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는 이렇게 쓴다

밀리언서재 / 2020년 9월 / 280쪽 / 15,000원

하루키는 이렇게 쓴다

하루키는 이렇게 쓴다

나카무라 구니오 지음

저자 소개

1971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프리랜서 영상 디렉터로 다양한 TV 프로그램을 연출하다 2008년부터 도쿄 오기쿠보에서 북카페 ‘로쿠지겐(6차원)’을 운영하고 있다. 로쿠지겐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들이 자주 찾는 곳으로 유명하며 노벨문학상을 발표할 때 TV 중계를 하는 곳이기도 하다. 무라카미 하루키 독서회, 미술관 및 출판사와 컬래버레이션으로 진행되는 토크 이벤트 등을 기획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하루키의 언어』, 『산책하면서 즐기는 무라카미 하루키』, 『마법의 문장 강좌』 등이 있다.

책소개

무라카미 하루키는 구체적인 지명을 반복적으로 등장시키면서 허구의 작품 속에 자신의 실제 생활을 드러냄으로써 독자들이 하루키의 일기를 엿보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SNS에서 타인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싶은 욕구를 자극하는 것과 같다. 그밖에 수수께끼 같은 긴 제목으로 뭔가 일어날 것 같은 암시를 주는 법, 구체적인 연도로 독자들의 기억력을 상기시키는 법, 강한 키워드로 독자의 상상력을 소환하는 법, 색으로 감정과 이미지를 표현하는 법, 명작을 인용해 격조를 높이는 법 등을 통해 하루키의 글 쓰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요약본 본문

제1장 33가지 작법으로 무라카미 하루키 읽기

제목에 강력한 키워드를 넣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중에는 기묘하게 긴 제목을 가진 작품이 많다. 전집에서 수록되지 않은 환상 속의 작품 <BMW의 창유리 모양을 한 순수한 의미에서의 소모에 대한 고찰>도 꽤 긴 제목의 작품이다. 이상하게 신경이 쓰이는 ‘BMW’, ‘창유리’, ‘소모’, ‘고찰’이라는 강한 느낌이 드는 키워드가 군데군데 들어가 한 줄의 제목만으로도 내용을 상상하면서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어느 날 ‘나’는 유복하지만 늘 돈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는 친구에게 3만 엔을 빌려주게 된다. 그리고 8년 후에 연락해서 돈을 갚으라고 말하지만 금색의 롤렉스 시계를 하고 BMW 자동차를 타는 친구는 돈을 갚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짧은 이야기다. 이 ‘BMW’라는 자동차로 어느 정도 돈을 가지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작전은 하루키 작품에 종종 등장한다. 단편소설 『렉싱턴의 유령』에도 오래된 저택의 현관 앞에 세워져 있는 파란색 BMW 왜건이 등장한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에서도 주인공 하지메가 타고 다니는 차가 BMW다. 이렇게 ‘BMW’라는 중요한 키워드를 배치하는 것으로 일본 거품경제기의 왠지 모르게 나른하고 풀어진 분위기를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더 기묘한 제목도 있다. <로마제국의 붕괴ㆍ1881년의 인디언 봉기ㆍ히틀러의 폴란드 침입ㆍ그리고 강풍세계>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특별할 것 없는 하루의 이야기를 에둘러 표현한 문체로 완성한 『빵가게 재습격』에 수록된 초기 단편소설이다.

어느 일요일 오후에 강풍이 불기 시작한다. 여자친구에게 걸려온 전화벨이 울렸을 때, 시곗바늘은 2시 36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이런, 나는 또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계속 일기를 썼다’라는 이야기다. 아마도 제목의 키워드인 ‘로마제국’은 주인공인 ‘나’의 혼자만의 시간, ‘인디언 봉기’는 여자친구에게 걸려온 전화, ‘폴란드 침입’은 여자친구가 집에 찾아오는 것의 비유라고 생각된다.

이처럼 숨겨진 의미를 등에 짊어진 단어가 곳곳에 들어간 제목을 통해 독자는 책을 다 읽고 나서 수수께끼의 비밀을 알아냈다고 생각하게 된다.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에 수록된 단편소설 <사우스베이 스트럿-두비 브라더스의 ‘사우스베이 스트럿’을 위한 BGM>이라는 작품도 있다. 이 단편은 미국의 작가 레이먼드 챈들러에게 바치는 오마주다.

주인공은 사립탐정으로, 작품의 무대가 되는 캘리포니아 남부의 ‘사우스베이 시티’는 챈들러의 소설에 등장하는 거리인 ‘베이 시티’의 패러디다. 제목은 부제로도 쓰인 두비 브라더스의 노래 제목에서 따왔다. 흘러간 음악으로 시대를 한정한 제목은 이야기의 분위기나 시대감각을 그대로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 중 하나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 아름다운 과거: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은 『노르웨이의 숲』, 『스푸트니크의 연인』과 더불어 하루키의 3대 연애소설로 일컬어진다. 더불어 『노르웨이의 숲』과 같이 초현실주의적인 면이 거의 없는 하루키의 장편소설이다. 사랑과 상실을 주제로 했다는 점에서 전작 『노르웨이의 숲』과 일맥상통하지만, 『노르웨이의 숲』은 주인공이 공항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과거’로 돌아간다면, 이 작품의 주인공 앞엔 ‘과거의 연인’이었던 시마모토가 ‘현재’의 시점에 나타난다. 25년 전 아주 잠깐의 인연이었지만 서로에게 ‘운명’을 느꼈던 ‘시마모토’와 ‘나’는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나’는 ‘현재’ 아내와 아이가 있는 상태이지만, ‘시마모토’에게 순식간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시마모토’는 ‘나’와 하코네의 별장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주인공 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진다. 도쿄로 돌아온 ‘나’는 그간의 일을 아내에게 고백한다. 그러나 ‘현재’를 선택한 ‘나’ 앞에서 ‘아내’는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현재’의 시점이 이야기의 주요 무대란 점이 중요하다. ‘과거’의 영향에서 여전히 자유롭진 않지만. ‘현재’ 시점에 있는 주인공은 그 상실의 슬픔에 젖어 있지 않고, 새로운 일상으로 돌아온다. 누구나 과거의 상실과 슬픔이 있고, 잃어버린 사랑이 있을 수 있다. 하루키의 전작 역시 주인공인 ‘나’는 과거를 딛고 ‘현재’의 일상을 살아가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이 소설은 그 ‘현재’를 살아가는 ‘나’가 어떤 인물일 수 있을지를 좀 더 조명하는 것이다.

특히, 작품 안에서 냇킹콜이 부르는 노래 <Pretend>는 소설의 전체 주제를 관통한다.

“Pretend you’re happy when you’re blue” (슬플 때는 행복한 척을 해요)

--(중략)--

“The little things you haven’t got (당신이 갖지 못한 작은 일들 따위)

Could be a lot if you pretend” (다 좋은 일이 될 수 있어요. 당신이 행복한 척만 한다면)

과거는 언제나 미화된다. 과거에 있었던 일은-특히 그것이 슬픔과 관련된 일이라면- 좀 더 아련한 색으로 칠해지고, 때문에 우리 생의 어떤 과거는 어느 순간 개인적인 신화가 된다. 가끔 ‘현재’의 삶의 템포를 0.5배속 정도로 느리게 해, 상실된 신화 속에서 애수를 느끼는 것도 우리에겐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그땐 그랬지’라는 감상적인 이유가 ‘현재’의 소중함을 넘어서는 근거가 되진 못한다. 더불어 ‘과거’란 사실 ‘선택지’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에게 아련하게 남고 신화적 세계가 되는 것이다. 하루키의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은 이 지점을 정확하게 짚고 넘어간다. 과거와 단절하거나, 과거에 휩싸여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음미함으로써 ‘현재’의 소중함을 획득하는 것이다. 과거는 과거로 남아 있을 때 아름답다. 현재의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감수하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현재도 언젠가 우리에게 아름다운 과거가 될 것이다.

갑자기 소중한 무언가가 사라진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서는 항상 갑자기 무언가가 사라진다. 고양이가 사라지고, 아내가 사라지고, 애인이 사라지고, 색이 사라진다. 그렇게 마법처럼 여러 가지가 차례차례 사라지는 것이 하루키식 ‘양식’의 아름다움이다. 마치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고전적인 마술사처럼 한순간에 사람을 사라지게 만든다. 『태엽 감는 새 연대기』에서는 고양이가 사라진 후 아내가 사라지고, 『국경을 남쪽, 태양의 서쪽』에서는 시마모토 씨가 하코네의 별장에서 사라지고, 『스푸트니크의 연인』에서는 스미레가 그리스의 섬에서 연기처럼 사라지고, 『기사단장 죽이기』에서는 ‘내’가 그림을 가르치는 소녀 아키카와 마리에가 사라지고, 단편소설 <파랑이 사라지다>에서는 이 세상에서 파란색이 사라진다.

이처럼 하루키 작품에서 여성이나 고양이 등의 ‘갑작스러운 실종’이나 ‘상실감’이 중요한 테마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주인공이 그것을 찾기 시작하면서 이 세계의 뒤편으로 깊숙이 들어가게 된다. 이것이 하루키 문학의 큰 줄기라고 할 수 있다.

바다가 사라지는 이야기도 있다. <5월의 해안선>에서 ‘나’는 12년만에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거리로 돌아가 바다 냄새를 찾아 어린 시절 놀던 해안을 찾아가지만 바다는 사라지고 없다. ‘나’는 매립된 콘크리트 사이로 덩그러니 남아 있는 해안선을 바라본다. 잃어버린 풍경을 찾는 자전적인 이야기로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에 수록된 작품이다.

『신의 아이들은 춤춘다』에 수록된 <쿠시로에 내린 UFO-어떤 ‘이혼 선언’ 이후>에서도 어느 일요일 오후 시간에 직장에 다니던 고무라가 일을 마치고 집에 와보니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아내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다. 작품 속에선 고배 지진의 충격과 평소의 부부생활에 대한 불만을 그대로 표출하고 있는 아내의 충격적인 고백이 내밀하게 그려져 있다. “닷새 후인 일요일, 평소와 같은 시각에 그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고배 지진이 일어난 지 닷새 후에 그녀가 집을 나가면서 남긴 편지에는, “두 번 다시 당신에게 돌아올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쓰여 있었다. 거기에는 왜 그녀가 고무라와 함께 살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이유가 간결하게, 그리고 명확하게 쓰여 있었다. “문제는 당신이 내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는 거예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당신의 내부에는 나에게 주어야 할 게 아무것도 없단 말이에요. 당신은 다정하고 친절하고 멋있지만, 당신과의 생활은 마치 공기 덩어리와 함께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그것은 당신 한 사람의 책임만이 아니에요. 당신을 좋아하게 될 여성은 많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전화도 걸지 마세요. 남아 있는 내 짐은 모두 처분해주세요.”

이렇게 상실과 재생이 반복되는 가운데 주인공인 ‘나’는 조금씩 성장해나간다.

'100퍼센트의' 라고 말해본다

‘100퍼센트’라는 말은 굉장히 강력하다. 90퍼센트도 70퍼센트도 아닌 ‘100퍼센트’라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100퍼센트 유기농 면’, ‘100명에게 물었다’, ‘100주년’, ‘만족도 100퍼센트’ 등 사람들의 눈을 끄는 말로 습관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한자 백(百)은 수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굉장히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백은 숫자 100이기도 하지만 ‘무한의’ 또는 ‘완벽한’과 같은 의미를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마법의 말이다.

단편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는 말 그대로 ‘4월’의 어느 맑은 날 아침에 하라주쿠의 뒷길에서 ‘내’가 100퍼센트의 여자와 스쳐 지나가는 소소한 일상의 한 장면을 그린 이야기다. 이 ‘100퍼센트의 여자’라는 표현이 아주 얄미울 정도로 훌륭하다. 여기서 사용한 ‘100퍼센트’는 ‘무한의’라는 뜻이라기보다는 ‘완벽한’을 나타낸다. 만약 이 제목이 ‘봄의 어느 맑은 아침에 완벽한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였다면 내용은 같아도 인상이 흐릿해져 버린다. 역시 ‘100퍼센트’가 아니면 안 된다.

참고로 『노르웨이의 숲』이 나왔을 때 ‘100퍼센트의 연애소설’이라는 문구가 빨간색과 초록색의 표지 띠지에 크게 써져 있었는데, 이것은 하루키가 직접 쓴 것이다. 대만에서는 『노르웨이의 숲』이 크게 히트한 후에 ‘노르웨이의 숲 호텔’, ‘노르웨이의 숲 카페’, ‘노르웨이의 숲 아파트’ 등이 등장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가 번역되자 ‘100퍼센트의 여자’가 유행하면서 ‘100퍼센트의 OO’라는 말이 사회현상이 되기도 했다.

『노르웨이의 숲』- 그 시대를 잊지 마 : 한국에선 『상실의 시대』로도 잘 알려진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은 1987년 발간해 430만 부라는 경이로운 판매를 기록했다. 한국에선 처음 번역된 하루키의 작품이자,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이름을 알린 소설이기도 하다.

흔히 야한 소설이라거나, 연애소설로 많이 일컬어지지만, 이 작품은 일반적인 연애소설의 삼각관계에서 그려지는 애정과 질투, 사랑의 결실 등의 서사와는 주안점이 다르다. 물론 와타나베-기즈키-나오코 간의 삼각관계와 이후 와타나베-나오코-미도리 간의 삼각관계는 언뜻 봐서는 연애소설의 구도를 연상케 하지만, 그들은 서로 질투를 하거나 경쟁하지 않는다. 기즈키와 나오코, 와타나베와 나오코, 와타나베와 미도리 간의 관계는 서로 읽히지 않는다. 각각의 세계가 고립되어 있고, 평행을 이루고 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37세 와타나베 도오루는 독일 출장을 가는 길에 비틀스의 노래 ‘노르웨이의 숲’을 듣다가 혼란스러웠던 19세를 회상하기 시작한다. 그때 주인공의 곁에는 기즈키와 나오코라는 친구가 있었다. 기즈키는 나오코의 애인이었지만, 그는 스무 살이 되기 전 갑작스럽게 자살한다. 이 일로 ‘나’와 ‘나오코’는 각자의 삶에서 ‘기즈키’를 잊기 위해 노력하고, 주인공도 도쿄의 대학에 입학한다. 도쿄의 대학 입학 후 와타나베는 우연히 ‘나오코’를 만나고 둘은 사랑에 빠지지만, 나오코는 와타나베의 곁에서 갑자기 사라진다. 나오코가 갑자기 없어지고, ‘나’는 남자 선배와 같이 다니며 여자들과 의미 없는 육체관계를 가지며 생활하던 중, 요양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나오코’를 발견한다. 와타나베는 도쿄의 대학을 다니는 도중에도 지속적으로 요양원에 있는 ‘나오코’를 찾아가지만, 그 시기 대학에서 후배인 미도리를 만난다. 그리고 어느 날 ‘나오코’는 ‘와타나베’에게 본인을 잊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 후 자살한다.

『노르웨이의 숲』은 이제는 상실된 시대(일본의 1968~1969년 전공투 시대) 속에 살았던 이들의 ‘사랑과 연애’를 그려내고 있지만, 기존의 하루키 작품처럼 이 작품 역시 등장인물들은 고립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것처럼 그려지고 있다. 그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주인공들은 사랑의 결실을 맺기보다는, 자살하거나, 삭막한 현실로 돌아오거나, 어딘가로 사라진다. 모두 무언가를 상실하며 생의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혹은 생의 절벽에서 떨어지거나)

이 작품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나 다른 하루키 단편들과 달리 어떤 방식으로도 초현실주의적 뉘앙스가 소설 전반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 리얼리즘 소설이기도 하다. 하루키는 다시는 이런 스타일의 리얼리즘 소설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역설적으로 한국에선 아직도 대중적으로 ‘하루키’를 대표하는 책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다.

반자전적으로 자신의 분신을 묘사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은 바로 ‘나’다. ‘나’는 하루키 자신이며 이야기 안에서 사는 분신이기도 하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 『댄스 댄스 댄스』라는 ‘나와 쥐 4부작’을 비롯하여 수많은 작품이 ‘나’라는 1인칭 시점에서 쓰였다.

그런데 『태엽 감는 새 연대기』의 집필이 끝나고 ‘더 이상 1인칭만으로는 소설을 쓸 수 없겠다’고 생각한 듯 『해변의 카프카』의 나카타 씨의 장, 『애프터 다크』, 『1Q84』,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3인칭으로 썼다. 이렇게 자신의 분신을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정성을 들여 그리는 것이 하루키 문학의 매력이다. 또한 이 분신이 이야기 속에 완전히 녹아들어서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에 수록된 <벌꿀 파이>도 반자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와세다 대학 문학부에 진학해서 별 볼일 없는 소설가가 된 36세의 준페이가 주인공이다. 대학 시절에 셋이서 친하게 지내던 사요코와 다카쓰키가 결혼하고 후에 이혼하지만 셋의 친구 관계는 여전히 이어진다.

이 둘의 딸로 4세인 사라에게 준페이가 벌꿀 채집의 명인인 ‘곰마사키치’와 마사키치의 친구인 ‘동키치’가 나오는 동화를 즉흥적으로 만들어 들려준다는 이야기다. 하루키 자신이 ‘와세다 대학을 졸업해서 인기 없는 소설가가 되었다면……’ 하고 생각해 본 망상 속의 이야기일까?

그리고 『도쿄기담집』에 수록된 <날마다 이동하는 콩팥 모양의 돌>의 주인공 준페이는 31세가 된 단편소설을 잘 쓰는 소설가다. 아쿠타가와상 후보에는 4번이나 오른 적이 있다. (하루키 자신도 몇 번이나 후보에도 올랐지만 선정되지는 못했다). 한 파티에서 기리에라는 이름의 여성과 만나고 “남자가 평생 동안 만나는 여자들 중에서 진정한 의미를 가지는 여자는 세 명뿐이다”라는 아버지의 말을 떠올린다. 그 후 기리에에게 이야기한 신장석에 대한 소설이 문예지에 실리지만 그녀와는 연락이 닿지 않는다.

이 준페이는 <벌꿀 파이>의 주인공과 동일인물로 하루키의 분신과도 같은 인물이다. <중단된 스팀다리미의 손잡이>라는 작품도 있다. 안자이 미즈마루의 저서 『POST CARD』에 수록된 연작 단편 중 하나다. 전집에도 수록되지 않은 채 환상 속의 작품이 되었다. 안자이 미즈마루의 본명인 ‘와타나베 노보루’가 ‘벽화 예술가’로 등장하는 농담 같은 이야기다. 당시에 『노르웨이의 숲』이 대히트를 기록한 하루키 자신을 패러디한 작품이다.

하루키는 자신을 표현하는 것은 ‘자기 치유’라는 측면이 강했다고 말한다. 소설의 등장인물은 작가에게 때때로 무의식적인 분신 같은 존재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세상에는 이런 일도 있다: 이 책은 하루키의 창작론인 동시에 생활론이기도 하다. 소설가란 어떤 사람인지, 소설가인 본인은 세상의 어떤 지점에 주목했는지에 관해서도 이야기하지만, 책의 많은 부분은 하루키의 피지컬적인 삶 자체가 묻어 있다. 소설가와 생활인으로서 하루키의 ‘성실함’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때문에 하루키의 소설에 대해 별로 좋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일지라도, 이 책에 대해선 좀 더 미덥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스티븐 킹의 소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유혹하는 글쓰기』는 열심히 읽는 소설가 지망생들이 많은 것처럼 말이다.

“당신이 아는 사람 중에 진지하게 화를 내면 왠지 자꾸 재채기가 나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중략) 생리학적으로 혹은 심리학적으로 분석 추측하고 가설을 세우는 것도 물론 하나의 접근방법이겠지만, 나는 별로 그런 식으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 머릿속의 활동은 대체적으로 ‘어, 이런 사람이 있구나’라는 선에서 끝납니다. ‘어째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라고.”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에는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다. 과학자는 이런 일과 저런 일 사이에서 어떤 규칙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철학자라면 이런 일과 저런 일이란 실상 인간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말을 보탤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소설가는 무슨 말을 할까? 하루키에게 소설가란 ‘세상에는 이런 일도 있다’는 문장 자체를 제시하는 사람이다.

간단해 보일 수 있지만 이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인간이란 본래 ‘에고’로 가득 찬 존재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이런 일도 있다’라는 말을 소설가의 입장에서 하기 위해선 적은 편견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적어도 하루키의 ‘소설가’는 그렇다. 과학자라면 ‘세상에는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어!’라는 말을 가끔 할 수도 있고, 철학자라면 ‘그런 일은 인간에게 별로 의미가 없어’라고 할 수 있지만, 소설가는 판단을 내리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이런 일도 있다’라는 문장은 적어도 소설가에겐 ‘명제’가 아니다.

그것이 거기에 있다. 다른 것도 거기에 있다. 세상에는 A라는 사물이 있고, B라는 인격이 있고, C라는 세계가 있다. 소설가는 그 자리에서 멈춘다. 독자는 유추하지만, 소설가는 설명하지 않고 입을 다문다. 무시무시한 말이지만, 텍스트를 제시한 후 저자는 살해당한 것처럼 어딘가로 사라지는 것이다(블랑쇼). 그리고 어딘가에서 부활해서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서 4시간 동안 원고지 20매를 쓰고, 두 시간 동안 달리기를 한다. 이 책은 이 책을 35년 동안 해온 직업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자전적 에세이이다. (더불어 하루키의 대부분 에세이가 출판사의 요청으로 시작된 것에 비해, 이 책은 처음부터 작가 자신의 의지로 쓰였다.)

하루키는 이 책에서 총 12장에 걸쳐 35년 동안 써온 소설 쓰기와 작가로서의 삶에 대해서 말한다. 그러나 35년이란 긴 시간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은 담담하고, 소박하다. 과장 없이 솔직한 그의 말들을 따라 가다 보면 ‘소설과 글쓰기’를 넘어 삶에 대한 약간의 혜안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 혜안이란 게 ‘어떻게 하면 하루키처럼 성공할 수 있는가?’라기 보단, ‘소설가 혹은 한 사람의 생활인으로서 성실하게 산다는 것은 어떤 모양인가?’에 가깝다. 그래서 부담이 없고, 그 점이 참 하루키답다.

제2장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체의 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배우는 ‘리믹스력’

완벽한 문장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아.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1979년에 발표된 기념할 만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첫 문장이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1970년 여름에 고향인 바닷가 마을로 돌아간 ‘내’가 친구인 ‘쥐’와 제이스 바에서 밤새 이야기를 나누고 왼쪽 새끼손가락이 없는 여자와 친해지는 18일간의 이야기다. 단편적인 문장의 집합과 독특한 대사 표현으로 구성된 팝아트 같은 문학이다. 그런데 이 첫 문장은 중국의 문호 뤼신의 잡문집 『야초』의 한 문장인 “절망은 허망하다. 희망이 그런 것처럼”의 영향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작품 곳곳에 숨어 있는 보석 같은 명문장을 발견하는 재미는 독자들로 하여금 하루키 소설의 정수를 느끼게 하는 빛나는 촌철살인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나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글을 쓰는 직업은, 단적으로 말해서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사물과의 거리를 확인하는 일이다. 필요한 건 감성이 아니라 ‘잣대’다.”

“어두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어두운 꿈만 꾸지. 더욱 어두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꿈조차 꾸지 않는단다.”

“사람은 왜 죽는 걸까?” “진화하기 때문이지. 개체는 진화의 에너지를 견뎌낼 수 없어서 세대교체를 하거든. 물론, 이건 하나의 가설에 지나지 않지만 말이야.”

“한낮의 빛이 밤의 어둠의 깊이를 어찌 알겠는가.”

죽은 사람에 대해서 얘기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젊은 나이에 죽은 여자에 대해서 얘기하는 건 더더욱 어렵다. 죽었기에, 그들은 영원히 젊기 때문이다.

사실 하루키 문학의 매력은 신구의 명문이 뒤섞인 리믹스력에 있다. 마치 인기 디제이가 클럽에서 마니아적인 레코드를 틀어서 손님을 춤추게 하는 것처럼 하루키도 외국문학, 고전, 명작 가운데 아름다운 말을 발굴하여 잘게 잘라 한데 섞어서 독자를 춤추게 한다.

외국문학 작품 중에서 로맹 롤랑의 『쟝 크리스토프』에서 진실의 실체를 찾기를 바라는 작가의 의도는 다분히 계산된 집필 의도를 갖기에 충분한 지점으로 향한다.

나는 이 방에 있는 가장 신성한 책, 즉 알파벳순으로 된 전화번호부에게 진실만을 얘기할 것을 맹세한다. 인생은 텅 비었다고. 그러나 물론 구원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부터 완전히 텅 빈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말로 고생에 고생을 거듭하며 열심히 노력하여 그것을 소모시켜서 텅 비워버린 것이다. 어떻게 고생하고, 어떤 식으로 소모시켜 왔는지는 여기에다 일일이 쓰지 않겠다. 귀찮기 때문이다. 그래도 꼭 알고 싶은 사람은 로맹 롤랑의 『쟝 크리스토프』를 읽어주기 바란다. 거기 전부 씌어 있다.

이 작품은 20대에 재즈카페를 경영하던 하루키가 가게 문을 닫고 부엌 테이블에서 병맥주를 마시며 1시간씩 쓴 것으로, 한 챕터가 굉장히 짧은 것이 특징이다. 군조신인문학상을 수상했을 때는 “이런 가벼운 소설은 문학이 아니다”라는 평을 받았고,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올랐을 때도 “외국의 번역소설을 너무 많이 읽고 쓴 것 같은 겉멋이 든 버터 냄새 나는 작품”이라는 평을 받고 수상에 실패한다. 하지만 이 독특한 번역체로 서양 팝음악처럼 뇌를 자극하는 ‘리믹스력’이야말로 하루키의 마술인 것이다.

『노르웨이의 숲』에서 배우는 ‘인용력’

명언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노르웨이의 숲』은 인용 기법이 아주 뛰어나다. 이야기는 37세의 ‘내’가 비행기를 타고 독일의 공항에 착륙하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비행기의 스피커에서 비틀스의 ‘노르웨이의 숲’이 작게 흘러나오고 ‘나’는 왠지 모르게 혼란스러워진다. 이 음악이 작품의 제목에 그대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죽음은 생의 대극이 아니라 그 일부로 존재한다”는 명대사가 나온다. 니오코가 입원하는 아미료가 연상되는 요양시설을 무대로 하는 토마스 만의 소설 『마의 산』에서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마의 산』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죽음의 모험은 생의 안에 있어서 그 모험이 없으면 생은 생이 아니고 그 한가운데 시의 아이인 인간의 위치가 있다.”

『노르웨이의 숲』에는 유난히 세계적인 대문호들의 고전 명작을 인용하는 부분이 많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도박사』와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주인공 흉내를 언급하며 젊은이들의 어둡고 횡횡한 내면심리를 묘사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그건 설명하기가 힘들어. 왜 도스토예프스키가 도박에 관해서 쓴 것 있지? 그것과 마찬가지야. 즉, 그건 말이지. 가능성이 주위에 충만해 있을 때, 그것을 그냥 두고 지나친다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야. 알겠어?”

“당신은 뭔가 이상한 말투를 쓰네” 하고 그녀는 말했다.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 흉내를 내고 있는 건 아닐 테고.” “설마요”라고 말하면서 나는 웃었다.

마지막으로 나이 차가 있는 나오코와 나를 이어주는 끈으로 작용하는 <노르웨이의 숲>을 부른 비틀스 음악의 인용도 인상적이다. 이 음악을 인용함으로써 죽은 자로서의 나오코의 환상이 덧없는 환상이 아니라 확실하게 존재하는 실재로서 나의 마음속 존재로 각인돼 있음을 상기시키는 장면은 독자들을 하루키 문장의 매력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요인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명작을 인용해서 더 큰 명작을 만들어내는 천재다.

『해변의 카프카』에서 배우는 ‘캐릭터력’

『해변의 카프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10번째 장편소설로 전 세계가 사랑하는 기념비적인 장편 판타지소설이다. 연극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캐릭터의 힘이 엄청나다. 주인공은 15세의 다무라 카프카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이혼하고 어머니가 누나만 데리고 집을 나간 트라우마로 상처를 받은 카프카는 어느 날 가출을 한다. 마치 순례의 길에 오르는 것처럼 심야버스를 타고 다카마쓰로 향한다.

‘카프카라 불리는 소년’도 등장하는데 그는 카프카의 머릿속에 있는 상상 속 친구다. 고독하고 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머릿속에서 상상의 친구를 만들어 대화를 나눈다. 집에서 가지고 나온 접이식 칼을 의인화해서 ‘까마귀’라고 부른다.

나카노 구 노가타에 사는 나카타 씨도 등장한다. 글자를 읽지 못하는 미스터리한 노인으로 고양이와 대화하는 신기한 힘을 가지고 있다. 나카타 씨가 등장할 때마다 상대역으로 등장하는 사에키 상도 신비한 매력을 발산하는 인물이다. 그는 벼락에 대한 책을 쓴 작가로 나카타 씨가 돌아갈 가치가 있는 장소, 즉 나카타 씨의 소중한 옛추억을 상기시켜 주는 인물이다.

이들 외에도 특유의 개성 넘치는 인물들이 연이어 등장해 카프카의 판타지 세계를 더욱 신비하고 매력적인 공간으로 유도해 간다. 미미는 샴고양이와 대화를 나누는 신비한 고양이로, 나카타 씨와 사소한 일상사를 나누는 인물이다. 그녀는 TV를 너무 많이 봐서 세상 이치에 밝은 인물로 그려진다.

“미미 상은 머리가 참 좋네요” 하고 나카타 상은 샴고양이의 유창한 말솜씨에 감탄하며 말했다. “천만에요” 하고 미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수줍은 듯이 말했다. “집에서 빈둥빈둥 텔레비전만 보는 동안에 이렇게 되어버린 거예요. 쓸데없는 지식만 늘어나서 고민이에요. 나카타 상도 텔레비전을 보시나요?”

또한 사에키 상은 모든 동작을 잠 속에서 하는 신비의 여인으로, 꿈속에서 성욕도 느끼고 섹스도 하면서 다무라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여성 코칭을 맡고 있다.

다무라의 누나일지도 모르는 사쿠라 상은 의문의 여인으로, 카즈키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상황을 연이어 만들어내는 예지력의 소유자이다.

“그런데도 네 어머니는 집을 나갈 때 네가 아닌, 핏줄이 닿지 않은 누나를 데리고 갔다 그 말이지?” 하고 사쿠라는 말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여성이라고 하면 그런 짓을 하지 않는 법이야. 물론 넌 그 일 때문에 상처를 입었지?” 그녀는 말한다. “너희 집만큼 근본적으로 복잡하지는 않지만, 나도 부모하고 줄곧 마음이 맞지 않았어. 하지만 말야, 어릴 때부터 너무 모든 걸 단정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세상에는 절대라는 것은 없으니까.”

여기에 절대고독의 세계를 즐기는 오시마 상도 다무라의 지적 성장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다. 그는 나쓰메 소세키의 전집을 즐겨 읽는 독서가이기도 하며, 슈베르트의 피아노소나타를 세계 최고의 피아노곡이라고 평가하는 예술가의 기질마저 갖고 있는 독특한 인물이다.

“요컨대 어떤 종류의 불완전함을 지닌 작품은 불완전하다는 그 이유 때문에, 인간의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긴다. 예를 들어, 소세키의 <고후>에 마음이 끌린다고 했지. 『고코로』나 『산시로』 같은 완성된 작품에는 없는 흡인력이 미완성의 작품에는 있기 때문이지. 너는 그 작품을 발견한 거야. 슈베르트의 D장조 소나타도 그것과 마찬가지야. 그 음악에는 그 작품이 아니고서는 바랄 수 없는 마음의 실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단 말이지.”

이것만으로도 꽤 강력한 캐릭터 설정인데 계속해서 수상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카프카의 아버지는 예술적인 재능을 얻는 대신 자신의 영혼을 ‘악’에 팔아넘긴 조지 워커다. 그는 근처의 고양이를 납치해서 죽인다. 야구팀 주니치 드래건스의 팬인 호시노 짱, 켄터키프라이드 치킨의 창업자로 분장한 수수께끼의 인물 커널 샌더스도 등장한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나와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 매력적인 캐릭터는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불가결한 연출이기도 하다. 하루키는 항상 매력적인 캐릭터를 잘 다듬어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본 도서요약본은 원본 도서의 주요 내용을 5% 정도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원본 도서에는 나머지 95%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보다 많은 정보와 내용은 원본 도서를 참조하시기 바라며, 본 도서요약본이 좋은 책을 고르는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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