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의 전염

에코리브르 / 2021년 4월 / 424쪽 / 21,000원

행동의 전염

행동의 전염

로버트 H. 프랭크 지음

저자 소개

코넬 대학교 존슨 경영대학원의 헨리에타 존슨 루이스 경제학 교수이다. 조지아 공과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으며,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에서 통계학으로 석사 학위를, 경제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시대 최고의 경제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논문 다수가 주요 경제학 학술지에 실렸다. 10년 넘게 《뉴욕타임스》 <이코노믹 뷰>를 썼으며, 그 밖에 《가디언》, 《보스턴 리뷰》, 《USA 투데이l》, 《워싱턴 포스트》 등 여러 매체에 기고해왔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을 지낸 벤 버냉키와 함께 쓴 『경제학』, 『미시경제학』 등을 위시해 수많은 책을 집필했다. 대표작은 『승자독식사회』(공저), 『이코노믹 씽킹』, 『사치열병: 과잉 시대의 돈과 행복』,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 행운, 그리고 실력주의라는 신화』 등이다. 현재 뉴욕주 이타카에서 살고 있다.

책소개

이 책은 어떻게 하면 보이지 않는 사회적 맥락의 위력을 드러낼 수 있는지 조명한다. 저자는 사회적 행동과 경제적 행동에서의 경쟁과 협력에 주목해 연구해온 행동경제학자로서 이른바 ‘행동 전염’이란 개념을 통해 그와 관련한 현상을 개괄적으로 조망하면서, 강력하고도 합법적인 공공 정책을 입안할 때 사회적으로 이로운 밈은 장려하고 해로운 밈은 저지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요약본 본문

도입

논쟁의 개요

내게는 성인이 된 아들이 넷 있는데, 그중 흡연자는 아무도 없다. 언젠가 친구에게 아이들이 성장하던 시기에 내가 담배를 피웠더라면 넷 중 적어도 둘은 흡연 습관을 들였을 거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내가 1959년 14세에 흡연을 시작했을 때, 친구들 중 상당수는 이미 몇 년 동안 담배를 피워온 상태였다. 당시에는 미국 남성의 60퍼센트 이상이 흡연자였고, 흡연자의 거의 절반가량은 매년 금연에 도전하지만 성공하는 사람은 5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나 역시 금연을 대여섯 차례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따라서 용케 대학 입학 전에 그 습관을 떨쳐냈다는 사실을 천만다행으로 여긴다.

우리 부모님은 그러지 못했지만 나는 아이들이 담배를 피우지 않도록 키워내는 데 성공했다. 그 까닭은 오늘날의 환경이 우리 부모 때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흡연을 하게 될지 말지 예측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지표는 담배 피우는 친한 친구의 수가 몇이나 되느냐다. 만약 그 수가 20명에서 30명 사이로 늘어나면 흡연할 가능성은 25퍼센트 증가한다. 나의 10대 친구 대부분은 흡연자였던 데 반해, 내 아들들의 친구 가운데는 흡연자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오늘날의 환경이 과거와 달라진 것은 우리가 주로 흡연을 억제하기 위해 도입한 세금 제도, 금지 규정, 그리고 기타 규제 조치 때문이다.

미국인이 사회공학에 오랫동안 적의를 품어왔음을 감안하면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이러한 조치 역시 하나같이 심각한 저항에 부딪쳤다. 그런 조치를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규제자들은 자신들이 늘 해오던 반응을 되풀이했다.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조치야말로 때로 무고한 옆 사람에게 지나친 피해를 입히는 사태를 막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이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사례로 규제자들이 흔히 인용하는 것은 옆 사람으로서는 쉽게 벗어나기 어려운 해악을 주는 간접흡연이다. 그렇다면 간접흡연의 위험은 흡연을 말리는 극단적 조치를 정당화하는 데 충분한 요소일까? 사실 간접흡연의 피해는 스스로 흡연자가 됨으로써 입는 피해와 비교할 때 극히 사소하다. 따라서 흡연 규제 조치는 그것이 실제로 미치는 영향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죄 없는 옆 사람을 간접흡연으로부터 보호하기보다는 흡연자를 본인 자신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더 많은 기여를 한다.

흡연을 규제하기 위한 두 번째 논리는 46개 주 법무장관을 위시한 여러 사람이 1990년대에 담배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언급된 것인데, 이 소송에서 손해 배상은 흡연이 흡연자와 비흡연자 모두에게 부과된 세금으로 지급하는 메디케이드(Medicaid)에 부담을 준다는 주장을 근거로 삼았다. 하지만 흡연자가 진짜로 납세자에게 부담을 주는지 여부는 여전히 상당한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예컨대 경제학자 킵 비스쿠시가 주장한 바와 같이, 흡연자는 조기에(평균적으로 약 65세경) 사망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연방 정부와 주 정부 기관은 도리어 상당액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간접흡연과 재정적 영향으로 초점을 좁히면 흡연자가 타인에게 입히는 피해를 턱없이 과소평가하기 쉽다. 흡연자가 되기로 한 누군가의 결정이 낳는 최대의 해악은 다른 사람들도 담배를 따라 피울 가능성을 높이는 데 따른 피해다. 누군가가 흡연자가 되면 그의 친구들은 모두 자신의 동료 집단에 흡연자가 한 사람 더 늘어나는 셈이다. 따라서 그 집단의 구성원은 모두 흡연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

아무튼 오늘날의 환경은 내가 성장하던 때와 다르다. 그것은 대체로 우리가 흡연을 말리기 위해 채택해온 세금 및 기타 규제 조치 덕분이다. 하지만 미국 성인의 15퍼센트 이상이 아직도 담배를 피우며, 저소득층 성인 등 일부 집단에서는 그 비중이 한층 높다. 그렇다면 규제자들로서는 훨씬 더 강력한 반흡연 정책을 실시해야 할까? 예산에 주는 부담이나 간접흡연에 따른 피해만으로는 그 주장을 납득시키기 어렵다. 그러나 행동 전염이 일으키는 피해까지 모두 고려한 ‘비용-편익’ 균형에 비추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하지만 수많은 규제 반대자들은 이내 행동 전염은 정부 개입을 정당화하는 데 적합한 근거가 아니라고 반박한다. 규제 반대자들은 사람들이 ‘행위 주체성’을 지니고 있으며, 담배를 피울지 말지 결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책임이지 국가의 책임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한편 사회심리학자들은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상황”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들이 지적하고자 하는 바는 남들이 하는 일을 설명할 때 우리가 흔히 성격이나 인성 같은 내적 요인은 과대평가하고, 외적(즉 상황적) 요인은 과소평가한다는 사실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기본적 귀인 오류라고 부르는데, 이 오류를 말해주는 예는 솔로몬 애시가 실시한 실험들이다. 특정한 환경적 신호가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의 감각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무시하는데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는 것이 목적이었다.

10년 뒤, 스탠리 밀그램은 사회적 맥락의 위력을 좀 더 극적으로 보여주는 일련의 실험에 착수했다. 실험실은 실험자가 학습 관리를 돕는 피험자를 뽑는다는 설정이다. 각 실험에는 실험자(밀그램 자신), ‘선생(사실상 그 실험의 피험자)’ 그리고 ‘학생(또 다른 피험자로 묘사되지만 실은 밀그램의 실험 협력자)’, 이렇게 세 사람이 참가했다. 실험자가 학생에게 문제를 내고, 학생이 정답을 맞히면 또 다른 문제를 낸다. 하지만 학생의 답이 틀리면, 실험자는 학생에게 전기 충격을 가하는 기계의 버튼을 누르라고 선생에게 지시한다. (피험자는 모르는 일이지만, 실제로는 전기 충격이 전달되지 않았다).

선생은 실험자로부터 학생이 틀린 답을 말할 때마다 그 기계가 전달하는 전기 충격의 강도가 높아질 거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피험자들이 계속해서 연속적으로 충격을 주자 학생은 고통스럽다는 듯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피험자의 65퍼센트는 가장 높은 수준(그들은 450볼트까지 올라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까지 계속 전기 충격을 높여나갔다. 이 실험에 대해 읽는 대다수 사람은 자신이 밀그램의 피험자들보다 훨씬 더 이른 시점에 전기 충격을 가하는 행위를 멈출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피험자들이 다른 사람보다 특별히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거나 도덕적 책임감이 부족하다고 볼 만한 근거는 없다. 좀 더 그럴듯한 설명은 이 실험에 대해 읽은 수많은 사람이 ‘기본적 귀인 오류’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적 맥락의 여러 세부 사항 ­ 이 경우는 기성 권위자가 특정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 이 우리 자신의 행동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과소평가한다.

맥락이 중요한 것은 부분적으로 모든 인간의 결정은 평가적 판단에 크게 의존하고, 그 판단은 다시 그것을 둘러싼 맥락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맥락은 거리 같은 일상적인 물리량에 대한 우리의 판단에도 영향을 끼친다. 당신이 여섯 살 딸아이를 데리고 부모님을 찾아뵈러 운전해 가고 있는데 딸이 “거의 다 왔어요?”라고 물었다고 치자. 이동 거리가 12마일인데 10마일 정도 남았다면 당신은 아마 “아니, 아직 멀었어”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이동 거리가 120마일인데 똑같이 10마일 남았다면 “응, 거의 다 왔어”라고 대답할 것이다. 맥락과 평가 간의 관련성은 행동과학자들 사이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그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공공 정책에 관한 수많은 논의에서 거의 완벽할 정도로 무시되고 있다. 대체로 그것은 대다수 정책 관련 논의의 이론적 기초가 되는 전통적 경제 모델에서 맥락이 인간의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에서 방어할 논의는 다음의 일곱 가지 전제로 요약된다. ‘① 맥락은 많은 사람이 의식적으로 깨닫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우리의 선택에 영향을 끼친다. ② 맥락은 때로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웃 대부분이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분별력 있는 식사를 하는 공동체에서 살아간다면, 사람들이 그렇게 따라 할 공산이 커진다. ③ 맥락은 때로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흡연자로 둘러싸인 채 살아가는 이들에게서 담배를 배울 가능성이 커진다. ④ 우리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맥락은 그 자체로 우리가 행한 개별적 선택의 집단적 결과다. ⑤ 하지만 개별적 선택은 각각 이러한 맥락에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영향만 끼치므로, 사익을 추구하는 합리적인 개인들은 대체로 전제 ④에서 기술한 순환 고리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⑥ 우리는 흔히 이로운 맥락은 북돋우고 해로운 맥락은 억제하는 선택을 장려하는 집단적 조치를 취함으로써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⑦ 더 나은 환경을 조성하는 데서는 흔히 과세 제도가 규제 제도보다 지시적ㆍ계몽적 성격은 덜하고 효과는 더 낫다.’

행동과학자들 사이에서 이들 전제 가운데 앞의 5가지에 대해서는 전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들이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한 것은 전제 ⑥과 ⑦뿐이다. 전제 ⑥의 경우, 흡연의 예에서 보듯 행동 전염이 피해를 낳는다는 사실을 모두가 인식할 때조차, 흔히 우리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맥락을 바꿔주는 집단적 조치에 합의하기란 어렵다. 부분적으로 그 어려움은 종종 개인적 유인(incentive)과 집단적 유인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제 ⑥에 대한 반대는 일반적으로 규제를 적대시하거나 규제가 늘 문제를 개선해준다고는 보지 않는 오랜 미국적 전통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시장은 이따금 최적의 결과를 내놓는 데 실패하지만 정부의 개입 역시 불완전하기는 마찬가지인 것이다.

전제 ⑦에 대해 시비 논란이 분분한 것은 순전히 대다수 사람이 과제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깐 생각해보면 이내 이 영역에서 흥미로운 질문은 우리가 세금을 내야 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에 대해, 어느 정도 세금을 내야 하는가와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신이 작은 정부를 지지하는 보수주의자든 개방적인 진보주의자이든, 값진 공적 서비스를 실시하기 위해 세금이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뿐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행동에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세수를 올린다. 가령 우리 대부분은 기업이 더 많은 직원을 고용하는 것을 좋은 일이라 여기지만, 기업이 제공하는 봉급에 많은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다시 기업이 고용을 꺼리게끔 만든다. 더 나은 선택지는 우리의 선택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맥락을 바꿔주는 세금처럼, 피해를 초래하는 행동을 억제하기 위해 세금을 부과하는 쪽일 것이다.

한편 경제학자들은 외부성(externality)을 비용 혹은 이익의 창출에 대한 통제력이 없는 제삼자가 초래하거나 받게 되는 비용 혹은 이익이라고 정의한다. 참고로 대기 오염 및 수질 오염 같은 환경 외부성 문제들의 경우, 표준적 해법은 예컨대 배출물에 대해 각 단위당 세금을 부과하거나, 혹은 그와 마찬가지로 각 단위당 ‘거래 가능한’ 배출권을 구입하도록 요구하는 조치다. 그런데 1960년대에 경제학자들이 산성비 문제를 이런 식으로 해결하자고 제안했을 때, 비판론자들은 돈 많은 기업에 마음껏 오염시킬 수 있는 허가증을 부여하는 행위를 옹호한다며 그들을 비웃었다. 하지만 그런 비판론자들의 견해는 지나친 공해를 일으키는 경제적 힘에 대한 완전한 오해를 드러낸다.

기업이 독소를 공짜로 대기나 강ㆍ바다에 방출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을 경우,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오염을 발생시키는 데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이 아니라 독소를 필터로 처리하는데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규제받지 않는 환경에 처한 기업은 오염 행위가 매력적이라는 오도된 판단을 내리게 된다. 그들에게 각 배출 단위당 비용을 부과하는 조치는 오염 행위를 덜 매력적으로 만듦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해준다. 아무튼 경제학자들이 처음으로 이산화황 배출권 거래를 촉구한 때로부터 1990년 청정대기법 수정안에 따라 그들의 제안을 실제로 이행하기까지는 약 30년의 세월이 걸렸다. 하지만 일단 새로운 정책이 시행되자 기업들은 발 빠르게 자사의 이산화황 배출을 줄일 수 있는 효과적 방안을 찾아냈다. 한때 뉴스를 장악하던 산성비 문제는 처방적 규제라는 전통적 제도를 실시했을 때 가능했을 정도보다 훨씬 더 빠르고 저렴하게 해결되었다.

맥락은 대다수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강력하게, 때로는 더 좋은 쪽으로 때로는 더 나쁜 쪽으로, 우리 행동에 영향을 끼친다. 맥락과 선택의 관련성은 상호적이다. 즉 맥락은 우리의 선택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그 선택이 모여 만들어진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각각의 선택이 낳는 효과는 너무 사소해서 고려할 가치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에 따라 우리는 널리 만연한 일련의 ‘맥락 외부성(context externalities)’, 즉 ‘행동 외부성(behavioral externalities)’에 직면한다. 행동 외부성은 모든 면에서 대기 오염 및 수질 오염 같은 전통적 외부성(traditional externalities)과 유사하다.

흡연 예에서 보듯, 우리가 오늘날 세금이나 규제를 통해 해결하고 있는 문제 상당수는 전통적 외부성으로서 묘사되어왔다. 하지만 흡연으로 인한 피해의 원천을 면밀히 따져본 결과 분명히 드러난 대로, 반(反)흡연 조치가 예방한 가장 중요한 피해는 행동 외부성에 기인한 것들이다.

특정 맥락이 부정적 결과를 낳는 행동을 부추기는 문제라면 그것을 해결하는 최선의 방책은 앞서 그 맥락을 야기한 개인적 유인을 변화시키는 방향이 될 것이다. 이런 식의 접근법은 흡연 영역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효과적이었다. 우리의 정책적 대응은, 우리가 해결하고자 애쓰는 문제의 실질적 원인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기반한다면 다른 영역에서도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행동 전염의 사례

소비의 폭포 효과

행동 전염은 흡연, 과음, 불건전한 식습관, 낮은 조세 순응, 그리고 수많은 다른 문제의 원인이다. 하지만 이런 영역에서의 피해는 동료가 소비 패턴에 영향을 미친 데 따른 피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낭비적 소비 패턴이 낳는 손실은 미국 한 나라에서만 연간 2조 달러를 넘는 게 거의 확실하다.

자유 시장 옹호자들은 사람이 정부 관료보다 좀 더 세심하게 자신의 돈을 소비한다고 말하길 좋아한다. 논의의 편의를 위해, 사적인 소비 결정은 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대체로 합리적이라고 인정하자. 하지만 개인적 합리성이 곧바로 집단적 합리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더 잘 보려고 모두가 일어서면 다들 앉아서 볼 때보다 더 잘 보이지 않게 되는 결과를 낳는 경우처럼 말이다. 개인적 합리성과 집단적 합리성은 소비와 관련한 의사 결정에서도 그와 유사한 긴장감을 드러낸다. 동료 효과는 특정 영역에서 연속적인 상호 상쇄적 소비를 촉발하고, 그 결과 훨씬 더 필요한 다른 부분에 쏟아 부어야 할 자원을 부족하게 만든다. 이런 왜곡을 바로잡아줄 수 있는 정책은 엄청난 이득을 낳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왜 생기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예는 우리에게 낯익은 군비 경쟁이다. 두 경쟁국 가운데 하나가 무기 재고량을 늘릴 경우, 다른 한 나라 역시 힘의 균형을 깨지 않으려면 그에 보조를 맞춰야 한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양국은 경쟁국이 얼마나 많은 소비를 했는지 불확실하기에 자국의 지출을 약간 더 늘리는 편이 분별력 있다고 판단할 것이다. 이는 결국 연쇄적인 군비 증강의 가속화로 이어진다. 물론 양국은 자기 나라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하는 교육, 의료, 도로, 주택, 기타 재화에 그 돈을 투자하는 편을 선호할 것이다. 하지만 두 나라는 군사적 적국한테 뒤지면 결과적으로 심각한 생존 위험에 빠질 소지가 있음을 알고 있다. 따라서 각국의 관점에서는 경쟁국의 군비 증강에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이 하등 나무랄 데 없는 결정이다.

무기에 대한 소비가 국민소득을 넘어설 수는 없으므로 군비 경쟁도 무한정 계속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불안정한 평형 상태에 도달해 있을 때조차 그로 인해 양국이 보여주는 전체 소비의 구성은 턱없이 낭비적이다. 좌우지간 집단적 관점에서 볼 때, 상대국한테 질세라 무기에 돈을 퍼붓는 현상은 양국의 안보 증진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도움이 되기는커녕 양편이 화력을 증강하면 적대감이 폭발하는 순간 심각한 피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나 군사 지출의 계속적 증가와 달리 공적 인프라에 투자하는 것은 상호 상쇄를 일으키지 않는다. 이러한 투자를 늘리면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

군비 경쟁 내러티브의 논리는 흠잡을 데가 없다. 실제로 대다수 관찰자는 시행 가능한 군축 합의에 도달하려는 광범위한 시도를, 무기에 대한 소비를 줄이고 다른 분야에 대한 소비를 늘리는 조치가 좋다는 것을 경쟁국들에게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로 간주한다. 그러나 그와 대단히 유사한 힘이 우리의 개인적 소비 패턴에서 엄청난 낭비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런 일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일어나는지 살펴보기 위해 다음의 두 가지 사고 실험을 소개한다.

‘① 당신은 어떤 세상을 선택하겠는가? - [세상 A] 당신과 당신의 가족은 주택 크기가 4000제곱피트(약 370제곱미터)인 동네에서 살고, 다른 모든 동네의 주택은 6000제곱피트(약 560제곱미터)다. [세상 B] 당신과 당신의 가족은 주택 크기가 3000제곱피트(약 280제곱미터)인 동네에서 살고, 다른 모든 동네의 주택은 2000제곱피트(약 190제곱미터)다.’

주택이 안겨주는 만족은 오직 그 주택의 절대적 특징에 달려 있다고 가정하는 기본적 경제 모델에 따르면, 앞뒤 볼 것도 없이 [세상 A]가 더 나은 선택이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은 상황을 그런 식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리고 곰곰이 따져본 뒤, 절반을 훌쩍 넘는 응답자가 [세상 B]를 선택한다. [세상 A]를 선택한 소수 가운데 일부는 다른 사람들의 주택에 신경을 써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하는 듯하다. 그럴 때조차 그들 가운데 남들은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이 있음을 의아하게 여기는 이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여기서 나는 이 경우 [세상 B]가 유일하게 올바른 선택이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대다수 사람이 [세상 B]를 선택한다는 사실만 지적하고 넘어가겠다. 이제 두 번째 사고 실험에 대해 살펴보자. 정확히 첫 번째와 같은 구조다.

‘② 당신은 어떤 세상을 선택하겠는가? - [세상 A] 당신이 올해 직장에서 순직할 가능성은 10만 명당 2명꼴이고, 다른 사람들의 수치는 10만 명당 1명꼴이다. [세상 B] 당신이 올해 직장에서 순직할 가능성은 10만 명당 4명꼴이고, 다른 사람들의 수치는 10만 명당 6명꼴이다.’

첫 번째 실험에서처럼, 여기서도 역시 선택은 절대적 이점[세상 A]과 상대적 이점[세상 B] 간에 이루어진다. 나는 연구를 진행해온 오랜 세월 동안 나이, 성별, 그리고 국적이 저마다 다른 수백 명에게 이 질문을 던졌지만 [세상 B]를 선택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안전 영역에서만큼은 누구나 절대적 이점을 선택한다. 하지만 주택 영역에서 비슷한 선택에 직면하면 대다수가 상대적 이점 쪽에 선다.

작고한 영국 경제학자 프레드 허시는 주로 절대적 특성보다 상대적 희소성으로 가치가 결정되는 재화를 기술하기 위해 위치재(positional goods)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그는 “내가 받은 교육의 가치는 내 직업 전선에 종사하는 선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교육을 받았는지에 의해 좌우된다”고 적었다. 아래에서 나는 같은 범주에 속한 다른 재화들과의 상대적 비교 속에서 그 가치가 달라지는 재화를 나타내기 위해 허시의 용어인 위치재를 사용할 것이다. 따라서 첫 번째 사고 실험에서 절대적 이득이 아닌 상대적 이득을 선택한 사람들에게는 주택이 위치재가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같은 범주에 속한 다른 재화들과의 상대적 비교에 거의 좌우되지 않는 재화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비위치재(nonpositional goods)라는 용어를 사용하겠다. 두 번째 사고 실험에서 절대적 이점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작업장의 안전은 비위치재가 된다. 주택을 위치재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 주택의 상대적 특징만 중요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예컨대 첫 번째 사고 실험에서 [세상 B]를 선택한 누군가도 당연히 다른 사람들이 사는 동네의 집은 3000제곱피트이고, 자신이 사는 동네의 집은 3500제곱피트인 세상을 더 선호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절대적 안전성이 높은 세상을 선택한다고 해서 상대적 안전성 수준이 아무 상관없다는 뜻은 아니다. [세상 A]를 선택한 대다수 사람은 자신의 직업이 다른 이들의 직업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는 사실을 거의 확실하게 알아차린다. 하지만 만약 자신의 절대적 사망 위험이 2배인 [세상 B]로 이사 가야 한다면 그들은 그 선택지를 거절할 것이다.

어떤 영역에서 다른 영역보다 상대적 소비에 더욱 신경 쓰는 경향은 소비와 관련한 사람들의 의사 결정을 왜곡한다. 그에 따라 이른바 위치재적 군비 경쟁, 즉 위치재에 중점을 둔 점증하는 소비 패턴을 초래한다. 이것이 낳는 역학은 군비 경쟁을 추동하는 역학과 비슷하다. 양쪽의 경우에서 낭비적 소비가 발생하는 까닭은 일부 소비 범주가 다른 소비 범주보다 더 맥락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군비 경쟁이 발생하는 것은 군사적 소비에서의 상대적 차이가 비군사적 소비에서의 상대적 차이보다 한층 중대한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반면 만약 경쟁국보다 텔레비전 기기에 돈을 덜 소비하는 것이 폭탄에 돈을 덜 소비하는 것보다 더욱 심각한 해악을 낳는다면, 앞서와 정반대의 소비 불균형이 드러날 거라고 기대할 수 있다. 즉 각국은 비군사적 소비 영역에서의 상대적 이익을 얻기 위해 군사적 소비를 훨씬 더 줄이게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다. 군비 경쟁은 순진하고 확실하게 더욱 중요한 무기에 대해 상대적으로 지출한 결과다. 이와 같은 상대적 지출은 군사적 충돌의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국내 소비 지출의 영역에서도 그와 동일한 왜곡 현상이 드러난다.

상대적 지출은 정의상 비위치재보다 위치재의 경우 더욱 중요하므로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위치재에는 지나치게 많이, 비위치재에는 지나치게 적게 지출한다. 이 역학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살펴보기 위해, 노동자가 안전과 관련한 위험 수준이 다른 두 직종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한편으로 안전 장비가 고가이기 때문에,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들이 위험한 직종보다 안전한 직종을 선호하기 때문에, 고용주는 좀 더 위험한 직종에 노동자를 고용하려면 더 높은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 따라서 자신이 선택하는 직종에서 추가적인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다른 곳에 지출할 수 있는 수입이 줄어드는 상황을 감수해야 한다. 좀 더 위험한 직종을 선택하면 노동자는 예컨대 좀 더 좋은 집을 살 수 있다. 만약 그에게 자녀가 있다면 그 선택지는 2배의 매력을 지닌다. 거의 모든 사법권 관할 구역에서 더 나은 학교는 좀 더 집값이 비싼 동네에 자리 잡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노동자가 임금이 더 높지만 더 위험한 직종을 선택한다고 생각해보자. 비슷한 처지에 놓인 노동자들도 같은 논리에 따라 그와 동일한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들도 학군이 더 나은 동네의 주택을 살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추고자 좀 더 위험한 직장을 선택한다면, 그들이 올려 받는 임금은 그 주택 가격을 올리는 데 기여할 따름이다. 모든 자녀 가운데 절반은 여전히 하위권 학교에 다녀야 할 것이다. 그 결과는 아무도 더 높은 임금을 받기 위해 안전을 희생하지 않을 때와 같아진다. 다들 안전을 포기했지만 누구도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

애덤 스미스 시대 이후, 고전적인 경제 이론은 경쟁적 시장에서 사정에 밝은 노동자들은 이 같은 소득과 안전 간의 트레이드오프를 현명하게 따져볼 거라고 주장해왔다. 그들이 더 많은 소득을 얻는 대가로 위험이 높아지는 상황을 감수하는 것은 오로지 늘어난 소득으로 살 수 있는 것에서 오는 만족이 안전이 줄어드는 데 따른 만족의 상실보다 더 클 때에 한할 거라고 말이다. 이러한 견해를 지지하는 이들에 따르면, 높은 안전 수준을 요구하는 규정은 노동자로 하여금 들이는 비용보다 가치가 덜한 안전을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식으로 그들에게 피해를 안겨준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사실상 전 세계의 모든 국가가 작업장 안전과 관련한 규정을 정해두는가? 고전적인 경제 이론은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그와 같은 규정은 비정상적이라고 설명하거나, 아니면 노동자들이 정보에 밝지 않아서 혹은 시장이 충분히 경쟁적이지 않아서 나타난 결과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우리는 노동자들이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는 수많은 안전 관련 위험에 규정을 마련해놓고 있다. 예컨대 대부분의 석탄 광부는 역시나 같은 일에 종사했던 아버지ㆍ할아버지가 진폐증으로 사망했기 때문에 자신들이 하는 작업엔 그 질병에 걸릴 위험이 뒤따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노동자들이 정보에 밝지 않아서라는 설명은 맞지 않는 것이다.

충분히 경쟁적이지 않은 것도 문제가 아니다. 좌우간 대부분의 안전 규정은 경쟁적 이상에 가장 가까이 근접한 시장에서 최고의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런 규정은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나 월가의 투자 은행가에게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런 직종의 노동 조건은 ‘직업 보건 및 안전국’이 요구하는 수준보다 더 안전하다. 필요한 노동자를 유치하기 위해 서로 극심하게 경쟁하는 이들은 툭하면 안전 검사관이 들이닥치는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이나 비숙련 노동자를 쓰는 제조사의 고용주들이다.

작업장 안전과 관련한 개인의 합리적 결정은 매력적이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 개인적으로는 합리적인 결정이 결과적으로는 소모적인 군비 경쟁을 낳는 것과 같은 이유 탓이다. 각국이 무기에 지나치게 많은 돈을 지출하는 이유는 그 나라들이 어리석기 때문이 아니라, 군사적 경쟁국에 뒤처지는 데 따른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같은 이치로 작업장에서 과도한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노동자들이 정보가 부족해서, 혹은 시장이 충분히 경쟁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다. 동료보다 적게 벌면 자기 자녀들이 더 질 낮은 학교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정보가 충분하고 자기 제어를 잘한다 해도 노동자 개인은 그 문제를 풀 수 없다. 그 어떤 나라도 자국의 힘만으로는 군비 경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군비 축소가 가능하려면 집단적 행동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안전 규정이 어디에나 존재하는 까닭을 가장 잘 밝혀주는 논리는 군축 조약을 설명하는 논리와 같다.

그 논리는 축소판 꼴이기는 하나 운동선수들 간의 경쟁을 좌우하는 규정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예를 들어 경제학자 토머스 셸링은 언젠가 아이스하키 선수들에게 헬멧을 쓰지 않고 경기에 임하도록 허락하면, 헬멧을 쓰는 선수가 거의 없어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수들은 헬멧을 쓰도록 요구하는 규정의 채택을 적극 반겼다. 셸링은 헬멧이 좋은 게 확실하다면 왜 선수들은 자발적으로 헬멧을 쓰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왜 굳이 규정이 필요한가?

그는 이 질문에 대해 헬멧을 쓰지 않고 스케이트를 타면 선수들이 조금 더 잘 보고 잘 듣게 됨으로써 경쟁적 이점을 누리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헬멧을 쓰지 않고 스케이트를 타는 선수들은 가외의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는데, 이는 경쟁 선수들을 겁박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게다가 그에 따른 경쟁적 이점은 분명하고도 즉각적으로 드러나는 데 반해, 부상 입을 위험의 증가는 불확실하고 뒤늦게야 나타난다. 물론 난감한 점은 만약 한쪽 팀이 헬멧을 쓰지 않고 경기를 뛰면 상대 팀도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어느 팀도 경쟁적 이점을 확보하지 못하고 모든 선수가 부상의 위험이 더욱 커지는 상황에 놓인다. 따라서 헬멧 착용 규정은 강력한 매력을 지닌다.

헬멧 착용 규정의 논리에 대한 셸링의 분석은 이 책의 핵심 주제 ­ 즉 사회가 실시하는 공공 정책은 응당 우리 안의 최상을 이끌어내는 사회 환경을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개인들의 동기를 변화시키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 를 분명하게 드러내준다. 우리가 하는 일의 상당 부분은 이따금 좋은 쪽으로, 하지만 흔히 나쁜 쪽으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때로 사람들로 하여금 그저 자기 일에나 신경 쓰라고 촉구하는 게 그나마 좋은 대처가 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동기를 비교적 비지시적인 방식을 통해 변화시킬 수 있는 여지는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위치재적 군비 경쟁으로 인한 손실은 어느 정도일까? 이 장을 시작할 때 나는 그 손실이 다른 행동 전염 과정과 관련한 모든 피해를 압도할 정도로 막대하다고 밝혔다. 이용 가능한 데이터와 행동 모델의 초보적 상태 같은 한계점을 감안할 때 소비 폭포 효과로 인한 총손실의 정확한 예측치를 얻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만약 약간만이라도 논리적 가정을 해볼 의향이 있다면, 적어도 그 손실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대략적으로나마 그려볼 수 있다. 자, 이렇게 논의를 시작해보자.

인간의 행복을 연구하는 행동과학자들은 이를테면 2018년에 인플레이션을 고려한 국가의 재화와 서비스 총가치가 2012년보다 2조 달러가량 늘어났음에도, 사람들이 그때보다 더 행복해졌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누군가가 우리의 2012년 소비 패턴을 비위치재에 유리하도록 재조정할 수 있는 마술 지팡이를 가지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가령 미국에서 큰 축에 속하는 주택은 규모를 줄이고, 부유한 자동차 운전자는 모두 약간 저렴한 자동차를 몰고, 가족은 결혼식 비용을 덜 지출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 결과로 인한 저축은 모든 사람의 주당 노동을 몇 시간 단축시키고, 휴가 기간을 2주 더 늘리는 데 쓸 수 있다.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조금 더 많은 비용을 할애할 수도 있다.

현존하는 증거에 따르면, 이런 식으로 소비 패턴이 달라진다면 틀림없이 2012년의 미국인도 행복도가 분명 증가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식으로 재조정한 2012년의 미국인 삶은 2018년의 미국인 삶보다 더 행복하리라고 단언할 수 있다. 2012년의 미국인은 2018년보다 2조 달러나 더 가난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러한 증거가 타당하다는 점을 기꺼이 인정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현재 소비 패턴이 최소 연간 2조 달러를 허비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아무튼 낭비적 소비 패턴의 경우는 다른 모든 영역에서보다 행동 전염으로 인한 피해가 한층 더 막심하다.

소비 패턴을 재조정할 수 있는 마술 지팡이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학생들에게 강조하고자 애쓰는 바와 같이, 시장 실패의 실상을 드러낸다고 해서 정부 개입이 저절로 상황을 개선해주리라고 보장할 수는 없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수많은 정부 개입이 실제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기도 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실제적인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현재 시행 중인 불완전한 경제적ㆍ사회적 정책 도구는 우리가 수용 가능한 비용으로 우리의 소비 패턴을 재조정할 수 있도록 해줄까?

행동 전염의 정책적 함의

그저 질문하라, 말하지 말고

여러 해로운 형태의 행동 전염은 방대한 규모의 손실을 낳는다. 하지만 우리는 흔히 전염의 논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간 이러한 손실을 완화하는 데서, 혹은 심지어 그러한 손실을 인식하는 데서조차 진척을 이루지 못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볼 때 개탄스러운 상황이지만, 다른 의미에서 보면 기회이기도 하다. 나쁜 소식이라면 우리가 행동 전염이 야기하는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매년 수조 달러에 달하는 손해를 입어왔다는 점이다. 좋은 소식이라면 그러한 손실을 야기하는 개인적 인센티브를 변화시키는 일이 비교적 손쉽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고통스러운 희생을 강요할 필요 없이 우리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자원 ­ 기후 변화로 인한 위협 등 긴급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쓸 수 있는 자원 ­ 의 양을 크게 키울 수 있다. 이 책을 쓰면서 내가 진정으로 소망한 바는 이 프로젝트를 어떻게 시작할 것인지에 대해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도록 정리할 수 있으면 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수십 년의 세월을 흘려보내고서야 의회는 대기 오염과 수질 오염을 완화하는 조치와 관련한 경제학자들의 권고를 받아들였다. 오염 물질 배출에 대한 과세, 재생 에너지원에 대한 대대적 투자를 지지하는 강력한 논의가 진행되었는데도 이처럼 오랜 세월이 걸린 것을 보면, 우리가 좀 더 발 빠르게 행동하지 못하는 것은 흔히 정책적 해결책 그 자체의 결함 때문이라기보다 그 해결책의 지지자로서 우리 자신의 흠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정책적 문제에 대한 혁신적 해결책을 수용하도록 입법자들을 설득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어렵다. 하지만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의사소통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비슷한 환경에서 진척을 이루어온 전략을 찾아냈는데, 이런 전략은 대부분 “무슨 일인가 해보라(do something)”고 듣는 이들을 설득하려는 시도는 가급적 피한다. 그들로 하여금 행동해야 한다고 스스로 결론 내리도록 해주는 대화를 시작하는 편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심리치료사들이 보고하는 바에 따르면, 어떤 여성에게 “당신은 학대받는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해 줄 경우 흔히 방어적 반응을 촉발하며, 실제로 그녀가 성적 파트너와 계속 관계를 유지할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고 한다. 훨씬 더 효과적인 방법은 그저 그녀에게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기술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인데, 그러면 그녀는 그에 응해서 흔히 상황이 옳지 않음을 분명하게 파악할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자신의 관계를 묘사하게 된다고 한다.

유권자에게 인프라에 대한 좀 더 과감한 투자를 지지해달라고 설득하고자 시도해온 역사를 돌아보라. 2012년 선거 운동 기간에 오바마 대통령과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 후보 엘리자베스 워런은 둘 다 성공적인 기업가들에게 그런 투자의 중요성을 상기시키고자 이렇게 말했다. 그들이 세금을 들여 닦은 도로에서 시장으로 제품을 운송하고, 공립학교에서 교육받은 노동자를 고용하고, 공동체가 자금을 대는 경찰관 및 소방관에 의해 보호받고, 자유 기업 제도 아래서 다양한 이점을 누려왔기 때문에, 다음 세대가 잘 살아가도록 해주는 기회에 투자해야 하는 의무를 수용해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많은 기업가들은 그와는 전혀 다른 메시지를 들었다. 그들의 연설은 기업가에게 본인이 잘해서 성공한 게 아니라고, 사실상 기업가들은 그들의 누리고 있는 높은 지위를 차지할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두 연설은 이내 “당신들은 그것을 건설하지 않았다(you-didn’t-build-that)” 연설로 알려지게 되었다. 발췌 영상이 삽시간에 입소문을 탔고, 수백만 건의 격분한 논평이 쏟아졌다.

하지만 기업가들은 그들의 성공이 부분적으로는 외부 요인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애써 상기시키지 않으면 다르게 반응한다. 즉 우리가 그냥 그들이 정상에 이르도록 도와주었을 가능성이 있는 외부 요인의 예를 떠올려볼 수 있겠냐고 물으면, 그들은 그 질문에 대해 기꺼이 생각해보고, 흔히 자기가 운이 좋았던 예를 떠올리면서 분명한 즐거움을 느낀다. 이러한 대화를 나누고 나면 그들은 왕왕 우리가 해야 하는 추가적인 공공 투자에 대한 제안을 자청하기도 한다.

대화 방식은 새로운 아이디어 채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내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부분적으로 몇 년 동안 대학에서 함께 일한 두 고위 행정가와 정책에 대해 논의하면서 느낀 현저한 차이 때문이다. 둘 중 한 사람은 대학 총장이고, 다른 한 사람은 그 대학의 여러 칼리지 중 한 곳의 학장이었다. 내가 지지하는 특정한 학문적 정책 이니셔티브에 대해 두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면, 각각은 거의 비슷한 비율로 나에게 유리하도록 판결했다. 마찬가지로 나에게 반대하는 경우의 수도 비슷했다. 따라서 놀라움으로 다가온 것은 그들의 결정에 대한 내 반응이 그들이 나를 지지하는지 여부가 아니라, 그 결정에 앞선 논의의 성격이 어땠느냐에 크게 좌우되었다는 사실이다.

첫 번째 행정가인 총장이 내게 반대할 때면, 그에 대한 나의 존경심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반면 두 번째 행정가인 학장이 판결을 내릴 때면, 그것이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그에 대한 나의 평가는 한 단계씩 나빠졌다. 총장은 내 주장에 신중하게 귀를 기울였고, 나의 논의를 이해했을 뿐 아니라, 그 나름의 언어로 그 논의를 정리해서 다른 사람들이 그 논의의 장점을 이해하도록 만들 수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내가 어떤 것에 대해 불분명하거나 불완전하게 말하면, 그는 재빨리 알아차리고 통찰력 있는 후속 질문을 던졌다. 내게 반대할 때조차 내가 가치 있게 여기는 다른 목표를 달성하는 대학의 역량을 지키기 위해 그래야 했다는 본인 의견을 들려주었다.

두 번째 행정가와의 경험은 사뭇 달랐다. 그는 건성으로 들었으며, 내 제안 가운데 그 어떤 것에 대해서는 질문한 경우를 한 차례도 기억해낼 수 없다. 게다가 그는 내가 왜 그 제안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지 이해했다는 느낌을 전달하지 못했다. 내게 반대할 때는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하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더러 내 제안에 동의하는 경우에도 본인에게 도움이 되는 이유 때문에 그렇게 한 것 같았다.

인간 대화의 내용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내가 두 행정가에게 판이하게 반응한 이유를 설명하는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이 분야에서 드러난 일관된 결과는 질문하기가 대화 파트너들이 공유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촉구하는 유일하게 강력한 도구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대화에서 여러 상이한 유형의 질문이 많지만, 후속 질문은 유독 특별한 힘을 지니는 듯하다. 이 분야를 선도하는 하버드 경영대학의 앨리슨 우드 브룩스와 레슬리 존이 썼다시피 “후속 질문은 대화 파트너에게 당신이 듣고 있으며 마음을 쓰고 있으며 더 알기를 원한다는 신호를 보낸다. 후속 질문을 많이 던지는 파트너와 상호 작용하는 사람은 상대가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자신을 존중한다는 느낌을 받는 경향이 있다.”

정리해보자. 내가 이 책에서 서술한 여러 손실의 규모나 범위가 엄청나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낭비적 소비 패턴의 경우, 손실이 수십 년 동안 발생했다. 기후 변화의 경우, 가장 심각한 손실은 아직 도래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2가지 형태의 손실은 대부분 고의적인 선택의 결과라기보다 의도치 않은 부작용이며, 따라서 도덕적 분노의 대상으로는 적절치 않다. 그럼에도 이 같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손실은 우리가 가장 열정을 기울이기에 적합한 핵심 관심사다. 나는 간단한 정책 변화만으로 누구로부터도 고통스러운 희생을 강요하지 않은 채 그러한 손실의 상당 부분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이 옳다는 것을 충분한 정도의 사람들에게 설득하는 데 실패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그렇게 하고자 애써보지 않는다면 도저히 이 세계를 마음 편하게 떠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물론 효과적으로 대화하는 법에 대한 나의 가르침이 필요 없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호기심이 많고 감정 지능이 높아서 그저 자연적으로 대화에 능하다. 하지만 대화 연구자 앨리슨 우드 브룩스가 썼다시피 “우리 대다수는 충분한 질문을 던지지도 않고, 적절한 방식으로 질문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좋은 소식은 우리가 질문을 던지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감정 지능을 키울 수 있고, 그것은 다시 우리를 더 좋은 질문자로 만들어주는 선순환 구조가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내가 희망하는 것은 당신이 나서서 많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당신은 회의주의자들로 하여금 당신의 견해를 수용하도록 설득하는 데 매번 성공하지는 못할 것이다. 설사 그렇더라도 분명 좀 더 만족스러운 관계를 개발할 테고, 그러는 과정에서 수많은 멋진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다.

본 도서요약본은 원본 도서의 주요 내용을 5% 정도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원본 도서에는 나머지 95%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보다 많은 정보와 내용은 원본 도서를 참조하시기 바라며, 본 도서요약본이 좋은 책을 고르는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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