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클라시쿠스

행복한 클라시쿠스
북코스모스 회원이 되시면 오디오 듣기 이용이 가능합니다.
행복한 클라시쿠스
김용배 외 지음
생각정원

책소개

이 책은 바흐, 베토벤에서부터 말러, 쇤베르크, 서동시집 오케스트라 등 다양한 작곡가와 연주자, 그리고 음악 이야기를 담았다. 이제 막 클래식에 관심을 가진 입문자부터 클래식에 조예가 깊은 애호가까지 모두 아우를 수 있도록 단계별로 구성했으며, 각 장마다 단계별 클래식 추천곡을 수록하여 이해를 도왔다.

요약본 본문

행복한 클라시쿠스
김용배 외 지음
생각정원 / 2012년 4월 / 252쪽 / 13,000원

어느 날, 클래식이 말을 걸기 시작했다_ 이미선

음악은 일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렵고 난해하다고 느끼는 클래식음악도 깨닫지 못할 뿐, 이미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휴대전화 벨소리로 슈베르트의 가곡 <송어>가 울리고, 지하철역에서는 비발디의 <사계>가 흘러나온다. 백화점이나 마트, 병원, 심지어 공중화장실에서도 잔잔한 클래식이 공간의 빈 구석을 알뜰히 채우고, 광고나 드라마, 대중가요, 영화의 배경음악을 통해서도 심심치 않게 클래식음악을 만날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어릴 때 엄마의 등에 업혀 '반짝반짝 작은 별∼'이라 따라 부르던 노래는 모차르트의 <'아, 어머님 들어주세요'에 따른 12개의 변주곡>이다. 이렇게 우리는 알게 모르게 많은 클래식음악을 들으며 자라왔고, 지금도 클래식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물론 음악이 매번 특별한 감흥이나 의미를 던져주는 것은 아니고, 어떤 때는 귀가 알아서 음악을 차단하기도 한다. 음악은 계속 연주되지만 주변의 다른 소음들과 마찬가지로 그저 흘려보내는 경우도 더러 있는 것이다. 늘 음악에 귀 기울이고 있다면 그런 일상 또한 얼마나 피곤할까.

하지만 가끔은 늘 듣던 음악이 갑자기 특별하게 다가오는 순간을 경험하곤 한다. 흔히 듣던 유행가의 가사가 불현듯 마음을 흔든다거나 예전에 별 느낌 없이 읽었던 책을 무심코 펼쳤다가 가슴을 찌르는 문장을 발견하게 되는, 삶이 제공하는 이 수수께끼 같은 순간들은 어느 날 갑자기 벼락처럼 찾아와서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놓곤 한다. 견딜 수 없는 좌절감에 주저앉았을 때 위로와 응원을 건네기도 했고, 벅찬 기쁨에 사로잡혔을 때 열렬한 환호와 갈채를 보내주기도 했다.

예를 들면 바흐의 음악은 땅이 지닌 조용하고도 강인한 기운을 곧잘 전해주곤 했다. 2005년 11월 18일 예술의 전당, 수많은 청중에게 둘러싸인 첼리스트 요요마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6번, BMW1012를 연주했다. 부드럽고 둥근 음색으로 때로는 달콤하게, 때로는 품위 있게 바흐를 연주하는 그는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연주된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이 곡의 악보를 제일 처음 찾아낸 사람은 스페인 첼리스트 파블로 카살스였는데, 고서점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이 악보를 발견했다고 한다. 1973년 유명을 달리한 그는 생전에 매일 아침을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을 연주하는 것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일종의 의식과도 같은 행위에 대해 그는 이렇게 고백한 바 있다.

"그것은 내가 세계의 한 부분이 되고 있다는 삶의 재발견이기도 하지요. 그것은 인간 존재에 대한 믿을 수 없는 경의와 함께, 생에 대한 놀라움으로 나를 채웁니다. 그 음악은 내게 믿을 수 없이 매일 새롭고 황홀합니다. 그것이 바흐이며 대자연과 같은 기적인 것입니다."

겨울이면 내 차 안에는 어김없이 바흐의 선율이 흐른다. 바흐의 풍부하고 명징한 선율은 내 몸과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어주기에 충분하다. 특히 로스트로포비치와 비견되는 샤프란, 그가 연주하는 첼로의 울림은 낮은 저음으로 유명한 러시아 베이스의 노래처럼 원초적인 흙냄새로 나를 사로잡는다. 겨울나무들은 한가롭고 일견 씁쓸해 보이지만 사실은 햇살과 바람을 통해 양분을 저장해가며 새 생명을 준비하느라 어느 계절보다 바쁘고 치열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그래서일까. 겨울에 듣는 바흐의 음악은 황량한 풍경을 배경으로 하지만 어느 때보다 깊은 사색과 에너지로 나를 겹겹이 채워준다. 그것이 나와 바흐가 나누는 대화다.

성악과 사랑의 대화가 오가기 시작한 것은 비제의 오페라 <진주조개잡이>에 나오는 남성 이중창을 들은 후부터다. 음반을 찾아내 듣고 또 들으면서, 부르는 사람에 따라 노래의 색깔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 Die Winterreise>는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의 음성으로 익숙한 곡이다. 피셔 디스카우는 슈베르트를 너무도 사랑해서 <겨울나그네>를 무려 일곱 차례나 녹음한 바리톤으로 유명하다. 그의 목소리로 익숙해진 곡을 베이스 한스 호터의 마치 말하는 듯한 노래로 만났을 때, 그 색다른 표현에 얼마나 감동했던지.

어느 날 클래식 애호가 한 분으로부터 글렌 굴드와 줄리아드 스트링 콰르텟이 함께한 음반을 선물 받으면서 굴드의 해석에 새롭게 빠져들기도 했다. 현악기 앙상블과 함께 투명한 굴드의 피아노가 슈만의 시적 세계를 충분히 느끼게 해주는 이 음반은, 1968년 서른여섯 살의 굴드가 뉴욕에서 녹음한 것이다. 슈만에게서 이 곡을 받고 '아름답고 젊고 신선한 작품'이라고 일기에 썼던 그의 아내이자 피아니스트 클라라는 이 곡을 어떻게 연주했을까? 수세기 전 음악가들의 인생 이야기를 상상해보는 일 역시 나만의 클래식 대화법 중 하나다. 슈만의 피아노 사중주 1악장의 짧고 단순한 서주序奏, 이후 현악기가 주제를 발전시켜나갈 때 피아노가 멀리서 메아리처럼 신비롭게 응답하는 대화, 흐느끼며 갈등하는 듯한 선율, 4악장의 빠르게 질주하는 선율은 슈만의 우울한 내면을 드러내는 듯하다. 그 한가운데 자리한 아름답고 시적인 3악장은 클라라와의 사랑에서 오는 행복과 몽환의 상태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이제 막 클래식과 첫인사를 나눈 당신을 위한 추천음반
브람스 : 피아노 협주곡 2번, 베토벤 : 피아노 소나타 2번 - 리흐테르
하루키 부부에게 치유의 경험을 안겨준 그 음악, 그 연주를 들을 수 있는 음반이다.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는 클래식음악가 중 가장 레퍼토리가 넓은 피아니스트로 유명한데, 그가 한 평생 연주한 작품을 꼽아보니 삼천 곡 정도가 나왔다고 한다. 어느 한 작곡가의 곡에 뛰어난 사람은 하나의 스타일에 얽매이는 경우가 많은데, 리흐테르는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완벽한 '변신'을 꾀하는 연주자로도 유명하다.

바흐 : 무반주 첼로 모음곡 - 요요마
첼로의 명곡으로 꼽히는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첼리스트가 평생 지침으로 삼아야 할 '음악의 성서'로 불린다. 연주자에 따라 해석이 판이하게 달라지는 곡이기도 한데, 첼리스트마다 자신의 개성을 담아 새로운 해석을 내놓으려고 도전하는 작품인 까닭이다. 1983년 요요마가 템포를 크게 변형시켜 이 곡의 연주음반을 발표했을 때는 의견이 분분했다. 참신하고 독창적인 해석이라는 의견과 깊이가 떨어진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하지만 1984년 그의 베스트셀링 앨범은 무반주 첼로 모음곡으로 그래미어워드 최고의 기악 연주자상을 수상했다.

하이든 : 현악 사중주 '황제', '종달새', '해돋이' - 아마데우스 콰르텟
하이든은 칠, 팔십 곡에 달하는 현악 사중주를 작곡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고전적인 형식 안에서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를 하며 발전해나갔는데, 직품번호 64로 출판된 여섯 곡의 현악 사중주 중 제5번은 모든 현악 사중주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악장의 명랑하고 아름다운 바이올린의 주제로 '종달새'라는 별칭이 붙여졌다.

슈베르트 : 오중주, 교향곡 5번 - 파블로 카살스
교향곡 5번은 슈베르트가 열아홉 살 때인 1816년 10월 3일에 완성했다.

편성은 작은 편이지만 간결하고 선율이 아름다워서 슈베르트의 교향곡 중에서 <미완성 교향곡 Unvollendete Symphonie> 다음으로 많이 연주되고 있다. 제1악장은 현악기로 연주되는 경쾌한 제1주제가 상쾌하기 이를 데 없고, 제2악장은 슈베르트의 진면목이 발휘된 멜로디가 아름답다. 제3악장은 단조의 메뉴엣이지만 스테르초풍이어서 산뜻하며 선율적인 트리오도 평온하다. 제4악장은 변화가 많은 경쾌하고 화려한 피날레다.

비제 : 진주조개잡이 - 니콜라이 게다
<카르멘Carmen>과 더불어 사랑받는 비제의 오페라. 인도양의 실론섬을 배경으로 이국적인 음악이 펼쳐진다. 이름 모를 여 사제를 서로 사랑해 우정을 해칠 뻔했던 일을 후회하면서 영원한 우정을 노래하는 쥐르가와 나르디의 남성 이중창이 돋보인다.

우리 안의 클래식_ 유정아

1989년 KBS에 입사해 가장 먼저 진행하게 된 프로그램은 1TV의 <클래식 사전>과 클래식 FM의 <멜로디를 따라서>였다. 우연이었겠지만, TV와 라디오에서 맡은 첫 프로그램들이 둘 다 클래식음악 프로였던 것이다. 이 년간 진행하던 <멜로디를 따라서>는 밤늦은 시간 근무하는 것이었지만 매우 즐거웠고, 마지막 방송을 하는 날 스튜디오의 철문을 닫고 그 뒤에서 남몰래 엉엉 울었다. 싫어진 애인과 헤어질 때도 눈물이 나는 법인데 오죽했겠는가.

첫아이 임신 때에는 <한낮의 음악실>을, 둘째 임신 때에는 <저녁의 클래식>을 진행하고 있었다. 각각 낮 오후 12시∼2시, 저녁 6∼8시로 임신부가 진행하기에는 조금 가혹하달 수 있는 '식사시간'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매 끼니 많이 먹는 사람이 배 안에 다른 생명까지 가졌으니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태아에게 하루에 저절로 두 시간씩 좋은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태교가 되고 있었음에도 나는 배가 고파 스튜디오 안에서 음악을 틀면서 이를 갈았다. '내가 다시는 음악을 듣나 봐라. 으이구, 배고파….'

태교의 효과는 임산부답지 않은 '이 갊'으로 인해 상쇄되거나 반감됐을지 모른다. 내가 이렇듯 밥 먹는 시간에 음악을 전하는 일을 '해봐서' 아는데, 어떤 음악도 밥이 될 수 없다. 예술은 밥이 아니다. 음악을 듣는다고 배가 불러지지도, 배고픔이 잊히지도 않는다. 물론 하는 이에게는 그것이 밥이지만, 듣는 이에게는 결코 밥이 아닌 그것을 대체 왜 듣고, 듣는 것이 뭐가 좋다고 이렇게 쓰고 있는가. 이 글은 음악을 듣는 일이 밥 아닌 무엇을 주고 있는지에 대한 한 개인의 경험담이다. 나는 클래식음악 주변에서 음악을 전하고 음악에 대해 쓰고, 음악을 하는 사람이 아니면서도 자주 그들과 함께 무대에 서면서 밥을 나눠 먹기도 하는 조금 특수한 경우이겠으나, 결코 음악을 직접 하는 음악인이 아니라는 점에서 독자 여러분과 같은 것이 더 많은 처지라는 생각이다.

음악 안에 해답이 있을 수 있다
내가 무척 존경하고 좋아하는 필자, 재일조선인 학자 서경식 선생은 그의 책 『나의 서양음악 순례』에서 매우 심오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유대인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의 노동을 독려하기 위해, 죽임의 방법을 가늠할 때, 수용소장의 기호를 위해 포로 음악인들로 실내악단을 꾸려 음악을 연주한 예 등을 들며, 음악 자체에 약이 들어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있다. 내가 내린 나름의 답은 이렇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그렇듯 음악도 자체의 낙과 악이 있지만, 그것을 누가 어떻게 무엇에다 꺼내 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그리하여 작곡가가 선율과 리듬에 실어 보낸 깊은 음악정신을 연주자와 청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가 더욱 중요하다고.

'예술은 정치를 초월하는 것'이라고 일갈하며 히틀러 앞에서 지휘한 푸르트벵글러와, 자신이 태어나 가장 잘한 일은 반체제 작가 솔제니친을 지지한다는 글을 《프라우다 Pravda》에 실었던 것이라고 회고했던 로스트로포비치, 그와 같은 두 가지 경우와 그 사이 무수히 많은 지점에 위치했던 음악과 음악인의 사례가 역사 속에 있다. 그들 중 어느 쪽이 '인간적으로' 훌륭한가, 무엇이 옳은가.

음악 안에 해답이 있다. 인간은 아무리 망가지고 부패하고 오만해도 결정적인 순간에 이런 아무 대가 없는 아름다움을 만들 수 있고 누릴 줄 알고 나눌 수 있는 존재라는 것. 음악정신의 본질이 아름다움을 나누는 데 있다면 그 안의 악함은 결국 극복될 수 있다는 자랑스러운 자각. 그것이 인생의 다음 단계로, 지친 하루 중 쓰라리고 처진 마음을 다잡고 다음을 준비할 수 있게 해주는 음악의 힘이다. 아주 오래전 먼 곳에 살던 가난한 인간이 주군의 궁정악단에 발탁되고 싶어서든 생계를 위해서든 자신의 최선을 다해 지어서 오랜 세월의 이끼가 덮인 채 오늘까지 살아남아 전해지는 한 줄기의 음악을 소개하는 것이 매우 즐거운 일임을 나는 자주 생각한다. 그 이끼 속에 보존된 인간의 정신이 음악에 실려 오늘날의 우리를 각성시키고 위로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부족한 능력으로 누군가의 음악언어를 말로 애써 전달하고 있다. 음악을 통해 느끼는 감사가 '이런 음악을 들으며 살 만한 이 행운의 삶이 내게 주어진 것에 대한 기쁨'이 아니라 '음악이 언제 어디서든 내가 태어나 살아감에 위로와 용기를 주는 것에 대한 보다 보편적인 감사'였으면 하는 생각으로. 매개자로서 내가 위에서 생각한 그 방향으로 전하다 보면 더 많은 사람들이 소유하지 않고 공유하는 음악의 미덕을 느끼게 되리라 믿으며.

우리가 어릴 적, "엄마가 우리 새끼들을 봤으면 얼마나 예뻐하셨을 텐데…"라며 목 놓아 운 아버지의 만취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른이 운다는 것도, 술이 사람을 울게 할 수 있다는 것도 믿기 어려웠지만 당시 아버지 나이를 훌쩍 넘어 '어른이 깊어가면서' 자연스레 그 두 가지가 다 가능함을 알게 됐다. 음악을 듣는다고 해서 그런 인간사 슬픔이 잊히지도 않으며, 매일 아침 음악을 들으며 맨손체조를 해왔다고 해서 나이 듦을 피해가지도 못한다.

얼마 전 마라도로 배를 타고 가면서 가까이에서 들여다본 바다는 아주 무서웠다. 새삼 그 깊이와 넓이의 가없음에 대해 경외를 느꼈다. 인간은 자연에 비해 몹시 보잘것없고 아무 준비 없이 그 바다에 뛰어들면 살아남기 힘든 존재지만, 그 허약한 육체에 깃든 보이지 않는 정신 속에 바다만큼이나 무한한 세계를 갖고 있기에 바다 못지않은 광대한 존재임을 음악을 들으며 느낀다. 우리는 세상의 자랑스러운 일부임을 느낀다.

음악은 또 하나의 세상이다, 달콤하지만 치열한_ 정준호

『한여름 밤의 꿈 A Midsummer Night's Dream』은 두 쌍의 선남선녀, 요정의 왕 오베론과 왕비 티타니아, 그리스의 공작 테세우스와 아마존 여왕 히폴리타를 포함, 총 여섯 연인들이 궁전과 숲 속을 오가며 보낸 꿈같은 시간들로 어린 시절 내게 '일장춘몽'에 대한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있는 음반 하나가 눈에 띄었다. 'Ein Sommernachtstraum'이라는 어느 나라 말인지 모를 제목이 적혀 있었지만, 당나귀 머리를 품에 안은 요정의 모습만으로도 『한여름 밤의 꿈』을 주제로 한 음악이라는 사실을 선뜻 알 수 있었다. 음반을 전축에 걸자 곧 흘러나온 멘델스존의 음악은 글로 읽으며 품었던 호기심을 백 퍼센트 충족해줬다. 그리고 판을 뒤집어 걸었을 때 눈부신 팡파르와 함께 들린 첫 곡은 결혼식장에서 단조로운 피아노 독주로만 들었던 '결혼행진곡 Hochzeitsmarsch'. 이렇게 휘황찬란한 관현악이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멘델스존이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에 관심을 가진 것은 그의 나이 열일곱 살 때였다. 소년은 은행장인 아버지의 집에서 이 연극이 공연될 때 곁들여 연주하기 위해 서곡을 썼다. '결혼행진곡'을 비롯한 나머지 음악들은 성인이 돼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의 위촉으로 작곡한 것이다. 그래서 서곡은 작품번호 21로, 나머지는 작품번호 61로 따로 출판됐다.

처음 음반을 발견한 그날, 셰익스피어와 멘델스존의 선물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집 거실에서 비디오로나마 이 연극을 보게 된 날은 그로부터도 한참 뒤였지만, 내 가슴은 이미 멘델스존이 처음 이 곡을 작곡했을 때 품었을 벅찬 기분에 도달하고도 남았다. 완벽한 또 하나의 세상과의 만남이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내가 있었다. "멋진 신세계"와의 만남은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 된 정문석이 내 모습을 보고 클래식에 입문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문석이와 나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소나타를 갖게 됐다.

베토벤은 모두 열 곡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썼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크로이처 소나타 Kreutzer Sonata>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진 바이올린 소나타 9번이다. 베토벤이 로돌프 크로이처라는 바이올리니스트에게 헌정한 곡으로, 제목 때문이기도 하지만 '9'라는 상징적인 번호 때문에 뒤에 작곡한 소나타 10번보다 오히려 더 유명한 곡이기도 하다. 많은 작곡가들에게 교항곡 9번이 마지막 곡이었기 때문이다. 이 곡에 얽힌 몇 가지 이야기. 톨스토이는 『크로이처 소나타』라는 소설에서 부정을 저지른 아내를 살해한 남편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아내와 정부를 맺어준 곡이 <크로이처 소나타>라는 점에서 남편, 곧 톨스토이에게 그 음악은 매우 위험한 것이다. 한편 베토벤의 삶과 예술을 그린 영화 <불멸의 연인>에서는 작곡가 자신이 이 곡을 사랑에 애타는 마음을 그린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크로이처 소나타>를 처음 접한 것은 이런저런 배경을 잘 알지 못하고 오직 그 소리에만 귀를 열었던 학창 시절, 문석이가 <크로이처 소나타>를 복사해 달라고 청했다. 당시에는 LP의 음악을 카세트테이프로 복사해 '워크맨'으로 듣고 다니는 것이 유행이었다. 나는 늘 베토벤만 듣는 그에게 다른 작곡가도 좀 돌아보라고 권했지만 녀석은 다른 작곡가로 모험을 하기보다는 언제나 실망을 주는 법이 없는 베토벤만 듣겠다며 막무가내였다. 집에 와서 복사를 하는데 장난기가 발동해 <크로이처 소나타> 대신에 세자르 프랑크라는 벨기에 작곡가의 유명한 바이올린 소나타를 녹음했다. 이 음악은 마르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쓸 때 영감을 줬을 정도로 매혹적이다. 나는 정경화가 바이올린을, 라두 루푸가 피아노를 연주한 음반을 카세트테이프로 옮겼다. 친구는 프랑크의 소나타를 <크로이처 소나타>로 알고 열심히 들었고, 며칠 뒤 이야기했다. "거봐. 베토벤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아." 뒤에 속았다는 사실을 알고도 나를 탓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이 시절에 감동을 함께 나눌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은 정말 고마운 것이다.

클래식은 특별하지 않다,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_ 유정우

자유의 다른 이름, 오보이스트 알브레히트 마이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최고의 아티스트는 누가 뭐래도 알브레히트 마이어다. 그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수석 오보이스트이자 솔리스트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오보이스트다. 취미로만 즐기던 클래식음악을 소개하고 해설하는 일을 하게 되면서, 어느 틈엔가 클래식음악이 단순한 취미의 차원을 넘어서 일종의 의무와도 같이 변해감을 느끼곤 한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나 자신만의 지극히 개인적인 취미로서의 영역을 남기고 싶은 욕구는 항상 있었고, 그런 최후의 성역과도 같은 존재가 바로 오보에라는 악기다. 중학교 시절 처음으로 클래식음악이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부터 가장 좋아했던 악기가 오보에였고, 급기야는 이 어려운 악기를 취미로 다루기까지 했었기 때문이다. 오보에는 고향과도 같은 존재랄까. 그리고 그런 나만의 성역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음악가가 바로 알브레히트 마이어인 것이다.

내가 처음 마이어라는 연주자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1996년경이었다. 우연히 TV에서 중계되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 실황에서 한 젊은 오보이스트가 기가 막히도록 아름답게 오보에 솔로를 부는 것을 보고는 놀라움과 함께 누구일까라는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베테랑 오보이스트들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는 완전히 처음 보는 생소한 인물이었다. 오보에를 다루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상으로 삼을 만한 연주를 들려주는 이 낯선 연주자가 누군지 궁금해 죽을 지경이다. 그렇게 여러 가지 자료를 찾아보면서 그가 1992년에 입단한 새로운 수석 오보이스트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피아노, 현악기 등에 비해 솔리스트가 많지 않은 관악계에서 마이어의 이름은 독보적이다. '신이 내린 재능', '악기를 매력적으로 만든 오보이스트' 등의 극찬을 받는 이 천재 연주자에 대한 내 짝사랑은 날로 깊어만 갔다. 그리고 2000년 늦가을 도쿄, 마침내 나는 그의 실제 연주를 접할 수 있었고, 공연이 끝난 뒤 도쿄문화회관의 연주자 출입구에서 그와 첫 대면을 했다. 이후 내 음악여행은 자연스럽게 마이어의 콘서트 스케줄에 맞춰졌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됐다.

솔리스트로서 그의 콘서트 중 특히 기억에 남는 콘서트를 꼽자면 우선 떠오르는 것은, 2006년 봄 베를린 필하모닉 멤버들로 구성된 베를린 바로크 졸리스텐 Berliner Barock Solisten과 함께한 일련의 콘서트다. 새롭게 발굴해 복원한 텔레만의 협주곡들과 바흐, 마르첼로 등의 명곡을 각각 도쿄와 베를린에서 들려줬던 콘서트였다. 헨델의 수많은 아리아들을 편곡, 완전히 새로운 협주곡들로 재구성해 만든 독특한 앨범<뉴 시즌 New seasons>의 발매에 즈음해 2006년 가을에 가졌던 독일 내 프로모션 투어 역시 기억에 남는다. 특히 이 콘서트들은 공연 전 준비과정과 무대 뒤의 모습을 완전히 밀착해 관찰할 수 있었기에 더욱 값진 추억으로 남아 있다. 마이어의 도움으로 볼 수 있었던 베를린 필하모닉의 특별 연주회들 역시 독특한 경험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단원들이 무대 뒤에서 가진 송년 파티에 초대됐던 2006년 송년 음악회, 베를린 슈프레 강변의 낡은 공장에서 있었던 2007년 유레피안 콘서트, 창립 125주년을 기념해 무려 여덟 시간 동안 논스톱으로 연주회를 가졌던 2007년 11월 4일 마라톤 콘서트…. 어떤 해에는 마이어의 연주를 듣기 위해 한 해에 여섯 번이나 베를린을 찾았을 정도니 나도 참 어지간하긴 했다.

마이어의 연주를 평할 때 나는 '오보에 칸타빌레'라는 표현을 쓴다. 노래를 부르는 듯한 유려한 프레이징(phrasing, 악상을 자연스럽게 분할해서 정리하는 것)이 특징적이기 때문이다. 눈물이 흐를 것같이 아름다운 음색은 오보에에도 마치 사람처럼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그만큼 살아 숨 쉬는 그의 연주로 인해 우리는 오보에라는 악기를 통해 경험할 수 있는 최상의 경지를 느낄 수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일원으로 정해진 틀 안에서만 연주할 때와는 대조적으로 솔리스트로서의 마이어는 대단히 자유로워서 마치 재즈 연주자처럼 과감한 즉흥연주도 서슴지 않는다. 그 자유로운 연주에서 자유로운 영혼을 감지할 때면, 일상의 고단함과 갑갑함에 허우적대던 나는 일종의 대리만족 같은 것을 느끼곤 한다. 내게 있어 마이어는 자유의 다른 이름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마이어를 통해 얻은 것이라면, '진실'과 '겸허'일 것이다. 그러니깐 바이로이트 사운드를 잘 안다고 자부하던 내가 실제 공연을 직접 보고서야 내 지식과 정보, 감상과 느낌의 한계를 여지없이 체감한 일과 같다고 할까. 마이어와 대화를 나누다보면 내가 얼마나 부족하고 모자란 애호가인지 깨닫곤 한다. 스스로 만들어 놓았던 음악과 연주에 대한 환상이 보기 좋게 깨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그 기분이 결코 나쁘지 않다. 환상이 깨진 자리에 진솔한 현실이 들어서기 때문이다. 음악은 아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라는 아주 단순하지만 쉽게 깨닫기 힘든 진실을 받아들이고 나면, 음악이 주는 감동에 더욱 크게 젖어들게 되는 법이리라.

클래식을 듣는다는 것_ 장일범

클래식음악은 특별한 계층이 듣는 음악 또는 잘난 척하는 사람들이 듣는 음악이라는 오해를 갖고 계신 분들이 있다. 내 러시아 유학 이야기를 들려드려야겠다. 러시아에서는 주 중에는 모든 공연이 저녁 7시에 열린다. 연극, 오페라, 콘서트 할 것 없이 모두 저녁 7시에 공연 시작의 커튼을 올리는 것이다.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참 다양했다. 학생들도 노인들도 장바구니를 들고 가던 아주머니들도 누구나 공연장으로 모여들었고, 모두 집중해서 음악을 듣고 뜨겁게 박수를 치며 생활 속에서 즐기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들꽃을 꺾어온 할머니가 무대 앞으로 걸어 나와서 꽃을 주고 가던 모습은 지금도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바 공연장 풍경이다. 소비에트 시대에 클래식음악과 예술인들을 국가적으로 숭상한 정책 때문이기도 했다.

소비에트 러시아 시절, 집에 전화도 놓지 않을 정도로 자신의 모든 것을 음악에만 몰두했던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는 회화작품을 무척 사랑했다. 그래서 매년 12월 밤이 되면 자신이 사랑하는 후배 음악인들과 함께 '12월의 밤' 페스티벌을 국립 푸시킨 미술관에서 열었다. 12월의 밤 페스티벌은 매년 주제를 달리해서 진행됐는데 내가 이 페스티벌을 취재한 해의 주제는 '독일 낭만주의 회화와 음악'이었다. 갤러리에 전시돼 있는 독일 낭만주의 회화를 감상하면서 독일 낭만주의 음악을 듣는 이 멋진 감흥은 내게 무릎을 탁! 치도록 만들었다. 뉴욕 모마의 카페에서 감상한 재즈 연주회와 더불어 이렇게 음악과 미술이 함께 만나는 일은 진정 아름다운 것이구나! 라고 가슴 깊숙이 간직해놓았다.

러시아의 음악회에는 모두 사회자가 있다. 이 사회자는 소비에트 시대부터의 전통으로 대중에게 프로그램과 연주자를 소개하고 시작과 휴식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맡았다. 나는 여기서 영향을 받아 더욱 발전시켜 단순 사회자가 아니라 음악에 대해 설명해주는 해설자 역할을 '이야기가 있는 음악회'를 통해 맡았고, 로댕갤러리 목요음악회와 삼성미술관 리움에서의 목요음악회에 이르기까지 미술관 음악회를 무려 구 년간에 걸쳐 진행했다. 가장 큰 보람은 그 당시 음악회에 부모님의 손을 잡고 왔던 아이들이 대학생이 돼 음악회에 나타나서 반갑게 인사를 한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의 경험은 그만큼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다.

내가 결혼을 하게 된 것도 결국 클래식음악 덕분이었다. 나는 2010년과 2011년 이 년간에 걸쳐 서울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책, 음악과 만나다'라는 강연 시리즈를 강의했다. 2010년 8월에는 베르디의 오페라 <맥베스macbeth>와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를 강의하고 있었는데 강연을 들으러 온 한 여성에게 반해버린 것이다. 두 달 후 그해의 마지막 강의의 주제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Aimez-vous Brahms?』와 브람스의 음악'이었는데 이때 운명적으로 다시 찾아온 그 여성과 강연이 끝난 후 처음 말을 나눌 수 있게 됐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진행했던 아트선재센터의 '이야기가 있는 음악회'에 정기권을 끊어 매달 왔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십 년 만인 2010년 가을 다시 내 강의를 홀연히 찾아와 만나게 됐던 것이다. 결국 그로부터 넉 달 후에 노총각은 결혼에 골인할 수 있었다. 이것도 클래식음악이 내게 맺어준 고마운 인연이었다. 클래식음악이 없었다면 전혀 만나지 못했을 인연이었기 때문이다. 클래식이라는 매개체는 그야말로 우리를 늘 함께하게 해주고 부부생활의 중심이자 활력소가 되고 있다.

0 댓글
본문 피드백
모든 댓글보기