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제2국면

문예출판사 / 2021년 5월 / 236쪽 / 16,000원

팬데믹 제2국면

팬데믹 제2국면

우석훈 지음

저자 소개

경제학자, 두 아이의 아빠. 성격은 못됐고 말은 까칠하다. 늘 명랑하고 싶어 하지만 그마저도 잘 안 된다. 욕심과 의무감 대신 재미와 즐거움, 그리고 보람으로 살아가는 경제를 기다린다. 대표 저서로 『88만원 세대』,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 『당인리』, 『사회적 경제는 좌우를 넘는다』 등이 있다.

책소개

2020년 초 코로나 팬데믹 발생 이후 1년, 우리는 지금 백신이 보급되는 ‘팬데믹 제2국면’을 맞고 있다. 백신 이후, 대한민국에 변곡점은 오는가? 백신의 보급이 곧 팬데믹의 종료를 의미하는가? 코로나 충격 이후 한국 경제가 새로운 ‘코로나 균형’을 이루는 데는 대략 4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시점에 우리는 팬데믹의 아주 ‘긴 꼬리’를 보게 될 것이다. 자동차, 관광, 자영업, 학교, 프리랜서, 재택근무, 극장, 로컬… 우리 일상의 경제와 산업을 바꾸는 ‘코로나 롱테일’ 최초 분석!

요약본 본문

1장 우리는 선진국으로 간다

코로나 경제의 네 가지 국면

경제학이 정밀한 학문 같지만, 사실 예측은 어렵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확실성이 매우 높은 시기에는 변화의 부호가 플러스인지 마이너스인지 예상할 수만 있어도 다행이다. 백신을 무력화할 정도로 강력한 변이 바이러스가 등장해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려놓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전체 팬데믹 기간을 네 가지 국면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제1국면: 제1국면은 코로나 백신이 등장하기 이전까지다. 2009년에 팬데믹으로 번진 신종플루는 항바이러스제인 타미플루에 의해 기세가 꺾였다. 타미플루는 원래 있던 약이었는데, 신종플루에서 그야말로 ‘게임 체인저’ 역할을 했다. 코로나에 대해서는 아직 타미플루급 치료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 기간에는 마스크 착용과 거리두기 그리고 격리 같은 물리적인 방법으로 대처했다. 제1국면은 2020년에 이미 지났다.

제2국면: 제2국면은 선진국에 백신이 보급되기 시작한 기간이다. 2021년이 이에 해당한다. 우리나라는 2021년 11월까지 접종을 끝내 집단면역을 계획하고 있지만, 백신을 확보한 나라와 확보하지 못한 나라 사이의 국제적 갈등이 매우 높아질 것이다. 물론 백신 접종이 시작된다고 해서 방역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많은 독감 백신이 그렇듯이 코로나 백신도 100퍼센트 예방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백신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며, 백신을 맞았다고 해서 어디든 갈 수 있는 프리 패스를 받는 것도 아니다. 몸에서 형성되는 항체가 영구적인 것도 아니다. 일단 인구의 60~70퍼센트 정도가 백신을 맞아서 집단면역을 형성해 바이러스의 재생산을 낮추어야 한다. 백신이 유효하지 않은 변이가 생겨나는 것도 큰일이지만,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경우는 먼저 백신을 맞은 사람들의 항체가 사라지기 전에 후순위 사람들이 백신을 맞지 못한 경우다. 그럴 경우 코로나바이러스의 도돌이표가 시작된다.

제3국면: 제3국면은 개도국과 저개발국가에도 백신 접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시기다. 2022년이 대체로 이에 해당할 것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국가들을 어떻게 지원할지에 대한 논의가 중요해지고, 돈 많은 나라들만 백신을 확보해도 되는지, ‘백신 민족주의’에 대한 반발이 커질 것 것이다. 한국인, 특히 젊은 사람들이 휴양지로 선호하는 동남아에도 백신이 보급될 테지만, 이 기간에 관광이 전면 개방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국경을 봉쇄하다시피 걸어 잠그고 있는 베트남이 언제 관광을 재개할지 정도가 변수일 것이다. 반면 선진국들 사이의 여행은 2022년이 되면 부분적으로 가능할 것이고, 미뤄두었던 방문이나 여행이 일시에 몰려 한동안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제4국면: 제4국면은 아프리카를 비롯한 저개발국가에도 백신이 어느 정도 보급되는 시기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장 아프리카로 관광을 갈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2023년의 가장 큰 관심은 WHO가 코로나 팬데믹 종료 선언을 할 수 있느냐일 것이다. 선진국들 일부는 자국 내에서 종료 선언을 할 수도 있지만, 세계적인 팬데믹의 종료는 조금 다른 문제로 2023년은 넘어가게 될 것 같다. 이 시점에 팬데믹의 아주 긴 꼬리를 보게 될 것이다.

팬데믹 제4국면 어디에선가 한국 경제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코로나 균형’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미 대부분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갔을 테지만, 그 일상은 처음 코로나바이러스를 만난 2019년 겨울과 같은 일상이라는 보장은 없다. 많은 사람의 직장이 바뀌었을 것이고, 많은 식당이 문을 닫았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열리지 않는 곳이 많을 것이다. 그렇게 도달한 한국 경제는 더 이상 선진국 초입 혹은 선진국 평균 정도가 아니라 선진국 중에서도 최상위 그룹에 속해 있을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 기준으로 일본과 프랑스보다 앞설 확률이 높다. 코로나가 경제위기를 초래해 고통스러운 것도 맞지만, 한국에는 매우 특별한 의미가 될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코로나 균형 속에서 한국은 국제적으로 더 잘사는 나라가 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이 모두에게 행복한 미래를 보장한다는 것은 아니다.

회복의 네 가지 패턴: U자형, V자형, L자형, K자형

국민경제나 산업이 위기에서 회복되는 패턴을 흔히 U자형과 V자형으로 구분한다. 고점에서 저점, 저점에서 고점이 완만하게 이어지는 U자형은 문제가 몇 년에 걸쳐서 회복되고 천천히 올라가는 경우를 말하며 저점이 좀 길다. V자형은 급하게 내려갔다가 급하게 올라가는 형태다. 1980년 공황, 1997년 IMF 경제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모두 우리나라에서는 V자형으로 회복되었다. 이에 반해 L자형은 일본의 1990년대 경제위기 이후처럼 장기 침체가 계속되는 것으로, ‘잃어버린 10년’, 그리고 다시 ‘잃어버린 20년’ 같은 표현이 나왔다. K자형은 코로나와 함께 등장한 새로운 용어다.

K자형은 코로나로 인해 격차가 급격히 심해지며 윗부분과 아랫부분이 정반대 형태로 가는 경우다. 이런 패턴이 생기면 단기적으로는 경제성장률이 떨어지지도 않고, 문제가 급격하게 드러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는 국민경제가 상당히 위험해진다. 경제 체질이 약해지고, 내부 경쟁이 지나치게 높아지고,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국가를 이끌어가는 집단은 사회통합을 형식적으로라도 이루기 위해 간편한 방법으로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강화하려는 경향이 생긴다.

국민경제 차원에서 논의되던 U자형 혹은 V자형 패턴이 최근 각 산업은 물론이고 하부 업종 단위에서도 이야기되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인해 경제지표가 하락세를 유지하다가 U자형이 됐든 V자형이 됐든 다시 상승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예측이다. 예컨대 “코로나만 끝나면 물밀듯이 해외여행을 갈 거다”, 이런 추론이다. 진짜로 그럴까? 흔히 ‘보복소비’라고 불리는 팬데믹 직후의 소비 증가는 일시적일 가능성이 높아, 이를 장기간에 걸친 추세로 보기는 어렵다.

국제 수지에 영향을 미치는 해외여행은 지불 여력과 레저 패턴, 두 가지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여행업을 비롯한 많은 서비스산업의 특징이 소멸성이다. 즉 한 번 사용되지 못한 서비스는 사라진다. 영화나 연극이 그렇고 스포츠가 그렇다. 그렇다면 해외여행은 소멸성 서비스인가, 아니면 금융상품처럼 저축성 서비스인가? 기본은 소멸성이다.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전제하면, 많은 경우 소비자는 단위 기간의 예산 제약 하에서 서비스 구매를 결정한다. 그런데 한국의 많은 중산층은 코로나 국면의 비상 상황을 버티면서 가처분소득에 타격을 받게 되었다. 의식주의 많은 요소 중에서 여행 특히 해외여행은 순위가 뒤로 밀린다. 비즈니스 여행 역시 마찬가지다. 해외 콘퍼런스 등 공무나 비즈니스 출장도 기본적으로는 소멸성으로 그해에 하지 못한 비즈니스 여행은 사라진다.

V자형을 희망하는 많은 산업에서 살펴봐야 할 것은 단기 반등이 아니라 패턴 분석이다. 세계화가 첨단이던 시대는 코로나와 함께 종료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세계적인 차원의 글로벌 밸류체인이 갑자기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방역이 조금 더 안전한 곳으로 그리고 운송거리가 조금 더 가까운 곳으로 재배치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구매력과 소비성향 분석뿐만이 아니라 좀 더 장기적인 측면에서 패턴 분석이 필요하다.

2장 경비회사에서 방역회사로: 돌아온 국가 그리고 부작용

국가의 귀환

팬데믹과 함께 생겨난 가장 큰 변화는 국가가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일 것이다. 국가와 함께 국경이 돌아왔고, 국경 넘어가는 게 이렇게 큰일인지 새삼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국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국가란 무엇인가? 사회 시간에 배웠듯이 공식적인 국가의 기원은 시민들끼리 맺은 일종의 사회계약이다. 홉스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인 야만 시대는 너무 힘드니, 서로가 가진 권리의 일부를 양보해 국가가 탄생하게 된다고 보았다. 가장 표준적인 국가관이다. 국가를 인정하는 시각 중에서 국가를 가장 작게 보는 것이 로버트 노직의 최소국가론일 것이다. 깡패들 중에서 가장 센 깡패가 국가이고, 그래서 국민이 거기에 돈을 주고 경비를 맡긴다는 것이다. 경비가 국가 역할의 전부라는 것인데, 세콤 같은 경비 회사 중에서 가장 센 회사가 국가라고 보면 노직의 국가론에 유사해진다.

1990년대 이후의 세계를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말로 표현했다. 작은 정부, 세금 감면, 자본 중심의 정치 운용을 이렇게 불렀는데, 금융의 상징인 뉴욕 월가와 정치의 상징인 워싱턴 사이에 어떤 ‘합의’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름 붙이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일련의 흐름을 ‘신자유주의’라고 불렀다. 커질 대로 커진 국가를 좀 작게 만들자는 반대 흐름이기도 하고, 소련의 몰락으로 더 이상 냉전을 끌고 갈 필요가 없어진 자본주의가 이제는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선언 같은 거라고 볼 수도 있다.

세계화가 클라이맥스로 가면서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로부터 시작된 ‘노마디즘’, 즉 유목민적 삶과 사유가 마케팅 세계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한곳에 정주해서 살아가는 것은 농업 문명의 오래된 잔재나 공업 시대의 집착 같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국제기구에 취직하는 것을 선호하는 문화적 흐름이 생겼고, 교환학생이 되는 것이 필수처럼 여겨졌다.

워싱턴 컨센서스 이후 30년, 국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여권만 제대로 갖고 있으면 국경도 큰 의미가 없는 듯 보이는 시대가 왔다. 유럽연합(EU)이 강화되면서 유럽 안에서는 정말로 국경이 의미가 없어졌다. 오죽하면 트럼프가 “미국을 다시 한 번 위대하게”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국가’를 전면에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되었겠나. 트럼프는 국가주의를 강화하고, 국경을 강화했다.

국가가 별것 아니고 진짜 중요한 것은 돈이고 자본이라고 생각하던 노마디즘의 흐름이 코로나로 인해 30년 만에 정지했다. 갑자기 농경문화로 돌아간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정착형 삶으로 문명사적인 전환을 했다. 정착 정도가 아니라 재택과 격리가 이어진다. 전 세계 TV에서 각국이 느끼는 민감도와 생활상이 고스란히 보도된다. 모두 실내에, 자기 방에 갇혀 있고, 온라인 가동이 가능한 장치들만이 전기와 전파를 통해 이 고립 사이에서 사람들을 이어준다.

그리고 명령은 국가로부터 나온다. 집에 있어야 할지 혹은 식당을 열어야 될지, 국가가 전권을 가지고 결정한다. 문득 어느 나라에 살고 있느냐가 개인의 일상성을 결정하는 순간이 왔다. 영업이 중단된 뉴욕에 살고 있으면 매우 힘들고, 봉쇄된 런던이나 파리에 있으면 더욱 힘들다. 우리의 경우 개인들이 자유를 많이 포기한 대가라고 외국에서는 놀리지만, 어쨌든 한국에 있으면 그들보다는 일상생활이 덜 힘들다.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최고 단계로 격상돼도 외국 주요 도시들의 자가격리보다는 그 강도가 약하다. 가장 높은 단계에서는 미용실이 문을 닫고, 백화점이 문을 닫는 정도다. 5인 이상 집합 금지가 가장 강도 높은 제한이다.

그 동안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서 자본에 밀려 무대 뒤 조연으로 멀찌감치 물러섰던 국가가 다시 전면에 나섰다. 돌연 권능을 회복한 팬데믹 시대의 국가는 냉전 시대의 국가만큼 많은 것을 명령한다. 규칙과 제도를 만드는 국가의 권한은 팬데믹 상황에서 냉전 시대를 방불케 할 정도로 강화되었다. 아마 로버트 노직이 새로 책을 썼으면 국가는 경비회사가 아니라 가장 유능한 방역회사라고 했을 것 같다. 팬데믹 국면에서 그래도 가장 믿을 만한 방역회사는 동원력 있는 국가가 아니겠는가? 자본주의 초기에 모두가 국가의 눈치만 봤던 것처럼, 팬데믹 국면에서 다시 한 번 모두가 국가의 눈치만 보는 시기가 왔다.

팬데믹, 다른 유형의 재난과 무엇이 다른가?

태풍이나 허리케인 등 굵고 짧게 발생하는 재난과 달리, 팬데믹은 그 지속성에서 다른 재난과 비교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기후변화나 오존층 파괴와 같이 지구 환경의 변화 자체가 원인인 재난을 제외하면, 충격이 가장 오래가는 재난이 팬데믹이다. 중세를 완전히 붕괴시킨 흑사병은 400년 가까이 유럽 전역을 떠돌았다. 가깝게는 1918년의 스페인독감이 2년간 지속되었고, 1968년에 WHO에 의해 1호 팬데믹으로 선언된 홍콩동감도 2년간 지속되었다. 2호 팬데믹인 신종플루는 2009년에 발생한 1년쯤 후에 어느 정도 잡혔다.

바이러스가 일단 팬데믹 수준이 되면, 좋든 싫든 사회 구조 변화를 동반한 큰 변화를 남긴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코로나바이러스는 중세를 무너뜨리고 자본주의라는 전혀 새로운 세상을 촉발한 흑사병에 비견할 정도는 아니다. 또한 자본주의 등장 이후 가장 큰 경제적 충격인 대공황을 촉발한 1916년 마이애미 허리케인과 비견될 정도도 아니다. 

1926년 플로리다에는 집 투기 붐이 일었는데, 특히 마이애미 해변 등 플로리다의 해안가에 별장을 지어 파는 것이 유행이었다. 물론 정상적인 투자였으면 피해가 덜했겠지만, 수익성이 워낙 좋다고 하니 대개 공사는 대출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불어닥친 허리케인이 공사 중이거나 아직 분양이 안 된 바닷가의 별장들을 휩쓸고 갔다. 이에 따른 충격이 누적되어 3년 후 1929년 10월 월가의 붕괴를 초래했다. 공식적으로는 이 시점이 세계적 파시즘과 2차 세계대전을 유발한 대공황의 시작이다. 대공황은 시작은 있지만, 1939년에 터진 2차 세계대전과 그 기간이 겹치기 때문에 종료 시점이 없다. 길게 놓고 보면 마이애미 허리케인의 충격이 그렇게까지 클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는 한국에서 일어난 그 어떤 재난보다도 길고 두꺼운 꼬리를 남기게 될 것이다. IMF 경제위기는 짧은 시간에 충격이 집중되어 한국 경제사에 강렬한 흔적을 남긴 바 있다. 한국 경제가 처음으로 경험한 전격적인 충격이었던 IMF 경제위기보다는 코로나의 충격이 덜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정권이 바뀌고 여당과 야당이 교체되는 수준의 변화보다는 코로나의 충격이 더 클 것이다.

3장 팬데믹 그리고 학교와 교육의 변화

돌봄과 대학, 두 개의 포컬 포인트

팬데믹은 일시적으로 학교를 정지시켰고, 우리가 평소 경험하지 못한 특수한 상황을 만들었다. 한국 교육을 위에서 들여다보면 두 개의 점이 나온다. 하나는 돌봄이고, 다른 하나는 고등교육으로 분류되는 대학이다. 영유아부터 시작되는 돌봄은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교육의 중요한 축으로 작동하고, 그 후로는 최종 단계인 대학에 맞춰서 교육이 설계된다. 교육부나 교육청 등 교육 당국이 각각의 단계에서 교육 목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와 상관없이, 한국 교육은 그렇게 두 개의 점을 일종의 포컬 포인트, 즉 초점으로 삼아서 작동한다.

법적으로는 학원으로 분류되는 영어유치원에 자녀를 보내는 선택은, 두 번째 포컬 포인트인 대학에 맞춰 5세 때부터 자녀의 삶을 디자인하는 경우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어린이집에 보내는 선택은, 첫 번째 포컬 포인트인 돌봄에 집중하는 경우다. 유치원은 두 선택의 절충안이다. 이 두 개의 포컬 포인트가 교차하는 지점이 대략 중학교 2학년 정도다. 두 번째 포컬 포인트인 대학에 맞춰서 특수목적고등학교(특목고)를 선택하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이 같은 반에서 수업하는 거의 마지막 기간이 중학교 2~3학년이다. 그 분리를 아예 초등학교 때 하자는 것이 국제중학교 논의였다. 이건 사회적으로 과도하다는 선택이 이미 내려진 상태다.

한국에서 팬데믹은 교육에서 이 두 개의 포컬 포인트를 더욱 극명하게 드러내며 강화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팬데믹 국면에서 첫 번째 포컬 포인트인 돌봄은 멈추지 않지만, 두 번째 포컬 포인트인 대학은 멈춘다. 다만 대학 입시는 멈추지 않는다. 팬데믹 기간에 어린이집과 초등학교가 문을 닫은 일은 학교나 인근에서 확진자가 발생해 긴급 폐쇄하게 된 경우 아니면 없다. 어린이집이나 초등학교는 ‘긴급 돌봄’ 형태로 줄곧 운영되었다. 우리나라는 공장 문을 닫은 적이 없고, 국경을 닫은 적도 없다.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공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려면 노동자의 자녀들에 대한 돌봄을 중단할 수도 없다. 돌봄은 한국 자본주의가 양보할 수 없는 지점이다.

두 번째 포컬 포인트인 대학은 멈춰 세울 수 있다. 수업 진행은 한시적이라는 단서 아래 원격 수업으로 전환할 수 있다. 예체능같이 실기수업이 있는 경우는 원격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만, 팬데믹이라는 긴급 상황에서 별다른 대안은 없다. 다만, 대학은 멈추더라도 대학 입학 과정은 멈추지 않는다. 기술적으로는 대학 입학 과정도 세울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대입에 맞춰 자녀의 삶을 설계한 시스템이 모두 멈춘다. 대학 교육은 중단해도 대학 입학은 중단할 수 없는 한국 자본주의의 특수한 약점을 2020년 대학 입시가 보여주었다.

팬데믹과 관련된 데이터들은 바이러스의 습관이 지나간 후에 노동시장에서 대학 졸업장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2020년 IMF 연구진은 「과거 팬데믹을 참고하면 코로나19는 불평등을 높일 것이다」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2003년 사스, 2009년 신종플루, 2012년 메르스, 2014년 에볼라 그리고 2016년 지카바이러스 사태 때 발생한 변화를 국제노동기구 자료를 통해서 추적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고등교육을 받은 노동자들의 고용은 팬데믹이 발생하고 2~3년 후에 모두 회복되었다. 반면 의무교육을 받은 노동자의 고용은 5년이 지났을 때 5퍼센트 이상 감소했다. 팬데믹의 영향 아래에서 학력과 고용시장 사이에 일정한 관계가 있다는 뜻이다. 과거의 호흡기 질환들이 경제에 미친 영향이 매우 제한적이었음을 고려하면, 이 그래프를 코로나의 경우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코로나의 영향 아래에서는 고학력 노동자의 고용이 3년이 지나도 회복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저학력 노동자의 고용 상황은 더 열악할 것이다. 결국 고등교육의 가치가 팬데믹과 함께 더욱 높아지고 이로 인해 한국에서 대입을 향한 열정은 팬데믹 이후에 더욱 강해질 가능성이 높다.

4장 부자 나라의 가난한 국민: 팬데믹이 남길 흔적들

팬데믹 양극화 그리고 다양성의 패배

오늘날 한국 경제가 세계적 성공을 거둔 경제 모델인 것은 분명하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 모델이 경제의 기본이 되었고, 박정희 시대에 프랑스식 계획경제와 중앙형 시스템이 대거 접목되었다. IMF 경제위기 이후 미국식 신자유주의와 기업중심주의가 한국에서 유행했고, 진보 진영에서는 스웨덴 등 북유럽 모델을 주요 대안으로 제시해왔다. 이렇게 여러 나라의 시스템이 혼합되다보니까 한국에 들어와 있지 않은 제도가 거의 없을 정도다.

자, 그렇다면 이제 한국이 외국 모델 위에 경제를 세울 수 있을까? 그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한국은 이제 자기완결성을 가진 시스템을 운용할 수밖에 없다. 팬데믹 이후에 이런 경향성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좋은 점을 이야기하면 한국 경제가 21세기 이후에도 여전히 역동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고, 나쁜 점을 이야기하면 수많은 국가의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중첩되어있어서 누구도 전체 시스템의 작동 원리를 일목요연하게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팬데믹이 미치는 영향 역시 산업별, 업종별로 다르고, 개인마다 다르다. 마스크 착용과 집합금지 등 방역 조치들은 모두에게 힘들지만, 그 영향은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팬데믹으로 인해 오히려 결정적인 기회를 맞은 분야가 적지 않다. 배달업체 쿠팡은 미국에 상장되었다. IT업체들은 채용을 늘리고 저마다 연봉을 올리는 중이다. 증시는 연일 기록을 경신하고, 좋은 입지의 아파트를 산 사람은 자산 급상승을 경험하고 있다. “모두 힘들다”고 하지만, 전체를 놓고 보면 그렇게 공감되지는 않는다.

남들은 괜찮은데 자기만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 정서적 고통은 더 커진다. 그것을 상대적 박탈감이라고 부른다. 모두가 동일하게 격리되어 있을 때는 바이러스 앞에, 마스크 앞에 모두가 공평하다는 생각이 들다가, 경제활동이 시작되면 어려운 분야와 그렇지 않은 분야가 갈린다. 이윤율이 높아진 산업과 낮아진 산업으로 나뉜다. 상대적 박탈감이 업종별로도 나뉘게 된다. 이것을 ‘팬데믹 양극화’라고 부를 수 있다. 팬데믹으로 이익을 보는 분야가 위쪽 축을 형성한다. 그리고 대다수 자영업을 비롯해 내수용 산업들 그리고 현장 공연과 관련된 많은 문화산업들이 아래쪽 축을 형성한다. 이런 양극화 흐름 속에서 ‘부자 나라의 가난한 국민’이 더욱 늘어나게 된다.

기업이야 어떻게든 버틴다고 하지만, 개인들은 어떨까? 한국은행은 2020년 가계저축률을 10.2퍼센틀 추정한다. 가계저축률은 2015년 이후 줄곧 낮아지는 추세였는데, 이 흐름을 깨고 확 올라갔다. 반면 2020년 3분기 가계대출은 총 1,587조 원으로, 가계부채가 전년도 3분기에 비해 7퍼센트 늘었다. 같은 기간 경제성장률은 ­1.3퍼센트였다. 빚내서 집도 사고 대출 받아 주식 투자도 한 영향이 있다. 신용대출은 690조 원, 주택담보대출은 890조 원이다. 어느덧 가계대출이 국민소득 대비 100.1퍼센트로 국민소득 총 규모를 넘어섰다. 가계부채 비율로는 전 세계 1위가 되었다. 정부나 기업대출은 그런대로 버틸 만한 수준인데, 일반 가구가 빚을 너무 많이 지고 있다.

팬데믹 상황에서 자영업ㆍ여행산업ㆍ문화산업 등 내수 경제 부문이 특히 힘들다. 같은 민간 내수 경제에서도 택배와 통신, 가전 등 비대면 분야는 특수를 맞은 곳도 많다. 반면 지역경제, 특히 관광을 중심으로 내부 경제를 형성한 비수도권 지역은 아주 어렵다. 단기로 고용되는 비숙련 노동자인 청년과 노인도 아주 힘들다. 또 고용시장에서 여전히 불리한 요소가 많은 여성이 남성에 비해 더 힘들다.

험한 산길을 달리는 만원 버스의 예를 들어보자.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창밖 풍경을 즐기면서 갈 수 있지만, 심하게 흔들리는 버스 안에 서 있는 사람들은 멀미가 나고 힘들 뿐이다. 그런데 멀미가 나니 좀 천천히 가달라고 운전자에게 말하면? 정시주행을 외치면서 어쩔 수 없으니 참으라고 한다. 참고 버티면 결국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까? 버스가 정류장에 설 때마다 차멀미가 심한 사람들은 중간에 내리게 된다. 어쩔 수 없이 황망하게 내린 사람을 정부는 ‘사양산업’이라고 부른다. 버스 안에는 부자들과 공기업 근무자들을 포함한 공직자들이 앉아 있다. 한계에 내몰린 청년들과 가사노동자를 비롯한 여성들은 서 있다. 노약자 보호석이 있기는 하지만, ‘인생 2모작’이라는 명찰을 단 일부 노인만 앉아 있고, 나머지는 서 있다. 중간중간에 멀미를 버티지 못해서 내린 사람들을 보니까 대학 비정규직 강사 등 지식 생산을 담당하던 사람들이나, 작가와 화가처럼 문화분야 종사자들이 적지 않다.

경제의 다양성을 위해서는 약한 고리들이 잘 버텨야 한다. 경제가 호황일 때는 약한 고리들도 나름 역할을 하면서 경제의 선순환을 이루지만, 불경기일 때 약한 고리들은 시장에서 탈락하고, 다른 업종으로 전환하거나 그 분야가 고사한다. 어떻게 하면 지식과 문화 등 선진국 경제의 원천에 해당하는 분야를 비롯해 경제의 다양성을 유지할 것인가? 이것이 팬데믹 이후에 맞닥뜨릴 또 다른 질문이다. 여기에 엄청나게 큰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지만, 장기적 효과는 확실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효과가 눈에 잘 보이지 않아서, 다양성을 위한 산업 생태계 지원은 우선순위에서 한참 뒤로 밀린다는 것이다.

다시 버스의 비유로 돌아가보자. 어려운 사람 봐도 눈 감고, 지식과 문화 분야에서 학살극에 가까운 참상이 벌어지는데도 버티면서 아낀 돈을 가지고 과연 우리의 버스 운전사는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까? 미래를 위해서 아끼고 아낀 돈을 아낌없이 푸는 곳이 불행히도 공항과 다리 그리고 도로로 상징되는 토건이다. 1990년대 일본이 버블 공황을 만나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산업이 공항 건설 등 지역 개발이었다. 그 결과 잃어버린 10년이 잃어버린 20년이 되었고, 이제 경제위기를 피하기가 어려우니까 일본 정부는 도쿄 올림픽에 사활을 걸었다. 이것이 지금 일본 경제가 만난 딜레마다. 그렇게 일본이 거친 구조적 위기를 바로 옆에서 보면서도 우리는 일본과 같은 길을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중이다. 그런데 그 종착지가 운전사의 단골식당이라면?

대규모 토건사업을 하기 전 법이 정한 예비타당성조사, 흔히 ‘예타’라고 줄여 부르는 검증 절차를 수행하는 기관은 한국개발연구원(KDI) 산하의 공공투자관리센터다. 한국의 경제권력인 기획재정부가 팬데믹 국면에서 제일 크게 외친 것이 재정건정성이다. 국민들에게는 재정건정성 운운하며 힘들어도 허리띠 졸라매고 참으라면서, 자기들이 원하는 국가사업에 대해 국회가 예타를 면제하자고 하면 한마디도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10조가 들어갈지 20조가 들어갈지 제대로 총액도 제시하지 못하는 사업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국민들에게는 그냥 버티라고 하는 것, 이건 좀 이상하다.

세계 1위 국가를 향해서 달려가다가 결국 토건에 발목을 잡힌 일본 경제와, ‘선도국가’라는 이상한 용어를 사용해 한 단계 도약을 약속하면서 4대강 시절의 토건사업으로 회귀하는 한국 경제의 모습이 너무나도 닮았다. 국민의 고통을 보면서도 아끼고 아낀 돈을 시멘트에 아낌없이 쓰겠다는 현재의 경제 운용, 좀 슬프다. 팬데믹 이후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는 더욱 커지게 되고 사람이 아니라 시멘트에 투자하는 토건 경제로 복귀하려는 경향은 갈수록 더욱 강해질 것이다.

코로나 롱테일 그리고 관광산업

국제관광과 관련해 최근 세계여행기구(UNWTO)가 내놓은 자료는 처참한 수치를 보여준다. 2020년 4월 입국자 수는 전년 대비 97퍼센트까지 급감했다. 12월에 내놓은 최종 자료들을 보면 여름에 감소율이 약간 완화되었다가 10월에는 다시 83퍼센트 감소를 기록한다. 이 정도로 극적인 변화는 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발생한 적이 없었다. 여행산업이 맞닥뜨린 이 위기는 사스나 메르스 때는 물론 경제위기가 8년 이상 지속되었던 석유파동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코로나 사태가 가진 긴 꼬리, 롱테일의 속성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곳이 항공산업과 여행산업일 것이다. 일반적인 경제위기 혹은 지진이나 태풍 같은 재난의 경우는 주요 사건이 초기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는데, 팬데믹은 사건 자체가 길고 그 후유증도 오래 남아서 전형적인 롱테일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코로나 팬데믹의 경우는 저개발국가까지 어느 정도 백신 접종이 완료되려면 앞으로도 최소 3년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심각한 변이가 발생하면 이 기간은 더 길어진다. 게다가 팬데믹이 주기적으로 발생한다면? 코로나와 같은 팬데믹이 우리 생에 있어서 마지막일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1990년대 세계화의 열풍과 함께 중단 없이 성장했던 여행산업이 과거로 되돌아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한 국가의 GDP 중 관광산업 비중이 OECD 평균은 10퍼센트 정도인데, 우리는 3퍼센트를 약간 밑돈다. 미국과 일본이 7퍼센트 내외다. 관광산업의 비중을 현재보다 최소한 두 배 정도로 늘려야 한다는 것이 관광업계에서 계속된 주장이었다. 역설적이지만 일본이나 미국보다 관광업 비중이 낮은 것이, 팬데믹 국면에서 한국 경제가 충격을 덜 받게 된 한 요소가 되었다. 2020년 12월에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주요 국가의 코로나로 인한 경제 충격을 분석했는데, 한국이 코로나 충격에 가장 덜 취약한 국가로 꼽혔다. 평소에는 지나치게 낮아 보였던 관광업 비율이 코로나 국면에서는 오히려 안정성 확보에 도움을 주었다.

코로나 롱테일 이후 관광산업의 미래를 두고 이미 격론이 시작되었다. 코로나 롱테일이 지나고 나서 관광업은 ① 원래 규모로 돌아간다, ② 더 커진다, ③ 더 작아진다, 세 경우 중 하나일 것이다. 과연 관광 수요는 장기적으로 어떻게 변화할까? 코로나가 끝나면 억눌린 욕구가 터져 나오면서 관광 수요가 대폭발할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코로나 롱테일 후반부에 발생할 이 상황에서는 아직 방역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제약 조건이 작동한다. 코로나 종식 이후 일시적ㆍ부분적으로 관광객이 폭증할 가능성은 있다. 그렇지만 중장기적으로 여행 수요는 감소할 것이라는 견해도 적지 않다. 지금까지는 개인소득의 증가와 함께 여행 수요도 증가한다는 잠정적인 가설을 가지고 접근했다. 하지만 여행은 의식주와 같은 기본 소비에 해당하지 않고, 비상 상황이 생기면 제일 먼저 가계지출에서 줄이는 항목이다. 초단기적인 관광 증가는 예상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결코 그렇지 않다.

팬데믹의 흔적, 폐플라스틱과 폐비닐

2018년 중국이 플라스틱 등 폐기물 반입을 금지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난데없이 쓰레기 대란이 벌어졌다. 2016년까지는 우리도 해양 폐기를 했다. 그 후로는 외국이나 바다에 폐기물을 버리는 ‘폐기물 악당 국가’에서 점진적으로 벗어나는 중인데, 국토 내에서 그 문제를 풀어야 하는 부담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렇지만 지역 내에서 자체적으로 이 문제를 푸는 것은 아니다. 특히, 서울은 주요 폐기물을 인천에 있는 수도권 매립지에서 처리하고 있다. 수도권 매립지는 2025년까지만 사용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는데도 별다른 대응 없이 그냥 시간을 흘려보냈다. 이미 2016년까지 사용하기로 했던 것을 9년 더 연장한 터라 앞으로도 같은 방식으로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팬데믹 한가운데서 인천시가 2025년 종료 시점에 연장은 없다는 발표를 했다. 그리고 수많은 사회 이슈 중에서 페기물 문제가 우선순위로 튀어나오게 되었다.

팬데믹과 함께 특히 1회용품 폐기물이 늘었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상반기 기준 비닐은 11.5퍼센트, 플라스틱은 15.6퍼센트 증가했다. 택배가 늘면서 택배 포장재도 늘어났고, 카페 등에서 사용하던 컵도 팬데믹 이후 다시 1회용 종이컵으로 바뀌었다. 처리할 방법은 없는데, 폐기물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재사용과 재활용을 늘리면서 쓰레기 자체를 줄이고, 매립보다는 소각을 늘리는 방향밖에 없는데, 당장 시행하기가 쉽지 않은 대책들이다.  

소비 영역에서 벌어지는 폐기물 줄이기는 정책적 의지가 있으면 기술적 해법을 찾을 수 있는데, 매립장과 소각장 문제는 사회적으로 훨씬 복잡하다. 원칙상으로는 중앙형 시스템 대신 분산형 시스템을 마련해, 구청과 같은 기초자치단체별로 각 지역의 문제는 지역 내에서 처리하도록 하는 게 맞는데, 소각은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일정 규모가 되어야 소각 설비를 고온으로 운전할 수 있고, 그 상태에서 완전연소를 해야 오염물질 발생을 줄일 수 있다. 규모가 갖춰져야 공해 후처리 장치들을 제대로 설치할 수 있고, 모니터링 등 감시도 보다 용이해진다.

규모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도 입지 선정이 매우 어렵다. 매립지와 소각장을 반기는 주민은 없다. 대표적인 혐오시설이라서 구청장이나 시장이 자기 자리를 걸고 조성을 추진해야 할 정도로 어렵다. 덴마크는 쓰레기 소각과 바이오매스 에너지 등을 난방에 활용해 지역난방 최강국이 되었다. 소각과 바이오매스를 통한 지역난방 시스템이 장기적으로 더 효율적이고, 생태적으로도 더 우수하니 우리도 추진해보자고 하지만, 그건 책상머리에서나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우리는 폐기물 정책이 폐기물을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보내 은폐하는 방식으로 자리를 잡다보니, 지금은 시민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어도 기본 시스템을 정비하거나 업그레이드하기가 너무 어려워졌다.

팬데믹 상황에서 폐기물 총량은 늘어나게 마련이다. 사무실에서 점심 먹으러 나가는 대신 배달을 시키면 순식간에 폐기물이 산처럼 쌓인다. 조금 더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기존의 폐기물 처리 시스템이 붕괴하게 된다. 팬데믹이 지난 후에도 팬데믹의 흔적은 오래갈 것이다.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플라스틱과 비닐은 비가 오면 쓸려 내려가서 결국 바다에 모인다. 기쁨과 슬픔 같은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폐기물은 사람이 사라져도 사라지지 않는다.

본 도서요약본은 원본 도서의 주요 내용을 5% 정도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원본 도서에는 나머지 95%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보다 많은 정보와 내용은 원본 도서를 참조하시기 바라며, 본 도서요약본이 좋은 책을 고르는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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