조변석개(朝變夕改)의 변덕을 부린다고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번 장군은 황제의 고향 친구이고 공로도 하늘만큼 높은 사람인데, 어명을 받들고 즉각 그를 참수했다가 어느 날 황제의 마음이 바뀌면, 바로 충신을 주살했다는 죄를 뒤집어쓸지도 모르는 일이다. 또 지금 황제의 병이 위중한데 만일 조만간 세상을 떠나게 되면 그때는 황후가 우리가 번 장군을 죽였다고 다그칠지 모른다. 그래서 두 사람은 우선 번쾌를 장안으로 압송하여 황제의 어명에 따라 죽일지 살릴지를 결정하기로 했다.

과연 예상대로 진평과 주발이 번쾌를 압송하여 장안에 도착한 시각에 한 고조 유방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태자 유영이 보위를 계승하여 새 황제가 되었고, 여후는 순리대로 황태후가 되었다. 유방이 죽은 이후 오히려 국가는 평화로웠다. 상국 조참이 정사를 잘 처리했다. 여태후가 다시 왕릉을 우승상, 진평을 좌승상, 주발을 태위로 임명한 것은 기본적으로 유방의 유언에 따른 조치였다. 이처럼 국가 초석 세 사람의 지탱 하에 한나라 강산은 태산처럼 튼튼해졌다.

그러나 여태후는 늘 한 가지 근심을 내려놓지 못했다. 아들 유영이 새 황제가 된 지 벌써 6년이 지났지만 몸이 허약하고 성격이 나약하여 정사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태후는 장량을 떠올렸다. 애초에 유방이 태자를 폐위하려 했을 때 장량이 반대했고, 또 그가 상산사호를 초빙하여 태자를 보좌하게 하자고 건의하여 마침내 황제로 하여금 자신의 계획을 포기하게 했다. 이 때문에 여후는 장량에게 시종일관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었다. 여후는 주연을 마련하여 장량을 초청했다.

적송자를 따라 놀다: 여태후가 말했다. “공은 선 황제의 중신이고, 현 황제가 평생 존경해온 분이오. 현 황제는 심신이 위축되어 떨쳐 일어나지 못하고 있소. 만약 공이 하산하여 현 황제를 보좌해주시면 내가 감격을 이기지 못할 것이오.” 장량은 태후의 제의를 완곡하게 사절했다. “우리 장가 집안은 몇 대를 이어 한(韓)나라 재상을 지냈습니다. 한나라가 망한 후 신은 황금 1만 냥에 해당하는 집안 제산을 처분하여 진(秦)나라에 복수하려 했고, 이 일은 당시에 천하를 진동시켰습니다. 지금은 입술을 좀 놀린 연유로 제왕의 스승으로 존경받으며 만호후에까지 봉해졌습니다. 이는 일개 백성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지위입니다. 신의 입장에서는 매우 만족스러운 생애입니다. 지금 신이 품고 있는 유일한 희망은 이 번거로운 속세를 떠나서 적송자를 따라 노닐며 티끌세상 밖에서 구름처럼 떠도는 것입니다.” 여후는 더 이상 장량을 설득할 방법이 없음을 알고 그대로 연회를 끝낼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스스로 방향 설정을 잘한다. 춘추시대의 월나라 범려는 공적을 이루고 명성을 성취한 뒤 정계를 떠났다. 이후 그는 장사를 해서 천하 갑부가 되었고, 사람들은 그를 바뀐 이름인 ‘도주공’이라 불렀다. 그러나 장량이 선택한 길은 은거와 운유(雲遊)였다. 바로 노자가 “공명을 이루고 몸을 뒤로 물리는 것은 하늘의 도다”라고 말한 바와 같다. 장량은 줄곧 이처럼 자유롭고 구속 없는 경지를 추구했다. 사마천은『사기』『유후세가』에서 장량의 죽음을 지극히 간단하게 기록했다. ‘그 뒤 8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문성후다.’

본 도서요약본은 원본 도서의 주요 내용을 5% 정도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원본 도서에는 나머지 95%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보다 많은 정보와 내용은 원본 도서를 참조하시기 바라며, 본 도서요약본이 좋은 책을 고르는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1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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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ver_user
3 달 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