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코어 히스토리

북라이프 / 2020년 10월 / 367쪽 / 18,000원

하드코어 히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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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코어 히스토리

댄 칼린 지음

저자 소개

선구적인 팟캐스터이자 오디오 콘텐츠계의 황제.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역사를 공부했다. 뉴스 기자, 작가, 저널리스트로 활발히 활동하던 중 팟캐스트가 처음 생겨난 시점인 2006년 이 책의 바탕이 된〈하드코어 히스토리〉방송을 시작했다.〈하드코어 히스토리〉는 전 세계 수많은 독자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구독자 수 800만 명, 다운로드 수 1억 회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2012년, 2013년에는〈정치ㆍ뉴스 팟캐스트 어워드〉후보에 올랐고〈아이튠스가 선정한 최고의 클래식 팟캐스트〉와〈팟캐스트 10년 역사를 통틀어 선정된 TOP 25〉에 선정되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책소개

이 책은 코로나19라는 변수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극적인 변화가 실제로 발생한 몇몇 시기를 참고해 미래에 벌어질 수 있는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저자는 청동기 시대의 붕괴부터 핵무기 시대의 위기까지 우리가 언제나 벗어날 수 없었던 인류의 생존이라는 가장 절실하고도 중요한 주제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며, 인류가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를 생각하게 한다.

요약본 본문

역경은 인간을 더욱 강인하게 만드는가?

인류가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이래로 몇몇 역사가는 인간이 혹독한 시기를 보낸 뒤 더 나은 인간, 더 강인한 인간이 된다고 주장했다. 전쟁이나 기근 같은 역경이 인간을 더 강한 존재, 더 탄력적인 존재, 더 도덕적인 존재로 만든다는 것이다. “역사는 비단신을 신은 자들이 계단을 따라 내려가고 나막신을 신은 자들이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소리로 가득 차 있다.” 이 말은 볼테르가 남겼다고 알려져 있는데, 여기에는 국가나 문명 등 한 사회의 흥망성쇠가 사회 구성원의 특성에 달려 있고, 그 특성은 사회의 물질적ㆍ도덕적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는 생각이 반영되어 있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이런 역사관을 바탕으로 역사가 기록되어 왔으며 20세기 중반에야 비로소 그 인기가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현대 역사가들은 ‘나막신과 비단신’ 개념을 거의 묵살하다시피 한다. 여기에는 자료 부족을 비롯한 꽤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강인함이나 탄력성 같은 무형의 특성은 입증하거나 정량화하기 어려울뿐더러 사실에 기반을 두고 동료 심사까지 거치는 학술서에 그런 내용을 포함하기에는 정당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역사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 아님은 분명하다.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모두 겪은 세대는 과연 가장 위대한가

1900년에서 1930년 사이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가장 위대한 세대’라고 불리곤 한다. 물론 역사상 험난한 시기도, 또 그런 시기를 극복한 세대도 많았기 때문에 한 세대를 콕 집어 “가장 위대하다.”라고 부르는 게 다소 어리석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 세대를 기준으로 보면 ‘가장 위대한 세대’에 속하는 구성원이 정말 거칠고 굳세어 보인다.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그들이 제2차 세계대전을 겪기 전에 이미 10년 이상 지속된, 현대 역사상 최악의 경제적 시련도 견뎌 냈기 때문이다.

어떤 세대의 상대적 강인함을 0~10점 기준으로 측정한다면 가장 위대한 세대는 7점은 받을 것이다. 이는 1900~1930년대에 태어난 사람 열 명 가운데 일곱 명이 ‘강인한’ 인간의 자격 조건을 충족한다는 뜻이다. X세대 역시 강인했다. 그 중 몇몇은 네이비 실(Navy SEAL)이 되었고, 또 몇몇은 걸어서 남극 대륙을 횡단했다. 하지만 X세대는 열 명 가운데 두 명 정도만이 그런 일을 할 만큼 ‘강인하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어떤 세대가 역경에 더 탄력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면, 그 세대의 개개인이 모두 더 강인하다는 뜻이 아니라 단지 그 세대 안에서 강인한 사람의 비율이 더 높다는 의미다. 이는 강인함이라는 특성을 전체 사회에 적용하는 개념화된 방법인 동시에, 강인함 같은 특성을 정량화하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지 강조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사회

전쟁과 빈곤은 역사에서 상수가 아니다. 그런 위기를 겪으며 회복 탄력성이 높아지는 사람들도 일부 있지만 모두가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운이 대단히 좋아서 전투에 휘말리거나 경제적 궁핍을 겪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역사상 병으로 고통 받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심각한 질병이 인간을 더 강인하게 만든다는 주장은 언뜻 이상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전염병이 비교적 자주 발생하고 그로 인한 사망률이 높았던 사회의 구성원은 오늘날 대다수가 갖지 못한 수준으로 회복 탄력성이 높았을지도 모른다.

분명 질병은 어떤 면에서 우리를 더 강인하게 만든다. 인간의 면역력은 대개 질병에 걸렸던 사람들을 통해 강해지기 때문이다. 이는 과학적인 증거로 뒷받침되는 사실이다. 하지만 질병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했던 개인이 더 강인하고 탄력적인 사람일까? 그런 사람이 많을수록 더 강인한 사회일까? 바로 이런 질문들이 미지의 영역에 들어가는 중요한 질문일 수 있겠다는 직감이 들기는 한다. 하지만 이를 정확히 측정하거나 입증할 방법은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에 개인이 강인해져야만 하는 시기도 역사적으로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현재는 강인함이라는 자질이 생존을 위해 옛날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주장 역시 충분히 제기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나막신과 비단신’ 비유를 이해한다면 결국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혹독한 시대를 겪는 사람들이 강인해지는 것이라면 그리 혹독하지 않은 시대를 겪는 사람들은 강인해질 필요가 없는 것 아닐까? 게다가 비단신을 신은 계층 역시 강인함을 상쇄하는 고유한 강점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백병전이 사라진 현대 전쟁에서 ‘강인함’은 얼마나 유효한가

군사사가 한스 델브뤼크는 현대식 군대를 특징짓는 요소(조직, 전략, 훈련, 병참, 지도력 등)가 문명 수준이 낮을 때 자연스레 얻게 되는 강인함이라는 강점을 상쇄하기 위해 고안됐다는 이론을 내놓았다. 그는 고대 게르만 민족이 잘 교육받은 로마 군대에 연전연패당한 사실을 두고 이렇게 지적했다. “문명 수준이 높은 사람들에 비해 야만인은 호전적인 에너지를 마음껏 뿜어낸다는 강점이 있다. 마치 고삐 풀린 짐승의 본능 같은 근원적인 강인함을 내뿜는 것이다. 문명은 인간을 개화해 더욱 감성적으로 만들며 그 과정에서 신체적인 능력이나 용맹함 같은 군사적 자질을 약화한다. 이처럼 문명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약점을 상쇄하려면 인위적인 수단이 필요하다. …… 상비군을 조직하는 주된 목적에는 문명화한 사람들을 규율로 단련하여 덜 문명화한 사람들을 저지할 능력을 갖추는 것이 포함된다.”

델브뤼크에 따르면 애초에 도시 국가에서 국경 너머의 야만인들에 비해 온순한 농부들을 훈련과 규율을 통해 군대로 조직화한 것은 혹독한 자연환경에서 사납고 호전적으로 변한 이들에 대적하기 위해서였다. “시민이나 소작농으로 평범하게 살아가는 로마인을 한 무리 데려다가 인원수가 같은 야만인 무리와 싸움을 붙이면 로마인 무리가 패배할 것이다. 사실 제대로 싸우기 전에 도망갈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을 상쇄하기 위해 로마군은 전술적으로 긴밀하게 단결된 보병대를 편성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는 군사용 무기와 기술이 엄청나게 발달한 상황이다. 급기야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미국 캔자스의 방구석에 앉아 아프가니스탄의 적군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다. 이때 그 무인 비행기 조종사는 오랫동안 검술을 연마하며 미래의 결투를 대비해 온 19세기 일본 소년처럼 비디오 게임으로 조종 기술을 연마했을 터다. 사살한 시체를 가까이서 본 경험도 거의 없을 요즘 킬러들은 전투 무기를 다루는 법을 훈련하는 대신 드론을 날려 보내 산악 지대에 적응한 강인한 부족 전사들을 쏴 죽인다.

델브뤼크의 로마 군대 이야기에서 나타나듯, 오늘날의 군대도 부족한 강인함을 상쇄하는 여러 방법들을 찾아냈다.(물론 오늘날에도 전투 현장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군대의 선봉대는 적군 못지않게 강인하다. 고대 로마도 정예병만큼은 강인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본국에 있는 지원 세력과 시민군까지 고려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하지만 강인함이라는 특성은 여전히 전쟁의 승패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특히 계속 늘어나는 전사자 수와 전쟁 비용을 어디까지 감당할 것인가를 결정할 때 강인함이 핵심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역사가가 동료 심사를 거쳐야 하는 논문에서 그 사실을 무슨 수로 확증할 수 있을까?

팬데믹의 서막?

과거를 살아가던 인류가 일상적으로 마주했던 질병과 전염병, 그리고 이따금 직면했던 세계적인 유행병은 규모 면에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초월한다. 만약 오늘날 세계적인 유행병이 번져 세계 인구의 10퍼센트가 사라진다면 그 파급 효과가 어떨지 상상해 보라. 이는 과거 최악의 유행병이 돌았을 때의 수치에는 근접하지도 않는 수준임에도, 오늘날 인구수를 고려하면 7억 명이 갑자기 사망한다는 뜻이며,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사망자 수의 약 열 배에 해당한다. 그 여파가 상상이 되는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서 모두가 세계의 종말이 왔다고 믿었다.”

1340년대에 ‘흑사병’이 서방 세계를 찾았다. 흑사병은 그보다 10년 정도 전에 아시아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도 있는데, 당시 중국 도시들이 황폐해졌고 몇몇 지역에서는 사망률이 90퍼센트에 이르렀다는 기록이 있다. 인류 역사상 이 정도 규모의 역병은 처음이었다. 흑사병이 그처럼 많은 사상자를 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인구가 임계치에 도달했기 때문일 수 있다. 게다가 더욱 효과적인 운송 수단이 발달하여 사회 간 상호 작용이 어느 때보다 활발해졌는데, 이런 요인들은 흑사병의 전파력은 물론 지속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속성은 전염병이 얼마나 많은 사상자를 낼 수 있는지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흑사병을 보고한 초기 기록들에는 동쪽에서 출발해 서쪽 항구에 모습을 드러낸 선박들을 묘사하는 대목이 있다. 선박에 탄 선원들은 알 수 없는 역병으로 모두 죽었거나 죽어 가고 있었다. 아직 생존해 있던 선원들은 선박에서 화물을 내려 마을을 방문했을 것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부두에서 혹은 마을에서 그들과 접촉했을 것이다. 역병은 아주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럽은 중국과 비슷한 수준의 사망률을 기록했다. 마을이란 마을은 모두 지도에서 사라질 기세였다.

현재 남아 있는 기록은 당시의 절망적인 상황을 이렇게 묘사한다. ‘거대한 구덩이를 여러 개 파서 수많은 시체를 빼곡히 쌓았다. 사람들이 밤낮으로 수백 명씩 죽어 나갔다. 구덩이가 가득 차면 곧바로 새로운 구덩이를 새로 팠다. 나, 뚱보라고도 불리는 아뇰로 디 투라는 내 손으로 나의 다섯 아이를 묻었다. 시체를 묻은 다음 흙을 너무 얕게 덮은 바람에 개들이 시체를 끌어내 도시 곳곳에서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기도 했다. 누가 죽더라도 슬피 우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서 모두가 세계의 종말이 왔다고 믿었다.’

전염병이 창조해 낸 고요한 비극

우리의 친구 뚱보 아뇰로는 이렇게 기록했다. “아버지는 자식을 버렸고 아내는 남편을 버렸으며 형제가 다른 형제를 버렸다. 이 질병이 서로의 숨을 통해 그리고 눈을 통해 전염되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들은 죽어 갔다. 돈이나 우정이 시체 묻을 사람을 찾아 주지는 않았다. 집안사람들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망자를 데려다 구덩이에 넣었다. 사제도 없었고 기도도 없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유행병이 인간 사회의 유대 자체를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충분히 발전한 사회가 그처럼 빠르게 세균 지옥으로 몰락한 사례가 언제 또 있었단 말인가? 부모가 자녀를 유기하는 상황으로는 부족했는지 흑사병을 향한 두려움은 사회를 지탱하던 다른 요소들까지 무너뜨렸다. 이웃에게서 우정과 지원을 바라는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능에 합선이 일어났다. 모두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아무도 그것에 걸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연결된 세계를 살아가는 오늘날에 비해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것이 훨씬 더 중요했던 시대에 사람들은 서로에게서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흑사병은 고요한 비극을 창조했다. 사람들이 사실상 혼자서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것이다.

최악의 감염병이 더 큰 규모로 더 빠르게 퍼질 수 있다

인류는 이미 흑사병 부류의 병원균을 무기화하려는 의도로 활용한 적이 있다. 1930년대와 1940년대에 일본군이 의도적으로 벼룩에 페스트를 주입해 중국의 도시에 투하했던 것은 확실하다. 그때 이후로 세균전은 많은 진전을 보였다. 사실 공기로 전파되는 병원균을 무기로 사용한다는 생각은 전 세계 무기고에 있는 다른 어떤 무기를 활용하는 것보다 더욱 무시무시하고 더욱 파괴적일 수 있다.

게다가 새로운 질병들도 나타난다. 거의 매년 새로운 종류의 독감이 돼지, 가금류, 조류로부터 인간에게 옮는다. 스페인 독감은 스스로 존재를 드러내기까지 알려지지 않은 질병이었다. 에이즈 역시 마찬가지였다. 또 우리가 ‘박멸’한 질병이라도 자체적으로 변이가 일어나거나 질병 억제를 위한 백신, 치료제, 항생제, 해독제의 효과가 떨어지면서 그 위험이 되살아날 수도 있다.

아무래도 팬데믹에 따르는 직접적인 결과인 대규모 사망 사태에 집중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 외에 다른 많은 사회 분야에 미치는 파급 효과 역시 상당하다. 정부나 보건 당국이 미래에 질병이 초래할 수 있는 직접적인 위협뿐 아니라, 대중의 공포나 불안, 불합리한 행동 등으로 촉발될 위협도 똑같이 염려하고 있다는 것이 최근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역사를 고려하면 당연하다.

우리의 구급함에는 질병에 맞서 싸울 도구가 그 어느 때보다 넘쳐 나지만, 현대 사회는 병균에도 어느 정도 유리하다. 우리는 과거에 비해 훨씬 더 상호 연결된 세계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이제 감염병이 훨씬 더 큰 규모로 훨씬 더 빠르게 퍼져 나갈 수 있다. 전문가들이 그 존재를 알아차리기도 전에 세계적인 유행병이 세계 곳곳을 돌아다닐 수 있다. 인류가 역사상 다시는 없을 최악의 전염병을 이미 경험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H. G. 웰스의 『우주 전쟁』에서 지구를 정복하려던 외계인은 지구의 병균 때문에 전멸을 당한다. 바로 그 지구의 방어 기제가 우리를 먼저 덮치지 않기를 바란다.

학대받은 아이들

부모가 자녀를 잘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한다. 하지만 강인함과 마찬가지로 이를 통해 인간성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한 인간이 성인으로 자라나는 과정에서 양육 방식이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인식하지만, 과거에 그것이 개인 혹은 역사 전반에 어느 정도로 영향을 미쳤는지는 쉽게 평가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자녀 양육 방식에 아무런 역사적 의미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상하다. 옛날 부모들이 자녀를 전부 잘못 길렀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여러 조치들 덕분에 최근 자녀를 키우는 환경이 나아졌다는 데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아이들 개개인이 얻은 유익은 하나하나 계산할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개인이 얻은 유익이 어떻게 사회적 차원으로 이어지는지를 평가하기란 어렵다. 양육 환경의 발전은 큰 변화를 일으켰지만 얼마만큼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밝히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자녀를 기르는 방식이 크게 발전하면서 사회는 더 나은 곳으로 바뀌었을까? 반대로 예전의 형편없는 양육 환경이 다시 사회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까?

자녀 양육 방식과 국가 외교 정책의 상관관계

로이드 드마우스는 자녀를 키우는 방식이 역사적으로 중요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초기 학자 가운데 하나인데, 드마우스를 비롯한 역사 심리학자들은 오늘날 심리학자나 정신과 의사가 개인을 바라보듯이 과거 사회를 바라보며, 영유아기에 아이들이 겪은 발달 과정이나 부모의 행동이 이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고찰한다. 참고로 드마우스는 이전 시대 아이들 대부분이 오늘날 기준을 적용하면 아동 학대 피해자에 해당한다며, 이런 현실이 예컨대 중세 시대가 그토록 잔인했던 이유 같은 역사적 흐름에도 영향을 주었을지 모른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인간 사회가 얼마나 다양한지를 고려하면 그런 주장은 지나친 일반화처럼 보일 수 있다. 복잡한 도시 사회라면 그런 주장이 통할지도 모르지만, 대개의 전근대 및 부족 사회에서는 부모와 친지의 넉넉한 사랑과 돌봄이라는 오랜 관습에 기대 아이들을 길렀다. 물론 이전 시대 사회 구성원이 오늘날 관점에서 영구적인 손상을 줄 것처럼 보이는 행위나 활동에 아이들을 지나치게 자주 노출시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중 몇몇은 그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여러 방식 가운데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예컨대 수천 년 전 아이들이 성장기에 여러 차례 목격했을 폭력 행위는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일지도 모르지만, 당시의 아이들에게는 거의 혹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당시 아이들 세계에서는 그런 폭력이 생활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논의에서 중요한 변수 한 가지는 ‘당시 사회 문화가 오늘날 우리가 학대나 방임 혹은 감정적ㆍ심리적 외상이라고 부르는 행위들을 얼마나 막아 주었는가?’ 하는 것이다. 현대인이 보기에 끔찍하게 비상식적인 행동이라도 과거에 훨씬 긍정적으로 여겨지고 문화적으로 지지를 받았다면 그 악영향 역시 덜했을 수 있다. 이는 마치 아동 학대나 잘못된 양육 방식이 미치는 영향은 시대에 따라 등급을 매겨 나누어 놓은 것 같다. 하지만 어떤 행위가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고 낙인찍히지 않는다고 해서 그로 인한 악영향 역시 줄어든다고 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시대나 사회에 상관없이 피해는 일정하다고 주장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문화에 따라 피해를 받는 정도가 달라진다고 주장한다. 한쪽은 드마우스처럼 이전 시대 사람들은 대다수가 오늘날의 아동 학대 피해자나 다름없으므로 아동 학대 피해자들끼리 사회를 만들고 움직이고 이끌며 살아간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하고, 다른 쪽은 이전 시대 사람들이 어릴 적에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보살핌을 받았든 근본적으로는 사회에 잘 적응한 평범한 성인으로 자라났다고 주장한다.

과연 무지(無知)는 죄가 될 수 있는가

현대의 부모들은 자녀가 TV와 비디오 게임에 나오는 가상의 폭력 행위에 노출되는 것, 그리고 지속적인 노출의 결과 실제 잔혹 행위에도 둔감해지는 것을 걱정한다. 하지만 과거 여러 시대에는 TV 프로그램을 위해 꾸며 낸 폭력이 아니라 실재하는 폭력 때문에 아이들이 또 다른 폭력에 둔감해졌다. 아이들이 유년기부터 진짜 살인이나 고문 행위를 눈앞에서 보고 자란 사회를 떠올려 보라. 어떤 경우에는 아이들이 그런 잔혹 행위에 직접 참여했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일부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에서는 여성이나 아동이 전쟁 포로를 고문하는 자리에 참여하는 것이 문제없이 받아들여진다.

요즘 그처럼 유혈이 낭자하는 폭력적인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가 있다면, 우리는 그 아이가 정신적으로 심각한 상처를 입었으며 상담과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시대나 문화를 막론하고 모든 아이가 그런 경험에서 동일한 영향을 받았을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이전 시대 사람들은 동물들이 도륙당하고 사람이 죽임당하는 모습을 당연한 일처럼 보고 자랐기 때문에 현대적 감수성을 지닌 사람에 비해 오히려 폭력에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실 오늘날 우리는 어떤 행위가 시대와 무관하게 모든 인간에게 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나의 행위가 누구에게나 동일한 영향을 끼쳐서 그 사람을 전혀 다른 종류의 인간으로 바꾸어 놓지는 않는다. 현재든 과거든 잔혹한 공개 처형 장면을 실시간으로 여러 차례 목격한 아이라면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아이들과는 폭력에 영향을 받는 정도나 방식이 다를 것이다. 반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아이가 그런 경험을 한다면 아마 오래도록 상담이나 약물 치료를 받아야 할 것이다.

지금은 맞지만 미래에는 틀릴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심각한 수준의 아동 학대만 고려하다 보니 물리적ㆍ감정적 방치 행위는 가벼운 문제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아동 전문가는 부모와 자녀가 꾸준히 접촉하지 않으면 자녀가 영원히 나쁜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역사 심리학자들은 그런 방치 행위가 과거에도 많은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얼핏 쉬운 문제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부모의 방치 행위가 과거에 사회 차원에서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판단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과거 많은 사회에서는 오늘날과 달리 부모와 자식이 그리 많이 접촉하지 않았다. 갓난아기에게 젖을 물리며 유대감을 키우는 경험마저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 여러 사회와 문화에서 수천 년 동안 유모 제도가 큰 인기를 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모에게 자녀를 맡길 경우 자녀는 대개 부모와 멀리 떨어져 살아야 했으며 때로는 그 기간이 수년에 달했다. 이전 시대에서는 별 거리낌 없이 다른 이에게 자녀를 양도하는 충격적인 사례도 찾아볼 수 있다. 아이가 입는 정신적 외상은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자신을 키워 준 유모와 여러 해를 함께 보내며 아무리 깊은 유대감을 형성했어도 결국 다시 생물학적 부모 곁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아이의 입장에서는 유일한 부모라고 생각했던 유모와 생이별을 당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린 자녀는 상품에 가까운 취급을 받기도 했다. 일단 아이를 팔아넘기는 것은 돈이 되는 장사였다.(오늘날에도 일부 지역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또 노동에 투입하려고 아이들을 차출하는 경우도 있었다. 중세 시대 도제 제도 아래에서는 불과 대여섯 살 먹은 아이들이 주변에 있는 성이나 마을로 불려가 노동자로 일했다. 부모들은 이런 관행이 징벌이나 학대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제대로 된 성인으로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기초 기술을 배우는 소중한 수련 기간이라고 여겼다.

또 농경이 시작된 이래 농가에서는 땅을 일구고 식량을 마련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인원을 동원해야 했다. 전반적으로 아이들을 마음껏 착취할 수 있는 저임금 노동자로 여겼던 것이다. 미국에서는 1930년대에 들어서야 광업이나 제조업 같은 위험한 산업 분야에서 아동 노동자를 쓰는 것이 법으로 금지됐다. 그런데 당시에는 이러한 개혁의 움직임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상상 이상으로 높았다. 오늘날에는 열두 살짜리 아이를 공장에 보내겠다는 이야기에 누구나 성장에 미칠 악영향을 걱정할 것이다.

우리 선조 가운데는 충분히 똑똑한 사람도 많았을 텐데 어째서 그런 관행들이 아이들에게 엄청나게 나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악영향’이 그들 생각과는 달랐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현재 우리가 사는 세계와는 여전히 다른,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에 맞는 방식으로 아이를 키워야 했던 것이다. 사실 미래의 육아 전문가들이 오늘날 우리가 아이를 기르는 방식을 보고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는 일 아닌가? 현재 우리가 최고의 양육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관행 역시 미래에는 아동 학대가 될 수도 있고 아동에게 나쁜 행위로 여겨질 수도 있다. 물론 우리는 우리가 아는 한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변론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선조들 역시 똑같이 변론할지도 모른다.

지옥으로 가는 길

핵전쟁이 발발해 수백 개 혹은 수천 개의 핵무기가 사용되었다면 모두의 머릿속에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라는 질문이 떠올랐을 것이다. 특히 1960년대 후반 이후(양 진영에 핵무기가 충분히 많아졌고 현대적인 미사일 운반 체계가 개발된 때다.) 전면적인 핵전쟁이 발발했다면 우리는 오늘날까지도 복구 활동을 벌이고 있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도시 수백 곳이 폭격을 맞아 시체 투성이의 광대한 폐허로 변했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사방에 방사능이 남아 있을 것이다.

미래에 우리 후손이 역사책을 읽은 뒤 우리를 두고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말도 안 되게 강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만 다를 뿐, 로마인이 말하던 무모하고 유아적인 ‘야만인’과 뭐가 다르냐고 반문한다 해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악랄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억울하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고들 한다. 핵 학살극이 일어났더라도 혹은 일어나더라도 결코 사람들이 악랄해서 그런 시도에 삶과 명성을 갈아 넣은 것이 아니다. 지옥으로 향하는 길을 닦은 수많은 사람들은 아돌프 아이히만 같은 사악한 괴물이 되기를 바란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노력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기를 바랐다. (역사의 묘한 측면 중 하나는 아이히만 같은 사람조차 자신의 행동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기를 바랐다는 것이다. 물론 아이히만이 생각하는 더 나은 결과는 끔찍했지만 말이다.)

우선 다이너마이트 발명가 노벨을 생각해 보자. 현대 무기의 위력을 증강하는 데 노벨만큼 크게 기여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노벨도 백작 베르타 폰 주트너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의 (평화) 회의보다는 내 공장이 더 빨리 전쟁에 종지부를 찍을 겁니다. 양쪽 군대가 서로를 순식간에 말살할 수 있게 되는 순간 모든 문명국가는 두려움에 몸서리치며 군대를 해산하고 말 테니까요.” 현대전이 너무 끔찍해서 전쟁 자체가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노벨의 생각은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기술과 무기에 거는 기대와도 맞닿아 있다. 이런 논리는 어째서 착하고 도덕적인 사람이 재앙 같은 결과에 기여할 수 있는지 설명해 준다. 또 온갖 종류의 끔찍한 일들이 괜찮은 생각처럼 보이게 만든다.

인류는 어쩌다 지옥으로 가는 길에 들어섰는가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참전 용사들 혹은 그 밖의 사람들은 일본에 원자 폭탄을 투하한 덕분에 자신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믿었다. 당시에 그들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여성과 아이를 포함해 20만 명 이상을 죽음에 이르게 한) 원자 폭탄이 하나씩 떨어진 덕에 일본을 육상으로 침공했을 경우 스러졌을 연합국 군인 100만 명의 목숨을 지킬 수 있었다고 느꼈다. 또 참전 용사들은 당시 교전 수칙에 따르면 원자 폭탄 사용이 잘못된 일도 아니었다고 지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어쩌다 인류가 그런 수준의 폭력을 게임 규칙으로 받아들이는 상황까지 왔는지 물을 수도 있지 않을까? 윤리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어쩌다 민간인이 살고 있는 도시에 원자 폭탄을 투하하는 결정을 받아들였을까?

원자 폭탄 투하는 진정 불가피한 결정이었나

제2차 세계대전 말기는 지구상에서 총력전이 벌어진 마지막 시기였다. 국가 입장에서 총력전을 치른다는 것은 개인 입장에서 아무런 제한 없는 살육전을 벌인다는 의미였다. 윤리적인 선은 국지전(limited war, 총력전의 반대말)에서나 존중받을 뿐, 총력전에서는 그것을 마구 넘어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총력전은 위험 부담이 너무 커서 모두의 머릿속에 사느냐 죽느냐 하는 생각밖에 없었다.

고대 전쟁의 신들(그리스 신화의 아레스나 로마 신화의 마르스)은 경계선을 넘나드는 광기를 보여 준다. 실제로 전투는 기존과는 다른 현실을 창조하여 평화로운 시기라면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는 규칙을 만들어 낸다. 또 전투가 정신에 압력을 가하는 과정에서, 위태로운 상황에서 생존을 돕는 투쟁 도피 반응(긴급한 상황에서 빠르게 방어를 하거나 문제 해결 반응을 보이기 위한 흥분된 생리적 상태)이 생기고 다양한 생화학 물질이 분출한다. 그런 환경과 압력 속에서 반성적인 사고를 수행하기란 쉽지 않다. ‘열혈’ 사태에서 하는 행동과 ‘냉혈’ 상태에서 하는 행동이 다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평화로운 오늘날을 기준으로 하면 총력전은 윤리적으로 정당화하기 어려워 보일 뿐 아니라 비난하기도 쉽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일이었는지 상상하기는 극도로 어렵다. 의사 결정권자들은 종종 끔찍한 선택을 내려야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쟁이었으며 전 세계에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고통을 남겼다.

만약 그런 전쟁을 초장에 끝낼 수 있다고 한다면 어디까지 극단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을까? 당시 영국이나 프랑스에 원자 폭탄이 있었다면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마자 베를린에 원자 폭탄을 투하하자는 생각에 찬성했을까? 그런 결정을 내렸다면 100만 명에 이르는 독일인이 불에 타 죽었을 것이다. 또 역사적으로 중요한 문화적 중심지가 파괴되었을 것이다. 그 대신 첫날에 전쟁이 끝났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랬다면 원자 폭탄으로 희생당하는 사람보다 목숨을 구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수치로 보면 더욱 충격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동부 전선에서 사망한 사람만 3000만 명에 달하며 홀로코스트로 사망한 사람 역시 600만 명에 달한다. 과연 무엇이 옳은 행동이었을까?

물론 아무도 그런 결정을 내릴 기회를 갖지 못했다. 1945년까지 어떤 국가도 원자 폭탄 실험에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험에 성공했을 무렵 제2차 세계대전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으며 그때 바로 원자 폭탄을 사용했다면 종전이 빨라졌을지도 모른다. 원자 폭탄을 쓰기로 결정한 (유일한) 사람은 트루먼이었으며 결정을 내릴 당시 막 대통령에 취임한 상태였다. 부통령으로 일한 지 고작 세 달 만에 루스벨트 대통령이 갑자기 사망했던 것이다. 트루먼은 그제야 원자 폭탄의 존재를 알았다. 신임 대통령 입장에서는 너무나 부담스러운 선택권이 눈앞에 놓여 있었던 셈이다. 1945년 7월 25일, 취임 후 불과 두 달 만에 포츠담에서 스탈린, 처칠과 회의를 하고 나서 트루먼은 일기에 이렇게 기록했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끔찍한 폭탄을 발견했다. 이것은 노아와 그의 전설적인 방주가 등장한 후 유프라테스 계곡 시대에 예언되었던 불의 심판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우리는 원자를 분열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 ‘같다.’ 뉴멕시코 사막에서 실시한 실험은 부드럽게 표현하더라도 가히 충격적이었다. 이 무기는 지금부터 8월 10일까지 그사이에 일본에 사용될 것이다. 나는 국방부 장관 스팀슨에게 여성이나 아이가 아니라, 군사 목표물, 군인, 선원을 표적으로 폭탄을 써야 한다고 지시했다. 일본인이 아무리 야만적이고 잔인하고 무자비하고 광적이어도 공공의 번영을 위해 싸우는 세계의 지도자인 우리는 이 끔찍한 폭탄을 옛 수도나 새 수도에 떨어뜨려서는 안 된다. 스팀슨과 나는 의견이 일치했다. 우리는 순전히 군사적 목표물만을 표적으로 삼을 것이고 일본인에게 목숨을 구하고 싶으면 항복하라고 경고하는 성명을 발표할 것이다. 그들이 경고를 따르리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기회는 줘야 한다. 히틀러나 스탈린 일당이 원자 폭탄을 개발하지 못한 것은 분명 세상을 위해 다행이다. 원자 폭탄은 지금까지 개발된 무기 가운데 가장 끔찍한 것이지만 가장 유용하게 활용할 수도 있다.’

실제로 미국의 공식적인 입장은 일본에 떨어진 두 개의 원자 폭탄은 모두 군사적 목표물을 대상으로 투하하였으며, 민간인 사망은 어쩔 수 없는 부수적 결과라는 것이었다. 민간인 5만에서 10만 명이 죽을 줄 알면서도 폭탄을 투하해 놓고 어떻게 그것을 받아들일 만한 부수적 피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여러 세대에 걸쳐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시기를 보낸 우리가 보기에는 도덕성이 굉장히 의심되는 주장이다. 하지만 언제나 맥락이 중요하다. 1945년에 세계는 무려 6년에 걸친 총력전의 잔혹한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당시에는 전 세계의 수많은 지식인들, 심지어 동정적인 사람들마저 원자 폭탄 투하가 옳은 선택이라고 보았다. 무엇보다도 미국이 그때까지 벌여 온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은 선택이었다.

지옥을 향한 길목은 언제나 우리 앞에 놓여 있다

1899년 헤이그 협정에서 언젠가 폭격기가 민간인을 해치지 않을 만큼 정확해져서 인도주의적 무기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던 사람은 미국 대표였다. 국민 여론상 수많은 민간인을 무차별 사살하는 교전 방침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라 역시 미국이었다. 바로 그런 미국이 가장 위력적인 무차별 살상 무기라고 할 수 있는 원자 폭탄을 (유일하게) 사용한 국가라니 정말 아이러니하다.

총력전의 논리는 참으로 잔혹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15년 후, 사람이 거주하는 지역에 폭탄이나 고고도 폭발물을 사용하는 것이 합법이라는 규칙이 성문화되면서(어쨌든 모든 국가가 그렇게 하고 있었다.) 냉전 중인 미국 역시 핵무기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생겼다. 세계 지도자들이 3억 명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1억 명을 몰살하는 결정이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만하거나 정당화할 만한 일인지 논의하기 시작하자 논리적 광기의 중요성이 급속도로 커졌다.

분명 사망자 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논리적이다. 특히 그 과정에서 3억 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무기 때문에 1억 명이 잔혹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상황을 온당하고 선한 행동으로 해석하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만약 인류가 전 세계적인 핵전쟁에 돌입해 암흑기를 다시 불러일으킨다면 우리는 모두 “이 미친놈들! 너희가 다 망쳤어!”라고 외친 찰턴 헤스턴과 똑같은 감정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설령 인류가 그런 결과를 맞이한다 하더라도 누군가 그런 결과를 맞이하기를 원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텍스트 상자: 본 도서요약본은 원본 도서의 주요 내용을 5% 정도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원본 도서에는 나머지 95%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보다 많은 정보와 내용은 원본 도서를 참조하시기 바라며, 본 도서요약본이 좋은 책을 고르는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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